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Paṭhamamaraṇassati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여덟 비구의 답을 하루 밤낮에서 한 입과 한 호흡까지 비교하고, 번뇌 소멸을 위해 방일하지 않고 예리하게 닦는 기준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15구절

이 경을 15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죽음의 상념이 불사로 향하는지 묻다 1구절

나띠까의 벽돌집에서 부처님께서 죽음의 상념의 네 결실을 밝히고 수행자들이 이를 닦고 있는지 질문합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셨습니다. 그곳에서 수행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존귀하신 분이시여.” 수행자들이 응답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죽음의 상념을 닦고 거듭 익히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으며, 불사에 잠기고 불사로 끝난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의 상념을 닦고 있는가?”

Ekaṁ samayaṁ bhagavā nātike viharati giñjakāvasathe.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bhikkhavo”ti.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maraṇassati, bhikkhave,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amatogadhā amatapariyosānā. Bhāvetha no tumhe, bhikkhave,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경은 나띠까의 벽돌집에서 부처님이 수행자들을 부르고 수행자들이 응답하는 문답으로 시작합니다. 부처님은 질문에 앞서 ‘마라낫사띠’, 곧 죽음의 상념을 닦고 거듭 익힐 때 얻는 결과를 네 표현으로 제시합니다. 큰 결실과 큰 이익, 불사에 잠김과 불사로 끝남입니다. 여기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아마따’, 곧 죽지 않음이라는 불사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행으로 밝혀집니다. 이어 “그대들은 닦고 있는가?”라고 물어 각 수행자가 자신이 삶을 어느 시간 단위까지 보장된 듯 여기고 있는지를 직접 답하게 합니다.

묵상

죽음을 기억하는 수행과 불사로 향한다는 결론이 함께 놓인 것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죽음 생각을 불안과 같은 것으로 단정하지 말고, 부처님이 먼저 밝힌 네 결실을 지금 천천히 살펴보세요.

2 밤낮 하루를 더 살 수 있기를 바라다 1구절

첫 수행자가 하루 밤낮을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답합니다.

한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는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하루 밤낮을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 될 것이다.’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Evaṁ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ṁ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rattindiv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첫 수행자의 답은 앞으로 더 살기를 바라는 시간의 길이를 밝힙니다. 이는 밤과 낮을 합친 하루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 시간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자신에게 많은 일이 이루어진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닦습니다”라는 선언, 부처님의 “어떻게 닦는가?”라는 질문, 수행자의 생각과 마지막 확인이 한 문답 안에 모두 있습니다. 뒤의 일곱 수행자도 같은 틀을 반복하면서 보장받고 싶은 삶의 단위를 점점 줄여 가며, 죽음의 상념이 얼마나 현재에 가까워지는지를 비교하게 합니다.

묵상

하루 밤낮을 더 살 수 있다면 무엇에 마음을 기울이고 싶나요?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는 말이 성취의 양보다 가르침을 기억하는 데 놓여 있다는 점을 오늘 살펴보세요.

3 낮 하루를 더 살 수 있기를 바라다 1구절

둘째 수행자는 밤낮 전체보다 짧은 낮 하루를 더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기를 바란다고 답합니다.

다른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낮 하루를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 될 것이다.’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둘째 수행자의 문답은 첫째와 같은 순서를 따르지만, 밤낮 하루가 낮 하루로 줄어듭니다. “저도 닦습니다”라는 말은 여러 수행자가 차례로 답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목표는 여전히 그 시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은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시간 단위만 짧아졌다고 곧바로 올바른 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은 뒤에서 낮 하루 역시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위해서는 더딘 죽음의 상념이라고 묶습니다. 이 단계는 죽음을 얼마나 먼 미래에 두고 있는지를 더 세밀히 비교하는 두 번째 기준입니다.

묵상

밤낮 하루와 낮 하루의 차이가 죽음을 기억하는 마음에서는 크게 느껴지나요? 단위가 절반으로 줄어도 여전히 “나중”일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오늘 시간 감각과 차분히 견주어 보세요.

4 반나절을 더 살 수 있기를 바라다 1구절

셋째 수행자는 시간을 다시 반으로 줄여 반나절만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반나절을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upaḍḍha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셋째 답은 낮 하루의 절반, 곧 반나절입니다. 문답의 다른 부분은 앞선 두 수행자와 같아서,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고 밝히고 방법을 질문받은 뒤 남은 시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많은 일을 한 셈이라고 답합니다. 경은 반복을 통해 차이를 한 곳에 집중시킵니다. 밤낮 하루에서 낮 하루, 다시 반나절로 줄어도 수행자는 아직 그 단위만큼의 삶을 먼저 확보하기를 바랍니다. 뒤에서는 이 답도 게으르고 더디게 닦는 부류로 가립니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을 다시 보게 합니다.

묵상

반나절은 일상의 계획으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은 당연히 살아 있을 것이라 여기게 되지 않나요? 오전이나 오후 하나를 당연히 내 몫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는지 지금 스스로 책망하지 말고 차분히 살펴보세요.

5 한 끼를 먹는 동안 더 살기를 바라다 1구절

넷째 수행자는 하루의 일부가 아니라 한 번 얻은 음식을 먹는 동안만이라도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다른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얻어 온 한 끼 음식을 먹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넷째 수행자부터 시간의 기준은 몸의 일상 행위로 바뀝니다. 한 번 얻어 온 음식, 곧 한 끼를 먹는 동안이 기준입니다. 하루나 반나절보다 짧지만 음식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는 살 수 있으리라는 전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면 많은 일을 했다고 여기겠다는 방향은 앞과 같습니다. 경은 살아 있는 짧은 동안 무엇에 마음을 둘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뒤에서는 한 끼를 먹는 시간도 아직 느슨한 기준이라고 보고, 더 짧은 한 입·한 호흡으로 나아갑니다.

묵상

한 끼를 시작하면 끝까지 먹을 수 있으리라고 자연스럽게 여기나요? 그 믿음을 불안으로 흔들기보다, 먹는 동안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는 말이 한 끼의 주의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보세요.

6 반 끼를 먹는 동안 더 살기를 바라다 1구절

다섯째 수행자는 한 끼를 다시 절반으로 줄여 반 끼를 먹는 사이만 살아 있기를 바란다고 답합니다.

다른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얻어 온 반 끼 음식을 먹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upaḍḍh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다섯째 답의 기준은 한 번 얻어 온 음식 가운데 절반입니다. 앞 수행자와 같은 식사 장면이지만 확보하려는 시간을 다시 절반으로 줄입니다.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는 선언과 부처님의 방법 질문, 살아 있는 동안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는 생각, 마지막 확인이 모두 반복됩니다. 반복 속에서 유일하게 바뀌는 반 끼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나중에 반 끼도 한 끼·반나절·하루와 같은 느린 부류로 보십니다. 죽음은 식사의 절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다음 수행자는 시간을 씹어 삼키는 입 하나 단위로 더 잘게 나눕니다.

묵상

한 끼의 절반이라는 단위는 얼마나 짧게 느껴지나요? 짧다고 느끼면서도 그만큼은 당연히 살 것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지금 먹는 동안에도 그런 기대가 숨어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세요.

7 네다섯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을 바라다 1구절

여섯째 수행자는 네다섯 입을 씹어 삼키는 아주 짧은 동안만 살아도 가르침을 기억하겠다고 답합니다.

다른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네다섯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cattāro pañca ālope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여섯째 수행자는 식사의 절반에서 음식 네다섯 입으로 단위를 줄입니다. 씹어 삼키는 것은 씹은 뒤 삼키는 두 동작을 모두 나타냅니다. 이 짧은 동안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합니다. 일상 감각으로는 이미 매우 예리해 보이지만, 부처님은 이 답까지 방일하며 죽음의 상념을 더디게 닦는 여섯 부류의 마지막에 둡니다. 여러 입을 한 묶음으로 예상하는 동안에도 죽음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답은 단 한 입의 씹고 삼킴만 남깁니다.

묵상

네다섯 입을 먹는 짧은 시간에도 시작과 끝을 당연히 이어 붙이고 있나요? 씹기와 삼키기를 따로 느껴 보면 한 입마다 삶이 새로 허락되는 듯한 미세한 차이가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세요.

8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을 바라다 1구절

일곱째 수행자는 단 한 입을 씹고 삼키는 사이만 살아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이겠다고 답합니다.

다른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이리라.’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ṁ ālopaṁ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일곱째 수행자는 네다섯 입이라는 묶음을 단 한 입으로 줄입니다. 씹고 삼키는 두 동작은 그대로 남지만 그 뒤의 입까지 미리 자신의 시간으로 잡지 않습니다. 이 답도 다른 수행자들과 같은 문답 틀 안에 놓여 있어, 특별한 말투보다 삶을 헤아리는 최소 단위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부처님은 뒤에서 이 한 입의 답을 마지막 호흡의 답과 함께 방일하지 않고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예리하게 닦는 경우로 인정합니다. 기준은 죽음을 얼마나 자주 생각하느냐보다, 다음 작은 행위의 끝조차 당연히 보장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지금 이 마음에 있습니다.

묵상

한 입을 씹고 삼키는 동안만을 삶의 단위로 둔다면 다음 입은 어떻게 보일까요? 식사를 두려움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한 입을 충분히 아는 마음이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보세요.

9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만을 바라다 1구절

여덟째 수행자는 한 번의 들숨 뒤 날숨 또는 날숨 뒤 들숨 사이만 살아도 가르침을 기억하겠다고 답합니다.

다른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수행자여, 어떻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가?” “부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한 번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그 사이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참으로 많은 일을 이룬 셈일 것이다.’ 부처님, 저는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습니다.”

Aññataropi kho bhikkhu bhagavantaṁ etadavoca: “ahampi kho,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bhikkhu, bhāvesi maraṇassatin”ti? “Idha mayhaṁ, bhante, evaṁ ho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Evaṁ kho ahaṁ, bhante, bhāvemi maraṇassati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여덟째 수행자의 단위는 음식보다 짧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 호흡입니다. ‘들이쉰 뒤 내쉰다’와 ‘내쉰 뒤 들이쉰다’는 표현은 들이쉰 뒤 내쉬는 경우와 내쉰 뒤 들이쉬는 경우를 양방향으로 모두 말합니다. 다음 날숨이나 들숨이 올 때까지 살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 답을 한 입의 답과 함께 예리한 죽음의 상념으로 인정합니다. 문장의 방향은 “곧 죽을 것이다”라는 공포보다, 다음 반 호흡이 보장되지 않은 지금 가르침을 기억한다는 데 있습니다.

묵상

들이쉰 뒤 내쉬는 것과 내쉰 뒤 들이쉬는 것을 각각 하나의 단위로 보면 지금 호흡이 다르게 느껴지나요? 다음 호흡을 억지로 붙잡지 말고, 지금 이어지는 한 방향만 알아차려 보세요.

10 하루 밤낮과 낮 하루의 답을 다시 세다 1구절

부처님께서 여덟 답을 판정하기 시작하며 하루 밤낮과 낮 하루를 더 살기를 바란 첫 두 답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수행자들의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하루 밤낮을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가 있다. 수행자들이여, 낮 하루를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도 있다.”

Evaṁ vutte, bhagavā te bhikkhū etadavoca: “yv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rattindiv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개별 문답이 모두 끝나자 부처님은 여덟 답을 시간 순서대로 다시 늘어놓으며 판단합니다. 먼저 하루 밤낮과 낮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면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생각한 두 수행자입니다. 두 문장은 각각 “수행자들이여, 이런 수행자가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는 도입과 답의 전체 내용을 반복합니다. 아직 잘잘못을 가리는 말은 나오지 않으며, 첫 여섯 답을 한 부류로 묶기 위해 다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두 시간 단위와 가르침을 기억하는 목적이 모두 남아, 뒤에 나오는 ‘게으르고 더디다’는 결론이 어떤 답들을 가리키는지 분명해집니다.

묵상

처음 들을 때는 신중해 보였던 하루 밤낮과 낮 하루의 답이 판단을 앞두고 다시 들리니 어떤가요? 나에게는 하루나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아직 넉넉하게 느껴지는지 스스로 물어보세요.

11 반나절과 한 끼의 답을 다시 세다 1구절

부처님께서 반나절과 한 끼를 더 살기를 바란 두 답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는 내용까지 온전히 반복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반나절을 더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가 있다. 수행자들이여, 얻어 온 한 끼 음식을 먹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도 있다.”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upaḍḍhadivasaṁ jīveyyaṁ,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부처님은 반나절부터 한 끼까지 다시 차례로 짚습니다. 각 문장은 “이 수행자가 이와 같이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는 틀과, 그 시간 동안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는 생각을 모두 되풀이합니다. 같은 결론이 반복되어도 줄이지 않은 까닭은,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지 그대로 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얻어 온 한 끼 음식을 먹는 동안이라는 더 짧은 시간으로 바뀌지만,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습니다. 두 답은 아직 평가 전이며 뒤의 반 끼와 네다섯 입 답까지 한 부류로 모입니다.

묵상

반나절에서 한 끼로 줄어드는 순서에서 어느 지점부터 충분히 짧다고 느껴지나요? 자신의 기준을 바로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지 말고 두 단위 사이의 미세한 시간 감각을 차분히 살펴보세요.

12 반 끼와 네다섯 입의 답을 다시 세다 1구절

부처님께서 반 끼와 네다섯 입을 더 살기를 바란 두 답도 그 목적과 결과까지 생략 없이 되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얻어 온 반 끼 음식을 먹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가 있다. 수행자들이여, 네다섯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도 있다.”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upaḍḍhapiṇḍapātaṁ bhuñj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cattāro pañca ālope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부처님이 다시 짚는 마지막 두 답은 반 끼와 네다섯 입입니다. 부처님은 두 경우에도 살아 있는 그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는 생각과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는 틀을 온전히 반복합니다. 식사의 절반에서 음식 네다섯 입으로 크게 짧아지지만, 다음 여러 입의 씹기와 삼키기가 끝날 때까지를 하나의 예상된 시간으로 삼는 점은 남습니다. 이로써 하루 밤낮·낮 하루·반나절·한 끼·반 끼·네다섯 입이라는 여섯 답이 모두 다시 제시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 여섯을 모두 ‘이들’이라고 한꺼번에 가리켜 말합니다.

묵상

반 끼와 네다섯 입 사이의 차이는 일상에서는 매우 커 보이나요? 여러 입을 먹는 동안을 하나로 묶어 당연히 살아 있을 것이라 여기는 마음이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세요.

13 여섯 답은 더디다고 판정하고 한 입의 답을 다시 들다 1구절

부처님께서 앞의 여섯 답을 방일하고 더디다고 판정한 뒤, 방일하지 않은 부류의 첫 답인 한 입을 온전히 다시 듭니다.

“수행자들이여, 이들을 ‘방일하며 머물고,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더디게 닦는 수행자들’이라고 한다. 수행자들이여,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가 있다.”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pamattā viharanti, dand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Yo ca khv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ekaṁ ālopaṁ saṅkhāditvā ajjhohar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이들’은 앞서 다시 짚은 하루 밤낮부터 네다섯 입까지, 여섯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부처님은 그들이 방일하게 머물며,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더디게 닦는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상념을 아예 닦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대조되는 다음 수행자를 들며, 단 한 입을 씹어 삼키는 동안만 살아도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생각한 답을 되풀이합니다. 더디게 닦는 여섯과 예리하게 닦는 두 답 가운데 첫 답이 여기서 맞닿아, 두 부류의 경계가 드러납니다.

묵상

네다섯 입까지는 더디고 한 입부터 다른 부류가 되는 경계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아예 닦지 않는다는 말과 닦지만 더디다는 말의 차이, 바로 지금 이 한 입에 머무는 마음을 함께 차분히 살펴보세요.

14 한 입과 한 호흡에도 죽음을 잊지 않는 두 수행자 1구절

부처님께서 들숨·날숨 사이의 답을 목적과 결과까지 다시 들고, 한 입과 한 호흡의 두 수행자를 방일하지 않고 예리하다고 인정합니다.

“수행자들이여, 한 번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사이만 살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죽음의 상념을 닦는 수행자가 있다. 수행자들이여, 이들을 ‘방일하지 않고 머물며,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예리하게 닦는 수행자들’이라고 한다.”

Yo cāyaṁ, bhikkhave, bhikkhu evaṁ maraṇassatiṁ bhāveti: ‘aho vatāhaṁ tadantaraṁ jīveyyaṁ yadantaraṁ assasitvā vā passasāmi, passasitvā vā assasāmi, bhagavato sāsanaṁ manasi kareyyaṁ, bahu vata me kataṁ assā’ti— ime vuccanti, bhikkhave, ‘bhikkhū appamattā viharanti, tikkhaṁ maraṇassatiṁ bhāventi āsavānaṁ kh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둘째 답은 한 번 들이쉰 뒤 내쉬거나 내쉰 뒤 들이쉬는 그 사이만 살아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기울여 많은 일을 이룬 셈이라고 생각한 수행자입니다. 두 호흡 방향과 목적, 결과가 다시 모두 제시됩니다. ‘이들’은 앞서 나온 한 입 수행자와 이 한 호흡 수행자를 함께 가리킵니다. 부처님은 이들이 방일하지 않게 머물며,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위해 예리하게 죽음의 상념을 닦는다고 인정합니다. 두 부류 모두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목표로 하지만, 다음 작은 동작조차 보장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가에서 갈립니다.

묵상

한 입과 한 호흡이 같은 예리한 부류에 놓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시간을 더 잘게 쪼개는 경쟁으로 만들지 말고, 다음 동작을 당연히 보장하지 않는 깨어 있음이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보세요.

15 방일하지 않고 예리한 죽음의 상념을 닦겠다고 훈련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모든 수행자에게 흘러드는 것의 소멸을 위해 방일하지 않고 예리한 죽음의 상념을 닦겠다고 훈련하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훈련해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 머물며,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위해 죽음의 상념을 예리하게 닦겠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훈련해야 한다.”

Tasmātiha, bhikkhave, evaṁ sikkhitabbaṁ: ‘appamattā viharissāma, tikkhaṁ maraṇassatiṁ bhāvayissāma āsavānaṁ khayāyā’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8.73 빠타마마라낫사띠 숫따 (죽음을 알아차림, 첫째)

배경

마지막은 앞서 말한 내용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남기지 않고, 모든 청중이 스스로 다짐하는 문장으로 바꿉니다. “그러므로”는 한 입과 한 호흡이라는 두 답이 방일하지 않고 예리하다고 한 앞의 말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수행자들이 말해야 할 내용은 방일하지 않게 머무는 것과 예리한 죽음의 상념을 닦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이 흘러드는 것이 다함이라는 세 요소입니다. 부처님은 앞과 뒤에서 “이렇게 훈련해야 한다”고 거듭 말합니다. 지금의 한 입과 한 호흡 안에서 가르침을 기억하는 태도를 지속적인 서원으로 만듭니다.

묵상

“우리는 닦겠습니다”라는 공동의 서원이 개인적인 죽음 생각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두려움을 키우기보다 방일하지 않음과 흘러드는 것이 다함이라는 두 요소가 함께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