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깐나 숫따

Tikaṇṇasutta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에게 세 베다의 혈통·학문 기준과 선정에서 생긴 세 밝은 앎을 대조하고, 직접 앎과 귀의의 길을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19구절

이 경을 1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세 베다에 밝은 이들을 칭송하는 띠깐나 1구절

띠깐나 브라흐마나가 부처님 앞에서 세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마나를 거듭 칭송하며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때 띠깐나라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과 함께 …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띠깐나 브라흐마나는 부처님 앞에서 세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마나들을 칭송했다. “세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마나들은 이와 같고, 또 이와 같습니다.”

Atha kho tikaṇṇ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pe… ekamantaṁ nisinno kho tikaṇṇo brāhmaṇo bhagavato sammukhā tevijjānaṁ sudaṁ brāhmaṇānaṁ vaṇṇaṁ bhāsati: “evampi tevijjā brāhmaṇā, itipi tevijjā brāhmaṇ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경의 첫 장면에서 띠깐나는 부처님을 찾아온 방문자이자 가장 먼저 말을 건 사람입니다. 그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으로 소개되고, 부처님께 다가가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부처님 앞에서 세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마나들을 칭송합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인사 부분은 줄였습니다. 이 칭송이 이어지는 대목에서 ‘세 베다에 정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띠깐나가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전통을 먼저 칭송하는 장면에서, 나는 익숙한 권위나 지식을 어떤 말로 높이고 있나요?

2 양쪽 혈통과 일곱 조상 대를 기준으로 삼다 1구절

부처님의 정의 질문에 띠깐나는 모계·부계의 좋은 출생과 부계 일곱 조상 대까지 흠 없는 혈통을 먼저 듭니다.

“브라흐마나여, 브라흐마나들은 어떤 이를 세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마나라 하는가?” “고따마 님, 여기 브라흐마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으로 좋은 혈통이고, 태가 깨끗하며 아버지 쪽 일곱 조상 대까지 혈통으로 비난이나 질책을 받지 않습니다.

“Yathā kathaṁ pana, brāhmaṇa, brāhmaṇā brāhmaṇaṁ tevijjaṁ paññāpentī”ti? “Idha, bho gotama, brāhmaṇo ubhato sujāto hoti mātito ca pitito ca, saṁsuddhagahaṇiko yāva sattamā pitāmahayugā, akkhitto anupakkuṭṭho jātivādena,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부처님은 ‘브라흐마나들은 어떤 이를 세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마나라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띠깐나는 혈통 기준부터 답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으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태가 깨끗하며, 아버지 쪽으로 일곱 대를 거슬러도 혈통 때문에 비난받거나 질책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띠깐나는 같은 흐름으로 세 베다와 그 밖의 여러 학문 기준까지 모두 밝힙니다.

묵상

띠깐나가 사람을 정의하는 첫 기준으로 양쪽 혈통과 일곱 조상 대를 드는 장면에서, 나는 출신이나 배경을 얼마나 크게 보고 있나요?

3 성전과 세 베다와 여러 학문을 기준으로 삼다 1구절

성전 암송과 주문, 세 베다의 다섯 갈래 보조 학문, 낱말·문법·세상 이론·위대한 사람의 특징을 열거합니다.

그는 성전을 외우고 주문을 간직하며, 어휘와 의례, 음운과 낱말 구분, 다섯째인 전승을 포함한 세 베다에 통달했습니다. 낱말과 문법을 알고, 세상 이론과 위대한 사람의 특징에도 빈틈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고따마 님, 브라흐마나들은 브라흐마나를 세 베다에 정통한 이라고 합니다.”

ajjhāyako, mantadharo, tiṇṇaṁ vedānaṁ pāragū sanighaṇḍukeṭubhānaṁ sākkharappabhedānaṁ itihāsapañcamānaṁ, padako, veyyākaraṇo, lokāyatamahāpurisalakkhaṇesu anavayoti. Evaṁ kho, bho gotama, brāhmaṇā brāhmaṇaṁ tevijjaṁ paññāpentī”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띠깐나가 같은 답변에서 혈통 다음으로 제시한 학문 기준입니다. ‘성전을 외우는 이’와 ‘주문을 간직하는 이’라는 두 역할입니다. 세 베다는 어휘·의례·음운·낱말 구분과 다섯째인 전승을 동반하며, 이어 낱말 지식·문법·세상 이론·위대한 사람의 특징이 별도 목록으로 나옵니다. 마지막에는 고따마 님을 다시 부르고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이 브라흐마나를 세 베다에 정통한 이로 정한다”는 질문의 문형을 그대로 되받습니다. 이 긴 자격 목록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수행으로 얻는 세 가지 앎과 비교됩니다.

묵상

띠깐나의 학문 목록을 읽을 때, 배워서 기억한 지식과 직접 삶을 바꾸는 앎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나요?

4 세 베다와 성자의 세 밝은 앎이 다름을 묻다 1구절

부처님이 두 정의의 차이를 밝히자 띠깐나는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추는 길을 청합니다.

“브라흐마나여, 브라흐마나들이 세 베다에 정통한 이를 정하는 방식과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는 서로 다르다.” “고따마 님, 성자의 훈련에서는 어떻게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됩니까? 고따마 님께서 그 가르침을 펴 주십시오.” “그러면 브라흐마나여,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 내가 말하겠다.” 띠깐나 브라흐마나는 “예, 고따마 님”이라고 응답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Aññathā kho, brāhmaṇa, brāhmaṇā brāhmaṇaṁ tevijjaṁ paññāpenti,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Yathā kathaṁ pana, bho gotama, ariyassa vinaye tevijjo hoti? Sādhu me bhavaṁ gotamo tathā dhammaṁ desetu yathā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Tena hi, brāhmaṇa, suṇā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o”ti kho tikaṇṇo brāhmaṇ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띠깐나의 질문 뒤 부처님은 같은 말을 되풀이해 ‘세 가지 앎’의 두 가지 뜻이 서로 다르다고 선을 긋습니다.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 전통에서 말하는 것은 “세 베다에 정통한 이”, 수행에서 말하는 것은 “세 밝은 앎을 갖춘 이”입니다. 띠깐나는 고따마 님을 두 번 부르며 방법을 묻고 가르침을 펴 주시기를 청합니다. 부처님은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라고 이르신 뒤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묵상

같은 말이 서로 다른 전통에서 다른 기준을 가리킬 수 있다는 대조를 읽을 때, 내가 이미 안다고 여긴 말 가운데 다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5 첫째와 둘째 깊은 집중으로 마음을 모으다 1구절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첫째 깊은 집중에 들고, 생각의 두 작용이 가라앉아 둘째 깊은 집중에 듭니다.

“브라흐마나여, 여기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벗어남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머뭅니다.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이 가라앉아 내면이 맑고 마음이 하나가 되며, 그 두 작용 없이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둘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뭅니다.

“Idha, brāhmaṇa,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부처님의 설명은 수행자가 네 단계의 깊은 집중(자나)에 드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여기에는 앞의 두 단계가 나옵니다. 첫째 깊은 집중에서는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그 벗어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누립니다. 둘째 깊은 집중에서는 그 생각 작용이 가라앉고 내면이 맑아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이며, 희열과 행복은 이제 집중 그 자체에서 생겨납니다. 세 밝은 앎은 이렇게 닦여 다루기 쉬워진 마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묵상

첫째에서 둘째 깊은 집중으로 갈 때 남는 것과 가라앉는 것이 구별되는 대목에서, 지금 내 마음에는 일으키고 이어 가는 생각과 고요 가운데 무엇이 더 선명한가요?

6 셋째와 넷째 깊은 집중에서 평온과 알아차림이 맑아지다 1구절

희열이 잦아든 셋째 깊은 집중과 행복·고통을 넘어 평온과 알아차림이 맑은 넷째 깊은 집중을 밝힙니다.

희열이 빛바래 평정하게 머물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고 몸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성자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무는 이’라 하는 셋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뭅니다. 행복과 괴로움을 버리고,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 행복도 괴로움도 없고 평정으로 알아차림이 맑은 넷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뭅니다.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앞에서 다룬 두 깊은 집중(자나)에 이어 셋째와 넷째를 설명합니다. 셋째에서는 희열이 빛바래지만 평온·알아차림·분명한 앎과 몸으로 느끼는 행복이 남고, 성자들의 인용문도 그대로 나옵니다. 넷째에서는 행복과 고통을 버리고 그보다 먼저 기쁨과 슬픔이 사라집니다. 그 결과 행복도 고통도 아닌 느낌과 평온으로 맑아진 알아차림이 함께합니다. 더 미세한 집착이 가라앉아 밝은 앎에 쓸 수 있는 마음으로 가는 순서입니다.

묵상

희열이 잦아들고 더 조용한 평온이 남는다는 흐름을 읽을 때, 강한 느낌이 줄어드는 것을 잃음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나요?

7 지난 삶의 수량과 세계의 여러 겁을 기억하다 1구절

정화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난 삶에 기울여 한 생부터 십만 생과 세계의 수축·팽창을 기억합니다.

그의 마음이 이처럼 집중되어 깨끗하고 밝으며, 티도 때도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자,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마음을 기울입니다. 한·두·세·네·다섯 생, 열·스물·서른·마흔·쉰 생, 백·천·십만 생과, 세계가 수축한 여러 겁, 팽창한 여러 겁, 수축하고 팽창한 여러 겁에 걸친 지난 삶을 기억합니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ṁsampi jātiyo cattār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ṁ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ṁvaṭṭavivaṭṭakappe: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네 번째 깊은 집중을 마친 뒤 첫 번째 밝은 앎으로 넘어가는 대목입니다. 마음은 집중되고 깨끗하고 밝으며, 티도 때도 없이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그 마음을 지난 삶의 기억으로 기울입니다. 한두 생에서 수십, 수백, 수천, 수십만 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세계가 줄어들고 늘어나는 여러 겁에 걸쳐서까지 지난 삶을 기억합니다.

묵상

마음이 여러 조건을 갖춘 뒤 특정한 앎으로 기울어진다는 순서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알려 하기 전에 필요한 마음의 조건은 무엇으로 보이나요?

8 지난 삶의 모습과 세부로 첫 번째 밝은 앎을 이루다 1구절

각 삶의 이름·가문·모습·음식·행복과 고통·수명과 이동을 기억하고 첫 번째 밝은 앎을 확인합니다.

‘거기서 이름·가문·모습·음식은 이러했고, 이런 행복·괴로움을 겪고 이만큼 살았다. 거기서 죽어 저곳에 태어났다. 저곳에서도 이름·가문·모습·음식은 이러했고, 이런 행복·괴로움을 겪고 이만큼 살았다. 거기서 죽어 여기 태어났다’고 지난 삶의 모습과 세부를 기억합니다. 이것이 그가 얻은 첫째 밝은 앎입니다. 모름은 무너지고 밝은 앎이 생겼으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생겼습니다. 이는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센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합니다.

‘amutr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ṁ. Tatrāp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Ayamassa paṭhamā vijjā adhigatā hoti;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앞에서 나온 수량 목록에 이어, 각 생에서 기억하는 구체적인 내용과 첫 번째 밝은 앎을 마무리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름·가문·모습·음식·행복과 괴로움·목숨의 길이라는 여섯 가지가 거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이 되풀이되며, 죽어서 다른 곳에 태어나고 다시 죽어 여기 태어나는 흐름이 그대로 그려집니다. 앞서 나온 많은 수의 생이 이렇게 구체적인 기억으로 채워지고, 모름이 무너지고 밝은 앎이 생기며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생긴다는 말,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센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과거를 막연한 인상으로 떠올리는 것과 이름·관계·몸·느낌·시간의 세부까지 함께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9 마음을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기울이다 1구절

집중되어 정화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 기울입니다.

그의 마음이 이처럼 집중되어 깨끗하고 밝으며, 티도 더러움도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자, 살아 있는 것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 마음을 기울입니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첫 번째 밝은 앎을 마무리하는 말에 이어 두 번째 밝은 앎이 시작됩니다. 마음이 집중되고 깨끗하고 밝으며, 티도 더러움도 없고 부드럽고 다루기 쉬우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앞서와 같은 순서로 다시 나옵니다. 달라지는 것은 마음을 기울이는 대상입니다. 이번에는 살아 있는 것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로 마음이 향합니다.

묵상

같은 준비된 마음이 무엇을 향하느냐에 따라 앎의 범위가 달라지는 대목에서, 지금 내 주의는 주로 어디로 기울고 있나요?

10 악행과 잘못된 견해가 나쁜 곳으로 이끄는 것을 보다 1구절

신성한 눈으로 행위에 따른 죽음과 태어남을 보고 악행·비방·잘못된 견해가 나쁜 곳으로 이끄는 흐름을 밝힙니다.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뭇 생명이 죽고 태어나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고,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행위에 따라 감을 압니다. ‘이 존재들은 몸으로 악행을 하고 … 마음으로 악행을 하며, 성자들을 비방하고, 잘못된 견해와 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였습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나쁜 길· 파멸처·지옥에 태어났습니다.’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pe…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nnā.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마음을 두 번째 밝은 앎으로 기울인 뒤, 신성한 눈으로 보는 첫 관찰과 그 결과를 담은 대목입니다. 그 눈은 맑고 인간을 뛰어넘으며, 죽고 태어나는 것과 낮고 높음, 아름답고 추함,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행위에 따라 그렇게 감을 압니다. 말로 짓는 악행에 관한 부분은 줄였습니다. 성자들을 비방하고 잘못된 견해와 그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인 이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나쁜 곳과 나쁜 길, 파멸처와 지옥에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묵상

몸의 행위와 견해가 결과의 방향으로 이어진다는 대목에서, 오늘 한 선택이 마음이나 관계에 남긴 작은 흔적이 보이나요?

11 선행과 바른 견해가 좋은 곳으로 이끄는 것을 보다 1구절

몸·말·마음의 선행과 바른 견해의 결과를 밝히고 두 번째 밝은 앎의 후렴으로 맺습니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행을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와 그 견해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였습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이처럼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신성한 눈으로 뭇 생명이 죽고 태어나며,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하고,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행위에 따라 감을 압니다.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ti.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앞에서 나온 악행의 결과에 맞서는 대목으로, 이번에는 몸과 말과 마음의 선행을 모두 밝힙니다.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와 그에 따른 행위를 받아들인 이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하늘 세계에 태어납니다. 이어 신성한 눈이 맑고 인간을 뛰어넘는다는 것, 죽고 태어남과 낮고 높음, 아름답고 추함,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 가는 것을 보고 행위에 따라 그렇게 감을 안다는 것을 앞서와 같은 순서로 다시 말합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선행과 바른 견해가 함께 놓인 대목에서, 오늘 세 갈래 가운데 조금 더 돌보고 싶은 하나가 있나요?

12 두 번째 밝은 앎에서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생기다 1구절

죽음과 태어남을 행위에 따라 본 것을 두 번째 밝은 앎이라 하고 모름과 어둠이 무너지는 후렴으로 맺습니다.

이것이 그가 얻은 두 번째 밝은 앎입니다. 모름은 무너지고 밝은 앎이 생겼으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생겼습니다. 이는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센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합니다.

Ayamassa dutiyā vijjā adhigatā hoti;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선행과 악행에 따른 죽음과 태어남을 살펴본 뒤, 두 번째 밝은 앎을 얻었다는 말이 첫 번째 때와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모름이 무너지고 밝은 앎이 생기며, 어둠이 무너지고 빛이 생긴다는 말,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센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하다는 말까지 그대로 다시 나옵니다. 모름과 어둠을 없애는 것이 곧 앎의 기준이 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모름이 무너지고 밝은 앎이 생긴다”는 구절에서, 얼마 전까지는 몰랐지만 이제 조금 분명해진 일이 있나요?

13 괴로움의 네 구조를 있는 그대로 알다 1구절

정화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흘러드는 것의 소멸에 기울여 괴로움의 네 구조를 각각 압니다.

그의 마음이 이처럼 집중되어 깨끗하고 밝으며, 티도 더러움도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게 되자, 흘러드는 것이 다함을 아는 데 마음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기원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멎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멎음으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세 번째 밝은 앎도 앞의 두 앎과 똑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깨끗하고 밝으며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번에 마음을 기울이는 대상은 흘러드는 것의 멎음입니다. 이어 괴로움,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 괴로움의 멎음, 멎음으로 이끄는 실천을 하나씩 ‘있는 그대로 안다’고 말합니다. 곧 이어 흘러드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네 가지를 되풀이해 압니다.

묵상

괴로움을 만날 때 드러난 현상만 없애려 하기보다 기원·멎음·그 길을 함께 볼 여지가 있나요?

14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것들은 어떻게 생기고 끝나는가 1구절

흘러드는 것·흘러드는 것의 기원·소멸·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각각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들이 흘러드는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흘러드는 것의 기원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흘러드는 것의 멎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것이 흘러드는 것의 멎음으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압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괴로움을 네 가지로 안 것과 같은 방식으로, 흘러드는 것도 네 가지로 압니다. 먼저 이것들이 흘러드는 것임을 알고, 이어 그 기원과 사라짐, 사라짐으로 이끄는 실천을 차례로 ‘있는 그대로’ 압니다.

묵상

흘러드는 것을 단지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기원과 사라짐, 사라짐으로 이끄는 실천까지 함께 보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15 세 번째 밝은 앎: 마음에 흘러들어 괴롭히는 세 가지에서 풀려나다 1구절

감각적 욕망·존재·모름에서 흘러드는 것이 다해 마음이 풀려나고 네 완료 선언과 세 번째 밝은 앎이 이어집니다.

그가 이처럼 알고 보자 마음은 감각적 욕망으로 흘러드는 것과 존재로 흘러드는 것과 모름으로 흘러드는 것에서 풀려납니다. 풀려났을 때 ‘풀려났다’는 앎이 생깁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압니다. 이것이 그가 얻은 세 번째 밝은 앎입니다. 모름은 무너지고 밝은 앎이 생겼으며, 어둠은 무너지고 빛이 생겼습니다. 이는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굳센 뜻으로 머문 이에게 그러합니다.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Ayamassa tatiyā vijjā adhigatā hoti;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ṁ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괴로움과 흘러드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마음은 감각적 욕망·존재·모름이라는 세 흘러드는 것에서 각각 풀려나고, 풀려났다는 앎이 뒤따릅니다. 이어 태어남이 다했고, 거룩한 삶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세 번째 밝은 앎이며, 앞의 두 밝은 앎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습니다.

묵상

마음이 풀려난 느낌과 “풀려났다”는 분명한 앎이 따로 언급되는 대목에서, 잠깐의 편안함과 원인이 끝난 자유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16 어둠을 몰아내고 죽음을 넘어선 이를 노래하다 1구절

흔들리지 않는 계행과 잘 집중된 마음을 갖추고 세 밝은 앎으로 어둠과 죽음을 넘어선 이를 노래합니다.

계행이 오르내리지 않고, 슬기로우며 깊은 집중에 드는 이, 마음을 자유로이 다루고 하나로 잘 집중한 이, 어둠을 몰아낸 현명한 이, 세 밝은 앎을 갖춰 죽음을 넘어선 이, 신과 인간에게 이로운 그를 모든 것을 버린 이라 부른다.

Anuccāvacasīlassa, nipakassa ca jhāyino; Cittaṁ yassa vasībhūtaṁ, ekaggaṁ susamāhitaṁ. Taṁ ve tamonudaṁ dhīraṁ, tevijjaṁ maccuhāyinaṁ; Hitaṁ devamanussānaṁ, āhu sabbappahāyinaṁ.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세 밝은 앎을 풀어 말한 뒤 노래가 시작되며, 여기서는 그 첫 두 연을 담았습니다. 첫 연은 흔들리지 않는 계행, 슬기로움과 깊은 집중, 자유로이 다루는 마음, 하나로 잘 집중됨을 네 줄에 둡니다. 둘째 연은 그 사람을 어둠을 몰아낸 현명한 이, 세 밝은 앎을 갖춰 죽음을 넘어선 이, 신과 인간에게 이로운 이, 모든 것을 버린 이라고 네 방향에서 부릅니다. 앞 산문의 모름과 빛, 그리고 세 앎을 인물의 삶과 이로움으로 압축한 노래입니다.

묵상

게송이 앎만이 아니라 계행·슬기로움·깊은 집중·다루어진 마음을 함께 놓는 데서, 나는 지식과 삶의 태도 가운데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나요?

17 세 밝은 앎을 갖춘 깨달은 고따마께 경배하다 1구절

세 밝은 앎과 마지막 몸을 지닌 고따마를 경배하고, 세 앎을 지난 삶·태어날 곳·태어남의 소멸로 요약합니다.

세 밝은 앎을 갖추고 미혹 없이 머물며, 마지막 몸을 지닌 깨달은 이, 그 고따마께 그들은 경배한다. 지난 삶을 아는 이, 하늘 세계와 나쁜 곳을 보는 이, 태어남이 다함에 이르러 더 높은 앎을 완성한 성자.

Tīhi vijjāhi sampannaṁ, asammūḷhavihārinaṁ; Buddhaṁ antimadehinaṁ, taṁ namassanti gotamaṁ. Pubbenivāsaṁ yo vedī, saggāpāyañca passati; Atho jātikkhayaṁ patto, abhiññāvosito mun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앞 노래의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누구이며 무엇을 아는지 두 연으로 더 분명해집니다. 첫 연은 세 앎·미혹 없음·마지막 몸·깨달은 이라는 네 표현을 고따마에게 모으고, 그에게 경배한다는 말로 닫습니다. 둘째 연은 산문의 세 앎을 지난 삶을 앎, 하늘 세계와 나쁜 곳을 봄, 태어남이 다함에 이름으로 한 줄씩 되짚고, 더 높은 앎을 완성한 성자라고 결론 냅니다. 세 베다의 문헌 목록과 달리 삶과 죽음과 태어남이 다함을 직접 아는 것이 이 경의 대안입니다.

묵상

지난 삶·행위에 따른 태어남·태어남이 다함이라는 세 방향 가운데, 이 경의 “밝은 앎”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느껴지나요?

18 외운 말보다 직접 얻은 세 가지 밝은 앎 1구절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춘 이를 참된 세 앎의 브라흐마나라 하고, 들은 말을 되뇌는 이를 부정합니다.

이 세 가지 밝은 앎으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된다. 나는 그를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라 부르며, 들은 말을 되뇌는 다른 이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Etāhi tīhi vijjāhi, tevijjo hoti brāhmaṇo; Tamahaṁ vadāmi tevijjaṁ, nāññaṁ lapitalāpan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다섯 연 노래의 마지막 연이 앞의 비교를 마무리짓습니다. 이는 바로 앞에서 요약한 지난 삶의 기억, 존재들의 죽음과 태어남, 태어남의 사라짐이라는 이 세 밝은 앎을 가리킵니다. 그 앎으로 브라흐마나는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되며, 부처님도 그런 이를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 구절은 들은 말을 되뇌는 다른 사람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혈통과 문헌을 말로 반복하는 데서 직접 닦고 아는 것으로 기준이 바뀝니다.

묵상

들은 말을 정확히 되풀이하는 것과 삶에서 직접 알아 확인하는 것의 차이는 내 경험에서 어떻게 드러나나요?

19 열여섯째 몫에도 못 미침을 인정하고 귀의하다 1구절

띠깐나는 두 세 앎의 차이와 열여섯째 몫의 비교를 인정하고 평생 귀의한 재가 신자로 기억되기를 청합니다.

“브라흐마나여, 성자의 훈련에서는 이와 같이 세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된다.” “고따마 님, 브라흐마나들의 세 베다에 정통한 이와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춘 이는 서로 다릅니다. 고따마 님, 브라흐마나들의 세 베다에 정통한 이는 성자의 훈련에서 세 밝은 앎을 갖춘 이의 열여섯째 몫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훌륭합니다, 고따마 님 …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집에 사는 신도로 고따마 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Evaṁ kho, brāhmaṇa, ariyassa vinaye tevijjo hotī”ti. “Aññathā, bho gotama, brāhmaṇānaṁ tevijjo, aññathā ca pana ariyassa vinaye tevijjo hoti. Imassa ca pana, bho gotama, ariyassa vinaye tevijjassa brāhmaṇānaṁ tevijjo kalaṁ nāgghati soḷasiṁ. Abhikkantaṁ, bho gotama …pe…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앙굿따라 니까야 AN 3.58 띠깐나 숫따

배경

부처님은 브라흐마나를 부르며 성자의 훈련에서 세 가지 밝은 앎을 갖춘 이가 되는 설명을 닫습니다. 띠깐나는 고따마 님을 두 번 부르며 두 정의가 다르다고 되받고, 세 베다에 정통한 이는 세 밝은 앎을 갖춘 이의 열여섯째 몫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수량으로 평가합니다. 마지막에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집에 사는 신도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묵상

띠깐나가 자신이 칭송하던 기준을 다시 평가하고 귀의를 선택하는 흐름에서, 새로 이해한 뒤 기꺼이 고쳐 본 판단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