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방법을 가르치겠다.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 말하겠다.”
“그러겠습니다, 부처님.” 수행자들이 부처님께 응답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음은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
첫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문다.
경에서 가르침을 펴는 장면과 첫 번째 요소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법을 가르침을 펴겠다고 예고하시고, 잘 듣고 마음에 새기라고 당부하십니다. 수행자들이 응답하자 부처님께서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신 뒤,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첫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무는 것으로 답을 여십니다.
묵상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라는 두 가지 당부 가운데 지금 더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 한 문장만 듣는 데 머물지, 그 말이 남기는 한 느낌을 살필지 선택할 수 있나요?
그는 바로 이 몸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합니다.
온몸 어느 곳도 그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목욕사나 제자가 청동 대야에 목욕 가루를 붓고
물을 조금씩 뿌려 반죽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덩이는 물기를 머금어 안팎에 고루 배지만 물이 흘러내리지는 않습니다.
첫째 깊은 집중(자나)이 몸에 미치는 작용과 그 작용을 보여 주는 비유입니다. 몸을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는 이 네 가지 움직임은 온몸 어디에도 빠짐없이 미칩니다.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몸 전체에 고르게 번지는 것입니다. 목욕사나 제자가 청동 대야에 담긴 가루에 물을 조금씩 뿌려 반죽하면 안팎이 고루 젖으면서도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 것처럼, 이 비유는 강렬함보다 몸 전체에 빠짐없이 배어들면서도 흩어지지 않는 충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안팎에 고루 배지만 물이 흘러내리지는 않는다’는 모습에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몸의 감각이 있나요? 편안함이나 긴장이 한 곳에만 있는지 넓게 퍼져 있는지 가볍게 살필 수 있나요?
목욕 가루 비유를 몸에 적용하고 첫 번째 바르게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닦음으로 결론짓습니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이 몸을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합니다.
온몸 어느 곳도 그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첫 번째 닦음입니다.
목욕 가루 비유를 수행자의 몸에 그대로 적용하며 첫째 요소를 마무리합니다. ‘그와 같이’ 몸을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여, 온몸 어디에도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됩니다. 이것이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첫 번째 닦음입니다. 첫째 요소는 깊은 집중에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몸 전체에 고르게 배는 것까지를 가리킵니다. 비유와 적용을 함께 보면, 몸의 어느 부분도 빠뜨리지 않는 충만과 흘러내리지 않는 안정이 같은 요소의 두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묵상
‘온몸 어느 곳도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는 반복을 읽을 때 몸의 어느 부분이 먼저 떠오르나요? 전부 편안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지금 알아차리기 쉬운 한 부분과 잘 느껴지지 않는 한 부분을 구분할 수 있나요?
또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가라앉아 …
둘째 깊은 집중에 들어 머뭅니다.
그는 바로 이 몸을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합니다.
온몸 어느 곳도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둘째 요소의 깊은 집중과 몸의 작용입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가라앉으면서 둘째 깊은 집중에 들어갑니다. 몸을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는 모습은 첫째 요소와 같지만, 이번에는 희열과 행복이 생기는 자리가 떠남이 아니라 마음이 한곳에 모인 데서 옵니다. 이 차이는 이어지는 못 비유에서, 밖에서 흘러드는 물이 아니라 안에서 솟는 샘물로 그려집니다. 수행이 나아가면서 몸을 채우는 행복의 바탕이 바깥 조건에서 더 안쪽의,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로 옮겨 갑니다.
묵상
‘마음이 한곳에 모인 데서 생긴’이라는 말이 앞의 ‘떠남에서 생긴’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두 상태를 실제로 경험했는지 시험하지 않고, 편안함이 바깥 조건보다 안쪽의 모임에서 온 듯했던 순간이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깊고 샘물이 솟는 못에 동·서·북·남 어느 쪽에도 물길이 없고,
때맞춰 비도 내리지 않지만, 그 못에서 찬 물줄기가 솟아
못을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져
어느 곳도 찬물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몸을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뜨려,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두 번째 닦음입니다.
둘째 깊은 집중의 비유와 적용, 마무리입니다. 깊고 샘물이 솟는 못에는 동·서·북·남 어느 쪽에도 물이 흘러드는 길이 없고 때맞춘 비도 내리지 않지만, 못 안에서 솟는 찬 물줄기가 못 전체를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해 빈 곳이 없게 합니다. 수행자도 같은 네 가지 움직임으로 몸 전체를 마음이 한곳에 모인 데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채운다는 말이 되풀이됩니다. 수행상 둘째 요소는 안에서 솟아오르는 모임이 몸을 고르게 적시는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묵상
사방의 물길이나 비가 아니라 못 안에서 솟는 찬물이라는 비유가 어떻게 들리나요? 바깥에서 무언가를 더 얻기보다 이미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자원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나요?
셋째 요소의 깊은 집중과 몸의 작용입니다. 희열이 사라지면서 셋째 깊은 집중에 들어가고, 몸을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게 하여 온몸 어디에도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됩니다. 다만 이번에 몸을 채우는 것은 희열 없는 행복입니다. 이어지는 연꽃 비유는 물속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나오지 않은 채 잠긴 꽃이 뿌리부터 끝까지 찬물에 젖는 모습으로 이 고른 충만을 보여 줍니다.
묵상
‘희열 없는 행복’이라는 표현이 강한 들뜸 없이도 가능한 편안함을 떠올리게 하나요? 특별한 상태를 성취했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조용해서 놓치기 쉬운 편안함 한 가지가 지금 있나요? 없다면 지금 숨을 한 번 천천히 내쉬며 그런 편안함이 올 수 있는지 느껴 보시겠어요?
수행자들이여, 청련·홍련·백련 못의 어떤 꽃들은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나오지 않은 채 물속에서 자랍니다.
그 꽃들은 끝에서 뿌리까지 찬물에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져
어느 곳도 찬물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몸을 희열 없는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뜨려,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세 번째 닦음입니다.
셋째 깊은 집중의 비유와 적용, 마무리입니다. 청련·홍련·백련 세 가지 꽃은 물에서 나고 자라 물 위로 나오지 않은 채 물속에서 자랍니다. 그 꽃은 끝에서 뿌리까지 찬물에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지며 빈 곳이 없습니다. 수행자의 몸도 이와 같이 희열 없는 행복으로 적시고 흠뻑 적시고 채우고 두루 퍼져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됩니다. 들뜬 희열 없이도 삶의 바탕부터 끝까지 고르게 스미는 행복을 물속 연꽃이 보여 줍니다.
묵상
물속에서 자란 꽃이 끝에서 뿌리까지 찬물에 젖는 그림에서 어떤 감각이 떠오르나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조용히 받쳐 주는 편안함이 지금 삶의 어느 부분에 있나요?
넷째 요소의 깊은 집중과 몸의 충만입니다. 행복마저 내려놓으면서 넷째 깊은 집중에 들어갑니다. 앞의 세 요소에서는 희열과 행복이 몸을 채웠지만, 여기서는 맑고 깨끗한 마음이 몸을 두루 채웁니다. 앉은 채로 온몸 어디에도 그 맑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흰 천 비유는 이 맑음이 머리까지 몸 전체를 덮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수행상 넷째 요소는 맑은 마음이 몸 전체에 고르게 머무는 상태로 그려집니다.
묵상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몸을 두루 채운 채 앉아 있다’는 문장을 읽을 때 자세나 호흡에서 한 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지금 있는 흐림과 선명함을 함께 인정할 수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흰 천으로 머리까지 감싸고 앉아
온몸 어느 곳도 흰 천이 닿지 않은 데가 없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로 이 몸을 두루 채운 채 앉아
온몸 어느 곳도 그 마음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네 번째 닦음이다.
넷째 깊은 집중의 비유와 적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흰 천으로 머리까지 몸을 감싸고 앉으면 몸 어디에도 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수행자도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몸을 두루 채우고 앉아, 온몸 어디에도 그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네 번째 닦음입니다. 앞의 비유들이 물기와 찬물로 몸 안에 스미는 충만을 그렸다면, 흰 천은 머리까지 빠짐없이 감싸는 밝고 균일한 덮임을 보여 줍니다. 마음의 맑음과 몸 전체가 따로 있지 않고 하나로 확인되는 것이 이 넷째 요소입니다.
묵상
머리까지 흰 천으로 감싸 온몸에 닿는 그림이 편안함, 답답함, 혹은 다른 느낌을 일으키나요? 정해진 반응을 가져야 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지금 몸의 경계를 한꺼번에 느끼기 어렵다면 천이 닿는 한 부분만 상상해 볼 수 있나요? 지금 상상이 잘 안 돼도, 몸에 무언가 닿아 있다는 느낌 하나만 떠올려도 충분해요.
또 수행자들이여, 수행자에게 되돌아보는 모습은 잘 붙잡히고,
잘 마음에 새겨지고, 잘 간직되며, 지혜로 잘 꿰뚫린다.
수행자들이여, 마치 한 이가 다른 이를 되돌아보거나,
선 이가 앉은 이를, 앉은 이가 누운 이를 되돌아보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수행자에게 되돌아보는 모습은 잘 붙잡히고,
잘 마음에 새겨지고, 잘 간직되며, 지혜로 잘 꿰뚫린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닦는 다섯 번째 닦음이다.
다섯 번째 요소는 앞 네 깊은 집중의 몸 채움과 달리 되돌아보는 모습(빳짜웩카나니밋따)을 다룹니다. 그것은 잘 붙잡히고, 잘 마음에 새겨지고, 잘 간직되고, 지혜로 잘 꿰뚫리는 네 가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비유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봄, 선 이가 앉은 이를 봄, 앉은 이가 누운 이를 봄의 세 관계가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자세를 보는 장면으로 그려집니다. 수행상 다섯째 요소는 경험한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를 분명히 되돌아볼 수 있는 지혜의 관찰을 더합니다.
묵상
‘잘 붙잡고, 마음에 새기고, 간직하고, 지혜로 꿰뚫는다’는 네 표현 가운데 지금의 경험을 돌아볼 때 가까운 것이 있나요? 완벽히 기억하거나 분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방금 지나간 한 감각을 짧게 되돌아볼 수 있나요?
다섯 요소로 바르게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것을 닦아 직접 알아 실현할 것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이와 같이 닦고 많이 닦은 수행자는,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것이든, 그 실현을 위해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른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
Evaṁ bhāvite kho, bhikkhave, bhikkhu ariye pañcaṅgike sammāsamādhimhi evaṁ bahulīkate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ṁ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AN 5.28 빤짱기까 숫따 (다섯 갈래)
배경
다섯 요소를 모두 설명한 뒤 그 결과를 여는 문장입니다. 조건은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이 이와 같이 닦이고 많이 닦였다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것에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삭키밥바따)에 이르되, 그 영역이 있을 때에만 그렇다는 한정이 붙습니다. 이어지는 비유와 실제로 이루는 내용들은 이 문장을 다시 보여 주거나 더 풀어냅니다. 수행상 집중은 알맞은 영역에서 마음을 기울여 직접 실현할 수 있는 준비와 역량으로 설명됩니다.
묵상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한정은 무엇을 서두르지 않게 하나요? 마음을 기울이면 무엇이든 즉시 된다고 기대하기보다, 지금 실제로 가능한 범위 한 가지를 알아볼 수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받침 위 물동이가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
까마귀도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하자.
힘센 사람이 어느 쪽으로든 기울이면 물이 나오겠는가?”
“그러겠습니다, 부처님.”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이와 같이 닦고 많이 닦은 수행자는,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것이든, 그 실현을 위해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른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
다섯 요소를 많이 닦은 집중의 첫 준비성 비유와 문답입니다. 물동이는 받침 위에 있고 물이 가장자리까지 차며,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가득합니다. 힘센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든 기울이면 물이 나오는지 묻고 수행자들이 긍정합니다. 적용에서는 앞에서 나온 조건·마음 기울임·실현 역량·영역 한정이 모두 반복됩니다. 물이 가득하다는 조건과 실제로 기울이는 행위가 함께 있어야 흐릅니다. 수행상 이 비유는 쌓인 집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울일 수 있는 준비가 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가득 찬 물동이를 ‘어느 쪽으로든 기울인다’는 비유에서 준비와 방향 중 무엇이 더 눈에 들어오나요? 지금 충분히 채워졌는지 판단하기보다, 마음을 아주 조금 기울여 볼 수 있는 한 방향이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평평한 땅에 둑을 두른 네모난 연못이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 까마귀도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하자.
힘센 사람이 어느 쪽 둑이든 열면 물이 나오겠는가?”
“그러겠습니다, 부처님.”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이와 같이 닦고 많이 닦은 수행자는,
직접 알아 실현할 어떤 것이든 …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
두 번째 준비성 비유와 문답입니다. 연못은 평평한 땅에 있고 네모나며 둑으로 둘러싸이고, 가장자리까지 차서 까마귀가 마실 수 있습니다. 힘센 사람이 어느 쪽 둑이든 열면 물이 나오는지 묻고 같은 긍정 답을 받습니다. 수행상 물동이를 기울이는 비유에서 연못의 둑을 여는 비유로 규모가 커져도, 준비되어 있어야 흐른다는 점은 같습니다.
묵상
가득 찬 연못에서 ‘어느 쪽 둑이든 연다’는 말이 무엇을 떠올리게 하나요? 지금 안전하게 열어 볼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있나요, 아니면 아직 둑을 유지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느껴지나요?
수행자들이여, 좋은 평지 네거리에 준마를 맨 수레가 서 있고
채찍도 준비되어 있다고 하자.
숙련된 조련사이자 마부가 올라 왼손에 고삐, 오른손에 채찍을 잡고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만큼 앞으로도 뒤로도 몰 것이다.
그와 같이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다섯 요소의 바른 집중을
이와 같이 닦고 많이 닦은 수행자는,
직접 알아 실현해야 할 어떤 것이든, 그 실현을 위해 마음을 기울이면
그때그때 실현할 역량에 이른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
세 번째 준비성 비유와 적용입니다. 장소는 좋은 평지의 네거리이고, 준마를 맨 수레와 채찍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숙련된 조련사이자 마부는 수레에 올라 왼손으로 고삐, 오른손으로 채찍을 잡고 원하는 곳·원하는 만큼 앞이나 뒤로 몹니다. 왼손의 고삐와 오른손의 채찍, 앞으로 모는 것과 뒤로 모는 것이 나란히 나옵니다. 적용에서는 다섯 요소를 닦고 많이 닦음, 실현할 것에 마음을 기울임, 그때그때의 역량, 영역의 한정이 돌아옵니다. 수행상 준비된 힘은 숙련된 조절 아래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유연성입니다.
묵상
왼손의 고삐와 오른손의 채찍, 전진과 후진이라는 짝 가운데 지금 더 필요한 조절은 무엇인가요? 원하는 방향을 정하기 전에 속도만 살펴볼 수 있나요?
원한다면 여러 신통과 인간·하늘 세계의 멀고 가까운 소리를 직접 실현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그가 원한다면 ‘여러 신통을 경험하리라.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고 … 브라흐마의 세계까지 몸으로 자유롭게 이르리라’ 하여,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실현할 수 있습니다.
또 원한다면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세계의 귀로
하늘 세계와 인간의 두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를 들으리라’ 하여,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실현할 수 있습니다.
So sace ākaṅkhati: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aveyyaṁ—ekopi hutvā bahudhā assaṁ …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So sace ākaṅkhati: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eyyaṁ—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ā’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AN 5.28 빤짱기까 숫따 (다섯 갈래)
배경
세 가지 준비성 비유에 이어,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여러 신통을 부리는 것부터 브라흐마의 세계까지 몸으로 자유롭게 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세계의 귀로 하늘과 인간의 소리를 멀든 가깝든 듣는 것입니다. 둘 다 ‘원한다면’이라는 말과 함께,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이룰 수 있다는 말로 끝납니다. 수행상 이 목록은 조건부 가능성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두 항목이 모두 ‘원한다면’으로 시작하고 ‘영역이 있을 때마다’로 한정되는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특별한 능력을 얻었는지 평가하기보다, 바람과 실제 가능한 범위를 구분하는 데 이 두 조건이 어떤 도움을 주나요?
세 번째 성취인 다른 마음을 아는 직접 앎의 전반입니다. 조건은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둘러보아 알아보는 것입니다. 탐냄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위축된 마음과 산란한 마음까지 짝을 지어 봅니다. 이 말은 마음의 상태를 좋은 사람·나쁜 사람으로 나누지 않고, 지금 있는 그 마음 그대로를 안다는 뜻입니다.
묵상
탐냄·성냄·어리석음과 위축·산란의 이름을 읽을 때 지금 가볍게 알아볼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있나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추측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지금 이 가운데 하나라도 또렷이 느껴진다면, 그 느낌을 그대로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다른 마음을 아는 목록의 후반과 결론입니다. 큰 마음과 크지 않은 마음,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과 없는 마음, 마음이 한곳에 모인 마음과 모이지 않은 마음, 풀려난 마음과 풀려나지 않은 마음이라는 네 쌍을 차례로 듭니다. 마지막에는 영역 한정과 실현 역량이 돌아와 전체 마음 목록을 닫습니다.
여러 과거 삶을 기억하고 하늘 세계의 눈으로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아는 두 성취입니다.
그가 원한다면 ‘한 생, 두 생 … 모습과 세부를 갖춘 여러 과거 삶을 기억하리라’ 하여,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실현할 수 있습니다.
또 원한다면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하늘 세계의 눈으로 …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알리라’ 하여,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실현할 수 있습니다.
So sace ākaṅkhati: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eyyaṁ,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So sace ākaṅkha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p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앙굿따라 니까야AN 5.28 빤짱기까 숫따 (다섯 갈래)
배경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입니다. 둘 다 ‘그가 원한다면’이라는 말과 함께,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이룰 수 있다는 같은 말로 끝납니다. 과거 삶의 기억은 한 생, 두 생에서 모습과 세부를 갖춘 여러 삶까지 이어지고, 하늘 세계의 눈은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눈으로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곳을 아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수행상 이 두 앎도 닦인 집중·원함·알맞은 영역이라는 조건 아래 제시됩니다.
묵상
과거의 삶과 존재들이 행위에 따라 가는 것을 안다는 두 항목이 모두 조건문으로 놓인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직접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흘러드는 것이 다한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직접 실현하는 결론입니다.
그가 원한다면 ‘흘러드는 것이 다하여 흘러드는 것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들어 머물겠다’ 하여,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실현할 수 있다.”
So sace ākaṅkhati: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ti.
앙굿따라 니까야AN 5.28 빤짱기까 숫따 (다섯 갈래)
배경
여섯 번째 성취이자 경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가 원한다면’이라는 말 뒤에, 흘러드는 것이 다함과 그로 인한 마음의 풀려남, 지혜의 풀려남이 차례로 나옵니다. 실현은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들어 머무는 것으로 말해집니다. 마지막에도 다른 것들과 똑같이 영역이 있을 때마다 실현할 수 있다는 한정이 붙습니다. 다섯 요소의 집중이 여는 성취 목록은 흘러드는 것이 다한 두 풀려남으로 끝납니다.
묵상
목록이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함’으로 닫히는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직접 확인 가능한 작은 사실과 아직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