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왓차 숫따(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Mahāvacch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73

왓차곳따가 선·불선과 여섯 제자 무리의 성취를 듣고 출가해, 고요와 통찰을 닦아 아라한이 된다.

인용된 가르침 28구절

이 경을 2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왓차곳따가 부처님을 찾아오다 1구절

라자가하 대나무숲에서 유행 수행자 왓차곳따가 부처님과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 대나무숲의 다람쥐 먹이 주는 곳에 머무셨다. 그때 유행 수행자 왓차곳따가 부처님께 가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반갑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를 마친 뒤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말했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Atha kho vacchagotto paribbāja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vacchagotto paribbājako bhagavanta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경은 라자가하 대나무숲의 다람쥐 먹이 주는 곳을 밝힌 뒤, 유행 수행자 왓차곳따가 부처님을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반갑고 기억할 만한 대화를 마친 뒤 한쪽에 앉습니다. 그는 아직 집을 떠나지 않은 다른 전통의 수행자이며, 그 신분에 맞는 예법으로 인사합니다. 이 만남은 오랜 논의를 짧게 정리해 달라는 다음 질문과, 뒤에 이어질 귀의·집을 떠남·성취의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왓차곳따가 곧바로 논쟁하지 않고 먼저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는 순서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중요한 질문을 꺼내기 전에 관계와 자리를 가다듬었던 경험이 있나요?

2 선과 불선을 간략히 묻다 1구절

왓차곳따가 오랜 대화를 언급하며 선과 불선을 간략히 가르쳐 달라고 청하고 부처님께서 답을 시작하십니다.

“저는 오랫동안 고따마 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디 선한 것과 불선한 것을 간략히 가르쳐 주십시오.” “왓차여, 나는 그대에게 간략히도 가르칠 수 있고, 왓차여, 자세히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왓차여, 간략히 말하겠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내가 말하겠다.” “그러겠습니다, 부처님.” 왓차곳따가 답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dīgharattāhaṁ bhotā gotamena sahakathī. Sādhu me bhavaṁ gotamo saṅkhittena kusalākusalaṁ desetū”ti. “Saṅkhittenapi kho te ahaṁ, vaccha, kusalākusalaṁ deseyyaṁ, vitthārenapi kho te ahaṁ, vaccha, kusalākusalaṁ deseyyaṁ; api ca te ahaṁ, vaccha, saṅkhittena kusalākusalaṁ desessāmi. Taṁ suṇāhi, sādhukaṁ manasi 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o”ti kho vacchagotto paribbājako bhagavato paccassosi. Bhagavā etadavoca: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왓차곳따는 오랫동안 고따마 님과 함께 논의해 왔다고 말하며 선과 불선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고 청합니다. 부처님은 간략히도 자세히도 설명할 수 있다고 두 가능성을 밝힌 뒤, 이번에는 간략한 방식을 택합니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라는 청취 조건과 “내가 말하겠다”는 예고가 이어지고, 왓차곳따는 “부처님”이라는 말로 응답합니다. 질문·방식 선택·들을 준비·가르침이 시작되는 순서를 지켰습니다.

묵상

오랫동안 대화한 뒤 핵심을 간략히 듣고 싶다는 왓차곳따의 요청이 이해되나요? 지금 복잡하게 느껴지는 주제 하나를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가”라는 짧은 질문으로 다시 놓아 볼 수 있을까요?

3 세 가지 불선과 세 가지 선 1구절

욕심·성냄·어리석음과 그 셋의 없음을 불선과 선으로 서로 맞대어 밝힙니다.

“왓차여, 욕심은 불선하고 욕심 없음은 선하다. 왓차여, 성냄은 불선하고 성냄 없음은 선하다. 왓차여, 어리석음은 불선하고 어리석음 없음은 선하다. 왓차여, 이와 같이 세 가지가 불선하고 세 가지가 선하다.”

“Lobho kho, vaccha, akusalaṁ, alobho kusalaṁ; doso kho, vaccha, akusalaṁ, adoso kusalaṁ; moho kho, vaccha, akusalaṁ, amoho kusalaṁ. Iti kho, vaccha, ime tayo dhammā akusalā, tayo dhammā kusalā.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간략한 답의 첫 목록은 마음의 세 뿌리인 욕심·성냄·어리석음과, 그것이 없는 상태인 욕심 없음·성냄 없음·어리석음 없음을 서로 맞대어 놓습니다. 세 문장마다 불선과 선을 한 쌍으로 말한 뒤 “세 가지 불선, 세 가지 선”이라고 수량을 다시 닫습니다. 불선한 상태를 사람의 고정된 본성으로 부르지 않고, 무엇을 알아 버리고 어떤 반대 성질을 길러야 하는지 여섯 가지로 분명히 합니다.

묵상

욕심·성냄·어리석음과 그 없음의 세 쌍 가운데 지금 가장 알아보기 쉬운 하나가 있나요?

4 몸과 말의 다섯 불선과 삼감 1구절

살생부터 이간하는 말까지 다섯 행위와 각각을 삼가는 일을 불선과 선으로 짝짓습니다.

“왓차여, 살생은 불선하고 살생을 삼감은 선하다. 왓차여, 주지 않은 것을 취함은 불선하고 그것을 삼감은 선하다. 왓차여, 삿된 음행은 불선하고 그것을 삼감은 선하다. 왓차여, 거짓말은 불선하고 거짓말을 삼감은 선하다. 왓차여, 이간하는 말은 불선하고 이간하는 말을 삼감은 선하다.”

Pāṇātipāto kho, vaccha, akusalaṁ,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kusalaṁ; adinnādānaṁ kho, vaccha, akusalaṁ, adinnādānā veramaṇī kusalaṁ; kāmesumicchācāro kho, vaccha, akusalaṁ, kāmesumicchācārā veramaṇī kusalaṁ; musāvādo kho, vaccha, akusalaṁ, musāvādā veramaṇī kusalaṁ; pisuṇā vācā kho, vaccha, akusalaṁ, pisuṇāya vācāya veramaṇī kusalaṁ;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세 뿌리 뒤에는 열 가지 행위의 첫 다섯 쌍이 이어집니다. 몸의 행위인 살생·주지 않은 것 취함·삿된 음행 세 가지와 말의 행위인 거짓말·이간하는 말 두 가지입니다. 각 쌍은 “불선하다” 뒤에 바로 그 행위를 삼가는 것이 “선하다”로 짝 지어 놓입니다. 같은 동사를 한 번만 말하고 뭉뚱그리지 않아 다섯 행위와 다섯 삼감이 하나씩 짝지어 보입니다. 수행의 기준은 몸과 말에서 멈출 구체적인 경계를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묵상

다섯 행위 가운데 오늘 말이나 행동을 멈출 수 있었던 한 순간과 가까운 것이 있나요? 행동 자체와 그것을 삼가는 선택이 서로 다른 길로 놓인 점만 살펴볼까요?

5 나머지 다섯 쌍과 열 가지 결론 1구절

거친 말·쓸데없는 말·탐냄·악의·그릇된 견해와 반대 항목을 더해 열 가지를 완성합니다.

“왓차여, 거친 말은 불선하고 거친 말을 삼감은 선하다. 왓차여, 쓸데없는 말은 불선하고 그것을 삼감은 선하다. 왓차여, 욕심은 불선하고 욕심 없음은 선하다. 왓차여, 악의는 불선하고 악의 없음은 선하다. 왓차여, 그릇된 견해는 불선하고 바른 견해는 선하다. 왓차여, 이와 같이 열 가지가 불선하고 열 가지가 선하다.”

pharusā vācā kho, vaccha, akusalaṁ, pharusāya vācāya veramaṇī kusalaṁ; samphappalāpo kho, vaccha, akusalaṁ, samphappalāpā veramaṇī kusalaṁ; abhijjhā kho, vaccha, akusalaṁ, anabhijjhā kusalaṁ; byāpādo kho, vaccha, akusalaṁ, abyāpādo kusalaṁ; micchādiṭṭhi kho, vaccha, akusalaṁ sammādiṭṭhi kusalaṁ. Iti kho, vaccha, ime dasa dhammā akusalā, dasa dhammā kusalā.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앞의 다섯 쌍에 말의 나머지 두 가지인 거친 말과 쓸데없는 말, 마음의 세 가지인 욕심·악의·그릇된 견해가 더해집니다. 말의 두 가지는 삼감과 짝을 이루고, 마음의 세 가지는 욕심 없음·악의 없음·바른 견해와 맞섭니다. 마지막은 “열 가지”라는 말을 두 번 써 “열 가지 불선, 열 가지 선”이라고 전체 수량을 확인합니다. 몸 세 가지·말 네 가지·마음 세 가지의 행위 지도가 완성되며, 부처님의 간략한 답이 마음의 뿌리에서 구체적인 선택으로 내려옵니다.

묵상

거친 말·쓸데없는 말·욕심·악의·그릇된 견해 가운데 지금 알아보기 쉬운 하나가 있나요? 그 항목이 나타날 때 잠시 멈출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6 갈망을 뿌리째 버린 완전히 깨달은 이 1구절

갈망이 다시 생기지 않게 뿌리 뽑혔을 때 수행자가 완전히 깨달은 이이며 해야 할 일을 마쳤다고 밝힙니다.

“왓차여, 수행자의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버려져 뿌리 뽑히고 야자나무 밑동처럼 되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다. 흘러드는 것을 다하고 거룩한 삶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참된 목적에 이르렀으며, 존재의 족쇄를 다하고 바른 완전한 앎으로 풀려났다.”

Yato kho, vaccha, bhikkhuno taṇhā pahīnā hoti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ṅkatā āyatiṁ anuppādadhammā, so hoti bhikkhu arahaṁ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ṁyojano sammadaññāvimutt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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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열 가지 선과 불선을 밝힌 뒤 부처님은 완결의 기준을 갈망이 사라짐으로 제시합니다. 갈망은 버려지고 뿌리 뽑혀, 다시 자라지 않는 야자나무 밑동처럼 됩니다. 그 결과를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흘러드는 것이 다함, 거룩한 삶의 완성, 할 일의 마침, 짐을 내려놓음, 참된 목적 도달, 존재 족쇄가 다함, 바른 완전한 앎으로 풀려남이라는 여덟 표현으로 잇습니다. 여덟 표현을 한꺼번에 들어 같은 상태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 줍니다.

묵상

“짐을 내려놓음”과 “할 일을 마침” 가운데 어느 표현이 지금 더 가까이 들리나요?

7 마음이 풀려나고 지혜로 벗어난 남성 수행자는 오백 명을 훨씬 넘는다 1구절

왓차곳따가 완전한 풀려남을 이룬 수행자 제자가 있는지 묻자 부처님께서 오백보다 훨씬 많다고 답하십니다.

“고따마 님은 제쳐 두겠습니다. 흘러드는 것이 다하여 흘러듦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해 머무는 수행자 제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그런 수행자 제자는 백 명만이 아니고 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도 아니며, 그보다 훨씬 더 많다.”

“Tiṭṭhatu bhavaṁ gotamo. Atthi pana te bhoto gotamassa ekabhikkhupi sāvako yo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ī”ti? “Na kho, vaccha, ekaṁyeva sataṁ na dve satāni na tīṇi satāni na cattāri satāni na pañca satāni, atha kho bhiyyova ye bhikkhū mama sāvakā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왓차곳따는 부처님 자신의 성취는 제쳐 두고 제자에게도 같은 결과가 있는지 묻기 시작합니다. 첫 대상은 수행자이며, 흘러드는 것이 다하여 흘러듦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해 머무는지를 묻습니다. 부처님은 단 한 명이라는 질문에 백·이백·삼백·사백·오백이라는 다섯 수를 차례로 부정하고 “그보다 훨씬 더 많다”고 답합니다. 막연히 많다고만 하지 않아 집을 떠난 남성 제자에게 실제 완전한 풀려남이 반복되었음을 밝힙니다.

묵상

한 명이라도 있는지 묻는 질문에 오백보다 훨씬 많다고 답하는 크기의 차이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가르침이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만 살펴볼까요?

8 마음이 풀려나고 지혜로 벗어난 여성 수행자도 오백 명을 훨씬 넘는다 1구절

여성 수행자 제자에게도 같은 두 풀려남을 실현한 이가 오백보다 훨씬 많다고 답하십니다.

“고따마 님과 남성 수행자들은 제쳐 두겠습니다. 흘러드는 것이 다하여 흘러듦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해 머무는 여성 수행자 제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그런 여성 수행자 제자는 백 명만이 아니고 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도 아니며, 그보다 훨씬 더 많다.”

“Tiṭṭhatu bhavaṁ gotamo, tiṭṭhantu bhikkhū. Atthi pana bhoto gotamassa ekā bhikkhunīpi sāvikā yā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ī”ti? “Na kho, vaccha, ekaṁyeva sataṁ na dve satāni na tīṇi satāni na cattāri satāni na pañca satāni, atha kho bhiyyova yā bhikkhuniyo mama sāvikā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둘째 질문은 고따마 님과 남성 수행자들을 제쳐 두고 여성 수행자 제자에게로 갑니다. 질문의 성취 기준은 앞과 똑같이 흘러드는 것이 다함, 흘러듦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해 머무는 것입니다. 가리키는 말만 여성형으로 바뀝니다. 답도 백에서 오백까지 다섯 수를 모두 부정한 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왓차곳따의 별도 질문과 부처님의 별도 확인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질문과 답이 여성 수행자 제자에게도 따로 반복되는 점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앞의 답만으로 대신하지 않고 한 무리를 직접 확인하는 태도가 오늘 놓치기 쉬운 사람을 떠올리게 하나요?

9 집에서 사는 남자 제자 중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른 이는 오백 명을 훨씬 넘는다 1구절

다섯 낮은 족쇄를 다해 돌아오지 않는 남자 재가 제자가 오백보다 훨씬 많다고 밝힙니다.

“고따마 님과 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는 제쳐 두겠습니다.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살며, 다섯 낮은 족쇄를 다해 저절로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고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집에 사는 남자 제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그런 집에 사는 남자 제자는 백 명만이 아니고 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도 아니며, 훨씬 더 많다.”

“Tiṭṭhatu bhavaṁ gotamo, tiṭṭhantu bhikkhū, tiṭṭhantu bhikkhuniyo. Atthi pana bhoto gotamassa ekupāsakopi sāvako gihī odātavasano brahmacārī y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ti? “Na kho, vaccha, ekaṁyeva sataṁ na dve satāni na tīṇi satāni na cattāri satāni na pañca satāni, atha kho bhiyyova ye upāsakā mama sāvakā gihī odātavasanā brahmacārin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o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셋째 질문은 집을 떠난 두 무리를 지나, 집을 떠나지 않고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남자 제자에게 갑니다. 이 무리의 결과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의 두 풀려남과 달리 다섯 낮은 족쇄를 다함, 저절로 태어남, 그곳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짐,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음이라는 네 가지로 나타납니다. 부처님은 이들도 백·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다고 답합니다. 흰옷을 입은 삶·다섯 족쇄·돌아오지 않음이라는 구체적인 조건이 모두 함께 나옵니다.

묵상

집을 떠나지 않고도 이런 구체적인 성취 기준이 제시되는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의 생활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0 감각을 누리는 남자 재가자도 오백보다 많다 1구절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면서 가르침을 따르고 의심을 건넌 남자 재가 제자도 오백보다 많습니다.

“고따마 님·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남자 제자는 제쳐 두겠습니다.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면서 가르침을 행하고 훈계를 따르며, 의심을 건너 망설임이 사라지고 확신에 이르러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는 남자 제자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그런 제자는 백 명만이 아니고 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도 아니며, 훨씬 더 많다.”

“Tiṭṭhatu bhavaṁ gotamo, tiṭṭhantu bhikkhū, tiṭṭhantu bhikkhuniyo, tiṭṭhantu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brahmacārino. Atthi pana bhoto gotamassa ekupāsakopi sāvako gihī odātavasano kāmabhogī sāsanakaro ovādappaṭikaro yo tiṇṇavicikiccho vigatakathaṅkatho vesārajjappatto aparappaccayo satthusāsane viharatī”ti? “Na kho, vaccha, ekaṁyeva sataṁ na dve satāni na tīṇi satāni na cattāri satāni na pañca satāni, atha kho bhiyyova ye upāsakā mama sāvakā gihī odātavasanā kāmabhogino sāsanakarā ovādappaṭikar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ṅ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vihar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넷째 질문은 고따마 님·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거룩한 삶을 사는 집에 사는 남자 제자를 제쳐 두고,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집에 사는 남자 제자로 이동합니다. 이들은 가르침을 행하고 훈계를 따르며, 의심을 건너고 망설임이 사라졌고, 확신에 이르러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집에 사는 제자와는 다른 기준입니다. 답은 다시 백부터 오백까지를 부정하고 훨씬 더 많다고 하여 생활 방식이 다른 집에 사는 제자의 성취도 따로 확인합니다.

묵상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삶 안에서도 가르침을 따르고 의심을 건너는 길을 따로 밝힌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생활 형태를 비교하기보다 “남에게 기대지 않음”이 여기서 무엇을 뜻하는지 머물러 볼까요?

11 집에서 사는 여자 제자 중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이른 이도 오백 명을 훨씬 넘는다 1구절

다섯 낮은 족쇄를 다해 돌아오지 않는 여자 재가 제자도 오백보다 훨씬 많습니다.

“고따마 님·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남자 제자·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남자 제자는 제쳐 두겠습니다.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살고, 다섯 낮은 족쇄를 다해 저절로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히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들고 그 세계에서 돌아오지 않는 여자 제자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그런 여자 제자는 백 명만이 아니고 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도 아니며, 훨씬 더 많다.”

“Tiṭṭhatu bhavaṁ gotamo, tiṭṭhantu bhikkhū, tiṭṭhantu bhikkhuniyo, tiṭṭhantu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brahmacārino, tiṭṭhantu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kāmabhogino. Atthi pana bhoto gotamassa ekupāsikāpi sāvikā gihinī odātavasanā brahmacārinī yā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ī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ti? “Na kho, vaccha, ekaṁyeva sataṁ na dve satāni na tīṇi satāni na cattāri satāni na pañca satāni, atha kho bhiyyova yā upāsikā mama sāvikā gihiniyo odātavasanā brahmacāriniy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iyo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다섯째 질문은 앞의 네 무리에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집에 사는 남자 제자까지 제쳐 두고,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집에 사는 여자 제자를 묻습니다. 집에 사는 여자 제자의 성취 기준은 다섯 낮은 족쇄가 사라짐과 돌아오지 않는 이의 네 가지 조건이며, 답도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백부터 오백까지를 부정합니다. 성별만 바뀌었을 뿐, 같은 질문과 확인이 다시 이어집니다.

묵상

집에 사는 여자 제자의 성취도 같은 수량으로 직접 확인되는 대목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12 감각을 누리는 여자 재가자도 오백보다 많다 1구절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며 가르침을 따르고 의심을 건넌 여자 재가 제자도 오백보다 많습니다.

“고따마 님·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남자 제자·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남자 제자·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여자 제자는 제쳐 두겠습니다.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며 가르침을 행하고 훈계를 따르고 의심을 건너 망설임이 사라지고 확신에 이르러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는 여자 제자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그런 제자는 백·이백·삼백·사백·오백 명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다.”

“Tiṭṭhatu bhavaṁ gotamo, tiṭṭhantu bhikkhū, tiṭṭhantu bhikkhuniyo, tiṭṭhantu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brahmacārino, tiṭṭhantu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kāmabhogino, tiṭṭhantu upāsikā gihiniyo odātavasanā brahmacāriniyo. Atthi pana bhoto gotamassa ekupāsikāpi sāvikā gihinī odātavasanā kāmabhoginī sāsanakarā ovādappaṭikarā y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ṅ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viharatī”ti? “Na kho, vaccha, ekaṁyeva sataṁ na dve satāni na tīṇi satāni na cattāri satāni na pañca satāni, atha kho bhiyyova yā upāsikā mama sāvikā gihiniyo odātavasanā kāmabhoginiyo sāsanakarā ovādappaṭikarā tiṇṇavicikicchā vigatakathaṅkathā vesārajjappattā aparappaccayā satthusāsane vihar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여섯째 질문은 고따마 님과 남성 수행자·여성 수행자·두 부류의 집에 사는 남자 제자·거룩한 삶을 사는 집에 사는 여자 제자를 모두 제쳐 두고,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집에 사는 여자 제자를 묻습니다. 가르침을 행함, 훈계를 따름, 의심을 건넘, 망설임이 사라짐, 확신에 이름, 스승의 가르침에서 남에게 기대지 않음의 여섯 성격이 모두 나옵니다. 부처님은 마지막 무리도 백에서 오백까지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다고 답합니다. 이로써 집을 떠난 남녀와 집에 사는 남녀의 여섯 제자 무리가 모두 확인됩니다.

묵상

여섯 번째 무리까지 같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왓차곳따의 태도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신과 가까운 무리 하나만 보지 않고 다른 삶의 조건에서도 길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시선을 가져볼 수 있을까요?

13 부처님뿐 아니라 남녀 제자도 이루어 낸 수행의 길 1구절

부처님만이 아니라 수행자와 여성 수행자도 가르침을 성취했기에 거룩한 삶이 그 점에서 완전하다고 말합니다.

“고따마 님, 그대만 이 가르침을 성취하고 남성 수행자들은 성취하지 못했다면 거룩한 삶은 그 점에서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고따마 님, 그대와 남성 수행자들이 성취했으므로 그 점에서 완전합니다. 고따마 님, 만일 … 여성 수행자들이 성취하지 못했다면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고따마 님, … 여성 수행자들도 성취했으므로 완전합니다.”

“Sace hi, bho gotama, imaṁ dhammaṁ bhavaṁyeva gotamo ārādhako abhavissa, no ca kho bhikkhū ārādhakā abhavissaṁsu; evamidaṁ brahmacariyaṁ aparipūraṁ abhavissa tenaṅgena. Yasmā ca kho, bho gotama, imaṁ dhammaṁ bhavañceva gotamo ārādhako bhikkhū ca ārādhakā; evamidaṁ brahmacariyaṁ paripūraṁ tenaṅgena. Sace hi, bho gotama, … no ca kho bhikkhuniyo ārādhikā abhavissaṁsu; evamidaṁ brahmacariyaṁ aparipūraṁ abhavissa tenaṅgena. Yasmā ca kho, bho gotama, … bhikkhuniyo ca ārādhikā; evamidaṁ brahmacariyaṁ paripūraṁ tenaṅgena.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여섯 무리의 수를 확인한 왓차곳따는 거룩한 삶이 완전한지를 하나씩 따져 봅니다. 첫 단계는 고따마 님만 성취하고 남성 수행자가 못했다면 불완전하지만, 둘 다 성취했기에 완전합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은 줄였고, 여성 수행자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했다면 불완전했을 것이나 성취했으므로 완전하다고 같은 방식으로 확인합니다. 성취한 무리가 늘 때마다 완전성이 다시 확인됩니다.

묵상

한 사람의 성취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남성 수행자와 여성 수행자에게도 길이 열려야 완전하다는 판단이 어떻게 들리나요? 어떤 가르침이 여러 사람에게 실제로 이어지는지를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한 조건이 있나요?

14 두 부류의 남자 재가자까지 완전성을 넓히다 1구절

거룩한 삶과 감각적 쾌락 속의 남자 재가자 각각이 성취해야 완전하다는 두 조건을 잇습니다.

“고따마 님, 만일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남자 제자들이 성취하지 못했다면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고따마 님,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남자 제자들도 성취했으므로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완전합니다. 고따마 님, 만일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남자 제자들이 성취하지 못했다면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고따마 님,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남자 제자들도 성취했으므로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완전합니다.”

Sace hi, bho gotama, … no ca kho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brahmacārino ārādhakā abhavissaṁsu; evamidaṁ brahmacariyaṁ aparipūraṁ abhavissa tenaṅgena. Yasmā ca kho, bho gotama, … upāsakā ca gihī odātavasanā brahmacārino ārādhakā; evamidaṁ brahmacariyaṁ paripūraṁ tenaṅgena. Sace hi, bho gotama, … no ca kho upāsakā gihī odātavasanā kāmabhogino ārādhakā abhavissaṁsu; evamidaṁ brahmacariyaṁ aparipūraṁ abhavissa tenaṅgena. Yasmā ca kho, bho gotama, … upāsakā ca gihī odātavasanā kāmabhogino ārādhakā; evamidaṁ brahmacariyaṁ paripūraṁ tenaṅgena.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다음 두 단계는 집에 사는 남자의 서로 다른 삶을 하나씩 더합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앞 무리의 목록은 줄였습니다. 첫 단계는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집에 사는 남자를 더하고, 둘째 단계는 거기에 흰옷을 입고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집에 사는 남자까지 더합니다. 각 단계마다 “성취하지 못하면 불완전, 성취하므로 완전”이라는 말은 그대로 반복됩니다. 생활 방식이 다른 두 집에 사는 무리가 하나씩 더해지며, 완전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묵상

거룩한 삶을 사는 이와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이를 따로 포함하는 순서가 어떻게 보이나요? 한 생활 방식만 수행의 기준으로 삼았던 적이 있다면, 다른 조건의 사람에게도 열린 길을 상상해 볼까요?

15 두 부류의 여자 재가자까지 모두 성취하다 1구절

거룩한 삶과 감각적 쾌락 속의 여자 재가자까지 성취해 거룩한 삶이 완전하다고 결론짓습니다.

“고따마 님, 만일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여자 제자들이 성취하지 못했다면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고따마 님,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거룩한 삶을 사는 여자 제자들도 성취했으므로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완전합니다. 고따마 님, 만일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여자 제자들이 성취하지 못했다면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불완전했을 것입니다. 고따마 님, … 집에 살며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누리는 여자 제자들도 성취했으므로 이 거룩한 삶은 그만큼 완전합니다.”

Sace hi, bho gotama, … no ca kho upāsikā gihiniyo odātavasanā brahmacāriniyo ārādhikā abhavissaṁsu; evamidaṁ brahmacariyaṁ aparipūraṁ abhavissa tenaṅgena. Yasmā ca kho, bho gotama, … upāsikā ca gihiniyo odātavasanā brahmacāriniyo ārādhikā; evamidaṁ brahmacariyaṁ paripūraṁ tenaṅgena. Sace hi, bho gotama, … no ca kho upāsikā gihiniyo odātavasanā kāmabhoginiyo ārādhikā abhavissaṁsu; evamidaṁ brahmacariyaṁ aparipūraṁ abhavissa tenaṅgena. Yasmā ca kho, bho gotama, … upāsikā ca gihiniyo odātavasanā kāmabhoginiyo ārādhikā; evamidaṁ brahmacariyaṁ paripūraṁ tenaṅgena.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마지막 두 단계는 집에 사는 여자의 두 무리를 더합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앞 무리의 목록은 줄였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집에 사는 여자와 감각적 쾌락을 누리는 집에 사는 여자에 대해서도, 성취하지 못하면 불완전하고 성취하므로 완전하다는 같은 결과가 이어집니다. 이로써 스승을 포함한 일곱 무리가 모두 가르침을 성취했음이 확인됩니다.

묵상

마지막 집에 사는 여자 무리까지 더해야 비로소 완전하다고 닫는 구조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어떤 공동체의 완전성을 생각할 때 아직 목소리나 성취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16 갠지스강의 비유에서 귀의와 출가 요청으로 1구절

재가자와 출가자의 모임이 고요히 꺼짐으로 향함을 강에 비유하고 왓차곳따가 귀의한 뒤 출가를 청합니다.

“고따마 님, 갠지스강이 바다로 기울고 향하고 내리뻗어 바다에 닿아 머무르듯, 집에 사는 이와 집을 떠난 이를 아우른 그대의 모임도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기울고 향하고 내리뻗어 고요히 꺼짐에 닿아 머뭅니다. 훌륭합니다, 고따마 님! … 저는 고따마 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에 귀의합니다. 그대 곁에서 집을 떠나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지는 일(우빠삼빠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Seyyathāpi, bho gotama, gaṅgā nadī samuddaninnā samuddapoṇā samuddapabbhārā samuddaṁ āhacca tiṭṭhati, evamevāyaṁ bhoto gotamassa parisā sagahaṭṭhapabbajitā nibbānaninnā nibbānapoṇā nibbānapabbhārā nibbānaṁ āhacca tiṭṭhati. Abhikkantaṁ, bho gotama …pe…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Labheyyāhaṁ bhoto gotamassa santike pabbajjaṁ, labheyyaṁ upasampadan”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완전성을 확인한 뒤 왓차곳따는 갠지스강이 바다로 기울고 향하고 내리뻗어 마침내 닿는 비유로, 집에 사는 이와 집을 떠난 이가 함께한 모임이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향한다고 말합니다. 뒤집힌 것을 세우고 덮인 것을 드러내며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키고 어둠에 등불을 드는 것 같다는 칭찬이 이어지는데,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은 줄였습니다. 그는 고따마 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에 귀의하고 집을 떠나 정식 서약을 함께 청합니다.

묵상

강이 바다를 향하듯 모임 전체가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향한다는 비유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지나요?

17 네 달의 유예에 네 해로 답하다 1구절

다른 교단 출신의 네 달 유예 규칙을 듣고 왓차곳따가 네 해도 머물겠다고 한 뒤 출가합니다.

“왓차여, 다른 교단에서 온 이가 이 가르침과 규율에서 집을 떠나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지기(우빠삼빠다)를 원하면 네 달을 머문다. 네 달 뒤 수행자들이 만족하면 수행자가 되도록 집을 떠나게 하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인다. 다만 나는 이 일에서 개인차를 안다.” “부처님, 그렇다면 저는 네 해를 머물겠습니다. 네 해 뒤 수행자들이 만족하면 집을 떠나게 하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왓차곳따는 부처님 곁에서 집을 떠나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Yo kho, vaccha, aññatitthiyapubbo imasmiṁ dhammavinaye ākaṅkhati pabbajjaṁ, ākaṅkhati upasampadaṁ, so cattāro māse parivasati. Catunnaṁ mā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api ca mettha puggalavemattatā viditā”ti. “Sace, bhante, aññatitthiyapubbā imasmiṁ dhammavinaye ākaṅkhantā pabbajjaṁ, ākaṅkhantā upasampadaṁ cattāro māse parivasanti, catunnaṁ mā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ahaṁ cattāri vassāni parivasissāmi. Catunnaṁ vas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u upasampādentu bhikkhubhāvāyā”ti. Alattha kho vacchagott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alattha upasampadaṁ.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부처님은 다른 교단 출신이 이 가르침과 규율에서 집을 떠나 서약을 원할 때 네 달의 유예 기간을 보내고, 그 뒤 수행자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데 만족하면 집을 떠나게 하고 서약을 주는 절차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곧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안다고 예외 가능성도 밝힙니다. 왓차곳따는 유예를 피하려 하지 않고 네 달보다 열두 배 긴 네 해도 머물겠다고 답합니다. 그는 실제로 부처님 곁에서 집을 떠나 서약을 모두 받습니다. 규칙·개인차·스스로 청함·이루어짐의 네 단계가 모두 나옵니다.

묵상

네 달이라는 조건에 네 해도 받아들이겠다고 답한 왓차곳따의 준비가 어떻게 들리나요?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시간을 들일 수 있는 한 부분이 있나요?

18 보름 뒤 고요와 통찰을 더 닦다 1구절

출가 보름 뒤 왓차곳따가 배우는 이의 앎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부처님께서 고요와 통찰을 더 닦게 하십니다.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진 지 보름 된 왓차곳따 님이 부처님께 가서 절하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배우는 이의 앎과 밝은 앎으로 도달할 수 있는 데까지 저는 이르렀습니다. 더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다면 왓차여, 고요와 통찰 두 가지를 더 닦아라. 왓차여, 이 둘을 더 닦으면 여러 요소를 꿰뚫는 데로 이끌 것이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vacchagotto addhamāsūpasampann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vacchagotto bhagavantaṁ etadavoca: “yāvatakaṁ, bhante, sekhena ñāṇena sekhāya vijjāya pattabbaṁ, anuppattaṁ taṁ mayā; uttari ca me bhagavā dhammaṁ desetū”ti. “Tena hi tvaṁ, vaccha, dve dhamme uttari bhāvehi—samathañca vipassanañca. Ime kho te, vaccha, dve dhammā uttari bhāvitā—samatho ca vipassanā ca—anekadhātupaṭivedhāya saṁvattissan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집을 떠난 뒤 시간은 보름이라고 정확히 제시됩니다. 왓차곳따는 아직 배우는 이의 앎과 밝은 앎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위에 이르렀다고 보고하면서도 더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부처님은 고요와 통찰 두 가지를 함께 더 닦으라고 답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하지 않으며, 두 수행이 여러 요소를 꿰뚫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빠른 진전을 완결로 과장하지 않고, 다음 여섯 직접 앎의 바탕이 되는 두 닦음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어느 정도 배운 뒤에도 “더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태도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고요와 통찰 가운데 지금 뜻이 더 선명한 하나와 아직 낯선 하나가 있나요? 둘을 평가하지 않고 잠시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19 여러 신통을 원할 때 직접 실현하다 1구절

하나와 여럿의 변화부터 브라흐마의 세계까지 몸을 자유롭게 쓰는 여러 신통을 첫 직접 앎으로 열거합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여러 신통을 직접 겪을 수 있다. 하나에서 여럿, 여럿에서 하나가 되고, 나타나고 사라지며, 벽·성벽·산을 허공처럼 지나고, 땅을 물처럼 드나들며, 물 위를 땅처럼 걷고, 새처럼 하늘을 가부좌로 가고, 해와 달을 손으로 만지며, 브라흐마 세계까지 몸을 부릴 수 있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직접 실현할 수 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anekavihitaṁ iddhividhaṁ paccanubhaveyyaṁ—ekopi hutvā bahudhā assaṁ, bahudhāpi hutvā eko assaṁ; āvibhāvaṁ, tirobhāvaṁ; tirokuṭṭaṁ tiropākāraṁ tiropabbataṁ asajjamāno gaccheyyaṁ,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ṁ kareyyaṁ,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e gaccheyyaṁ, seyyathāpi pathaviyaṁ; ākāsepi pallaṅkena kameyyaṁ,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eyyaṁ, parimajjeyyaṁ;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ṁ vatt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고요와 통찰을 더 닦은 결과로 여섯 직접 앎이 차례로 열립니다. 첫째는 여러 신통이며 목록은 하나에서 여럿으로, 여럿에서 하나로 됨, 나타남·사라짐, 벽·성벽·산 통과, 땅을 드나듦, 물 위를 걸음, 하늘을 가부좌로 감, 해와 달을 만짐, 브라흐마 세계까지 몸을 부림의 여덟 묶음입니다. 각 능력은 원할 때라는 조건과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제한 안에 놓입니다.

묵상

낯선 능력의 목록보다 “원할 때”와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두 제한에 먼저 눈을 둘 수 있을까요?

20 신성한 귀로 두 종류의 소리를 듣다 1구절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로 멀고 가까운 하늘 세계와 인간의 소리를 듣는 둘째 직접 앎입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두 종류의 소리, 곧 하늘 세계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들을 수 있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직접 실현할 수 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eyyaṁ—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ā’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둘째 직접 앎은 신성한 귀의 요소입니다. 그 귀는 깨끗하고, 사람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설명됩니다. 듣는 대상은 하늘 세계와 인간의 두 종류이며, 거리도 멀거나 가까운 경우를 모두 포함합니다. 첫 능력과 마찬가지로 원할 때와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이는 경이 말하는 특정한 능력입니다.

묵상

하늘 세계와 인간, 멀고 가까움이라는 두 쌍이 같은 문장에 놓인 점이 보이나요? 이 능력에도 조건과 범위가 붙는다는 점만 살펴볼까요?

21 다른 마음의 첫 네 쌍을 그대로 알다 1구절

다른 존재의 마음을 욕심·성냄·어리석음의 유무와 수축·산란의 네 쌍으로 구별합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마음으로 다른 존재와 사람의 마음을 아울러 알 수 있다. 탐냄이 있는 마음은 탐냄이 있다고, 탐냄이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성냄 있는 마음은 성냄 있다고, 성냄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어리석음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 있다고, 어리석음 없는 마음은 없다고 안다. 수축된 마음은 수축되었다고, 산란한 마음은 산란하다고 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parasattānaṁ parapuggalānaṁ cetasā ceto paricca pajāneyyaṁ— sarāgaṁ vā cittaṁ sarāg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rāgaṁ vā cittaṁ vītarāg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dosaṁ vā cittaṁ sados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dosaṁ vā cittaṁ vītados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mohaṁ vā cittaṁ samohaṁ cittanti pajāneyyaṁ, vītamohaṁ vā cittaṁ vītamoh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ṅkhittaṁ vā cittaṁ saṅkhi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vikkhittaṁ vā cittaṁ vikkhi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셋째 직접 앎은 마음으로 다른 존재의 마음을 그대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첫 네 쌍은 탐냄 있음/없음, 성냄 있음/없음, 어리석음 있음/없음, 수축됨/산란함입니다. 각 상태를 바로 그 상태라고 아는 말이 여덟 번 되풀이됩니다. 수축과 산란은 탐냄·성냄·어리석음과 달리 선악의 반대짝이 없는 상태여서, 탐냄 없음 같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목록은 다음 네 쌍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여덟 상태를 좋고 나쁜 사람의 표지로 쓰지 않고, 마음 상태의 이름으로만 읽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에서 탐냄·성냄·어리석음·수축·산란 중 하나가 보이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22 넓어진 마음부터 풀려난 마음까지, 남의 마음을 구별하다 1구절

광대한 마음·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한곳에 모인 마음·풀려난 마음과 각 반대 상태를 구별합니다.

“광대한 마음은 광대하다고, 광대하지 않은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안다.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은 그렇다고, 위없는 마음은 위없다고 안다. 한곳에 모인 마음은 모였다고, 한곳에 모이지 않은 마음은 모이지 않았다고 안다. 풀려난 마음은 풀려났다고, 풀려나지 않은 마음은 풀려나지 않았다고 안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이를 직접 실현할 수 있다.”

mahaggataṁ vā cittaṁ mahagga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mahaggataṁ vā cittaṁ amahaggat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uttaraṁ vā cittaṁ sauttaraṁ cittanti pajāneyyaṁ, anuttaraṁ vā cittaṁ anuttaraṁ cittanti pajāneyyaṁ; samāhitaṁ vā cittaṁ samāhi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samāhitaṁ vā cittaṁ asamāhitaṁ cittanti pajāneyyaṁ; vimuttaṁ vā cittaṁ vimuttaṁ cittanti pajāneyyaṁ, avimuttaṁ vā cittaṁ avimuttaṁ cittanti pajān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다른 마음을 아는 목록의 뒤 네 쌍입니다. 첫 쌍은 넓은 마음과 넓지 않은 마음, 둘째 쌍은 더 높은 것이 있는 마음과 위없는 마음, 셋째 쌍은 한곳에 모인 마음(사마디)과 모이지 않은 마음, 넷째 쌍은 풀려난 마음과 풀려나지 않은 마음입니다. 더 높은 것이 있다는 말은 아직 다른 자리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원함과 알맞은 자리라는 두 조건이 있을 때 이 마음 앎을 직접 실현할 수 있습니다.

묵상

광대함·위없음·한곳에 모임·풀려남이라는 말이 서로 비슷하게 들리나요? 네 쌍이 각각 다른 기준으로 마음을 구별한다는 점만 알아볼 수 있을까요?

23 수많은 전생을 모습과 세부로 기억하다 1구절

한 생부터 십만 생과 세계의 수축·팽창까지, 이름·가문·생활의 세부를 기억하는 넷째 직접 앎입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한·두·세·네·다섯·열·스물·서른·마흔·쉰·백·천·십만 생과, 여러 세계의 수축·팽창·수축과 팽창을 기억할 수 있다. ‘그곳에서 이름·가문·모습·음식·행복과 괴로움·수명은 이러했고, 죽어 다른 곳에서도 그러했으며, 거기서 죽어 여기 태어났다’고, 수많은 전생을 모습과 세부와 함께 기억한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이를 직접 실현할 수 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eyyaṁ,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tissopi jātiyo catassopi jātiyo pañcapi jātiyo dasapi jātiyo vīsampi jātiyo tiṁsampi jātiyo cattālīsampi jātiyo paññāsampi jātiyo jātisatampi jātisahassampi jātisatasahassampi; anekepi saṁvaṭṭakappe anekepi vivaṭṭakappe anekepi saṁvaṭṭavivaṭṭakappe—amutr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ṁ; tatrāp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넷째 직접 앎은 여러 전생의 기억입니다. 수량은 한·둘·셋·넷·다섯 뒤 열 단위로 스물·서른·마흔·쉰, 다시 백·천·십만 생이며, 여러 세계의 수축·팽창·수축과 팽창까지 이어집니다. 한 장소와 다음 장소에서 각각 이름·가문·모습·음식·행복과 괴로움의 경험·수명의 끝을 기억하고,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이동을 잇습니다. 이 기억에는 모습과 세부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묵상

긴 수량보다 이름·가문·모습·음식·행복과 괴로움·수명이라는 생활의 여섯 세부가 눈에 들어오나요? 기억이 구체적인 항목으로 묘사된 점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24 행위에 따라 죽고 태어나는 존재를 보다 1구절

신성한 눈으로 존재의 죽음과 태어남을 보고 몸·말·마음의 행위와 견해에 따른 두 길을 압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깨끗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존재들이 죽고 태어남을, 낮고 높음·아름답고 추함·좋은 곳과 나쁜 곳·행위를 따름을 본다. 몸·말·마음의 악행, 성자 비방, 그릇된 견해와 그에 따른 행위로 죽은 뒤 지옥에 태어나는 이들과, 몸·말·마음의 선행, 성자를 비방하지 않음, 바른 견해와 그에 따른 행위로 하늘 세계에 태어나는 이들을 본다. … 그렇게 알 수 있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이를 직접 실현할 수 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eyyaṁ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eyyaṁ—ime vata bhonto sattā kāyaduccaritena samannāgatā vacīduccaritena samannāgatā manoduc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upavādakā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nnā; ime vā pana bhonto sattā kāyasucaritena samannāgatā vacīsucaritena samannāgatā manosucaritena samannāgatā ariyānaṁ anupavādakā sammādiṭṭhikā sammādiṭṭhikammasamādānā,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ti; … pajān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다섯째 직접 앎은 신성한 눈으로 죽음과 태어남을 보는 것입니다. 먼저 보는 것은 낮고 높음·아름답고 추함·좋은 곳과 나쁜 곳·행위를 따름이라는 네 쌍입니다. 악한 길은 몸·말·마음의 악행, 성자 비방, 그릇된 견해와 그에 따른 행위에서 지옥으로 이어지고, 선한 길은 그 다섯 관계를 모두 반대로 두어 하늘 세계로 이어집니다.

묵상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하는 행위, 그리고 품고 있는 생각이 삶의 방향을 가른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내가 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를 떠올려 그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까요?

25 풀려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듣고 떠나는 왓차곳따 1구절

여섯째 직접 앎으로 흘러드는 것이 없는 마음과 지혜의 풀려남을 밝히고 왓차곳따가 기뻐하며 떠납니다.

“왓차여, 원한다면 흘러드는 것이 다하여 흘러듦 없는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해 머물 수 있다.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 이를 직접 실현할 수 있다.” 왓차곳따 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받아들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떠났습니다.

So tvaṁ, vaccha, yāvadeva ākaṅkhissasi: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n’ti,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ṁ pāpuṇissasi, sati satiāyatane”ti. Atha kho āyasmā vacchagott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ām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여섯 직접 앎의 마지막은 흘러드는 것이 다하여 이루는 두 가지 풀려남, 곧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의 풀려남입니다. 이것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해 머무는 것이며, 여기에도 원할 때와 그 영역이 있을 때마다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 이야기는 이 결과로 끝을 맺습니다. 왓차곳따는 말씀을 기뻐하고 받아들인 뒤 절하고 부처님을 오른쪽에 두고 돌아 떠납니다.

묵상

여섯 능력의 마지막이 흘러듦 없는 마음과 지혜의 풀려남이라는 점이 어떻게 들리나요? 목록의 끝에 놓인 결과만 살펴볼까요?

26 홀로 힘써 완전히 깨달은 이가 되다 1구절

왓차곳따가 홀로 부지런히 닦아 거룩한 삶의 목적을 실현하고 완전히 깨달은 이 가운데 한 사람이 됩니다.

왓차곳따 님은 홀로 떨어져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가는 그 위없는 목적인 거룩한 삶의 완성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해 머물렀습니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고 거룩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 존재 상태가 없다”고 알았습니다. 왓차곳따 님은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Atha kho āyasmā vacchagott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nti, tadanuttaraṁ—brahmacariyapariyosāna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kho panāyasmā vacchagotto arahataṁ ahos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가르침을 듣고 떠난 왓차곳따는 혼자 떨어져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굳은 뜻으로 머뭅니다. 그 결과 집을 떠난 이의 위없는 목적인 거룩한 삶의 완성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알고 실현합니다. 완결의 앎은 태어남이 다함, 거룩한 삶의 완성, 할 일의 마침, 다시 이 존재 상태가 없음이라는 네 가지 선언입니다. 왓차곳따는 이로써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 됩니다.

묵상

홀로 지낸 시간과 “오래지 않아”라는 결과 사이에서 경은 구체적인 기간을 더 말하지 않습니다. 게으르지 않음·열심·굳은 뜻 가운데 지금 뜻이 와닿는 하나가 있나요?

27 왓차곳따가 수행자들에게 부처님께 문안을 전해 달라 하다 1구절

왓차곳따가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수행자들에게 머리 숙여 문안하고 두 번 잘 섬겼다고 전해 달라 합니다.

여러 수행자가 부처님을 뵈러 가고 있었습니다. 왓차곳따 님은 멀리서 그들을 보고 다가가 물었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디로 가십니까?” “벗이여, 부처님을 뵈러 갑니다.” “그렇다면 수행자들이여, 나를 대신해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전해 주십시오. ‘부처님, 왓차곳따 수행자가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며 말합니다. 저는 부처님을 잘 섬겼고, 잘 가신 분을 잘 섬겼습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bhikkhū bhagavantaṁ dassanāya gacchanti. Addasā kho āyasmā vacchagotto te bhikkhū dūratova āgacchante. Disvāna yena te bhikkh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e bhikkhū etadavoca: “handa kahaṁ pana tumhe āyasmanto gacchathā”ti? “Bhagavantaṁ kho mayaṁ, āvuso, dassanāya gacchāmā”ti. “Tenahāyasmanto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ha, evañca vadetha: ‘vacchagotto, bhante, bhikkhu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evañca vadeti— pariciṇṇo me bhagavā, pariciṇṇo me sugato’”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가 된 뒤 왓차곳따는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여러 수행자를 보고 먼저 다가갑니다. 그는 그들을 “수행자들이여”라고 부르고, 수행자들은 왓차곳따를 “벗이여”라고 부릅니다. 전갈은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이는 문안과, 부처님과 잘 가신 분을 각각 잘 섬겼다는 말로 이루어집니다. 같은 분을 가리키지만 두 호칭을 나란히 남겨, 전하는 수행자와 원래 화자를 구별합니다.

묵상

왓차곳따가 자신의 성취를 직접 자랑하기보다 “잘 섬겼다”는 문안을 맡기는 장면이 어떻게 들리나요? 감사나 배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반복해서라도 남기고 싶은 한 말이 있나요?

28 부처님께서 세 가지 앎과 큰 능력을 확인하다 1구절

수행자들이 전갈을 전하자 부처님께서 이미 마음으로 알았고 신들도 같은 사실을 알렸다고 확인하십니다.

“그러겠습니다, 벗이여.” 수행자들은 부처님께 가 절하고 한쪽에 앉아 전했습니다. “부처님, 왓차곳따 수행자가 두 발에 머리 숙여 ‘부처님을 잘 섬겼고, 잘 가신 분을 잘 섬겼습니다’라고 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나는 이미 왓차곳따의 마음을 헤아려 ‘그는 세 가지 앎과 큰 신통·능력을 지녔다’고 알았다. 신들도 ‘부처님, 왓차곳따 수행자는 세 가지 앎과 큰 신통·능력을 지녔습니다’라고 알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받아들였습니다.

“Evamāvuso”ti kho te bhikkhū āyasmato vacchagottassa paccassosuṁ. Atha kho te bhikkhū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ā kho te bhikkhū bhagavantaṁ etadavocuṁ: “āyasmā, bhante, vacchagott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evañca vadeti: ‘pariciṇṇo me bhagavā, pariciṇṇo me sugato’”ti. “Pubbeva me, bhikkhave, vacchagotto bhikkhu cetasā ceto paricca vidito: ‘tevijjo vacchagotto bhikkhu mahiddhiko mahānubhāvo’ti. Devatāpi me etamatthaṁ ārocesuṁ: ‘tevijjo, bhante, vacchagotto bhikkhu mahiddhiko mahānubhāvo’”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맛지마 니까야 MN 73 마하왓차 숫따 (왓차와 나눈 긴 이야기)

배경

수행자들은 부탁을 받아 부처님께 가서 절하고 한쪽에 앉아, 문안과 “부처님을 잘 섬겼고 잘 가신 분을 잘 섬겼다”는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부처님은 이미 마음으로 그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 세 가지 앎과 큰 신통·큰 능력을 확인했다고 답합니다. 이어 신들도 같은 세 가지를 부처님께 보고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직접 안 것과 신들의 보고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앎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수행자들이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장면으로 경이 끝납니다.

묵상

왓차곳따의 전갈, 부처님의 직접 앎, 신들의 보고가 서로 다른 세 층으로 이어지는 점이 보이나요? 하나의 결론을 확인하는 여러 경로를 만날 때 무엇이 직접 본 것이고 무엇이 전해진 것인지 구별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