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타까나가라 숫따(앗타까 성 사람)

Aṭṭhakanāgar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52

아난다가 네 선정·네 한없는 마음·세 무색정에서 조건 지어진 성품을 보고 해탈하는 열한 문을 다사마에게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18구절

이 경을 1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아난다와 다사마를 여는 장면 1구절

웨살리 벨루와 마을에 머무는 아난다와 업무로 빠딸리뿟따에 온 다사마 거사를 소개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아난다 님은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에 머물렀다. 그때 앗타까나가라의 집안 가장 다사마가 어떤 일로 빠딸리뿟따에 와 있었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āyasmā ānando vesāliyaṁ viharati beluvagāmake. Tena kho pana samayena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pāṭaliputtaṁ anuppatto hoti kenacideva karaṇīyena.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경의 첫 장면은 아난다 님을 중심에 둡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말 뒤에, 아난다 님이 머무는 곳인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이 나옵니다. 이어 집안의 가장 다사마가 업무 때문에 빠딸리뿟따에 와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이 두 위치가 다음 이동을 준비합니다. 본문은 그가 왜 아난다를 찾는지 아직 설명하지 않으며, 질문자와 답변자가 만나기 전의 움직임이 이어집니다. 수행의 내용을 읽기 전에도 누가 직접 말하고 누가 듣는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묵상

아난다와 다사마가 아직 서로 다른 장소에 있다는 첫 장면에서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오나요? 곧 나올 가르침을 서두르지 않고, 누가 누구를 찾아가려 하는지와 두 장소의 거리만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2 다사마가 아난다의 거처를 묻다 1구절

꾹꾸따 승원의 한 수행자에게 아난다를 뵙고 싶다고 말하고 웨살리의 거처를 확인합니다.

집안 가장 다사마는 꾹꾸따 승원에서 한 수행자에게 가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다사마가 그 수행자에게 말했다. “수행자님, 아난다 님은 지금 어디에 머무십니까? 저희는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집주인이여, 아난다 님은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에 머문다.”

Atha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yena kukkuṭārāmo yena aññataro bhikkhu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aṁ bhikkhu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taṁ bhikkhuṁ etadavoca: “kahaṁ nu kho, bhante, āyasmā ānando etarahi viharati? Dassanakāmā hi mayaṁ taṁ āyasmantaṁ ānandan”ti. “Eso, gahapati, āyasmā ānando vesāliyaṁ viharati beluvagāmake”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집안 가장 다사마는 먼저 꾹꾸따 승원의 한 수행자에게 아난다 님이 어디 있는지, 뵙고 싶다고 묻습니다. 수행자는 아난다 님이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에 있다는 한 가지 정보만 알려 줍니다. 찾아가 절하고 앉아 묻고 답하는 이 순서는 곧 이어지는 실제 만남으로 연결됩니다. 가르침을 얻기 전에 먼저 정확히 찾아 묻고 길을 확인하는 준비가 놓입니다.

묵상

다사마가 곧바로 자기 질문을 꺼내지 않고 먼저 아난다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순서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해결하고 싶은 일에서도 내용보다 먼저 정확히 찾아 묻거나 확인할 한 가지가 있나요?

3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을 풀어 줄 한 가지는 무엇일까 1구절

다사마가 아난다를 찾아가 아직 이루지 못한 세 결과에 이르게 하는 한 가지가 있는지 묻습니다.

집안 가장 다사마는 빠딸리뿟따에서 그 일을 마치고 웨살리의 벨루와 마을로 아난다 님을 찾아가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다사마가 물었다. “아난다 님, 부처님께서 한 가지를 가르치셨습니까?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무는 수행자가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을 풀고, 아직 다하지 않은 흘러드는 것을 다하며, 아직 이르지 못한 위없는 평안에 이르게 하는 것 말입니다.” “있습니다, 집주인이여. …” “아난다 님, 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

Atha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pāṭaliputte taṁ karaṇīyaṁ tīretvā yena vesālī yena beluvagāmako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atthi nu kho, bhante ānand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ṁ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ṁ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ī”ti? “Atthi kho, gahapati, …”ti. “Katamo pana, bhante ānanda,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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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다사마는 아난다 님을 만나 핵심 질문을 던집니다. 게으르지 않고 애써 마음을 다잡은 수행자가 풀리지 않은 마음을 풀고, 흘러드는 것을 다하고, 위없는 평안에 이르게 하는 한 가지 가르침이 있는지 묻습니다. 아난다 님은 있다고 답하고, 다사마는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 다시 묻습니다.

묵상

마음의 풀림·흘러드는 것의 다함·위없는 평안이라는 세 결과 가운데 지금 뜻만 알아볼 수 있는 말이 있나요? 세 표현이 모두 “아직”에서 시작한다는 점만 살펴볼까요?

4 첫 번째 깊은 집중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1구절

첫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그 고요한 상태 역시 지어지고 의도되어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진다고 압니다.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떠남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첫째 깊은 집중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무엇이든 지어지고 의도된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이다.’ 그는 이와 같이 안다.”

“Idha, gahapati,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idampi kho paṭhamaṁ jhānaṁ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아난다가 제시하는 열한 문 가운데 첫째입니다.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첫째 깊은 집중에 들지만, 그 경험을 마지막으로 선언하지 않습니다.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 둘 다 붙고, 그래서 그 상태도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임을 압니다. 조건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을 보고 붙들지 않는 통찰이 깊은 집중과 풀려남을 연결합니다.

묵상

평온하고 기쁜 상태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 아쉽거나 불안하게 들리나요? 좋은 경험도 조건에 따라 생기고 사라진다는 한 문장만 천천히 바라볼 수 있을까요?

5 마음이 온전히 풀려나거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르다 1구절

첫 깊은 집중의 통찰에서 흘러드는 것이 다하거나,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해 돌아오지 않는 두 결과를 밝힙니다.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흘러드는 것의 다함에 이른다. 그러지 못하면, 그 명상 상태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해 저절로 태어나며, 거기서 완전히 고요히 꺼짐에 들어 그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 집주인이여, 이것이 부처님께서 밝히신 한 가지이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무는 수행자의 아직 풀리지 않은 마음이 풀리고, 아직 다하지 않은 흘러드는 것이 다하며, 아직 이르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So tattha ṭhito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No ce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Ayampi kho, gahapati,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ekadhammo akkhāto, yattha bhikkhuno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avimuttañceva cittaṁ vimuccati, aparikkhīṇā ca āsavā parikkhayaṁ gacchanti, ananuppattañca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첫째 깊은 집중이 조건 따라 생긴 것임을 안 뒤 결과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는 그 자리에 머물러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직 거기 이르지 못한 경우입니다. 그 경우에도 그 명상 상태를 사랑하고 기뻐한 힘으로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하면 저절로 태어난 곳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묵상

첫 결과에 이르지 못한 경우까지 따로 밝힌 문장에서 어떤 여지가 느껴지나요? “그러지 못하면” 뒤에도 길이 이어진다는 구조만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6 두 번째 깊은 집중이라는 둘째 문 1구절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이 가라앉은 두 번째 깊은 집중에도 같은 통찰과 결과를 적용합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이 가라앉고 내면이 맑아져 … 두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두 번째 깊은 집중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 그는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pe…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idampi kho dutiyaṁ jhānaṁ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열한 문 가운데 둘째인 두 번째 깊은 집중입니다. 더 깊은 고요도 조건 따라 생긴 경험으로 알아 붙들지 않는 원리는 첫 문과 같습니다.

묵상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이 가라앉은 내면의 맑음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그런 상태를 경험했는지 묻지 않고, 고요함과 영원함을 같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지 살펴볼까요?

7 세 번째 깊은 집중이라는 셋째 문 1구절

희열이 빛바랜 세 번째 깊은 집중 역시 지어지고 의도된 것으로 성찰해 위없는 안온으로 나아갑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희열이 빛바래 … 세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세 번째 깊은 집중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 그는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pe…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idampi kho tatiyaṁ jhānaṁ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셋째 문은 세 번째 깊은 집중입니다. 앞선 집중에서 느꼈던 희열이 빛바래며 평온과 알아차림, 행복으로 넘어갑니다. 희열이 잦아든 더 섬세한 행복도 통찰의 예외가 아닙니다.

묵상

희열이 빛바랜다는 말을 좋은 경험이 사라지는 손실로만 느끼나요? 강한 기쁨이 잦아든 뒤 남는 조용함도 변하는 경험이라는 점을 볼 수 있을까요?

8 네 번째 깊은 집중이라는 넷째 문 1구절

행복을 버린 네 번째 깊은 집중도 조건 지어진 것으로 성찰해 같은 풀려남의 방향을 확인합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행복을 버려 … 네 번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네 번째 깊은 집중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 그는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pe…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idampi kho catutthaṁ jhānaṁ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넷째 문은 네 번째 깊은 집중(자나)입니다. 행복을 버린 뒤 괴로움과 기쁨·슬픔도 사라지고 평온으로 맑아진 알아차림만 남습니다. 가장 평온한 깊은 집중도 풀려남을 향한 통찰의 토대입니다.

묵상

행복까지 버린 평온을 공허함이나 무감각과 곧바로 같게 보지는 않나요? 네 번째 깊은 집중마저 조건 지어진 것이라는 한 구절만 머물러 볼까요?

9 따뜻한 마음으로 온 세상을 품는 다섯째 문 1구절

온 세상에 한량없는 자애를 펼친 뒤 그 마음이 풀려난 것도 지어지고 의도되어 사라진다고 압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자애와 함께한 마음을 첫째·둘째·셋째·넷째 방향으로 펼친다.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에 넓고 크고 끝없으며 원한과 악의 없는 자애의 마음을 펼쳐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자애로 마음이 풀려남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무엇이든 그러한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이다.’ 그는 이를 안다.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mettācetovimu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So tattha ṭhito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다섯째 문은 자애로 마음이 풀려남입니다. 네 방향과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이라는 범위와 넓음·큼·끝없음·원한 없음·악의 없음의 다섯 성격을 지닙니다. 그 넓어진 마음도 지어지고 의도되어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진다고 압니다. 자애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애의 고요마저 소유하지 않는 통찰이 결합됩니다.

묵상

원한과 악의 없는 넓은 마음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 자애의 가치를 줄이는 듯 들리나요? 넓게 펼치는 일과 붙들지 않는 일이 함께 놓인 점을 살펴볼까요?

10 연민과 함께 기뻐함이라는 두 문 1구절

연민과 함께한 마음, 함께 기뻐함과 함께한 마음의 전체 설명을 공식 생략으로 각각 잇습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연민과 함께한 마음으로 … 함께 기뻐함과 함께한 마음으로 …”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karuṇāsahagatena cetasā …pe… muditāsahagatena cetasā …pe…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여섯째와 일곱째 문을 잇는 짧은 대목입니다. 연민(까루나)과, 다른 존재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무디따)이 각각 이어집니다. 두 마음도 앞의 자애처럼 네 방향과 온 세상에 넓게 펼쳐지며, 그 마음이 풀려남도 조건 따라 생긴 것임을 아는 통찰로 이어집니다.

묵상

연민과 함께 기뻐함을 서로 다른 두 문으로 둔 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하는 마음과 기쁨에 함께하는 마음 중 지금 뜻이 더 분명한 하나가 있나요?

11 치우침 없는 마음으로 온 세상을 품는 여덟째 문 1구절

온 세상에 한량없는 평온을 펼친 뒤 그 마음이 풀려난 것도 조건 지어져 사라진다고 압니다.

“평정과 함께한 마음을 첫째·둘째·셋째·넷째 방향으로 펼친다.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에 넓고 크고 끝없으며 원한과 악의 없는 평정의 마음을 펼쳐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평정으로 마음이 풀려남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무엇이든 그러한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이다.’ 그는 이를 안다.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upekkh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upekkh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bajjhena pharitvā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upekkhācetovimu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So tattha ṭhito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여덟째 문은 평온으로 마음이 풀려남입니다. 평온도 자애처럼 네 방향과 위·아래·가로·모든 곳, 온 세상에 펼치는 범위를 다시 온전히 보여 줍니다. 넓고 크고 끝없으며 원한과 악의 없다는 다섯 성격도 같습니다. 넓은 평온도 조건 따라 생긴 것으로 알아 놓는 여덟째 풀려남의 문입니다.

묵상

온 세상에 펼친 평온과 무관심은 어떤 점에서 다르게 들리나요? 원한과 악의 없음, 끝없음 가운데 지금 이해되는 한 표현만 골라볼까요?

12 무한한 공간의 영역이라는 아홉째 문 1구절

세 인식 조건을 넘어 공간이 끝없다고 알아 무한한 공간의 영역에 들고 그 조건성을 봅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며, 다양함에 대한 인식에 마음을 두지 않고 ‘공간은 끝없다’고 알아 무한한 공간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무한한 공간의 영역 성취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무엇이든 그러한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이다.’ 그는 이를 안다.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So tattha ṭhito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아홉째 문은 무한한 공간의 영역입니다.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고, 부딪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다양함에 대한 인식에 마음을 두지 않은 채 “공간은 끝없다”는 인식으로 들어갑니다. 넓은 공간의 성취도 지어지고 의도되었기에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임을 압니다. 물질적 깊은 집중과 마음이 풀려남을 지난 뒤에도 미세한 고요를 영원한 것으로 붙들지 않는 같은 통찰이 이어집니다.

묵상

공간이 끝없다는 넓은 경험에도 세 가지 진입 조건과 사라짐이 있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그런 상태를 경험했는지 판단하지 않고, 넓게 느껴지는 것도 조건에 기대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볼까요?

13 무한한 의식의 영역이라는 열째 문 1구절

무한한 공간을 완전히 넘어 의식이 끝없다고 알아 머물고 그 성취의 조건성을 봅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무한한 공간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 ‘의식은 끝없다’고 알아 무한한 의식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무한한 의식의 영역 성취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무엇이든 그러한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이다.’ 그는 이를 안다. 거기에 서서 … 위없는 안온에 이른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ma ‘anantaṁ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So tattha ṭhito …pe… anuttaraṁ yogakkhemaṁ anupāpuṇ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열째 문은 무한한 의식의 영역입니다. 앞 단계인 무한한 공간의 영역을 완전히 넘고 “의식은 끝없다”고 알아 들어갑니다. 대상의 넓이에서 그것을 아는 의식의 넓이로 옮겨가지만, 이 성취도 지어지고 의도되어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입니다. 의식이 한없이 넓게 느껴지는 경험도 영원한 자아로 고정하지 않고 조건 따라 생긴 것으로 보는 통찰이 열째 문을 이룹니다.

묵상

의식이 끝없다고 느껴지는 상태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 낯선가요? 의식을 영원한 나라고 결론 내리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아는 경험도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만 천천히 살펴볼까요?

14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열한째 문 1구절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넘어 아무것도 없다고 알아 머물고 그 성취도 사라지는 성품임을 봅니다.

“다시 집주인이여, 수행자는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고 알아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들어 머문다. 그는 성찰한다. ‘이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 성취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다. 무엇이든 지어지고 의도된 것은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이다.’ 그는 이와 같이 안다.”

Puna caparaṁ, gahapati, bhikkhu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ṭisañcikkhati: ‘ayampi kho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 abhisaṅkhatā abhisañcetayitā. Yaṁ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ṁ abhisañcetayitaṁ tadaniccaṁ nirodhadhamman’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열한째이자 마지막 문은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입니다. 수행자는 무한한 의식의 영역을 완전히 넘고 아무것도 없다고 알아 들어갑니다. 들어가고 성찰하고 아는 과정이 앞의 문들과 같이 되풀이됩니다. 대상이 거의 없는 미세한 성취도 지어지고 의도된 것이어서 그대로 있지 않고 사라지는 성품입니다. 아무것도 없음이라는 고요조차 마지막 풀려남과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 통찰이 열한 문을 완성합니다.

묵상

“아무것도 없다”는 고요마저 지어지고 의도되어 사라진다는 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가장 미세한 상태도 붙들지 않는 방향만 살펴볼까요?

15 열한째 문의 두 결과로 설명을 맺다 1구절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서도 흘러드는 것이 다함과 돌아오지 않는 두 결과를 온전히 반복하고 설명을 닫습니다.

“그는 거기에 굳게 서서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데 이른다. 그러지 못하면, 바로 그 명상 상태를 사랑하고 기뻐한 힘으로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해 저절로 태어나고, 그곳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지며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집주인이여, 이것도 …”

So tattha ṭhito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No ce āsavānaṁ khayaṁ pāpuṇāti, tenev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hoti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Ayampi kho, gahapati, …”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열한째 문의 통찰 뒤 두 결과가 첫 문과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데 이르는 첫 결과와, 아직 그러지 못하면 그 명상 상태를 사랑하고 기뻐한 힘으로 다섯 낮은 족쇄가 다해 돌아오지 않는 둘째 결과입니다. 이 문장으로 아난다의 열한 답이 끝납니다.

묵상

첫 문과 열한째 문이 같은 두 결과로 닫히는 반복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어느 문이 자신에게 맞는지 선택하라는 요구는 아니에요. 서로 다른 고요가 같은 놓아 버림의 방향으로 이어진다는 구조만 볼까요?

16 하나를 찾다가 열한 보물 입구를 얻다 1구절

다사마가 한 보물 입구를 찾다 열한 입구를 얻는 비유로 닦아야 할 열한 죽지 않음의 문을 기뻐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집주인 다사마가 아난다 님에게 말했습니다. “아난다 님, 사람이 보물 입구 하나를 찾다가 한꺼번에 열한 입구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아난다 님, 저도 죽지 않음의 문 하나를 찾다가 한꺼번에 닦아야 할 열한 죽지 않음의 문을 얻었습니다.”

Evaṁ vutte,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seyyathāpi, bhante ānanda, puriso ekaṁva nidhimukhaṁ gavesanto sakideva ekādasa nidhimukhāni adhigaccheyya; evameva kho ahaṁ, bhante, ekaṁ amatadvāraṁ gavesanto sakideva ekādasa amatadvārāni alatthaṁ bhāvanāya.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아난다의 열한 답이 끝나자 화자가 다사마로 바뀝니다. 첫 비유는 하나의 보물 입구를 찾다가 한꺼번에 열한 입구를 얻는 뜻밖의 풍요입니다. 적용에서도 하나의 죽지 않음의 문을 찾다가 열한 문을 얻었다고 같은 수량을 반복합니다. 열한 가르침을 실제로 익힐 여러 입구로 받아들이는 응답입니다.

묵상

하나의 답을 찾다가 열한 입구를 만났다는 다사마의 기쁨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선택지가 많아 든든하게 느껴지나요, 복잡하게 느껴지나요? 어느 반응도 고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을까요?

17 불붙은 집의 어느 문으로도 안전해지다 1구절

열한 문이 난 불붙은 집에서 어느 문으로든 안전해지는 비유를 들고 아난다에게 공양하겠다고 합니다.

“아난다 님, 열한 문이 난 사람의 집에 불이 붙으면 어느 문으로든 자신을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아난다 님, 저는 이 열한 죽지 않음의 문 가운데 어느 하나로도 자신을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난다 님, 다른 종교인들도 스승에게 스승의 보수를 마련합니다. 제가 어찌 아난다 님을 받들어 모시지 않겠습니까?”

Seyyathāpi, bhante, purisassa agāraṁ ekādasadvāraṁ, so tasmiṁ agāre āditte ekamekenapi dvārena sakkuṇeyya attānaṁ sotthiṁ kātuṁ; evameva kho ahaṁ, bhante, imesaṁ ekādasannaṁ amatadvārānaṁ ekamekenapi amatadvārena sakkuṇissāmi attānaṁ sotthiṁ kātuṁ. Imehi nāma, bhante, aññatitthiyā ācariyassa ācariyadhanaṁ pariyesissanti, kimaṅgaṁ panāhaṁ āyasmato ānandassa pūjaṁ na karis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둘째 비유는 열한 문을 실제 탈출 가능성과 연결합니다. 불붙은 집에는 열한 문이 있고, 그 하나하나 어느 문으로도 자신을 안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적용도 열한 죽지 않음의 문 각각이 안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같은 관계를 반복합니다. 이어 다른 종교인도 스승에게 보답한다는 비교를 들어 아난다에게 음식을 올릴 이유를 밝힙니다. 비유의 중심은 어느 한 문도 풀려남의 실제 입구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묵상

열한 문을 어느 하나로도 안전해질 수 있는 문으로 비유한 점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여러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만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18 다사마가 두 수행자 공동체와 아난다에게 공양하다 1구절

빠딸리뿟따와 웨살리 수행자 공동체를 음식으로 대접하고 옷감과 세 벌 겉옷, 거처를 아난다에게 마련합니다.

집주인 다사마는 빠딸리뿟따와 웨살리의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모아 훌륭한 씹을 것과 먹을 것을 손수 대접해 만족하게 했습니다. 수행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쌍의 옷감을 입히고, 아난다 님에게는 세 벌 겉옷을 입혔으며, 아난다 님을 위해 오백의 가치가 있는 거처를 지었습니다.

Atha kho dasamo gahapati aṭṭhakanāgaro pāṭaliputtakañca vesālikañca bhikkhusaṅghaṁ sannipātetvā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i sampavāresi, ekamekañca bhikkhuṁ paccekaṁ dussayugena acchādesi, āyasmantañca ānandaṁ ticīvarena acchādesi, āyasmato ca ānandassa pañcasatavihāraṁ kārāpesīti.

맛지마 니까야 MN 52 앗타까나가라 숫따 (앗타까 성 사람)

배경

다사마의 말은 구체적인 선물로 이어집니다. 그는 빠딸리뿟따와 웨살리라는 두 지역의 수행자 공동체를 함께 모아 손수 음식으로 만족시킵니다. 이어 각 수행자에게 한 쌍의 옷감을 주고, 아난다에게는 세 벌 겉옷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오백의 가치가 있는 거처를 지어 줍니다. 두 공동체·각 수행자·아난다에게 각기 다른 선물이 이어집니다. 경은 다사마가 들은 가르침에 감사하는 행동으로 장면을 닫습니다.

묵상

다사마의 감사가 말에 머물지 않고 음식·옷감·겉옷·거처로 구체화되는 순서에서 어떤 점이 보이나요? 고마움이 행동으로 이어졌던 작은 순간 하나가 떠오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