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은 부처님과 아누룻다 님이 서로 다른 나라의 숲에 머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박가국 숫숫마라기라의 베사깔라 숲 사슴동산에, 아누룻다는 쩨띠국 동쪽 대숲에 있습니다. 아누룻다가 홀로 물러나 있을 때 마음속 생각이 일어났다는 마지막 문장이 다음의 일곱 판단을 엽니다. 여기서는 아직 그 생각의 내용이나 부처님의 평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두 인물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뒤에서 부처님이 마음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찾아오는 장면을 돋보이게 하며, 홀로 있음은 목록 가운데 셋째 생각과도 이어집니다.
욕구가 적음부터 지혜로움까지, 각각 긍정과 부정을 짝지은 일곱 가지 큰 사람의 사유가 이어집니다.
“욕구가 적은 이의 가르침이지,
많은 이의 가르침이 아니다.
만족하는 이를 위한 것이지, 불만족하는 이를 위한 게 아니다.
홀로 떨어진 이를 위한 것이지, 무리를 즐기는 이를 위한 게 아니다.
힘쓰는 이를 위한 것이지, 게으른 이를 위한 게 아니다.
마음챙김을 세운 이를 위한 것이지, 잊은 이를 위한 게 아니다.
마음이 모인 이를 위한 것이지, 흩어진 이를 위한 게 아니다.
지혜로운 이를 위한 것이지, 지혜가 모자란 이를 위한 게 아니다.”
아누룻다의 마음에 처음 떠오른 일곱 판단입니다. 바라는 것이 적음, 만족, 홀로 떨어져 있음, 힘씀을 일으킴, 마음챙김을 세움, 마음이 모임, 지혜로움이 차례로 놓입니다. 각 항목은 “이 가르침은 이런 이를 위한 것이지, 그 반대인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긍정과 부정의 짝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따라서 많은 바람·불만족·무리 즐김·게으름·잊음·흩어짐·지혜 부족이라는 반대 방향까지 함께 드러내는 생각입니다. 뒤에서 부처님은 이 일곱을 그대로 인정한 뒤 여덟째를 더합니다.
묵상
긍정과 부정이 짝을 이루는 일곱 항목 가운데 지금 한 쌍만 천천히 읽는다면 어느 쌍을 고르고 싶나요?
부처님께서 아누룻다의 사유를 아시고 눈앞에 나타나시며, 아누룻다가 자리에 앉자 그 생각을 거듭 칭찬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누룻다 님의 마음속 생각을 아셨다.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박가국에서 사라져 쩨띠국 동쪽 대숲의 아누룻다 앞에 나타나셨다.
부처님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고,
아누룻다는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아누룻다여.
아누룻다여, 그대가 그런 큰 사람의 생각을 한 것은 참으로 훌륭하다.”
부처님은 멀리 떨어진 아누룻다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는 것처럼 빠르게 한 숲에서 사라져 다른 숲의 아누룻다 앞에 나타나십니다. 부처님이 자리에 앉으시고, 아누룻다가 절한 뒤 한쪽에 앉아 말씀을 듣습니다. 부처님은 “훌륭하다”를 두 번 되풀이하고 아누룻다를 두 차례 부르며, 그의 생각을 ‘큰 사람의 생각’이라고 확인합니다. 이 칭찬은 뒤에 되풀이될 일곱 항목과 새로 더해질 여덟째 항목의 도입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신통과 실제로 전하는 가르침이 한 장면에 함께 나타납니다.
묵상
부처님이 생각을 알아차린 일, 먼 곳에서 찾아온 일, “훌륭하다”를 거듭한 일 가운데 어느 장면이 가장 또렷한가요?
부처님이 아누룻다의 일곱 생각을 처음과 같은 순서로 되풀이하는 자리입니다. 처음의 바라는 것이 적음과 마지막의 지혜로움 사이에는 만족, 홀로 떨어져 있음, 힘씀, 마음챙김, 마음이 모임이라는 다섯 항목이 같은 긍정·부정의 짝으로 다시 나옵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은 줄였습니다. 부처님은 일곱 전체를 그대로 인정합니다.
묵상
같은 일곱 항목을 부처님이 그대로 되풀이했다는 점은 처음 목록을 읽을 때와 어떤 차이를 만드나요?
부처님께서 생각의 번짐을 즐기지 않는 여덟째 사유를 더하고, 여덟 사유를 지닐 때 첫째 깊은 집중에 들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누룻다여, 이 여덟째 큰 사람의 생각도 하여라.
‘이 가르침은 생각의 번짐이 없음을 즐기고 기뻐하는 이를 위한 것이지,
생각을 번지게 함을 즐기고 기뻐하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하면,
그러면 아누룻다여, 원하는 대로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며, 떠남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머물 것이다.”
부처님은 아누룻다의 일곱 생각에 여덟째를 더합니다. 생각을 끝없이 번지게 하는 일을 즐기지 않고, 그 번짐이 없는 쪽을 즐기고 기뻐하는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라는 긍정과 부정의 대조입니다. 이어 여덟 가지 생각을 할 때 원하는 대로 첫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머물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깊은 집중은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것들에서 벗어나고,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과 떠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갖습니다. 여덟째 생각과 그 결과인 첫 번째 깊은 집중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생각이 번지는 쪽을 즐기는 것과 번짐이 없는 쪽을 즐기는 것의 대비에서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차이가 있나요?
여덟 사유를 지닌 아누룻다가 원할 때 생각의 두 작용이 가라앉은 두 번째 깊은 집중과 평온한 세 번째 깊은 집중에 머뭅니다.
“아누룻다여, 큰 사람의 여덟 생각을 하면,
아누룻다여, 원하는 대로 생각의 두 작용이 가라앉고,
내적 맑음과 마음의 하나됨이 있으며 그 두 작용은 없고,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머물 것이다.
아누룻다여, 여덟 생각을 하면, 아누룻다여, 원하는 대로
희열이 빛바래 평정하고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지니며,
몸으로 행복을 느껴 성자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림이 있어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깊은 집중에 머물 것이다.”
Yato kho tvaṁ, anuruddha, ime aṭṭha mahāpurisavitakke vitakkessasi, tato tvaṁ, anuruddha, yāvadeva ākaṅkhissasi,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issasi. Yato kho tvaṁ, anuruddha, ime aṭṭha mahāpurisavitakke vitakkessasi, tato tvaṁ, anuruddha, yāvadeva ākaṅkhissasi,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issas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issas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issasi.
앙굿따라 니까야AN 8.30 아누룻다마하위딱까 숫따 (아누룻다의 큰 생각)
배경
첫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이어 두 번째와 세 번째 깊은 집중이 각각 완전한 문장으로 제시됩니다. 두 번째에서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가라앉고, 내면의 맑음과 마음의 하나됨, 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습니다. 세 번째에서는 희열이 빛바래며 평온과 마음챙김, 분명한 앎을 지니고 몸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성자들은 이 상태를 “평온하고 마음챙김이 있어 행복하게 머문다”고 부릅니다. 두 단계 모두, 여덟 생각을 지닌 아누룻다가 원할 때 들어가 머문다는 점은 같습니다.
묵상
두 번째 깊은 집중의 “마음의 하나됨”과 세 번째 깊은 집중의 “평온하고 마음챙김이 있음” 중 어느 표현이 더 선명하게 들리나요?
여덟 사유를 지닌 아누룻다가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평온과 마음챙김이 맑은 네 번째 깊은 집중에 머뭅니다.
“아누룻다여, 그대가 이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하면,
그러면 아누룻다여, 원하는 대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그보다 앞서 기쁨과 근심도 사라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알아차림이 맑은
네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머물 것이다.”
Yato kho tvaṁ, anuruddha, ime aṭṭha mahāpurisavitakke vitakkessasi, tato tvaṁ, anuruddha, yāvadeva ākaṅkhissasi,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issasi.
앙굿따라 니까야AN 8.30 아누룻다마하위딱까 숫따 (아누룻다의 큰 생각)
배경
네 번째 깊은 집중(자나)은 앞의 세 깊은 집중과 같은 틀로 이어지지만, 한 문장 안에 고유한 상태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그보다 앞서 기쁨과 근심이 사라졌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그 바탕에서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맑아집니다. “원하는 대로”라는 말은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한다는 앞선 조건과 함께 놓입니다. 이 한 문장은 네 깊은 집중의 마지막 단계를 마치고, 다음부터 네 가지 생활 필수품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옮겨 갑니다.
묵상
즐거움·괴로움과 기쁨·근심이 차례로 사라진 뒤 남는 “평온으로 마음챙김이 맑음”을 어떻게 들었나요?
여덟 사유와 네 깊은 집중을 갖춘 아누룻다에게 누더기 옷은 갖가지 빛깔의 옷으로 가득한 상자처럼 여겨집니다.
“아누룻다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하고
이 현세의 행복한 머묾인 네 가지 높은 깊은 집중(자나)들을
마음껏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얻는다면,
집주인이나 그 아들의 상자가 갖가지 빛깔의 옷으로 가득하듯,
그러면 아누룻다여, 누더기 옷도 만족하여 머무는 그대에게
즐거움과 흔들림 없음,
편안한 머묾과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어감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여덟 생각과 네 가지 높은 깊은 집중(자나)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게 얻는다는 공통 조건 뒤, 첫 번째 필수품인 옷의 비유가 나옵니다. 집주인이나 그 아들의 상자에는 갖가지 빛깔의 옷이 가득하지만, 만족하여 머무는 아누룻다에게는 버려진 천을 주워 만든 누더기 옷도 그처럼 여겨집니다. 결론은 즐거움·흔들리지 않음·편안한 머묾·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어감이라는 네 방향을 모두 말합니다. 만족은 수행의 목적과 연결해 물건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묵상
갖가지 빛깔의 옷 상자와 누더기 옷을 나란히 놓은 비유에서 무엇이 가장 대비되어 보이나요?
여덟 사유와 네 깊은 집중을 갖춘 아누룻다에게 얻은 한입 음식은 좋은 쌀밥과 여러 반찬처럼 여겨집니다.
“아누룻다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하고
현세 행복의 높은 네 깊은 집중(자나)을
마음껏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얻는다면,
집주인이나 그 아들이 검은 알을 골라낸 쌀밥을
여러 국과 여러 반찬과 함께 먹는 것처럼,
그러면 아누룻다여, 음식을 얻으러 다녀 얻은 한입 음식도 만족하여 머무는 그대에게
즐거움과 흔들림 없음, 편안한 머묾과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어감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옷에 이어 음식의 비유가 같은 조건과 같은 네 가지 결론으로 반복됩니다. 집주인이나 그 아들이 먹는 음식은 검은 알을 골라낸 좋은 쌀밥에 여러 국과 여러 반찬을 갖춘 식사입니다. 이에 견주어 아누룻다가 음식을 얻으러 다니며 받는 한입 음식이 놓입니다. 여덟 생각과 네 깊은 집중(자나)을 지니고 만족하여 머물 때, 그 소박한 음식도 즐거움과 흔들리지 않음, 편안한 머묾과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어감을 돕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받은 음식을 어떤 목적과 만족 속에서 대하는지가 중심입니다.
묵상
좋은 쌀밥과 여러 반찬, 음식을 얻으러 다녀 얻은 한입 음식의 대비를 읽으며 “만족하여 머문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두 식사의 차이보다 “만족하여 머문다”는 마음이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보세요.
여덟 사유와 네 깊은 집중을 갖춘 아누룻다에게 나무 아래 거처는 바람을 막고 문과 창을 닫은 집처럼 여겨집니다.
“아누룻다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하고
현세 행복의 높은 네 깊은 집중(자나)을
마음껏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얻는다면,
집주인이나 그 아들의 높은 집이 안팎으로 바르고,
바람을 막으며 문빗장을 잘 걸고 창을 닫은 것처럼,
그러면 아누룻다여, 나무 아래 거처도 만족하여 머무는 그대에게
즐거움과 흔들림 없음, 편안한 머묾과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어감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셋째 비유는 거처를 다룹니다. 집주인이나 그 아들의 높은 집은 안팎을 바르고 바람이 들지 않으며, 문빗장이 잘 맞고 창이 닫혀 있습니다. 그와 달리 아누룻다의 거처는 나무 아래이지만, 앞과 같은 조건을 갖추고 만족하여 머물면 그 집처럼 여겨집니다. 옷과 음식에서 반복된 즐거움·흔들리지 않음·편안한 머묾·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어감의 네 결론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비유는 소박한 거처가 수행의 방향 안에서 충분하게 경험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묵상
바람을 막고 문과 창을 닫은 집과 나무 아래 거처의 대비에서 안전함과 만족 중 어느 말이 먼저 떠오르나요? 지금의 지금 머무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는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가만히 느껴보아도 좋아요.
여덟 사유와 네 깊은 집중을 갖춘 아누룻다에게 풀을 깐 잠자리는 덮개와 베개를 갖춘 화려한 침상처럼 여겨집니다.
“아누룻다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하고
현세 행복의 높은 네 깊은 집중(자나)을
마음껏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얻는다면,
집주인이나 그 아들의 침상이 양털 덮개와 흰 덮개,
꽃무늬 덮개와 영양 가죽, 차양과 붉은 베개를 갖춘 것처럼,
그러면 아누룻다여, 풀을 깐 잠자리도 만족하여 머무는 그대에게
즐거움과 흔들림 없음, 편안한 머묾과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어감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거처에 이어 잠자리의 세부가 나옵니다. 비교되는 침상은 여러 종류의 양털과 흰 덮개, 꽃무늬 덮개, 귀한 영양 가죽, 위쪽 차양과 양옆의 붉은 베개까지 갖춥니다. 아누룻다의 풀 깔개는 겉모습으로는 정반대이지만, 여덟 생각과 네 깊은 집중(자나)을 갖추고 만족하여 머무는 이에게 같은 네 방향을 돕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밀한 물품 목록은 화려한 침상과 소박한 풀 깔개의 대비를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동시에 결론의 반복은 옷·음식·거처·잠자리에서 만족의 작용이 일관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화려한 침상의 긴 물품 목록과 단순한 풀 깔개가 나란히 놓일 때 어느 쪽의 모습이 더 쉽게 그려지나요?
발효시킨 오줌으로 만든 약도 다섯 좋은 약처럼 여겨질 것이라 한 뒤, 부처님께서 다음 우기도 그 숲에 머물라 하시자 아누룻다가 응답합니다.
“아누룻다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하고
현세 행복의 높은 네 깊은 집중(자나)을
마음껏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얻는다면,
집주인이나 아들에게 버터기름·버터·기름·꿀·당밀 약이 있듯,
그러면 아누룻다여, 발효 오줌 약도 만족한 그대에게
즐거움·흔들림 없음·편안한 머묾·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듦을 위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아누룻다여, 다음 우기에도 여기 쩨띠국
동쪽 대숲에 머물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
아누룻다 님은 부처님께 응답하였다.
네 번째 필수품인 약의 비유와 두 사람의 대화 결말이 함께 이어집니다. 집주인의 약은 버터기름·버터·기름·꿀·당밀의 다섯 가지로 구체화되고, 이에 발효시킨 오줌으로 만든 소박한 약이 대비됩니다. 앞의 세 비유와 같은 조건과 네 결론이 반복된 뒤, 부처님은 아누룻다를 다시 불러 다음 우기에도 쩨띠국 동쪽 대숲에 머물라고 합니다. 아누룻다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라고 온전히 응답합니다. 약의 목록과 머물라는 부탁, 아누룻다의 수락이 한 장면에 이어지며, 가르침이 실제 생활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묵상
다섯 약의 목록, 소박한 약의 대비, 다음 우기에 머물라는 부탁과 수락 중 어느 부분이 가장 오래 남나요?
부처님께서 아누룻다에게 훈계한 뒤 원래 숲으로 돌아와 수행자들에게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사유를 설하겠다고 예고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누룻다에게 이렇게 훈계하신 뒤,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쩨띠국 동쪽 대숲에서 사라져 박가국의 사슴동산에 나타나셨다.
마련된 자리에 앉아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가르침으로 펴겠다.
잘 들어라. …”
아누룻다와의 대화를 마친 부처님은 앞서 찾아올 때와 같은 팔의 비유를 따라 동쪽 대숲에서 사라져 박가국 사슴동산으로 돌아옵니다. 마련된 자리에 앉은 뒤 청중을 수행자들로 바꾸어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을 가르침으로 펴겠다고 예고하고, 잘 들으라고 합니다. 끝에서 되풀이되는 인사말은 줄였습니다. 개인에게 준 가르침이 공동체 전체에게 다시 열리는 전환이며, 다음 질문과 여덟 답의 목록을 준비합니다.
묵상
아누룻다 한 사람에게 준 훈계가 수행자 공동체를 향한 가르침으로 옮겨 가는 흐름에서 무엇이 달라 보이나요?
무엇이 여덟 사유인지 묻고, 욕구가 적음부터 생각의 번짐이 없음까지 긍정과 부정의 여덟 답을 제시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이란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이 가르침은 바라는 것이 적은 이를 위한 것이지,
바라는 것이 많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
수행자들이여, 생각의 번짐이 없음을 즐기고 기뻐하는 이를 위한 것이지,
생각을 번지게 함을 즐기고 기뻐하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수행자들에게 무엇이 여덟 가지 큰 사람의 생각인지 묻고 곧바로 답합니다. 바라는 것이 적음, 만족, 홀로 떨어져 있음, 힘씀, 마음챙김, 마음이 모임, 지혜, 생각의 번짐이 없음을 즐김이라는 여덟 항목이며, 각각 반대 방향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는 부정이 붙습니다. 부처님은 각 답마다 수행자들을 부릅니다.
묵상
아누룻다의 생각에서 시작한 목록이 이제 수행자들에게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선언될 때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욕구가 적다는 첫 사유를 묻고, 여덟 덕목을 지녔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태도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욕구가 적은 이를 위한 가르침이지,
많이 바라는 이를 위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욕구가 적고·만족하고·홀로 있고·힘쓰고·
마음챙김을 세우고·마음이 모이고·지혜롭고·번짐 없음을 즐겨도,
남들이 자신을 그 각각의 사람으로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욕구가 적은 이를 위한 가르침이지,
많이 바라는 이를 위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말해졌다.”
첫째 사유인 욕구가 적음을 질문과 답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가 욕구가 적음부터 생각의 번짐이 없음을 즐김까지 여덟 덕목을 실제로 지녔더라도, 남들이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부정은 여덟 항목 각각에 붙어 있어, 드러나지 않은 덕이라는 뜻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처음의 선언을 다시 인용하고 마지막에 “이를 두고 말해졌다”고 닫는 반복 틀도 보존됩니다. 욕구가 적음은 소유뿐 아니라 자신의 수행자 이미지를 향한 욕구에도 적용됩니다.
묵상
좋은 성질을 지녔더라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설명에서 무엇이 가장 낯설거나 또렷한가요?
만족이라는 둘째 사유를 묻고, 어떤 옷·음식·거처·병든 때의 약을 얻든 만족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가르침은 만족하는 이를 위한 것이지,
만족하지 못하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어떤 옷과 얻어 온 음식과 거처,
병들었을 때 필요한 약품을 얻더라도 만족한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두고 ‘이 가르침은 만족하는 이를 위한 것이지,
만족하지 못하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졌다.”
둘째 사유인 만족을 네 가지 생활 필수품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는 어떤 것이든 얻은 옷, 얻어 온 음식, 거처, 병들었을 때 필요한 약품에 만족합니다. 앞에서 각각 화려한 물건과 소박한 물건을 견주었던 네 비유가 여기서는 한 문장 속 네 항목으로 모입니다. 처음의 긍정과 부정이 질문 앞에 나오고, 같은 문장이 설명 뒤에 다시 나와 “이를 두고 말해졌다”고 닫힙니다. 만족하지 못함이라는 반대말도 두 번 유지되어, 만족이 네 필수품을 대하는 구체적 태도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옷·음식·거처·약이라는 네 필수품 가운데 “어떤 것을 얻더라도 만족한다”는 말과 함께 읽기 어려운 것이 있나요?
홀로 떨어져 있음이라는 셋째 사유를 묻고, 여덟 부류의 방문자를 만나더라도 물러남으로 기운 대화를 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홀로 있는 이를 위한 가르침이지,
무리를 즐기는 이를 위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홀로 지내는 남성 수행자에게 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집에서 가르침을 따르는 남녀·
왕·대신·다른 수행자·그 제자들이 찾아온다.
그는 홀로 있음으로 기울고·향하고·흐르고·거기에 서며 떠남을 즐겨,
그들을 돌아가게 할 이야기만 한다.
수행자들이여, ‘홀로 있는 이를 위한 가르침이지,
무리를 즐기는 이를 위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말해졌다.”
홀로 지내는 남성 수행자에게 남성 수행자와 여성 수행자, 집에 사는 남녀, 왕과 왕의 대신, 다른 수행자와 그 제자라는 여덟 부류가 실제로 찾아옵니다. 그 속에서도 마음은 홀로 있음으로 기울고 향하고 흐르며, 홀로 있음에 서고 떠남을 즐깁니다. 그래서 돌아가게 하는 데 알맞은 이야기만 합니다. 방문자 목록과 마음의 네 방향, 대화의 목적이 한 설명 안에 이어지고, 처음과 마지막의 긍정·부정 반복이 이 의미를 묶습니다.
묵상
여덟 부류의 사람이 찾아오는데도 마음은 홀로 있음으로 기운다는 설명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눈에 띄나요?
힘씀을 일으킴이라는 넷째 사유를 묻고, 해로운 것을 버리고 선한 것을 갖추기 위해 굳세게 힘쓰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가르침은 힘을 내기 시작한 이를 위한 것이지,
게으른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해로운 것들을 버리고
선한 것들을 갖추기 위해 힘을 내어 머문다.
그는 굳세고 힘차게 노력하며,
선한 것들에 대한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두고 ‘이 가르침은 힘을 내기 시작한 이를 위한 것이지,
게으른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졌다.”
넷째 사유의 힘씀은 무엇을 위해 힘쓰는지와 어떤 방식으로 지속하는지를 함께 밝힙니다. 목적은 해로운 것들을 버리고 선한 것들을 갖추는 두 방향입니다. 방식은 굳셈, 힘찬 노력, 선한 것들에 대한 짐을 내려놓지 않음으로 세밀하게 이어집니다. 힘을 내기 시작한 이와 게으른 이의 대조는 설명 앞뒤에서 반복되고, 질문과 답도 한 흐름을 이룹니다. 여기서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말은, 선한 것을 기르는 책임을 중간에 내버리지 않는 힘씀의 끈기를 가리킵니다.
묵상
해로운 것을 버리는 방향과 선한 것을 갖추는 방향 가운데 지금 힘씀의 의미를 더 잘 보여 주는 쪽은 어느 쪽인가요?
마음챙김을 세움이라는 다섯째 사유를 묻고, 빼어난 마음챙김과 예리함으로 오래된 일과 말을 기억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가르침은 알아차림을 세운 이를 위한 것이지,
알아차림을 잊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알아차림을 지니고,
빼어난 알아차림과 예리함을 갖추어
오래전에 한 일과 오래전에 한 말을 기억하고 되새긴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두고 ‘이 가르침은 알아차림을 세운 이를 위한 것이지,
알아차림을 잊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졌다.”
다섯째 사유는 마음챙김을 기억의 작용으로 구체화합니다. 수행자는 마음챙김을 지니고 빼어난 마음챙김과 예리함을 갖추며, 오래전에 한 일과 오래전에 한 말을 기억하고 되새깁니다. “오래전에”라는 시간 표현은 일과 말에 각각 적용되고, 기억함과 거듭 기억함의 두 동작도 함께 놓입니다. 설명 앞뒤에는 마음챙김을 세운 이와 잊은 이의 대조가 되풀이됩니다. 이 대목에서 마음챙김은 이미 한 행동과 말을 잊지 않아 배움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묵상
오래전에 한 일과 오래전에 한 말을 기억하고 되새긴다는 설명에서 마음챙김의 어떤 면이 새롭게 보이나요?
마음이 모임이라는 여섯째 사유를 묻고, 감각적 욕망에서 떠나 첫 번째부터 네 번째 깊은 집중까지 머무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가르침은 마음이 모인 이를 위한 것이지,
마음이 흩어진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
네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머문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두고 ‘이 가르침은 마음이 모인 이를 위한 것이지,
마음이 흩어진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졌다.”
여섯째 생각인 마음의 모임은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깊은 집중(자나)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자세히 나온 네 깊은 집중 사이의 되풀이는 줄임표로 줄였습니다. 질문 앞과 결론에는 마음이 모인 이와 마음이 흩어진 이의 대조가 두 번 나옵니다. 집중은 네 깊은 집중의 연속과 연결되며, 질문과 답, 반복되는 결론이 하나의 설명을 이룹니다.
묵상
앞에서 자세히 들은 네 깊은 집중이 여기서는 짧게 줄여 다시 나올 때, “마음이 모인다”는 말이 어떻게 달라 보이나요?
지혜로움이라는 일곱째 사유를 묻고,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고귀하고 꿰뚫는 지혜로 괴로움의 바른 소멸에 이르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가르침은 지혜로운 이를 위한 것이지,
지혜가 모자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지혜롭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지혜, 고귀하고 꿰뚫으며
괴로움이 바르게 멎도록 이끄는 지혜를 갖춘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두고 ‘이 가르침은 지혜로운 이를 위한 것이지,
지혜가 모자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졌다.”
수행자는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지혜를 갖추며, 그 지혜는 고귀하고 꿰뚫고 괴로움이 바르게 멎도록 이끕니다. 두 방향을 함께 보고, 통찰의 성격과 목적까지 한 문장에 담습니다. 앞과 뒤에는 지혜로운 이와 지혜가 모자란 이의 대조가 반복됩니다. 지혜의 기준은 현상의 생겨남과 사라짐을 꿰뚫어 괴로움이 다하는 방향으로 이끄는가에 놓입니다.
묵상
지혜를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고 괴로움이 멎도록 이끄는 것”이라 한 설명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분명한가요?
생각의 번짐이 없음을 즐김이라는 여덟째 사유를 묻고, 그 번짐이 멎을 때 마음이 향하고 맑아지고 머물며 풀려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가르침은 생각의 번짐 없음을 즐기는 이를 위한 것이지,
생각의 번짐을 즐기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의 마음은 생각의 번짐이 멎는 데로 뛰어들고,
맑아지고, 굳게 머물고, 풀려난다.
수행자들이여, 이를 두고 ‘이 가르침은 생각의 번짐 없음을 즐기는 이를 위한 것이지,
생각의 번짐을 즐기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졌다.”
여덟째이자 마지막 사유는 생각의 번짐이 멎는 데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로 풀이됩니다. 마음은 그 멎음으로 뛰어들고, 맑아지고, 굳게 머물고, 풀려납니다. 네 동사는 방향을 잡는 시작부터 안정과 해방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만듭니다. 처음과 마지막에는 번짐이 없음을 즐기고 기뻐함과, 번지게 함을 즐기고 기뻐함의 대조가 완전히 반복됩니다. 생각을 불려 나가는 흐름이 멎는 데 마음이 기꺼이 향하고 거기서 해방되는 성향을 마지막 사유로 제시합니다.
묵상
마음이 번짐의 멎음으로 뛰어들고, 맑아지고, 머물고, 풀려난다는 네 움직임 중 어느 말이 가장 눈에 들어오나요?
아누룻다는 다음 우기에도 동쪽 대숲에 머물며 홀로 부지런히 닦아 출가 목적을 실현하고 완전히 깨달은 이가 된 뒤 게송을 읊습니다.
아누룻다는 다음 우기에도 동쪽 대숲에 머물렀다.
홀로 떨어져 게으름 없이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 머물던 그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집을 떠나는 그 목적,
위없는 거룩한 삶의 완성을 머지않아 스스로 알고
현세에서 실현해 들어 머물렀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이루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 상태는 없다”고 알았다.
아누룻다 님은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완전히 깨달음에 이른 그는 그때 이 게송들을 읊었다.
아누룻다는 부처님의 부탁대로 다음 우기에도 동쪽 대숲에 머뭅니다. 홀로 떨어져 게으름 없이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 수행한 그는, 집을 떠난 좋은 집안의 아들이 추구하는 위없는 거룩한 삶의 완성을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현세에서 실현합니다.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이루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 상태는 없다”는 네 선언이 성취를 명확히 합니다. 이어 그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그 뒤 게송을 읊었다고 전합니다. 앞의 약속이 실제 머묾과 완성으로 이어진 결말입니다.
묵상
다음 우기에 같은 숲에 머문 일과 네 문장으로 선언된 완성 가운데 무엇이 경의 결말을 더 또렷하게 하나요?
아누룻다는 자신의 사유를 아신 위없는 스승이 신통으로 찾아와 더 높은 가르침, 곧 생각의 번짐이 없음을 설했다고 노래합니다.
“나의 사유를 아시고
세상의 위없는 스승께서
마음으로 된 몸과 신통으로
나에게 다가오셨네.
내가 품은 사유에 따라
그보다 더 높은 것을 펴셨네.
생각의 번짐 없음을 즐기는 깨달은 이는
생각의 번짐 없음을 가르치셨네.”
“Mama saṅkappamaññāya, satthā loke anuttaro; Manomayena kāyena, iddhiyā upasaṅkami. Yathā me ahu saṅkappo, tato uttari desayi; Nippapañcarato buddho, nippapañcaṁ adesayi.
앙굿따라 니까야AN 8.30 아누룻다마하위딱까 숫따 (아누룻다의 큰 생각)
배경
아누룻다의 첫 두 게송은 앞의 사건을 자신의 목소리로 되돌아봅니다. 첫 게송에서 세상의 위없는 스승은 그의 사유를 알고, 마음으로 된 몸과 신통으로 다가옵니다. 둘째 게송에서는 스승이 아누룻다가 품었던 일곱 사유에 그보다 더 높은 것을 폈다고 노래합니다. 그 내용은 생각의 번짐 없음을 즐기는 깨달은 이가 생각의 번짐 없음을 가르쳤다는 여덟째 사유입니다. 앞서 전해진 이야기가 이 여덟 줄에 다시 담기고, 스승의 성향과 가르친 내용이 같은 말로 이어집니다.
묵상
아누룻다가 지난 일을 게송으로 되돌아볼 때 “내가 품은 사유보다 더 높은 것”은 어떻게 들리나요?
마지막 네 줄은 아누룻다의 실천과 성취를 간결하게 닫습니다. 그는 스승이 말한 가르침을 알았고, 그 가르침 안에서 기뻐하며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세 가지 앎에 이르렀으며 깨달은 이의 가르침을 완수했다고 선언합니다. 앞에서 말한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의 성취가 여기서는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확인됩니다. “알았다”에서 “그 안에 머물렀다”를 거쳐 “세 가지 앎에 이르렀다”와 “완수했다”로 진행하는 네 줄의 순서는, 들은 가르침이 이해와 지속적인 삶을 지나 완성에 이르는 흐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알기, 그 가르침 안에서 기뻐하며 머물기, 세 가지 앎에 이르기, 완수하기라는 네 줄 가운데 어느 움직임이 가장 오래 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