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야자띠까 숫따(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Piyajātik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87

외아들을 잃은 거사의 반박에서 시작해, 세존의 사례와 말리까 왕비의 문답으로 사랑과 슬픔의 인과를 밝힌다.

인용된 가르침 29구절

이 경을 29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외아들을 잃은 거사 1구절

사왓티의 설법 장소를 밝힌 뒤 외아들을 잃고 화장터에서 울부짖는 거사의 모습을 전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습니다. 그때 어떤 집주인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일할 마음도 먹을 마음도 나지 않아 화장터에 가서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는가?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는가?”라고 울부짖었습니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Tena kho pana samayena aññatarassa gahapatissa ekaputtako piyo manāpo kālaṅkato hoti. Tassa kālaṅkiriyāya neva kammantā paṭibhanti na bhattaṁ paṭibhāti. So āḷāhanaṁ gantvā kandati: “kahaṁ, ekaputtaka, kahaṁ, ekaputta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경은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서 시작합니다. 첫 사건은 어떤 집주인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아들을 잃은 일입니다. 경문은 그가 일과 음식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화장터에서 같은 부름을 두 번 되풀이했다고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이 장면은 슬픔을 잘못된 반응으로 판단하지 않고, 이어질 문답에서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 어떤 실제 상실을 배경으로 나왔는지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부름을 두 번 되풀이하는 모습에서 말로 다 담기 어려운 그리움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조용히 느껴 볼 수 있을까요?

2 달라진 감각 기능을 알아보시다 1구절

부처님께서 찾아온 거사의 감각 기능이 안정된 마음을 지닌 사람과 달라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집주인이 부처님을 찾아가 절하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집주인이여, 그대의 감각 기능은 자기 마음에 안정된 사람의 것 같지 않다. 그대의 감각 기능에는 변화가 있다.”

Atha kho so gahapat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aṁ kho taṁ gahapatiṁ bhagavā etadavoca: “na kho te, gahapati, sake citte ṭhitassa indriyāni, atthi te indriyānaṁ aññatha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집주인이 부처님 앞에 앉자 부처님께서는 먼저 그의 상태가 달라졌음을 말씀하십니다. “감각 기능”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드러나는 모습을 가리키고, 그 안에 이전과 달라진 변화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아직 그 원인을 추측하거나 슬픔을 그만두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알아본 변화를 짧게 확인하자 집주인이 직접 그 까닭을 설명합니다. 이 순서는 타인의 상태를 단정하기보다 당사자의 말을 들을 자리를 엽니다.

묵상

누군가의 표정이나 반응이 평소와 달라 보일 때 원인을 곧바로 단정하는 편인가요? “무슨 일이 있나요?”라고 들을 자리를 남기는 것과 이미 이유를 안다고 여기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3 거사가 직접 밝힌 슬픔 1구절

거사가 외아들의 죽음과 일·음식에 마음을 둘 수 없는 상태, 화장터의 울부짖음을 직접 말합니다.

“부처님, 제 감각 기능이 어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부처님, 제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일할 마음도 먹을 마음도 나지 않습니다. 저는 화장터에 가서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는가?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는가?’라고 울부짖습니다.”

“Kiñhi me, bhante, indriyānaṁ nāññathattaṁ bhavissati; mayhañhi, bhante, ekaputto piyo manāpo kālaṅkato. Tassa kālaṅkiriyāya neva kammantā paṭibhanti, na bhattaṁ paṭibhāti. Sohaṁ āḷāhanaṁ gantvā kandāmi: ‘kahaṁ, ekaputtaka, kahaṁ, ekaputta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집주인은 부처님의 관찰에 동의하며 달라진 까닭을 자신의 말로 밝힙니다. “부처님”이라고 두 번 부르고, 외아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했다는 사실과 죽음 뒤 일·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두 변화를 말합니다. 화장터에서 외아들을 두 번 부르는 말도 앞 장면과 같은 순서로 되풀이합니다. 이 응답은 상실과 현재 상태의 연결을 집주인이 직접 설명한 것입니다.

묵상

힘든 경험을 설명할 때 사실과 지금의 반응을 자기 말로 이어 볼 수 있나요? 듣는 이가 해석을 보태기 전에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주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4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다섯 괴로움 1구절

부처님께서 거사를 세 번 부르며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긴다고 답하십니다.

“그렇다, 집주인이여. 참으로 그렇다, 집주인이여. 집주인이여, 슬픔과 울부짖음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

“Evametaṁ, gahapati, evametaṁ, gahapati. Piyajātikā hi, gahapa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부처님의 중심 답입니다. “집주인이여”라는 부름은 이 대답에서 모두 세 번 나옵니다.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다섯 가지를 모두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는 말이 거듭됩니다. 사랑하는 존재의 변화가 깊은 괴로움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사랑과 슬픔을 서로 반대되는 감정으로만 보아 왔나요? 누군가가 소중했기에 그 변화가 아프다는 연결을 인정하면, 슬퍼하는 자신이나 다른 이를 덜 탓할 여지가 생길 수 있을까요?

5 거사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1구절

거사가 사랑하는 이에게서는 기쁨과 행복이 생긴다고 반박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떠납니다.

“부처님, 누가 ‘슬픔과 울부짖음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는 말을 옳다고 여기겠습니까? 부처님, 기쁨과 행복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납니다.” 집주인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고 거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Kassa kho nāmetaṁ, bhante, evaṁ bhavissati: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Piyajātikā hi kho, bhante, ānandasomanassā piyappabhavikā”ti. Atha kho so gahapati bhagavato bhāsitaṁ anabhinanditvā paṭikkos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집주인은 부처님의 말에 즉시 동의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을 두 번 사용하며 다섯 괴로움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긴다는 말을 반문하고, 오히려 기쁨과 행복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긴다고 맞섭니다. 서술자는 그가 부처님의 말을 기뻐하지 않고 거부한 뒤 떠났다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경은 상실 직후의 사람이 곧바로 교리를 받아들였다고 꾸미지 않으며, 이해되지 않는 말을 거절하는 반응까지 이야기의 일부로 보존합니다.

묵상

내 경험과 맞지 않는 말에 곧바로 동의하지 못한 적이 있나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를 숨기지 않는 것과 상대의 말을 끝내 검토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6 도박꾼들에게 전한 첫 대화 1구절

거사가 근처의 도박꾼들에게 부처님을 찾아간 일과 감각 기능에 관한 첫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때 부처님 가까이에서 여러 도박꾼이 주사위를 놀고 있었습니다. 집주인이 그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고따마 수행자를 찾아가 절하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여러분, 고따마 수행자는 내게 ‘집주인이여, 그대의 감각 기능은 자기 마음에 안정된 사람의 것 같지 않습니다. 그대의 감각 기능에는 변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akkhadhuttā bhagavato avidūre akkhehi dibbanti. Atha kho so gahapati yena te akkhadhutt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akkhadhutte etadavoca: “idhāhaṁ, bhonto, yena samaṇo gotamo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samaṇaṁ gotam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 Ekamantaṁ nisinnaṁ kho maṁ, bhonto, samaṇo gotamo etadavoca: ‘na kho te, gahapati, sake citte ṭhitassa indriyāni, atthi te indriyānaṁ aññathattan’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집주인은 부처님에게서 떠난 뒤 가까이 있던 도박꾼들에게 방금 대화를 전합니다. 이 전달은 “여러분”이라는 호칭을 두 번 두고, 방문·절·착석과 부처님의 첫 관찰을 순서대로 되풀이합니다. 부처님을 “고따마 수행자”라고 부르는 것은 집주인이 도박꾼들 앞에서 쓰는 말투이며, 서술자가 직접 부르는 호칭이 아닙니다.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전해지면서, 한 사람의 반박이 점점 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어 왕궁까지 퍼져 갑니다.

묵상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길 때 상대의 실제 말과 내 해석을 구분하나요? 방문부터 첫 발언까지 순서를 보존해 전한다면, 듣는 이는 사건과 해석의 경계를 더욱 분명히 볼 수 있을까요?

7 도박꾼들에게 되풀이한 상실 1구절

거사가 부처님께 말했던 외아들의 죽음과 일·음식의 중단, 화장터의 부름을 도박꾼들에게 다시 전합니다.

“여러분, 나는 고따마 수행자에게 답했습니다. ‘부처님, 제 감각 기능이 어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부처님, 사랑스럽고 소중한 제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일할 마음도 먹을 마음도 나지 않습니다. 저는 화장터에 가서 외칩니다.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는가?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는가?’”

Evaṁ vutte, ahaṁ, bhonto, samaṇaṁ gotamaṁ etadavocaṁ: ‘kiñhi me, bhante, indriyānaṁ nāññathattaṁ bhavissati; mayhañhi, bhante, ekaputtako piyo manāpo kālaṅkato. Tassa kālaṅkiriyāya neva kammantā paṭibhanti, na bhattaṁ paṭibhāti. Sohaṁ āḷāhanaṁ gantvā kandāmi—kahaṁ, ekaputtaka, kahaṁ, ekaputta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집주인은 자신의 대답도 빠뜨리지 않고 도박꾼들에게 전합니다. 외아들의 죽음, 일과 음식에 마음을 두지 못함, 화장터에서 같은 부름을 두 번 외침이 첫 대화와 같은 순서로 나옵니다. 이 말은 집주인이 도박꾼들에게 전하는 것이므로, 도박꾼들이 화장터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묵상

자신의 힘든 경험을 다시 말할 때 어떤 부분은 선명해지고 어떤 부분은 말하기 어려워지나요? 들을 때에는 사실의 순서를 지키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요?

8 핵심 답과 반박까지 전하다 1구절

거사가 부처님의 핵심 답과 자신의 기쁨·행복 반박, 동의하지 않고 떠난 일까지 도박꾼들에게 전합니다.

“고따마 수행자는 ‘그렇습니다, 집주인이여. 그렇습니다, 집주인이여. 집주인이여,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납니다’라고 했고, 나는 ‘부처님, 누가 이를 옳다 하겠습니까?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부처님, 기쁨과 행복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나는 고따마 수행자의 말을 기뻐하지 않고 거부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Evametaṁ, gahapati, evametaṁ, gahapati. Piyajātikā hi, gahapa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Kassa kho nāmetaṁ, bhante, evaṁ bhavissati—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 Piyajātikā hi kho, bhante, ānandasomanassā piyappabhavikā’ti. Atha khvāhaṁ, bhonto, samaṇassa gotamassa bhāsitaṁ anabhinanditvā paṭikkositvā uṭṭhāyāsanā pakkamin”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전달의 마지막 부분은 부처님의 동의와 가르침, 집주인의 반문과 다른 주장, 떠남까지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라는 다섯 가지와 기쁨과 행복이라는 말도 앞서와 같이 다시 나옵니다.

묵상

다른 사람에게 갈등을 전할 때 상대의 말뿐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떠났는지도 함께 말하나요? 내 행동까지 포함하면 듣는 사람이 한쪽 이야기만으로 결론 내릴 가능성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9 도박꾼의 동의에서 왕궁의 논쟁으로 1구절

도박꾼들이 거사의 기쁨·행복 주장을 지지하고, 소문을 들은 빠세나디 왕이 말리까 왕비에게 부처님의 말을 묻습니다.

도박꾼들은 “그렇습니다, 집주인이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집주인이여. 집주인이여, 기쁨과 행복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납니다”라고 했고, 집주인은 뜻이 맞는다며 떠났습니다. 이야기가 왕궁에 이르자 빠세나디 왕이 말했습니다. “말리까여, 그대의 고따마 수행자는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했소.”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러합니다.”

“Evametaṁ, gahapati, evametaṁ, gahapati. Piyajātikā hi, gahapati, ānandasomanassā piyappabhavikā”ti. Atha kho so gahapati “sameti me akkhadhuttehī”ti pakkāmi. Atha kho idaṁ kathāvatthu anupubbena rājantepuraṁ pāvisi.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mallikaṁ deviṁ āmantesi: “idaṁ te, mallike, samaṇena gotamen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Sacetaṁ, mahārāja, bhagavatā bhāsitaṁ, evametan”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도박꾼들은 집주인의 기쁨·행복 명제에 같은 형식으로 동의하며 “집주인이여”를 세 번 되풀이합니다. 집주인은 서로 뜻이 맞는다고 여기고 떠납니다. 이 이야기가 왕궁까지 전해지자 빠세나디 왕은 말리까에게 부처님의 다섯 괴로움 명제를 알리고, 왕비는 부처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옳다고 답합니다. 왕이 전한 말에도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의 다섯 가지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일어난다는 두 가지 말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묵상

내 생각과 같은 말을 만났을 때 사실 확인이 끝났다고 느끼나요? 뜻이 맞는 사람의 동의와 원래 말의 의미를 직접 확인하는 일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을까요?

10 왕은 왕비의 동의를 꾸짖다 1구절

빠세나디 왕이 말리까 왕비를 스승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는 제자에 비유하며 거칠게 물러가라고 합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말리까는 고따마 수행자가 무슨 말을 하든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러합니다’라고 동의하는구려. 스승이 무슨 말을 하든 제자가 ‘그렇습니다, 스승이시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스승이시여’라고 하는 것과 같소. 말리까여, 그대도 고따마 수행자가 무슨 말을 하든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러합니다’라고 동의하는구려. 물러가시오, 말리까여. 사라지시오.”

“Evameva panāyaṁ mallikā yaññadeva samaṇo gotamo bhāsati taṁ tadevassa abbhanumodati: ‘Sacetaṁ, mahārāja, bhagavatā bhāsitaṁ evametan’ti. Seyyathāpi nāma, yaññadeva ācariyo antevāsissa bhāsati taṁ tadevassa antevāsī abbhanumodati: ‘evametaṁ, ācariya, evametaṁ, ācariyā’ti. Evameva kho tvaṁ, mallike, yaññadeva samaṇo gotamo bhāsati taṁ tadevassa abbhanumodasi: ‘Sacetaṁ, mahārāja, bhagavatā bhāsitaṁ evametan’ti. Cara pire, mallike, vinass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왕은 왕비의 답을 근거 없는 추종으로 받아들입니다. 말리까를 세 번 언급하고 그중 두 번 직접 부르며, 왕비가 되풀이한다는 “대왕이시여”를 두 번 인용하고, 스승에게 동의하는 제자의 “스승이시여”도 두 번 재현합니다. 끝의 명령은 왕이 왕비에게 한 거친 말입니다. 이 갈등은 왕비가 논쟁으로 맞받기보다 날리장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을 보내 부처님의 실제 발언과 근거를 확인하게 하는 다음 행동을 준비합니다.

묵상

상대가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 그 이유를 듣기 전에 맹목적 동의라고 판단한 적이 있나요? 동의의 근거를 묻는 태도와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은 대화를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이끌까요?

11 말리까가 날리장가를 보내다 1구절

말리까 왕비가 날리장가 브라흐마나에게 부처님을 찾아가 예를 표하고 건강과 안부를 여쭈라고 부탁합니다.

말리까 왕비가 날리장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에게 말했습니다. “브라흐마나여, 부처님을 찾아가 내 이름으로 그분의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건강하고 병환 없이 몸이 가볍고 힘차며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쭈십시오. ‘부처님, 말리까 왕비가 발에 머리 숙여 절하며 건강하고 병환 없이 몸이 가볍고 힘차며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Atha kho mallikā devī nāḷijaṅghaṁ brāhmaṇaṁ āmantesi: “ehi tvaṁ, brāhmaṇ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ppābādhaṁ appātaṅkaṁ lahuṭṭhānaṁ balaṁ phāsuvihāraṁ puccha: ‘mallikā, bhante, devī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ṁ appātaṅkaṁ lahuṭṭhānaṁ balaṁ phāsuvihāraṁ pucch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왕비는 날리장가에게 곧바로 교리 질문만 전하게 하지 않고 먼저 부처님께 예를 표하고 다섯 가지 안부를 여쭈게 합니다. 다섯 가지 인사는 몸이 아프지 않은지, 병이 없는지, 몸이 가벼운지, 힘이 있는지, 편안히 지내는지를 하나씩 짚습니다. “브라흐마나여”는 왕비의 직접 청자이고, 안쪽의 “부처님”은 날리장가가 부처님께 전달할 왕비의 문안입니다.

묵상

중요한 질문을 전하기 전에 상대의 안부와 관계를 먼저 확인하는 태도는 대화에 어떤 바탕을 만들까요? 형식적인 인사와 실제로 평안을 묻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르게 다가올까요?

12 실제 발언을 정확히 확인하라 1구절

왕비가 부처님께 핵심 문장을 직접 확인하고 답을 잘 기억해 전하라고 날리장가에게 지시합니다.

또 이렇게 여쭈십시오. ‘부처님, 부처님께서 “슬픔과 울부짖음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어떻게 답하시는지 잘 기억하여 내게 알려 주십시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사실이 아닌 것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evañca vadehi: ‘bhāsitā nu kho, bhante, bhagavatā esā vācā—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Yathā te bhagavā byākaroti taṁ sādhukaṁ uggahetvā mama āroceyyāsi. Na hi tathāgatā vitathaṁ bhaṇantī”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왕비의 두 번째 지시는 소문의 진위를 직접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다섯 괴로움과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김·일어남이라는 문장을 모두 전하게 하고, 부처님의 답을 “잘 기억하여”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왕비의 신뢰가 붙습니다. 그러나 경은 신뢰만으로 이 일을 끝내지 않고, 실제 질문과 답, 구체적인 사례까지 거치면서 존경과 확인이 함께 이어집니다.

묵상

신뢰하는 사람의 말도 실제 표현과 맥락을 다시 확인할 수 있나요? 존경이 질문을 더 정확히 듣게 한다면, 전해 들은 말 하나를 확인할 때 무엇부터 묻고 싶은가요?

13 날리장가가 왕비의 말을 전하다 1구절

날리장가 브라흐마나가 부처님을 찾아가 문안과 핵심 질문을 왕비가 부탁한 순서대로 전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왕비님.” 날리장가는 부처님을 찾아가 인사와 정담을 나누고 한쪽에 앉아 말했습니다. “고따마 님, 말리까 왕비가 그분의 발에 머리 숙여 절하며 건강하고 병환 없이 몸이 가볍고 힘차며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Evaṁ, bhotī”ti kho nāḷijaṅgho brāhmaṇo mallikāya deviyā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nāḷijaṅgho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mallikā, bho gotama, devī bhoto gotamassa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ṁ appātaṅkaṁ lahuṭṭhānaṁ balaṁ phāsuvihāraṁ pucchati; evañca vadeti: ‘bhāsitā nu kho, bhante, bhagavatā esā vācā—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날리장가는 왕비에게 수락을 밝힌 뒤 부처님을 찾아가 인사와 정담을 나누고 앉습니다. 그는 고따마 님께 왕비의 절과 건강·병환 없음·몸의 가벼움·힘·편안한 생활이라는 다섯 안부를 먼저 전하고, 이어 왕비가 부탁한 핵심 질문을 전달합니다. 바깥의 “고따마 님”은 날리장가가 부처님께 직접 쓰는 호칭이고, 안쪽의 “부처님”은 왕비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핵심 질문에 담긴 다섯 가지 괴로움과,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일어난다는 두 가지 말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묵상

누군가의 질문을 대신 전할 때 내 의견을 섞지 않고 문안과 질문의 순서를 보존할 수 있나요? 전달자의 해석보다 원래 묻는 이의 말이 들리게 하려면 어떤 부분을 특히 정확히 기억해야 할까요?

14 부처님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슬픔이 생긴다고 답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브라흐마나를 세 번 부르며 사랑하는 이에게서 다섯 괴로움이 생긴다는 말씀을 거듭 확인하십니다.

“그렇다, 브라흐마나여. 참으로 그렇다, 브라흐마나여. 브라흐마나여, 슬픔과 울부짖음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

“Evametaṁ, brāhmaṇa, evametaṁ, brāhmaṇa. Piyajātikā hi, brāhmaṇa,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부처님은 날리장가의 질문에 모호하게 답하지 않고 집주인에게 했던 말씀을 그대로 확인합니다. “브라흐마나여”라는 말이 두 번의 동의와 중심 문장에서 모두 세 번 나오고,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 다섯 가지와, 그것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일어난다는 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사례들은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지 않고, 실제 상실과 관계의 변화에서 그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여러 방식으로 보이기 위한 근거입니다.

묵상

같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 되풀이될 때 새롭게 들리는 부분이 있나요? 이번에는 다섯 항목 가운데 하나만 골라, 사랑하는 존재의 변화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15 어머니를 찾아 헤맨 여인 1구절

부처님께서 사왓티에서 어머니를 잃고 거리와 광장을 돌며 두 번 찾아 묻던 여인의 사례를 드십니다.

“브라흐마나여,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나는 이치를 이렇게도 알아야 한다. 브라흐마나여, 예전에 이 사왓티에서 어떤 여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 여인은 정신을 잃고 마음이 흐트러져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내 어머니를 보셨습니까? 내 어머니를 보셨습니까?’라고 말했다.”

Tadamināpetaṁ, brāhmaṇ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 Bhūtapubbaṁ, brāhmaṇa,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issā itthiyā mātā kālamakāsi. Sā tassā kālakiriyāya ummattikā khittacittā rathikāya rathikaṁ siṅghāṭakena siṅghāṭakaṁ upasaṅkamitvā evamāha: ‘api me mātaraṁ addassatha, api me mātaraṁ addass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부처님이 드는 첫 구체 사례입니다. “브라흐마나여”가 원리의 도입과 사건의 시작에서 두 번 나오고, 장소는 바로 이 사왓티입니다. 원문은 어머니의 죽음 뒤 여인이 정신을 잃고 마음이 흩어진 채 거리와 광장을 옮겨 다니며 같은 질문을 두 번 했다고 전합니다. 이는 경 속 한 사람의 극심한 사별 반응을 묘사한 사례이며, 사랑과 상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읽을 수 있다면, “보셨습니까?”를 두 번 묻는 말에서 찾는 마음과 이미 일어난 상실 사이의 간격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16 여인이 잃은 여섯 관계 1구절

아버지·형제·자매·아들·딸·남편을 잃은 여인의 병렬 사례를 원문의 다섯 생략표와 함께 전합니다.

“브라흐마나여,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나는 이치도 이렇게 알아야 한다. 브라흐마나여, 예전에 사왓티의 어떤 여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 형제가 … 자매가 … 아들이 … 딸이 …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 여인은 정신을 잃고 마음이 흐트러져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내 남편을 보셨습니까? 내 남편을 보셨습니까?’라고 말했다.”

Imināpi kho etaṁ, brāhmaṇ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Bhūtapubbaṁ, brāhmaṇa,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issā itthiyā pitā kālamakāsi … bhātā kālamakāsi … bhaginī kālamakāsi … putto kālamakāsi … dhītā kālamakāsi … sāmiko kālamakāsi. Sā tassa kālakiriyāya ummattikā khittacittā rathikāya rathikaṁ siṅghāṭakena siṅghāṭakaṁ upasaṅkamitvā evamāha: ‘api me sāmikaṁ addassatha, api me sāmikaṁ addass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경은 같은 구조를 아버지·형제·자매·아들·딸·남편의 여섯 관계로 넓힙니다. 아버지부터 딸까지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이라 줄여 적었고, 남편을 잃은 사례만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두 번 묻는 장면으로 온전히 남겼습니다. 여러 관계를 잃어도 같은 괴로움이 똑같이 나타납니다.

묵상

관계의 이름이 달라도 상실 뒤의 찾는 마음에는 닮은 점이 있을까요?

17 어머니를 찾아 헤맨 남자 1구절

부처님께서 어머니를 잃고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같은 질문을 두 번 한 남자의 사례를 드십니다.

“브라흐마나여,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나는 이치도 이렇게 알아야 한다. 브라흐마나여, 예전에 이 사왓티에서 어떤 남자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신을 잃고 마음이 흐트러져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내 어머니를 보셨습니까? 내 어머니를 보셨습니까?’라고 말했다.”

Imināpi kho etaṁ, brāhmaṇ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Bhūtapubbaṁ, brāhmaṇa,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assa purisassa mātā kālamakāsi. So tassā kālakiriyāya ummattako khittacitto rathikāya rathikaṁ siṅghāṭakena siṅghāṭakaṁ upasaṅkamitvā evamāha: ‘api me mātaraṁ addassatha, api me mātaraṁ addass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앞에서는 여인의 상실 사례를 들었고, 여기서는 같은 사왓티에서 어머니를 잃은 남자의 사례를 온전히 전합니다. “브라흐마나여”가 원리와 사건의 시작에서 두 번 나오며, 거리에서 거리로·광장에서 광장으로 움직임과 어머니를 찾는 동일한 질문의 두 번 반복도 유지됩니다. 경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괴로움을 특정 성별에만 돌리지 않고, 남자도 여자와 똑같이 겪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상실의 구조를 서로 다른 사람의 사례로 들을 때, 슬픔을 개인의 결함으로 보던 시선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18 남자가 잃은 여섯 관계 1구절

아버지·형제·자매·아들·딸·아내를 잃은 남자의 병렬 사례를 다섯 생략표와 함께 전합니다.

“브라흐마나여,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나는 이치도 이렇게 알아야 한다. 브라흐마나여, 예전에 사왓티의 어떤 남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 형제가 … 자매가 … 아들이 … 딸이 …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신을 잃고 마음이 흐트러져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내 아내를 보셨습니까? 내 아내를 보셨습니까?’라고 말했다.”

Imināpi kho etaṁ, brāhmaṇ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Bhūtapubbaṁ, brāhmaṇa,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assa purisassa pitā kālamakāsi … bhātā kālamakāsi … bhaginī kālamakāsi … putto kālamakāsi … dhītā kālamakāsi … pajāpati kālamakāsi. So tassā kālakiriyāya ummattako khittacitto rathikāya rathikaṁ siṅghāṭakena siṅghāṭakaṁ upasaṅkamitvā evamāha: ‘api me pajāpatiṁ addassatha, api me pajāpatiṁ addassath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여섯 관계의 남성 사례가 앞의 여성 사례와 나란히 놓입니다. 아버지·형제·자매·아들·딸을 잃은 경우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므로 줄여 적었고, 아내를 잃은 사례만 죽음 뒤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두 번 묻는 장면으로 온전히 남았습니다. 남성도 여성과 똑같은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경이 이렇게 여러 관계를 나란히 두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느껴지나요?

19 가족이 갈라놓으려 한 부부 1구절

앞 사례의 결론을 되풀이한 뒤 친족이 남편과 갈라 다른 이에게 주려 하자 이를 거부한 여인의 말을 전합니다.

“브라흐마나여, 이것도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나는 이치이다. 브라흐마나여, 예전에 사왓티의 어떤 여인이 친정에 갔다. 친족들은 여인을 남편과 갈라 다른 이에게 주려 했지만 여인은 그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여인은 남편에게 ‘여보, 친족들이 나를 당신과 갈라 다른 이에게 주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Imināpi kho etaṁ, brāhmaṇ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Bhūtapubbaṁ, brāhmaṇa, imissāyeva sāvatthiyā aññatarā itthī ñātikulaṁ agamāsi. Tassā te ñātakā sāmikaṁ acchinditvā aññassa dātukāmā. Sā ca taṁ na icchati. Atha kho sā itthī sāmikaṁ etadavoca: ‘ime, maṁ, ayyaputta, ñātakā tvaṁ acchinditvā aññassa dātukāmā. Ahañca taṁ na icch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첫 문장은 앞의 아내 상실 사례를 닫는 반복 결론이고, 이어 친족이 부부를 갈라놓으려 한 새 사건이 시작됩니다. 여인은 친정에 갔고, 친족들은 남편과 떼어 다른 사람에게 주려 하지만 본인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두 번 부정합니다. 여인은 이 상황을 남편에게 직접 알립니다. 이 대목은 본인의 동의 없이 부부를 갈라놓으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묵상

읽을 수 있다면, 여인이 분명히 말한 “원하지 않아요”에만 머물러도 충분해요. 관계에 관한 중대한 결정을 당사자의 뜻 없이 정하려 할 때 어떤 위험이 생길 수 있을까요?

20 사랑을 폭력으로 바꾼 비극 1구절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며 죽은 뒤 함께하겠다고 한 사건과 부처님의 결론입니다.

“그 남자는 여인을 두 동강 내어 죽이고 자기 배도 갈랐다. ‘죽은 뒤에는 우리 둘이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였다. 브라흐마나여, 이것도 슬픔과 울부짖음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이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나는 이치를 아는 방식이다.”

Atha kho so puriso taṁ itthiṁ dvidhā chetvā attānaṁ upphālesi: ‘ubho pecca bhavissāmā’ti. Imināpi kho etaṁ, brāhmaṇa, pariyāyena veditabbaṁ yath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경에서 가장 폭력적인 사례입니다. 남자는 여인을 죽인 뒤 자신도 치명적으로 해치며 죽은 뒤 함께하겠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이를 사랑의 모범이나 결합의 이상으로 승인하지 않고, 사랑하는 이에게서 다섯 괴로움이 생기는 이치를 보여 주는 사례로 분류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타인의 뜻을 지우고 죽음과 자기 파괴로 나아갈 수 있음을 숨기지 않는 비극이며, 현대의 독자가 자신의 상실 경험을 이 행동과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묵상

읽을 수 있다면,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이 상대의 생명과 뜻을 파괴하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만 분명히 남겨 둘 수 있을까요?

21 전달을 마치고 와지리 공주를 묻다 1구절

날리장가가 부처님의 대화를 왕비에게 모두 전하고, 왕비가 왕에게 와지리 공주를 사랑하는지 물어 답을 얻습니다.

날리장가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받아들인 뒤 말리까 왕비에게 대화 전부를 알렸습니다. 왕비는 빠세나디 왕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와지리 공주를 사랑하십니까?” “그렇소, 말리까여. 나는 와지리 공주를 사랑하오.”

Atha kho nāḷijaṅgho brāhmaṇ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yena mallikā dev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yāvatako ahosi bhagavatā saddhiṁ kathāsallāpo taṁ sabbaṁ mallikāya deviyā ārocesi. Atha kho mallikā devī yena rājā pasenadi kosal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rājānaṁ pasenadiṁ kosalaṁ etadavoca: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iyā te vajirī kumārī”ti? “Evaṁ, mallike, piyā me vajirī kumārī”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날리장가는 부처님과 나눈 대화를 일부만 요약하지 않고 전부 왕비에게 알립니다. 왕비는 이제 왕을 찾아가 추상 명제를 되풀이하는 대신 왕이 실제로 사랑하는 대상을 묻습니다. 첫 대상은 와지리 공주이며, “대왕이시여”라는 질문에 왕은 “말리까여”라고 답하면서 사랑한다고 분명히 인정합니다. 이 짧은 문답은 다음의 조건 질문과 답을 위한 전제를 세우며, 사랑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은 채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검토합니다.

묵상

추상적인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실제로 소중한 대상을 떠올리는 질문이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요?

22 와지리의 변화와 왕의 슬픔 1구절

왕비가 와지리 공주가 변하고 달라질 때 다섯 괴로움이 생길지 묻고 왕의 답을 부처님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 와지리 공주가 변하고 달라진다면 왕께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겠습니까?” “말리까여, 와지리가 변하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이오. 어찌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지 않겠소?” “대왕이시여, 알고 보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바로 이를 두고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vajiriyā te kumāriyā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eyyu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Vajiriyā me, mallike, kumāriyā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jīvitassapi siyā aññathattaṁ, kiṁ pana me na uppajjis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왕비는 사랑을 확인한 다음에 와지리 공주가 변하고 달라질 가능성을 묻습니다. 왕은 자신의 삶마저 달라질 것이라며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반문합니다. 왕비는 그 답을 알고 보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이며 바르게 깨달으신 부처님의 명제와 연결합니다. 이 문답에서도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 다섯 가지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일어난다는 말이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사랑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변화가 내 삶에 미칠 영향을 인정하는 태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23 와사바 왕비에 대한 같은 문답 1구절

말리까가 와사바 왕비에 대한 사랑과 변화의 결과를 묻고 빠세나디의 답을 부처님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 와사바 왕비를 사랑하십니까?” “그렇소, 말리까여. 사랑하오.” “대왕이시여, 와사바가 변하면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겠습니까?” “말리까여, 그가 변하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이오. 어찌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지 않겠소?” “대왕이시여, 알고 보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iyā te vāsabhā khattiyā”ti? “Evaṁ, mallike, piyā me vāsabhā khattiyā”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vāsabhāya te khattiyāy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eyyu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Vāsabhāya me, mallike, khattiyāy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jīvitassapi siyā aññathattaṁ, kiṁ pana me na uppajjis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두 번째 대상은 와사바 왕비입니다. 원문은 앞 문답을 생략하지 않고 사랑 여부, 변화 조건,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의 발생, 왕의 삶마저 달라진다는 답, 부처님의 명제와의 연결을 모두 되풀이합니다. “대왕이시여”는 세 번, 왕의 “말리까여”는 두 번입니다. 사랑·변화·슬픔이 이어지는 같은 흐름이 왕비를 대상으로 해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묵상

같은 질문을 다른 관계에 적용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점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사랑·변화·슬픔의 세 단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24 위두다바 장군에 대한 같은 문답 1구절

말리까가 위두다바 장군에 대한 사랑과 변화의 결과를 묻고 왕의 답을 부처님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 위두다바 장군을 사랑하십니까?” “그렇소, 말리까여. 사랑하오.” “대왕이시여, 위두다바가 변하면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겠습니까?” “말리까여, 그가 변하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이오. 어찌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지 않겠소?” “대왕이시여, 알고 보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iyo te viṭaṭūbho senāpatī”ti? “Evaṁ, mallike, piyo me viṭaṭūbho senāpatī”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viṭaṭūbhassa te senāpatiss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eyyu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Viṭaṭūbhassa me, mallike, senāpatissa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jīvitassapi siyā aññathattaṁ, kiṁ pana me na uppajjis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세 번째 대상은 위두다바 장군입니다. 왕비는 사랑하는지 먼저 확인한 뒤, 그가 변하고 달라질 조건과 다섯 괴로움의 발생을 묻습니다. 왕은 자신의 삶마저 달라질 것이라고 같은 구조로 답하며, 왕비는 이를 부처님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 세 번과 “말리까여” 두 번, 사랑을 확인하고 변화를 묻고 괴로움을 짚고 부처님의 말씀을 확인하는 네 단계가 앞 문답과 같습니다. 반복은 사람만 바뀌어도 원인과 결과가 그대로 이어짐을 보여 줍니다.

묵상

반복되는 문답이 지루하게 느껴지나요, 아니면 같은 원인과 결과가 관계마다 확인되는 과정으로 보이나요? 반복에서 달라진 이름 하나와 그대로인 논리 하나를 찾을 수 있을까요?

25 말리까 자신에 대한 문답 1구절

말리까 왕비가 자신을 사랑하는지와 자신의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묻고 부처님의 말씀을 확인합니다.

“대왕이시여, 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소, 말리까여. 그대를 사랑하오.” “대왕이시여, 제가 변하면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겠습니까?” “말리까여, 그대가 변하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이오. 어찌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지 않겠소?” “대왕이시여, 알고 보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iyā te ahan”ti? “Evaṁ, mallike, piyā mesi tvan”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mayhaṁ te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eyyu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Tuyhañhi me, mallike,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jīvitassapi siyā aññathattaṁ, kiṁ pana me na uppajjis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네 번째에는 질문자인 말리까 자신이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왕은 왕비를 사랑한다고 답하고, 왕비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자신의 삶마저 달라지고 다섯 괴로움이 생길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왕비는 다시 부처님의 명제를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 세 번과 “말리까여” 두 번은 앞 문답과 같지만, 질문자가 자신을 예로 드는 점이 달라집니다. 논쟁의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상대가 이미 인정한 사랑과 변화의 조건을 따라 결론에 이릅니다.

묵상

자신이 논쟁의 한가운데 있을 때도 상대가 실제로 소중히 여기는 것을 출발점으로 물을 수 있나요? 승패보다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서 시작할 때 상대를 설득하는 방식과 내 이해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26 까시와 꼬살라 왕국을 사랑하다 1구절

말리까가 두 왕국을 사랑하는지 묻자 왕은 그 풍요로 누리는 백단향·화환·향·화장품을 근거로 답합니다.

“대왕이시여, 까시와 꼬살라 왕국을 사랑하십니까?” “그렇소, 말리까여. 나는 까시와 꼬살라를 사랑하오. 말리까여, 두 왕국의 힘과 풍요 덕분에 우리는 까시산 백단향을 누리고 화환과 향과 화장품을 사용하오.”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iyā te kāsikosalā”ti? “Evaṁ, mallike, piyā me kāsikosalā. Kāsikosalānaṁ, mallike, ānubhāvena kāsikacandanaṁ paccanubhoma, mālāgandhavilepanaṁ dhārem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다섯 번째 대상은 까시와 꼬살라라는 두 왕국입니다. 왕은 사랑한다고 답한 뒤, 두 왕국의 힘과 풍요 덕분에 까시산 백단향을 누리고 화환·향·화장품을 쓴다는 구체적 이유를 덧붙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의 범위가 가족과 가까운 사람에서 영토와 생활 기반으로 넓어집니다.

묵상

사람뿐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장소나 공동체도 사랑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 누리는 것 가운데 어떤 장소나 공동체의 힘과 풍요에 기대고 있는지 하나만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27 왕국의 변화도 괴로움이 되다 1구절

두 왕국이 변하고 달라질 때 왕의 삶이 달라지고 다섯 괴로움이 생길지 물은 뒤 부처님의 말씀과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 까시와 꼬살라가 변하면 왕께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겠습니까?” “말리까여, 두 왕국이 변하면 내 삶도 달라질 것이오. 어찌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기지 않겠소?” “대왕이시여, 알고 보시는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고 사랑하는 이로부터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kāsikosalānaṁ te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eyyu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Kāsikosalānañhi, mallike,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jīvitassapi siyā aññathattaṁ, kiṁ pana me na uppajjiss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piyajātikā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piyappabhavik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왕비는 두 왕국에 대해서도 앞과 같은 조건을 적용합니다. 왕국들이 변하고 달라지면 슬픔·울부짖음·괴로움·근심·절망이 생길지를 묻고, 왕은 자신의 삶마저 달라질 것이라며 이를 인정합니다. 왕비는 그 답을 부처님의 명제와 연결합니다. “대왕이시여”는 질문과 결론에서 두 번, “말리까여”는 왕의 답에서 한 번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개인이 아니어도 변화와 괴로움의 조건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마지막 확인입니다.

묵상

의지하는 장소나 제도가 변할 때 느끼는 슬픔도 사랑과 연결해 볼 수 있을까요?

28 왕이 부처님의 지혜에 감탄하다 1구절

빠세나디 왕이 말리까에게 부처님께서 꿰뚫는 지혜로 얼마나 멀리 보시는지 놀랍다고 말합니다.

“말리까여, 놀랍소. 말리까여, 경이롭소. 부처님께서 꿰뚫는 지혜로 얼마나 멀리 보시는지 참으로 놀랍소. 이리 오시오, 말리까여. 내 손을 씻게 해 주시오.”

“Acchariyaṁ, mallike, abbhutaṁ, mallike. Yāvañca so bhagavā paññāya ativijjha maññe passati. Ehi, mallike, ācamehī”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다섯 대상에 대한 문답을 마친 뒤 왕의 태도가 바뀝니다. 처음에는 왕비를 무조건 동의하는 제자로 몰아붙였지만, 이제 말리까를 세 번 부르며 놀라움과 경이를 표하고 부처님의 꿰뚫는 지혜를 인정합니다. 마지막의 손 씻김 요청은 공경의 예를 갖추기 전에 손을 씻으려는 실제 몸짓입니다. 이를 회개 의식이나 특별한 상징으로 확대하지 않으며, 곧 이어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는 행동으로 넘어갑니다.

묵상

처음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 놀라움을 숨기지 않고 태도를 바꿀 수 있나요? 상대가 제시한 질문을 통해 이해가 달라졌다면, 그 변화를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요?

29 세 번의 예경 1구절

빠세나디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 쪽으로 합장해 같은 예경을 세 번 외칩니다.

빠세나디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이 계신 쪽으로 합장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말을 세 번 외쳤습니다. “저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예경합니다! 저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예경합니다! 저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예경합니다!”

Atha kho rājā pasenadi kosalo uṭṭhāyāsanā ekaṁsaṁ uttarāsaṅgaṁ karitvā yena bhagavā tenañjaliṁ paṇāmetvā tikkhattuṁ udānaṁ udānesi: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ā”ti.

맛지마 니까야 MN 87 삐야자띠까 숫따 (사랑하는 이에게서 생기는 것)

배경

경은 왕의 이해가 몸과 말의 공경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닫힙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이 계신 방향으로 합장합니다. 이어 부처님께 올리는 같은 예경문을 정확히 세 번 되풀이합니다. 앞서 부처님의 말을 화내며 거부했던 왕이 구체 문답을 거쳐 그 지혜를 인정하고 예를 표하는 변화가 완결됩니다.

묵상

이해가 달라졌을 때 마음속 인정에만 머물지 않고 공경이나 감사의 말로 표현한 적이 있나요? 같은 말을 세 번 되풀이하는 왕의 행동에서 확신의 깊이나 태도의 전환이 어떻게 느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