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빡낄레사 숫따(더럽히는 것)

Upakkiles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금과 마음의 다섯 오염을 대조하고, 오염에서 벗어난 마음이 여섯 직접 앎을 실현할 수 있음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16구절

이 경을 16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금의 다섯 오염과 손상된 성질 1구절

금에 섞이는 철·구리·주석·납·은과 그 때문에 금이 잃는 다섯 성질을 질문과 답으로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금에는 다섯 가지 때가 있다. 그런 때가 묻은 금은 부드럽지도, 다루기 쉽지도, 빛나지도 않고, 부서지기 쉬우며 작업에 알맞지 않다. 어떤 다섯인가? 철, 구리, 주석, 납, 은이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금에 묻은 다섯 가지 때이다. 그런 때가 묻은 금은 부드럽지도, 다루기 쉽지도, 빛나지도 않고, 부서지기 쉬우며 작업에 알맞지 않다.”

“Pañcime, bhikkhave, jātarūpassa upakkilesā, y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 jātarūpaṁ na ceva mudu hoti na ca kammaniyaṁ na ca pabhassaraṁ pabhaṅgu ca na ca sammā upeti kammāya. Katame pañca? Ayo, lohaṁ, tipu, sīsaṁ, sajjhaṁ— ime kho, bhikkhave, pañca jātarūpassa upakkilesā, y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 jātarūpaṁ na ceva mudu hoti na ca kammaniyaṁ na ca pabhassaraṁ pabhaṅgu ca na ca sammā upeti kamm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경의 첫 비유는 금을 더럽히는 때가 다섯이라고 선언한 뒤 “어떤 다섯인가?”라고 묻고 철·구리·주석·납·은을 순서대로 답합니다. 여기서 금은 장신구로 만들 재료이며, 때가 묻은 결과는 부드럽지 않음·다루기 쉽지 않음·빛나지 않음·부서지기 쉬움·작업에 알맞지 않음의 다섯 갈래입니다. 목록 뒤에는 “이것이 금의 다섯 가지 때”라고 범위를 닫고 그 다섯 결과를 다시 온전히 펼칩니다. 이 반복은 물질 비유의 조건과 결과를 고정하여, 다음 대목의 때에서 벗어난 금과 이어지는 마음의 다섯 가지 때를 설명할 기준이 됩니다.

묵상

철·구리·주석·납·은이라는 목록과 금이 잃는 다섯 성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눈에 들어오나요?

2 오염에서 벗어난 금과 네 장식 1구절

다섯 오염에서 벗어난 금의 회복된 성질과 반지·귀걸이·목걸이·금 화환이라는 네 쓰임을 잇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금이 이 다섯 가지 때에서 벗어나면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빛나고, 부서지지 않으며 작업에 알맞게 된다. 그가 어떤 장식을 원하든, 반지든 귀걸이든 목걸이든 금 화환이든 그 뜻을 이룬다.”

Yato ca kho, bhikkhave, jātarūpaṁ imehi pañcahi upakkilesehi vimuttaṁ hoti, taṁ hoti jātarūpaṁ mudu ca kammaniyañca pabhassarañca na ca pabhaṅgu sammā upeti kammāya. Yassā yassā ca piḷandhanavikatiyā ākaṅkhati—yadi muddikāya yadi kuṇḍalāya yadi gīveyyakāya yadi suvaṇṇamālāya—tañcassa atthaṁ anubh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앞에서 때가 묻은 금의 다섯 결함을 밝힌 뒤, 이 대목은 “그러나”라는 전환으로 반대 결과를 제시합니다. 다섯 가지 때에서 벗어난 금은 부드럽고·다루기 쉽고·빛나고·부서지지 않으며 작업에 알맞습니다. 이어 반지·귀걸이·목걸이·금 화환을 하나씩 늘어놓고, 원하는 장식을 모두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때를 없애는 일은 금을 알맞게 쓸 수 있는 성질로 되돌립니다. 이 결과 구조가 뒤에서 마음과 직접 앎의 관계로 그대로 옮겨갑니다.

묵상

부드러움·다루기 쉬움·빛남·부서지지 않음·작업에 알맞음 가운데 지금 오래 머무는 표현이 있나요? 네 장식처럼 가능한 쓰임이 열리는 순서만 바라볼 수 있을까요?

3 마음의 다섯 오염 1구절

금의 비유를 마음에 적용해 감각적 욕망·악의·혼침과 졸음·들뜸과 걱정·의심을 모두 밝힙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마음에는 다섯 가지 때가 있다. 그 때에 더러워진 마음은 부드럽지도, 다루기 쉽지도, 빛나지도 않고, 부서지기 쉬우며 흘러드는 것이 사라지도록 바르게 집중에 들지 못한다. 어떤 다섯인가? 감각적 욕망, 악의, 혼침과 졸음, 들뜸과 걱정, 의심이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마음의 다섯 가지 때이다. 그 때에 더러워진 마음은 부드럽지도, 다루기 쉽지도, 빛나지도 않고, 부서지기 쉬우며 흘러드는 것이 사라지도록 바르게 집중에 들지 못한다.”

Evamevaṁ kho, bhikkhave, pañcime cittassa upakkilesā, y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 cittaṁ na ceva mudu hoti na ca kammaniyaṁ na ca pabhassaraṁ pabhaṅgu ca na ca sammā samādhiyati āsavānaṁ khayāya. Katame pañca? Kāmacchando, byāpādo, thinamiddhaṁ, uddhaccakukkuccaṁ, vicikicchā— ime kho, bhikkhave, pañca cittassa upakkilesā y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ṁ cittaṁ na ceva mudu hoti na ca kammaniyaṁ na ca pabhassaraṁ pabhaṅgu ca na ca sammā samādhiyati āsavānaṁ khayāya.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금의 두 상태를 제시한 뒤 “이와 같이”로 비유가 마음에 적용됩니다. 다섯 가지 때는 감각적 욕망·악의·혼침과 졸음·들뜸과 걱정·의심입니다. 질문과 답 뒤에는 “이것이 마음의 다섯 가지 때”라고 범위를 닫고, 때 묻은 마음의 다섯 결과를 처음과 같은 순서로 다시 적습니다. 금의 “작업에 알맞지 않음” 자리는 마음에서 “흘러드는 것이 사라지도록 마음이 한곳에 모이지 못함”으로 바뀝니다. 비유의 초점은 마음이 한곳에 모이는 것을 가로막는 다섯 상태를 정확히 식별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다섯 가지 때의 이름을 읽을 때 지금 알아보기 쉬운 것과 낯선 것이 있나요? 어느 하나가 있다고 자신을 평가하거나 곧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4 오염에서 벗어난 마음과 실현할 역량 1구절

다섯 오염에서 벗어난 마음의 성질과, 직접 알아 실현할 것에 마음을 기울일 때의 실현 역량을 연결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마음이 이 다섯 가지 때에서 벗어나면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빛나고, 부서지지 않고 흘러드는 것이 사라지도록 바르게 집중에 든다. 그가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것이든, 그 실현을 위해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다.”

Yato ca kho, bhikkhave, cittaṁ imehi pañcahi upakkilesehi vimuttaṁ hoti, taṁ hoti cittaṁ mudu ca kammaniyañca pabhassarañca na ca pabhaṅgu sammā samādhiyati āsavānaṁ khayāya. Yassa yassa c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ṁ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앞의 때가 묻은 마음과 대조하여, 때에서 벗어난 마음을 밝힙니다. 금의 회복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움·다루기 쉬움·빛남·부서지지 않음이 돌아오고, 마음에는 흘러드는 것이 사라지도록 바르게 마음이 모이는 힘이 더해집니다. 이어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대상을 하나하나 마음에 기울이면 그때그때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되지만,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제한이 붙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여섯 직접 앎은 이렇게 준비된 마음과 그 영역의 조건 위에서 차례로 펼쳐집니다.

묵상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제한은 직접 앎에 관한 문장을 어떻게 다르게 읽게 하나요? 마음의 준비와 가능한 영역이 결과보다 앞선다는 순서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5 여러 신통을 직접 확인하다 1구절

하나와 여럿의 변화부터 벽·땅·물·하늘을 지나 브라흐마의 세계에 이르는 여러 신통의 전체 목록입니다.

“그가 원한다면, ‘여러 신통을 경험하기를.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며, 나타나고 사라지고, 벽·성벽·산을 허공처럼 통과하고, 땅에 물처럼 잠기고 솟으며, 물 위를 땅처럼 걷고, 새처럼 가부좌한 채 하늘을 날며, 위력 있는 해와 달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고, 브라흐마 세계까지 몸으로 지배하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다.”

So sace ākaṅkhati: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aveyyaṁ—ekopi hutvā bahudhā assaṁ, bahudhāpi hutvā eko assaṁ; āvibhāvaṁ, tirobhāvaṁ; 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o gaccheyyaṁ,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ṁ kareyyaṁ,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o gaccheyyaṁ, seyyathāpi pathaviyaṁ; ākāsepi pallaṅkena kameyyaṁ,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eyyaṁ parimajjeyyaṁ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준비된 마음이 처음 기울이는 대상은 여러 신통입니다. 이 대목은 “그가 원한다면”이라는 말로 시작해,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는 것,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 벽과 성벽과 산을 통과하는 것, 땅에 잠기고 솟는 것, 물 위를 걷는 것, 하늘을 나는 것, 해와 달을 만지는 것, 브라흐마 세계까지 몸으로 다다르는 것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통과할 때는 허공처럼, 땅에서는 물처럼, 물에서는 땅처럼, 날 때는 새처럼이라는 비유가 각각 붙습니다. 끝에는 앞서와 같이 “그때그때 할 수 있게 된다”, “그 일이 가능한 자리에서는 그렇다”는 말이 다시 나옵니다. 이것이 경이 말하는 여섯 가지 직접 아는 일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묵상

긴 목록 가운데 하나와 여럿, 나타남과 사라짐, 벽·땅·물·하늘 중 어느 대조가 눈에 머무나요?

6 하늘 세계의 귀로 두 종류의 소리를 듣다 1구절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세계의 귀로 신과 인간, 멀고 가까운 소리를 듣는 두 쌍을 보존합니다.

“그가 원한다면,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세계의 귀로 하늘 세계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를 모두 듣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

So sace ākaṅkhati: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eyyaṁ—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ā’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여러 신통 다음에 나오는 두 번째 직접 앎은 하늘 세계의 귀입니다. 이 귀는 깨끗하고, 사람의 능력을 넘어섭니다. 듣는 소리는 하늘 세계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 멀리 있는 소리와 가까이 있는 소리로, 이 모두를 빠짐없이 듣습니다. 이 대목도 “그가 원한다면”으로 시작해 “그때그때 할 수 있게 된다”, “그 일이 가능한 자리에서는 그렇다”는 같은 말로 끝나, 앞의 신통과 같은 틀을 따릅니다.

묵상

신과 인간, 멀리와 가까이라는 두 쌍을 읽을 때 어느 대비가 먼저 들리나요?

7 욕심과 성냄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을 알다 1구절

다른 존재와 사람의 마음을 둘러 알아차리는 직접 앎을 열고, 욕심과 성냄의 긍정·부정 네 상태를 그대로 압니다.

“그가 원한다면, ‘자기 마음으로 다른 존재와 사람의 마음을 둘러 알아차리기를. 탐냄(라가) 있는 마음을 탐냄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탐냄 없는 마음을 탐냄 없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 있는 마음을 성냄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성냄 없는 마음을 성냄 없는 마음이라고 알기를.’”

So sace ākaṅkhati: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etasā ceto paricca pajāneyyaṁ—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rāgaṁ vā cittaṁ vītarāg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dosaṁ vā cittaṁ sados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dosaṁ vā cittaṁ vītadosaṁ cittanti pajāney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세 번째 직접 앎은 자기 마음으로 다른 존재와 사람의 마음을 둘러 알아차리는 일로 시작합니다. 첫 네 상태는 탐냄 있음과 없음, 성냄 있음과 없음의 두 쌍입니다. 경은 ‘탐냄 있는 마음을 탐냄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처럼 각 상태를 같은 이름으로 다시 받아 말하고, 나머지 세 상태도 똑같은 틀로 되풀이합니다. 각 상태 이름과 앎의 내용을 네 번 온전히 반복합니다. 경은 각 상태를 그 상태 그대로 하나씩 압니다. 다음 대목은 어리석음과 위축·산란의 두 쌍을 이어갑니다.

묵상

탐냄 있음과 없음, 성냄 있음과 없음이라는 두 쌍을 같은 문장으로 되풀이하는 까닭은 무엇처럼 느껴지나요?

8 어리석음과 위축·산란의 마음을 알다 1구절

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 위축됨과 산란함이라는 두 대조를 각 상태의 이름과 앎의 반복으로 보존합니다.

“어리석음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어리석음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 없는 마음이라고 알며,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알고,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이라고 알기를.”

samohaṁ vā cittaṁ samoh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mohaṁ vā cittaṁ vītamoh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ṅkhittaṁ vā cittaṁ saṅkhi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vikkhittaṁ vā cittaṁ vikkhi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탐냄과 성냄의 두 쌍에 이어,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마음이 같은 형식으로 놓입니다. 이는 이 목록 안에서 어리석음에 물든 상태와 벗어난 상태를 대조합니다. 이어 위축된 마음과 산란한 마음이 한 쌍으로 놓입니다. 네 문장 모두 상태를 먼저 말하고 똑같은 상태 이름으로 안다고 다시 말하여 “마음”과 “알다”를 각각 네 번 되풀이합니다. 이 네 상태는 앞 대목과 합쳐 첫 여덟을 이루며, 다음에는 큰 마음과 더 높은 것이 없는 마음에 관한 두 쌍이 이어집니다.

묵상

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 위축과 산란이라는 두 쌍은 서로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9 큰 마음과 더 높은 것이 없는 마음을 알다 1구절

큰 마음과 크지 않은 마음,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과 더 높은 것이 없는 마음의 네 상태를 대칭으로 압니다.

“큰 마음을 큰 마음이라고 알고, 크지 않은 마음을 크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며,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을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 더 높은 것이 없는 마음을 더 높은 것이 없는 마음이라고 알기를.”

mahaggataṁ vā cittaṁ mahagga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mahaggataṁ vā cittaṁ amahaggat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uttaraṁ vā cittaṁ sauttaraṁ cittanti pajāneyyaṁ, anuttaraṁ vā cittaṁ anuttaraṁ cittanti pajāneyy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열여섯 마음 상태 가운데 두 쌍입니다. 큰 마음과 크지 않은 마음이 한 쌍이고,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과 더 높은 것이 없는 마음이 다른 한 쌍입니다. “크다”와 “더 높은 것이 없다”를 같은 뜻으로 합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축으로 보아야 네 상태가 유지됩니다. 이 네 상태는 두 쌍으로 나뉘어 각각 따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앞의 여덟 상태가 탐냄·성냄·어리석음과 위축·산란을 다뤘다면, 이 대목은 마음의 크기와 상대적 높이를 구별합니다.

묵상

큰 마음과 더 높은 것이 없는 마음이 서로 다른 쌍에 놓인 점이 보이나요?

10 마음이 모였는지, 얽매임에서 풀려났는지 알다 1구절

한곳에 모인 마음과 모이지 않은 마음, 풀려난 마음과 풀려나지 않은 마음을 알고 영역과 실현 역량의 후렴으로 닫습니다.

“마음이 한곳에 모인 마음을 마음이 한곳에 모인 마음이라고 알고, 마음이 한곳에 모이지 않은 마음을 마음이 한곳에 모이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며, 풀려난 마음을 풀려난 마음이라고 알고, 풀려나지 않은 마음을 풀려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알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다.”

samāhitaṁ vā cittaṁ samāhi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samāhitaṁ vā cittaṁ asamāhitaṁ cittanti pajāneyyaṁ, vimuttaṁ vā cittaṁ vimu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vimuttaṁ v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마음 상태의 마지막 두 쌍은 마음이 한곳에 모임과 풀려남입니다.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와 모이지 않은 상태, 풀려난 상태와 풀려나지 않은 상태를 모두 알아보는 것이 이 대목입니다. 이어 그때그때 실현할 수 있다는 다짐과 조건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는 말이 붙어, 앞의 세 대목까지 이어진 열여섯 가지 마음 상태를 아는 일이 마무리됩니다. 풀려나지 않은 상태를 아는 일도 이 앎의 절반이며, 반드시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요구하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마음이 한곳에 모임과 모이지 않음, 풀려남과 풀려나지 않음이 나란히 이름 붙여진 점은 어떻게 읽히나요?

11 지난 삶의 횟수와 세계의 겁을 기억하다 1구절

한 생부터 십만 생까지의 열한 수량과 세계의 수축·팽창·수축팽창이라는 세 겁을 빠짐없이 셉니다.

“그가 원한다면, ‘여러 지난 삶을 기억하기를. 곧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과, 세계가 수축한 여러 겁, 팽창한 여러 겁, 수축하고 팽창한 여러 겁을 기억하기를.’”

So sace ākaṅkhati: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eyyaṁ,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ṁsampi jātiyo cattār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ṁ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ṁvaṭṭavivaṭṭakapp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네 번째 직접 앎은 여러 지난 삶의 기억이며, 먼저 그 기억이 미치는 시간의 규모를 셉니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에서 열 생, 스무 생을 지나 백 생, 천 생, 십만 생까지 늘어나고, 다시 세계가 수축한 여러 겁, 팽창한 여러 겁, 수축하고 팽창한 여러 겁까지 이어집니다. 이 수량은 뒤에 나오는 개별 삶의 이름·가문·모습·음식·즐거움과 고통·수명이라는 세부로 이어집니다. 기억은 이처럼 적은 수에서 아주 큰 수까지, 그리고 세계가 생기고 사라지는 큰 시간까지 먼저 펼쳐집니다.

묵상

한 생에서 십만 생까지 늘어나는 수량과 세계의 수축·팽창이라는 큰 시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낯설게 느껴지나요?

12 한 지난 삶의 모습과 다음 태어남을 기억하다 1구절

한 삶의 이름·가문·모습·음식·즐거움과 고통·수명, 죽음과 다른 곳의 태어남을 세부 순서로 보존합니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과 이런 가문이었고, 모습은 이러했으며 음식은 이러했고, 이러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고 수명은 이러했다.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라고 기억하기를.”

amutr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앞에서 기억이 닿는 시간의 크기를 보였다면, 이 대목은 한 삶을 알아보는 세부를 보여 줍니다. 이름·가문·모습·음식·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수명이라는 여섯 가지를 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는 것까지 기억합니다. 이 여섯 가지는 다음 대목에서 새 장소에 대해 다시 되풀이됩니다. 삶의 기억은 이렇게 이름만이 아니라 살았던 조건과 겪은 일, 그리고 옮겨 간 자리까지 함께 담습니다.

묵상

이름·가문·모습·음식·즐거움과 고통·수명이라는 여섯 세부 가운데 지금 눈에 머무는 것은 무엇인가요?

13 다른 삶에서 이곳까지 세부를 갖추어 기억하다 1구절

다른 곳의 같은 여섯 세부와 죽음 뒤 이곳의 태어남을 되풀이하고, 모습과 설명을 갖춘 기억의 후렴을 맺습니다.

“‘그곳에서도 나는 이런 이름과 이런 가문이었고, 모습·음식·즐거움과 괴로움·수명이 이러했다. 그곳에서 죽어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모습과 설명을 갖추어 여러 지난 삶을 기억하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다.”

tatrāp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앞 대목의 첫 장소에 이어 “그곳에서도”라며 같은 여섯 세부를 다시 밝힙니다. 이름·가문·모습·음식·즐거움과 괴로움·수명을 되풀이해 확인하고, 이번에는 그곳에서 죽어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옵니다. 이로써 모습과 설명을 갖춘 여러 지난 삶의 기억이 마무리됩니다. 이어 그때그때 그럴 수 있다는 다짐과 조건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는 말이 붙습니다. 여러 번 태어나고 죽은 삶을 이렇게 같은 틀로 거듭 알아봅니다.

묵상

“그곳에서도”라는 반복과 마지막 “이곳에 태어났다”는 이동은 앞 대목과 어떻게 이어지나요? 지난 삶을 떠올려야 한다는 요구는 아니에요.

14 하늘 세계의 눈으로 나쁜 행위와 나쁜 곳의 태어남을 보다 1구절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여러 대조로 보고, 몸·말·마음의 나쁜 행위부터 나쁜 곳의 결과까지 잇습니다.

“그가 원한다면,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세계의 눈으로 존재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보기를. 낮고 높은 이, 아름답고 추한 이, 좋은 곳과 나쁜 곳에 간 이를 보고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알기를. 이 존재들은 몸·말·마음으로 나쁘게 행하고, 거룩한 이들을 비방하며, 잘못된 견해를 지니고 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였기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비참한 곳·나쁜 곳·추락처·지옥에 태어났다고 알기를.’”

So sace ākaṅkha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eyyaṁ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eyyaṁ—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nnā;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다섯 번째 직접 앎은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세계의 눈으로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보는 일입니다. 먼저 낮음과 높음,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곳과 나쁜 곳이라는 세 대조를 세우고, 행위에 따라 감을 안다고 밝힙니다. 이어 나쁜 결과의 원인은 몸·말·마음의 나쁜 행위 세 가지, 거룩한 이를 비방함, 잘못된 견해를 지님, 그 견해에 따라 행동함입니다. 결과도 비참한 곳·나쁜 곳·추락처·지옥이라는 네 가지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행위에 따라 결과가 이어지며,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좋은 행위와 좋은 곳으로 내용이 바뀝니다.

묵상

세 가지 행위와 견해, 그 뒤의 결과가 이어지는 원인과 결과에서 어느 연결이 가장 또렷한가요? 누군가의 현재 처지를 과거 행위로 단정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15 좋은 행위와 좋은 곳의 태어남을 대칭으로 보다 1구절

몸·말·마음의 좋은 행위와 바른 견해가 좋은 곳으로 이어지는 대칭, 전체 관찰과 실현 역량의 후렴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말·마음으로 훌륭하게 행하고, 거룩한 이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를 지니고 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였기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고 알기를. 이처럼 하늘 세계의 눈으로 죽고 태어나는 존재들을 낮음과 높음,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곳과 나쁜 곳에서 보고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알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러하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ti,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eyyaṁ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앞 대목의 나쁜 행위와 그 결과에 이어, “그러나 이 존재들은”이라며 반대되는 경우가 나옵니다. 몸·말·마음의 훌륭한 행위, 거룩한 이를 비방하지 않음, 바른 견해, 그 견해에 따른 행위가 원인이 되어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앞에서 본 낮음과 높음,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곳과 나쁜 곳이라는 대조와 행위에 따라 감을 안다는 말이 다시 한 번 나옵니다. 좋은 행위의 결과도 같은 틀로 보아야 하늘 세계의 눈이 보는 전체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다섯 번째 앎도 그때그때 실현할 수 있다는 다짐과 조건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는 제한 아래 놓입니다.

묵상

나쁜 행위의 대목과 좋은 행위의 대목이 원인과 결과를 같은 순서로 놓는 점이 보이나요?

16 이 삶에서 마음이 풀려나고 지혜로 벗어나다 1구절

여섯 직접 앎의 마지막으로 흘러드는 것이 다한 데서 오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이 삶에서 실현합니다.

“그가 원한다면, ‘흘러드는 것이 사라짐으로 흘러드는 것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로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아 실현하고 들어 머물기를.’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르며,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

So sace ākaṅkhati: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5.23 우빡낄레사 숫따 (더럽히는 것)

배경

여섯 직접 앎의 마지막은 흘러드는 것이 사라지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그로써 흘러드는 것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로 얻는 풀려남이라는 두 가지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아 실현하고 그 안에 머뭅니다. 앞의 다섯 가지와 마찬가지로 원하는 사람에게 열리고, 그때그때 그럴 수 있다는 다짐과 조건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는 같은 말이 붙습니다. 금의 비유에서 시작한 이 경은 이렇게 흘러드는 것이 사라지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묵상

“바로 이 삶에서”와 “스스로 직접 알아”라는 두 표현 가운데 어느 말이 더 오래 머무나요? 흘러드는 것의 사라짐이나 풀려남을 이루었는지 확인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