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박가족의 땅에 머무시다가 마가다의 한 마을에서 졸고 있는 마하목갈라나를 신통한 눈으로 보십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박가족의 숨수마라기리, 베사깔라 숲 사슴동산에 머무셨습니다.
그때 마하목갈라나 님은 마가다의 깔라왈라뿟따 마을에서 졸며 앉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맑고 인간을 뛰어넘는 신통한 눈으로 졸며 앉아 있는 마하목갈라나 님을 보셨습니다.
경은 부처님과 마하목갈라나 님이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부처님은 박가족의 숨수마라기리 베사깔라 숲에 있고, 마하목갈라나는 마가다의 깔라왈라뿟따 마을에서 앉아 있다가 졸고 있습니다. 졸며 앉아 있다는 말은 몸이 꾸벅거릴 만큼 조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부처님은 멀리서도 맑고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신통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묵상
집중하려는데 몸과 마음이 처지는 순간을 실패라고 단정한 적이 있나요? 이 경은 먼저 졸고 있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여 줍니다. 해결책을 서두르기 전에 지금의 피로와 졸음을 정확히 알아차려 보세요.
부처님께서 팔을 굽혔다 펴는 순간만큼 빠르게 마하목갈라나 앞에 나타나 앉으시고 졸고 있는지를 두 번 확인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고,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박가족의 베사깔라 숲에서 사라져 마가다의 깔라왈라뿟따 마을에 있는 마하목갈라나 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마련된 자리에 앉아 마하목갈라나 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갈라나여, 졸고 있습니까? 목갈라나여, 졸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
부처님은 본 뒤 곧바로 장소를 옮깁니다.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는 짧은 움직임을 비유로 들어, 박가족의 땅에서 사라지고 마가다의 마하목갈라나 앞에 나타나는 두 사건을 잇습니다. 부처님은 마련된 자리에 앉은 뒤 목갈라나를 부르며 “졸고 있습니까?”를 정확히 두 번 묻습니다. 마하목갈라나는 변명하거나 감추지 않고 “그렇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이어질 방법들은 졸음을 꾸짖는 데서 시작하지 않고 현재 상태를 두 사람이 분명히 확인한 뒤 제시됩니다.
묵상
누군가 현재 상태를 묻는다면 피곤함이나 졸음을 솔직히 인정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이 두 번 이어질 때 꾸지람보다 확인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마하목갈라나의 짧은 대답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살펴보세요.
첫 방법은 몸을 움직이기 전에 졸음이 들 때의 마음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떤 인식을 지닌 채’라는 말 그대로, 바로 그 인식에 주의를 계속 주거나 거듭 많이 키우지 말라고 합니다. 지금 그 대상에 머무는 방식이 졸음을 불러왔다면 거기 머물지 말라는 처방입니다. 마지막 문장도 졸음이 반드시 사라진다고 단정하지 않고 “버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음 방법들은 이 첫 시도가 듣지 않을 경우에 차례로 이어집니다.
묵상
졸음이 올 때에도 같은 생각이나 이미지를 붙들고 버틴 적이 있나요? 그 대상을 잠시 내려놓는 것은 집중의 포기가 아니라 조건을 바꾸는 첫 시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무엇에 주의를 주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첫 방법으로 졸음이 가시지 않으면 배운 가르침을 마음으로 검토하고, 그래도 안 되면 자세히 소리 내어 되뇝니다.
“그렇게 해도 졸음이 버려지지 않으면, 목갈라나여,
듣고 배운 가르침을 마음으로 거듭 생각하고 살피며 관찰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졸음이 버려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버려지지 않으면, 목갈라나여, 듣고 배운 가르침을 자세히 소리 내어 되뇌십시오.
그렇게 하면 졸음이 버려질 수 있습니다.”
No ce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tato tvaṁ, moggallāna, yathāsutaṁ yathāpariyattaṁ dhammaṁ cetasā anuvitakkeyyāsi anuvicāreyyāsi, manasā anupekkheyyāsi. Ṭhānaṁ kho panetaṁ vijjati yaṁ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No ce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tato tvaṁ, moggallāna, yathāsutaṁ yathāpariyattaṁ dhammaṁ vitthārena sajjhāyaṁ kareyyāsi. Ṭhānaṁ kho panetaṁ vijjati yaṁ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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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둘째와 셋째 방법은 모두 이미 듣고 배운 가르침을 사용하지만 활동의 층이 다릅니다. 먼저 마음속에서 거듭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고, 관찰합니다. 이 검토에도 졸음이 남으면 배운 내용을 자세히 소리 내어 되뇝니다. 앞 방법이 졸음을 부른 인식을 놓는 일이었다면, 여기서는 깨어 있게 하는 가르침으로 생각의 내용을 바꾸고 이어 목소리까지 사용합니다. 두 단계마다 “그래도 버려지지 않으면”과 “버려질 수 있다”가 반복되어 순서와 조건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마음속으로만 내용을 되짚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 깨어 있음이 다르게 느껴지나요? 졸음을 의지 부족으로 몰기보다 생각·관찰·목소리라는 수단을 차례로 바꾸어 보는 태도는 어떨까요?
마음과 목소리로도 안 되면 두 귀를 잡아당기고 몸을 문지른 뒤, 일어나 눈을 씻고 사방과 별을 바라봅니다.
“그래도 졸음이 버려지지 않으면, 목갈라나여,
두 귀를 잡아당기고 손으로 팔다리를 문지르십시오.
그렇게 하면 졸음이 버려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버려지지 않으면, 목갈라나여, 자리에서 일어나 물로 눈을 씻고 사방을 둘러보며
별자리와 별들을 올려다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졸음이 버려질 수 있습니다.”
No ce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tato tvaṁ, moggallāna, ubho kaṇṇasotāni āviñcheyyāsi, pāṇinā gattāni anumajjeyyāsi. Ṭhānaṁ kho panetaṁ vijjati yaṁ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No ce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tato tvaṁ, moggallāna, uṭṭhāyāsanā udakena akkhīni anumajjitvā disā anuvilokeyyāsi, nakkhattāni tārakarūpāni ullokeyyāsi. Ṭhānaṁ kho panetaṁ vijjati yaṁ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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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넷째와 다섯째 방법에서는 마음과 말에서 몸과 시야로 수단이 옮겨 갑니다. 먼저 양쪽 귀를 잡아당기고 손으로 몸의 팔다리를 문질러 감각을 깨웁니다. 그래도 졸리면 앉은 자리에서 실제로 일어나 물로 눈을 씻고 사방을 둘러본 뒤 별자리와 별을 올려다봅니다. 일어서기·씻기·시야를 여러 방향과 위쪽으로 넓히는 연속된 행동입니다. 하나가 듣지 않으면 다음 방법으로 넘어가는 실용적인 순서로 이어집니다.
묵상
졸릴 때 마음속에서만 버티다가 몸을 움직이면 상태가 달라진 적이 있나요? 귀·팔다리·눈·사방·밤하늘로 감각의 범위를 넓히는 순서를 읽으며, 지금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그래도 졸리면 빛의 인식과 낮의 인식을 세워 밤낮을 서로 같이 보고 열린 마음으로 밝은 마음을 닦습니다.
“그래도 졸음이 버려지지 않으면, 목갈라나여,
빛의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고 낮의 인식을 확립하십시오.
낮과 같이 밤을, 밤과 같이 낮을 보십시오.
이처럼 열려 있고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밝게 빛나는 마음을 닦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졸음이 버려질 수 있습니다.”
No ce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tato tvaṁ, moggallāna, ālokasaññaṁ manasi kareyyāsi, divāsaññaṁ adhiṭṭhaheyyāsi— yathā divā tathā rattiṁ yathā rattiṁ tathā divā.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ṁ cittaṁ bhāveyyāsi. Ṭhānaṁ kho panetaṁ vijjati yaṁ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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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여섯째 방법은 바깥의 별을 본 다음 마음 안에서 빛과 낮의 인식을 확립합니다. “낮과 같이 밤을, 밤과 같이 낮을”이라는 말은 어둠에 눌리지 않는 같은 밝기를 마음에 세우는 방식입니다. ‘비바따’는 열린 상태, ‘아빠리욘앗다’는 덮이지 않은 상태를 뜻하며, 그 마음으로 ‘삽빠바사’, 곧 밝게 빛나는 마음을 닦습니다. 이 구절에는 앞의 실패 조건과 뒤의 졸음이 버려질 가능성까지 함께 담겨 있어 여섯째 방법의 전체 흐름을 보여줍니다.
묵상
어둠과 피로가 마음까지 덮는 듯할 때 빛이나 낮의 느낌을 떠올리면 어떤 변화가 있나요? 특별한 시각화를 성공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열려 있고 덮이지 않은 마음”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들리는지 살펴보세요.
빛의 인식으로도 안 되면 감각을 안으로 거두고 마음을 밖으로 흩뜨리지 않은 채 앞뒤를 알아차리며 걷습니다.
“그래도 졸음이 버려지지 않으면, 목갈라나여,
앞과 뒤를 알아차리며 걸으십시오.
감각 기능을 안으로 거두고 마음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졸음이 버려질 수 있습니다.”
No ce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tato tvaṁ, moggallāna, pacchāpuresaññī caṅkamaṁ adhiṭṭhaheyyāsi antogatehi indriyehi abahigatena mānasena. Ṭhānaṁ kho panetaṁ vijjati yaṁ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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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일곱째 방법은 앉은 자세를 떠나 걷는 수행으로 바꿉니다. 오가는 길의 앞과 뒤를 알아차리며 걷는다는 뜻이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과는 다릅니다. 동시에 감각 기능은 안으로 거두고 마음은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합니다. 몸은 움직이되 마음이 주변 자극에 끌려 흩어지지 않는 조건이 함께 붙습니다. 앞의 일어서기와 별 보기보다 더 지속적인 움직임이지만, 목적은 내적으로 모인 채 걷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도 성공 가능성을 말할 뿐 강제로 보장하지 않습니다.
묵상
앉아서 버틸수록 더 흐려질 때 잠시 걸으며 주의를 모아 본 적이 있나요? 몸의 움직임과 마음의 산란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앞뒤를 알면서도 감각을 안으로 거둔다는 두 조건을 함께 떠올려 보세요.
일곱 방법으로도 졸음이 가시지 않으면 오른쪽으로 사자처럼 눕되 일어날 때를 마음에 두고, 깨면 곧 일어나도록 훈련합니다.
“그래도 졸음이 버려지지 않으면, 목갈라나여,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워 한 발을 다른 발 위에 놓으십시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일어날 때를 마음에 두십시오.
목갈라나여, 깨어나면 곧바로 일어나야 합니다.
‘잠자는 즐거움·누운 즐거움·졸음의 즐거움에 빠져 머물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목갈라나여, 이와 같이 훈련해야 합니다.”
No ce te evaṁ viharato taṁ middhaṁ pahīyetha, tato tvaṁ, moggallāna,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ṁ kappeyyāsi pāde pādaṁ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ṁ manasi karitvā. Paṭibuddhena ca te, moggallāna, khippaññeva paccuṭṭhātabbaṁ: ‘na seyyasukhaṁ na passasukhaṁ na middhasukhaṁ anuyutto viharissāmī’ti. Evañhi te, moggallāna, sikkh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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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일곱 방법이 모두 듣지 않으면 부처님은 잠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오른쪽으로 누워 두 발을 포개는 사자 자세를 취하고,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유지하며 언제 일어날지를 마음에 둡니다. 그러나 잠을 허용하는 것과 잠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은 구별됩니다. 깨어났을 때에는 곧바로 일어나고, 잠자기·누워 있기·졸음의 즐거움에 계속 매달리지 않겠다고 훈련합니다. 몸의 필요를 인정하면서도 잠들기 전의 의도와 깬 뒤의 행동까지 느슨해지지 않게 세웁니다.
묵상
쉬어야 할 때 쉬는 것과 누워 있는 즐거움에 계속 머무는 것은 어디에서 갈릴까요? 피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일어날 때를 미리 마음에 두는 방식이 자신의 휴식 습관에 무엇을 비추는지 살펴보세요.
여기서 경은 졸음을 없애는 방법에서 집을 방문할 때의 태도로 주제를 넓힙니다. 코를 높이 든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코나 주둥이를 높이 든 모습으로, 자신이 주목과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교만한 기대를 나타냅니다. 부처님은 그 집에 가지 말라고 하지 않고, 그런 태도를 지니고 가지 않겠다고 훈련하라고 합니다. 앞뒤에서 “이와 같이 훈련해야 한다”는 문장이 목갈라나를 부르는 말과 함께 반복되어 짧은 서원을 감쌉니다. 다음 대목은 이 교만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마음이 어떻게 집중에서 멀어지는지 원인 사슬로 설명합니다.
묵상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대접해 주리라는 기대를 품고 관계에 들어간 적이 있나요? “코를 높이 든다”는 몸의 비유를 떠올리며, 기대가 자세와 시선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천천히 살펴보세요.
재가가 바쁜 탓에 수행자를 돌보지 못하면 교만한 수행자가 오해하고 낙담하여 산란·무절제·집중 이탈로 이어지는 과정을 밝힙니다.
“목갈라나여, 수행자가 코를 높이 들고 집집마다 다가가도, 목갈라나여, 그 집에는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온 수행자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수행자는 ‘누가 이 집에서 나를 갈라놓았나? 이제 사람들이 내게 싫증 난 모양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얻지 못해 낙담하고, 낙담하면 산란하며, 산란하면 절제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면 마음은 집중에서 멀어집니다.”
부처님은 집안 사람들이 수행자를 외면하는 이유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대접을 기대한 수행자는 그 사정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 자신과 그 집 사이를 갈라놓았거나 사람들이 자신에게 마음이 식었다고 해석합니다. 그 오해 뒤에는 얻지 못함이 있고, 얻지 못함에서 낙담, 낙담에서 산란, 산란에서 절제 없음, 절제 없음에서 집중과 멀어짐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은 외부의 무관심보다 인정받으려는 기대와 그 해석이 마음의 안정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상대가 바빠 반응하지 못한 일을 나에 대한 거절로 해석한 적이 있나요? 얻지 못함에서 낙담·산란·절제 없음·집중 이탈로 이어지는 고리 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다른 해석이 가능할지 살펴보세요.
논쟁하는 말은 말의 과다와 산란, 절제 없음, 집중에서 멀어짐으로 이어지므로 하지 않겠다고 훈련합니다.
“그러므로 목갈라나여, 이렇게 훈련해야 합니다.
‘논쟁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목갈라나여, 이와 같이 훈련해야 합니다.
목갈라나여, 논쟁하는 말이 있으면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면 산란하며,
산란하면 절제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면 마음은 집중에서 멀어집니다.”
두 번째 추가 훈련은 상대와 맞서 갈라지는 논쟁의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말의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보다 그 말이 불러오는 연쇄로 설명됩니다. 논쟁이 있으면 말이 많아질 가능성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산란, 산란하면 절제 없음, 절제하지 못하면 집중에서 멀어집니다. 앞의 집 방문 대목과 마지막 세 고리가 정확히 같습니다. 하나는 대접받지 못한 낙담에서, 다른 하나는 논쟁과 많은 말에서 시작하지만, 둘 다 마음이 흐트러져 한곳에 모이는 상태에서 멀어지는 길을 같이 걷습니다.
묵상
말을 주고받을수록 쟁점이 맑아지기보다 마음이 흩어진 경험이 있나요? 논쟁·말의 과다·산란·절제 없음·집중 이탈의 사슬에서 자신이 가장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고리는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부처님께서 재가자·출가자와의 가까움은 칭찬하지 않고 고요하며 홀로 머물기 알맞은 거처와의 가까움은 칭찬하십니다.
“목갈라나여, 나는 모든 가까움을 칭찬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목갈라나여, 모든 가까움을 칭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목갈라나여, 나는 집에 사는 사람과 집을 떠난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리와 소음이 적고 인적이 드물며 사람에게서 멀어
홀로 머물기 알맞은 그런 거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칭찬합니다.”
Nāhaṁ, moggallāna, sabbeheva saṁsaggaṁ vaṇṇayāmi. Na panāhaṁ, moggallāna, sabbeheva saṁsaggaṁ na vaṇṇayāmi. Sagahaṭṭhapabbajitehi kho ahaṁ, moggallāna, saṁsaggaṁ na vaṇṇayāmi. Yāni ca kho tāni senāsanāni appasaddāni appanigghosāni vijanavātāni manussarāhasseyyakāni paṭisallānasāruppāni tathārūpehi senāsanehi saṁsaggaṁ vaṇṇayāmī”ti.
앙굿따라 니까야AN 7.61 빠짤라야마나 숫따 (꾸벅꾸벅 졺)
배경
부처님은 가까이 지냄을 한꺼번에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첫 문장은 모든 가까움을 칭찬하지 않는다고 하고, 둘째 문장은 모든 가까움을 칭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균형을 세웁니다. 구체적으로 집에 사는 사람과 집을 떠난 사람이라는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는 것은 칭찬하지 않지만, 소리와 소음이 적고 인적과 인간의 은밀한 활동에서 멀며 홀로 물러나기에 알맞은 거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칭찬합니다. 집중과 물러남에 어떤 가까움이 알맞은지를 대상에 따라 분별합니다.
묵상
가까움 자체를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고 본 적이 있나요? 사람과의 뒤섞임과 고요한 거처에 머무는 가까움을 구별한 이 문장에서, 지금 자신의 마음에 필요한 환경은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마하목갈라나가 궁극에 이른 수행자를 간략히 설명해 달라고 묻자 부처님께서 모든 것은 고집해 붙들 만하지 않다는 배움을 두 번 세웁니다.
마하목갈라나 님이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간략히 말해 어떻게 해야 수행자가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다함으로 풀려나고, 마지막 완성·마지막 멍에에서 벗어난 평안·마지막 거룩한 삶·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신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 됩니까?”
“목갈라나여, 수행자는 ‘모든 것은 고집해 붙들 만하지 않다’고 배웁니다.
목갈라나여, 수행자는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고집해 붙들 만하지 않다’고 배웁니다.”
졸음과 생활 태도에 관한 조언을 들은 뒤 마하목갈라나는 질문을 마지막 풀려남으로 넓힙니다. 질문에는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다함으로 풀려남, 마지막 완성, 멍에에서 벗어난 평안, 거룩한 삶, 결말, 신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라는 표현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부처님의 간략한 답은 ‘모든 것은 고집해 붙들 만하지 않다’는 배움으로 시작하고 같은 문장을 되풀이합니다. 이 짧은 가르침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즐거움과 괴로움 같은 실제 느낌을 알아차리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모든 것은 고집해 붙들 만하지 않다”는 문장이 무관심이나 포기와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마지막을 묻는 긴 질문에 짧은 한 문장이 두 번 놓인 까닭을 서둘러 결론 내리지 말고 살펴보세요.
모든 것을 직접 알고 철저히 안 수행자가 즐거운·괴로운·중성 느낌에서 그대로 있지 않음·빛바램·소멸·놓아 버림을 관찰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직접 알고, 직접 안 뒤 모든 것을 철저히 압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안 뒤 즐거운 느낌·괴로운 느낌·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가운데 무엇을 느끼든,
그 느낌들에서 그대로 있지 않음을 관찰하고 빛바램을 관찰하며 사라짐을 관찰하고 놓아 버림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짧은 명제 다음에는 앎과 느낌에 대한 구체적인 과정이 이어집니다. ‘직접 안다’와 ‘직접 안 뒤’, ‘철저히 안다’와 ‘철저히 안 뒤’라는 말이 반복되어 단계의 연결을 보여 줍니다. 그 앎은 즐거움·괴로움·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음이라는 세 느낌 어느 하나도 제외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그 느낌들 안에서 그대로 있지 않음·빛바램·사라짐·놓아 버림을 각각 관찰하며 머뭅니다. 느낌을 없애는 명령보다 일어나는 모든 느낌을 네 방향에서 보는 수행입니다.
묵상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뿐 아니라 중성 느낌도 같은 관찰의 대상이라는 점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네 방향 가운데 지금 뜻이 선명한 하나만 골라, 느낌을 붙들거나 밀어내지 않고 살펴보세요.
느낌에서 네 관찰을 이어 가는 수행자는 세상 어떤 것도 취하지 않고, 취하지 않아 흔들리지 않으며 스스로 완전히 고요히 꺼집니다.
“그 느낌들에서 그대로 있지 않음·빛바램·사라짐·놓아 버림을 관찰하며 머물면
세상에서 어떤 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취하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면 바로 자기 안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집니다.”
So tāsu vedanāsu aniccānupassī viharanto virāgānupassī viharanto nirodhānupassī viharanto paṭinissaggānupassī viharanto na kiñci loke upādiyati, anupādiyaṁ na paritassati, aparitassaṁ paccattaṁyeva parinibbāyati.
앙굿따라 니까야AN 7.61 빠짤라야마나 숫따 (꾸벅꾸벅 졺)
배경
앞에서 나란히 제시된 네 관찰은 여기서 결과로 이어집니다. 느낌들에서 그대로 있지 않음·빛바램·사라짐·놓아 버림을 관찰하며 머무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취해 붙들지 않습니다. 취하지 않음에서 흔들리거나 애태우지 않음이 생기고, 흔들리지 않음에서 바로 자기 안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진다는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관찰에서 움켜쥐지 않음, 움켜쥐지 않음에서 흔들리지 않음, 흔들리지 않음에서 고요히 꺼짐이라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한 고리도 줄이지 않고 잇습니다.
묵상
느낌이 달라질 때마다 붙들거나 밀어내는 힘이 줄면 흔들림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고요히 꺼짐을 당장 경험하거나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관찰·움켜쥐지 않음·흔들리지 않음의 세 고리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세요.
태어남이 다하고 할 일이 끝났다는 앎을 밝힌 뒤, 이것이 갈망이 사라져 풀려난 수행자에 대한 간략한 답이라고 맺습니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살았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이러한 존재 상태가 없다’고 압니다.
목갈라나여, 간략히 말해 이만큼으로 수행자는 갈망이 다함으로 풀려나고, 마지막 완성·마지막 멍에에서 벗어난 평안·마지막 거룩한 삶·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신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 됩니다.”
풀려남의 내적 확인은 네 문구로 제시됩니다. 태어남이 다했고, 거룩한 삶을 살았고, 해야 할 일을 했으며, 다시는 이러한 존재 상태가 없다고 압니다. 이어 ‘이만큼으로’라는 말과 함께 마하목갈라나의 질문에 있던 긴 수식이 그대로 돌아옵니다.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다함으로 풀려남과 네 가지 마지막, 신과 인간 가운데 으뜸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답을 마칩니다. 졸음에서 시작한 경은 깨어 있기 위한 실용적 단계와 집중을 지키는 생활 태도를 지나, 느낌을 붙들지 않아 갈망이 다한 풀려남의 결론까지 나아갑니다.
묵상
경의 시작에 있던 졸음과 마지막의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선언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느껴지나요? 자신의 성취와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단계 가운데 지금 기억하고 싶은 한 대목만 골라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