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빠리닙바나 숫따(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sutta

디가 니까야 DN 16

스승의 마지막 여정에서 전한 가르침과 마지막 죽음, 장례와 남은 뼈를 나누어 모시는 일을 전합니다.

인용된 가르침 439구절

이 경을 41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마가다 왕이 밝힌 침공 계획 3구절

아자따삿뚜 왕이 왓지족을 무너뜨리겠다고 말하며, 왓사까라를 스승께 보내 자신의 계획에 대한 답을 듣게 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스승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무셨다. 그때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은 왓지족을 침공하려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큰 힘과 위세를 지닌 왓지족을 나는 뿌리째 없애겠다. 왓지족을 멸망시키고, 재앙과 파멸에 빠뜨리겠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Tena kho pana samayena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hoti. So evamāha: “ahaṁ hime vajjī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ṁ āpādessām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자따삿뚜 왕의 침공 계획으로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왓지족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뿌리째 없애겠다는 왕의 말에는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뜻이 거듭 드러납니다. 이 발언이 뒤이어 사신을 통해 스승에게 전해지고, 스승은 왓지족이 쇠퇴하지 않을 조건을 묻는 방식으로 답하십니다. 경의 첫 물음은 한 나라가 얼마나 강한가에서, 사람들이 어떤 질서를 함께 지킬 때 무너지지 않는가로 이어집니다.

묵상

왕은 왓지족의 큰 힘을 보면서도 그들을 없애겠다고 말해요. 누군가의 힘이 위협으로 느껴졌던 순간이 떠오르나요? 그때 상대에 대해 실제로 알았던 것과, 내 마음에서 짐작한 것을 나누어 보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러자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은 마가다의 대신이자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인 왓사까라에게 말했다. “브라흐마나여, 스승께 가거라. 나를 대신해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하고, 병과 아픔이 적으신지, 몸이 가뿐하신지, 기력이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쭈어라. ‘스승이시여,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이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하며, 병과 아픔이 적으신지, 몸이 가뿐하신지, 기력이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니다’라고 하여라.”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ssakāraṁ brāhmaṇaṁ magadhamahāmattaṁ āmantesi: “ehi tvaṁ, brāhmaṇ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a; upasaṅkamitvā mama vacanena bhagavato pāde sirasā vandāhi, appābādhaṁ appātaṅkaṁ lahuṭṭhānaṁ balaṁ phāsuvihāraṁ puccha: ‘rājā, bhante,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ṁ appātaṅkaṁ lahuṭṭhānaṁ balaṁ phāsuvihāraṁ pucch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이 대신 왓사까라에게 문안을 전하도록 지시합니다. 왓사까라는 나라의 일을 맡은 관리이며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이기도 합니다. 왕이 직접 찾아가는 대신, 사신이 왕을 대신해 절하고 안부를 묻게 됩니다. 병과 아픔, 몸의 가뿐함과 기력, 편안한 생활을 묻는 말은 지시와 실제로 전할 인사에 각각 나옵니다. 침공 계획을 전하기에 앞서, 왕이 스승에게 예를 갖추는 장면입니다.

묵상

왕은 사신에게 상대의 몸과 일상이 편안한지 먼저 묻게 해요. 최근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었던 장면을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 조금 더 들을 수 있도록, 다음 인사에는 어떤 물음을 덧붙여 보고 싶나요?

또 이렇게 전하여라. “스승이시여,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이 왓지족을 침공하려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토록 큰 힘과 위세를 지닌 왓지족을 나는 뿌리째 없애겠다. 왓지족을 멸망시키고, 재앙과 파멸에 빠뜨리겠다.’” 스승께서 어떻게 답하시든 잘 익혀서 내게 알려라.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지 않는다.

Evañca vadehi: ‘rājā, bhante,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So evamāha: “ahaṁ hime vajjī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ṁ āpādessāmī”’ti. Yathā te bhagavā byākaroti, taṁ sādhukaṁ uggahetvā mama āroceyyāsi. Na hi tathāgatā vitathaṁ bhaṇ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의 문안 인사에 이어 왕이 자신의 침공 계획을 전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처음 장면에서 왕이 내놓은 위협이, 이번에는 사신에게 맡기는 전언으로 되풀이됩니다. 이처럼 같은 말이 누구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지 따라가면 다음 대화가 무엇에 대한 답인지 분명해집니다. 왕은 스승이 어떻게 답하든 잘 익혀 돌아와 알리라고 당부합니다. 마지막에는 깨달은 이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덧붙입니다. 답을 구하는 이유와, 들은 뜻을 정확히 전할 책임이 함께 드러납니다.

묵상

왕은 스승이 어떻게 답하든 잘 익혀서 전하라고 당부해요. 누군가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내가 바라는 뜻이 섞여 들어간 적이 있나요? 최근 들은 말 하나를 떠올리며, 그 사람이 실제로 한 말과 내가 덧붙인 해석을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2 왕의 침공 계획을 전하러 온 왓사까라 3구절

왓사까라가 독수리봉으로 스승을 찾아가 왕의 안부와 침공 계획을 전합니다.

“알겠습니다, 왕이시여.”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인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는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훌륭한 수레들을 준비시키고 훌륭한 수레에 올라, 훌륭한 수레들과 함께 라자가하를 나서 독수리봉으로 향했다.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수레로 간 다음, 내려서 걸어 스승께 다가갔다. 스승께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Evaṁ, bho”ti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rañño māgadhassa ajātasattussa vedehiputtassa paṭissutvā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etvā bhaddaṁ bhaddaṁ yānaṁ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rājagahamhā niyyāsi, yena gijjhakūṭo pabbato tena pāyāsi.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ov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의 명을 받은 왓사까라가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으로 향합니다. 그는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이면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은 대신입니다. 왕의 말을 전하는 인물에게 두 신분이 함께 붙어 있어, 이어질 대화가 개인적인 방문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수레를 갖추고 출발하지만 수레가 갈 수 있는 데까지만 타고, 나머지는 걸어서 갑니다. 이 이동 과정은 왕이 있는 곳과 스승이 머무는 곳을 잇고, 침공 계획이 직접 대화로 옮겨 갈 자리를 마련합니다.

묵상

왓사까라는 수레가 갈 수 있는 곳을 지난 뒤에는 내려서 걸어가요.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서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야 했던 때가 있나요? 내가 편한 방식과 상대를 만날 수 있는 방식이 달랐다면, 무엇을 바꾸어 볼 수 있었을까요?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나눈 뒤 그는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의 마가다 대신 왓사까라는 스승께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고따마시여,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이 존경하는 고따마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하며, 병과 아픔이 적으신지, 몸이 가뿐하신지, 기력이 있으신지, 편안히 지내시는지 여쭙니다. 존경하는 고따마시여,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이 왓지족을 침공하려 합니다.”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ntaṁ etadavoca: “rājā, bho gotama,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oto gotamassa pāde sirasā vandati, appābādhaṁ appātaṅkaṁ lahuṭṭhānaṁ balaṁ phāsuvihāraṁ pucchati. Rājā, bho gotama,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vajjī abhiyātukām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왓사까라가 왕에게서 받은 말을 실제로 전하기 시작합니다. 건강과 생활의 편안함을 묻는 인사 뒤에 침공 계획이 이어집니다. 앞서 왕이 일러 준 문안과 지금 사신이 전하는 문안이 같으므로, 왕의 뜻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손한 말투가 곧 평화로운 의도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장면에서도 예를 갖춘 인사와 전쟁을 일으키려는 계획이 함께 나타납니다. 스승의 다음 답변을 읽을 때는 인사의 격식과 전해진 용건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묵상

왕의 안부 인사와 침공 계획이 사신의 말 속에 나란히 놓여 있어요. 누군가 정중한 말로 무거운 부탁을 건넸던 순간이 떠오르나요? 말투와 부탁의 내용을 따로 살펴보면, 처음 들었을 때와 다르게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이 있을까요?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토록 큰 힘과 위세를 지닌 왓지족을 나는 뿌리째 없애겠다. 왓지족을 멸망시키고, 재앙과 파멸에 빠뜨리겠다.’”

So evamāha: ‘ahaṁ hime vajjī evaṁmahiddhike evaṁmahānubhāve ucchecchāmi vajjī, vināsessāmi vajjī, anayabyasanaṁ āpādessām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왓사까라가 아자따삿뚜 왕의 말을 직접 인용하며 침공 계획을 전합니다. 뿌리째 없애고 멸망시키며 재앙과 파멸에 빠뜨리겠다는 세 표현은 강한 위협을 드러냅니다. 왓지족의 힘과 위세도 왕 자신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을 들은 스승은 곧바로 승패를 예측하는 대신, 왓지족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질서를 지키는지를 아난다에게 묻습니다. 나라의 힘을 군사력만으로 볼 수 있는지 되짚게 하는 대화의 출발점입니다.

묵상

왕은 상대를 없애겠다는 말을 여러 표현으로 거듭해요. 같은 말을 되풀이하다가 마음이 더 단단히 굳어진 적이 있나요? 최근 그런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면, 그 말을 하기 전에는 어떤 감정이나 상황이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3 쇠퇴를 막는 나라의 일곱 조건 14구절

스승은 왓지족의 모임과 규칙, 어른과 여성과 예배 장소를 대하는 태도 등을 아난다에게 물으며 나라가 쇠퇴하지 않는 조건을 밝히십니다.

그때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 뒤에 서서 스승께 부채질하고 있었다. 스승께서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왓지족이 자주 모이고 모임을 많이 연다고 들었는가?” “스승이시여, 저는 왓지족이 자주 모이고 모임을 많이 연다고 들었습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ānando bhagavato piṭṭhito ṭhito hoti bhagavantaṁ bījayamāno.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kinti te, ānanda, sutaṁ, ‘vajjī abhiṇhaṁ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ti? “Sutaṁ metaṁ, bhante: ‘vajjī abhiṇhaṁ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왓사까라에게 곧바로 답하는 대신, 뒤에서 부채질하던 아난다에게 왓지족에 관해 들은 일을 묻습니다. 첫 물음은 그들이 자주 모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임의 목적이나 제도를 이 문장만으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거듭 만나는 일이 쇠퇴를 막는 조건의 첫머리에 놓입니다. 아난다의 답은 질문의 내용을 되풀이해 무엇을 확인했는지 분명하게 합니다. 침공 계획에 대한 논의가 사람들의 공동생활을 살피는 물음으로 옮겨 갑니다.

묵상

스승은 침공 소식을 듣고 곧바로 판단을 내리는 대신, 아난다에게 무엇을 들었는지 물어요. 급한 소식을 접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직 모르는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누구에게 어떤 물음을 건넬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왓지족이 자주 모이고 모임을 많이 여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아난다여, 왓지족이 한마음으로 모이고, 한마음으로 자리를 뜨며, 한마음으로 왓지족의 일을 처리한다고 들었는가?” “스승이시여, 저는 왓지족이 한마음으로 모이고, 한마음으로 자리를 뜨며, 한마음으로 왓지족의 일을 처리한다고 들었습니다.”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abhiṇhaṁ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 bhav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Kinti te, ānanda, sutaṁ, ‘vajjī samaggā sannipatanti, samaggā vuṭṭhah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ontī’”ti? “Sutaṁ metaṁ, bhante: ‘vajjī samaggā sannipatanti, samaggā vuṭṭhah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o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자주 모인다는 첫 조건의 결과를 밝힌 뒤, 서로 뜻을 모으는 두 번째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모임이 잦다는 사실에 더해 모일 때와 헤어질 때, 함께 일을 처리할 때에도 화합하는지가 중요하게 제시됩니다. 모임을 마친 뒤 각자 흩어지는 순간까지 살핀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스승은 이 조건이 유지되는 동안 번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공동체가 함께 지켜야 할 생활 방식에 관한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함께 모일 때뿐 아니라 자리를 뜨고 일을 처리할 때에도 한마음인지 묻고 있어요. 내가 속한 모임은 회의가 끝난 뒤 어떤 분위기로 흩어지나요? 말하지 못한 생각을 남겨 두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왓지족이 한마음으로 모이고, 한마음으로 자리를 뜨며, 한마음으로 왓지족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아난다여, 왓지족이 전에 정하지 않은 규칙을 새로 만들지 않고, 이미 정한 규칙을 없애지 않으며, 예부터 내려온 왓지족의 규칙을 정해진 대로 받아들여 지킨다고 들었는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samaggā sannipatissanti, samaggā vuṭṭhahissanti, samaggā vajjikaraṇīyāni kar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Kinti te, ānanda, sutaṁ, ‘vajjī apaññattaṁ na paññapenti, paññattaṁ na samucchind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an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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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함께 일을 처리하는 태도에서 공동체의 규칙을 대하는 태도로 물음이 이어집니다. 세 번째 조건은 새 규칙을 만들지 않음, 기존 규칙을 없애지 않음, 예부터 정해진 왓지족의 규칙을 지킴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왓지족이 함께 살아온 규칙입니다. 따라서 이 말을 모든 시대의 제도 변경을 금하는 명령으로 넓힐 수는 없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받아들인 질서가 이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묵상

왓지족이 이미 함께 정한 규칙을 지키는지가 질문에 담겨 있어요. 내가 속한 모임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정하고 지켜 온 약속은 무엇인가요? 그 약속의 뜻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먼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요?

“스승이시여, 저는 왓지족이 전에 정하지 않은 규정을 새로 만들지 않고, 이미 정한 규정을 없애지 않으며, 예부터 내려온 왓지족의 규칙을 정해진 대로 받아들여 지킨다고 들었습니다.” “아난다여, 왓지족이 전에 정하지 않은 것을 새로 만들지 않고, 이미 정한 것을 없애지 않으며, 예부터 내려온 왓지족의 규칙을 정해진 대로 받아들여 지키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Sutaṁ metaṁ, bhante: ‘vajjī apaññattaṁ na paññapenti, paññattaṁ na samucchind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antī’”ti.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apaññattaṁ na paññapessanti, paññattaṁ na samucchindissanti, yathāpaññatte porāṇe vajjidhamme samādāya vatt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왓지족이 규칙을 지킨다고 들었음을 답하고, 스승은 같은 내용을 조건으로 다시 말합니다. 아난다의 답은 들은 사실의 확인이고, 스승의 말은 그 조건이 이어질 때 기대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예부터 정해진 공동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일이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을 바탕으로 제시됩니다. 앞의 잦은 모임과 화합에 더해, 사람들이 어떤 질서를 함께 따르는지가 드러납니다.

묵상

아난다는 자신이 들은 내용을 되풀이해 답하고, 스승은 그 내용을 받아 말씀을 이어 가요. 누군가의 말을 내 말로 다시 확인해 본 적이 있나요? 최근의 대화 하나를 떠올리면, 서로 같은 뜻으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아난다여, 왓지족이 자기 공동체의 나이 든 어른들을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우하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만하다고 여긴다고 들었는가?” “스승이시여, 저는 왓지족이 자기 공동체의 나이 든 어른들을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우하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만하다고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Kinti te, ānanda, sutaṁ, ‘vajjī ye te vajjīnaṁ vajjimahallakā, te sakkaronti garuṁ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sotabbaṁ maññantī’”ti? “Sutaṁ metaṁ, bhante: ‘vajjī ye te vajjīnaṁ vajjimahallakā, te sakkaronti garuṁ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sotabbaṁ maññ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공동체의 나이 든 어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묻는 네 번째 조건입니다.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우한다는 말 뒤에,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고 여긴다는 내용이 더해집니다. 겉으로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실제로 말을 들으려는 태도가 함께 제시된 셈입니다. 아난다는 이 내용을 그대로 되받아 자신이 들은 바를 확인합니다. 공동체의 질서는 규칙과 함께, 먼저 살아온 이들의 말을 듣는 관계로도 이어집니다.

묵상

어른을 예우한다는 말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내용이 더해져 있어요. 최근 나이 든 사람과 나눈 대화에서 아직 기억나는 말은 무엇인가요? 찬성 여부를 서둘러 정하기 전에, 그 말의 배경을 더 물어볼 여지는 있었을까요?

“아난다여, 왓지족이 자기 공동체의 나이 든 어른들을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우하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만하다고 여기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아난다여, 왓지족이 집안의 여성들과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함께 살게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가?” “스승이시여, 저는 왓지족이 집안의 여성들과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함께 살게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e te vajjīnaṁ vajjimahallakā, te sakkarissanti garuṁ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sotabbaṁ maññi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Kinti te, ānanda, sutaṁ,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ntī’”ti? “Sutaṁ metaṁ, bhante: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어른들의 말을 존중하는 조건에 이어, 여성과 소녀를 강제로 데려다 살게 하지 않는다는 다섯 번째 조건이 나옵니다. 공동체의 안정을 말하면서 모임과 규칙과 더불어 사람을 대하는 구체적인 행동도 함께 묻고 있습니다. 여기서 금하는 것은 여성의 뜻과 상관없이 붙잡아 데려가 함께 살게 하는 행위입니다.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는 조건 안에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책임이 놓입니다.

묵상

이 대목은 다른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 함께 살게 하지 않는 일을 공동체의 조건으로 말해요. 내 주변의 관계에서는 함께하자는 제안을 거절할 여지가 충분히 있나요? 누군가의 뜻을 확인할 때 서둘러 대답을 정해 버린 적은 없을까요?

“아난다여, 왓지족이 집안의 여성들과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함께 살게 하지 않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아난다여, 왓지족이 안팎에 있는 왓지족의 예를 올리는 장소(쩨띠야)들을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를 올리며, 예부터 바치고 올려 온 정당한 제물을 거르지 않는다고 들었는가?”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ā tā kulitthiyo kulakumāriyo, tā na okkassa pasayha vāse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Kinti te, ānanda, sutaṁ,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ṁ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onti garuṁ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dinnapubbaṁ katapubbaṁ dhammikaṁ baliṁ no parihāpe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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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소녀를 강제로 데려가지 않는 다섯째 조건에 이어, 사람들이 예를 올리는 장소를 존중하는 여섯째 조건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소는 왓지족의 생활 안에 있던 곳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시설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안팎의 장소를 존중하고 예부터 바쳐 온 제물을 거르지 않는 일을 함께 묻습니다. 공동체의 앞날을 살피는 기준이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책임과 오랜 관습을 존중하는 태도에 걸쳐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여성과 소녀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는다는 조건 뒤에 함께 예를 올리는 장소를 존중한다는 조건이 이어져요. 내가 속한 모임이 소중하게 여기는 장소나 관습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의 뜻을 존중할 여지가 충분히 있나요?

“스승이시여, 저는 왓지족이 안팎에 있는 왓지족의 예를 올리는 장소들을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를 올리며, 예부터 바치고 올려 온 정당한 제물을 거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Sutaṁ metaṁ, bhante: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ṁ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onti garuṁ karonti mānenti pūjenti tesañca dinnapubbaṁ katapubbaṁ dhammikaṁ baliṁ no parihāpe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왓지족이 예를 올리는 장소와 오래된 관습을 존중한다고 들었음을 확인합니다. 받들고 존경하는 태도뿐 아니라 제물을 거르지 않는 구체적인 행동도 답에 들어 있습니다. 공동의 장소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그 장소를 맡아 온 일을 계속하는 행동이 함께 나타납니다. 아난다의 답은 들은 바를 전하는 말입니다. 스승은 이 확인을 받아 다음 대목에서 같은 관습이 이어질 때 기대할 수 있는 결과를 밝힙니다.

묵상

아난다는 그렇다고만 하지 않고 스승이 물은 내용을 하나하나 되풀이하며 들었다고 답해요. 누군가의 물음에 이렇게 내용을 짚어 가며 대답해 본 적이 있나요? 내가 아는 것과 전해 들은 것을 구별해 말하기는 어떤 때 어려울까요?

“아난다여, 왓지족이 안팎에 있는 왓지족의 예를 올리는 장소들을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를 올리며, 예부터 바치고 올려 온 정당한 제물을 거르지 않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 yāni tāni vajjīnaṁ vajjicetiyāni abbhantarāni ceva bāhirāni ca, tāni sakkarissanti garuṁ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dinnapubbaṁ katapubbaṁ dhammikaṁ baliṁ no parihāpessa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들었다고 답한 내용을 스승이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조건으로 정리합니다. 예를 올리는 장소를 존중하고 정당한 제물을 거르지 않는 일은 한 번 찾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래 이어 온 예우가 실제 행동으로 계속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구절은 특정한 제물이 번영을 만들어 낸다는 원리를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왓지족이 공동의 장소와 관습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는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합니다.

묵상

예부터 드리고 행해 온 것을 거르지 않는다는 말이 눈에 띄어요. 내 삶에도 오래 이어 온 작은 예우나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을 이어 가는 일이 나를 어디에 이어 주는지, 다시 살펴보고 싶은 것은 없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왓지족이 완전히 깨달은 이들(아라한)을 정당하게 보호하고 감싸고 지킬 방도를 잘 마련해 두었다고 들었는가?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은 그 나라에 오고, 이미 온 이들은 그 나라에서 편안히 지내게 하려는 것이다.” “스승이시여, 저는 왓지족이 완전히 깨달은 이들을 정당하게 보호하고 감싸고 지킬 방도를 잘 마련해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은 그 나라에 오고, 이미 온 이들은 그 나라에서 편안히 지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Kinti te, ānanda, sutaṁ, ‘vajjīnaṁ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ṁvihitā,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ṁ āgaccheyyuṁ,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Sutaṁ metaṁ, bhante ‘vajjīnaṁ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ṁvihitā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ṁ āgaccheyyuṁ,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일곱째 조건은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들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보호와 안전을 잘 마련하는 목적은 두 갈래로 제시됩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이 찾아오게 하고, 이미 온 이들이 편안히 지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귀한 손님을 한 번 맞이하는 일과 머무는 동안 돌보는 일이 함께 요구되는 셈입니다. 이 물음은 그런 이들이 오고 머물 수 있도록 공동체가 어떤 환경을 마련하는지를 확인합니다.

묵상

아직 오지 않은 이는 오게 하고, 이미 온 이는 편안히 머물게 한다는 두 방향의 마련이 함께 나와요. 내가 속한 모임이나 집에서는 새로 오는 사람과 이미 있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 마련되어 있나요? 어느 쪽이 더 소홀해지기 쉬운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은 그 나라에 오고 이미 온 이들은 그 나라에서 편안히 지내도록, 왓지족이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들을 정당하게 보호하고 감싸고 지킬 방도를 잘 마련해 두는 동안에는, 아난다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그러자 스승께서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인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에게 말씀하셨다. “브라흐마나여, 나는 한때 웨살리의 사란다다 예배 장소에 머물렀다.”

“Yāvakīvañca, ānanda, vajjīnaṁ arahantesu dhammikā rakkhāvaraṇagutti susaṁvihitā bhavissati, kinti anāgatā ca arahanto vijitaṁ āgaccheyyuṁ, āgatā ca arahanto vijite phāsu vihareyyunti. Vuddhiyeva, ānand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Atha kho bhagavā vassakāraṁ brāhmaṇaṁ magadhamahāmattaṁ āmantesi: “ekamidāhaṁ, brāhmaṇa, samayaṁ vesāliyaṁ viharāmi sārandade cetiy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와 나눈 일곱 조건의 문답이 마무리되고, 스승은 대신 왓사까라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벗어난 이들이 찾아오고 편안히 머물 수 있게 하는 보호가 마지막 조건입니다. 이어지는 회상은 지금 확인한 조건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밝히는 출발점입니다. 스승은 예전에 웨살리의 사란다다에 머물렀던 일을 꺼내고, 다음 말씀에서 그곳에서 왓지족에게 이 원칙들을 가르쳤다고 밝힙니다. 현재의 공동체 모습과 이전에 전한 가르침이 연결됩니다.

묵상

아직 오지 않은 이를 맞이할 준비와 이미 머무는 이를 돌보는 일이 함께 나와요. 내가 속한 모임에서 새 사람을 맞을 때 주로 무엇에 신경을 쓰나요? 처음의 환대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어지려면 어떤 작은 일이 필요할까요?

“그곳에서 나는 왓지족에게 쇠퇴를 막는 이 일곱 원칙을 가르쳤다. 브라흐마나여, 쇠퇴를 막는 이 일곱 원칙이 왓지족 사이에 유지되고, 왓지족이 이 일곱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동안에는, 브라흐마나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이다.”

Tatrāhaṁ vajjīnaṁ im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iṁ. Yāvakīvañca, brāhmaṇa,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vajj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vajjī sandississanti, vuddhiyeva, brāhmaṇa, vajj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일곱 조건을 하나씩 확인한 뒤 스승이 그 전체를 요약하는 자리입니다. 스승은 이 원칙들이 예전에 자신이 웨살리에서 왓지족에게 가르친 것임을 밝히고, 그 원칙이 왓지족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원칙이 그들 안에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왓지족이 실제로 그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원칙을 안다는 것과 그렇게 사는 모습이 실제로 보인다는 것, 이 둘을 나란히 둡니다. 이 결론이 왓사까라에게 향하는 말이라는 점도 뒤의 반응을 이해하는 바탕이 됩니다.

묵상

원칙이 공동체 안에 남아 있는 것과 사람들이 그 원칙대로 사는 모습이 함께 언급돼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약속 하나는 일상의 어떤 행동과 이어져 있나요? 그 연결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 떠오르나요, 아니면 아직 잘 모르겠나요?

이 말씀을 듣고,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인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가 스승께 말했다. “존경하는 고따마시여, 왓지족이 쇠퇴를 막는 원칙을 하나만 갖추어도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번영입니다. 하물며 일곱 원칙을 갖추었다면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존경하는 고따마시여,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이 전쟁으로 왓지족을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달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서로 갈라놓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말입니다.”

Evaṁ vutte,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ntaṁ etadavoca: “ekamekenapi, bho gotama, aparihāniyena dhammena samannāgatānaṁ vajjīnaṁ vuddhiyeva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Ko pana vādo sattahi aparihāniyehi dhammehi. Akaraṇīyāva, bho gotama, vajjī raññā māgadhena ajātasattunā vedehiputtena yadidaṁ yuddhassa, aññatra upalāpanāya aññatra mithubhed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왓사까라의 대답에서는 스승의 말에 대한 그의 이해가 드러납니다. 그는 원칙 하나만 갖추어도 번영을 기대할 수 있는데 일곱을 모두 갖추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가다의 왕은 전쟁으로는 왓지족을 어찌할 수 없고, 달래거나 갈라놓는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덧붙입니다. 이 마지막 말은 왓사까라 자신의 판단입니다. 왕의 신하로서 스승의 말을 나라를 다루는 방법으로 받아들인 모습이 보이며, 스승의 조건이 실제 정치 판단에 쓰이는 첫 자리이기도 합니다.

묵상

왓사까라는 공동체가 잘 유지되는 조건을 듣고, 그 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지 생각해요. 같은 정보를 듣고도 사람마다 다른 용도를 떠올릴 수 있지요. 최근 배운 내용을 나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써 보고 싶나요?

“존경하는 고따마시여, 그러면 저희는 이제 가겠습니다. 저희는 할 일도 많고 처리할 일도 많습니다.” “브라흐마나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대로 해라.” 그러자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인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는 스승의 말씀을 기뻐하고 받아들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Handa ca dāni mayaṁ, bho gotama, gacchāma, bahukiccā mayaṁ bahukaraṇīyā”ti. “Yassadāni tvaṁ, brāhmaṇa, kālaṁ maññasī”ti. Atha kho vassakāro brāhmaṇo magadhamahāmatt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왓사까라가 이제 떠나겠다고 하고, 스승은 그가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하라고 답합니다. 왓사까라는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고, 스승의 말은 그의 판단에 맡기는 짧은 허락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왓사까라가 스승의 말씀을 기뻐하고 동의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고 전합니다. 이 대화가 끝나면 스승은 수행자들을 모아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을 조건을 가르치십니다. 스승은 그를 붙잡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떠나는 시점을 그의 판단에 맡깁니다.

묵상

스승은 떠나겠다는 왓사까라에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라고 답해요. 누군가 대화를 마치겠다고 할 때 나는 어떤 마음이 드나요? 더 나누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상대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던 순간이 떠오르나요?

4 수행자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는 조건 27구절

스승은 함께 모이고 서로 돌보는 일부터 알아차림과 지혜를 닦는 일까지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는 조건들을 말씀하시고 날란다로 가십니다.

제사를 맡는 계층 출신인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께서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서 라자가하를 의지해 머무는 수행자들을 모두 모임 회관에 모이게 해라.”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e vassakāre brāhmaṇe magadhamahāmatte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gaccha tvaṁ, ānanda, yāvatikā bhikkhū rājagahaṁ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ṁ sannipāte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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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왓사까라가 떠난 뒤, 스승은 라자가하를 의지해 생활하는 수행자들을 모두 모으라고 하십니다. 앞에서는 한 나라가 쇠퇴하지 않는 조건을 살폈고, 이제 대화의 대상이 수행자 공동체로 바뀝니다. 모임에 부르는 이들은 그곳에 머무는 수행자 모두입니다. 전할 내용이 공동체 전체의 생활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묵상

스승은 라자가하 근처에 머무는 수행자를 모두 모이게 하라고 해요.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고 일부가 아니라 모두를 부르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어떤 무게를 가질까요? 내 주변에서 모두가 모여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이렇게 대답하고, 라자가하를 의지해 머무는 수행자들을 모두 모임 회관에 모이게 했다. 그런 뒤 스승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모였습니다. 스승이시여,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yāvatikā bhikkhū rājagahaṁ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ṁ sannipāt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sannipatito, bhante, bhikkhusaṅgho,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ṁ maññ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스승의 말씀대로 곧 수행자들을 모으고, 돌아와서 예를 갖추어 한쪽에 섭니다. 그리고 수행자 공동체가 모였으니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시라고 보고합니다. 스승이 명령한 일을 마친 뒤 결과를 알리고 판단을 스승에게 돌려 드리는 순서입니다. 아난다는 앞 장면에서 스승이 왓사까라에게 한 말과 같은 표현으로 결정을 스승에게 맡깁니다. 이 짧은 보고를 거쳐 스승이 모임 회관으로 가는 다음 장면이 열립니다.

묵상

아난다는 맡은 일을 마치고 모였다고 알린 뒤, 이제 어떻게 할지는 스승에게 맡겨요. 나는 맡은 일을 마쳤을 때 결과를 어떻게 알리나요? 다음 결정을 상대에게 넘길 때와 내가 이어서 정할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그러자 스승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모임 회관으로 가셨다. 그곳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신 스승께서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너희에게 쇠퇴를 막는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 그 말을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그 수행자들은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uṭṭhāyāsanā yena upaṭṭhānasāl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satta vo, bhikkhave,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ṁ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모임 회관에 도착한 스승은 쇠퇴를 막는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고 먼저 알리십니다. 왓지족에게 적용되던 일곱 조건에 이어, 수행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이 새로 제시되는 자리입니다. 내용을 나열하기 전에 듣고 잘 마음에 새기라고 당부하고, 수행자들은 그 요청에 응답합니다. 듣는 쪽이 주의를 기울여야 가르침이 전해집니다. 뒤에 나오는 조건들은 이러한 공동의 배움 속에서 전해집니다.

묵상

스승은 가르침을 시작하기 전에 잘 듣고 마음을 기울여라, 하고 먼저 말해요. 나는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때 듣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나요? 듣는 동안 마음이 자주 다른 곳으로 가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때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자주 모이고 모임을 많이 여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한마음으로 모이고, 한마음으로 자리를 뜨며, 한마음으로 공동체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Bhagavā etadavoca: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abhiṇhaṁ sannipātā sannipātabahulā bhav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samaggā sannipatissanti, samaggā vuṭṭhahissanti, samaggā saṅghakaraṇīyāni kar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행자 공동체의 첫째와 둘째 조건은 앞서 왓지족에게 제시한 내용과 대응합니다. 자주 모이는 일, 그리고 모이고 헤어지고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뜻을 함께하는 일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수행자들에게도 모임의 횟수만큼 서로 협력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두 조건은 모두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여기서 성장은 수행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조건과 이어져 있습니다.

묵상

한마음으로 모이고, 한마음으로 자리를 뜬다는 말은 시작과 끝을 함께 짚어요. 내가 속한 모임은 시작할 때만큼 끝날 때도 함께인가요? 모임이 끝난 뒤 흩어지는 모습에서 그 모임의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나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전에 정하지 않은 규칙을 새로 만들지 않고, 이미 정한 규칙을 없애지 않으며, 수행하며 배워야 할 규칙을 정해진 대로 받아들여 지키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apaññattaṁ na paññapessanti, paññattaṁ na samucchindissanti, 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함께 모이고 일을 처리하는 조건에 이어, 수행자들이 배워 지킬 규칙을 대하는 세 번째 조건이 나옵니다. 전에 정하지 않은 규칙을 새로 만들지 않고, 정해진 규칙을 없애지 않으며, 주어진 규칙을 받아들여 따르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따르는 생활의 바탕을 다룹니다. 이미 배워야 할 것으로 정해진 규칙과 실제 생활이 이어지는가에 초점을 둡니다.

묵상

함께 정한 규칙을 지키는 일이 공동체의 조건으로 제시돼요. 내가 속한 곳에서 모두가 같은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약속은 무엇인가요? 그 약속을 지키려다 어려움을 겪은 때가 있다면, 어떤 사정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나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오래전에 집을 떠나 수행해 온 경험 많은 어른들, 곧 공동체의 아버지이자 이끄는 이들을 받들고 존경하고 높이 여기고 예우하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만하다고 여기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다시 태어남으로 이끄는 목마른 갈망(딴하)이 일어나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e te bhikkhū therā rattaññū cirapabbajitā saṅghapitaro saṅghapariṇāyakā, te sakkarissanti garuṁ karissanti mānessanti pūjessanti, tesañca sotabbaṁ maññ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uppannāya taṇhāya ponobbhavikāya na vasaṁ gacch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 대목은 공동체의 두 가지 조건을 잇달아 말합니다.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로, 오래 수행해 온 원로를 존경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음속의 일로,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목마른 갈망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그것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말합니다. 원문은 갈망이 ‘일어난’ 경우를 전제하므로, 일어남과 끌려감을 구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밖으로는 존중, 안으로는 갈망에 휘둘리지 않음이 나란히 놓인 셈입니다.

묵상

목마른 갈망이 일어난 것과 거기에 끌려가는 것을 나누어 말하고 있어요.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지만 바로 행동하지 않고 잠시 머문 적이 있나요? 그 짧은 사이에 내 몸이나 생각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숲속 거처에 마음을 두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각자 스스로 알아차림(사띠)을 세워, 아직 오지 않은 바르게 살아가는 동료 수행자들은 찾아오고 이미 온 바르게 살아가는 동료 수행자들은 편안히 지내도록 살피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āraññakesu senāsanesu sāpekkhā bhav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paccattaññeva satiṁ upaṭṭhapessanti: ‘kinti anāgatā ca pesalā sabrahmacārī āgaccheyyuṁ, āgatā ca pesalā sabrahmacārī phāsu vihareyyu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번에는 머무는 곳과 서로를 대하는 마음이 조건이 됩니다. 숲속 거처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는 삶에 마음을 둔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조건에서는 각자가 스스로 알아차림을 세워, 좋은 동료가 찾아오고 이미 온 동료가 편안히 지내기를 살핍니다. 공동체의 살림을 남에게 미루지 않고 각자의 마음챙김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물론 원문은 그 이상의 구체적인 방법을 여기서 말하지 않습니다.

묵상

아직 오지 않은 동료와 이미 머무는 동료가 편안할 수 있도록 각자 살피라고 해요. 내가 속한 모임에서 편히 지내기 어렵게 만드는 작은 불편은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 미루기 전에 내가 먼저 물어볼 수 있는 일도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쇠퇴를 막는 이 일곱 원칙이 수행자들 사이에 유지되고, 수행자들이 이 일곱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너희에게 쇠퇴를 막는 또 다른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 그 말을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그 수행자들은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ṁ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첫 번째 일곱 원칙을 마무리하는 자리입니다. 스승은 이 원칙들이 수행자들 사이에 머무는 것에 더해, 그들이 실제로 따르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까지 조건으로 짚습니다. 원칙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어 스승이 또 다른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고 하자, 수행자들이 ‘알겠습니다’ 하고 응답합니다. 스승의 말과 청중의 응답이 하나의 마디를 이루며 다음 묶음으로 넘어가는 이음매입니다.

묵상

스승은 원칙이 남아 있는 것과 그에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것을 함께 말해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약속 하나는 어떤 일상 장면과 이어져 있나요? 그 약속을 설명하는 말 대신 한 장면을 떠올린다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나요?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일을 즐기지 않고, 일에 재미를 붙이지 않으며, 일을 즐기는 데 빠져 지내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잡담을 즐기지 않고, 잡담에 재미를 붙이지 않으며, 잡담을 즐기는 데 빠져 지내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Bhagavā etadavoca: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kammārāmā bhavissanti na kammaratā na kamm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bhassārāmā bhavissanti na bhassaratā na bhass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두 번째 묶음의 처음 두 조건은 일과 잡담에 빠져 지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일을 즐기고 재미를 붙이고 거기에 몰두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비슷한 뜻을 세 표현으로 거듭 밝히는 방식입니다. 수행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사람들이 무엇에 시간과 관심을 쏟는지도 살펴야 한다는 흐름입니다. 앞의 공동생활 규칙에 일상적인 습관의 문제가 더해집니다.

묵상

일이나 이야기에 재미를 붙이다가 하려던 다른 일을 잊은 적이 있나요? 이 대목의 “빠져 지낸다”는 말이 떠오르는 최근의 장면을 하나 골라 볼 수 있을까요? 그때 무엇을 즐기고 있었고, 무엇을 잠시 잊고 있었나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잠을 즐기지 않고, 잠에 재미를 붙이지 않으며, 잠을 즐기는 데 빠져 지내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여럿이 어울리는 일을 즐기지 않고, 그 일에 재미를 붙이지 않으며, 어울리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niddārāmā bhavissanti na niddāratā na nidd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saṅgaṇikārāmā bhavissanti na saṅgaṇikaratā na saṅgaṇikārāmatamanuyut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일과 잡담에 이어 잠과 사람들 틈에 어울리는 즐거움이 다뤄집니다. 앞에서는 자주 모이고 뜻을 함께하는 일을 권했지만, 여기서는 어울리는 즐거움 자체에 빠져 지내지 않는다는 조건을 듭니다. 따라서 모임을 모두 피하라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함께 해야 할 일을 하는 모임과, 어울리는 재미에 마음이 붙잡힌 상태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에 관한 말도 그 즐거움에 몰두하는 태도를 다루는 문맥에 놓입니다.

묵상

함께 해야 할 일을 위해 모이는 것과 어울리는 재미에 빠지는 것이 나란히 떠올라요. 최근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는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나요? 그 자리가 끝난 뒤 내 마음에 남은 느낌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그릇된 욕심을 품지 않고, 그릇된 욕심에 끌려가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나쁜 이들을 벗으로 삼지 않고, 나쁜 이들을 동료로 두지 않으며, 나쁜 이들과 가까이 어울리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pāpicchā bhavissanti na pāpikānaṁ icchānaṁ vasaṁ gat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pāpamittā bhavissanti na pāpasahāyā na pāpasampavaṅkā,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음속의 그릇된 욕심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연이어 살피는 대목입니다. 욕심을 품는 것과 이미 일어난 욕심에 끌려가는 것을 따로 말하고, 벗과 동료와 가깝게 어울리는 관계를 나누어 짚습니다. 이 세 가지는 벗·동료·가까운 사이라는 서로 다른 관계를 말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지킬 조건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뿐 아니라 바람과 관계도 포함됩니다. 이 구절만으로 특정한 사람을 나쁘다고 가려내는 별도의 기준이 제시되지는 않습니다.

묵상

가까이 지내는 벗과 동료에 관한 조건이 나와요.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내 말이나 행동이 평소와 달라졌던 때가 있나요? 상대를 좋다거나 나쁘다고 정하기 전에, 그 만남에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수행에서 작은 진전을 이루었다고 해서 도중에 멈추지 않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쇠퇴를 막는 이 일곱 원칙이 수행자들 사이에 유지되고, 수행자들이 이 일곱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na oramattakena visesādhigamena antarāvosānaṁ āpajj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두 번째 일곱 조건의 마지막은 수행에서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길을 중간에서 마치지 않는 것입니다. 얻은 성과를 하찮게 여기라는 평가보다, 그것을 최종 목적지로 삼아 더 나아가지 않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 뒤에는 일곱 원칙이 공동체 안에 남아 있고 실제로 따르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는 결론이 이어집니다. 앞서 나온 일과 잡담, 잠과 어울림, 욕심과 벗의 문제는 수행의 방향을 놓치지 않는 이 마지막 조건과 함께 하나의 묶음을 이룹니다.

묵상

작은 진전을 길의 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나와요. 배우던 일에서 조금 익숙해진 뒤 다시 궁금해진 것이 있었나요?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무엇인가요? 계속할지 쉴지 결정할 때 어떤 사정을 함께 살피고 싶나요?

“수행자들이여, 너희에게 쇠퇴를 막는 또 다른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 ….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믿음을 지니는 동안에는 …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동안에는 … 잘못을 두려워하는 동안에는 … 많이 배운 동안에는 … 힘써 노력하는 동안에는 … 알아차림을 굳게 세운 동안에는 … 지혜를 갖춘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pe….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saddhā bhavissanti …pe… hirimanā bhavissanti … ottappī bhavissanti … bahussutā bhavissanti … āraddhavīriyā bhavissanti … upaṭṭhitassatī bhavissanti … paññavanto bhav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번째 묶음은 수행자 개인이 갖출 일곱 가지 바탕을 제시합니다. 믿음,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 많이 배움, 꾸준히 힘씀, 알아차림, 지혜입니다. 앞의 두 마음은 잘못된 행동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삶의 방향을 믿고 배우며 마음을 살피는 일이 함께 묶입니다. 이 대목의 생략 표시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을 줄인 것입니다.

묵상

일곱 가지 바탕 가운데 “많이 배움”과 “알아차림”이 함께 나와요. 최근 배운 내용 하나가 실제 생활의 어떤 순간에 떠오른 적이 있나요? 아직 연결되는 장면이 없다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더 물어보고 싶나요?

“수행자들이여, 쇠퇴를 막는 이 일곱 원칙이 수행자들 사이에 유지되고, 수행자들이 이 일곱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너희에게 쇠퇴를 막는 또 다른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 그 말을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그 수행자들은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ṁ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번째 일곱 원칙 묶음이 끝나고 네 번째로 넘어가는 이음매입니다. 스승은 앞의 일곱 항목을 다시 정리해 마치고, 곧이어 또 다른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며 청중에게 듣고 마음에 새길 것을 당부합니다. ‘말하겠다’는 스승의 다짐과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수행자들의 대답이 짝을 이루어, 가르침이 응답 속에서 이어집니다. 앞선 두 묶음을 마칠 때와 같은 방식이 되풀이됩니다.

묵상

스승은 다음 가르침을 말하기 전에 듣고 잘 마음에 새기라고 당부해요. 최근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나요? 그때 내가 듣던 환경이나 마음 상태에서, 다시 마련해 보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돕는 알아차림을 기르는 동안에는 … 깨달음을 돕는, 현상을 가려 살피는 힘을 기르는 동안에는 … 깨달음을 돕는 꾸준한 노력을 기르는 동안에는 … 깨달음을 돕는 기쁨을 기르는 동안에는 … 깨달음을 돕는 몸과 마음의 고요함을 기르는 동안에는 … 깨달음을 돕는 마음의 집중(사마디)을 기르는 동안에는 … 깨달음을 돕는 치우치지 않는 평온을 기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Bhagavā etadavoca: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u satisambojjhaṅgaṁ bhāvessanti …pe… dhammavicayasambojjhaṅgaṁ bhāvessanti … vīriyasambojjhaṅgaṁ bhāvessanti … pītisambojjhaṅgaṁ bhāvessanti … passaddhisambojjhaṅgaṁ bhāvessanti … samādhisambojjhaṅgaṁ bhāvessanti … upekkhāsambojjhaṅgaṁ bhāve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번째 묶음은 깨달음을 돕는 일곱 가지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알아차림에서 시작해 현상을 가려 살피고 꾸준히 노력하며, 기쁨과 몸과 마음의 고요함, 집중과 평온을 기릅니다. 관련 가르침인 “먹이가 되는 것의 경”에서는 가려 살핌을 이로운 상태와 해로운 상태 등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일로 설명합니다. 이곳에서는 이 힘들을 기르는 일이 공동체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묵상

알아차림과 꾸준한 노력, 기쁨과 고요함이 한 목록에 함께 나와요. 최근 마음이 잠시 고요해졌던 순간이 떠오르나요? 그때 주변의 소리나 몸의 느낌은 어땠나요? 그런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수행자들이여, 쇠퇴를 막는 이 일곱 원칙이 수행자들 사이에 유지되고, 수행자들이 이 일곱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너희에게 쇠퇴를 막는 또 다른 일곱 원칙을 가르치겠다. 그 말을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그 수행자들은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Aparepi vo, bhikkhave, satta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ṁ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깨달음을 돕는 일곱 가지 힘을 다룬 뒤, 스승은 그것들이 수행자들 사이에 유지되고 실제로 따르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고 맺으십니다. 배우는 내용을 갖고 있는 것과 생활에서 따르는 것을 함께 살피는 기준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어서 또 다른 일곱 원칙을 전하겠다고 예고하고, 수행자들은 듣겠다고 대답합니다. 다음에 다룰 것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며 마음에 새기는가 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기른 마음의 힘이 앞으로 어떤 관찰과 연결되는지 살필 자리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당부를 다시 들을 때, 처음과 다르게 귀에 들어오는 말이 있나요? 최근 되풀이해서 들은 말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상황이나 내 경험이 달라져 그 말에서 새롭게 이해하게 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늘 그대로 있지 않음을 알아보는 인식(아닛짜산냐)을 기르는 동안에는 …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인식을 기르는 동안에는 … 아름답지 않다는 인식을 기르는 동안에는 … 위험을 알아보는 인식을 기르는 동안에는 … 버림에 대한 인식을 기르는 동안에는 … 탐냄이 사그라듦에 대한 인식을 기르는 동안에는 … 그쳐 사라짐에 대한 인식을 기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Bhagavā etadavoca: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aniccasaññaṁ bhāvessanti …pe… anattasaññaṁ bhāvessanti … asubhasaññaṁ bhāvessanti … ādīnavasaññaṁ bhāvessanti … pahānasaññaṁ bhāvessanti … virāgasaññaṁ bhāvessanti … nirodhasaññaṁ bhāve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번에는 대상을 어떻게 알아보며 마음에 익히는가를 일곱 가지로 제시합니다. 늘 그대로 있지 않음, 나라고 할 것이 없음, 아름답지 않음, 위험, 버림, 탐냄이 사그라듦, 그쳐 사라짐입니다. 붙들어 둘 수 있을 것처럼 보거나 나라고 여기는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대상을 살피는 관점들입니다. 조건은 계속 기르는가에 놓입니다. 이 일곱 가지를 꾸준히 길러 나가면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일곱 가지 인식 중에서 ‘버린다는 인식’이나 ‘탐냄이 사그라든다는 인식’은 일상에서 어떤 모습일까요? 내가 꼭 쥐고 있던 것을 조금 느슨하게 놓았던 순간이 있었는지, 아니면 아직 낯선 말로 남아 있는지 편하게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쇠퇴를 막는 이 일곱 원칙이 수행자들 사이에 유지되고, 수행자들이 이 일곱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너희에게 쇠퇴를 막는 여섯 원칙을 가르치겠다. 그 말을 듣고 잘 마음에 새겨라. 이제 말하겠다.” 그 수행자들은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satt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satt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Cha vo, bhikkhave, aparihāniye dhamme desessāmi, taṁ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원칙의 묶음을 맺고, 곧바로 여섯 가지 원칙의 묶음으로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원칙이 ‘유지된다’는 말과 수행자들이 그것을 ‘따르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이 함께 놓인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원칙은 말로만 남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실제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어 스승은 잘 듣고 마음을 기울이라고 당부하고, 수행자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며 새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뒤이어 전할 여섯 가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함께 갖추는 순간입니다.

묵상

원칙이 남아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그에 따라 사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함께 말해요. 내가 속한 모임에서 약속 하나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던 순간이 있나요? 그 장면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동료 수행자들에게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나 따로 있는 자리에서나 따뜻한 호의(멧따)를 담아 몸으로 행동하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따뜻한 호의를 담아 말하는 동안에는 … 동료 수행자들에게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나 따로 있는 자리에서나 따뜻한 호의를 담아 마음으로 대하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Bhagavā etadavoca: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mettaṁ kāyakammaṁ paccupaṭṭhāpessan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mettaṁ vacīkammaṁ paccupaṭṭhāpessanti …pe… mettaṁ manokammaṁ paccupaṭṭhāpessanti sabrahmacārīsu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새로 제시하는 여섯 원칙은 동료를 따뜻한 호의로 대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몸으로 하는 행동, 말, 마음이 차례로 나옵니다.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겉으로 보이는 친절에만 머물지 않고 말과 생각에도 이어져야 합니다. 남들이 보는 자리와 따로 있는 자리를 함께 든 것도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만 좋은 태도를 보이는가,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그 태도가 이어지는가를 살피게 합니다. 몸과 말과 마음 모두에서 이 호의가 이어지는 수행자에게는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동료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떠올리거나 말할 때, 내 마음의 온도는 마주 볼 때와 얼마나 같거나 다른가요? 몸, 말, 마음 중 나에게 가장 알아차리기 쉬운 문은 어느 쪽인가요? 그 차이를 알아차렸던 작은 순간이 있었나요?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들이 정당한 물품을 바른 방법으로 얻었다면, 심지어 음식을 받는 그릇 안에 든 것만큼 작은 몫까지도 따로 챙겨 혼자 쓰지 않고, 바른 행실(실라)을 갖춘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 쓰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e te lābhā dhammikā dhammaladdhā antamaso pattapariyāpannamattampi tathārūpehi lābhehi appaṭivibhattabhogī bhavissanti sīlavantehi sabrahmacārīhi sādhāraṇabhogī,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번 조건은 물품을 나누는 태도입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얻은 것이라면 음식을 받는 그릇에 담긴 것처럼 아주 작은 것까지도 나눕니다. 나누는 상대도 바른 행실을 갖춘 동료 수행자들로 적혀 있습니다. 얻은 것을 따로 떼어 자기 몫으로 가르지 않고 함께 쓰는 데서, 공동체의 화합이 말뿐 아니라 살림의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부당하게 얻은 것이나 그 밖의 경우까지 이 문장이 다루지는 않습니다.

묵상

‘그릇에 담긴 음식 정도까지도’ 나눈다는 말에서, 내가 자주 혼자 챙기게 되는 작은 것은 무엇인지 떠오르나요? 그것을 함께 쓰는 자리를 상상하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나요? 나누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면 그것도 솔직히 적어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깨지지 않고, 틈이 없고, 얼룩이 없고, 때 묻지 않으며,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며, 집착 없이 지키고, 마음의 집중으로 이끄는 바른 행실이 있다. 수행자들이 그런 행실을 동료 수행자들과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나 따로 있는 자리에서나 함께 지니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āni tāni sīlāni akhaṇḍāni acchiddāni asabalāni akammāsāni bhujissāni viññūpasatthāni aparāmaṭṭhāni samādhisaṁvattanikāni tathārūpesu sīlesu sīlasāmaññagatā viharissan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물품을 함께 쓰는 조건 다음에는 바른 행실을 함께 지니는 조건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여덟 가지 설명이 붙습니다. 행실이 깨지거나 틈이 나거나 얼룩지고 때 묻지 않아야 하며,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며 집착 없이 지키고 마음의 집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행실은 마음이 모일 바탕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행실을 동료들과 함께 지니고, 남들이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이어 간다는 점이 공동체의 조건입니다.

묵상

바른 행실을 남들이 보는 자리와 따로 있는 자리에서 함께 지킨다는 말이 나와요. 혼자 있을 때도 자연스럽게 지키게 되는 약속이 있나요? 그 약속이 이어지도록 도와준 사람이나 경험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고귀하고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하며,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괴로움이 다하도록 바르게 이끄는 관점(딧티)이 있다. 수행자들이 그런 관점을 동료 수행자들과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나 따로 있는 자리에서나 함께 지니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yāyaṁ diṭṭhi ariyā niyyānikā,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a, tathārūpāya diṭṭhiyā diṭṭhisāmaññagatā viharissanti sabrahmacārīhi āvi ceva raho ca,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섯 번째 조건은 바른 행실에 이어 관점을 함께 지니는 일입니다. 이 관점은 고귀하고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하며,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괴로움의 끝으로 이끈다고 설명됩니다. 어떤 관점을 따르고 그것이 실제로 어디로 이끄는가가 중요합니다. 동료 앞에서만 동의하는 척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나 따로 있는 자리에서나 같은 관점을 함께 지니는 삶이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괴로움이 다하는 쪽으로 이끄는 관점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어떤 경험에서 ‘이 생각이 나를 조금 자유롭게 했다’고 느꼈나요? 그런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눈 적이 있는지, 아직 없다면 어떤 점이 조심스러운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쇠퇴를 막는 이 여섯 원칙이 수행자들 사이에 유지되고, 수행자들이 이 여섯 원칙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는 동안에는, 수행자들이여,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쇠퇴가 아니라 성장이다.” 스승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무시면서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빤냐)란 이런 것이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Yāvakīvañca, bhikkhave, ime cha aparihāniyā dhammā bhikkhūsu ṭhassanti, imesu ca chasu aparihāniyesu dhammesu bhikkhū sandississan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ṁ pāṭikaṅkhā, no parihānī”ti. Tatra sud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nto gijjhakūṭe pabbate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섯 가지 원칙의 묶음이 끝나고, 이어서 스승이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서 자주 들려주셨다는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앞부분이 공동체가 쇠퇴하지 않는 조건이었다면, 이곳은 수행 자체의 순서를 짧게 요약합니다. 바른 행실, 집중, 지혜가 나란히 놓이고, 그중 바른 행실로 두루 닦인 집중이 큰 결실과 이익을 낸다고 말합니다. ‘자주’라는 말은 이 요약을 되풀이해 전하신 가르침임을 알려 줍니다. 이어서 집중이 지혜를 돕고 지혜가 마음을 풀어 주는 관계가 설명됩니다.

묵상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닦인 집중이 큰 결실을 가져온다고 해요. 하루 동안 한 말이나 행동이 마음을 모으는 데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마음이 편안했던 날을 떠올리면, 그날 사람들과 주고받은 말에서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마음을 흐리는 것(아사와)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마음의 흐림이다.” 그 뒤 스승께서는 라자가하에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자. 암발랏티까로 가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Atha kho bhagavā rājagah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ambalaṭṭhik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바른 행실에서 집중으로 이어진 가르침이 이번에는 지혜와 마음의 풀려남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은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리는 것, 존재에 매달리는 것,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뉩니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이 이 얽매임들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가르침이 마무리되면 장면은 다시 여정으로 돌아갑니다. 스승이 라자가하에서 암발랏티까로 가자고 제안하고, 아난다는 그 말씀에 응답합니다.

묵상

지혜로 닦인 마음이 얽매임에서 풀려난다는 말이 나와요. 무언가를 더 분명하게 알게 된 뒤, 전에는 강하게 붙들고 있던 생각이 느슨해진 경험이 있나요? 그때 새로 알게 된 것은 무엇이었고, 내 반응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 뒤 스승께서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암발랏티까에 이르셨다. 스승께서는 그곳 왕의 쉼터에 머무셨다. 스승께서는 암발랏티까의 왕의 쉼터에 머무시면서도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란 이런 것이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ambalaṭṭhikā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ṁ viharati rājāgārake. Tatrāpi sudaṁ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ṁ viharanto rājāgārake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큰 수행자 무리가 스승과 함께 암발랏티까로 이동하고 왕의 쉼터에 머뭅니다. 그곳에서도 스승은 바른 행실과 집중과 지혜에 관한 가르침을 자주 전하십니다. 앞서 라자가하에서 전한 말씀이 새로운 장소에서 되풀이되는 장면입니다. 행동과 생활을 바르게 가꾸는 일이 마음을 모으는 바탕이 되고, 충분히 모인 마음이 지혜를 기르는 바탕이 된다는 연결을 보여 줍니다. 여행의 장소만 따라가기보다, 그 길에서 어떤 가르침이 거듭 강조되는지도 함께 보게 합니다.

묵상

같은 가르침이 장소를 옮겨도 ‘자주’ 되풀이된다는 점이 눈에 띄어요. 나는 오래 들은 말 중에 매번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있나요? 반대로 너무 익숙해서 흘려듣게 된 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마음의 흐림이다.” 그 뒤 스승께서는 암발랏티까에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자. 날란다로 가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Atha kho bhagavā ambalaṭṭhikāyaṁ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nāḷand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발랏티까에서 되풀이된 가르침도 지혜로 닦인 마음이 풀려나는 데서 맺어집니다.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 각각 마음을 흐리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앞서 집중과 지혜를 기르는 순서를 말한 까닭이 이 결론에서 드러납니다. 마음의 고요함에서 더 나아가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데로 이어집니다. 이어서 스승이 날란다로 가자고 하시고 아난다가 응답하면서, 같은 가르침을 전하는 여정이 다음 장소로 나아갑니다.

묵상

가르침이 마무리된 뒤 스승이 다음 장소로 가자고 하시자 아난다가 응답해요. 누군가와 함께 움직이기 전에 짧게 뜻을 확인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서로 같은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떤 말이나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나요?

그 뒤 스승께서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날란다에 이르셨다. 스승께서는 그곳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nāḷandā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nāḷandāyaṁ viharati pāvārikambavan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발랏티까에서 출발한 일행이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도착합니다. 스승 혼자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큰 수행자 무리가 함께한다는 점이 다시 나타납니다. 앞의 장소에서는 바른 행실과 집중과 지혜에 관한 가르침이 반복되었고, 이곳에서는 사리뿟따가 스승을 찾아와 자신의 믿음을 밝히는 대화가 이어집니다. 이 짧은 도착 장면은 두 대화를 연결하고, 누가 어디에 머물며 다음 만남이 이루어지는지 알려 줍니다. 여정의 이동과 가르침의 전개가 함께 이어집니다.

묵상

일행은 새로운 도시에 이르러 망고 숲에 머물러요.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쉬어 갈 자리를 찾았던 기억이 있나요?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으며 조금씩 익숙해졌나요? 함께 있던 사람이 있다면 어떤 도움을 주고받았나요?

5 사리뿟따의 믿음과 그 근거 12구절

사리뿟따가 스승에 대한 확신을 말하자 스승은 그가 무엇을 아는지 물으십니다. 사리뿟따는 성문을 지키는 이의 비유로 가르침에서 미루어 아는 이치를 설명합니다.

그 뒤 사리뿟따 수행자가 스승께 다가가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사리뿟따 수행자가 스승께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이렇게 깊이 믿습니다. 깨달음에 관한 앎에서 스승보다 더 뛰어난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evaṁ pasanno ahaṁ,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ṁ sambodhiy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날란다에서 사리뿟따가 스승을 찾아와 자신의 깊은 믿음을 밝힙니다. 그는 깨달음에 관한 앎을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모두 들어 스승보다 뛰어난 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까지 함께 놓고 비교합니다. 이것은 사리뿟따가 밝히는 확신이며, 곧 스승은 그가 과거와 미래의 깨달은 이들의 마음을 직접 아는지 되물으십니다. 그 확신이 어떤 앎에 근거하는지 살피는 대화가 이어집니다.

묵상

사리뿟따 님은 확신을 과거, 미래, 현재로 나누어 말해요. 나는 누군가를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 어느 시간까지 닿는다고 느끼나요? 믿음과 확인 사이에서 지금 내게 가장 궁금한 것은 무엇인가요?

“사리뿟따여, 너는 참으로 대담하고 당당한 말을 했구나. 확실하다고 단언하며 사자처럼 외쳤다.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이렇게 깊이 믿습니다. 깨달음에 관한 앎에서 스승보다 더 뛰어난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말이다.”

“Uḷārā kho te ayaṁ, sāriputta,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ṁ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ṁpasanno ahaṁ,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ṁ sambodhiy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사리뿟따가 스승 앞에서 한 말을 스승께서 그대로 되짚어 주는 대목입니다. 스승은 그 말을 웅장하고 당당하다고 하며 사자의 외침이라 부릅니다. 사자의 외침은 두려움 없이 분명하게 선언하는 말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사리뿟따의 선언은 과거·미래·현재 어느 때에도 깨달음에서 스승보다 앞서는 이가 없다는 것이어서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바로 이 넓은 주장 때문에, 이어지는 문답에서 그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했는지 묻게 됩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이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때 그 말의 범위는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만큼이었을까요? 사리뿟따처럼 세 시기를 다 아우르는 말과, 내가 직접 겪은 만큼만 하는 말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사리뿟따여, 과거에 있었던,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모든 스승의 마음을 너 자신의 마음으로 꿰뚫어 알았는가? ‘그분들의 행실은 이러했다. 갖춘 자질과 지혜는 이러했고, 이런 마음 상태에 머물렀으며, 이렇게 얽매임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말이다.”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Kiṁ te, sāriputta, ye te ahesuṁ atī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ṁsīlā te bhagavanto ahesuṁ itipi, evaṁdhammā evaṁpaññā evaṁvihārī evaṁvimuttā te bhagavanto ahesuṁ itipī’”ti? “No hetaṁ, bhant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께서 사리뿟따의 선언을 하나씩 짚어 가는 첫 물음입니다. 먼저 과거의 부처들을 다룹니다. 물음의 내용은 그분들의 행실, 성품, 지혜, 머묾, 풀려남을 사리뿟따가 자기 마음으로 직접 꿰뚫어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사리뿟따는 그렇지 않다고 곧바로 인정합니다. 이 인정이 뒤에 나올 ‘추론’ 이야기의 바탕이 됩니다. 그의 확신은 다른 이의 마음을 읽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묵상

사리뿟따는 깊은 믿음을 밝힌 뒤에도, 그분들의 마음을 꿰뚫어 알지는 못했다고 답해요. 누군가를 믿으면서도 아직 모르는 부분을 남겨 두었던 경험이 있나요? 모른다는 사실을 말로 밝혔을 때 대화는 어떻게 이어졌나요?

“그러면 사리뿟따여, 미래에 있을,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모든 스승의 마음을 너 자신의 마음으로 꿰뚫어 알았는가? ‘그분들의 행실은 이러할 것이다. 갖출 자질과 지혜는 이러할 것이고, 이런 마음 상태에 머물며, 이렇게 얽매임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Kiṁ pana te, sāriputta, ye 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cetasā ceto paricca viditā: ‘evaṁsīl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i, evaṁdhammā evaṁpaññā evaṁvihārī evaṁvimuttā te bhagavanto bhavissanti itipī’”ti? “No hetaṁ, bhant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같은 물음이 이번에는 미래의 깨달은 이들에게로 옮겨 갑니다. 그분들의 행실과 자질, 지혜와 머무는 상태, 얽매임에서 벗어난 모습을 사리뿟따가 직접 아는지 묻습니다. 사리뿟따는 이번에도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이는 지금 사리뿟따가 어떤 앎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대화입니다. 과거와 미래 어느 쪽도 마음을 직접 꿰뚫어 안 것은 아니라면, 그의 확신에는 다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물음이 남습니다.

묵상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스승은 묻고, 사리뿟따는 아니라고 답해요. 앞날의 일이나 사람에 대해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있다면 그건 무엇에서 온 걸까요? 그 믿음은 직접 본 것과 얼마나 가까울까요?

“그러면 사리뿟따여, 지금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나의 마음을 너 자신의 마음으로 꿰뚫어 알았는가? ‘스승의 행실은 이러하다. 갖추신 자질과 지혜는 이러하고, 이런 마음 상태에 머무시며, 이렇게 얽매임에서 벗어나 계신다’고 말이다.”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리뿟따여, 너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아는 앎이 없다.”

“Kiṁ pana te, sāriputta, ahaṁ etarahi arahaṁ sammāsambuddho cetasā ceto paricca vidito: ‘evaṁsīlo bhagavā itipi, evaṁdhammo evaṁpañño evaṁvihārī evaṁvimutto bhagavā itipī’”ti? “No hetaṁ, bhante”. “Ettha ca hi te, sāriputta,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ṁ natth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물음이 마지막으로 눈앞에 있는 스승 자신에게 닿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부처님의 마음조차 사리뿟따는 꿰뚫어 알지 못한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스승께서 결론을 말합니다. 과거·미래·현재의 바르게 깨달은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아는 앎이 그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은 사리뿟따가 자신의 앎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위에서 나옵니다. 다음 물음은 그렇다면 그 선언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묵상

스승은 눈앞에 있는 자신의 마음마저 사리뿟따가 알지 못한다고 짚어요.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여겼다가 어긋난 적이 있나요? 그런 경험 뒤에 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사리뿟따여, 너는 어째서 이토록 대담하고 당당한 말을 하며, 확실하다고 단언하고 사자처럼 외쳤는가?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이렇게 깊이 믿습니다. 깨달음에 관한 앎에서 스승보다 더 뛰어난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말이다.” “스승이시여, 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아는 앎이 없습니다. 다만 가르침을 통해 미루어 아는 이치(담만와야)는 알고 있습니다.”

Atha kiñcarahi te ayaṁ, sāriputta, uḷārā āsabhī vācā bhāsitā, ekaṁso gahito, sīhanādo nadito: ‘evaṁpasanno ahaṁ, bhante, bhagavati; na cāhu na ca bhavissati na cetarahi vijjati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bhagavatā bhiyyobhiññataro yadidaṁ sambodhiyan’”ti? “Na kho me, bhante, atītānāgatapaccuppannesu arahantesu sammāsambuddhesu cetopariyañāṇaṁ atthi, api ca me dhammanvayo vidi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께서 앞의 결론을 안고 처음의 선언을 다시 꺼내 묻습니다. 마음을 아는 앎이 없다면서 어떻게 그런 당당한 말을 했느냐는 물음입니다. 사리뿟따는 마음을 꿰뚫어 아는 앎은 없다고 다시 인정한 뒤, 그래도 가르침에서 이어지는 추론은 안다고 답합니다. 여기서 그의 확신은 가르침의 이치에서 미루어 안 것임이 드러납니다. 그 추론이 어떤 것인지는 이어지는 비유가 설명합니다.

묵상

사리뿟따는 가르침에서 미루어 알았다고 답해요. 나는 확신하는 것을 직접 본 것과 이치로 미루어 안 것 중 어느 쪽으로 더 자주 얻나요? 미루어 안 것을 말할 때 그 사실을 함께 밝힌다면 말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스승이시여,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왕의 국경 도시에 튼튼한 흙 둑과 튼튼한 성벽, 아치 모양의 문이 있고 성문은 하나뿐이라고 합시다. 그곳에는 현명하고 능숙하고 슬기로운 문지기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막고 아는 사람은 들여보냅니다. 그가 성 둘레의 순찰 길을 따라 돌아보아도 성벽의 틈이나 구멍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고양이가 빠져나갈 만한 틈조차 없을 것입니다.”

Seyyathāpi, bhante, rañño paccantimaṁ nagaraṁ daḷhuddhāpaṁ daḷhapākāratoraṇaṁ ekadvāraṁ, tatrassa dovāriko paṇḍito viyatto medhāvī aññātānaṁ nivāretā ñātānaṁ pavesetā. So tassa nagarassa samantā anupariyāyapathaṁ anukkamamāno na passeyya pākārasandhiṁ vā pākāravivaraṁ vā, antamaso biḷāranikkhamanamattamp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사리뿟따가 추론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려고 드는 비유입니다. 성벽이 튼튼하고 문이 하나뿐인 변경의 성읍에 슬기로운 문지기가 있고, 그는 성벽을 돌아보아도 고양이가 빠져나갈 틈 하나 찾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성에 드나드는 것은 모두 한 문을 지나야 한다는 조건을 만들어 줍니다. 비유의 요점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문지기가 내리는 결론과, 그 결론이 깨달은 이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있습니다.

묵상

문지기는 성벽을 한 바퀴 돌며 고양이가 빠져나갈 틈까지 찾아보았어요. 내가 무언가를 확신하기 전에 이렇게 구석구석 살펴본 적이 있나요? 살핀 끝에 틈이 없다고 느꼈을 때와, 살피지 않고 없다고 믿을 때는 마음이 어떻게 다를까요?

“그 문지기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도시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몸집이 큰 생명체는 누구든 모두 바로 이 문으로 들어오거나 나간다.’”

Tassa evamassa: ‘ye kho keci oḷārikā pāṇā imaṁ nagaraṁ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 sabbe te imināva dvārena pavisanti vā nikkhamanti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비유의 결론 부분입니다. 문지기는 성벽 어디에도 틈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덩치 큰 생명은 모두 이 문으로만 드나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덩치 큰’이라는 말이 따로 붙습니다. 눈에 띄는 큰 생명만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성의 구조를 살펴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런 판단의 방식이 곧 뒤에 나오는 ‘추론’의 성격을 이해하게 해 줍니다.

묵상

문지기는 성의 구조를 확인한 뒤, 드나들 수 있는 문이 하나라고 판단해요. 내가 최근 내린 판단에는 어떤 확인 과정이 있었나요? 직접 살펴본 범위와 아직 살피지 않은 범위를 나누어 말한다면, 그 판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스승이시여, 저도 그와 같이 가르침을 통해 미루어 아는 이치를 알고 있습니다. ‘스승이시여, 과거에 있었던,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스승들은 모두 마음을 흐리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다섯 장애(니와라나)를 버렸습니다. 알아차림을 세우는 네 가지 바탕(사띠빳타나)에 마음을 굳게 두고, 깨달음을 돕는 일곱 힘(봇장가)을 있는 그대로 길러, 더없이 높은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Evameva kho me, bhante, dhammanvayo vidito: ‘ye te, bhante, ahesuṁ atī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비유를 깨달은 이들에게 옮기는 첫 적용입니다. 사리뿟따는 과거의 모든 바르게 깨달은 이들이 같은 길을 걸었다고 말합니다. 그 길은 마음을 덮어 지혜를 약하게 하는 다섯 장애를 버리고, 알아차림을 굳게 세우는 네 가지 수행에 마음을 두며, 깨달음의 일곱 요소를 있는 그대로 닦는 것입니다. 하나뿐인 성문의 비유에서 문이 바로 이 길에 해당합니다. 사리뿟따는 이 공통된 길을 근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묵상

다섯 장애를 버리고 알아차림을 굳게 세운다는 길이 여러 부처에게 같았다고 사리뿟따는 말해요. 내 마음을 덮어 흐리는 것 가운데 오늘 가장 자주 나타난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이 나타났을 때 알아차림이 잠깐이라도 머문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스승이시여, 미래에 있을,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스승들도 모두 마음을 흐리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다섯 장애를 버릴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세우는 네 가지 바탕에 마음을 굳게 두고, 깨달음을 돕는 일곱 힘을 있는 그대로 길러, 더없이 높은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이룰 것입니다.”

Yepi te, bhant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sabbe te bhagavant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ā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is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같은 추론이 미래로 확장됩니다. 사리뿟따는 앞으로 나타날 부처들도 과거와 같은 길, 곧 다섯 장애를 버리고 알아차림의 확립에 마음을 세워 깨달음의 일곱 요소를 닦는 길을 통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룰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길이 하나라면 문이 하나뿐인 비유처럼 미래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앞 대목과 같은 문장을 미래형으로 되풀이하면서 세 시기를 채워 갑니다.

묵상

아직 오지 않은 부처들도 같은 길로 가리라는 말에는 길이 하나라는 믿음이 담겨 있어요. 나는 아직 가 보지 않은 앞날에 대해 어떤 길이 통하리라고 믿고 있나요? 그 믿음은 지금까지 걸어온 경험 중 어떤 일에서 나왔을까요?

“스승이시여, 지금 스승께서도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으로서, 마음을 흐리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다섯 장애를 버리셨습니다. 알아차림을 세우는 네 가지 바탕에 마음을 굳게 두고, 깨달음을 돕는 일곱 힘을 있는 그대로 길러, 더없이 높은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스승께서는 날란다의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무시면서도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란 이런 것이다.”

Bhagavāpi, bhante, etarahi arahaṁ sammāsambuddho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catūsu satipaṭṭhānesu supatiṭṭhitacitto satta bojjhaṅge yathābhūtaṁ bhāvetvā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Tatrapi sudaṁ bhagavā nāḷandāyaṁ viharanto pāvārikambavane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추론의 마지막 적용은 지금의 스승입니다. 사리뿟따는 스승 자신도 같은 길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고 말해 세 시기를 모두 채웁니다. 이어서 날란다의 망고 숲에서도 스승께서 수행자들에게 자주 하시던 가르침이 소개됩니다. 그 가르침은 행실과 마음의 집중과 지혜를 이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리뿟따가 말한 공통된 길이 스승의 일상적인 가르침 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스승은 날란다에서도 행실, 집중, 지혜의 순서를 자주 이야기하셨다고 해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듣고도 그때마다 다르게 들린 적이 있나요? 반복해서 들은 말 가운데 요즘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흘러드는 것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이라는 흘러드는 것, 존재라는 흘러드는 것, 참모습을 알지 못함이라는 흘러드는 것이다.”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날란다에서 거듭 전한 가르침은 바른 행실과 집중과 지혜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합니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집중을 닦고, 집중을 바탕으로 지혜를 닦으며, 지혜로 닦인 마음이 흘러드는 것에서 풀려납니다. 끝에는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이라는 세 가지가 흘러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각 단계가 서로를 받쳐 주는 관계입니다. 생활을 바르게 가꾸는 일과 마음을 닦는 일이 함께 놓입니다.

묵상

바른 행실이 마음을 모으는 바탕이 된다는 말이 나와요. 누군가와의 일을 차분히 마무리한 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경험이 있나요? 그때 한 말이나 행동 가운데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비슷한 장면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요?

6 그릇된 행실이 낳는 다섯 가지 손실 8구절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을 만난 스승은 바른 행실을 어긴 사람이 재산과 평판을 잃는 등 다섯 가지 손실을 겪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뒤 스승께서는 날란다에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자. 빠딸리 마을로 가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그 뒤 스승께서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빠딸리 마을에 이르셨다. 빠딸리 마을에서 집에 살며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우빠사까)이 이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빠딸리 마을에 도착하셨다고 한다.”

Atha kho bhagavā nāḷandāyaṁ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pāṭali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pāṭaligāmo tadavasari. Assosuṁ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ā kira pāṭaligāmaṁ anuppat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날란다에서의 가르침과 문답 뒤에 일행은 빠딸리 마을로 이동합니다. 스승이 아난다에게 떠나자고 하시고 아난다가 응답한 다음, 큰 수행자 무리가 함께 도착하는 순서입니다. 이곳에서는 집에 살면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도착 소식을 듣습니다. 앞서 수행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이제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이 스승을 맞이하고 머물 곳을 마련하는 장면이 뒤따르며, 수행 공동체와 마을 사람들의 관계도 여정 안에 드러나게 됩니다.

묵상

스승은 원하는 만큼 머문 뒤에야 다음 마을로 떠나자고 하셨어요. 나는 한곳에 머물 만큼 머물렀다고 느끼며 다음으로 옮긴 적이 있나요? 떠날 때를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혹은 알아차리지 못해 오래 머문 적은 없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이 스승께 갔다. 가서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이 스승께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저희가 마련한 손님 숙소에 와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침묵으로 받아들이셨다.

Atha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ā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ntaṁ etadavocuṁ: “adhivāsetu no, bhante, bhagavā āvasathāgāran”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빠딸리 마을 사람들이 스승을 손님 숙소로 초대하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집에서 생활하면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찾아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은 뒤에 청을 꺼냅니다. 스승께서 말없이 계신 것을 경은 초대를 받아들이신 것으로 밝힙니다. 여기서는 침묵이 수락의 표시라는 점이 분명합니다. 이 만남은 마을 사람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고 스승이 그들에게 바른 행실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이어집니다. 여정 중의 가르침은 이렇게 마을 사람들의 초대에서 시작됩니다.

묵상

신자들은 찾아가 예를 올리고 앉은 뒤에 청을 꺼내요.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나는 어떤 순서로 다가가나요?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살피게 되나요? 말보다 몸짓이나 표정에서 뜻을 알아차렸던 순간이 있나요?

그러자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은 스승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린 뒤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았다. 그리고 손님 숙소로 가서 바닥 전체에 깔개를 펴고 자리를 마련하고 물항아리를 놓고 기름 등불을 켰다. 다시 스승께 가서 예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신자들이 스승께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손님 숙소의 바닥 전체에 깔개를 폈습니다. 자리를 마련했고 물항아리를 놓았으며 기름 등불을 켰습니다. 스승이시여, 이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Atha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to adhivāsanaṁ vi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yena āvasathāgāra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sabbasanthariṁ āvasathāgāraṁ santharitvā āsanāni paññapetvā udakamaṇikaṁ patiṭṭhāpetvā telapadīpaṁ ārop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aṁsu. Ekamantaṁ ṭhitā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ntaṁ etadavocuṁ: “sabbasantharisanthataṁ, bhante, āvasathāgāraṁ, āsanāni paññattāni, udakamaṇiko patiṭṭhāpito, telapadīpo āropito;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ṁ maññ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초대를 받아들인 스승께 신자들이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깔개, 자리, 물, 등불을 하나씩 마련한 다음 다시 찾아가 보고합니다. 청할 때는 앉았지만, 준비를 알릴 때는 한쪽에 서 있습니다. 준비한 물건들은 서술자의 설명과 신자들의 말에서 거듭 나옵니다. 손님을 맞으려는 마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졌음을 보여 주는 반복입니다. 언제 오실지는 스승께 맡깁니다.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도는 행동도 상대를 존중하는 당시의 예법입니다.

묵상

신자들은 깔개, 자리, 물, 등불을 하나씩 마련하고 돌아와 알려요. 누군가를 맞이하려고 내가 준비해 본 작은 일은 무엇이었나요? 준비를 마친 뒤 상대에게 결정을 맡기는 마음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저녁 무렵 옷을 입고 음식을 받는 그릇과 겉옷을 챙겨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손님 숙소로 가셨다. 가서 발을 씻고 숙소에 들어가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동쪽을 향해 앉으셨다.

Atha kho bhagavā sāyan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ṁ bhikkhusaṅghena yena āvasathāgār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āde pakkhāletvā āvasathāgāraṁ pavisitvā majjhimaṁ thambhaṁ nissāya puratthābhimukho nisī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저녁 무렵 스승이 수행자들과 함께 마을의 손님 숙소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 장면입니다. 음식을 받는 그릇과 겉옷은 수행자가 길을 다닐 때 지니는 물건입니다. 스승은 발을 씻고 들어가 가운데 기둥 곁에 동쪽을 보고 앉으십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수행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각각 어느 벽을 등지고 앉는지 설명합니다. 그에 앞서 스승의 위치를 먼저 알려 줍니다. 여정의 이동 장면에서 한자리에 모여 가르침을 듣는 장면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묵상

스승은 숙소에 도착해 발을 씻고 들어가 앉아요. 길을 걷거나 일을 마친 뒤 다른 자리에 들어서기 전에 내가 하는 작은 동작이 있나요? 손을 씻거나 잠시 앉는 것처럼, 앞의 일과 다음 일 사이를 나눠 주는 순간은 어떤 느낌인가요?

수행자 공동체도 발을 씻고 손님 숙소에 들어가, 서쪽 벽 곁에 동쪽을 향해 스승을 앞에 두고 앉았다.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도 발을 씻고 숙소에 들어가, 동쪽 벽 곁에 서쪽을 향해 스승을 앞에 두고 앉았다. 그러자 스승께서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가하빠띠)이여, 행실이 그릇된 사람에게는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다섯 가지 손실이 있다.”

Bhikkhusaṅghopi kho pāde pakkhāletvā āvasathāgāraṁ pavisitvā pacchimaṁ bhittiṁ nissāya puratthābhimukho nisīdi bhagavantameva purakkhatvā. Pāṭaligāmikāpi kho upāsakā pāde pakkhāletvā āvasathāgāraṁ pavisitvā puratthimaṁ bhittiṁ nissāya pacchimābhimukhā nisīdiṁsu bhagavantameva purakkhatvā. Atha kho bhagavā pāṭaligāmike upāsake āmantesi: “pañcime, gahapatayo, ādīnavā dussīlassa sīlavipattiy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행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스승을 앞에 두고 앉은 뒤 가르침이 시작됩니다. 수행자는 서쪽 벽에서 동쪽을, 신자는 동쪽 벽에서 서쪽을 향해 앉습니다. 스승은 마을 사람들을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살림을 꾸리고 사회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먼저 바른 행실을 잃었을 때 생기는 손실 다섯 가지를 예고합니다. 뒤이어 재산과 평판, 사람들과의 만남, 죽음과 다음 삶까지 차례로 다룹니다.

묵상

스승은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을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라고 불러요. 내 생활의 책임이나 역할을 알아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런 부름이 뒤이어 듣는 이야기를 나와 연결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그릇되어 바른 행실을 잃은 사람은 방심하여 소홀히 한 탓에 큰 재산을 잃는다. 이것이 행실이 그릇된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첫째 손실이다.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그릇되어 바른 행실을 잃은 사람에게는 나쁜 평판이 퍼진다. 이것이 행실이 그릇된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둘째 손실이다.”

Katame pañca? Idha,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pamādādhikaraṇaṁ mahatiṁ bhogajāniṁ nigacchati. Ayaṁ paṭham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Puna caparaṁ, gahapatayo, dussīlassa sīlavipannassa pāpako kittisaddo abbhuggacchati. Ayaṁ dutiy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다섯 손실 가운데 처음 두 가지는 재산과 평판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방심하고 소홀히 하는 태도를 재산을 잃는 까닭으로 듭니다. 이는 몸을 덜 움직이는 게으름보다 넓은 뜻을 가리킵니다. 둘째는 그릇된 행실을 지닌 사람에게 나쁜 평판이 퍼지는 결과를 말합니다. 스승은 두 가지를 말할 때마다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손실이라고 다시 짚어 줍니다. 죽음이나 다음 삶을 말하기에 앞서, 살림을 꾸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현재의 생활부터 살펴보는 순서입니다.

묵상

돌봐야 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손해가 커진 경험이 있나요? 처음에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나중에 어떤 계기로 알게 되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돌아볼 때 같은 상황에서 더 살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그릇되어 바른 행실을 잃은 사람은 어떤 모임에 가든, 왕족의 모임이든 제사를 맡는 계층 사람들의 모임이든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의 모임이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의 모임이든, 자신감 없이 위축되어 간다. 이것이 행실이 그릇된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셋째 손실이다.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그릇되어 바른 행실을 잃은 사람은 정신이 혼란스러운 채 죽는다. 이것이 행실이 그릇된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넷째 손실이다.”

Puna caparaṁ,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yaññadeva parisaṁ upasaṅkamati—yadi khattiyaparisaṁ yadi brāhmaṇaparisaṁ yadi gahapatiparisaṁ yadi samaṇaparisaṁ—avisārado upasaṅkamati maṅkubhūto. Ayaṁ tatiy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Puna caparaṁ,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sammūḷho kālaṁ karoti. Ayaṁ catutth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셋째 손실은 사람들의 모임에 나설 때 위축되는 것이고, 넷째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죽는 것입니다. 왕족, 제사를 맡는 계층, 집안을 꾸리는 이들, 집을 떠나 수행하는 이들이 차례로 나옵니다. 여러 모임에 나설 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앞서 다룬 재산이나 평판에서 시선을 옮겨, 사람이 스스로 겪는 불안정함을 다룹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그릇된 행실의 손실이며, 모든 위축이나 죽음의 혼란을 거꾸로 그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마음에 걸리는 일을 품은 채 사람들 앞에 나섰던 적이 있나요? 그 일이 내 말투나 표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아직 풀지 못한 일이 있다면, 혼자 계속 떠올리는 것 말고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그릇되어 바른 행실을 잃은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비참한 곳, 괴로운 삶으로 떨어지는 곳인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이 행실이 그릇된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다섯째 손실이다.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이것이 행실이 그릇된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다섯 가지 손실이다.”

Puna caparaṁ, gahapatayo, dussīlo sīlavipanno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apāyaṁ duggatiṁ vinipātaṁ nirayaṁ upapajjati. Ayaṁ pañcamo ādīnavo dussīlassa sīlavipattiyā. Ime kho, gahapatayo, pañca ādīnavā dussīlassa sīlavipattiy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다섯째 손실을 말하며 손실의 목록을 마칩니다. 앞의 네 가지가 재산과 평판, 사람들과의 만남, 죽는 순간을 다루었다면 마지막은 죽은 뒤의 삶을 다룹니다. 비참한 곳, 괴로운 삶의 자리, 아래로 떨어짐, 지옥이라는 표현이 모두 한 방향의 결과를 가리킵니다. 스승은 바른 행실을 잃은 데서 오는 손실이라는 말을 다시 밝히고, 처음 예고한 다섯 가지를 한데 묶습니다. 이어서는 바른 행실을 갖춘 삶의 이익을 같은 순서로 말합니다.

묵상

앞의 네 가지는 지금의 삶, 다섯째는 죽은 뒤의 이야기예요. 이 순서가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한다고 느끼나요? 다섯 가지를 한꺼번에 듣고 나서 마음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7 바른 행실이 가져오는 다섯 가지 이익 5구절

스승은 바른 행실을 지키는 사람이 얻는 다섯 가지 이익을 말씀하신 뒤,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혼자 머무십니다.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바른 사람에게는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바르고 바른 행실을 갖춘 사람은 방심하지 않고 힘쓴 덕에 큰 재산을 얻는다. 이것이 행실이 바른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첫째 이익이다.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바르고 바른 행실을 갖춘 사람에게는 좋은 평판이 퍼진다. 이것이 행실이 바른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둘째 이익이다.”

Pañcime, gahapatayo, ānisaṁsā sīlavato sīlasampadāya. Katame pañca? Idha,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appamādādhikaraṇaṁ mahantaṁ bhogakkhandhaṁ adhigacchati. Ayaṁ paṭhamo ānisaṁso sīlavato sīlasampadāya. Puna caparaṁ, gahapatayo, sīlavato sīlasampannassa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cchati. Ayaṁ dutiyo ānisaṁso sīlavato sīlasampad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손실의 목록에 이어 이익의 목록이 시작됩니다. 앞서 방심하고 소홀히 하는 태도가 재산의 손실로 이어졌다면, 여기서는 방심하지 않고 힘쓰는 태도가 재산을 얻는 바탕으로 나옵니다. 나쁜 평판 대신 이번에는 좋은 평판이 나옵니다. 두 목록은 같은 순서를 따라가므로 생활 태도와 결과의 관계를 나란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스승은 하나씩 말씀하실 때마다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이익이라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재산이나 평판만을 따로 떼어 목표로 삼기보다, 그것이 어떤 삶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는지 밝히는 대목입니다.

묵상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살펴서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큰 성과가 아니더라도, 작은 손해를 막거나 누군가의 신뢰를 얻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그때 내가 실제로 살핀 것은 무엇이고, 계속하기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바르고 바른 행실을 갖춘 사람은 어떤 모임에 가든, 왕족의 모임이든 제사를 맡는 계층 사람들의 모임이든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의 모임이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의 모임이든, 자신감 있고 위축되지 않은 채 간다. 이것이 행실이 바른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셋째 이익이다.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바르고 바른 행실을 갖춘 사람은 정신이 혼란스럽지 않은 채 죽는다. 이것이 행실이 바른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넷째 이익이다.”

Puna caparaṁ,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yaññadeva parisaṁ upasaṅkamati—yadi khattiyaparisaṁ yadi brāhmaṇaparisaṁ yadi gahapatiparisaṁ yadi samaṇaparisaṁ visārado upasaṅkamati amaṅkubhūto. Ayaṁ tatiyo ānisaṁso sīlavato sīlasampadāya. Puna caparaṁ,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asammūḷho kālaṁ karoti. Ayaṁ catuttho ānisaṁso sīlavato sīlasampad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셋째와 넷째 이익은 앞서 말한 손실과 짝을 이룹니다. 사람들의 모임에 나설 때 자신감이 있고 위축되지 않는 것, 혼란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죽는 것입니다. 스승은 왕족에서 집을 떠난 수행자에 이르기까지 같은 네 모임을 다시 듭니다. 상대의 지위가 바뀌어도 자신의 행실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는 흐름입니다. 죽음에 관한 말에서는 혼란스럽지 않다는 점을 밝힙니다. 이를 슬픔이나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말로 넓히지는 않아야 합니다. 바른 행실이 삶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미치는 영향을 다룹니다.

묵상

자신이 한 일을 숨김없이 설명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마음이 많이 달라졌나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내 경우에 어떤 경험이나 준비에서 오나요?

“또한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행실이 바르고 바른 행실을 갖춘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이것이 행실이 바른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다섯째 이익이다.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이것이 행실이 바른 사람에게 바른 행실을 갖춘 데서 오는 다섯 가지 이익이다.”

Puna caparaṁ, gahapatayo, sīlavā sīlasampanno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ti. Ayaṁ pañcamo ānisaṁso sīlavato sīlasampadāya. Ime kho, gahapatayo, pañca ānisaṁsā sīlavato sīlasampadā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다섯째 이익을 말하며 이익의 목록을 맺습니다. 앞의 손실 목록이 죽은 뒤 괴로운 곳에 태어나는 일로 끝났다면, 이 목록은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나는 일로 끝납니다. 재산에서 시작해 평판, 모임에서의 태도, 죽는 순간, 죽은 뒤의 삶에 이르는 순서가 두 목록에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스승은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을 다시 부르며 다섯 가지를 한데 묶습니다. 이 마지막 항목은 바른 행실을 갖춘 삶의 결과가 죽은 뒤의 삶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두 목록은 재산에서 시작해 죽은 뒤의 삶까지 이어져요. 나는 어떤 행동의 결과를 생각할 때 보통 얼마나 먼 때까지 떠올리나요? 당장 생기는 결과와 오래 뒤에 남을 결과가 다르게 느껴졌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밤이 깊도록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다. 그런 뒤 그들을 돌려보내며 말씀하셨다.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이여, 밤이 깊었다. 이제 그대들이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해라.”

Atha kho bhagavā pāṭaligāmike upāsake bahudeva ratti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ṁsetvā uyyojesi: “abhikkantā kho, gahapatayo, ratti, yassadāni tumhe kālaṁ maññat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밤늦게까지 이어 온 가르침을 마무리하고 신자들을 돌려보내는 장면입니다.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고,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한다는 네 표현이 나옵니다. 내용을 알려 주면서도 듣는 사람이 이해하며 해 볼 마음을 내도록 돕는 모습입니다. 바른 행실의 손실과 이익을 밝힌 이야기는 이렇게 긴 밤의 만남 속에 놓여 있습니다. 스승은 밤이 깊었음을 알리고 신자들에게 떠날 때를 맡깁니다. 다음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떠난 뒤 스승이 빈 방으로 들어갑니다.

묵상

설명을 듣고 무엇을 해 볼 수 있을지 조금 더 분명해졌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상대의 어떤 말이나 태도가 내게 용기를 주었나요? 내용은 이해했지만 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스승이시여, 그리하겠습니다.” 빠딸리 마을의 신자들은 스승께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예를 올린 뒤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고 떠났다. 그러자 신자들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스승께서는 빈 방으로 들어가셨다.

“Evaṁ, bhante”ti kho pāṭaligāmikā upāsakā bhagavato paṭissu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amiṁsu.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esu pāṭaligāmikesu upāsakesu suññāgāraṁ pāvi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긴 밤의 가르침이 끝나고 사람들이 헤어지는 대목입니다. 신자들은 스승의 말에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린 뒤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아 떠납니다. 처음 초대를 청하러 왔을 때부터 이어진 서로의 응답과 예절이 헤어질 때에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승은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여럿에게 가르침을 전하던 시간에서 혼자 머무는 시간으로 장면이 옮겨 갑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과 나눈 한 차례의 만남이 마무리됩니다.

묵상

오래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날 때 나는 어떤 인사를 하나요? 헤어진 뒤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비로소 떠오르는 말이 있었나요? 함께 있던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 사이에서 그 말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졌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8 빠딸리 마을의 미래와 강 건너기 15구절

스승은 성곽을 쌓는 빠딸리 마을이 큰 도시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식사 초대를 받은 뒤 강을 건너고 깊은 물을 건너는 비유의 게송을 남기십니다.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왓지족을 막으려고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짓고 있었다. 그때 수천에 이르는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서 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위력이 큰 신들이 터를 차지한 곳에는 권세가 큰 왕들과 왕의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는 마음을 냈다.

Tena kho pana samayen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i vajjīnaṁ paṭibāhāya. Tena samayena sambahul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 Yasmiṁ padese mahesakkh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hesakkh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머무는 빠딸리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전해집니다. 마가다 나라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족을 막으려고 도시를 짓고 있고, 그곳에서 신들도 터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의 처음에 나왔던 마가다와 왓지족의 관계가 여정 중에 다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위력이 큰 신들이 자리 잡은 곳에는 권세가 큰 왕과 대신들이 마음을 기울입니다. 도시를 세우는 사람들의 일과 신들의 움직임이 함께 그려집니다.

묵상

두 대신은 왓지족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도시를 짓고 있어요. 내가 사는 동네의 건물이나 길도 처음 만들어진 까닭이 있을 텐데,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나요? 처음의 목적과 지금 사람들이 그곳을 쓰는 방식은 어떻게 이어지거나 달라졌나요?

중간 정도의 신들이 터를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들과 왕의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는 마음을 냈다. 낮은 신들이 터를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들과 왕의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는 마음을 냈다. 스승께서는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맑은 눈, 곧 하늘의 눈(딥바짝쿠)으로 수천의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서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셨다.

Yasmiṁ padese majjhim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jjhim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Yasmiṁ padese nīc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nīc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Addasā kho bhagavā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t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y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 대목이 높은 신에게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 따른다고 했다면, 여기서는 중간과 낮은 층이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신들의 서열에 따라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의 지위도 층층이 나뉩니다. 이어 스승이 ‘하늘의 눈’으로 이 광경을 직접 보았다고 전합니다. 이 눈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스승의 앎이 스스로 본 것에서 나왔다는 점이, 다음 날 새벽 아난다와 나누는 대화의 바탕이 됩니다.

묵상

높은 신, 중간 신, 낮은 신마다 그에 맞는 사람이 집터를 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나는 살 곳이나 일할 곳을 고를 때 무엇에 이끌려 고르는 편인가요? 그 이끌림이 나와 정말 어울려서인지, 그저 익숙해서인지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새벽녘에 일어나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누가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짓고 있는가?” “스승이시여,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왓지족을 막으려고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짓고 있습니다.” “아난다여, 마치 서른셋 신들의 하늘(따와띵사)에 사는 신들과 의논한 것 같구나. 아난다여,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그렇게 왓지족을 막으려고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짓고 있다.”

Atha kho bhagavā rattiyā paccūsasamayaṁ paccuṭṭhāya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Ke nu kho, ānanda,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ī”ti? “Sunidhavassakārā, bhante,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i vajjīnaṁ paṭibāhāyā”ti. “Seyyathāpi, ānanda, devehi tāvatiṁsehi saddhiṁ mantetvā; evameva kho, ānand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pāṭaligāme nagaraṁ māpenti vajjīnaṁ paṭibāh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새벽에 일어난 스승이 아난다에게 누가 도시를 짓는지 묻는 장면입니다. 아난다는 두 대신의 이름과 건설 목적을 대답합니다. 스승은 그들이 서른셋 신들의 하늘에 사는 신들과 의논한 것처럼 짓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서 본 신들의 움직임과 사람들이 집을 짓고자 하는 마음이 겹친다는 설명으로 이어지는 말입니다. 실제로 대신들이 신들과 만나 회의했다고 단정하지 않고, 마치 의논한 것 같다는 비교를 합니다. 아난다가 아는 지상의 일에 스승이 본 광경이 더해지려는 대목입니다.

묵상

아난다는 성을 짓는 사람의 이름과 이유를 곧바로 대답해요. 스승은 그 대답을 받아들이면서, 눈에 보이지 않던 배경을 덧붙이고요. 나는 누군가의 설명을 들을 때 눈에 보이는 이유에서 멈추곤 하나요, 아니면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나요?

“아난다여, 나는 여기서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맑은 하늘의 눈으로 수천에 이르는 많은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서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난다여, 위력이 큰 신들이 터를 차지한 곳에는 권세가 큰 왕들과 왕의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는 마음을 낸다.”

Idhāhaṁ, ānanda, addasaṁ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mbahulā devatāyo sahasseva pāṭaligāme vatthūni pariggaṇhantiyo. Yasmiṁ, ānanda, padese mahesakkh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hesakkh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앞서 전해진 그 광경을 아난다에게 직접 설명하십니다. 수천의 신들이 빠딸리 마을에서 터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중 위력이 큰 신들이 자리 잡은 곳에는 권세가 큰 왕들과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의 눈은 보통 사람의 눈을 뛰어넘는 맑은 봄의 능력으로 제시됩니다. 스승이 직접 보았다는 사실과 그 광경의 내용이 구분되어 이어집니다. 아난다에게 도시를 짓는 사람을 물은 뒤, 그가 전한 건설 소식에 이 설명을 보태고 있습니다.

묵상

스승은 자기가 본 것을 아난다에게 또렷이 말해 줘요. 나는 누군가에게 직접 본 것을 전할 때 어디까지가 본 것이고 어디부터가 짐작인지 구별하는 편인가요? 최근에 남에게 전한 이야기 하나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중간 정도의 신들이 터를 차지한 곳에는 중간 지위의 왕과 왕의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는 마음을 낸다. 낮은 신들이 터를 차지한 곳에는 낮은 지위의 왕과 왕의 대신들이 집을 지으려는 마음을 낸다.”

Yasmiṁ padese majjhim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majjhim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Yasmiṁ padese nīcā devatā vatthūni pariggaṇhanti, nīcānaṁ tattha raññaṁ rājamahāmattānaṁ cittāni namanti nivesanāni māpet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의 말에서 위력이 큰 신들의 경우에 이어 중간과 낮은 신들의 경우가 차례로 나옵니다. 앞서와 같은 말이 그대로 되풀이되어, 신들의 자리와 사람들의 자리가 하나씩 겹친다는 점이 뚜렷해집니다. 높은 신, 중간 신, 낮은 신까지 세 층이 빠짐없이 나옵니다. 뒤에 나올 이 도시의 앞날을 이야기하기 전에, 도시 전체가 신들의 자리와 겹쳐 있음을 보여 주는 마무리입니다.

묵상

높은 곳, 중간, 낮은 곳까지 같은 말이 되풀이돼요. 이런 반복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도시 전체에 신들이 두루 자리 잡았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사는 동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사연이 깔려 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문명이 미치는 곳까지, 상인의 길이 닿는 곳까지, 이곳 빠딸리뿟따가 짐꾸러미를 풀어 거래하는 으뜸 도시가 될 것이다. 아난다여, 빠딸리뿟따에는 세 가지 위험이 생길 것이다. 불에서 오는 위험, 물에서 오는 위험, 또는 서로 갈라서는 데서 오는 위험이다.”

Yāvatā, ānanda, ariyaṁ āyatanaṁ yāvatā vaṇippatho idaṁ agganagaraṁ bhavissati pāṭaliputtaṁ puṭabhedanaṁ. Pāṭaliputtassa kho, ānanda, tayo antarāyā bhavissanti— aggito vā udakato vā mithubhed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이 마을의 앞날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도시를 쌓는 마을이지만, 문명이 미치는 곳과 상인의 길이 닿는 곳 가운데 으뜸 도시, 짐을 풀어 거래하는 중심지가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곧이어 그 도시에 세 가지 위험이 있으리라고 덧붙입니다. 번영과 위험을 한 호흡에 말합니다. 위험은 불과 물이라는 바깥의 재난,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갈라서는 안의 문제로 나뉩니다.

묵상

번영할 도시에 불, 물, 서로 갈라섬이라는 위험이 함께 예고돼요. 잘되어 가는 일에도 그늘이 있다는 말처럼 들려요. 내가 지금 잘되고 있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어떤 위험이 숨어 있을지 한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스승께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안부를 묻는 반가운 말을 주고받은 뒤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가 스승께 말했다. “존경하는 고따마께서는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오늘 저희가 드리는 식사를 받아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침묵으로 받아들이셨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ṁsu,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aṭṭhaṁsu, ekamantaṁ ṭhitā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ṁ etadavocuṁ: “adhivāsetu no bhavaṁ gotamo ajjatanāya bhattaṁ saddhiṁ bhikkhusaṅghenā”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도시를 짓는 두 대신이 스승에게 다가와 식사를 청하는 장면입니다. 둘은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 한쪽에 서서 청합니다. 스승은 말없이 받아들이십니다. 청하는 대상은 스승 한 사람뿐 아니라 함께 다니는 수행자 공동체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숙소로 초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스승의 침묵은 받아들이셨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번 초대는 그날의 식사를 대접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두 대신은 자기들의 숙소로 돌아가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준비가 끝났음을 전합니다.

묵상

대신들은 정중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서서 청하고, 스승은 침묵으로 승낙해요. 말 없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어떤 느낌으로 전해질까요? 나는 부탁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하는 편인지, 말하지 않고 응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봐요.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스승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자기들의 숙소로 갔다. 그곳에서 훌륭한 먹거리와 식사를 준비하게 하고, 스승께 때가 되었음을 알리게 했다. “존경하는 고따마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식사가 다 준비되었습니다.”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to adhivāsanaṁ viditvā yena sako āvasatho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sake āvasathe paṇīt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ādāpetvā bhagavato kālaṁ ārocāpesuṁ: “kālo, bho gotama, niṭṭhitaṁ bhat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승낙을 받은 대신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때를 알리는 절차입니다. 스승의 침묵이 승낙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받아들인 것을 알고’라는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준비는 자기들의 숙소에서 이루어졌고, 때를 알리는 일도 대신들이 직접 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알렸습니다. 초대한 쪽이 음식이 모두 갖추어졌음을 정식으로 전하며, 다음 장면인 식사로 넘어가는 대목입니다.

묵상

두 대신은 승낙을 확인하자마자 음식을 갖추고 때를 알려요. 초대받은 쪽은 말 없이 응했는데 초대한 쪽은 많은 준비로 답하네요. 나는 누가 내 청을 들어줬을 때 어떤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하나요? 작은 준비 하나가 마음을 전하는 순간이 있었을까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아침에 옷을 입고 음식을 받는 그릇과 겉옷을 챙겨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의 숙소로 가셨다. 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깨달은 이를 앞에 모신 수행자 공동체에 훌륭한 먹거리와 식사를 손수 대접하여 배불리 먹고 만족하도록 했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ṁ bhikkhusaṅghena yena sunidhavassakārānaṁ magadhamahāmattānaṁ āvasath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uddhappamukhaṁ bhikkhusaṅghaṁ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uṁ sampavār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약속한 때에 스승이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두 대신의 숙소를 찾는 장면입니다. 스승은 옷을 갖춰 입고 그릇과 겉옷을 챙겨 모임과 함께 가며, 두 대신은 ‘깨달은 이를 앞에 모신 공동체’를 손수 대접합니다. 앞에서는 스승이 도시의 앞날을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식사가 중심이 됩니다. 초대한 이들이 직접 음식을 나누고 충분히 채워 드리는 모습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묵상

두 대신은 음식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대접해요. 나는 누군가를 대접할 때 어느 부분을 직접 하고 싶은가요? 반대로 누가 직접 챙겨 준 손길 덕분에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있다면, 그때 무엇이 마음에 남았는지 떠올려 봐요.

스승께서 식사를 마치고 그릇에서 손을 거두시자,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낮은 자리를 가져다가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에게 스승께서는 이런 시로 감사를 전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느 곳에 머물든, 그곳에서 행실이 바르고 자신을 절제하며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Atha kho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ṁ bhuttāviṁ onītapattapāṇiṁ aññataraṁ nīcaṁ āsanaṁ gah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Ekamantaṁ nisinne kho sunidhavassakāre magadhamahāmatte bhagavā imāhi gāthāhi anumodi: “Yasmiṁ padese kappeti, vāsaṁ paṇḍitajātiyo; Sīlavantettha bhojetvā, saññate brahmacāray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식사가 끝난 뒤 두 대신이 낮은 자리를 가져다 앉자 스승이 시로 감사를 전하십니다. 감사의 시는 지혜로운 사람이 자기가 머무는 곳에서 어떻게 베푸는지 이야기합니다. 먼저 음식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행실이 바르고 스스로를 절제하며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어디에 사는가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베푸는가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그 베풂을 그곳 신들에게도 돌리는 일이 나옵니다. 두 대신의 식사 초대는 이렇게 그들이 터를 잡은 장소와 연결됩니다.

묵상

감사의 시는 어떤 곳에 머물 때 그곳 사람들에게 베푸는 일을 이야기해요. 새로운 곳에 살거나 일하게 되었을 때 내가 먼저 주고받았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작은 음식이나 도움을 나누며 그곳이 조금 더 익숙해진 경험이 있나요?

“그곳에 있는 신들에게도 그 베풂의 몫을 나누어야 한다. 예우받은 신들은 그를 예우하고, 존중받은 신들은 그를 존중한다. 그러고는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아끼듯 그를 보살핀다. 신들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좋은 일을 만난다.”

Yā tattha devatā āsuṁ, tāsaṁ dakkhiṇamādise; Tā pūjitā pūjayanti, mānitā mānayanti naṁ. Tato naṁ anukampanti, mātā puttaṁva orasaṁ; Devatānukampito poso, sadā bhadrāni pa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서 시작한 감사의 시가 이어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바르게 사는 수행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뒤, 그곳 신들에게도 그 베풂의 몫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신들은 자신들을 예우하고 존중한 사람에게 예우와 존중으로 응한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어머니와 아들의 비유는 신들이 그 사람을 아끼고 보살피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 시를 듣는 이는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세우려는 두 대신입니다. 앞에서 신들이 그 마을의 터를 차지한다고 한 이야기와, 이곳에 머물며 베푸는 삶의 이야기가 맞닿습니다.

묵상

시에서는 공경하면 공경받고 존중하면 존중받는다고 해요. 나는 누군가에게 존중을 보냈을 때 그것이 돌아온 경험이 있나요?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보낸 일이 있었다면 그때 마음은 어땠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에게 이 시로 감사를 전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그때 마가다의 대신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이런 생각으로 스승의 바로 뒤를 따라갔다. ‘오늘 집을 떠나 길을 닦는 고따마께서 나가시는 문은 고따마 문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갠지스강을 건너시는 나루는 고따마 나루라 불리게 될 것이다.’

Atha kho bhagavā sunidhavassakāre magadhamahāmatte imāhi gāthāhi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Tena kho pana samayena sunidhavassakārā magadhamahāmattā bhagavantaṁ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ā honti: “yenajja samaṇo gotamo dvārena nikkhamissati, taṁ gotamadvāraṁ nāma bhavissati. Yena titthena gaṅgaṁ nadiṁ tarissati, taṁ gotamatitthaṁ nāma bhav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감사의 시를 마친 스승이 자리를 떠나고, 두 대신이 뒤따르며 이곳의 문과 나루에 스승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합니다. 스승이 나가는 문과 강을 건너는 나루가 이름으로 남게 되리라는 말입니다. 대신들이 스승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름 붙이기라는 형태로 드러나며, 도시가 세워질 곳에 스승의 이름이 남게 됩니다.

묵상

두 대신은 스승이 지나가는 문과 나루에 이름을 붙이겠다고 해요. 어떤 장소가 특정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내가 자주 지나는 길이나 문 가운데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어떤 기억을 품고 있나요?

그러자 스승께서 나가신 문은 고따마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 스승께서는 갠지스강으로 가셨다. 그때 갠지스강은 강둑의 까마귀가 물을 마실 수 있을 만큼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배를 찾고, 어떤 사람들은 뗏배를 찾고, 어떤 사람들은 뗏목을 묶고 있었다.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고 싶어서였다.

Atha kho bhagavā yena dvārena nikkhami, taṁ gotamadvāraṁ nāma ahosi. Atha kho bhagavā yena gaṅgā nadī tenupasaṅkami. Tena kho pana samayena gaṅgā nadī pūrā hoti samatittikā kākapeyyā. Appekacce manussā nāvaṁ pariyesanti, appekacce uḷumpaṁ pariyesanti, appekacce kullaṁ bandhanti apārā, pāraṁ gantukām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빠딸리 마을을 나서는 장면입니다. 스승이 나가신 성문에는 스승의 성을 딴 이름이 붙어, 이 방문은 그 지역에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이어 갠지스강은 물이 넘칠 듯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배나 뗏배를 구하거나 뗏목을 엮으며 건너편으로 가려고 애씁니다. 이 대목은 바로 뒤에 나오는 두 장면의 바탕입니다. 사람들이 건널 방법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 먼저 그려지고, 그 뒤에 스승이 강을 건너시는 방식이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묵상

강물이 가득 찬 강가에서 어떤 사람은 배를, 어떤 사람은 뗏배를, 어떤 사람은 뗏목을 마련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 건너고 싶은 ‘저쪽 기슭’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그곳에 가려고 나는 어떤 준비부터 하고 있을까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갠지스강의 이쪽 기슭에서 사라져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저쪽 기슭에 나타나셨다. 스승께서는 그 사람들이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려고, 어떤 이들은 배를 찾고 어떤 이들은 뗏배를 찾고 어떤 이들은 뗏목을 묶는 모습을 보셨다.

Atha kho bhagavā—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gaṅgāya nadiyā orimatīre antarahito pārimatīre paccuṭṭhāsi saddhiṁ bhikkhusaṅghena. Addasā kho bhagavā te manusse appekacce nāvaṁ pariyesante appekacce uḷumpaṁ pariyesante appekacce kullaṁ bandhante apārā pāraṁ gantukām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 장면에서 사람들은 건너편으로 가려고 배와 뗏목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스승은 수행자 공동체 전체와 함께, 힘센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정도의 짧은 순간에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옮겨 가십니다. 비유는 그 이동이 얼마나 쉬웠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어서 스승은 건너편으로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십니다. 이 시선이 곧 이어질 마음에서 우러난 말을 끌어내는 계기가 됩니다. 스승은 순식간에 건너가셨지만, 사람들은 아직 배와 뗏목으로 건너려 하고 있습니다.

묵상

힘센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것처럼 쉽게 건너편에 이르렀다고 해요. 그 모습을 강 이쪽에서 배를 찾던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나는 ‘건너는 일’을 힘겨운 준비의 과정으로 떠올리나요, 아니면 한순간의 일로 떠올리나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이 뜻을 아시고, 그때 마음에서 우러난 이 말(우다나)을 읊으셨다. “큰물과 흐르는 물을 건너는 이들은 다리를 놓아 웅덩이들을 뒤로했다. 사람들이 뗏목을 묶는 동안, 지혜로운 이들은 이미 건너갔다.”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 “Ye taranti aṇṇavaṁ saraṁ, Setuṁ katvāna visajja pallalāni; Kullañhi jano bandhati, Tiṇṇā medhāvino jan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강가에서 사람들이 건널 것을 마련하는 모습을 본 스승이 그 뜻을 아시고 시를 읊는 대목입니다. 눈앞의 강 건너기가 시 속의 큰물과 다리, 웅덩이와 뗏목으로 이어집니다. 한편에는 다리를 놓고 건넌 이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아직 뗏목을 묶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승은 앞서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건너편에 나타나셨고, 이제 건너려는 사람들을 바라보십니다. 준비하는 사람들과 이미 건넌 사람들의 차이가 이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시의 마지막은 이미 건넌 이들을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묵상

같은 물을 두고 누구는 뗏목을 묶고 있고 누구는 이미 건넜다고 해요. 두 부류의 차이는 무엇에서 나온다고 느끼나요? 내가 오래 붙들고 묶고만 있는 뗏목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양일까요?

9 네 고귀한 참된 사실을 알아 떠돎을 끝내다 8구절

꼬띠 마을에서 스승은 괴로움과 그 생겨남과 끝남과 끝내는 길을 몰라 오래 떠돌았다고 하시며, 이를 알고 목마른 욕망이 끊어진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 뒤 스승께서는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자. 꼬띠 마을로 가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그 뒤 스승께서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꼬띠 마을에 이르셨다. 스승께서는 그곳 꼬띠 마을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koṭi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koṭigāmo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koṭigāme vihar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갠지스강을 건넌 뒤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스승은 곁에서 시중드는 아난다를 부르고, 함께 꼬띠 마을로 가자고 청합니다. 아난다는 짧게 ‘예’ 하고 답합니다. 이렇게 이동의 결정과 응답이 짧게 이어진 뒤 스승은 큰 수행자 모임과 함께 마을에 이르러 머뭅니다. 이 장면은 특별한 사건 없이 다음 가르침이 나올 무대를 마련합니다. 곧 이어 스승은 이곳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해 오래 돌고 돌았다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묵상

스승은 아난다를 불러 ‘가자’ 하고, 아난다는 ‘예’ 하고 답해요. 이렇게 짧은 부름과 대답이 오가는 순간이 다음 걸음을 여는 힘이 될 때가 있을까요? 최근 내가 누군가에게 짧게 건넨 말 가운데 무엇이 이어진 행동을 만들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그곳에서 스승께서는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네 가지 거룩한 진리(아리야 삿짜)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그대들은 이토록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았다. 어떤 네 가지인가?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그대들은 이토록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았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unnaṁ, bhikkhave, ariyasaccānaṁ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Katamesaṁ catunnaṁ? Dukkh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꼬띠 마을에서 스승이 수행자들에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스승은 자신과 수행자들이 오랫동안 태어남과 죽음을 거듭하며 헤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스스로 물은 뒤 첫째인 괴로움부터 짚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앎은 말로 이름을 알고 있는 것보다 깊게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와 그대들’이라는 표현은 스승도 깨닫기 전에는 그 길을 헤맸음을 함께 밝힙니다. 이어서 나머지 세 가지에서도 같은 까닭과 결과가 되풀이됩니다.

묵상

스승은 ‘나와 그대들’이라고 함께 묶어서 오랫동안 돌았다고 말해요. 가르치는 이가 자신도 같은 길을 돌았다고 밝힐 때, 듣는 쪽의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나에게 오래 반복해 온 익숙한 패턴이 있다면 어떤 모습인지 떠올려 볼까요?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의 생겨남에 관한 고귀한 참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그대들은 이토록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았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의 멎음에 관한 고귀한 참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그대들은 이토록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았다.”

Dukkhasamuday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Dukkhanirodhass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괴로움 자체에 이어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과 멎는 것이 차례로 다뤄집니다. 스승은 각각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자신과 수행자들이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길을 헤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흐름에서는 괴로움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멎는지도 함께 알아야 할 대상이 됩니다.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하나는 생겨나는 것을, 다른 하나는 멎는 것을 다룹니다. 같은 문장을 되풀이하면서도 알아야 할 대상을 하나씩 구분합니다. 이어서는 괴로움의 멎음으로 이끄는 길이 나옵니다.

묵상

괴로움이 생겨날 때와 잠시 가라앉을 때의 사정이 다르게 보였던 적이 있나요? 최근 마음을 어렵게 했던 작은 일 하나를 떠올리면, 어떤 조건에서 커지고 어떤 조건에서 잦아들었나요? 아직 잘 모르겠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의 멎음으로 이끄는 길에 관한 고귀한 참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그대들은 이토록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았다.”

Dukkhanirodhagāminiyā paṭipadāya, bhikkhave, ariyasacc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넷째이자 마지막 항목은 괴로움의 멎음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앞에서 괴로움과 그 생겨남, 그 멎음을 짚었다면 여기서는 멎음에 이르도록 무엇을 닦고 행하는가로 나아갑니다. 스승은 이 길도 깨닫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오랫동안 태어나고 죽는 길을 헤맸다고 말씀하십니다. 괴로움이 멎을 수 있다는 것과 그 멎음으로 이끄는 길을 안다는 것은 각각 구분되어 제시됩니다. 이로써 처음 물었던 네 가지가 모두 나옵니다. 바로 뒤에서는 그것들을 깨닫고 꿰뚫어 알았을 때 무엇이 끝나는지 밝힙니다.

묵상

어떤 문제의 원인을 알았어도 어떻게 풀어 갈지는 따로 찾아야 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실제로 도움이 된 행동이나 배움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마주한 작은 어려움에 대해서도 결과를 바라기 전에 알아보고 싶은 과정이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이제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꿰뚫어 알았다. 괴로움의 생겨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꿰뚫어 알았다. 괴로움의 멎음에 관한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꿰뚫어 알았다. 괴로움의 멎음으로 이끄는 길에 관한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꿰뚫어 알았다. 존재에 매달리는 목마른 욕망(바와딴하)이 끊어졌고, 다시 존재하도록 이끄는 끈이 다했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Tayidaṁ, bhikkhave, dukkhaṁ ariyasaccaṁ anubuddhaṁ paṭividdhaṁ, dukkhasamudayaṁ ariyasaccaṁ anubuddhaṁ paṭividdhaṁ, dukkhanirodhaṁ ariyasaccaṁ anubuddhaṁ paṭividdh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ṁ anubuddhaṁ paṭividdhaṁ, ucchinnā bhavataṇhā, khīṇā bhavanetti, natthi dāni punabbhavo”ti. Idamavoca bhagav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알지 못해서 오래 헤맸다는 말씀에 이어, 네 가지 참된 사실을 깨닫고 꿰뚫어 알았다는 선언이 나옵니다. 스승은 네 가지 모두에 같은 말로 앎을 거듭 밝혀 빠짐없이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로 존재에 매달리는 욕망이 끊어지고 다시 존재하도록 이끄는 끈이 다했다고 합니다. 이 욕망은 거듭 어떤 존재가 되고자 매달리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마지막의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는 말이 그 끈의 의미를 분명하게 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길을 오래 돌았다는 앞의 설명과 서로 맞물리는 결말입니다.

묵상

알지 못해서 오래 돌았다던 말이 ‘이제 알았기에 끝났다’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이 두 문장 사이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고 느끼나요? 계속 이어 가려는 마음, 곧 ‘끈’을 나는 어떤 순간에 느끼는지 떠올려 볼까요?

이렇게 말씀하신 뒤, 잘 가신 분(수가따)이신 스승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삶으로 태어나며 오랜 세월 헤매었다.”

Idaṁ vatvāna sugato athāparaṁ etadavoca satthā: “Catunnaṁ ariyasaccānaṁ, yathābhūtaṁ adassanā; Saṁsitaṁ dīghamaddhānaṁ, tāsu tāsveva jāti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산문으로 밝힌 뜻을 시로 되짚습니다. 산문에서는 하나하나 깨닫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다고 했고, 여기서는 네 가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데 묶어 말합니다. 그 결과는 여러 삶으로 태어나며 오랜 세월 헤매었다는 것입니다. 시를 소개하는 말에는 스승을 높이는 이름인 ‘잘 가신 분’이 나옵니다. 뒤따르는 시에서는 이제 진리들을 보았고 괴로움의 뿌리가 끊어졌다고 이어집니다. 알지 못한 때와 알게 된 뒤의 차이를 짧은 두 부분으로 나란히 놓는 구성입니다.

묵상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는 말이 오랜 방황의 이유로 나와요.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내 일상에서 어떤 장면과 가까울까요? 이런저런 태어남이라는 표현에서 나는 어떤 되풀이가 떠오르나요?

“이 참된 사실들을 보았으니, 다시 존재하도록 이끄는 끈이 뽑혔고 괴로움의 뿌리가 끊어졌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스승께서는 꼬띠 마을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란 이런 것이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Tāni etāni diṭṭhāni, bhavanetti samūhatā; Ucchinnaṁ mūlaṁ dukkhassa, natthi dāni punabbhavo”ti. Tatrapi sudaṁ bhagavā koṭigāme viharanto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시의 뒷부분은 네 가지 참된 사실을 보았기에 다시 존재하도록 이끄는 끈이 뽑히고 괴로움의 뿌리가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앞부분에서 오래 헤맸던 삶이 이제 더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결말입니다. 이어서 꼬띠 마을에서 스승이 자주 들려주신 가르침이 나옵니다. 바른 행실, 집중, 지혜가 그 내용입니다. 특히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이 큰 결실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앞서 다른 머무름에서도 되풀이된 이 말씀은, 긴 여정 속에서도 무엇을 계속 배우고 닦았는지 드러냅니다.

묵상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닦인 집중이 큰 결실을 가져온다고 해요. 해야 할 말을 미루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을 남겨 두었을 때, 다른 일에 집중하기는 어땠나요? 반대로 할 일을 마무리한 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흘러드는 것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이라는 흘러드는 것, 존재라는 흘러드는 것, 참모습을 알지 못함이라는 흘러드는 것이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바른 행실과 집중에 이어,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와 마음의 풀려남을 말합니다.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리는 것, 존재에 매달리는 것,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이 흘러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지혜로 닦인 마음이 이런 얽매임에서 바르게 벗어나는 것이 가르침의 결말입니다. 여기서는 세 가지 흘러드는 것을 각각 이름 붙여 빠짐없이 밝힙니다. 꼬띠 마을에서 말한 네 가지 참된 사실의 앎도, 이처럼 마음을 붙잡는 것이 끝나는 방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묵상

좋아 보이는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커져 다른 사정을 놓쳤던 적이 있나요? 나중에 더 알게 된 사실이 그 마음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무엇을 억지로 참았을 때와 좀 더 분명히 이해했을 때의 느낌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10 나띠까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행방 9구절

아난다가 나띠까에서 죽은 수행자와 신자들의 행방을 묻자, 스승은 그들이 닦아 이룬 결실과 앞으로의 태어남을 설명하십니다.

그 뒤 스승께서는 꼬띠 마을에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자. 나띠까로 가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그 뒤 스승께서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나띠까에 이르셨다. 스승께서는 그곳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koṭigām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nātikā tenup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nātikā tadavasari. Tatrapi sudaṁ bhagavā nātike viharati giñjakāvasath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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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띠 마을에서의 가르침이 끝나고 다음 마을로 옮겨 가는 장면입니다. 스승은 이곳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문 뒤 아난다를 불러 나띠까로 가자고 합니다. 아난다가 예 하고 답하는 방식은 앞선 이동 장면과 같습니다. 도착한 스승은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뭅니다. 이 대목은 곧 이어질 아난다의 질문과 스승의 답을 위한 자리입니다. 나띠까에서 아난다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여쭙게 되고, 스승은 그 성취의 차이를 나누어 설명합니다.

묵상

스승은 꼬띠 마을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문 뒤에야 다음으로 떠나요. 머물 만큼 머문다는 말에서 나는 어떤 여유를 느끼나요? 지금 내가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머물고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곳에서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 뒤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살하라는 남성 수행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고, 죽은 뒤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승이시여, 난다라는 여성 수행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고, 죽은 뒤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sāḷho nāma, bhante, bhikkhu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Nandā nāma, bhante, bhikkhunī nātike kālaṅkatā, tassā kā gati, ko abhisamparāy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나띠까에서 여러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아난다가 스승을 찾아가 그들의 행방을 묻기 시작하는 첫 장면입니다. 먼저 이름이 불리는 이는 남성 수행자 살하와 여성 수행자 난다입니다. 아난다는 ‘어디로 갔는가’와 ‘그 뒤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두 가지를 짝지어 묻습니다. 사람마다 이름을 하나씩 들어 묻는 방식이므로, 이어지는 대답도 각자에게 따로 주어집니다. 이 물음이 뒤에 나오는 긴 대답의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아난다는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승 곁에 앉아 이름을 하나씩 들어 물었어요.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들으면 누구에게 어떤 질문을 가지고 가고 싶어질까요? 답을 듣고 싶은 마음과 그저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스승이시여, 수닷따라는 남성 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고, 죽은 뒤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승이시여, 수자따라는 여성 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고, 죽은 뒤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승이시여, 꾹꾸따라는 남성 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고, 죽은 뒤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Sudatt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Sujātā nāma, bhante, upāsikā nātike kālaṅkatā, tassā kā gati, ko abhisamparāyo? Kukkuṭ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수행자에 이어, 집에서 살며 가르침을 따르는 신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같은 질문을 되풀이합니다. 수닷따, 수자따, 꾹꾸따 세 사람이 차례로 나오고, 각자에 대해 ‘어디로 갔는가, 그 뒤는 어떻게 되는가’를 똑같은 틀로 묻습니다. 집을 떠나 사는 수행자만이 아니라 집에서 사는 신자의 죽음도 스승 앞에서 묻는 물음이 됩니다. 질문의 틀이 같기 때문에, 뒤의 대답에서는 사람마다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견주어 들을 수 있습니다.

묵상

아난다는 세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어요. 세상을 떠난 사람을 떠올릴 때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에 이름이 붙으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것에서 어떤 정성이 느껴지나요?

“스승이시여, 깔림바라는 남성 신자가 … 스승이시여, 니까따라는 남성 신자가 … 스승이시여, 까띳사하라는 남성 신자가 … 스승이시여, 뚯타라는 남성 신자가 … 스승이시여, 산뚯타라는 남성 신자가 … 스승이시여, 밧다라는 남성 신자가 … 스승이시여, 수밧다라는 남성 신자가 나띠까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고, 죽은 뒤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Kāḷimbo nāma, bhante, upāsako …pe… nikaṭo nāma, bhante, upāsako … kaṭissaho nāma, bhante, upāsako … tuṭṭho nāma, bhante, upāsako … santuṭṭho nāma, bhante, upāsako … bhaddo nāma, bhante, upāsako … subhaddo nāma, bhante, upāsako nātike kālaṅkato,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질문은 이름 일곱을 더 이어 가며 마무리됩니다. 깔림바, 니까따, 까띳사하, 뚯타, 산뚯타, 밧다, 수밧다는 모두 나띠까에서 죽은 남성 집에서 사는 신자로 불립니다. 이름마다 ‘스승이시여’라는 부름이 붙어 있고, 같은 말이 되풀이되다가 마지막 수밧다에서 ‘죽었습니다, 어디로 갔고 그 뒤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완결된 질문으로 닫힙니다. 다음 대답에서도 같은 이름 순서가 다시 나옵니다.

묵상

일곱 이름이 쭉 나열되는 동안 아난다는 스승을 일곱 번 불렀어요.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 묻는 일은 그 사람들에 대한 어떤 마음을 보여 준다고 느끼나요? 내가 함께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이름을 불러 물어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나요?

“아난다여, 남성 수행자 살하는 마음을 흐리는 것이 다하여, 흐림 없이 마음이 풀려나고 지혜로 풀려났다. 그는 바로 이 삶에서 이를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이루고 머물렀다. 아난다여, 여성 수행자 난다는 아래 세계에 묶어 두는 다섯 가지 얽매임(상요자나)이 완전히 다하여 저절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괴로움이 완전히 꺼진 평안(빠리닙바나)에 이를 것이며,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Sāḷho, ānanda, bhikkhu āsavānaṁ khayā anāsavaṁ cetovimuttiṁ paññāvimutti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Nandā, ānanda, bhikkhunī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ī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먼저 두 수행자가 이룬 바를 구별해 밝히십니다. 살하는 바로 이 삶에서 마음을 흐리는 것을 끝내고, 마음의 풀려남과 지혜를 통한 풀려남을 스스로 알고 이루었습니다. 난다는 아래 세계에 묶어 두는 다섯 가지가 다하여 다른 세계에 저절로 태어났고, 그곳에서 괴로움이 완전히 꺼진 평안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이 삶에서 이룬 경우와 다른 세계에서 마침에 이를 경우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평안은 다시 태어나 괴로움을 이어 갈 바탕이 끝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묵상

살하에 관한 말에는 스스로 알고 이루었다는 표현이 나와요. 누군가의 설명으로 알던 것을 직접 겪고 나서 다르게 이해한 경험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더 분명해졌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아난다여, 남성 신자 수닷따는 마음을 묶는 세 가지가 완전히 다하고, 탐내는 마음과 미움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돌아오는 이(사까다가미)가 되었다. 그는 이 세상에 단 한 번 돌아와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아난다여, 여성 신자 수자따는 마음을 묶는 세 가지가 완전히 다하여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선 이(소따빤나)다. 그는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으며, 갈 길이 확고히 정해져 있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아난다여, 남성 신자 꾹꾸따는 아래 세계에 묶어 두는 다섯 가지 얽매임이 완전히 다하여 저절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괴로움이 완전히 꺼진 평안에 이를 것이며,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Sudatto, ānanda, upāsako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ṁ tanuttā sakadāgāmī sakideva imaṁ lokaṁ āgantvā dukkhassantaṁ karissati. Sujātā, ānanda, upāsikā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Kukkuṭo, ānanda, upāsak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집에서 생활하며 가르침을 따르던 세 사람에 대한 대답입니다. 수닷따는 마음을 묶는 세 가지가 다하고 탐내는 마음과 미움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이 세상에 한 번만 더 돌아온 뒤 괴로움을 끝낼 사람입니다. 수자따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서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에 이를 길이 정해진 사람입니다. 꾹꾸따는 다른 세계에서 완전한 평안에 이르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입니다. 스승은 같은 마을의 신자들이라도 이룬 바와 앞으로 남은 길이 다르다고 구별하십니다.

묵상

수닷따를 설명하는 말에는 탐내는 마음과 미움과 어리석음이 ‘엷어졌다’고 나와요. 어떤 마음이 전보다 덜 강해졌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완전히 사라진 것과 조금 약해진 것을 구별할 때 내가 살피는 작은 변화는 무엇인가요?

“아난다여, 남성 신자 깔림바는 … 아난다여, 남성 신자 니까따는 … 아난다여, 남성 신자 까띳사하는 … 아난다여, 남성 신자 뚯타는 … 아난다여, 남성 신자 산뚯타는 … 아난다여, 남성 신자 밧다는 … 아난다여, 남성 신자 수밧다는 아래 세계에 묶어 두는 다섯 가지 얽매임이 완전히 다하여 저절로 태어났고, 그곳에서 괴로움이 완전히 꺼진 평안에 이를 것이며,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Kāḷimbo, ānanda, upāsako …pe… nikaṭo, ānanda, upāsako … kaṭissaho, ānanda, upāsako … tuṭṭho, ānanda, upāsako … santuṭṭho, ānanda, upāsako … bhaddo, ānanda, upāsako … subhaddo, ānanda, upāsako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물었던 일곱 사람의 이름이 대답에서도 같은 순서로 이어집니다. 깔림바, 니까따, 까띳사하, 뚯타, 산뚯타, 밧다, 수밧다입니다. 원문은 거듭되는 대답을 줄임표로 나타내고 마지막 사람에서 전체 문장을 밝힙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아래 세계에 묶어 두는 다섯 가지가 다하여 다른 세계에 태어나고, 그곳에서 완전한 평안에 이를 사람들로 소개됩니다. 이름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스승은 아난다를 거듭 부르십니다.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말하면서도 각 사람의 이름과 질문의 순서를 잃지 않는 대답입니다.

묵상

스승은 아난다가 부른 이름 일곱을 같은 순서로 다시 불렀어요. 한 사람도 건너뛰지 않고 이름을 되짚는 일이 듣는 사람에게 어떤 안정감을 줄까요? 내가 누군가에게 답을 줄 때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준 적이 있나요?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남성 신자들 가운데 쉰 명이 넘는 이들은 아래 세계에 묶어 두는 다섯 가지 얽매임이 완전히 다하여 저절로 태어났다. 그곳에서 괴로움이 완전히 꺼진 평안에 이를 것이며,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남성 신자들 가운데 아흔 명이 넘는 이들은 마음을 묶는 세 가지가 완전히 다하고, 탐내는 마음과 미움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만 돌아오는 이들이 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단 한 번 돌아와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Paropaññāsaṁ, ānanda,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pañcannaṁ orambhāgiyān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opapātikā tattha parinibbāyino anāvattidhammā tasmā lokā. Sādhikā navuti, ānanda,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ṁ tanuttā sakadāgāmino sakideva imaṁ lokaṁ āgantvā dukkhassantaṁ karis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의 대답은 이름을 든 사람들에서 인원수로 넓어집니다. 나띠까에서 죽은 집에서 사는 신자 가운데 쉰 명이 넘는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 자리에 있고, 아흔 명이 넘는 이들은 한 번 더 돌아온 뒤 괴로움을 끝낼 이들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이름으로 나눈 세 갈래 중 두 갈래가 마을 전체의 규모로 확인되는 대목입니다. 수만 밝힐 뿐 개인의 이름은 붙지 않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취가 각각 다르다는 점은 그대로 남습니다.

묵상

‘쉰 명이 넘는’, ‘아흔 명이 넘는’처럼 스승은 사람 수까지 말해 주었어요. 한 마을 안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같은 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나와 가까운 공동체에서 서로 함께 걸어간다고 느끼는 자리가 있을까요?

“아난다여, 나띠까에서 죽은 남성 신자들 가운데 오백 명이 넘는 이들은 마음을 묶는 세 가지가 완전히 다하여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선 이들이다. 그들은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으며, 갈 길이 확고히 정해져 있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Sātirekāni, ānanda, pañcasatāni nātike upāsakā kālaṅkatā, tiṇṇaṁ saṁyojanānaṁ parikkhayā sotāpannā avinipātadhammā niyatā sambodhiparāyaṇ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나띠까에서 세상을 떠난 신자들 가운데 오백 명이 넘는 이들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섰다고 밝힙니다. 앞서 말한 쉰 명이 넘는 이들과 아흔 명이 넘는 이들에 이어, 또 다른 이들의 수와 상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마음을 묶는 세 가지가 다했고, 나쁜 곳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깨달음에 이를 길이 정해져 있다는 특징이 나옵니다. 마을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의 수를 밝힌 것은 아닙니다. 이름을 들어 물었던 질문에서 시작해, 더 많은 신자들이 이룬 바까지 대답을 넓혀 갑니다.

묵상

쉰, 아흔, 오백 하는 식으로 수가 커질수록 스승의 대답은 무엇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느끼나요? 죽은 이들의 자리를 숫자로 들으면 위로가 되는지, 오히려 궁금함이 더 커지는지 궁금해요. 나에게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11 가르침의 거울과 알아차리는 삶 12구절

스승은 자신의 길을 확인하는 가르침의 거울을 알려 주십니다. 웨살리로 가신 뒤에는 몸과 느낌과 마음과 현상을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지내라고 당부하십니다.

“아난다여, 사람으로 태어난 이가 죽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대들이 깨달음에 이른 이를 찾아와 이 일을 묻는다면, 아난다여, 그것은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번거로운 일이다.”

Anacchariyaṁ kho panetaṁ, ānanda, yaṁ manussabhūto kālaṁ kareyya. Tasmiṁyeva kālaṅkate tathāgataṁ upasaṅkamitvā etamatthaṁ pucchissatha, vihesā hesā, ānanda, tathāgatass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사람들이 죽은 뒤 어떻게 되었는지 밝힌 스승은 이제 질문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돌리십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가 죽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므로, 죽음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찾아와 묻는다면 번거로운 일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묻는 주체는 복수로 표현되어, 아난다 개인의 이번 질문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스승은 이 말 뒤에 각자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모든 죽은 사람의 행방을 계속 대신 알려 주기보다, 살아 있는 제자가 자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가르침으로 옮겨 가는 대목입니다.

묵상

스승은 죽음을 ‘놀랍지 않은 일’이라 하면서도, 묻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번거로움’이라고 했어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때 나는 답을 밖에서 구하게 되나요, 안에서 구하게 되나요? 이 두 방향은 나에게 어떻게 달랐나요?

“그러므로 아난다여, 가르침의 거울(담마다사)이라는 이름의 가르침을 설명하겠다. 이것을 갖춘 거룩한 제자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밝힐 수 있다. ‘나는 지옥에 태어날 일이 끝났고, 짐승으로 태어날 일이 끝났으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존재(뻬따)들의 세계에 태어날 일이 끝났고, 비참하고 괴로운 곳으로 떨어질 일이 끝났다. 나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선 이다.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으며, 갈 길이 확고히 정해져 있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Tasmātihānanda, dhammādāsaṁ nāma dhammapariyāyaṁ desessāmi,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ṁ byākareyya: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가르침의 거울’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비추어 볼 기준을 예고하십니다. 이를 갖춘 제자는 원한다면 자신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섰고, 나쁜 곳에 태어날 일이 끝났다고 밝힐 수 있습니다. 원한다는 조건과 그 기준을 실제로 갖추었다는 조건이 함께 붙습니다. 지옥이나 짐승의 삶, 굶주리는 존재들의 세계로 떨어질 일이 없다는 선언 뒤에, 깨달음에 이를 길이 확고하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설명에서 이런 확인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바탕이 나옵니다.

묵상

‘거울’이라는 낱말을 스승이 고른 데는 어떤 뜻이 있을까요? 나를 비춰 보는 기준을 내가 가진다면,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던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 것 같나요? 스스로 밝힌다는 말이 무겁게 느껴지는지, 가볍게 느껴지는지도 궁금해요.

“아난다여, 고귀한 제자가 그것을 갖추고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힐 수 있는 가르침의 거울, 곧 그 가르침의 설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옥에 태어날 일이 끝났고, 짐승으로 태어날 일이 끝났으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존재들의 세계에 태어날 일이 끝났고, 비참하고 괴로운 곳으로 떨어질 일이 끝났다. 나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선 이다.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으며, 갈 길이 확고히 정해져 있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Katamo ca so, ānanda, dhammādāso dhammapariyāyo,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ṁ byākareyya: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방금 예고한 가르침의 거울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는 자리입니다. 앞서 나온 선언을 다시 들면서, 그런 확신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습니다. 스승은 질문을 던진 뒤 곧바로 스스로 답을 이어 가며, 그 확신이 무엇에서 나오는지를 하나씩 밝혀 줍니다.

묵상

스승은 결론을 다시 한 번 들려 준 뒤에야 ‘그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어요. 어떤 확신이 있을 때 그 근거를 먼저 알고 싶나요, 결과부터 듣고 싶나요? 스스로에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를 물었던 최근의 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

“아난다여, 여기서 고귀한 제자는 깨달은 이(붓다)에 대해 스스로 확인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춘다. ‘그 존경받는 스승은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이며,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다. 앎과 행실을 갖추고, 바른 길을 가셨으며, 세상을 아신다. 배움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들을 이끄는 데 누구보다 뛰어나고, 신과 인간의 스승이며, 깨달은 이이고, 존경받는 스승이다.’ 가르침에 대해서도 스스로 확인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춘다. ‘가르침은 스승께서 잘 설명하셨으며, 지금 여기서 확인할 수 있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와서 보라고 권할 만하고, 삶에 받아들여 닦을 만하며, 지혜로운 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다.’”

Idhānanda, ariyasāvako budd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itipi so bhagavā arahaṁ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ṁ buddho bhagavā’ti. Dhamm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ṁ veditabbo viññū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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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가르침의 거울을 이루는 첫 두 바탕은 깨달은 이와 그 가르침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스승을 설명하는 말에는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벗어남, 바르게 온전히 깨달음, 앎과 행실, 사람을 이끄는 능력 등이 나옵니다. 가르침은 지금 확인할 수 있고, 와서 보라고 권할 수 있으며, 지혜로운 이들이 각자 스스로 알아야 할 것으로 소개됩니다. 믿음의 대상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뒤이어 수행자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바른 행실이 더해져, 스스로를 비추는 기준을 이룹니다.

묵상

‘와서 보라고 할 만하다’, ‘지혜로운 이가 각자 스스로 안다’라는 표현에서 확신이 어디서 온다고 스승이 말하는 것 같나요? 누군가가 대신 믿어 주는 것과 내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지금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수행자 공동체에 대해서도 스스로 확인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춘다. ‘스승의 제자 공동체는 잘 실천한다. 스승의 제자 공동체는 곧게 실천한다. 스승의 제자 공동체는 바른 이치에 맞게 실천한다. 스승의 제자 공동체는 마땅하게 실천한다. 곧 네 쌍을 이루는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 스승의 제자 공동체는 예물을 받을 만하고, 손님으로 맞아 대접할 만하고, 베풂을 받을 만하고,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릴 만하며, 세상에서 좋은 결실을 거두게 하는 가장 뛰어난 밭이다.’”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ṁ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ṁ puññakkhettaṁ lokass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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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의 거울을 이루는 셋째 바탕은 제자 공동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공동체가 어떻게 실천하는지 네 표현으로 거듭 밝힌 뒤, 네 쌍을 이루는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는 깨달음의 네 단계에서 길을 닦는 이와 그 결과를 이룬 이를 각각 짝짓는 전통적인 설명입니다. 이어서 이들이 예물을 받고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좋은 결실을 거두는 가장 뛰어난 밭에 비유합니다. 믿음의 까닭을 그 구성원들이 걷는 길과 실천에 두는 대목입니다.

묵상

‘잘 실천한다, 곧게 실천한다, 바른 이치로 실천한다, 마땅하게 실천한다’는 말이 네 번 이어져요. 나는 어떤 사람이나 공동체를 믿을 때 이 가운데 어느 면을 가장 먼저 보게 되나요? ‘흔들림 없는 믿음’이라는 말은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거룩한 이들이 아끼는 바른 행실을 갖춘다. 그 행실은 깨지지 않고, 틈이 없고, 얼룩이 없고, 때 묻지 않으며, 자유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며, 집착 없이 지키고, 마음의 집중으로 이끈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로 가르침의 거울이라는 가르침의 설명이다. 이것을 갖춘 거룩한 제자는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밝힐 수 있다. ‘나는 지옥에 태어날 일이 끝났고, 짐승으로 태어날 일이 끝났으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존재들의 세계에 태어날 일이 끝났고, 비참하고 괴로운 곳으로 떨어질 일이 끝났다. 나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선 이다.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으며, 갈 길이 확고히 정해져 있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Ariyakantehi sīlehi samannāgato hoti akhaṇḍehi acchiddehi asabalehi akammāsehi bhujissehi viññūpasatthehi aparāmaṭṭhehi samādhisaṁvattanikehi. Ayaṁ kho so, ānanda, dhammādāso dhammapariyāyo, yena samannāgato ariyasāvako ākaṅkhamāno attanāva attānaṁ byākareyya: ‘khīṇanirayomhi khīṇatiracchānayoni khīṇapettivisayo khīṇāpāyaduggativinipāto, sotāpannohamasm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가르침의 거울의 마지막 바탕은 거룩한 이들이 아끼는 바른 행실입니다. 깨지지 않고 틈이나 얼룩이 없다는 표현에서 지키는 일이 온전함을 말하고, 자유롭게 하며 집착 없이 지킨다는 표현에서 그 행실의 방향을 밝힙니다. 끝에는 마음의 집중으로 이끈다는 특징이 나옵니다. 앞의 세 믿음과 이런 행실을 갖춘 제자가 원한다면 스스로 흐름에 들어섰다고 밝힐 수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먼저 갖추어야 할 바탕을 모두 말한 뒤, 그 바탕을 갖춘 사람이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묵상

바른 행실을 설명하면서 ‘집착 없이 지킨다’는 말도 나와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을 지킬 때, 그 원칙을 지키는 일과 다른 사람에게 내 옳음을 보이려는 마음이 서로 다르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스승께서는 나띠까의 벽돌집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란 이런 것이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흘러드는 것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이라는 흘러드는 것, 존재에 매달림이라는 흘러드는 것, 참모습을 알지 못함이라는 흘러드는 것이다.”

Tatrapi sudaṁ bhagavā nātike viharanto giñjakāvasathe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나띠까의 벽돌집에서도 스승은 바른 행실과 집중과 지혜의 관계를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집중을 닦고, 그 집중을 바탕으로 지혜를 닦으며, 지혜로 닦인 마음이 얽매임에서 풀려나는 흐름입니다. 여기서 흘러드는 것은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으로 나뉩니다. 앞서 전한 가르침이 제자가 갖추어야 할 믿음과 행실을 밝혔다면, 이 말씀은 행실을 바탕으로 마음이 어떻게 닦이고 풀려나는지 요약합니다. 여러 머무름에서 거듭 전해지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묵상

행동과 집중과 이해가 서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나와요. 마음에 걸리던 일을 정리한 뒤,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을 차분히 살펴본 경험이 있나요? 그때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은 무엇이었고, 어떤 준비가 도움이 되었나요?

그 뒤 스승께서는 나띠까에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자. 웨살리로 가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그 뒤 스승께서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웨살리에 이르셨다. 스승께서는 그곳 웨살리에 있는 암바빨리의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nātik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vesālī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vesālī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vesāliyaṁ viharati ambapālivan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가르침의 거울을 전한 뒤 이야기는 나띠까에서 웨살리로 옮겨 갑니다. 스승은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에게 가자고 하시고, 아난다는 그 말씀에 응답합니다. 앞선 여정과 마찬가지로 큰 수행자 무리가 함께 이동합니다. 웨살리에서는 암바빨리의 숲이 거처가 됩니다. 뒤에 암바빨리가 스승을 찾아와 식사를 청하고, 릿차위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찾아오게 됩니다. 도착을 알리는 이 짧은 장면은 그 만남들의 배경입니다. 이동과 머무름이 번갈아 나오는 동안에도 가르침을 전하는 일은 계속됩니다.

묵상

‘원하시는 만큼 머문 뒤’ 길을 나선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와요. 나는 어떤 곳이나 관계를 떠날 때, 충분히 머물렀다고 느끼는 기준이 있나요? 한 곳에 머물 때와 길을 나설 때를 나는 어떻게 가르는지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그곳에서 스승께서는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지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하는 나의 당부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어떻게 알아차리는가?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몸을 몸 그대로 살피며 지낸다. 힘써 노력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을 향한 탐내는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걷어 낸다. 느낌을 느낌 그대로 살피며 … 마음을 마음 그대로 살피며 …”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ṁ vo amhākaṁ anusāsanī.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vedanānupassī …pe… citte cittānupassī …p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웨살리에서 스승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지내라는 당부를 하십니다. 먼저 알아차림이 어떤 것인지 묻고, 몸을 살피는 일을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힘써 노력함과 분명히 앎과 알아차림이 함께 나오며, 세상을 향한 탐내는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걷어 내는 것도 포함됩니다. 느낌과 마음을 살피는 부분도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는 여러 현상을 살피는 일이 나옵니다. 알아차림은 한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몸과 느낌, 마음과 여러 현상을 두루 살피는 방식으로 펼쳐집니다.

묵상

몸을 몸 그대로 살핀다는 말을 읽으며, 지금 내 몸에서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무엇인가요? 앉은 자세나 손의 온기처럼 작은 느낌도 있나요? 그 느낌을 곧바로 좋다 나쁘다 판단할 때와 잠시 살펴볼 때 무엇이 다르게 느껴지나요?

“여러 현상을 그 현상 그대로 살피며 지낸다. 힘써 노력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을 향한 탐내는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걷어 낸다.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수행자는 알아차린다. 수행자들이여, 그러면 수행자는 어떻게 분명히 아는가?”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sato hoti.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몸과 느낌과 마음에 이어 여러 현상을 살피는 대목입니다. 힘써 노력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린다는 조건, 세상을 향한 탐내는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걷어 낸다는 설명은 앞의 몸을 살피는 대목과 같습니다. 스승은 이로써 수행자가 어떻게 알아차리는지를 맺고, 곧이어 어떻게 분명히 아는지 물으십니다. 알아차림과 분명히 앎을 처음의 당부에서 함께 제시한 뒤, 각각을 풀어 설명하는 순서입니다. 다음 답에서는 걸음과 시선, 먹고 마시는 일 같은 일상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묵상

어떤 일을 하다가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그 순간 하던 동작과 생각 중에서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왔나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아는 데 도움이 되었던 작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수행자들이여, 여기 수행자는 나아갈 때와 돌아올 때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 앞을 볼 때와 둘러볼 때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 팔다리를 굽힐 때와 펼 때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 덧입는 겉옷과 음식을 받는 그릇과 옷을 지닐 때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 대변과 소변을 볼 때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 걷고 서고 앉고 잠들고 깨어 있고 말하고 잠자코 있을 때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

Idha,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 대목은 ‘어떻게 분명히 아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스승의 대답입니다. 나아가고 돌아오는 일, 앞과 옆을 보는 일, 팔다리를 굽히고 펴는 일, 옷과 음식을 받는 그릇을 지니는 일, 먹고 마시는 일, 대소변을 보는 일, 걷고 서고 앉고 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하는 일까지 일상의 동작이 차례로 나옵니다. ‘분명히 알고 행동한다’는 같은 말이 일곱 번 되풀이되어, 분명히 앎이 삶의 모든 동작에 걸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소하다고 여기기 쉬운 몸의 일도 빠지지 않는 점이 눈에 띕니다.

묵상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보는 일까지 목록에 들어 있어요. 오늘 하루 중 가장 무심히 지나간 동작은 무엇이었나요? 그 동작을 분명히 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리고 일곱 묶음 가운데 나에게 가장 낯선 묶음은 어느 것인가요?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수행자는 분명히 안다. 수행자들이여, 수행자는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지내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하는 나의 당부다.”

Evaṁ kho,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ṁ vo amhākaṁ anusāsan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의 긴 나열을 ‘이렇게 수행자는 분명히 안다’로 닫고, 처음 던진 당부를 다시 말합니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지내라는 말이 처음과 끝에서 똑같이 나와, 몸·느낌·마음·현상을 살피는 일과 일상의 동작을 분명히 아는 일이 하나의 당부 안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스승께서는 이것을 ‘그대들에 대한 나의 당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당부라는 말은 가르침이나 훈계의 뜻도 지니며, 앞에서 펼친 내용 전체를 이 한 문장이 묶어 줍니다.

묵상

여러 일상의 동작을 들은 뒤 같은 당부를 다시 듣게 돼요. 처음의 짧은 말이 구체적인 예를 듣고 나서 다르게 이해된 적이 있나요? 오늘 내 일상에서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지낸다’는 말과 이어지는 한 순간은 무엇일까요?

12 암바빨리의 초대와 숲을 드린 일 14구절

암바빨리는 스승을 식사에 초대하고 릿차위들의 제안에도 그 초대를 지킵니다. 식사를 대접한 뒤에는 망고 숲을 스승과 수행자 공동체에 드립니다.

돈을 받고 손님들과 교제하던 여성(가니까) 암바빨리는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웨살리에 오셔서 웨살리에 있는 내 망고 숲에 머무신다고 한다.’ 그러자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는 훌륭한 수레들을 채비하게 했다. 훌륭한 수레 한 대에 올라 훌륭한 수레들과 함께 웨살리를 떠나, 자신의 동산으로 향했다.

Assosi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ā kira vesāliṁ anuppatto vesāliyaṁ viharati mayhaṁ ambavane”ti.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āpetvā bhaddaṁ bhaddaṁ yānaṁ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vesāliyā niyyāsi. Yena sako ārāmo tena pāyā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바빨리는 스승이 자기 망고 숲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갑니다. 그를 가리키는 가니까는 보수를 받고 손님과 성적인 관계를 포함한 교제를 하던 여성을 뜻합니다. 이 장면에서 암바빨리는 스승이 머무는 숲의 주인이며, 수레들을 준비하게 하고 직접 자신의 동산으로 향합니다. 뒤이어 스승 앞에서 가르침을 듣고 식사를 청하게 됩니다. 그의 사회적 신분과 재산을 가진 주인의 역할이 함께 드러나는 출발 장면입니다.

묵상

암바빨리는 ‘스승께서 내 망고 숲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듣고 곧 길을 나서요. 나는 마음에 걸리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움직이나요? 그 소식이 내 삶의 어떤 공간과 닿아 있을 때 반응이 달라지는지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암바빨리는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수레로 갔다.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스승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에게 스승께서는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다.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āv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aṁ kho ambapāliṁ gaṇikaṁ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ṁse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바빨리는 수레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다음 내려서 걸어갑니다. 스승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자, 스승이 가르침을 들려주십니다.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고,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한다는 네 표현이 나옵니다. 가르침의 내용 자체는 이 대목에 적혀 있지 않지만, 듣는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할 마음을 내도록 돕는 모습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망고 숲의 주인인 암바빨리가 이 자리에서는 가르침을 듣는 사람이 됩니다. 이어지는 식사 초대는 이 만남과 가르침 뒤에 이루어집니다.

묵상

수레에서 내려 걸어간다는 작은 행동이 눈에 띄어요. 누군가를 존중하는 마음이 몸의 어떤 동작으로 나타난 적이 있나요? 또 ‘설명하고, 이끌고, 북돋고, 기쁘게 하는’ 넷 가운데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어느 쪽일까요?

그러자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는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며, 실천하도록 이끌리고 용기를 얻어 기뻐진 뒤 스승께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내일 제가 드리는 식사를 받아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침묵으로 받아들이셨다.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는 스승께서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예를 올린 뒤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고 떠났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ṁsitā bhagavantaṁ etadavoca: “adhivāsetu me, bhante, bhagavā svātanāya bhattaṁ saddhiṁ bhikkhusaṅghenā”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to adhivāsanaṁ vi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ām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가르침으로 밝아지고 기뻐진 암바빨리가 식사를 청합니다. 그녀는 ‘내일’,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라고 구체적으로 초대하고, 스승께서는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스승의 침묵은 곧 승낙의 표시입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절한 뒤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아 예를 갖추며 물러납니다. 누가 먼저 청했고 스승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셨는지가 다음 장면에서 릿차위 사람들의 요청과 부딪힐 때 바탕이 됩니다.

묵상

스승께서는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초대를 받아들이세요. 나는 침묵으로 대답하는 일이 언제 편안하고 언제 불편한가요? 초대가 받아들여진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의 마음은 어땠을지 상상해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웨살리의 릿차위 사람들이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웨살리에 오셔서 웨살리의 암바빨리의 숲에 머무신다고 한다.’ 그러자 그 릿차위 사람들은 훌륭한 수레들을 채비하게 했다. 각자 훌륭한 수레에 올라 훌륭한 수레들과 함께 웨살리를 떠났다.

Assosuṁ kho vesālikā licchavī: “bhagavā kira vesāliṁ anuppatto vesāliyaṁ viharati ambapālivane”ti. Atha kho te licchavī bhaddāni bhaddāni yānāni yojāpetvā bhaddaṁ bhaddaṁ yānaṁ abhiruhitvā bhaddehi bhaddehi yānehi vesāliyā niyy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바빨리에 이어 웨살리의 릿차위 사람들도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두 무리가 같은 소식을 각자 듣고 같은 방식으로 나서는 모습이 이 대목의 특징입니다. 다만 암바빨리는 ‘내 망고 숲’이라 하고, 릿차위 사람들이 전해 들은 말은 ‘암바빨리의 망고 숲’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릿차위 사람들은 웨살리에 사는 사람들이며, 훌륭한 수레들을 갖추어 나서는 모습은 앞의 암바빨리와 같은 표현으로 그려집니다. 이 두 무리는 다음 장면에서 길 위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묵상

같은 소식을 들은 두 무리가 같은 준비를 하고 각자 길을 나서요. 같은 소식이라도 사람마다 그 소식을 향한 마음은 다를 것 같은데, 나는 어떤 소식에 가장 먼저 몸이 움직이나요? 그때 마음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그들 가운데 어떤 릿차위들은 푸른색으로 꾸몄다. 몸빛도 푸르고, 옷도 푸르고, 장식도 푸르렀다. 어떤 릿차위들은 노란색으로 꾸몄다. 몸빛도 노랗고, 옷도 노랗고, 장식도 노랬다. 어떤 릿차위들은 붉은색으로 꾸몄다. 몸빛도 붉고, 옷도 붉고, 장식도 붉었다. 어떤 릿차위들은 흰색으로 꾸몄다. 몸빛도 희고, 옷도 희고, 장식도 희었다. 그때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는 젊은 릿차위들의 수레에 차축은 차축끼리, 바퀴는 바퀴끼리, 멍에는 멍에끼리 부딪쳤다.

Tatra ekacce licchavī nīlā honti nīlavaṇṇā nīlavatthā nīlālaṅkārā, ekacce licchavī pītā honti pītavaṇṇā pītavatthā pītālaṅkārā, ekacce licchavī lohitā honti lohitavaṇṇā lohitavatthā lohitālaṅkārā, ekacce licchavī odātā honti odātavaṇṇā odātavatthā odātālaṅkārā.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daharānaṁ daharānaṁ licchavīnaṁ akkhena akkhaṁ cakkena cakkaṁ yugena yugaṁ paṭivaṭṭe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웨살리의 릿차위들이 스승을 만나러 나서는 모습입니다.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으로 꾸민 사람들이 차례로 나오고, 몸빛과 옷과 장식이 각각 같은 색으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어 암바빨리의 수레가 젊은 릿차위들의 수레와 부딪칩니다. 차축과 바퀴와 멍에가 서로 부딪칩니다. 이 충돌 뒤에 릿차위들이 까닭을 묻고, 스승을 식사에 초대한 일을 둘러싼 대화가 이어집니다.

묵상

네 가지 색으로 옷과 장식을 맞춘 사람들이 길을 나서요. 내가 어떤 모임에 갈 때 옷이나 소지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맞추고 싶을 때와 내 모습을 따로 드러내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요?

그러자 그 릿차위들이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에게 말했다. “야, 암바빨리, 왜 젊은 릿차위들의 수레에 차축은 차축끼리, 바퀴는 바퀴끼리, 멍에는 멍에끼리 부딪치는가?” “귀한 집안의 젊은 분들, 제가 스승을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야, 암바빨리, 그 식사 초대를 십만에 우리에게 넘겨라.” “귀한 집안의 젊은 분들, 웨살리와 그 주변 땅을 모두 주신다 해도 저는 그 식사 초대를 넘기지 않겠습니다.”

Atha kho te licchavī ambapāliṁ gaṇikaṁ etadavocuṁ: “kiṁ, je ambapāli, daharānaṁ daharānaṁ licchavīnaṁ akkhena akkhaṁ cakkena cakkaṁ yugena yugaṁ paṭivaṭṭesī”ti? “Tathā hi pana me, ayyaputtā, bhagavā nimantito svātanāya bhattaṁ saddhiṁ bhikkhusaṅghenā”ti. “Dehi, je ambapāli, etaṁ bhattaṁ satasahassenā”ti. “Sacepi me, ayyaputtā, vesāliṁ sāhāraṁ dassatha, evamahaṁ taṁ bhattaṁ na dassām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레가 부딪친 뒤 릿차위들이 암바빨리를 낮추어 부르며 이유를 묻습니다. 암바빨리는 상대의 집안을 높여 부르며, 스승과 수행자 공동체를 내일 식사에 초대했다고 답합니다. 릿차위들은 십만이라는 값을 제시하며 그 초대를 넘기라고 합니다. 암바빨리는 웨살리와 그 주변 땅을 모두 받더라도 넘기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 스승을 대접할 기회를 넘기라는 요구입니다. 양쪽의 부름말에 담긴 지위 차이와, 큰 대가를 제시해도 초대를 지키겠다는 암바빨리의 뜻이 함께 드러납니다.

묵상

암바빨리는 십만에도, 웨살리 전체에도 그 식사 초대를 넘기지 않겠다고 했어요. 나에게도 값을 아무리 치른다 해도 넘기고 싶지 않은 소중한 자리나 시간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러자 그 릿차위들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여보게, 우리가 저 여자에게 졌구나! 여보게, 우리가 저 여자에게 졌구나!” 그 뒤 그 릿차위들은 암바빨리의 숲으로 향했다. 스승께서는 그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셨다.

Atha kho te licchavī aṅguliṁ phoṭesuṁ: “jitamha vata bho ambakāya, jitamha vata bho ambakāyā”ti. Atha kho te licchavī yena ambapālivanaṁ tena pāyiṁsu. Addasā kho bhagavā te licchavī dūratova āgacchant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바빨리에게 식사 초대를 넘겨받지 못한 릿차위들의 반응입니다. 손가락을 튕기는 것은 아쉬움과 탄식을 나타내는 몸짓으로 읽을 수 있고,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하며 패배를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거기서 돌아서지 않고 그 초대가 이루어질 암바빨리의 망고 숲으로 곧바로 갑니다. 스승께서는 멀리서 다가오는 그들을 먼저 알아보시고, 이 장면은 곧 스승이 그 무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릿차위들은 졌다며 손가락을 튕기고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곧장 그 숲으로 갔어요. 아쉬움을 안은 채로도 다음 걸음을 옮겼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나요? 그때 어떤 마음이 나를 움직였나요?

그들을 보시고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서른셋 신들의 하늘에 사는 신들을 본 적 없는 수행자들은, 수행자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바라보아라. 수행자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둘러보아라. 수행자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그 신들에 견주어 보아라. 그 하늘의 신들과 같다.” 그러자 그 릿차위들은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수레로 간 뒤 내려서 걸어 스승께 다가갔다. 가서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Disvāna bhikkhū āmantesi: “yesaṁ, bhikkhave, bhikkhūnaṁ devā tāvatiṁsā adiṭṭhapubbā, oloke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ṁ; apaloke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ṁ; upasaṁharatha, bhikkhave, licchaviparisaṁ— tāvatiṁsasadisan”ti. Atha kho te licchavī yāvatikā yānassa bhūmi, yānena gantvā, yānā paccorohitvā pattikāv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다가오는 릿차위들을 보시고 수행자들에게 그 무리를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른셋 신들의 하늘에 사는 신들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색을 맞추어 화려하게 꾸민 모습이 길게 나온 까닭이 이 비교와 이어집니다. 바라보고, 둘러보고, 견주어 보라는 세 당부가 거듭 나오며, 수행자들을 부르는 말은 처음을 포함해 네 번 나옵니다. 이는 릿차위들의 모습을 신들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들은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다가온 뒤 예를 올리고 앉습니다.

묵상

스승은 신들을 본 적 없는 수행자들에게 릿차위 무리를 신들에 견주어 보라고 하셨어요. 화려한 모습을 앞에 두고도 ‘어떻게 보이는가’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나누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나는 무엇을 먼저 보는 편인가요?

스승께서는 한쪽에 앉은 그 릿차위들에게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다. 그 뒤 그 릿차위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며, 실천하도록 이끌리고 용기를 얻어 기뻐진 뒤 스승께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내일 저희가 드리는 식사를 받아 주십시오.”

Ekamantaṁ nisinne kho te licchavī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ṁsesi. Atha kho te licchavī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ā samādapitā samuttejitā sampahaṁsitā bhagavantaṁ etadavocuṁ: “adhivāsetu no, bhante, bhagavā svātanāya bhattaṁ saddhiṁ bhikkhusaṅghen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한쪽에 앉은 릿차위들에게 가르침을 들려주십니다. 설명하고, 실천하도록 이끌고,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는 네 표현이 가르치는 쪽과 듣는 쪽에서 거듭 나옵니다. 앞서 암바빨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침이 전해졌습니다. 릿차위들은 그 가르침을 듣고 스승과 수행자 공동체를 다음 날 식사에 초대합니다. 암바빨리에게서 초대를 넘겨받지 못한 뒤, 이번에는 스승께 직접 청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스승이 그들의 청에 어떻게 답하시는지로 이어집니다.

묵상

스승의 말씀을 들은 릿차위들은 보게 되고, 받아들이고, 북돋아지고, 기뻐하게 됐다고 해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중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여 본 적이 있나요? 이해와 기쁨 가운데 나는 무엇이 먼저였나요?

그러자 스승께서 그 릿차위들에게 말씀하셨다. “릿차위들이여, 나는 손님들과 교제하는 암바빨리의 내일 식사 초대를 이미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 릿차위들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여보게, 우리가 저 여자에게 졌구나! 여보게, 우리가 저 여자에게 졌구나!” 그 뒤 그 릿차위들은 스승의 말씀을 기뻐하고 반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예를 올리고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고 떠났다.

Atha kho bhagavā te licchavī etadavoca: “adhivutthaṁ kho me, licchavī, svātanāya ambapāliyā gaṇikāya bhattan”ti. Atha kho te licchavī aṅguliṁ phoṭesuṁ: “jitamha vata bho ambakāya, jitamha vata bho ambakāyā”ti. Atha kho te licchav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am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릿차위들이 정성스럽게 청했지만 스승은 이미 암바빨리의 식사 초대를 받아들였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약속한 사람의 초대를 지키시는 모습입니다. 릿차위들은 앞에서 했던 외침을 똑같이 되풀이하며 다시 졌음을 인정하고, 그러면서도 스승의 말씀을 기뻐하고 반가워합니다. 마지막의 오른쪽으로 돈다는 것은 상대를 오른편에 두고 도는 예절로, 존경을 나타내는 인도의 관습입니다. 이렇게 이 장면은 아쉬움 속에서도 예를 갖춘 헤어짐으로 끝납니다.

묵상

릿차위들은 청이 거절된 뒤에도 스승의 말씀을 기뻐하고 반가워하며 떠났어요. 뜻대로 되지 않은 순간에도 상대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마음이었나요?

그 밤이 지나자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는 자기 동산에서 훌륭한 먹거리와 식사를 준비하게 하고, 스승께 때가 되었음을 알리게 했다. “스승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식사가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러자 스승께서는 아침에 옷을 입고 음식을 받는 그릇과 겉옷을 챙겨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의 집으로 가셨다. 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tassā rattiyā accayena sake ārāme paṇīt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ādāpetvā bhagavato kālaṁ ārocāpesi: “kālo, bhante, niṭṭhitaṁ bhattan”ti.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ṁ bhikkhusaṅghena yena ambapāliyā gaṇikāya nives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약속한 다음 날이 되자 암바빨리는 자기 동산에서 먹거리와 식사를 준비하게 하고 사람을 보내 스승께 알립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일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맡깁니다. 스승은 아침에 옷을 입고 음식을 받는 그릇과 겉옷을 챙겨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암바빨리의 집으로 가십니다. 초대가 말로 끝나지 않고 준비와 방문으로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묵상

암바빨리는 밤이 지나자 준비를 마치고 스승께 때를 알렸어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에서 준비는 마음에 어떤 무게로 남을까요? 나는 어떤 모임이나 만남을 앞두고 미리 마련해 두었던 일이 있나요?

그러자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는 깨달은 이를 앞에 모신 수행자 공동체에 훌륭한 먹거리와 식사를 손수 대접하여 배불리 먹고 만족하도록 했다. 스승께서 식사를 마치고 그릇에서 손을 거두시자,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는 낮은 자리를 가져다가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가 스승께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 동산을 깨달은 이를 앞에 모신 수행자 공동체에 드립니다.” 스승께서는 그 동산을 받으셨다.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uddhappamukhaṁ bhikkhusaṅghaṁ paṇītena khādanīyena bhojanīyena sahatthā santappesi sampavāresi. Atha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ntaṁ bhuttāviṁ onītapattapāṇiṁ aññataraṁ nīcaṁ āsanaṁ gah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ā kho ambapālī gaṇikā bhagavantaṁ etadavoca: “imāhaṁ, bhante, ārāmaṁ buddhappamukhassa bhikkhusaṅghassa dammī”ti. Paṭiggahesi bhagavā ārām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바빨리는 음식을 손수 대접해 스승과 수행자들이 충분히 먹고 만족하도록 합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낮은 자리를 가져다 한쪽에 앉고, 자신의 동산을 드리겠다고 밝힙니다. 받는 대상은 깨달은 이를 앞에 모신 수행자 공동체입니다. 스승은 그 동산을 받으십니다. 앞서 큰돈과 땅을 주어도 식사 초대를 넘기지 않겠다고 했던 암바빨리는, 이제 직접 대접한 뒤 공동체가 머물 공간까지 내놓습니다. 식사와 거처라는 두 가지 구체적인 베풂이 한 만남 안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암바빨리는 음식을 손수 대접하고, 식사가 끝나자 낮은 자리에 앉아 동산을 내놓았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 손수 하는 것과 남에게 맡기는 것은 마음에 어떤 차이를 남기나요? 주고 난 뒤의 마음은 어땠나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손님들과 교제하던 암바빨리에게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스승께서는 웨살리의 암바빨리 숲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자주 들려주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란 이런 것이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Atha kho bhagavā ambapāliṁ gaṇika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ṁse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Tatrapi sudaṁ bhagavā vesāliyaṁ viharanto ambapālivane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식사를 마친 스승이 암바빨리에게도 릿차위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고 떠납니다. 그 뒤 경문은 웨살리에 머무는 동안 스승이 수행자들에게 자주 했던 가르침의 핵심을 짧게 소개합니다. 바른 행실과 마음의 집중과 지혜를 이렇게 나누어 말하고, 그 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바르게 사는 행실이 바탕이 되어 닦인 집중이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묵상

스승은 바른 행실이 집중의 바탕이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내 하루의 말과 행동이 마음이 가라앉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떠올려 본 적이 있나요? 하나를 떠올린다면 무엇인가요?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흘러드는 것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이라는 흘러드는 것, 존재라는 흘러드는 것, 참모습을 알지 못함이라는 흘러드는 것이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바른 행실에서 집중으로 이어진 설명은 집중에서 지혜로, 지혜에서 마음의 풀려남으로 이어집니다. 앞에서 닦은 것이 다음을 받쳐 주는 관계입니다. 흘러드는 것은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으로 나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이 가르침을 맺지 않고,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이 그런 얽매임에서 바르게 풀려난다고 합니다. 암바빨리의 식사 초대와 동산을 드린 일 뒤에도, 경은 수행자들에게 자주 전한 이 가르침을 다시 들려줍니다.

묵상

흘러드는 것 세 가지 가운데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리는 마음이 먼저 나와요. 마음에 드는 것을 더 얻으려다가 하던 일을 놓친 적이 있나요? 그 순간 무엇이 나를 붙잡았는지,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13 벨루와에서 앓으신 뒤 전한 당부 11구절

비 오는 철을 벨루와에서 지내던 스승이 크게 앓으십니다. 회복하신 뒤 아난다에게 공동체에 관해 설명하고 스스로와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그 뒤 스승께서는 암바빨리의 숲에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자. 벨루와 마을로 가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했다. 그 뒤 스승께서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벨루와 마을에 이르셨다. 스승께서는 그곳 벨루와 마을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ambapālivan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veḷuvagāmako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veḷuvagāmako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veḷuvagāmake vihar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암바빨리의 망고 숲을 떠나 벨루와 마을로 옮겨 가는 장면입니다. 스승은 그 숲에서 원하는 만큼 머문 뒤 아난다를 불러 함께 가자고 합니다. 아난다는 짧은 대답으로 따르고, 스승은 많은 수행자와 함께 벨루와에 도착해 머뭅니다. 이 대목은 다음에 이어지는 비 오는 철에 머무름과 병의 장면을 여는 이동입니다. 웨살리에서의 음식을 올리는 일과 가르침이 끝나고 여정이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는 자리이며, 아난다는 이 뒤로도 스승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 이로 계속 등장합니다.

묵상

스승은 원하는 만큼 머문 뒤 아난다를 불러 다음 곳으로 가자고 하셨어요. 나는 한 곳에 머무르다 다음으로 옮겨 가는 때를 어떻게 알아차리나요?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을 알리는 나만의 방식이 있나요?

그곳에서 스승께서는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이제 그대들은 웨살리 주변에서 각자 벗이 있는 곳, 아는 이가 있는 곳, 가까이 지내는 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비 오는 철을 한곳에 머물며 지내라. 나는 바로 여기 벨루와 마을에서 비 오는 철을 지내겠다.” 그 수행자들은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한 뒤, 웨살리 주변에서 각자 벗이 있는 곳, 아는 이가 있는 곳, 가까이 지내는 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비 오는 철을 지냈다. 스승께서는 바로 그 벨루와 마을에서 비 오는 철을 지내셨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etha tumhe, bhikkhave, samantā vesāliṁ yathāmittaṁ yathāsandiṭṭhaṁ yathāsambhattaṁ vassaṁ upetha. Ahaṁ pana idheva veḷuvagāmake vassaṁ upagacch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ṭissutvā samantā vesāliṁ yathāmittaṁ yathāsandiṭṭhaṁ yathāsambhattaṁ vassaṁ upagacchiṁsu. Bhagavā pana tattheva veḷuvagāmake vassaṁ upagacch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비가 많이 오는 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머무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웨살리 주변에서 각자 벗이나 아는 이, 가까이 지내는 이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자신은 벨루와 마을에 머물겠다고 따로 밝힙니다. 수행자들은 그 말씀에 응답하고 각자의 관계가 있는 곳으로 흩어져 머뭅니다. 누구와 지내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가 머무를 곳을 정하는 기준으로 나옵니다. 이 대목은 왜 흩어져야 하는지 별도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며, 다음에 스승이 벨루와에서 병을 앓는 장면의 배경을 이룹니다.

묵상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각자 아는 이가 있는 곳으로 흩어져 비 오는 철을 지내라 하고 자신은 벨루와에 남으셨어요. 나는 혼자 지내는 때와 가까운 사람 곁에서 지내는 때 중 어느 쪽에서 마음이 더 잘 가라앉나요? 그 까닭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비 오는 철을 한곳에 머물며 지내던 스승께 심한 병이 생겼고, 죽음에 이를 만큼 격렬한 통증이 이어졌다. 스승께서는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채 그 통증을 견디셨다. 그때 스승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보는 이들에게 알리지 않고 수행자 공동체에 작별도 하지 않은 채,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는 것은 내게 알맞지 않다. 힘써 노력하여 이 병을 물리치고,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굳게 유지하며 머물러야겠다.’

Atha kho bhagavato vassūpagatassa kharo ābādho uppajji, bāḷhā vedanā vattanti māraṇantikā. Tā sudaṁ bhagavā sato sampajāno adhivāsesi avihaññamāno.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na kho metaṁ patirūpaṁ, yvāhaṁ anāmantetvā upaṭṭhāke anapaloketvā bhikkhusaṅghaṁ parinibbāyeyyaṁ. Yannūnāhaṁ imaṁ ābādhaṁ vīriyena paṭipaṇāmetvā jīvitasaṅkhāraṁ adhiṭṭhāya vihareyy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벨루와에서 비 오는 철을 지내던 스승께 죽음에 이를 만큼 심한 병과 통증이 생깁니다. 통증은 그대로 있었지만, 스승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채 견디셨다고 전합니다. 이어 자신을 돌보는 이들과 수행자 공동체에 알리거나 작별하지 않고 생을 마치는 것은 알맞지 않다고 생각하십니다. 여기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친다는 말은 마지막 죽음을 가리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의 목표를 말하는 자리와 구별됩니다. 스승은 병을 물리치고 생명을 이어 가기로 결심하십니다.

묵상

스승은 떠나기 전에 자신을 돌보는 이들과 수행자 공동체에 알릴 일을 생각하셨어요. 내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길 때 먼저 알려 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에게 사실을 전하는 것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힘써 노력하여 그 병을 물리치고,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굳게 유지하며 머무셨다. 그러자 스승의 병이 가라앉았다. 병에서 일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승께서는 거처에서 나와, 거처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Atha kho bhagavā taṁ ābādhaṁ vīriyena paṭipaṇāmetvā jīvitasaṅkhāraṁ adhiṭṭhāya vihāsi. Atha kho bhagavato so ābādho paṭippassambhi. Atha kho bhagavā gilānā vuṭṭhito aciravuṭṭhito gelaññā vihārā nikkhamma vihārapacchāyāyaṁ paññatte āsane nisī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에서 생각하신 대로 스승은 힘써 병을 물리치고 생명을 이어 가며 머무십니다. 그런 뒤 병이 가라앉았다고 경은 전합니다. 곧이어 병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승이 거처 밖으로 나와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십니다. 심한 통증을 견디던 장면에서 바깥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옮겨 갑니다. 그렇다고 이후에 나이 든 몸의 어려움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난다가 이 자리에 찾아와 병중에 느꼈던 두려움을 말하고, 스승은 공동체와 가르침에 대한 당부를 전하시게 됩니다.

묵상

병이나 지친 상태에서 조금 회복한 뒤 처음 바깥에 나와 앉았던 순간이 기억나나요? 스승은 회복하자마자 그늘 아래 마련된 자리에 앉았어요. 기력이 돌아온 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그 뒤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 편안하신 모습을 뵈니 다행입니다. 스승이시여, 견딜 만하신 모습을 뵈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스승이시여, 스승께서 병을 앓으시는 동안 제 몸은 힘이 풀린 듯했고, 방향도 분간되지 않았으며, 가르침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diṭṭho me, bhante, bhagavato phāsu; diṭṭhaṁ me, bhante, bhagavato khamanīyaṁ, api ca me, bhante, madhurakajāto viya kāyo, disāpi me na pakkhāyanti, dhammāpi maṁ na paṭibhanti bhagavato gelaññen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회복한 스승 앞에 아난다가 앉아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입니다. 아난다는 스승이 편안해지고 견딜 만해진 모습을 보게 되어 다행이라고 먼저 말합니다. 곧이어 병중의 스승을 지켜보던 동안 몸의 힘이 풀린 듯했고 방향이 분간되지 않았으며 가르침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시중드는 제자에게도 스승의 위독함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보여 주는 고백입니다. 이 말은 다음 대화에서 스승이 수행자 공동체와 가르침에 대해 남기는 말씀을 끌어내는 계기가 됩니다.

묵상

아난다는 스승이 아플 때 몸의 힘이 풀린 듯하고 방향도 안 보였다고 말했어요. 소중한 사람이 아프거나 큰일이 닥쳤을 때 내 몸과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런 순간에 평소 알던 것이 떠오르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하지만 스승이시여, 제게는 작은 위안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승께서는 수행자 공동체에 관해 무언가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난다여, 그런데 수행자 공동체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을 구별하지 않고 가르침을 설명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에게는 가르침을 감추어 쥔 스승의 주먹이 없다.”

Api ca me, bhante, ahosi kācideva assāsamattā: ‘na tāva bhagavā parinibbāyissati, na yāva bhagavā bhikkhusaṅghaṁ ārabbha kiñcideva udāharatī’”ti. “Kiṁ panānanda, bhikkhusaṅgho mayi paccāsīsati? Desito, ānanda, mayā dhammo anantaraṁ abāhiraṁ karitvā. Natthānanda, tathāgatassa dhammesu ācariyamuṭṭh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의 위안과 스승의 대답이 맞물리는 대목입니다. 아난다는 스승이 수행자 공동체에 관해 말씀을 남기기 전에는 떠나지 않으시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스승은 수행자 공동체가 자신에게서 더 기대할 것이 무엇이냐고 되묻고, 가르침을 안팎으로 나누어 숨기지 않고 모두 설명했다고 답합니다. 가르침을 혼자 움켜쥔 스승의 주먹이라는 비유는 감추어 둔 비밀 가르침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는 스승이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묵상

아난다는 스승이 무언가 더 말씀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얻었어요. 스승은 감춘 가르침이 없다고 답했고요. 나는 누군가에게 아직 말해 주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기를 기대해 본 적이 있나요?

“아난다여, 누군가 ‘내가 수행자 공동체를 이끌겠다’거나 ‘수행자 공동체는 나를 의지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난다여, 그 사람은 수행자 공동체에 관해 무언가 말할 것이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에게는 ‘내가 수행자 공동체를 이끌겠다’거나 ‘수행자 공동체는 나를 의지한다’는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수행자 공동체에 관해 무엇을 따로 말하겠느냐?”

Yassa nūna, ānanda, evamassa: ‘ahaṁ bhikkhusaṅghaṁ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 so nūna, ānanda, bhikkhusaṅghaṁ ārabbha kiñcideva udāhareyya.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ṁ hoti: ‘ahaṁ bhikkhusaṅghaṁ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 Sakiṁ, ānanda, tathāgato bhikkhusaṅghaṁ ārabbha kiñcideva udāhariss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공동체를 자신이 이끌겠다고 하거나 공동체가 자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다고 밝히십니다. 이는 공동체를 자신에게 매어 두려는 생각이 없다는 뜻이며, 공동체를 돌보고 이끄는 일 자체를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스승은 이렇게 공동체를 놓아주는 자신의 태도를 밝힙니다.

묵상

내가 자리를 비우거나 어떤 일을 그만둘 때, 다른 사람들이 계속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랐던 적이 있나요? 그 마음과 그들이 스스로 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떻게 달랐나요? 함께 일한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아난다여, 나는 이제 늙고 나이 들어 노인이 되었고, 긴 세월을 지나 삶의 끝 무렵에 이르렀다. 내 나이는 여든이다. 아난다여, 낡은 수레를 끈으로 묶어 굴러가게 하듯이,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도 끈으로 묶어 겨우 이어 가는 것 같다.”

Ahaṁ kho panānanda, etarahi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 anuppatto. Āsītiko me vayo vattati. Seyyathāpi, ānanda, jajjarasakaṭaṁ veṭhamissakena yāpeti; evameva kho, ānanda, veṭhamissakena maññe tathāgatassa kāyo yāpe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자신의 몸 상태를 솔직하게 밝히는 대목입니다. 앞에서 수행자 공동체에 남길 말이 없다고 한 스승은 이제 나이가 여든에 이르러 삶의 마지막 시기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낡은 수레가 끈에 묶여 겨우 움직인다는 비유는 몸이 오래 버티기 어려운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이 말은 스승이 곧 떠나리라는 사실을 아난다가 받아들이도록 이끌고, 뒤에 나오는 마음의 집중과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으라는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스승은 낡은 수레가 끈에 묶여 겨우 굴러가는 모습에 자신의 몸을 견주었어요. 내 몸이나 오래 써 온 무언가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꼈던 때가 있나요? 그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본 적이 있다면 어떤 기분이었나요?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어떤 대상의 특징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일부 느낌이 멎어, 대상의 특징을 붙잡지 않는 마음의 집중(아니밋따 쩨또사마디)에 들어 머물 때, 아난다여, 그때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은 한결 편안하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말고 살아라. 가르침을 섬으로 삼고 가르침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말고 살아라. 아난다여, 수행자는 어떻게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않으며, 가르침을 섬으로 삼고 가르침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않고 살아가는가?”

Yasmiṁ, ānanda, samaye tathāgato sabbanimittānaṁ amanasikārā ekaccānaṁ vedanānaṁ nirodhā animittaṁ cetosamādhiṁ upasampajja viharati, phāsutaro, ānanda, tasmiṁ samaye tathāgatassa kāyo hoti. Tasmātihānanda,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Kathañc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어떤 대상의 특징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 집중에 들어 머물 때 몸이 한결 편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대상의 특징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대상을 알아보며 붙잡는 모습까지 포함합니다. 이어 자신과 가르침을 섬이자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고 당부하십니다. 섬은 물 가운데서 발을 디디고 머물 수 있는 곳의 비유입니다. 스승 개인에게만 기대는 데서 자기 수행과 가르침으로 중심을 옮기는 말이며, 마지막에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물어 다음 설명을 엽니다.

묵상

가르침을 자신이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는 말이 나와요. 누군가가 곁에 없어도 그에게 배운 말이나 방법이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나요? 그때 기억한 것은 무엇이었고, 실제 상황에 맞게 이해하려면 더 살펴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아난다여, 여기 수행자는 몸을 몸 그대로 살피며 지낸다. 힘써 노력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을 향한 탐내는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걷어 낸다. 느낌에 대해서는 … 마음에 대해서는 … 여러 현상을 그 현상 그대로 살피며 지낸다. 힘써 노력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려, 세상을 향한 탐내는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걷어 낸다. 아난다여, 이렇게 수행자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않으며, 가르침을 섬으로 삼고 가르침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않고 살아간다.”

Idhānanda,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Vedanāsu …pe… citte …pe…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ṁ. Evaṁ kho, ānanda, bhikkhu attadīpo viharati attasaraṇo anaññasaraṇo, dhammadīpo dhammasaraṇo anaññasaraṇ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자신과 가르침을 의지할 곳으로 삼는 방법으로, 스승은 알아차림의 구체적인 실천을 제시하십니다. 몸과 느낌과 마음, 여러 현상을 살피며 지내는 것입니다. 힘써 노력하고 분명히 알며 알아차리는 태도와, 세상을 향한 탐내는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걷어 내는 일이 함께 나옵니다. 느낌과 마음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이 되풀이되지만, 여기서는 줄였습니다. 자신을 의지한다는 말은 제멋대로 판단하거나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고립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바로 앞의 물음에 이 수행 방법으로 답함으로써, 자신을 의지함과 가르침을 의지함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 줍니다.

묵상

마음이 복잡할 때 몸의 자세나 지금 느끼는 감각을 살피며 잠시 멈춰 본 경험이 있나요? 그때 생각만 따라갈 때와 무엇이 달랐나요?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어떤 점이 어렵거나 낯설었는지 말로 나타내 볼 수 있나요?

“아난다여, 지금이든 내가 세상을 떠난 뒤든,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않으며, 가르침을 섬으로 삼고 가르침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다른 것을 의지할 곳으로 삼지 않고 살아갈 수행자들은 누구든, 아난다여, 배우기를 바라는 나의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이 될 것이다.”

Ye hi keci, ānanda, etarahi vā mama vā accayena attadīpā viharissanti attasaraṇā anaññasaraṇā, dhammadīpā dhammasaraṇā anaññasaraṇā, tamatagge me te, ānanda, bhikkhū bhavissanti ye keci sikkhākām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지금뿐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까지 내다보며 벨루와의 당부를 맺습니다. 자신과 가르침을 의지할 곳으로 삼아 살아갈 이들이 배우기를 바라는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뛰어남은 앞서 말한 알아차림의 실천과 배우려는 마음을 둘 다 갖추었다고 보는 평가입니다. 스승의 병을 보고 방향을 잃었다던 아난다의 말에서 시작된 대화가, 스승이 떠난 뒤에도 계속 닦을 수 있는 길을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나를 도와주던 사람이 곁에 없어진 뒤에도 배워 가야 했던 일이 있나요? 그때 이미 배운 것 가운데 의지가 된 것은 무엇이었나요? 혼자 해결하려는 마음과 계속 배우려는 마음이 어떻게 달랐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14 더 머무를 수 있다는 스승의 암시 9구절

짜빨라 예배 장소에서 스승은 생을 더 이어 갈 수 있음을 거듭 암시하시지만 아난다는 알아듣고 청하지 못합니다.

그 뒤 스승께서는 아침에 옷을 입고 음식을 받는 그릇과 겉옷을 챙겨, 음식을 얻으러 웨살리에 들어가셨다. 웨살리에서 음식을 얻으러 다니신 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앉을 깔개를 챙겨라. 차빨라의 예배 장소로 가서 낮 동안 머물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한 뒤 앉을 깔개를 들고 스승의 바로 뒤를 따라갔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ṁ piṇḍāya pāvisi. Vesāliyaṁ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o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gaṇhāhi, ānanda, nisīdanaṁ, yena cāpālaṁ cetiyaṁ tenupasaṅkamissāma divā vihārāy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nisīdanaṁ ādāya bhagavantaṁ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웨살리에서 음식을 얻어 식사를 마친 뒤, 아난다와 함께 낮 동안 머물 곳으로 향합니다. 아난다에게 챙기라고 한 것은 앉을 때 까는 깔개입니다. 두 사람은 차빨라라는 예배 장소로 가려고 하며, 아난다는 대답하고 깔개를 든 채 스승의 바로 뒤를 따릅니다. 아침의 음식 구하기와 식사, 낮에 머물 장소를 정하는 일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도착 뒤에는 웨살리의 아름다움과 스승이 더 머무를 수 있는지에 관한 대화가 나옵니다. 그 대화를 앞두고 두 사람이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를 알려 주는 장면입니다.

묵상

스승은 평소처럼 음식을 얻어 식사를 마치고 아난다에게 자리를 챙기라고 했어요. 아난다는 바로 뒤에서 따라갔고요. 내 일상에서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순간이 나중에 큰 의미를 갖게 된 적이 있나요? 그런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승께서는 차빨라의 예배 장소로 가셨다. 가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아난다 수행자도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Atha kho bhagavā yena cāpālaṁ cetiy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Āyasmāpi kho ānando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두 사람이 차빨라의 예를 올리는 장소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 짧은 장면입니다. 스승은 마련된 자리에 앉고, 아난다는 절을 하고 한쪽에 앉습니다. 이 자리 배치는 곧 이어질 대화의 무대가 됩니다. 스승이 웨살리와 여러 예배 장소의 아름다움을 말하기 시작하는 다음 장면은 이 조용한 앉음에서 시작됩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준비 장면이지만, 이후 스승이 세 번이나 암시를 건네는 긴 대화의 출발점입니다.

묵상

아난다는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아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어디에 어떻게 앉을지 살폈던 적이 있나요? 서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경험이 있다면, 그때 무엇을 배려하고 싶었나요?

한쪽에 앉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다. 우데나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고따마까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삿땀바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바후뿟따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사란다다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차빨라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Ekamantaṁ nisinnaṁ kho āyasmantaṁ ānandaṁ bhagavā etadavoca: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ṁ uden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gotamak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sattamb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bahuputt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sārandad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cāpālaṁ cetiy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먼저 웨살리를 아름답다고 말씀하시고, 이어 여섯 예배 장소를 하나씩 같은 말로 부르십니다. 우데나, 고따마까, 삿땀바, 바후뿟따, 사란다다, 차빨라입니다. 마지막 장소가 두 사람이 지금 앉아 있는 곳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아름답다는 말이 거듭 나올 뿐, 각각 무엇 때문에 아름다운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어 스승은 특정한 수행의 바탕을 충분히 닦은 사람이라면 원할 때 더 머무를 수 있다고 말씀하시게 됩니다. 장소들을 차례로 돌아보는 이 말은 그 가능성을 밝히는 대화의 앞부분에 놓여 있습니다.

묵상

스승은 웨살리와 여섯 장소가 모두 아름답다고 하나하나 짚어 말했어요. 나는 지금 내가 머무는 곳과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떠올려 본 적이 있나요? 오래 있었기에 오히려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난다여, 누구든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잇디빠다)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면, 원할 때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원할 때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웨살리와 예배 장소들의 아름다움을 말씀하신 뒤, 스승은 특별한 능력의 네 바탕을 충분히 닦은 이가 더 머무를 수 있다고 밝히십니다. 먼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조건으로 말하고, 이어 자신도 그 바탕을 갖추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닦고 거듭 익히는 것에서 시작해 삶의 바탕으로 삼고 잘 갖추는 데 이르기까지 여러 표현이 반복됩니다. 원한다는 조건은 능력을 갖춘다는 조건과 함께 나옵니다. 이 대목 자체에서는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야 이 말이 아난다에게 속뜻을 내비친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묵상

‘원하면 머물 수 있다’는 말을 스승은 일반 원리로 먼저 말하고 자신에게 적용했어요. 누군가 돌려서 한 말을 나는 어떤 때에 그 속뜻까지 알아들었고, 어떤 때에는 그냥 지나쳤나요?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스승께서 이렇게 분명하게 뜻을 내비치고 뚜렷하게 넌지시 알려 주셨는데도 아난다 수행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승께 이렇게 청하지 않았다. “스승이시여,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신과 인간의 도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마음이 깨달음을 가로막는 존재(마라)에게 사로잡힌 듯했기 때문이다.

Ev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ā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ṁ; na bhagavantaṁ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yathā taṁ mārena pariyuṭṭhitacit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더 머무를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아난다는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청은 아난다가 실제로 하지 않은 말로 인용됩니다. 그 내용은 많은 사람과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달라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아난다의 마음이 깨달음을 가로막는 마라에게 사로잡힌 듯했다고 덧붙입니다. 마라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뒤에 나옵니다. 여기서는 뜻을 내비친 스승의 말과,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해 나오지 않은 아난다의 청을 나란히 보여 줍니다.

묵상

아난다는 분명한 표지가 있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청하지 않았어요. 내 마음이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을 때, 눈앞의 표지를 놓쳤던 기억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시야를 좁혔다고 느꼈나요?

스승께서는 두 번째에도 … 세 번째에도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다. 우데나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고따마까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삿땀바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바후뿟따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사란다다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차빨라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Dutiyampi kho bhagavā …pe… tatiyampi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ṁ uden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gotamak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sattamb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bahuputt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sārandad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cāpālaṁ cetiy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같은 말씀이 두 번째와 세 번째로 거듭됩니다. 두 번째의 내용은 원문에서 줄여 놓고, 세 번째에 웨살리와 여섯 예배 장소의 이름을 다시 밝힙니다. 우데나에서 차빨라까지 순서는 처음과 같습니다. 아름답다는 말도 장소마다 되풀이됩니다. 이 반복은 여러 차례 아난다에게 전한 말임을 보여 줍니다. 장소의 아름다움에 이어 더 머무를 수 있다는 가능성도 다시 말씀하시게 됩니다. 앞서 아난다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반복의 무게가 더 분명해집니다.

묵상

같은 장소의 이름을 다시 들을 때 처음과 다르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요? 내가 익숙하게 지나는 곳 가운데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말해 주어 새롭게 보게 된 곳이 있나요? 그때 어떤 모습에 눈길을 주게 되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아난다여, 누구든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면, 원할 때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원할 때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번째 말씀에서도 특별한 능력의 네 바탕을 충분히 닦은 사람은 원한다면 더 머무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어 자신도 그 바탕을 갖추었다고 똑같이 밝히십니다. 누구든 갖출 수 있다는 조건과 자신에게도 해당한다는 적용이 나란히 반복됩니다. 앞의 말을 들은 뒤 달라진 상황을 새로 설명하기보다, 이미 내비친 뜻을 다시 알아들을 기회가 주어지는 흐름입니다. 여기서도 스승은 아난다에게 직접 머물러 달라고 청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으십니다. 다음 이야기도 이번에는 아난다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묵상

같은 말을 거듭 들어도 그 사람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된 적이 있나요? 당시에는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었나요? 지금 다시 그 대화를 나눈다면, 상대의 뜻을 더 분명히 알기 위해 어떤 말을 물어보고 싶나요?

스승께서 이렇게 분명하게 뜻을 내비치고 뚜렷하게 넌지시 알려 주셨는데도 아난다 수행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스승께 이렇게 청하지 않았다. “스승이시여,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신과 인간의 도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마음이 마라에게 사로잡힌 듯했기 때문이다.

Ev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ā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ṁ; na bhagavantaṁ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yathā taṁ mārena pariyuṭṭhitacit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차례의 말씀이 끝난 뒤에도 아난다는 스승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이 경은 처음에 나왔던 설명과 하지 않은 청을 그대로 되풀이해 전합니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 세상에 대한 보살핌, 신과 인간을 위한 이로움이라는 청의 이유도 다시 나옵니다. 아난다의 마음이 마라에게 사로잡힌 듯했다는 설명 역시 반복됩니다. 뒤에 스승이 이 장면을 되짚는 대화가 나오므로, 여기서의 반복은 이후 대화의 근거가 됩니다. 곧 아난다는 물러나고 마라가 직접 다가옵니다.

묵상

나중에 돌아보니 같은 신호를 몇 번이나 지나쳤던 일이 있나요? 그때 내 관심은 주로 어디에 가 있었나요? 지나간 일을 탓하는 대신, 앞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말이나 표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자 스승께서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그대가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가라.”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이시여, 알겠습니다” 하고 스승께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예를 올리고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어느 나무 밑에 앉았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gaccha tvaṁ, ānanda, yassadāni kālaṁ maññasī”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avidūre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nisī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차례 말씀이 이어진 뒤 스승은 아난다에게 때가 되었다고 여기는 대로 가라고 하십니다. 아난다는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춘 뒤 멀지 않은 나무 밑에 앉습니다.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도는 행동은 앞의 여러 헤어짐에서도 나왔던 예절입니다. 아난다가 물러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라가 스승께 다가옵니다. 이 짧은 이동은 스승과 아난다의 대화에서 스승과 마라의 대화로 장면을 전환합니다.

묵상

스승은 ‘때라고 여기는 대로 가라’고 말했고 아난다는 그대로 물러났어요. 누군가 자리를 비켜 달라고 했을 때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물러남이 도움이 되었던 적은 있나요?

15 스승의 마지막 죽음을 청한 마라 15구절

깨달음을 가로막는 마라는 전에 하신 말씀을 들어 스승께 생을 마치시라고 청합니다. 스승은 세 달 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겠다고 답하십니다.

아난다 수행자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악한 마라가 스승께 다가왔다. 다가와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악한 마라가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Atha kho māro pāpimā acirapakkante āyasmante ānande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māro pāpimā bhagavantaṁ etadavoca: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물러가자 악한 마라가 스승께 다가와 한쪽에 섭니다. 앞에서 아난다의 마음과 관련해 언급되었던 마라가 이제 직접 말하는 인물로 나타납니다. 마라는 스승께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시라고 청합니다. 스승의 마지막 죽음을 청하는 자리입니다. 아난다가 하지 못한 더 머물러 달라는 청과 방향이 반대입니다. 마라는 곧이어 스승이 예전에 밝힌 조건을 인용하고, 그 조건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묵상

누군가 중요한 결정을 서두르도록 권한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그때 권하는 사람의 바람과 내가 실제로 살펴야 할 사정은 어떻게 달랐나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더 확인하고 싶었던 조건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여, 내 남성 수행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완전히 꺼지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ū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라는 스승이 전에 하신 말씀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남성 수행자 제자들이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할 뿐 아니라, 남에게 설명하고 반대 주장을 이치에 맞게 다룰 수 있기 전에는 완전히 꺼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제자에게 요구되는 배움과 실천의 성질, 가르침을 전하는 여러 행동이 차례로 나옵니다. 마지막에는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하는 능력까지 포함됩니다. 마라는 스승의 이전 말을 인용한 뒤, 지금은 그 조건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려 합니다.

묵상

내가 배운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다가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떤 질문에서 막혔나요? 다시 배우거나 확인한 뒤 설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아직 남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스승이시여, 지금 스승의 남성 수행자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Etarahi kho pana, bhante, bhikkhū bhagavato sāva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에서 인용한 조건에 대해 마라는 지금의 남성 수행자 제자들이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배움과 실천에 관한 항목도, 가르침을 전하는 여러 행동도 앞과 같은 순서로 나옵니다.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조건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두 대목을 나란히 읽으면 마라가 스승의 말을 어떤 근거로 이용하는지 보입니다. 여기서는 마라의 말만 이어지며, 스승의 직접적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마라는 이 주장 뒤에 생을 마치시라는 청을 다시 반복합니다.

묵상

계획했던 일이 이제 이루어졌다고 판단할 때 나는 무엇을 근거로 삼나요? 처음 정한 조건을 하나씩 살펴본 경험이 있나요? 겉으로는 끝난 듯 보여도 아직 확인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던 때는 무엇이 달랐나요?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남성 수행자 제자들에 대한 조건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 뒤, 마라는 생을 마치시라는 청을 다시 합니다. 말은 처음 다가왔을 때의 청과 같습니다. 스승을 부르고, 바른 길을 가신 분이라고 다시 가리키며, 지금이 때라고 거듭 말합니다. 같은 청이 이번에는 앞의 조건과 현재 상태에 대한 주장 뒤에 놓입니다. 마라는 이어서 여성 수행자와 집에서 사는 남녀 제자들에 관한 조건도 차례로 인용합니다. 이 반복은 전체 주장 가운데 첫 묶음을 맺는 역할을 합니다.

묵상

같은 부탁도 그 앞에 어떤 이유가 붙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 적이 있나요? 그 이유가 내게 설득력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나요? 상대의 설명을 듣고도 더 확인하고 싶은 점이 남았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여, 내 여성 수행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uniyo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라는 여성 수행자 제자들에 관해서도 스승이 같은 조건을 밝히셨다고 인용합니다. 능숙함과 훈련, 자신감과 배움,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함이 모두 나옵니다. 가르침을 설명하고 전하는 행동과 반대 주장을 이치에 맞게 물리치는 능력도 남성 수행자들에게 말한 것과 같습니다. 여성 수행자들도 익힌 가르침을 스스로 전할 수 있어야 할 제자들로 제시됩니다. 마라는 다음에 이 조건도 이미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묵상

여성 수행자들에게도 배우고 실천하며 남에게 가르치는 능력이 똑같이 언급돼요.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볼 기회를 얻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 기회가 나의 배움이나 자신감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스승이시여, 지금 스승의 여성 수행자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Etarahi kho pana, bhante, bhikkhuniyo bhagavato sāvi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성 수행자 제자들에 관한 조건을 인용한 뒤, 마라는 그들이 지금 이미 그런 제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스스로 배워 실천하는 능력과 설명하고 가르치고 반대 주장에 답하는 여러 능력이 다시 나옵니다. 앞의 인용에서 앞으로 갖추어야 할 것으로 나온 내용이 여기서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로 바뀝니다. 마라는 이처럼 스승의 이전 말과 지금의 상황을 잇는 방식으로 자신의 청을 뒷받침합니다. 이 대목에도 스승의 직접적인 동의나 반박은 나오지 않으며, 마라의 주장이 계속 이어집니다.

묵상

내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던 적이 있나요? 어떤 경험이 그 말의 근거가 되었나요? 반대로 아직 배우고 싶은 부분이 남아 있다면, 상대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싶나요?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잘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성 수행자 제자들에 관한 조건도 이루어졌다고 주장한 뒤, 마라는 같은 청을 다시 합니다. 남성 수행자들에 관해 말한 뒤에도 이미 나왔던 요청입니다. 스승을 부르고, 잘 가신 분이라고 가리키며, 지금이 생을 마치실 때라고 거듭 말합니다. 이 반복은 앞서 든 조건이 하나씩 이루어졌다는 주장에 이어집니다. 아직 마라의 말은 계속됩니다. 다음에는 집에서 생활하며 가르침을 따르는 남성 제자들에 관한 조건이 나옵니다.

묵상

마라는 같은 청을 세 번 겹쳐 말하며 ‘지금이 그때’라고 밀어붙여요. 누군가 ‘이제 때가 되었다’고 말할 때, 그 말이 사실인지 재촉인지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런 재촉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하나요?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여, 내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akā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라는 이번에는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제자들에 관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신자 제자들에게도 수행자와 같은 조건이 나옵니다. 능숙함과 훈련, 자신감과 배움,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함이 모두 포함됩니다. 배운 내용을 여러 방식으로 전하고 반대 주장에 이치에 맞게 답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마라는 이 조건을 제시한 뒤 지금 그 제자들이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려 합니다. 마지막 죽음을 청하는 말의 근거를 더 넓혀 가는 대목입니다.

묵상

가르침을 자기가 아는 데서 끝내지 않고 알리고 설명하고 반대 주장에 답하는 데까지 이어지는 조건이에요. 내가 소중하게 배운 것 중 남에게 설명해 보려 했을 때 비로소 분명해진 것이 있었나요?

“스승이시여, 지금 스승의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Etarahi kho pana, bhante, upāsakā bhagavato sāva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라는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제자들도 지금 그 조건을 갖추었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앞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인용했던 것들이 같은 순서로 지금 이루어졌다는 말로 바뀝니다.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기억하는 일에서 실천으로, 다시 남에게 전하고 질문이나 반대 주장에 답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각각을 생략하지 않고 거듭 말함으로써 옛 조건과 지금의 모습이 일치한다는 주장을 만듭니다. 이 말은 마라의 발언이며, 곧 이어서 스승께 생을 마치시라는 청이 다시 나옵니다.

묵상

어떤 약속의 조건이 이미 갖추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어지나요? 상대가 제시한 항목을 하나씩 살펴본 경험이 있나요? 동의한 부분과 더 알아보고 싶었던 부분을 어떻게 나누어 말했나요?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제자들에 대한 주장을 마친 마라는 다시 생을 마치시라고 청합니다. 마라의 말은 앞서 했던 청과 같으며, 두 번 스승을 부르고 생을 마치실 때가 지금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요청의 근거를 한 묶음 더 쌓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성 수행자, 여성 수행자, 집에서 사는 남성 제자들의 상태를 각각 말했습니다. 이어서는 집에서 사는 여성 제자들에 관한 조건이 나옵니다. 반복 속에서도 어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끝났는지는 구별됩니다.

묵상

같은 부탁을 여러 이유와 함께 거듭 들을 때, 나는 그 이유를 각각 살피게 되나요, 반복 자체에 먼저 반응하게 되나요? 최근 그런 대화가 있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듣는 마음이 달라졌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여, 내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ikā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번에 마라가 인용하는 말씀의 대상은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 제자들입니다. 능숙하게 배우고 훈련받으며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조건이 앞의 사람들과 똑같이 나옵니다. 남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며 반대 주장에 근거를 들어 답하는 능력도 포함됩니다. 이로써 집을 떠난 남녀 수행자와 집에서 사는 남녀 신자, 네 무리의 제자들이 모두 언급됩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성별은 구별되지만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공통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여성 신자 제자들에게도 배운 것을 설명하고 가르치는 능력이 언급돼요. 내가 속한 모임에서 서로의 경험을 배우는 기회는 어떻게 생기나요? 평소 듣기 어려웠던 사람의 설명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승이시여, 지금 스승의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Etarahi kho pana, bhante, upāsikā bhagavato sāvikā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anti desenti paññapenti paṭṭhapenti vivaranti vibhajanti uttānīkaro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라는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 제자들도 지금 필요한 바탕을 갖추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방금 인용한 조건에 나오는 배움과 실천, 설명과 가르침, 반대 주장에 대한 답이 모두 다시 나옵니다. 이를 끝으로 네 무리의 제자들에 관한 조건과 그 실현 주장이 한 차례씩 제시됩니다. 아직 스승의 직접적인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마라는 이 뒤에 같은 청을 반복하고, 개별 제자들에서 더 나아가 수행의 길 자체가 얼마나 널리 자리 잡았는지에 관한 마지막 조건을 내놓게 됩니다.

묵상

여러 항목이 차례로 맞아떨어지는 설명을 들으면 나는 어떤 느낌이 드나요? 목록이 분명해서 이해하기 쉬웠던 경험과, 빠진 것이 있는지 궁금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더 물어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여, 내가 가르치는 깨끗한 삶의 길(브라흐마짜리야)이 온전히 자리 잡고, 풍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이 알고, 두루 뻗어 나가, 신과 인간에게 분명히 알려지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idaṁ brahmacariyaṁ na iddhañceva bhavissati phītañca vitthārikaṁ bāhujaññaṁ puthubhūtaṁ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무리의 제자들에 관한 주장을 마친 마라는 다시 생을 마치시라고 청하고, 마지막 조건을 인용합니다. 이번 대상은 스승이 가르치는 깨끗한 삶의 길 전체입니다. 그 길이 자리 잡고 풍성해져 널리 퍼지며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신과 인간에게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제자들 이야기를 하던 것에서, 이제 가르침 전체가 얼마나 퍼졌는지로 이야기가 넓어집니다. 마라는 앞의 조건들을 다룰 때처럼, 이 조건을 인용한 뒤에도 지금 이미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묵상

어떤 가르침이나 방법이 널리 알려졌다는 말을 들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을 떠올리나요?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이 많은 것과 실제로 이해하고 해 보는 사람이 많은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내 주변에서 그런 차이를 느낀 적이 있나요?

“스승이시여, 지금 스승께서 가르치시는 깨끗한 삶의 길은 온전히 자리 잡고, 풍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이 알고, 두루 뻗어 나가, 신과 인간에게 분명히 알려졌습니다.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이 말에 스승께서 악한 마라에게 말씀하셨다. “악한 자여, 걱정하지 마라. 깨달음에 이른 이가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칠 때가 머지않았다.”

Etarahi kho pana, bhante, bhagavato brahmacariyaṁ iddhañceva phītañca vitthārikaṁ bāhujaññaṁ puthubhūtaṁ,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ṁ.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ti. Evaṁ vutte, bhagavā māraṁ pāpimantaṁ etadavoca: “appossukko tvaṁ, pāpima, hohi, na ciraṁ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라는 깨끗한 삶의 길도 이미 널리 자리 잡고 알려졌다고 주장한 뒤, 마지막으로 같은 청을 합니다. 제자들의 상태와 수행의 길 전체에 관한 주장이 모두 끝난 자리입니다. 이에 스승이 처음으로 직접 답하십니다. 마라를 악한 자라고 부르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자신이 생을 마칠 때가 머지않았다고 밝히십니다. 마라의 반복적인 청에서 스승 자신의 선언으로 화자가 바뀌는 전환입니다. 바로 다음 말에서 그 시점이 세 달 뒤라는 구체적인 기간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긴 설명이나 반복된 요청을 들은 뒤 짧고 분명하게 답해야 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상대의 말 가운데 무엇을 먼저 받아 답했나요? 내가 이미 정한 부분과 아직 말하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구분해 전하고 싶었나요?

“지금부터 세 달이 지나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칠 것이다.”

Ito tiṇṇaṁ māsānaṁ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마라에게 마지막 죽음의 시점을 세 달 뒤라고 밝히십니다. 앞에서는 머지않았다고 하셨고, 여기서는 지금부터 얼마나 남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마라는 제자들과 가르침이 갖추어진 조건을 들어 생을 마치시라고 청했지만, 언제 그렇게 될지는 스승이 이 말로 밝히십니다. 경의 여정에서 남은 시간이 한정되어 드러나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다음에는 차빨라에서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내려놓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생을 마치신 것은 아닙니다.

묵상

‘머지않았다’가 ‘세 달’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으로 바뀌었어요. 끝이 언제인지 알고 남은 시간을 대하는 마음은 어떨 것 같나요? 나는 정해진 기한 앞에서 무엇을 먼저 하고 싶을까요?

16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다 1구절

짜빨라 예배 장소에서 스승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으십니다. 땅이 크게 흔들리고 스승은 게송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스승께서는 차빨라의 예배 장소에서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으셨다. 스승께서 그 힘을 놓으시자 무섭고 털이 곤두설 만큼 큰 지진이 일어났고, 하늘의 북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승께서는 이 뜻을 아시고 그때 마음에서 우러난 이 말을 읊으셨다. “비할 데 없는 평안과 삶을 이어 가는 일을 견주어, 깊은 지혜를 이룬 이(무니)는 삶을 이어 가는 힘을 놓았다. 안으로 기뻐하고 마음이 모인 채, 자신을 다시 생겨나게 하는 것을 갑옷처럼 깨뜨렸다.”

Atha kho bhagavā cāpāle cetiye sato sampajāno āyusaṅkhāraṁ ossaji. Ossaṭṭhe ca bhagavatā āyusaṅkhāre mahābhūmicālo ahosi bhiṁsanako salomahaṁso, devadundubhiyo ca phaliṁsu.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 “Tulamatulañca sambhavaṁ, Bhavasaṅkhāramavassaji muni; Ajjhattarato samāhito, Abhindi kavacamivattasambhav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차빨라에서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으십니다. 벨루와에서 병을 물리치고 그 힘을 유지하셨던 장면과 대조됩니다. 그때 큰 지진과 하늘의 북소리가 일어났다고 경은 전합니다. 이어지는 시는 비할 데 없는 평안과 삶을 이어 가는 일을 견주며, 그 힘을 놓았음을 노래합니다. 시의 마지막은 자신을 다시 생겨나게 하는 것을 갑옷처럼 깨뜨리는 비유로 끝납니다.

묵상

마음을 분명히 알고 내린 결정과, 상황에 휩쓸려 내린 결정은 나에게 어떻게 다르게 기억되나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잠시 멈추어 살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을 확인했나요? 결정한 뒤에도 남아 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17 큰 지진이 일어나는 여덟 가지 이유 8구절

땅이 크게 흔들린 까닭을 묻는 아난다에게 스승은 바람과 물의 움직임부터 깨달은 이의 마지막 죽음까지 여덟 가지 이유와 조건을 설명하십니다.

그때 아난다 수행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참으로 놀랍구나! 아, 참으로 신기하구나! 참으로 큰 지진이다. 참으로 아주 큰 지진이다. 무섭고 털이 곤두설 만큼 컸고, 하늘의 북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 큰 지진이 일어난 데에는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이 있을까?’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mahā vatāyaṁ bhūmicālo; sumahā vatāyaṁ bhūmicālo bhiṁsanako salomahaṁso; devadundubhiyo ca phaliṁsu. Ko nu kho hetu k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으신 뒤 일어난 지진에 아난다가 반응합니다. 그는 큰 흔들림과 하늘의 북소리를 겪고 놀랍고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크다는 말을 다시 더 강하게 되풀이하며, 무섭고 털이 곤두설 만한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어 그 일이 생긴 원인과 조건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습니다. 이때의 말은 아난다 혼자의 생각으로 나옵니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스승께 다가가 거의 같은 말로 여쭙습니다.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뒤 그 까닭을 묻는 대화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묵상

뜻밖의 일을 겪고 나서 무슨 까닭인지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처음 느낀 놀람과 원인을 찾으려는 마음은 어떻게 이어졌나요? 그때 알고 있는 사실과 아직 짐작하는 부분을 구별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나요?

그 뒤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놀랍습니다. 스승이시여, 신기합니다. 스승이시여, 참으로 큰 지진입니다. 스승이시여, 참으로 아주 큰 지진이며, 무섭고 털이 곤두서고 하늘의 북소리도 터져 나왔습니다. 스승이시여, 이 큰 지진이 일어난 것은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입니까?”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Mahā vatāyaṁ, bhante, bhūmicālo; sumahā vatāyaṁ, bhante, bhūmicālo bhiṁsanako salomahaṁso; devadundubhiyo ca phaliṁsu.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속으로 품은 궁금증을 이제 스승께 직접 여쭙는 장면입니다. 다가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는 것은 질문 앞의 정해진 예절이고, 이어 말하는 놀라움의 표현은 앞선 혼잣말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다시 스승께 향해 반복합니다. 마지막에 원인과 조건을 묻는 질문이 나오고, 스승은 지진이 일어나는 여덟 가지 이유를 차례로 들어 답하십니다. 이 물음이 생명의 힘을 놓은 일의 의미를 아난다에게 알려 주는 통로가 됩니다.

묵상

혼자 품고 있던 의문을 누군가에게 직접 물어본 경험이 있나요? 머릿속에 있을 때와 말로 꺼냈을 때 질문이 달라졌나요? 그때 상대에게 먼저 설명해야 했던 상황은 무엇이었고, 어떤 답을 듣고 싶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아난다여, 큰 지진이 일어나는 데에는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아난다여, 이 큰 땅은 물 위에 놓여 있고, 물은 바람 위에 놓여 있으며, 바람은 빈 공간에 머문다. 아난다여, 큰 바람이 부는 때가 있다. 큰 바람이 불어 물을 흔들고, 흔들린 물이 땅을 흔든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첫째 원인이며 첫째 조건이다.”

“Aṭṭha kho ime, ānand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Katame aṭṭha? Ayaṁ, ānanda, mahāpathavī udake patiṭṭhitā, udakaṁ vāte patiṭṭhitaṁ, vāto ākāsaṭṭho. Hoti kho so, ānanda, samayo, yaṁ mahāvātā vāyanti. Mahāvātā vāyantā udakaṁ kampenti. Udakaṁ kampitaṁ pathaviṁ kampeti. Ayaṁ paṭhamo hetu paṭh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갑자기 땅이 크게 흔들리자 그 까닭을 묻습니다. 스승께서는 여덟 가지 이유를 차례로 밝히기 시작하는데, 첫째는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땅은 물에, 물은 바람에, 바람은 허공에 기대어 있다는 당시의 세계 그림에서, 바람이 물을 흔들면 그 위의 땅도 흔들린다고 설명합니다. 뒤의 일곱 가지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나 깨달음에 이른 이의 삶과 관련된 일이므로, 이 첫째 이유는 지진이 반드시 특별한 사건만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님을 먼저 보여 줍니다. 이 대목은 원인과 조건을 하나씩 세어 가며 설명하는 방식의 출발점입니다.

묵상

땅이 물 위에, 물이 바람 위에 놓여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내가 딛고 선 것들이 사실은 다른 조건에 기대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지, 요즘 그렇게 느끼는 일이 있는지 떠올려 봐도 좋아요.

“또한 아난다여,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힘이 있고 마음을 뜻대로 다룰 수 있는,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있다. 또는 큰 능력과 큰 위력을 지닌 신이 있다. 그는 땅이라는 인식은 좁게, 물이라는 인식은 끝없이 넓게 닦았다. 그는 이 땅을 떨게 하고, 크게 흔들고, 거세게 흔들고, 뒤흔든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둘째 원인이며 둘째 조건이다.”

Puna caparaṁ, ānanda, samaṇo vā hoti brāhmaṇo vā iddhimā cetovasippatto, devo vā mahiddhiko mahānubhāvo, tassa parittā pathavīsaññā bhāvitā hoti, appamāṇā āposaññā. So imaṁ pathaviṁ kampeti saṅkampeti sampakampeti sampavedheti. Ayaṁ dutiyo hetu dutiy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둘째 원인은 특별한 능력으로 마음을 다루는 사람이나 큰 힘을 지닌 신과 관련됩니다. 경은 그가 땅이라는 인식은 좁게 닦고 물이라는 인식은 끝없이 넓게 닦아 땅을 흔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인식은 마음을 닦는 과정에서 대상을 잡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앞의 바람과 물의 움직임에 이어 이번에는 수행으로 얻은 능력이 지진의 조건으로 제시됩니다. 원문은 땅을 흔드는 동작을 비슷한 네 표현으로 거듭 밝혀 그 움직임을 강조합니다.

묵상

같은 상황에서도 어디에 주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였던 경험이 있나요? 눈앞의 한 부분에 집중할 때와 전체를 넓게 살필 때 무엇이 달랐나요? 최근 판단하기 어려웠던 일을 떠올리면 내가 주로 보고 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또한 아난다여,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보디삿따)가 만족하며 사는 신들의 무리(뚜시따)에서 생을 마치고,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갈 때 이 땅은 떨리고, 크게 흔들리고, 거세게 흔들리고, 뒤흔들린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셋째 원인이며 셋째 조건이다. 또한 아난다여,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올 때 이 땅은 떨리고, 크게 흔들리고, 거세게 흔들리고, 뒤흔들린다.”

Puna caparaṁ, ānanda, yadā bodhisatto tusitakāyā cavitvā sato sampajāno mātukucchiṁ okkamati, tadāyaṁ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Ayaṁ tatiyo hetu tatiy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Puna caparaṁ, ānanda, yadā bodhisatto sato sampajāno mātukucchismā nikkhamati, tadāyaṁ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셋째 원인은 깨달음을 이루기 전의 존재가 신들의 세계에서 생을 마치고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이어지는 넷째 원인은 그가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오는 일입니다. 두 순간 모두 알아차리고 분명히 아는 가운데 이루어지며, 땅이 흔들린다는 네 표현도 똑같이 나옵니다. 이는 경이 깨달은 이의 마지막 삶의 시작을 어떻게 전하는지 보여 줍니다. 아직 깨닫기 전이므로 이 대목에서는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스승의 마지막 죽음에 관한 대화가 탄생 이전과 탄생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묵상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며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는 일이 있나요?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몸과 마음에는 어떤 느낌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시간이 지난 뒤 그 시작을 이해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넷째 원인이며 넷째 조건이다. 또한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더없이 뛰어난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룰 때 이 땅은 떨리고, 크게 흔들리고, 거세게 흔들리고, 뒤흔들린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다섯째 원인이며 다섯째 조건이다.”

Ayaṁ catuttho hetu catutth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Puna caparaṁ, ānanda, yadā tathāgato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ati, tadāyaṁ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Ayaṁ pañcamo hetu pañc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넷째 이유는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나오는 순간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어 다섯째 이유로, 깨달음에 이른 이가 더없이 뛰어난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루는 순간이 제시됩니다. 앞의 이유들이 탄생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스승이 걸어온 길의 중요한 고비들로 넘어갑니다. 깨달음 자체가 지진의 조건으로 꼽힌다는 것은 이 일이 세상 전체에 울림을 준다고 보는 전통의 시각을 드러냅니다.

묵상

깨달음 같은 큰 일이 땅까지 흔든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나에게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았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변화가 나에게만 일어났던 것인지, 주변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요.

“또한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더없이 뛰어난 가르침의 바퀴를 굴릴 때 이 땅은 떨리고, 크게 흔들리고, 거세게 흔들리고, 뒤흔들린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여섯째 원인이며 여섯째 조건이다. 또한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을 때 이 땅은 떨리고, 크게 흔들리고, 거세게 흔들리고, 뒤흔들린다.”

Puna caparaṁ, ānanda, yadā tathāgato anuttaraṁ dhammacakkaṁ pavatteti, tadāyaṁ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Ayaṁ chaṭṭho hetu chaṭṭh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Puna caparaṁ, ānanda, yadā tathāgato sato sampajāno āyusaṅkhāraṁ ossajjati, tadāyaṁ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섯째 이유는 스승이 처음으로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한 일에 관한 것입니다. ‘가르침의 바퀴를 굴린다’는 말은 깨달은 내용을 처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나가는 일을 비유한 표현입니다. 이어 일곱째 이유의 첫 부분은, 스승이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며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은 앞서 스승이 남은 수명에 대해 스스로 결단한 일과 이어집니다. 깨달음, 가르침, 목숨을 놓는 결단이 차례로 이어지는 점에서, 이 이유들은 스승의 삶의 큰 매듭들을 짚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묵상

가르침을 시작하는 일과 생명의 힘을 놓는 일이 같은 목록에 나란히 있다는 점이 눈에 띄지 않나요? 내 삶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과 놓아 주는 일을 각각 떠올려 보면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일곱째 원인이며 일곱째 조건이다. 또한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남지 않는, 괴로움이 꺼진 평안(닙바나)의 상태에서 완전히 생을 마칠 때 이 땅은 떨리고, 크게 흔들리고, 거세게 흔들리고, 뒤흔들린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여덟째 원인이며 여덟째 조건이다. 아난다여,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다.”

Ayaṁ sattamo hetu satt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Puna caparaṁ, ānanda, yad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tadāyaṁ pathavī kampati saṅ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Ayaṁ aṭṭhamo hetu aṭṭh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Ime kho, ānanda, aṭṭh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는 일곱째 원인을 맺은 뒤, 마지막으로 생을 마치는 여덟째 원인을 밝힙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이 끝났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감각과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삶의 바탕마저 남지 않는 완전한 평안 속에서 생을 마치는 경우를 말합니다. 스승의 마지막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어딘가의 장소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읽지는 않습니다. 끝에서는 여덟 원인과 여덟 조건을 모두 말했다고 다시 밝힙니다.

묵상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지진의 이유 목록에 담겨 있다는 점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내 삶을 지나온 큰 매듭들을 세어 본다면 몇 개쯤 떠오르는지, 그중 가장 조용히 지나갔지만 컸던 것은 무엇인가요?

18 여덟 무리의 모임에서 가르치다 6구절

스승은 사람과 신들의 여덟 모임을 말씀하시고,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에 맞추어 가르친 뒤 사라졌던 일을 들려주십니다.

“아난다여, 여덟 가지 모임이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왕족의 모임, 제사를 맡는 계층 사람들의 모임,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의 모임,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의 모임,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신이 다스리는 하늘(짜뚜마하라지까)에 사는 신들의 모임, 서른셋 신들의 하늘에 사는 신들의 모임, 마라들의 모임, 높은 하늘에 사는 신들(브라흐마)의 모임이다. 아난다여, 나는 수백에 이르는 왕족 모임을 찾아갔던 일을 기억한다. 그곳에서도 그들과 함께 앉았고, 말을 나누었고, 토론에 참여했다.”

Aṭṭha kho imā, ānanda, parisā. Katamā aṭṭha? Khattiyaparisā, brāhmaṇaparisā, gahapatiparisā, samaṇaparisā, cātumahārājikaparisā, tāvatiṁsaparisā, māraparisā, brahmaparisā. Abhijānāmi kho panāhaṁ, ānanda, anekasataṁ khattiyaparisaṁ upasaṅkamitā. Tatrapi mayā sannisinnapubbañceva sallapitapubbañca sākacchā ca samāpajjitapubb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지진의 여덟 원인에 이어 여덟 가지 모임이 나옵니다. 왕족, 제사를 맡는 계층, 집안을 꾸리는 이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이 사람들의 모임으로 제시됩니다. 이어 네 신이 다스리는 하늘과 서른셋 신들의 하늘, 마라와 높은 하늘의 신들의 모임이 나옵니다. 여기서 모임은 사람들이나 신들이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스승은 그 가운데 먼저 왕족의 모임을 찾아가 함께 앉고 말을 나누고 토론했던 경험을 밝히십니다. 스승이 가르침을 전하며 만나 온 사람과 신들이 여기 모두 나옵니다.

묵상

스승이 왕족부터 하늘의 신들까지 다양한 모임에 찾아가 함께 앉았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 모임에서 가장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나요? 낯선 모임에 앉아 있게 되었을 때 먼저 떠오르는 마음은 무엇인가요?

“그곳에서 그들의 모습이 어떠하든 내 모습도 그와 같고, 그들의 목소리가 어떠하든 내 목소리도 그와 같다. 나는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한다.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금 말하는 이가 누구일까? 신일까, 인간일까?’ 하고 생각한다.”

Tattha yādisako tesaṁ vaṇṇo hoti, tādisako mayhaṁ vaṇṇo hoti. Yādisako tesaṁ saro hoti, tādisako mayhaṁ saro hoti. Dhammiyā kathāya sandassemi samādapemi samuttejemi sampahaṁsemi. Bhāsamānañca maṁ na jānanti: ‘ko nu kho ayaṁ bhāsati devo vā manusso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족의 모임을 찾아갔다는 말씀에 이어, 그곳에서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가 상대와 같았다고 하십니다. 그런 가운데 가르침을 설명하고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습니다. 듣는 이들은 말하는 동안에도 그가 누구인지 몰라 신인지 사람인지 궁금해합니다. 경은 이렇게 모습과 목소리, 가르침을 듣는 반응, 정체에 대한 물음을 차례로 놓습니다. 스승이 여러 모임에서 상대에 맞추어 나타내 보인 능력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어서 그곳에서 사라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묵상

낯선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하려고 익숙한 말과 예를 골랐던 경험이 있나요? 내가 전하고 싶은 뜻을 지키면서도 상대가 알아듣게 말하려면 무엇을 살폈나요? 그렇게 말한 뒤 상대의 반응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나요?

“나는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한 뒤 사라진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라진 이가 누구일까? 신일까, 인간일까?’ 하고 생각한다.”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ṁsetvā antaradhāyāmi. Antarahitañca maṁ na jānanti: ‘ko nu kho ayaṁ antarahito devo vā manusso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가르침을 전한 뒤 스승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르치는 동안 정체를 몰랐던 사람들은 사라진 뒤에도 신인지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앞서 말할 때의 물음이 이번에는 사라진 이를 향한 물음으로 바뀝니다. 설명하고, 실천하도록 이끌고,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는 네 행동도 다시 반복됩니다. 함께 앉아 대화하던 장면은 이렇게 스승이 모습을 감추는 것으로 끝납니다. 곧 다른 모임들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만났다는 말씀이 이어져, 왕족 모임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묵상

어떤 말을 들은 뒤 말한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기억에 남은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나중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때, 그 말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졌나요?

“아난다여, 나는 수백에 이르는 제사를 맡는 계층 사람들의 모임을 … 집안을 꾸려 가는 이들의 모임을 …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의 모임을 …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신이 다스리는 하늘에 사는 신들의 모임을 … 서른셋 신들의 하늘에 사는 신들의 모임을 … 마라들의 모임을 … 높은 하늘에 사는 신들의 모임을 찾아갔던 일을 기억한다. 그곳에서도 그들과 함께 앉았고, 말을 나누었고, 토론에 참여했다.”

Abhijānāmi kho panāhaṁ, ānanda, anekasataṁ brāhmaṇaparisaṁ …pe… gahapatiparisaṁ … samaṇaparisaṁ … cātumahārājikaparisaṁ … tāvatiṁsaparisaṁ … māraparisaṁ … brahmaparisaṁ upasaṅkamitā. Tatrapi mayā sannisinnapubbañceva sallapitapubbañca sākacchā ca samāpajjitapubb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족의 모임에 이어 나머지 일곱 모임이 처음 목록의 순서대로 나옵니다. 제사를 맡는 계층에서 시작해 집안을 꾸리는 이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 여러 하늘의 신들로 하나씩 넓어집니다. 각 모임을 설명하는 되풀이되는 말은 줄여서 적었고, 마지막 높은 하늘의 신들의 모임에서 다시 전체 내용을 이어 갑니다. 스승은 그곳에서도 함께 앉아 말을 나누고 토론에 참여했다고 하십니다. 직접 그 안에서 사람이나 신들과 대화했다는 경험을 전하는 것입니다.

묵상

처음 가는 모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참여하려 할 때 나는 무엇을 먼저 살피나요? 그곳에서 자주 쓰는 말이나 관심사를 알게 되면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익숙하지 않아도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곳에서 그들의 모습이 어떠하든 내 모습도 그와 같고, 그들의 목소리가 어떠하든 내 목소리도 그와 같다. 나는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한다.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금 말하는 이가 누구일까? 신일까, 인간일까?’ 하고 생각한다.”

Tattha yādisako tesaṁ vaṇṇo hoti, tādisako mayhaṁ vaṇṇo hoti. Yādisako tesaṁ saro hoti, tādisako mayhaṁ saro hoti. Dhammiyā kathāya sandassemi samādapemi samuttejemi sampahaṁsemi. Bhāsamānañca maṁ na jānanti: ‘ko nu kho ayaṁ bhāsati devo vā manusso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나머지 모임들의 이름을 차례로 든 뒤, 마지막 높은 하늘의 신들 모임에서의 모습을 다시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상대의 모습과 목소리에 자신도 같아지고, 가르침을 전하지만 듣는 이들은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앞의 왕족 모임에서 나왔던 말과 같습니다. 사이에 있는 다른 모임들에도 같은 설명이 되풀이됩니다. 사람들의 모임에서 신들의 모임까지 대상은 바뀌지만, 함께 만나 가르침을 전하고 신인지 사람인지 궁금하게 한다는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곧 사라진 뒤의 반응과 함께 이 대목이 끝납니다.

묵상

같은 말이 모든 모임에서 똑같이 반복된다는 점이 어떻게 읽히나요? 상대가 달라도 변하지 않는 나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지,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나는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한 뒤 사라진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라진 이가 누구일까? 신일까, 인간일까?’ 하고 생각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여덟 가지 모임이다.”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ṁsetvā antaradhāyāmi. Antarahitañca maṁ na jānanti: ‘ko nu kho ayaṁ antarahito devo vā manusso vā’ti? Imā kho, ānanda, aṭṭha paris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가르침을 전하고 사라진 뒤에도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는 말씀으로 여덟 모임 이야기를 맺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난다를 부르며 처음 예고한 여덟 가지가 모두 나왔음을 밝힙니다. 각 모임에서 한 일은 함께 앉아 대화하고, 가르침을 설명하며 실천할 마음과 기쁨을 북돋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과 신이 모두 이 이야기의 상대입니다.

묵상

오랜 세월 여러 모임을 다녔지만 끝내 정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내가 누군가를 돕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경험이나, 반대로 이름 모를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나요?

19 명상에서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여덟 경지 8구절

작고 큰 모습, 아름답고 추한 모습과 여러 빛깔을 보는 여덟 경지를 비유와 함께 설명하십니다.

“아난다여, 명상에서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상태(아비바야따나)는 여덟 가지가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면서 밖으로는 범위가 좁은 모습들을 본다. 아름다운 모습도 있고 추한 모습도 있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첫째 상태다.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면서 밖으로는 끝없이 넓은 모습들을 본다. 아름다운 모습도 있고 추한 모습도 있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둘째 상태다.”

Aṭṭha kho imāni, ānanda, abhibhāyatanāni. Katamāni aṭṭha? Ajjhattaṁ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paṭhamaṁ abhibhāyatanaṁ. Ajjhattaṁ 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dutiyaṁ abhibhāyatan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명상에서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여덟 상태를 설명하십니다. 처음 두 가지에서는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면서 밖의 모습을 봅니다. 첫째는 보는 대상이 좁고 둘째는 끝없이 넓으며, 둘 다 아름다운 모습과 추한 모습을 함께 봅니다. 보는 대상의 크기가 바뀌어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는 마음은 같습니다. 이어서는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나옵니다.

묵상

작은 것을 볼 때와 아주 큰 것을 볼 때, 나는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눈앞의 대상이 아름답거나 추하다는 느낌이 먼저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 느낌이 보는 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범위가 좁은 모습들을 본다. 아름다운 모습도 있고 추한 모습도 있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셋째 상태다.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끝없이 넓은 모습들을 본다. 아름다운 모습도 있고 추한 모습도 있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넷째 상태다.”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aritt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tatiyaṁ abhibhāyatanaṁ.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appamāṇāni suvaṇṇadubbaṇṇ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catutthaṁ abhibhāyatan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셋째와 넷째에서는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의 모습을 봅니다.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던 첫째와 둘째에서 조건 하나가 바뀐 것입니다. 밖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거나 추할 수 있으며, 그 범위가 좁은 경우와 끝없이 넓은 경우를 나눕니다. 형체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밖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하는 작용은 분명하게 나옵니다. 무엇이 인식의 대상에서 빠지고 무엇이 남는지를 구별하는 설명입니다.

묵상

무언가를 보면서 내 안의 생각과 실제로 눈앞에 있는 것을 구별하려 한 적이 있나요? 어떤 점은 대상에서 보았고 어떤 점은 내가 덧붙였다고 느꼈나요? 그 차이를 알아차리고 나서 같은 대상을 보는 느낌이 달라졌나요?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푸르고, 색깔도 푸르고, 보이는 모습도 푸르고, 빛도 푸른 모습들을 본다. 푸르고, 색깔도 푸르고, 보이는 모습도 푸르고, 빛도 푸른 아마꽃처럼, 또는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이 푸르고, 색깔도 푸르고, 보이는 모습도 푸르고, 빛도 푸른 것처럼, 그와 같이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푸르고, 색깔도 푸르고, 보이는 모습도 푸르고, 빛도 푸른 모습들을 본다.”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umāpupphaṁ nīlaṁ nīlavaṇṇaṁ nīlanidassanaṁ nīlanibhāsaṁ. Seyyathā vā pana taṁ vatthaṁ bārāṇaseyyakaṁ ubhatobhāgavimaṭṭhaṁ nīlaṁ nīlavaṇṇaṁ nīlanidassanaṁ nīlanibhāsaṁ. Evameva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nīlāni nīlavaṇṇāni nīlanidassanāni nīlanibhās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다섯째에서는 푸른 모습이 대상이 됩니다.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앞의 셋째와 넷째에서 이어집니다. 푸름을 색깔과 보이는 모습과 빛으로 거듭 밝히고, 아마꽃과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을 비유로 듭니다. 꽃과 천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같은 색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예로 나옵니다. 두 비유 뒤에는 다시 명상에서 푸른 모습을 본다는 설명으로 돌아옵니다. 색을 한 번 이름 붙이고 지나가는 대신 여러 표현과 친숙한 사물을 통해 그 모습을 분명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묵상

같은 푸른색을 네 가지 말로 되풀이해 부르는 데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요? 꽃과 천으로 비유를 든 것은 빛깔을 더 또렷이 떠올리게 하려는 것이었는지 궁금해요. 최근 어떤 빛깔이 유난히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 적이 있었나요?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다섯째 단계다.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노랗고, 색깔도 노랗고, 보이는 모습도 노랗고, 빛도 노란 모습들을 본다. 노랗고, 색깔도 노랗고, 보이는 모습도 노랗고, 빛도 노란 까니까라꽃처럼, 또는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이 노랗고, 색깔도 노랗고, 보이는 모습도 노랗고, 빛도 노란 것처럼,”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pañcamaṁ abhibhāyatanaṁ.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kaṇikārapupphaṁ pītaṁ pītavaṇṇaṁ pītanidassanaṁ pītanibhāsaṁ. Seyyathā vā pana taṁ vatthaṁ bārāṇaseyyakaṁ ubhatobhāgavimaṭṭhaṁ pītaṁ pītavaṇṇaṁ pītanidassanaṁ pītanibhās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푸른 모습을 다루는 설명을 알고 본다는 인식으로 맺고, 이어 노란 모습을 제시합니다. 노랑도 색깔과 보이는 모습과 빛이 모두 노랗다는 말로 거듭 나옵니다. 비유에 쓰는 꽃은 까니까라꽃이며,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도 다시 등장합니다. 색이 달라져도 꽃과 천을 예로 드는 방식은 똑같습니다. 명상의 대상을 설명하는 말이 눈에 익은 사물의 색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뒤에서는 이 비유를 받아 노란 모습을 본다고 다시 말하고, 여섯째 능력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묵상

나는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는 문장이 색마다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같은 문장이 푸른색에도 노란색에도 똑같이 붙는다는 점이 무엇을 말해 줄지 생각해 볼 수 있나요? 무엇을 보든 보는 것과 아는 것이 함께 놓였던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봐도 좋아요.

“그와 같이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노랗고, 색깔도 노랗고, 보이는 모습도 노랗고, 빛도 노란 모습들을 본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여섯째 단계다.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붉고, 색깔도 붉고, 보이는 모습도 붉고, 빛도 붉은 모습들을 본다.”

Evameva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pītāni pītavaṇṇāni pītanidassanāni pīt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chaṭṭhaṁ abhibhāyatanaṁ.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의 꽃과 천의 비유를 받아 노란 모습을 본다는 설명을 다시 한 뒤,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합니다. 이로써 여섯째 단계를 맺습니다. 이어서 붉은 모습이 새 대상으로 나옵니다.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유지되고 색깔만 달라집니다. 푸름과 노랑에서처럼 붉음도 색깔, 보이는 모습, 빛으로 거듭 나타냅니다. 다른 색으로 옮겨 가더라도 대상을 다루는 방식은 같다는 점을 반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붉은 꽃과 천의 비유가 뒤따릅니다.

묵상

하나가 끝나자마자 다음이 곧바로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노랑에서 빨강으로 넘어가는 이 짧은 자리에서 반복이 리듬처럼 느껴지나요, 아니면 지루하게 느껴지나요? 반복되는 말을 들으며 오히려 또렷해졌던 경험이 있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붉고, 색깔도 붉고, 보이는 모습도 붉고, 빛도 붉은 반두지와까꽃처럼, 또는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이 붉고, 색깔도 붉고, 보이는 모습도 붉고, 빛도 붉은 것처럼, 그와 같이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붉고, 색깔도 붉고, 보이는 모습도 붉고, 빛도 붉은 모습들을 본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Seyyathāpi nāma bandhujīvakapupphaṁ lohitakaṁ lohitakavaṇṇaṁ lohitakanidassanaṁ lohitakanibhāsaṁ. Seyyathā vā pana taṁ vatthaṁ bārāṇaseyyakaṁ ubhatobhāgavimaṭṭhaṁ lohitakaṁ lohitakavaṇṇaṁ lohitakanidassanaṁ lohitakanibhāsaṁ. Evameva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lohitakāni lohitakavaṇṇāni lohitakanidassanāni lohitak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붉은 모습을 설명하는 비유로 반두지와까꽃과 바라나시의 천이 나옵니다. 천은 앞의 색들에서처럼 양면을 곱게 다듬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각각의 대상에서 색깔과 보이는 모습과 빛이 모두 붉다고 거듭 말한 다음, 명상에서 붉은 모습을 본다는 설명으로 돌아옵니다. 마지막에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는 인식이 붙습니다. 여기서 붉음은 좋거나 나쁜 뜻을 상징한다고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른 색과 마찬가지로 명상에서 다루는 모습의 특징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붉은 꽃과 곱게 다듬은 천으로 빛깔을 설명하는 방식이 마음에 어떻게 닿나요? 나라면 붉은색을 어떤 물건에 빗대어 말하겠어요? 어떤 빛깔을 보고 이름을 붙이기 전의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봐도 좋아요. 정해진 답은 없어요.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일곱째 단계다.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희고, 색깔도 희고, 보이는 모습도 희고, 빛도 흰 모습들을 본다. 희고, 색깔도 희고, 보이는 모습도 희고, 빛도 흰 샛별처럼, 또는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이 희고, 색깔도 희고, 보이는 모습도 희고, 빛도 흰 것처럼,”

Idaṁ sattamaṁ abhibhāyatanaṁ.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Seyyathāpi nāma osadhitārakā odātā odātavaṇṇā odātanidassanā odātanibhāsā. Seyyathā vā pana taṁ vatthaṁ bārāṇaseyyakaṁ ubhatobhāgavimaṭṭhaṁ odātaṁ odātavaṇṇaṁ odātanidassanaṁ odātanibhās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붉은 모습을 다루는 일곱째 단계를 맺고, 흰 모습을 다루는 마지막 설명으로 넘어갑니다. 앞의 색들에서는 꽃이 비유로 나왔지만, 흰빛의 예로는 샛별이 나옵니다. 다른 한 예는 여전히 양면을 곱게 다듬은 바라나시의 천입니다. 하늘의 별과 손에 잡히는 천처럼 서로 다른 대상에서 같은 흰빛을 떠올리게 합니다. 희다는 성질은 색깔과 보이는 모습과 빛으로 되풀이됩니다.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앞의 색들을 다룰 때와 똑같이 유지됩니다.

묵상

붉은 꽃에서 하얀 샛별로 비유가 바뀌는 것을 보면 무엇이 눈에 띄나요? 새벽하늘의 별처럼 희고 또렷한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본 때가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그때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그와 같이 어떤 사람이 안으로는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희고, 색깔도 희고, 보이는 모습도 희고, 빛도 흰 모습들을 본다. 그는 ‘나는 그것들을 자유롭게 다루며 알고 본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여덟째 단계다. 아난다여, 이것이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는 여덟 단계다.”

Evameva ajjhattaṁ arūpasaññī eko bahiddhā rūpāni passati odātāni odātavaṇṇāni odātanidassanāni odātanibhāsāni. ‘Tāni abhibhuyya jānāmi passāmī’ti evaṁsaññī hoti. Idaṁ aṭṭhamaṁ abhibhāyatanaṁ. Imāni kho, ānanda, aṭṭha abhibhāyatan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흰 모습을 본다는 설명과 알고 본다는 인식으로 여덟째 단계를 맺습니다. 스승은 아난다를 다시 부르며 처음 예고했던 여덟 가지를 모두 설명했다고 밝히십니다. 앞의 네 가지는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는지와 밖의 모습이 좁은지 끝없이 넓은지를 나누었습니다. 뒤의 네 가지는 푸름과 노랑과 붉음과 흰빛을 각각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다른 특징들을 구분하면서도, 대상을 자유롭게 다루고 안다는 표현은 모든 경우에 공통으로 붙습니다. 이어서는 마음의 풀려남을 여덟 가지로 설명하는 새 목록이 시작됩니다.

묵상

여덟 가지를 다 듣고 나서 이것이 여덟 가지라고 갈무리하는 순간에 어떤 생각이 드나요? 여덟 가지를 하나하나 세는 것과 한꺼번에 아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긴 이야기를 듣고 요약해 보았던 경험이 있다면 어땠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20 여덟 가지 마음의 풀려남 13구절

모습을 보는 상태부터 인식과 느낌이 멎는 상태까지 여덟 가지 마음의 풀려남을 설명하십니다. 이어 마라와 나눈 말과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은 일을 밝히십니다.

“아난다여, 마음의 풀려남(위목카)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형체를 지닌 채 여러 모습을 본다. 이것이 첫째 풀려남이다.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의 모습을 본다. 이것이 둘째 풀려남이다. 오직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기울인다. 이것이 셋째 풀려남이다.”

Aṭṭha kho ime, ānanda, vimokkhā. Katame aṭṭha? Rūpī rūpāni passati, ayaṁ paṭhamo vimokkho. Ajjhattaṁ arūpasaññī bahiddhā rūpāni passati, ayaṁ dutiyo vimokkho. Subhanteva adhimutto hoti, ayaṁ tatiyo vimokkh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대상을 다루는 여덟 상태에 이어 마음의 풀려남을 여덟 가지로 설명합니다. 처음 세 가지는 형체와 모습을 보는 일, 그리고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일입니다. 첫째에서는 형체를 지닌 채 본다고 하고, 둘째에서는 안으로 형체를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의 모습을 본다고 구별합니다. 셋째는 아름다운 것에만 마음이 향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풀려남이라는 이름이 모두 수행의 마지막 완성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뒤에서 형체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는 더 깊은 명상의 상태들이 같은 목록 안에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설명에서 같은 말이 여러 상태를 가리킬 때, 나는 그 차이를 어떻게 기억하나요? 닮은 점을 먼저 찾는 편인가요, 다른 점을 먼저 살피는 편인가요? 최근 배운 내용 가운데 그렇게 나란히 놓아 보니 더 분명해진 것이 있나요?

“형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어서고, 감각에 부딪치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갖가지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한 인식에 마음을 두지 않아, ‘공간은 끝이 없다’고 하며 끝없는 공간의 상태(아까사난짜야따나)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넷째 풀려남이다. 끝없는 공간의 상태를 완전히 넘어서 ‘의식은 끝이 없다’고 하며 끝없는 의식의 상태(윈냐난짜야따나)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다섯째 풀려남이다.”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catuttho vimokkho.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ma ‘anantaṁ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pañcamo vimokkh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넷째와 다섯째는 형체를 대상으로 삼는 데서 더 나아갑니다. 넷째에서는 형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넘어서고, 감각에 부딪치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며, 갖가지 대상의 다름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세 조건이 나옵니다. 그 위에서 공간이 끝없다는 세계에 들어 머뭅니다. 다섯째는 그 끝없는 공간마저 넘어 의식이 끝없다는 세계에 머무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넓은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과는 구별되는 명상의 설명입니다. 각 단계에서 넘어서는 대상과 새로 머무는 세계가 분명하게 짝을 이룹니다.

묵상

공간은 끝이 없다, 의식은 끝이 없다는 두 문장을 조용히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앞 단계를 넘어서서 다음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떠나는지 궁금해요. 끝없이 넓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그때의 마음은 어땠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끝없는 의식의 상태를 완전히 넘어서 ‘아무것도 없다’고 하며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아낀짠냐야따나)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섯째 풀려남이다.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를 완전히 넘어서,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네와산냐나산냐야따나)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일곱째 풀려남이다.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완전히 넘어서,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산냐웨다이따니로다)에 들어 머문다. 이것이 여덟째 풀려남이다. 아난다여, 이것이 마음의 풀려남 여덟 가지다.”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chaṭṭho vimokkho.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sattamo vimokkho.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ṁ upasampajja viharati, ayaṁ aṭṭhamo vimokkho. Ime kho, ānanda, aṭṭha vimokkh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지막 세 가지에서도 앞의 상태를 완전히 넘어선다는 말이 반복됩니다. 의식이 끝없다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음으로, 다시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끝으로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로 나아갑니다. 일곱째는 인식의 유무를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상태이고, 여덟째는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입니다. 스승은 이로써 여덟 가지를 모두 밝혔다고 맺습니다. 매우 깊은 명상의 상태들을 설명하는 목록이므로, 평소 멍해지거나 잠드는 경험과 곧바로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묵상

익숙하지 않은 상태를 설명하는 말을 들을 때, 나는 곧바로 내 경험과 같다고 여기게 되나요, 차이를 더 알고 싶어지나요? 어떤 말은 이해한 듯하다가 다시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그때 더 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아난다여, 한번은 내가 막 온전히 깨달은 뒤 우루웰라의 네란자라강 기슭, 염소치기의 반얀나무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아난다여, 그때 악한 마라가 내게 다가와 한쪽에 섰다. 아난다여, 한쪽에 선 악한 마라가 내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Ekamidāhaṁ, ānanda, samayaṁ uruvelāyaṁ viharāmi najjā nerañjarāya tīre ajapālanigrodhe paṭhamābhisambuddho. Atha kho, ānanda, māro pāpimā yenāh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ānanda, māro pāpimā maṁ etadavoca: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명상에 관한 두 목록을 마친 뒤, 막 깨달았을 때의 일을 아난다에게 들려주십니다. 우루웰라의 네란자라강 기슭에서 악한 마라가 찾아와 생을 마치시라고 청했던 일입니다. 지금 차빨라에서 마라가 내놓은 청과 같은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마라가 스승의 옛 말씀을 인용했지만, 이제는 스승이 직접 당시의 대화를 회상합니다. 같은 요청이 깨달음 직후와 마지막 여정에 모두 등장하는 것입니다. 뒤이어 스승은 그때 제자들과 가르침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어떤 조건을 밝혔는지 설명하시게 됩니다.

묵상

오래전에 들었던 부탁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다시 들은 적이 있나요? 말은 같아도 내 상황이 달라져 다른 뜻으로 다가왔나요? 그때 처음 답했던 이유와 나중에 답한 이유를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져 있었나요?

“이 말에, 아난다여, 나는 악한 마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악한 자여, 내 남성 수행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Evaṁ vutte, ahaṁ, ānanda, māraṁ pāpimantaṁ etadavocaṁ: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ū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라가 깨달음 직후에 생을 마치라고 청했을 때, 스승이 내건 조건을 아난다에게 직접 되짚어 주십니다. 첫 조건은 남성 수행자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입니다. 제자들은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고, 배운 대로 살아가며, 스스로 남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답하고 가르침을 전할 근거도 갖추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기억하는 일과 실천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 모두 포함됩니다. 스승이 떠난 뒤에도 제자들이 그 길을 이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묵상

제자들이 배운 것을 익혀 남에게 설명하고, 다른 주장에는 이치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눈에 들어와요. 내가 배운 것 가운데 아직 내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빈자리는 어떻게 채워 갈 수 있을까요?

“악한 자여, 내 여성 수행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uniyo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마라에게 내걸었던 두 번째 조건으로 여성 수행자 제자들을 말씀하십니다. 앞서 남성 수행자들에게 제시했던 자질이 똑같이 반복됩니다.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기억하며 그에 맞게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풀어 설명하며 반대 주장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성 수행자들은 가르침을 스스로 익히고 남에게 전할 사람들로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성별이 달라져도 요구되는 자질과 역할이 같다는 점을 긴 반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묵상

가르침을 이어 갈 사람으로 여성 수행자들이 따로 이름을 불려요. 이 반복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나요? 같은 조건이 대상만 바꾸어 되풀이될 때, 그 되풀이가 어떤 무게를 더해 준다고 생각하나요?

“악한 자여, 내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akā na sāva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번째 조건은 집에서 생활하며 가르침을 따르는 남성 제자들입니다. 집을 떠난 수행자들에게 제시한 자질이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많이 배우고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르침대로 살며 남에게 풀어 설명하고 반대 주장에도 이치에 맞게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이어 가는 역할이 집을 떠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집과 일터에서 생활하는 제자들도 배우고 실천하며 전하는 사람들로 언급됩니다. 스승이 생을 마치기 전에 갖추어져야 할 조건에 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묵상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배운 것을 익혀 남에게 설명하고 반대 주장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요. 나는 일상에서 배운 것을 내 말로 전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요?

“악한 자여, 내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되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제자들은 능숙하고, 잘 훈련되어 있고, 자신이 있으며, 많이 배워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설명하고 가르치고 알리고 확립하고 풀어 보이고 나누어 밝히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다른 이의 반대 주장이 생기면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반박하여 물리치고, 확실한 근거를 갖추어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upāsikā na sāvikā bhavissanti viyattā vinītā visāradā bahussutā dhammadharā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iyo, sakaṁ ācariyakaṁ uggahetvā ācikkhissanti desessanti paññapessanti paṭṭhapessanti vivarissanti vibhajissanti uttānīkarissanti, uppannaṁ parappavādaṁ sahadhammena suniggahitaṁ niggahetvā sappāṭihāriyaṁ dhammaṁ deses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번째 조건은 집에서 생활하며 가르침을 따르는 여성 제자들입니다. 앞서 나온 세 무리와 똑같이 배우고 기억하며 실천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로써 남녀 수행자와 집에서 생활하는 남녀 신자가 모두 언급됩니다. 각 무리를 따로 부르면서 같은 자질을 반복하므로 어느 한쪽의 역할도 빠지지 않습니다. 가르침을 이어 가는 힘이 여러 삶의 자리에 있는 제자들에게 두루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뒤에서는 사람들의 자질에 이어 거룩한 삶의 길 자체가 널리 자리 잡아야 한다는 조건이 나옵니다.

묵상

함께 배우는 모임에서 서로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이 도움이 된 적이 있나요? 같은 내용을 배우더라도 각자가 전해 주는 이야기는 어떻게 달랐나요?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이었나요?

“악한 자여, 나의 이 깨끗한 삶의 길이 온전히 자리 잡고, 풍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이 알고, 두루 뻗어 나가, 신과 인간에게 분명히 알려지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idaṁ brahmacariyaṁ na iddhañceva bhavissati phītañca vitthārikaṁ bāhujaññaṁ puthubhūtaṁ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무리 제자들의 자질에 이어 깨끗한 삶의 길 자체에 관한 조건을 밝힙니다. 그 길이 온전히 자리 잡고, 풍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이 알고, 두루 뻗어 나가, 신과 인간에게 분명히 알려져야 한다는 여섯 표현이 이어집니다. 가르침을 아는 사람의 수만이 아니라, 배우고 실천하는 길이 세상에 뿌리내리고 널리 알려지는 모습까지 말합니다. 이로써 스승이 처음 마라에게 생을 마치지 않겠다고 답하면서 내놓은 조건들이 마무리됩니다.

묵상

어떤 배움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와 여러 사람이 함께 실천하게 되었을 때를 비교해 본 적이 있나요? 알려지는 것과 실제 삶에 자리 잡는 것은 어떻게 달랐나요? 내가 지켜본 모임에서는 무엇이 그 배움을 오래 이어지게 했나요?

“아난다여, 바로 오늘 차빨라의 예배 장소에서 악한 마라가 내게 다가왔다. 다가와서 한쪽에 섰다. 아난다여, 한쪽에 선 악한 마라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Idāneva kho,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māro pāpimā yenāh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ānanda, māro pāpimā maṁ etadavoca: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깨달음 직후의 일을 회상한 데서 오늘 있었던 일로 돌아오십니다. 차빨라의 예배 장소에 마라가 찾아와 생을 마치라고 다시 청했던 일을 아난다에게 들려주십니다. 마라가 다가와 한쪽에 섰다는 행동과 그가 한 말이 차례로 나옵니다. 그 청은 깨달음 직후에 했던 청과 같습니다. 다만 두 시점 사이에는 제자들이 가르침을 배우고 전하며 그 길이 퍼져 나간 시간이 있습니다. 뒤에서는 마라가 스승의 옛 말씀을 근거로 어떤 주장을 했는지 이어서 들려주십니다.

묵상

스승은 마라가 온 일을 숨기지 않고 시간과 장소까지 짚어 아난다에게 말해요. 어려운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언제 어디서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떤 차이를 만들까요?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여, 내 남성 수행자들이 제자로서 갖출 것을 갖추기 전에는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 … 내 여성 수행자들이 제자로서 갖출 것을 갖추기 전에는 … 집에서 생활하는 내 남성 신자들이 제자로서 갖출 것을 갖추기 전에는 … 집에서 생활하는 내 여성 신자들이 제자로서 갖출 것을 갖추기 전에는 … 나의 이 깨끗한 삶의 길이 온전히 자리 잡고, 풍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이 알고, 두루 뻗어 나가, 신과 인간에게 분명히 알려지기 전에는.’”

Bhāsitā kho panesā, bhante, bhagavatā vācā: “na tāvāhaṁ, pāpima, parinibbāyissāmi, yāva me bhikkhū na sāvakā bhavissanti …pe… yāva me bhikkhuniyo na sāvikā bhavissanti …pe… yāva me upāsakā na sāvakā bhavissanti …pe… yāva me upāsikā na sāvikā bhavissanti …pe… yāva me idaṁ brahmacariyaṁ na iddhañceva bhavissati phītañca vitthārikaṁ bāhujaññaṁ puthubhūtaṁ,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들려주시는 회상 안에서 마라는 스승의 옛 말씀을 다시 인용합니다. 남녀 수행자와 집에서 생활하는 남녀 신자의 자질, 그리고 깨끗한 삶의 길이 널리 자리 잡아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제자들의 자질은 앞에서 길게 나왔으므로 여기서는 되풀이되는 부분을 줄여 전합니다. 마라는 자신이 새 조건을 내세우는 대신 스승이 예전에 세운 조건을 근거로 삼습니다. 이어서 그 조건이 이미 갖추어졌다고 말하며 지금 생을 마쳐야 한다는 자신의 청을 뒷받침하게 됩니다.

묵상

내가 예전에 한 말을 누군가 나중에 그대로 꺼낸 적이 있나요? 그 말의 뜻은 여전히 같았나요,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점도 있었나요? 그때 상대에게 다시 설명하고 싶었던 조건이나 사정은 무엇이었나요?

“‘스승이시여, 지금 스승의 이 깨끗한 삶의 길은 온전히 자리 잡고, 풍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이 알고, 두루 뻗어 나가, 신과 인간에게 분명히 알려졌습니다. 스승이시여, 이제 다시 태어남 없이 생을 마치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생을 마치십시오. 스승이시여, 지금이 스승께서 생을 마치실 때입니다.’ 이 말에, 아난다여, 나는 악한 마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악한 자여, 조바심내지 마라.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날은 머지않았다.’”

Etarahi kho pana, bhante, bhagavato brahmacariyaṁ iddhañceva phītañca vitthārikaṁ bāhujaññaṁ puthubhūtaṁ, yāva devamanussehi suppakāsitaṁ. Parinibbātu dāni, bhante, bhagavā, parinibbātu sugato, parinibbānakālo dāni, bhante, bhagavato’ti. Evaṁ vutte, ahaṁ, ānanda, māraṁ pāpimantaṁ etadavocaṁ: ‘appossukko tvaṁ, pāpima, hohi, na ciraṁ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난다에게 마라의 결론과 자신의 답을 이어서 들려주십니다. 마라는 깨끗한 삶의 길이 널리 자리 잡았다고 말한 뒤 생을 마치라는 청을 되풀이했습니다. 스승은 조바심내지 말라고 답하면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고 밝히셨습니다. 마라의 말에서는 스승이라는 호칭이 나오고, 스승 자신의 답에서는 깨달음에 이른 이라는 호칭이 나옵니다. 오늘 이미 있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스승이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묵상

마라는 조건이 다 채워졌다며 서두르고, 스승은 ‘조바심내지 마라’고 하면서도 곧 올 일이라고 말해요. 재촉을 받을 때 내 안에서 서두르는 마음과 느긋한 마음은 각각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나요?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아난다여, 바로 오늘 차빨라의 예배 장소에서 깨달음에 이른 이는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았다.”

Ito tiṇṇaṁ māsānaṁ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Idāneva kho,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tathāgatena satena sampajānena āyusaṅkhāro ossaṭṭ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마라에게 했던 말은 석 달 뒤라는 시기를 밝히며 끝납니다. 이어 스승은 아난다에게 바로 오늘 차빨라에서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지진의 이유를 물었던 아난다는 그 이유에 관한 설명에 더하여 스승이 직접 내리신 결정을 듣게 됩니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했다는 말이 붙어, 자신이 하는 일을 아는 가운데 그 힘을 놓았음을 밝힙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난다가 이제 스승께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는 대목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중요한 결정을 이미 내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적이 있나요? 그때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상대가 결정한 까닭을 듣는 일과 내 아쉬움을 전하는 일은 그 대화에서 어떻게 함께 이루어졌나요?

21 아난다의 간청과 남은 이들에게 하는 당부 31구절

아난다는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하지만 스승은 이미 때를 놓쳤다고 하십니다. 함께 익혀야 할 가르침을 모아 말씀하고 방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이 말씀에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아난다여, 이제 그만하여라.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청하지 마라. 아난다여, 지금은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청할 때가 아니다.”

Evaṁ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Alaṁ dāni, ānanda. Mā tathāgataṁ yāci, akālo dāni, ānanda, tathāgataṁ yācanā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았다고 밝히시자 아난다가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합니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 세상에 대한 연민, 신과 인간의 이로움을 그 이유로 듭니다. 스승은 그만하라고 하시며 지금은 청할 때가 아니라고 답하십니다. 청의 이유 하나하나를 반박하시기보다, 그 시기가 지났음을 강조하십니다. 아난다는 앞서 들었던 수명에 관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때 청하지 못한 채 결정이 내려진 뒤에야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묵상

아난다는 자신의 아쉬움보다 세상의 이익과 행복을 앞세워 청해요. 스승은 그 이유가 틀렸다고 하지 않고 ‘때가 아니다’라고 답해요. 누군가의 간곡한 부탁을 지금은 받을 수 없다고 말해야 했던 적이 있나요?

두 번째에도 아난다 수행자는 … 세 번째에도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아난다여, 너는 깨달음에 이른 이의 깨달음(보디)을 믿는가?” “그렇습니다, 스승이시여.” “그렇다면 아난다여, 왜 너는 깨달음에 이른 이를 세 번째까지 몰아붙이는가?”

Dutiyampi kho āyasmā ānando …pe… tatiy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Saddahasi tvaṁ, ānanda, tathāgatassa bodhin”ti? “Evaṁ, bhante”. “Atha kiñcarahi tvaṁ, ānanda, tathāgataṁ yāvatatiyakaṁ abhinippīḷes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두 번째와 세 번째에도 같은 청을 하자 스승은 자신의 깨달음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아난다가 그렇다고 답하자 왜 세 번이나 몰아붙이느냐고 되물으십니다. 믿는다는 말과 거듭되는 청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대화입니다. 스승의 결정을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지만, 아난다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이어서 자신이 스승에게 직접 들었던 말씀을 제시합니다.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그 말씀을 기억했기에 청했다는 이유를 밝히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

믿는다고 대답한 뒤에 곧바로 ‘그런데 왜 계속 조르느냐’는 물음이 이어져요. 누군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적이 있나요? 그때 믿음과 아쉬움은 어떻게 함께 있었나요?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 앞에서 직접 이 말씀을 들었고 스승 앞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아난다여, 누구든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면, 그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Sammukhā metaṁ, bhante, bhagavato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스승의 깨달음을 믿는다고 답한 뒤 자신이 청을 거듭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스승 앞에서 직접 듣고 받아 지닌 말씀이라는 점을 두 번 강조합니다. 네 가지 바탕을 닦아 잘 갖춘 사람은 원할 경우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문장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어서는 스승 자신이 그 바탕을 갖추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난다는 그런 말씀을 들었던 기억을 들어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한 까닭을 설명합니다.

묵상

아난다는 자신의 감정보다 스승에게서 직접 들은 말을 꺼내 청의 근거로 삼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그 사람이 예전에 한 말을 근거로 삼았던 적이 있나요? 그런 방식은 어떤 힘과 한계를 가질까요?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아난다여, 너는 믿는가?” “그렇습니다, 스승이시여.”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ti. “Saddahasi tvaṁ, ānandā”ti? “Evaṁ, bhant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스승에게 직접 들었다고 밝힌 말씀의 끝부분입니다. 누구든 네 가지 바탕을 갖추면 오래 머물 수 있다는 말에 이어, 스승 자신도 그 바탕을 갖추셨다는 말씀이 인용됩니다. 아난다가 인용을 마치자 스승은 그 말을 믿느냐고 물으시고, 아난다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앞부분은 아난다가 옛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뒤의 짧은 문답은 지금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것입니다. 이 확인 뒤에 스승은 아난다가 말씀을 듣고도 그때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십니다.

묵상

어떤 말을 이미 들어 알고 믿고 있는데도, 정작 필요한 순간에 그 말이 떠오르지 않은 적이 있나요? 아난다가 “그렇습니다” 하고 답하는 장면에서, 믿는다는 것과 그 믿음을 꺼내 쓰는 것 사이에 어떤 틈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네 잘못이고 바로 네 실수다. 깨달음에 이른 이가 이렇게 뚜렷한 암시와 분명한 신호를 보였는데도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이렇게 청하지 않았다. ‘스승이시여,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잘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Tasmātihānanda, tuyhevetaṁ dukkaṭaṁ, tuyhevetaṁ aparaddhaṁ, yaṁ tvaṁ tathāgatena evaṁ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ṁ, na tathāgataṁ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난다에게 그동안의 일을 돌아보게 하며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말합니다. 문제는 여러 번 주어진 신호를 알아차리고 머물러 달라고 청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청하는 말은 많은 사람과 세상, 신과 인간의 이로움을 이유로 듭니다. 스승은 이 청의 내용까지 하나하나 짚어 줍니다.

묵상

누군가가 이미 분명한 신호를 보냈는데 나중에서야 그 뜻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청하는 말에 ‘많은 사람의 이익’과 ‘세상에 대한 연민’이 함께 들어 있는 점은, 부탁의 이유를 어떻게 바라보게 하나요?

“아난다여, 네가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청했다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네 말을 두 번은 물리치고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네 잘못이고 바로 네 실수다. 아난다여, 나는 한번은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물렀다. 아난다여, 그곳에서도 나는 네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다. 아난다여, 독수리봉은 아름답다.’”

Sace tvaṁ, ānanda, tathāgataṁ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ṁ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ṁ dukkaṭaṁ, tuyhevetaṁ aparaddhaṁ. Ekamidāhaṁ, ānanda, samayaṁ rājagahe viharāmi gijjhakūṭe pabbate. Tatrāpi kho tāhaṁ, ānanda, āmantesiṁ: ‘ramaṇīyaṁ, ānanda, rājagahaṁ, ramaṇīyo, ānanda, gijjhakūṭo pabba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난다가 그때 청했다면 두 번 물리친 뒤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세 차례 청했는데도 거절하시는 상황과는 시점이 다릅니다. 이미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놓기 전에는 가능했던 일을 회상하시는 것입니다. 이어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서 아난다에게 했던 말씀을 떠올리십니다. 그곳이 아름답다는 말로 시작해 오래 머물 수 있다는 말씀을 전했던 일입니다. 스승은 이 일을 첫 사례로 들고, 뒤에서도 여러 장소에서 같은 말을 했다고 차례로 짚으십니다.

묵상

오래전 대화를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서 처음에는 듣지 못했던 뜻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그 말이 기억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지금 다시 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점을 좀 더 묻고 싶나요?

“‘아난다여, 누구든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면, 그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독수리봉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말씀하신 뒤 이어 하셨던 말씀입니다. 먼저 누구든 네 가지 바탕을 갖추면 원할 경우 온 수명이나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스승 자신도 그 바탕을 갖추셨다고 밝히셨습니다. 일반적인 조건을 말한 뒤 그것이 자신에게도 해당한다고 알리신 것입니다. 바탕을 닦고 익히는 과정은 두 경우에 똑같이 반복됩니다. 스승은 지금 그 옛 말씀을 되짚으면서 당시 아난다가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묵상

“누구든 갖추면”이라는 일반 원칙이 “깨달음에 이른 이도 그렇다”로 옮겨 가는 방식은 어떻게 읽히나요? 일반 원칙을 들은 사람이 그것을 자기에게 하는 말로 알아듣는 순간은 언제쯤일까요?

“그런데도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뚜렷한 암시와 분명한 신호를 보였는데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이렇게 청하지 않았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Evampi kho tvaṁ,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ṁ, na tathāgataṁ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독수리봉에서 뚜렷한 암시를 주었는데도 아난다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청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청이었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오래 머물러 달라는 부탁과 함께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 세상에 대한 연민, 신과 인간의 이로움이 모두 나옵니다. 이 말은 아난다가 그때 하지 않았던 청의 내용입니다.

묵상

옛 대화를 돌아볼 때 실제로 했던 말과 그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이 함께 떠오르기도 하나요? 두 말을 나누어 생각하면 그 장면이 어떻게 달리 보이나요? 지금 마음에 남는 말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아난다여, 네가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청했다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네 말을 두 번은 물리치고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네 잘못이고 바로 네 실수다.”

Sace tvaṁ, ānanda, tathāgataṁ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ṁ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ṁ dukkaṭaṁ, tuyhevetaṁ aparaddh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독수리봉에서의 일을 돌아보는 말씀이 그랬다면 어땠을 것이라는 말과 지적으로 끝납니다. 아난다가 그때 청했다면 두 번 물리친 뒤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청하지 않아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을 가리킵니다. 이어 그 잘못이 아난다에게 있다고 거듭 지적하십니다. 이 대목의 두 번과 세 번째는 스승과 아난다의 당시 상황에 관한 말씀입니다. 모든 부탁에서 거절을 무시하고 거듭 청하면 된다는 일반적인 규칙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묵상

누군가와 예전 일을 돌아볼 때, 실제 있었던 일과 “그랬다면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나누어 이야기하나요? 두 가지가 뒤섞여 대화가 어려워진 적도 있나요? 그때 서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무엇이었나요?

“아난다여, 나는 한번은 바로 그 라자가하의 고따마 반얀나무 아래에 머물렀다. … 바로 그 라자가하의 도둑 절벽에 머물렀다. … 바로 그 라자가하의 웨바라산 기슭 삿따빤니 동굴에 머물렀다. … 바로 그 라자가하의 이시길리산 기슭 검은 바위에 머물렀다. … 바로 그 라자가하의 시따 숲, 뱀 머리 바위그늘에 머물렀다. … 바로 그 라자가하의 따뽀다 수행처에 머물렀다. …”

Ekamidāhaṁ, ānanda, samayaṁ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gotamanigrodhe …pe…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corapapāte …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vebhārapasse sattapaṇṇiguhāyaṁ …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isigilipasse kāḷasilāyaṁ …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sītavane sappasoṇḍikapabbhāre …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tapodārāme …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독수리봉에 이어 라자가하의 여러 장소가 차례로 나옵니다. 고따마 반얀나무, 도둑 절벽, 삿따빤니 동굴, 검은 바위, 뱀 머리 바위그늘, 따뽀다 수행처입니다. 스승은 각각의 장소에 머물렀던 일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장소 뒤의 생략 표시는 앞에서 나온 대화가 그곳에서도 이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여러 곳에서 주었던 기회를 되짚으시는 것입니다. 나무 아래부터 동굴과 숲까지 스승과 아난다가 함께 지냈던 다양한 장소가 회상 속에 펼쳐집니다.

묵상

같은 말이 장소마다 되풀이되었는데도 듣는 이가 그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오래 머문 장소를 하나 떠올리면, 그곳에서 했던 말 중 시간이 지나도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나는 한마디가 있나요?

“바로 그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 다람쥐 먹이터에 머물렀다. … 바로 그 라자가하의 지와까 망고 숲에 머물렀다. … 바로 그 라자가하의 맛다꿋치 사슴 동산에 머물렀다.”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jīvakambavane … tattheva rājagahe viharāmi maddakucchismiṁ migadāy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라자가하에서 머물렀던 장소 세 곳이 더 나옵니다. 대나무 숲의 다람쥐 먹이터, 지와까 망고 숲, 맛다꿋치 사슴 동산입니다. 대나무 숲과 다람쥐 먹이터는 하나의 장소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앞의 여섯 곳에 이 세 곳이 더해져, 독수리봉 이후 아홉 장소를 차례로 떠올리는 회상이 이어집니다. 각 장소에서 같은 뜻의 말씀을 건넸다는 것이 이 나열을 묶는 공통점입니다. 뒤에서는 이 장소들이 아름답다고 했던 말씀이 한꺼번에 펼쳐집니다.

묵상

여러 장소의 이름을 차례로 들으면 그곳에서 나눈 대화도 함께 떠오르나요? 같은 사람과 서로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나요? 그중 유독 선명하게 남은 장면에는 어떤 소리나 풍경이 있었나요?

“아난다여, 그곳에서도 나는 네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라자가하는 아름답다. 독수리봉은 아름답다. 고따마 반얀나무는 아름답다. 도둑 절벽은 아름답다. 웨바라산 기슭의 삿따빤니 동굴은 아름답다. 이시길리산 기슭의 검은 바위는 아름답다. 시따 숲의 뱀 머리 바위그늘은 아름답다. 따뽀다 수행처는 아름답다. 대나무 숲의 다람쥐 먹이터는 아름답다. 지와까 망고 숲은 아름답다. 맛다꿋치 사슴 동산은 아름답다.’”

Tatrāpi kho tāhaṁ, ānanda, āmantesiṁ: ‘ramaṇīyaṁ, ānanda, rājagahaṁ, ramaṇīyo gijjhakūṭo pabbato, ramaṇīyo gotamanigrodho, ramaṇīyo corapapāto, ramaṇīyā vebhārapasse sattapaṇṇiguhā, ramaṇīyā isigilipasse kāḷasilā, ramaṇīyo sītavane sappasoṇḍikapabbhāro, ramaṇīyo tapodārāmo, ramaṇīyo veḷuvane kalandakanivāpo, ramaṇīyaṁ jīvakambavanaṁ, ramaṇīyo maddakucchismiṁ migadāy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머물렀던 곳들이 아름답다는 말씀으로 다시 나열됩니다. 라자가하라는 도시 이름에 독수리봉과 그 뒤의 아홉 장소가 더해져 열한 이름이 나옵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한 번으로 줄이지 않고 모든 이름에 되풀이됩니다. 앞에서는 어디에 머물렀는지를 말했고, 여기서는 그곳에서 아난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풍경에 관한 말씀 뒤에는 오래 머물 수 있다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지금의 회상에서는 두 말씀이 함께 아난다에게 주었던 암시로 제시됩니다.

묵상

열한 곳이 모두 “아름답다”로 끝나는 목록을 소리 내어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익숙한 장소가 어느 날 특별하게 다가왔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말한 적이 있나요?

“‘아난다여, 누구든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면 …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pe…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각 장소가 아름답다는 말씀에 이어 네 가지 바탕과 수명에 관한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누구든 그 바탕을 닦아 갖춘 경우를 제시한 뒤, 중간은 생략하고 스승 자신이 원할 경우 머물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생략된 자리는 앞서 충분히 나왔던 같은 설명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머물 수 있다는 기간은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으로 제시됩니다. 원하는 만큼 끝없이 산다는 말로 넓혀 읽어서는 뜻이 달라집니다. 스승은 자신이 이미 아난다에게 전했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하십니다.

묵상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도 처음과 나중에 마음에 남는 부분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그 차이는 내 상황이 바뀌어서였나요, 앞서 지나쳤던 조건을 새로 들어서였나요? 최근 다시 읽거나 들으며 뜻이 달라진 말이 있나요?

“그런데도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뚜렷한 암시와 분명한 신호를 보였는데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이렇게 청하지 않았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아난다여, 네가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청했다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네 말을 두 번은 물리치고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Evampi kho tvaṁ,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ṁ, na tathāgataṁ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Sace tvaṁ, ānanda, tathāgataṁ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ṁ adhivāsey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러 장소에서의 신호를 모두 되짚은 뒤, 스승은 다시 결론으로 돌아옵니다. 스승은 그렇게 여러 번 분명히 신호를 보였는데도 아난다가 알아차리지 못했고 청하지도 않았다고 하신 뒤, 청했더라면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앞선 독수리봉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이제 모든 장소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 반복은 알아차리지 못함과 청하지 않음, 그리고 열려 있었던 가능성을 함께 보여 줍니다.

묵상

이 지적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장소를 거친 뒤에 나옵니다. 나 자신도 오랜 시간 쌓인 신호를 한꺼번에 돌아보고서야 알게 된 일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나요?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네 잘못이고 바로 네 실수다. 아난다여, 나는 한번은 바로 이곳 웨살리의 우데나 예배 장소에 머물렀다. 아난다여, 그곳에서도 나는 네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다. 우데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아난다여, 누구든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면, 그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Tasmātihānanda, tuyhevetaṁ dukkaṭaṁ, tuyhevetaṁ aparaddhaṁ. Ekamidāhaṁ, ānanda, samayaṁ idheva vesāliyaṁ viharāmi udene cetiye. Tatrāpi kho tāhaṁ, ānanda, āmantesiṁ: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ṁ udenaṁ cetiyaṁ.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라자가하에서의 회상에 이어 바로 이곳 웨살리에서의 일을 떠올리십니다. 웨살리의 우데나 예배 장소에 머물렀을 때에도 그곳이 아름답다고 하셨고, 네 가지 바탕을 갖춘 사람은 원할 경우 온 수명이나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차빨라이므로 우데나와 같은 장소는 아닙니다. 같은 도시 웨살리 안에서 앞서 머물렀던 다른 장소를 돌아보시는 것입니다. 스승은 도시가 바뀌어도 아난다에게 같은 뜻의 말씀을 전해 왔다는 점을 짚으십니다.

묵상

같은 도시 안에서도 장소마다 다른 기억이 겹쳐 떠오른 적이 있나요? 지금 있는 곳에서 가까운 다른 장소의 대화를 떠올리면 어떤 점이 더 생생해지나요? 그때 들었던 말 가운데 지금 새롭게 묻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우데나에서 전했던 말씀 가운데 스승 자신에 관한 부분입니다. 네 가지 바탕을 닦고 익혀 잘 갖추었다는 과정과, 원할 경우 온 수명이나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옵니다. 앞서 누구든 그 바탕을 갖추면 머물 수 있다고 했던 일반 조건을 자신에게 적용한 말씀입니다. 그 바탕을 어떻게 닦았는지 여러 동사로 되풀이해 말합니다. 스승은 이런 말씀을 이미 전했음을 상기시킨 뒤에도 아난다가 당시 청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십니다.

묵상

“원한다면 머물 수 있다”는 말은 가능성이 있어도 누군가의 청이 있어야 열리는 문처럼 들려요. 내 삶에서도 능력은 있는데 말하지 못해 닫혀 버린 일이 있었나요? 그때 무엇이 입을 막았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뚜렷한 암시와 분명한 신호를 보였는데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이렇게 청하지 않았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Evampi kho tvaṁ,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ṁ, na tathāgataṁ yāci: ‘tiṭṭhatu, bhante,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우데나에서 주었던 암시를 아난다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스승은 오래 머물 수 있다는 말씀을 뚜렷한 암시와 분명한 신호라고 부르십니다. 이어 아난다가 그때 하지 않았던 청의 내용을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스승과 바른 길을 가신 분이라는 두 호칭으로 오래 머물기를 청하고, 많은 사람과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그 이유로 드는 말입니다. 그때 청할 수 있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묵상

상대의 말뜻을 뒤늦게 알아차렸던 대화를 떠올리면 무엇이 기억나나요? 말 자체는 분명했어도 내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부분이 있었나요? 지금 비슷한 상황이라면 어떤 질문을 더해 서로의 뜻을 확인하고 싶나요?

“아난다여, 네가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청했다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네 말을 두 번은 물리치고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네 잘못이고 바로 네 실수다.”

Sace tvaṁ, ānanda, tathāgataṁ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ṁ adhivāseyya, tasmātihānanda, tuyhevetaṁ dukkaṭaṁ, tuyhevetaṁ aparaddh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우데나에서의 회상도 아난다가 청했더라면 세 번째에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당시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을 말합니다. 이어 스승은 잘못과 실수가 아난다에게 있다고 반복하십니다. 같은 결론은 앞서 독수리봉에서의 일을 돌아볼 때에도 나왔습니다. 스승은 여러 장소에서 기회가 있었음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지금의 청은 이미 늦었다는 앞선 답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묵상

같은 말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들으면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하나요? 예전에는 지나쳤던 말이 나중에 어떤 일을 겪은 뒤 또렷해진 적이 있나요? 그 변화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면 어느 장면부터 말하고 싶나요?

“아난다여, 나는 한번은 바로 이곳 웨살리의 고따마까 예배 장소에 머물렀다. … 바로 이곳 웨살리의 삿땀바 예배 장소에 머물렀다. … 바로 이곳 웨살리의 바후뿟따 예배 장소에 머물렀다. … 바로 이곳 웨살리의 사란다다 예배 장소에 머물렀다. … 그리고 아난다여, 바로 오늘 차빨라의 예배 장소에서 나는 네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웨살리는 아름답다. 우데나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고따마까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삿땀바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바후뿟따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사란다다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차빨라 예배 장소는 아름답다.’”

Ekamidāhaṁ, ānanda, samayaṁ idheva vesāliyaṁ viharāmi gotamake cetiye …pe… idheva vesāliyaṁ viharāmi sattambe cetiye … idheva vesāliyaṁ viharāmi bahuputte cetiye … idheva vesāliyaṁ viharāmi sārandade cetiye … idāneva kho tāhaṁ, ānanda, ajja cāpāle cetiye āmantesiṁ: ‘ramaṇīyā, ānanda, vesālī, ramaṇīyaṁ uden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gotamak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sattamb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bahuputt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sārandadaṁ cetiyaṁ, ramaṇīyaṁ cāpālaṁ cetiy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우데나에 이어 웨살리의 네 예배 장소를 더 떠올리고, 바로 오늘 차빨라에서 했던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고따마까, 삿땀바, 바후뿟따, 사란다다에서 하신 말씀도 같은 내용이어서 줄여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웨살리와 여섯 예배 장소가 모두 아름답다고 하나씩 반복됩니다. 먼 과거의 여러 장소를 지나 지금 두 사람이 있는 장소까지 회상이 이어진 것입니다. 스승은 오늘도 같은 뜻의 말씀을 전했으므로, 아난다에게 주었던 암시가 옛일에만 한정되지 않았음을 밝히십니다.

묵상

같은 말이 여러 곳에서 반복되었는데도 놓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아요. 나는 가까운 사람이 여러 번 건넨 말을 지나쳐 버린 적이 있나요? 반복이 오히려 배경음처럼 들린 적은 없었을까요?

“‘아난다여, 누구든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면, 그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을 닦고 거듭 익혀, 나아갈 수레로 삼고 바탕으로 삼으며, 꾸준히 실천하고 몸에 익혀 잘 갖추었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원할 경우 사람이 누릴 온 수명이나 그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다.’”

Yassa kassaci,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 Tathāgatassa kho, ānanda,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 so ākaṅkhamāno, ānanda, tathāgato kappaṁ vā tiṭṭheyya kappāvasesaṁ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오늘 차빨라에서 하신 말씀도 앞서 여러 곳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누구든 네 가지 바탕을 갖추면 원할 경우 온 수명이나 남은 기간 동안 머물 수 있고, 스승 자신도 그 바탕을 갖추셨다는 말씀입니다. 두 경우 모두 바탕을 닦고 거듭 익히는 과정이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그 뒤에는 원할 경우라는 조건이 각각 붙습니다. 스승은 이 말씀을 다시 인용하며 오늘 아난다 앞에서도 가능성을 분명히 밝혔음을 확인하십니다. 곧이어 아난다가 그때도 청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묵상

여러 번 들었던 설명을 마지막으로 다시 들을 때, 앞서 지나친 조건이 귀에 들어온 적이 있나요? 그 조건은 내가 이해한 결론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요즘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말이나 약속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그런데도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뚜렷한 암시와 분명한 신호를 보였는데 너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이렇게 청하지 않았다. ‘스승께서는 사람이 누릴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온 수명 동안 머물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아난다여, 네가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 청했다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네 말을 두 번은 물리치고 세 번째에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Evampi kho tvaṁ, ānanda, tathāgatena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āsakkhi paṭivijjhituṁ, na tathāgataṁ yāci: ‘tiṭṭhatu bhagavā kappaṁ, tiṭṭhatu sugato kappaṁ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Sace tvaṁ, ānanda, tathāgataṁ yāceyyāsi, dveva te vācā tathāgato paṭikkhipeyya, atha tatiyakaṁ adhivāsey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오늘 차빨라에서도 아난다가 암시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청의 내용에는 스승과 바른 길을 가신 분이라는 두 호칭, 그리고 많은 사람과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이라는 이유가 다시 나옵니다. 청했다면 두 번 거절한 뒤 세 번째에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조건문도 붙습니다. 여러 장소를 돌아보던 설명이 오늘의 장면에 이른 것입니다. 뒤에서는 이별과 변화에 관한 말씀, 이미 놓은 생명의 힘을 되돌리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오래된 일부터 오늘의 일까지 차례로 돌아보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나요? 하나의 장면만 볼 때와 여러 장면을 이어 볼 때 이해가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 대화에서 아직 서로 다르게 기억하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것은 바로 네 잘못이고 바로 네 실수다. 아난다여, 내가 미리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떨어지고, 헤어지고, 달라지게 된다. 아난다여, 태어나고 생겨나고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져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 부디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들,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Tasmātihānanda, tuyhevetaṁ dukkaṭaṁ, tuyhevetaṁ aparaddhaṁ. Nanu etaṁ,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ṁ: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Taṁ kutettha, ānanda,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vata mā palujj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에게 잘못을 지적한 뒤, 스승은 미리 알려 주었던 이별과 변화의 이치를 상기시키십니다.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 떨어지고 헤어지며 달라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태어나고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은 무너지는 성질을 지니므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대로 머물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스승 자신의 삶도 이 설명에서 예외로 두지 않으십니다. 앞에서는 청할 기회를 놓친 일을 짚으셨고,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도 끝내 헤어지게 된다는 더 넓은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묵상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과 실제로 그 변화를 마주했을 때의 마음은 같았나요? 오래 익숙했던 장소나 관계가 달라졌을 때 무엇이 가장 아쉽게 느껴졌나요? 그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며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나요?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는 버리고, 토해 내고, 풀어 놓고, 끊어 버리고, 내려놓았다.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은 이미 놓았다.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기도 했다. ‘깨달음에 이른 이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날은 머지않았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에 이른 이가 목숨을 위해 그것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 아난다여, 큰 숲의 뾰족지붕 회관으로 가자.”

Yaṁ kho panetaṁ, ānanda, tathāgatena cattaṁ vantaṁ muttaṁ pahīnaṁ paṭinissaṭṭhaṁ ossaṭṭho āyusaṅkhāro, ekaṁsena vācā bhāsitā: ‘na ciraṁ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Ito tiṇṇaṁ māsānaṁ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Tañca tathāgato jīvitahetu puna paccāvamissat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Āyāmānanda, yena mahāvanaṁ kūṭāgārasālā tenupasaṅkamissām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생명을 이어 가는 힘을 이미 놓았음을 여러 동사로 강조하십니다. 토해 냈다는 말도 나오고, 뒤에서는 그것을 다시 거두어들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석 달 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겠다는 분명한 말씀도 되풀이됩니다. 이는 지금 스승이 밝히신 결정에 관한 설명입니다. 아난다가 거듭 청했지만 그 결정을 돌이키지 않겠다는 답을 마친 뒤, 스승은 큰 숲의 뾰족지붕 회관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긴 회상과 문답이 끝나고, 두 사람은 다른 수행자들을 만나러 이동하게 됩니다.

묵상

긴 대화를 마치고 함께 다른 장소로 이동했던 기억이 있나요? 걷는 동안 방금 나눈 말이 새롭게 들리거나 더 묻고 싶은 점이 떠오르기도 했나요? 그때 침묵과 대화 가운데 어느 쪽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대답했다.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와 함께 큰 숲의 뾰족지붕 회관으로 가셨다. 도착하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가서 웨살리 가까이에 머무는 수행자들을 모두 모임 회관에 모이게 하여라.”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āyasmatā ānandena saddhiṁ yena mahāvanaṁ kūṭāgārasāl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gaccha tvaṁ, ānanda, yāvatikā bhikkhū vesāliṁ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ṁ sannipāteh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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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아난다가 짧게 대답하고 두 사람이 함께 큰 숲의 회관으로 이동하는 장면입니다. 도착해서 스승은 아난다에게 웨살리 가까이에 머무는 수행자를 모두 모이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앞의 무거운 대화가 끝나고 곧바로 공동체를 향한 행동으로 넘어가는 대목입니다. 스승은 개인적 대화에서 멈추지 않고 남은 시간의 가르침을 공동체 전체에게 전하려 합니다. ‘모두’라는 표현에서 어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게 하려는 뜻이 읽힙니다.

묵상

무거운 이야기를 마친 직후 스승이 곧바로 모두를 모으라고 해요. 나는 마음이 무거울 때 행동으로 옮겨 가는 편인가요, 멈추어 있는 편인가요? 지금 모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아난다 수행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스승께 대답한 뒤, 웨살리 가까이에 머무는 수행자들을 모두 모임 회관에 모았다. 그러고는 스승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스승께 절하고 한쪽에 섰다. 한쪽에 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수행자 공동체가 모였습니다. 스승이시여, 이제 스승께서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십시오.”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yāvatikā bhikkhū vesāliṁ upanissāya viharanti, te sabbe upaṭṭhānasālāyaṁ sannipāte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sannipatito, bhante, bhikkhusaṅgho, yassadāni, bhante, bhagavā kālaṁ maññ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스승의 말씀을 받아 웨살리 가까이에 있는 수행자들을 모두 모읍니다. 그런 다음 스승께 돌아와 절하고 한쪽에 서서 모임이 준비되었다고 알립니다. 때가 되었다고 여기시는 대로 하시라는 말은 스승이 모임에 가실 시점을 맡기는 공손한 보고입니다. 앞의 긴 문답을 마친 아난다가 이제 공동체를 모으는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는 그의 마음 상태를 직접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을 모으고 돌아와 인사하고 보고하는 행동을 차례로 전합니다.

묵상

중요한 모임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거나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역할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짧은 보고 한마디를 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필요했나요?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준비의 수고를 알아본 경험이 있나요?

그러자 스승은 모임 회관으로 가셨다. 도착하신 뒤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앉으신 뒤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내가 직접 알아 가르친 가르침들을 너희는 잘 배워 익힌 뒤, 실천하고 닦고 거듭 익혀야 한다. 그래야 이 깨끗한 삶의 길이 오래 이어지고 오래 머물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Atha kho bhagavā yenupaṭṭhānasāl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Nisajj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tasmātiha, bhikkhave, ye te mayā dhammā abhiññā desitā, te vo sādhukaṁ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ṁ brahmacariyaṁ addhaniyaṁ assa ciraṭṭhitikaṁ,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모임 회관의 마련된 자리에 앉아 수행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자신이 직접 알아 가르친 것을 잘 배우고 익힌 뒤 실천하고 닦고 거듭 익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야 깨끗한 삶의 길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가르침을 오래 보존하는 목적은 많은 사람과 신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에 있습니다. 앞서 아난다에게 생을 마칠 시기를 밝히신 스승은 이제 모인 수행자들에게 앞으로 이어 갈 일을 말씀하십니다. 뒤에서는 그들이 닦아야 할 가르침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묵상

가르침을 오래 이어지게 하라는 이유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이라는 점이 눈에 띄어요. 내가 배운 것을 누군가에게 이어 주려 한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이어 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수행자들이여, 내가 직접 알아 가르친 것들 가운데 너희가 잘 배워 익힌 뒤 실천하고 닦고 거듭 익혀야 할 가르침들은 무엇인가? 그리하여 이 깨끗한 삶의 길이 오래 이어지고 오래 머물며,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되게 할 가르침들은 무엇인가?”

Katame ca te, bhikkhave, dhammā mayā abhiññā desitā, ye vo sādhukaṁ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ṁ brahmacariyaṁ addhaniyaṁ assa ciraṭṭhitikaṁ,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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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르침을 배우고 닦으라고 당부하신 스승은 이제 그 가르침들이 무엇인지 물으십니다. 질문 속에서도 잘 배워 익히고 실천하고 닦고 거듭 익혀야 한다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깨끗한 삶의 길이 오래 이어져 많은 사람과 신과 인간에게 이익과 행복을 주어야 한다는 목적도 다시 나옵니다. 무엇을 배울지와 왜 배울지를 함께 묻는 형식입니다. 이어지는 답에서는 알아차림을 세우는 네 가지 바탕부터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길까지, 수행을 위한 여러 묶음이 차례로 제시됩니다.

묵상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묻다가 왜 배우려 하는지도 함께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목적을 돌아보니 배우는 방법이나 나누고 싶은 사람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지금 이어 가는 배움은 내 주변 누구와 연결되어 있나요?

“곧 알아차림을 세우는 네 가지 바탕, 바르게 힘쓰는 네 가지 노력(빠다나),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능력을 이루는 네 가지 바탕, 다섯 가지 마음의 능력(인드리야), 다섯 가지 마음의 힘(발라), 깨달음을 돕는 일곱 힘,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아리야 앗탕기까 막가)이다.”

Seyyathidaṁ—cattāro satipaṭṭhānā, cattāro sammappadhānā, cattāro iddhipādā, pañcindriyāni, pañca balāni, satta bojjhaṅgā,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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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수행자들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 가르침을 일곱 묶음으로 제시하십니다. 알아차림의 네 바탕, 바르게 힘쓰는 네 노력, 특별한 능력을 이루는 네 바탕, 다섯 능력과 다섯 힘, 깨달음을 돕는 일곱 힘, 여덟 갈래 길입니다. 각 묶음의 수를 합하면 서른일곱 가지입니다. 여기서는 전체 목록을 말씀하십니다. 앞서 가르침을 오래 이어 가려면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하신 당부에 대한 구체적인 답입니다. 뒤에서는 이 목록이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임을 다시 밝히십니다.

묵상

여러 항목으로 된 목록을 배울 때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나요? 큰 묶음을 먼저 잡는 편인가요, 익숙한 하나에서 시작하는 편인가요? 이 목록에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항목을 고른다면 무엇이 궁금한가요?

“수행자들이여, 이것들이 내가 직접 알아 가르친 가르침들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잘 배워 익힌 뒤, 실천하고 닦고 거듭 익혀야 한다. 그래야 이 거룩한 삶의 길이 오래 이어지고 오래 머물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가엾이 여겨 신과 인간의 이로움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수행자들이여, 이제 너희에게 당부한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상카라)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방심하지 말고 할 일을 이루어라.”

Ime kho te, bhikkhave, dhammā mayā abhiññā desitā, ye vo sādhukaṁ uggahetvā 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ṁ brahmacariyaṁ addhaniyaṁ assa ciraṭṭhitikaṁ,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방금 나열한 가르침들이 자신이 직접 알아 가르친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잘 배워 실천하고 닦아야 그 길이 오래 이어지고 많은 사람에게 이익과 행복이 된다는 당부를 반복하십니다. 그런 뒤 수행자들을 다시 불러,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니 방심하지 말고 할 일을 이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의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에는 삶과 마음을 비롯해 원인과 조건에 따라 생겨난 모든 것이 들어갑니다.

묵상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조건에 기대고 있나요?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지만 없으면 그 일을 계속하기 어려운 것이 있나요? 그 조건을 떠올려 보면 오늘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수고는 무엇인가요?

“깨달음에 이른 이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날은 머지않았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면 깨달음에 이른 이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신 뒤 잘 가신 분, 그 스승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나이는 무르익었고, 내게 남은 삶은 짧다. 너희를 두고 나는 떠날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의지할 곳은 마련했다.”

Naciraṁ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Ito tiṇṇaṁ māsānaṁ accayena tathāgato parinibbāyissatī”ti. Idamavoca bhagavā. Idaṁ vatvāna sugato athāparaṁ etadavoca satthā: “Paripakko vayo mayhaṁ, parittaṁ mama jīvitaṁ; Pahāya vo gamissāmi, kataṁ me saraṇamattan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모인 수행자들에게 석 달 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겠다고 밝히십니다. 앞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신 시기를 이제 공동체 앞에서도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시에서는 나이가 무르익었고 남은 삶이 짧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을 두고 떠나지만 자신을 위한 의지할 곳은 마련했다는 말로 끝납니다. 앞부분의 떠남은 이 생을 마치는 일을 가리킵니다. 다음 시에서는 남겨질 수행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당부하십니다.

묵상

“나 자신을 위한 의지할 곳은 마련했다”는 구절에서 의지할 곳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떠나는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처를 말할 때, 남는 사람에게는 어떤 뜻으로 다가올까요? 여러분이 기대는 곳은 어디에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방심하지 말고 알아차리며 바른 행실을 잘 지켜라. 생각을 잘 모으고 자기 마음을 잘 지켜라. 이 가르침과 생활 규칙(위나야) 안에서 방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는 되풀이되는 태어남의 흐름을 벗어나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Appamattā satīmanto, susīlā hotha bhikkhavo; Susamāhitasaṅkappā, sacittamanurakkhatha. Yo imasmiṁ dhammavinaye, appamatto vihassati; Pahāya jātisaṁsāraṁ, dukkhassantaṁ kar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방심하지 않고 알아차리며 바른 행실을 지키라고 당부하십니다. 생각을 잘 모으고 자기 마음을 지키라는 말도 이어집니다. 뒤에서는 이 가르침과 생활 규칙 안에서 방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풀이되는 태어남을 벗어나 괴로움을 끝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가르침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조건으로 제시됩니다. 앞의 시가 스승의 떠남을 알렸다면, 이 시는 남는 수행자들이 이어 가야 할 삶과 그 결실을 말씀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생각을 모으기 어려웠다가 다시 차분해졌던 때를 떠올릴 수 있나요? 그 사이에 주변 상황이나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마음을 지킨다는 말을 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어떤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르나요?

22 웨살리와의 작별 7구절

스승은 몸을 돌려 웨살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십니다. 반다 마을에서는 바른 행실과 집중과 지혜와 마음의 풀려남을 알고 이룬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침에 옷을 갖추고 밥그릇과 겉옷을 들고, 음식을 얻으러 웨살리에 들어가셨다. 웨살리를 돌며 음식을 얻고 식사를 마친 뒤 돌아오셔서, 코끼리처럼 온몸을 돌려 웨살리를 바라보시고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것이 깨달음에 이른 이가 웨살리를 보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자, 아난다여, 반다가마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vesāliṁ piṇḍāya pāvisi. Vesāliyaṁ piṇḍāya caritvā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o nāgāpalokitaṁ vesāliṁ apaloke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idaṁ pacchimakaṁ, ānanda, tathāgatassa vesāliyā dassanaṁ bhavissati. Āyāmānanda, yena bhaṇḍagāmo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침에 음식을 얻으러 웨살리에 들어가셨다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십니다. 그 뒤 코끼리처럼 온몸을 돌려 도시를 바라보시며 이것이 마지막으로 보는 웨살리라고 아난다에게 말씀하십니다. 곧이어 반다가마로 가자고 하시고, 아난다는 알겠다고 답합니다. 도시를 돌아보는 몸짓과 마지막이라는 말씀, 다음 목적지로 가자는 제안이 차례로 나옵니다. 앞서 웨살리의 여러 장소를 아름답다고 하셨던 회상 뒤에 실제로 그 도시를 떠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묵상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별다른 설명 없이 지나가요. 어떤 곳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기억이 있다면, 그때 무엇을 알아차렸나요? 몸을 돌려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주의의 방식일까요?

그러자 스승은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반다가마에 이르셨다. 스승은 그곳 반다가마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네 가지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너희는 이토록 오랫동안 이 삶에서 저 삶으로 달리고 떠돌았다. 어떤 네 가지인가?”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bhaṇḍagāmo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ti.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unnaṁ, bhikkhave, dhammānaṁ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Katamesaṁ catunn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반다가마에 도착해 머무시던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네 가지 가르침을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오랫동안 이 삶에서 저 삶으로 떠돌았다고 하십니다. 이때 나와 너희라고 하여 스승 자신도 함께 언급하십니다. 이는 깨닫기 전에 겪었던 긴 떠돎을 돌아보시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에는 그 네 가지가 무엇인지 질문하십니다. 이어지는 답은 바른 행실, 마음의 집중, 지혜, 마음의 풀려남을 차례로 밝힙니다.

묵상

“나와 너희”라는 말에는 스승도 포함돼 있어요. 가르치는 사람이 함께 헤맨 이라고 말할 때 듣는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다는 말은 알기만 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바른 행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너희는 이토록 오랫동안 이 삶에서 저 삶으로 달리고 떠돌았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마음의 집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너희는 이토록 오랫동안 이 삶에서 저 삶으로 달리고 떠돌았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너희는 이토록 오랫동안 이 삶에서 저 삶으로 달리고 떠돌았다.”

Ariyassa, bhikkhave, sīla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Ariyassa, bhikkhave, samādhiss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Ariyāya, bhikkhave, paññāya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가지 가운데 처음 세 가지는 거룩한 바른 행실, 마음의 집중, 지혜입니다. 각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너희가 오랫동안 떠돌았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 바른 행실은 삶에서 하는 일을, 집중은 마음이 모이는 것을, 지혜는 사물을 아는 힘을 가리킵니다. 셋을 한꺼번에 묶어 지나가지 않고 각각에 같은 원인과 결과를 붙여 말씀하십니다.

묵상

행실과 마음의 집중과 지혜를 나란히 놓으면 서로 어떤 관계가 떠오르나요? 마음을 모으려 할 때 그날 했던 말이나 행동이 영향을 준 경험이 있나요? 그 경험에서 새롭게 이해하게 된 점은 무엇이었나요?

“수행자들이여, 거룩한 마음의 풀려남(위뭇띠)을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했기에, 나와 너희는 이토록 오랫동안 이 삶에서 저 삶으로 달리고 떠돌았다. 수행자들이여, 그 거룩한 바른 행실을 이해하고 꿰뚫어 알았다. 거룩한 마음의 집중을 이해하고 꿰뚫어 알았다. 거룩한 지혜를 이해하고 꿰뚫어 알았다. 거룩한 마음의 풀려남을 이해하고 꿰뚫어 알았다. 존재에 매달리는 목마른 욕망은 끊어졌고, 다시 존재하도록 이끄는 끈은 다하였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Ariyāya, bhikkhave, vimuttiyā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ṁ dīghamaddhānaṁ sandhāvitaṁ saṁsaritaṁ mamañceva tumhākañca. Tayidaṁ, bhikkhave, ariyaṁ sīlaṁ anubuddhaṁ paṭividdhaṁ, ariyo samādhi anubuddho paṭividdho, ariyā paññā anubuddhā paṭividdhā, ariyā vimutti anubuddhā paṭividdhā, ucchinnā bhavataṇhā, khīṇā bhavanetti, natthi dāni punabbhavo”ti. Idamavoca bhagav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번째는 거룩한 마음의 풀려남입니다. 이것도 이해하지 못했기에 오랫동안 떠돌았다고 하신 뒤, 스승은 네 가지를 이제 이해하고 꿰뚫어 알았다고 각각 반복해 밝히십니다. 이어 존재에 매달리는 목마른 욕망이 끊어지고, 다시 존재하도록 이끄는 끈이 다했으며, 다시 태어남이 없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존재에 매달리는 욕망은 다시 어떤 존재가 되려는 집착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어졌던 떠돎이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묵상

이해하지 못했던 네 가지를 ‘이제 이해했다’고 말하는 문장이 결과 세 가지와 바로 이어져요. 끈이 다했다는 표현은 어떤 그림을 떠올리게 하나요? 내 안에 끈처럼 이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하신 뒤 바른 길을 가신 분, 그 스승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른 행실과 마음의 집중과 지혜, 그리고 더없이 높은 마음의 풀려남. 이 가르침들을 명성 높은 고따마가 이해했다.”

Idaṁ vatvāna sugato athāparaṁ etadavoca satthā: “Sīlaṁ samādhi paññā ca, vimutti ca anuttarā; Anubuddhā ime dhammā, gotamena yasassin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네 가지 가르침을 이해했다는 말씀을 시로 되풀이하십니다. 바른 행실과 마음의 집중과 지혜에 이어, 더없이 높은 마음의 풀려남이 나옵니다. 그것들을 이해한 사람을 명성 높은 고따마라고 부릅니다. 고따마는 스승의 가문 이름이며, 여기서는 나라고 하지 않고 그 이름을 사용합니다. 앞의 긴 설명에서는 이해하지 못해 떠돌았다는 말과 이제 이해했다는 말이 대조되었다면, 이 시는 이해한 네 가지를 짧게 모아 제시합니다. 다음 구절은 깨달은 이가 그 가르침을 수행자들에게 전했다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길게 들었던 설명을 짧은 시나 문장으로 다시 접하면 무엇이 더 선명해지나요? 반대로 짧아지면서 앞의 설명을 다시 떠올려야 이해되는 부분도 있나요? 최근 기억에 남은 배움을 한 문장으로 적는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나요?

“이렇게 깨달은 이는 직접 알아 수행자들에게 가르침을 밝혔다. 괴로움을 끝낸 스승, 보는 눈을 지닌 이는 괴로움이 완전히 꺼진 평안에 이르렀다.” 반다가마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가르침을 말씀하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란 이런 것이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Iti buddho abhiññāya, dhammamakkhāsi bhikkhunaṁ; Dukkhassantakaro satthā, cakkhumā parinibbuto”ti. Tatrāpi sudaṁ bhagavā bhaṇḍagāme viharanto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시의 끝에서는 깨달은 이가 직접 알아 가르침을 전했고 괴로움을 끝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완전히 꺼졌다는 표현은 스승이 이미 죽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승은 살아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시며, 마음의 괴로움이 꺼진 평안을 이루셨습니다. 이어 반다가마에서 자주 하신 가르침이 소개됩니다. 바른 행실과 마음의 집중과 지혜를 제시한 뒤,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이 큰 결실과 이익을 가져온다고 하십니다. 시의 맺음과 반복해서 전한 실제 가르침이 이 대목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일을 마친 뒤 마음이 고요해졌던 때를 떠올려 보면, 그 전에 했던 말이나 행동은 어땠나요? 마음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된 행동도 있었나요? 일상의 행실과 집중이 서로 연결된다고 느꼈던 장면이 있나요?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흘러드는 것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이라는 흘러드는 것, 존재에 매달림이라는 흘러드는 것, 참모습을 알지 못함이라는 흘러드는 것이다.”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집중을 닦는다는 말씀에 이어, 집중을 바탕으로 지혜를 닦고 지혜로 마음이 풀려나는 흐름을 밝힙니다. 마음이 벗어나는 것은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에서 흘러드는 세 가지입니다. 각각의 훈련은 앞에서 닦은 것이 다음을 충분히 키우는 관계로 이어집니다. 이 가르침은 앞선 여러 장소에서도 반복되었고 반다가마에서도 자주 전해졌습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스승과 수행자들이 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묵상

어떤 경험을 오래 살펴본 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점을 이해한 적이 있나요? 집중해서 본 것이 생각이나 감정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그때 알게 된 것 가운데 지금도 마음이 흔들릴 때 떠오르는 내용이 있나요?

23 가르침을 확인하는 네 가지 큰 근거 13구절

보가 도시에서 스승은 자신에게서 들었다거나 공동체와 어른들에게서 들었다는 말을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대조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스승은 반다가마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핫티가마와 암바가마와 잠부가마를 거쳐 보가나가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대답했다. 그러자 스승은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보가나가라에 이르셨다. 스승은 그곳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예배 장소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bhaṇḍagām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hatthigāmo, yena ambagāmo, yena jambugāmo, yena bhoganagara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bhoganagaraṁ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bhoganagare viharati ānande cetiy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반다가마에서의 체류를 마친 스승은 아난다에게 다음 여정을 말씀하십니다. 핫티가마, 암바가마, 잠부가마를 지나 보가나가라로 가자는 말씀입니다. 앞의 세 곳을 지나는 이야기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이름을 나열한 뒤 보가나가라에 도착했다고 전합니다. 스승과 함께 간 이들은 큰 수행자 무리입니다. 도착한 뒤에는 아난다라는 이름의 예배 장소에 머무십니다. 곁에 있는 아난다 수행자와 같은 이름이지만 여기서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이곳에서 전해 들은 가르침을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묵상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 지명을 차례로 들으면 전체 여정을 어떻게 그려 보나요? 중간에 지나는 곳과 목적지를 구분하면 마음이 좀 더 놓이기도 하나요? 다른 사람과 함께 이동하며 기억에 남은 짧은 대화가 있나요?

그곳에서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가르침을 확인하는 네 가지 큰 근거(마하빠데사)를 설명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마음에 두어라. 내가 말하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수행자들이 스승께 대답했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벗이여, 나는 스승 앞에서 직접 이것을 들었고 스승 앞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가르침이고, 이것이 생활 규칙이며, 이것이 스승의 말씀입니다.’”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cattārome, bhikkhave, mahāpadese desessāmi, taṁ suṇātha, sādhukaṁ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ṁ. Bhagavā etadavoca: “Idha, bhikkhave, bhikkhu evaṁ vadeyya: ‘sammukhā metaṁ, āvuso, bhagavato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ayaṁ dhammo ayaṁ vinayo idaṁ satthusāsan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보가나가라에서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네 가지 큰 근거를 가르치겠다고 알립니다. 여기서 근거란 누군가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라고 주장할 때 그 말이 믿을 만한지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수행자들이 잘 듣겠다고 답한 뒤 첫 사례가 시작됩니다. 사례 속 수행자는 스승 앞에서 직접 듣고 받아 지녔다고 증언합니다. 이 대목은 기준을 말하기 전에 판단해야 할 상황부터 세웁니다. 직접 들었다는 말은 강한 주장이지만, 그것만으로 진실이 보증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뒤따르는 검토의 전제가 됩니다.

묵상

누군가 “내가 직접 들었다”고 힘주어 말할 때, 그 말의 무게가 내용보다 ‘직접’이라는 사실에서 나온 적이 있나요? 그런 말을 들으면 곧바로 믿거나 밀어내기 전에 무엇을 더 알고 싶어질까요?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말고 반박하지도 마라.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반박하지도 말고, 그 낱말과 표현을 잘 배워 익혀 경으로 전해 오는 가르침(숫따)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어 보아라. 그 낱말과 표현을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었을 때, 전해 오는 가르침에 들어맞지 않고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지 않으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 아니다. 이 수행자가 잘못 배워 익혔다.’”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ṁ neva abhinanditabbaṁ nappaṭikkositabbaṁ.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ṁ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ṁ; imassa ca bhikkhuno duggahi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에게 직접 들었다는 말에도 곧바로 동의하거나 반박하지 말고 확인하라고 하십니다. 먼저 그 낱말과 표현을 잘 배워 익힌 뒤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고 생활 규칙에 견줍니다. 둘 다 맞지 않으면 스승의 말씀이 아니며 전한 수행자가 잘못 배워 익혔다고 결론지어야 합니다. 여기서 대조할 가르침은 당시에 전해지던 말씀을 가리킵니다. 누가 전했는지만 따지지 않고, 말의 내용을 정확히 익혀 기존의 가르침과 함께 살펴보는 절차입니다.

묵상

마음에 드는 말을 들으면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낯선 말은 바로 밀어내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에 잠시 멈추고 견주어 볼 기준이 나에게는 무엇일까요? 아직 기준이 없다면 어떤 것이 있으면 좋을까요?

“그러니 수행자들이여, 그 말은 버려라. 그 낱말과 표현을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었을 때, 전해 오는 가르침에 들어맞고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다. 이 수행자가 바르게 배워 익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첫째 큰 근거로 기억하여라. 수행자들이여, 또 어떤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어느 거처에 오래 수행한 어른들(테라)과 이끄는 이들을 갖춘 수행자 공동체가 머물고 있습니다.’”

Iti hetaṁ, bhikkhave, chaḍḍeyyātha.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tassa bhagavato vacanaṁ; imassa ca bhikkhuno suggahitan’ti. Idaṁ, bhikkhave, paṭhamaṁ mahāpadesaṁ dhāreyyātha.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ṁ vadeyya: ‘amukasmiṁ nāma āvāse saṅgho viharati sathero sapāmokkh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맞지 않는 말은 버리라는 당부 뒤에 반대 경우가 나옵니다.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들어맞으면 스승의 말씀이며 전한 수행자가 바르게 배워 익힌 것이라고 결론지어야 합니다. 이것을 첫째 큰 근거로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어 두 번째 사례가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오래 수행한 어른들과 이끄는 이들이 있는 수행자 공동체에서 들었다는 주장입니다. 첫 사례는 스승에게 직접 들은 말이었고, 두 번째는 공동체에서 배운 말입니다. 출처가 달라질 때 같은 확인 절차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어서 보여 줍니다.

묵상

“그러니 버려라”와 “그러니 기억하라”가 같은 확인 끝에 나란히 놓여 있어요. 결과가 어느 쪽일지 모르는 채로 견주어 보는 일은 나에게 어떤 느낌일까요? 미리 정한 결론 없이 확인해 본 경험이 있나요?

“‘나는 그 공동체 앞에서 직접 들었고 그 공동체 앞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가르침이고, 이것이 생활 규칙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말고 반박하지도 마라.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반박하지도 말고, 그 낱말과 표현을 잘 배워 익혀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어 보아라.”

Tassa me saṅghassa sammukhā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ayaṁ dhammo ayaṁ vinayo idaṁ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ṁ neva abhinanditabbaṁ nappaṭikkositabbaṁ.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ṁ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둘째 사례에서는 증언의 출처가 한 거처에 머무는 수행자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스승이 요구하는 절차는 첫째 사례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수행자의 말을 서둘러 기뻐하지도 물리치지도 말고, 낱말과 표현을 익혀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견주어 보라는 것입니다. 오래 수행한 어른과 지도자가 있는 공동체라는 조건이 붙었어도 검토가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여럿의 이름으로 전해진 말도 같은 저울에 오릅니다. 저울의 결과는 다음 대목에서 부정과 긍정의 두 갈래로 이어집니다.

묵상

“여럿이 함께 배웠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안심을 주기도 해요. 그 안심이 내용을 확인해서 생긴 것인지, 사람이 많아서 생긴 것인지 나누어 본 적이 있나요? 나눠 보면 어떤 차이가 느껴질까요?

“그 낱말과 표현을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었을 때, 전해 오는 가르침에 들어맞지 않고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지 않으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 아니다. 그 공동체가 잘못 배워 익혔다.’ 그러니 수행자들이여, 그 말은 버려라.”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ṁ; tassa ca saṅghassa duggahitan’ti. Itihetaṁ, bhikkhave, chaḍḍeyyāth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공동체에서 배운 말도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맞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 말이 스승의 말씀이 아니며, 그 공동체가 잘못 배워 익혔다고 결론짓습니다. 지금 전해진 낱말과 표현을 대조한 뒤 내리는 결론입니다. 오래 수행한 어른들과 이끄는 이들이 있는 집단이라는 소개도 이 과정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잘못 배웠다는 말은 일부러 거짓말했다는 단정과는 구별됩니다. 판단의 대상은 확인하고 있는 그 가르침입니다.

묵상

전해 들은 말이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그분들이 잘못 익혔다”고 결론지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그 말만 내려놓는 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요?

“그 낱말과 표현을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었을 때, 전해 오는 가르침에 들어맞고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다. 그 공동체가 바르게 배워 익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둘째 큰 근거로 기억하여라. 수행자들이여, 또 어떤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어느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해 내려온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며,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생활 규칙을 기억하여 지니고, 요점을 묶은 목록을 기억하여 지닌 여러 오래 수행한 어른 수행자가 머물고 있습니다.’”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tassa bhagavato vacanaṁ; tassa ca saṅghassa suggahitan’ti. Idaṁ, bhikkhave, dutiyaṁ mahāpadesaṁ dhāreyyātha.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ṁ vadeyya: ‘amukasmiṁ nāma āvāse sambahulā therā bhikkhū viharanti bahussutā āgatāgamā dhammadharā vinayadharā mātikādhar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같은 확인에서 이번에는 들어맞는 쪽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 공동체가 바르게 익혔다고 인정하고 이것을 둘째 큰 근거로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어 셋째 사례가 시작되는데, 출처는 한 거처에 머무는 여러 오래 수행한 어른 수행자입니다. 이들은 많이 배웠고, 전해 내려온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며, 가르침과 생활 규칙과 요약 목록을 지닌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자격이 이렇게 자세히 적혀 있어도 뒤따르는 절차는 바뀌지 않습니다. 훌륭한 소개가 검토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이 반복을 통해 분명해집니다.

묵상

많이 배우고 잘 지닌 분들이라는 소개를 들으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 소개가 확인의 수고를 덜어 주기도, 확인을 미루게 하기도 할 것 같아요.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나는 그 오래 수행한 어른들 앞에서 직접 들었고 그 어른들 앞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가르침이고, 이것이 생활 규칙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마라. …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지 않으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 아니다. 그 어른들이 잘못 배워 익혔다.’ 그러니 수행자들이여, 그 말은 버려라.”

Tesaṁ me therānaṁ sammukhā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ayaṁ dhammo ayaṁ vinayo idaṁ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ṁ neva abhinanditabbaṁ … pe…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ṁ; tesañca therānaṁ duggahitan’ti. Itihetaṁ, bhikkhave, chaḍḍeyyāth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러 어른 수행자에게 직접 배운 말이라는 주장에도 같은 확인 절차가 적용됩니다. 여기서는 앞서와 같은 확인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고, 맞지 않을 때의 결론만을 보여 줍니다.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맞지 않으면 그 어른들이 잘못 배워 익힌 것이므로 버려야 합니다. 많이 배우고 가르침을 기억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전한 내용을 확인해야 합니다. 앞의 두 사례와 같은 절차가 이어집니다.

묵상

출처가 스승, 공동체, 오래 수행한 어른들로 바뀌어도 같은 확인을 되풀이하라고 하네요. 같은 확인을 거듭하는 일은 지루할까요, 아니면 든든할까요? 내가 자주 되풀이하는 확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낱말과 표현을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았을 때 …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다. 그 어른들이 바르게 배워 익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셋째 큰 근거로 기억하여라. 수행자들이여, 또 어떤 수행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어느 거처에 많이 배우고, 전해 내려온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며, 가르침을 기억하여 지니고, 생활 규칙을 기억하여 지니고, 요점을 묶은 목록을 기억하여 지닌 오래 수행한 어른 수행자 한 분이 머물고 있습니다.’”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pe…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tassa bhagavato vacanaṁ; tesañca therānaṁ suggahitan’ti. Idaṁ, bhikkhave, tatiyaṁ mahāpadesaṁ dhāreyyātha. Idha pana, bhikkhave, bhikkhu evaṁ vadeyya: ‘amukasmiṁ nāma āvāse eko thero bhikkhu viharati bahussuto āgatāgamo dhammadharo vinayadharo mātikādhar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러 어른에게 배운 말이 확인에 들어맞으면 스승의 말씀이며 그 어른들이 바르게 배워 익혔다고 결론짓습니다. 이것으로 셋째 큰 근거를 맺고 마지막 사례로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오래 수행한 한 사람에게서 배운 말입니다. 그에게도 많이 배우고 전해 온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며, 가르침과 생활 규칙과 요점 목록을 기억한다는 자질이 모두 붙습니다. 앞의 여러 어른과 같은 자질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전한 사람의 수가 줄어들어도 그 말에 적용할 확인 절차는 이어서 똑같이 제시됩니다.

묵상

한 분에게서만 들은 이야기와 여럿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 어느 쪽이 더 믿음이 가나요? 그 차이가 내용을 살펴본 결과인지, 익숙한 느낌인지 궁금해요. 떠오르는 예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였을까요?

“‘나는 그 오래 수행한 어른 앞에서 직접 들었고 그 어른 앞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이것이 가르침이고, 이것이 생활 규칙이며,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 수행자들이여, 그 수행자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말고 반박하지도 마라. 기꺼이 받아들이지도 반박하지도 말고, 그 낱말과 표현을 잘 배워 익혀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어 보아라.”

Tassa me therassa sammukhā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ayaṁ dhammo ayaṁ vinayo idaṁ satthusāsanan’ti. Tassa, bhikkhave, bhikkhuno bhāsitaṁ neva abhinanditabbaṁ nappaṭikkositabbaṁ. Anabhinanditvā appaṭikkositvā tāni padabyañjanāni sādhukaṁ uggahetvā sutte osāretabbāni, vinaye sandassetabb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오래 수행한 한 어른에게 직접 들었다는 말에도 바로 찬성하거나 반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낱말과 표현을 잘 배워 익힌 뒤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어야 합니다. 스승에게 직접 들었다는 첫 사례부터 한 사람에게 배웠다는 마지막 사례까지 같은 절차가 반복됩니다. 한 사람에게서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물리치지도 않고, 경험 많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정확히 전해진 내용을 살펴 결론을 내리라는 당부가 다시 확인됩니다.

묵상

마지막 사례는 출처가 가장 작은데도 절차가 그대로예요. 혼자 들은 말이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질 때, 그 특별함을 잠시 옆에 두고 견주어 본다면 무엇을 확인하게 될까요? 어떤 기준이 떠오르나요?

“그 낱말과 표현을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었을 때, 전해 오는 가르침에 들어맞지 않고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지 않으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 아니다. 그 어른이 잘못 배워 익혔다.’ 그러니 수행자들이여, 그 말은 버려라.”

Tāni ce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na ceva sutte osaranti, na ca vinaye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na ceva tassa bhagavato vacanaṁ; tassa ca therassa duggahitan’ti. Itihetaṁ, bhikkhave, chaḍḍeyyāth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오래 수행한 어른 한 분의 말이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맞지 않을 때의 결론입니다. 그 말은 스승의 말씀이 아니고 그 오래 수행한 어른이 잘못 익힌 것이니 버립니다. 네 사례에서 이 부정 결론은 각각 전한 수행자, 공동체, 여러 오래 수행한 어른, 오래 수행한 어른 한 분을 잘못 익힌 쪽으로 지목합니다. 경험 많고 많이 배운 사람도 기억이나 이해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지는 않습니다. 잘못은 익힌 내용에 있고, 물리치는 대상도 그 말입니다.

묵상

존경하는 분의 말씀이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분을 존중하면서도 그 말만 내려놓는 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요?

“그 낱말과 표현을 전해 오는 가르침에 맞추어 보고 생활 규칙에 견주었을 때, 전해 오는 가르침에 들어맞고 생활 규칙에서도 확인되면 이렇게 결론지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스승의 말씀이다. 그 어른이 바르게 배워 익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을 넷째 큰 근거로 기억하여라. 수행자들이여, 이 네 가지 큰 근거를 기억하여라.”

Tāni ca sutte osāriyamānāni vinaye sandassiyamānāni sutte ceva osaranti, vinaye ca sandissanti, niṭṭhamettha gantabbaṁ: ‘addhā idaṁ tassa bhagavato vacanaṁ; tassa ca therassa suggahitan’ti. Idaṁ, bhikkhave, catutthaṁ mahāpadesaṁ dhāreyyātha. Ime kho, bhikkhave, cattāro mahāpadese dhāreyyāt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넷째 사례의 긍정 결론입니다.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맞으면 스승의 말씀이며 그 오래 수행한 어른이 바르게 익혔다고 결론짓고, 이것을 넷째 큰 근거로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어 네 가지 큰 근거를 기억하라는 당부로 스승이 처음 예고한 네 가지가 모두 채워졌음을 알리고 말씀을 맺습니다. 네 근거는 출처만 다를 뿐 요구하는 검토는 하나의 같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기억하라는 당부는 들은 말을 전해 오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 견주어 보는 방법을 지니라는 당부입니다.

묵상

네 사례를 함께 보면 전해 주는 사람이 달라도 어떤 점이 계속 같았나요? 내가 중요한 말을 확인할 때에도 늘 살피는 부분이 있나요? 친한 사람의 말과 낯선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확인 방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나요?

그곳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예배 장소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자주 이렇게 가르침을 말씀하셨다. “바른 행실이란 이런 것이고, 마음의 집중이란 이런 것이며, 지혜란 이런 것이다. 바른 행실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집중은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집중을 바탕으로 충분히 닦인 지혜는 큰 결실과 큰 이익을 가져온다. 지혜로 충분히 닦인 마음은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바르게 풀려난다. 곧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마음의 흐림이다.”

Tatrapi sudaṁ bhagavā bhoganagare viharanto ānande cetiye etadeva bahulaṁ bhikkhūnaṁ dhammiṁ kathaṁ karoti: “iti sīlaṁ,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ṁ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ṁsā. Paññāparibhāvitaṁ cittaṁ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ṁ—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예배 장소에서도 스승은 바른 행실과 마음의 집중과 지혜에 관한 가르침을 자주 전하셨습니다. 행실을 바탕으로 집중이, 집중을 바탕으로 지혜가 충분히 닦이고, 지혜로 마음이 흐림에서 풀려난다는 흐름입니다. 그 흐림은 감각의 즐거움에 매달림, 존재에 매달림, 참모습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세 가지로 제시됩니다. 방금 네 가지 큰 근거를 통해 전해 들은 말을 확인하는 방법을 말씀하셨고, 여기서는 스승이 반복해서 가르치셨던 수행의 내용을 다시 보여 줍니다.

묵상

잘 이해하려고 마음을 모았다가 평소의 행동까지 돌아보게 된 적이 있나요? 그때 집중과 이해, 행동은 어떤 순서로 연결되었나요? 하나가 달라지면서 다른 쪽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던 구체적인 장면이 있나요?

24 쭌다의 식사와 스승의 병 9구절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스승과 수행자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합니다. 스승은 식사 뒤 심하게 앓으시고 꾸시나라로 가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스승은 보가나가라에서 원하시는 만큼 머무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빠와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대답했다. 그러자 스승은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빠와에 이르셨다. 스승은 그곳 빠와에서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Atha kho bhagavā bhoganagare yathābhirantaṁ vihar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pāv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pāvā tadavasari. Tatra sudaṁ bhagavā pāvāyaṁ viharati cundassa kammāraputtassa ambavan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보가나가라에서 머무신 스승은 아난다에게 빠와로 가자고 하십니다. 아난다가 알겠다고 답한 뒤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이동합니다. 빠와에서 머무신 곳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망고 숲입니다. 이 장면은 다음 만남의 장소와 주인을 먼저 알려 줍니다. 쭌다는 스승이 자기 숲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오게 됩니다. 앞선 마을에서 가르침을 전하시던 여정이 새 장소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뒤따릅니다. 짧은 이동 기록 속에 함께 간 무리와 도착한 장소가 모두 밝혀집니다.

묵상

스승이 “빠와로 가자”고 짧게 말하고 아난다가 곧바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해요. 가까운 사람과 다음 걸음을 정할 때, 이렇게 간결한 말이 오가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믿음이 있었을까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스승께서 빠와에 도착하여 내 망고 숲에 머무신다고 한다.”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스승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스승은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다.

Assosi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ā kira pāvaṁ anuppatto, pāvāyaṁ viharati mayhaṁ ambavane”ti.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aṁ kho cundaṁ kammāraputtaṁ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ṁse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쭌다는 스승이 자기 망고 숲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갑니다.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자 가르침을 들려주십니다. 가르침을 설명하고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다는 네 표현이 이어집니다. 이 경에서 다른 신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할 때에도 반복되었던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쭌다가 소식을 듣고 찾아와 가르침을 듣게 된 과정을 전하며, 이어지는 식사 초대의 배경을 마련합니다.

묵상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뜻이 분명해지면서 한번 해 보고 싶어졌던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은 내용을 설명하는 것 외에 어떤 말로 용기를 주었나요? 그때 기쁘게 느껴졌던 부분을 지금 다시 떠올릴 수 있나요?

그러자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며, 실천하도록 이끌리고 용기를 얻어 기뻐진 뒤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내일 제가 드리는 식사를 받아 주십시오.” 스승은 침묵으로 받아들이셨다.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스승이 받아들이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예를 올리고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돈 뒤 떠났다.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o samādapito samuttejito sampahaṁsito bhagavantaṁ etadavoca: “adhivāsetu me, bhante, bhagavā svātanāya bhattaṁ saddhiṁ bhikkhusaṅghenā”ti. Adhivāsesi bhagavā tuṇhībhāvena.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o adhivāsanaṁ viditvā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ām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가르침을 들은 쭌다는 스승과 수행자 공동체를 다음 날 식사에 초대합니다. 스승은 말없이 받아들이시고, 쭌다는 그 뜻을 알아차립니다. 이 경에서는 앞서 암바빨리의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실 때에도 같은 방식이 나왔습니다. 초대가 받아들여졌음을 안 쭌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리고,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돈 뒤 떠납니다. 이 장면은 초대와 승낙, 작별의 인사를 순서대로 전합니다. 다음 날의 준비는 이 약속에 따라 이루어지며, 스승뿐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초대받았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묵상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뜻을 알아들었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는 어떤 맥락이나 몸짓이 도움이 되었나요? 반대로 말없이 있던 뜻을 잘못 이해한 적도 있다면, 두 상황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그러자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밤이 지난 뒤 자기 집에 좋은 곁들일 음식과 식사 음식을 마련하게 하고, 수까라맛다와라는 음식도 넉넉히 준비하여 스승께 때를 알리게 했다. “스승이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침에 옷을 갖추고 밥그릇과 겉옷을 들고,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집으로 가셨다. 도착하신 뒤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Atha kho cundo kammāraputto tassā rattiyā accayena sake nivesane paṇīt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ādāpetvā pahūtañca sūkaramaddavaṁ bhagavato kālaṁ ārocāpesi: “kālo, bhante, niṭṭhitaṁ bhattan”ti. Atha kho bhaga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saddhiṁ bhikkhusaṅghena yena cundassa kammāraputtassa nives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paññatte āsane nisī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쭌다는 자기 집에 좋은 음식들을 준비하게 하고 수까라맛다와도 넉넉히 마련합니다. 이 음식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러 해석이 있어, 돼지고기인지 버섯인지 원문만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쭌다는 준비가 끝났음을 스승께 알리게 하고, 스승은 수행자 공동체와 함께 집으로 가십니다. 아침에 옷을 갖추고 밥그릇과 겉옷을 들었다는 행동도 나옵니다. 식사 자리에 앉으신 뒤에는 이 음식과 다른 음식들을 누구에게 대접할지 말씀하십니다.

묵상

여러 사람을 위해 식사나 모임을 준비해 본 적이 있나요? 음식이나 자리를 마련하는 일과 때가 되었다고 알리는 일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신경 쓰였나요? 준비를 마치고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자리에 앉으신 스승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말씀하셨다. “쭌다여, 네가 준비한 수까라맛다와로 나를 대접하여라. 따로 준비한 다른 곁들일 음식과 식사 음식으로는 수행자 공동체를 대접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스승께 대답한 뒤, 준비한 수까라맛다와로 스승을 대접했다. 따로 준비한 다른 곁들일 음식과 식사 음식으로는 수행자 공동체를 대접했다.

Nisajja kho bhagavā cundaṁ kammāraputtaṁ āmantesi: “yaṁ te, cunda, sūkaramaddavaṁ paṭiyattaṁ, tena maṁ parivisa. Yaṁ panaññ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attaṁ, tena bhikkhusaṅghaṁ parivisā”ti. “Evaṁ, bhante”ti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yaṁ ahosi sūkaramaddavaṁ paṭiyattaṁ, tena bhagavantaṁ parivisi. Yaṁ panaññaṁ khādanīyaṁ bhojanīyaṁ paṭiyattaṁ, tena bhikkhusaṅghaṁ parivi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자리에 앉으신 뒤 수까라맛다와로 자신을 대접하고, 다른 음식으로 수행자 공동체를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쭌다는 알겠다고 답한 뒤 말씀대로 음식을 나누어 대접합니다. 지시에서 말한 두 종류의 음식과 두 대상은 실제로 음식을 나누는 대목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여기서는 왜 다르게 대접하게 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음 대목에서 스승은 남은 수까라맛다와를 묻으라고 하시며 그 음식을 소화하는 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공동체는 이미 다른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는 점이 그 말씀의 배경이 됩니다.

묵상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것이 필요했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나요? 같은 것을 모두에게 주는 일과 각자에게 맞추는 일은 어떻게 달랐나요? 그때 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된 말은 무엇이었나요?

그러자 스승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말씀하셨다. “쭌다여, 네게 남은 수까라맛다와는 구덩이에 묻어라. 쭌다여, 신들과 마라와 높은 하늘의 신들을 포함한 세상에서,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사마나)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 신들과 인간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 깨달음에 이른 이를 제외하고는 그것을 먹고 바르게 소화할 수 있는 이를 나는 보지 못한다.”

Atha kho bhagavā cundaṁ kammāraputtaṁ āmantesi: “yaṁ te, cunda, sūkaramaddavaṁ avasiṭṭhaṁ, taṁ sobbhe nikhaṇāhi. Nāhaṁ taṁ, cunda, passāmi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yassa taṁ paribhuttaṁ sammā pariṇāmaṁ gaccheyya aññatra tathāgatass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남은 수까라맛다와를 구덩이에 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제외하면 그것을 먹고 바르게 소화할 수 있는 이를 보지 못한다는 이유를 드십니다. 신들과 마라, 높은 하늘의 신들, 수행자들과 제사를 맡는 사람들, 신과 인간까지 하나하나 짚어 말씀하시며, 이 가운데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고 밝히십니다. 다만 그 음식의 성분이나 소화하기 어려운 까닭까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묵상

내게 괜찮았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았던 경험이 있나요? 음식이나 일하는 방식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떠오르나요? 그 차이를 알게 되었을 때 상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는 스승께 대답한 뒤 남은 수까라맛다와를 구덩이에 묻었다. 그러고는 스승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스승은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Evaṁ, bhante”ti kho cundo kammār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yaṁ ahosi sūkaramaddavaṁ avasiṭṭhaṁ, taṁ sobbhe nikhaṇi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aṁ kho cundaṁ kammāraputtaṁ bhagavā dhammiyā kathāya sandassetvā samādapetvā samuttejetvā sampahaṁsetvā uṭṭhāyāsanā pakkām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쭌다는 남은 음식을 구덩이에 묻은 뒤 스승께 돌아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습니다. 스승은 그에게 다시 가르침을 설명하고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신 뒤 떠나십니다. 앞서 쭌다가 처음 찾아왔을 때와 같은 네 표현이 식사 뒤에도 나옵니다. 초대를 하기 전과 식사를 마친 뒤 모두 가르침을 듣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때 들려주신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남은 음식의 처리와 돌아와 앉은 일, 가르침과 작별이 차례로 전해집니다.

묵상

함께한 일을 마친 뒤 다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일을 하는 동안에는 몰랐던 마음이나 고마움을 그때 알게 되기도 했나요? 내가 준비한 자리에서 마지막 대화가 기억에 남은 경우는 언제였나요?

그러자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드린 식사를 마치신 스승께 심한 병이 생겼다. 피가 섞인 설사가 나고 죽음에 이를 만큼 격심한 통증이 이어졌다. 스승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마음이 짓눌리지 않은 채 그 통증을 견디셨다.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꾸시나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ato cundassa kammāraputtassa bhattaṁ bhuttāvissa kharo ābādho uppajji, lohitapakkhandikā pabāḷhā vedanā vattanti māraṇantikā. Tā sudaṁ bhagavā sato sampajāno adhivāsesi avihaññamāno.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kusinār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쭌다가 드린 식사를 마치신 뒤 스승께 심한 병이 생깁니다. 피가 섞인 설사와 죽음에 이를 만큼 격심한 통증이라고 전합니다. 스승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마음이 짓눌리지 않은 채 그 통증을 견디십니다. 통증이 없었다는 말과는 구별됩니다. 이어 아난다에게 꾸시나라로 가자고 하시고 아난다는 알겠다고 답합니다. 이 대목은 식사 뒤에 병이 생겼다는 순서와 스승이 통증을 견디신 모습을 기록합니다. 음식의 정확한 성분이나 구체적인 병명까지 이 기록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묵상

몸이 힘들었던 때를 돌아보면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나요? 그때 곁에 있는 사람의 말이나 작은 도움이 어떻게 다가왔나요? 같은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꼭 전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대장장이 쭌다의 식사를 드신 뒤 지혜로운 분께 죽음에 이를 만큼 격심한 병이 닥쳤다고 나는 들었다. 수까라맛다와를 드신 스승께 심한 병이 생겼고, 설사를 하시던 스승은 말씀하셨다. “나는 꾸시나라 도시로 가겠다.”

Cundassa bhattaṁ bhuñjitvā, kammārassāti me sutaṁ; Ābādhaṁ samphusī dhīro, pabāḷhaṁ māraṇantikaṁ. Bhuttassa ca sūkaramaddavena, Byādhippabāḷho udapādi satthuno; Virecamāno bhagavā avoca, “Gacchāmahaṁ kusināraṁ nagar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서 산문으로 전한 식사와 병, 이동의 말씀을 이번에는 시로 되풀이합니다. 시의 화자는 나는 들었다고 하며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표현만으로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는지 없었는지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시에서는 쭌다를 대장장이라고 부르고, 스승이 수까라맛다와를 드신 뒤 심한 병이 생겼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꾸시나라로 가겠다는 말씀을 직접 인용합니다. 병과 통증을 전하면서도 다음 장소로 향하려는 스승의 말로 시를 맺는 구성입니다.

묵상

같은 사건을 이야기로 들었다가 시나 짧은 문장으로 다시 접한 적이 있나요? 무엇이 더 또렷이 남았고 무엇을 더 알고 싶어졌나요? 들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내가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25 지친 스승이 물을 청하다 6구절

스승은 나무 아래 쉬며 아난다에게 물을 세 번 청하십니다. 수레바퀴에 흐려졌던 개울이 맑아지고 아난다는 물을 가져옵니다.

그러자 스승은 길에서 벗어나 어느 나무 아래로 가셨다. 가셔서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나를 위해 겹겉옷(상가띠)을 네 겹으로 접어 펴 주어라. 아난다여, 나는 지쳤으니 앉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대답한 뒤 겹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폈다. 스승은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Atha kho bhagavā maggā okkamma yena aññataraṁ rukkhamūl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iṅgha me tvaṁ, ānanda, catugguṇaṁ saṅghāṭiṁ paññapehi, kilantosmi, ānanda, nisīd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catugguṇaṁ saṅghāṭiṁ paññapesi. Nisīdi bhagavā paññatte āsan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길을 벗어나 나무 아래로 가신 뒤 지쳤으니 앉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난다에게는 겹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펴 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옷은 수행자가 입는 두꺼운 겉옷이며, 여러 겹으로 접어 앉을 자리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아난다는 말씀대로 옷을 펴고 스승은 그 자리에 앉으십니다. 피로를 느끼는 몸과 필요한 도움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어 스승이 물을 청하시므로 이 나무 아래의 쉼이 다음 문답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됩니다.

묵상

힘들어서 잠시 앉고 싶을 때 그 필요를 주변 사람에게 말하기는 어땠나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와 달라고 말하니 서로 편해졌던 적이 있나요? 내가 도움을 받았던 장면에서 상대가 해 준 작은 일은 무엇이었나요?

자리에 앉으신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내게 마실 물을 가져오너라. 아난다여, 나는 목이 마르니 마시겠다.” 이 말씀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지금 막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갔습니다. 얕은 물은 바퀴에 휘저어져 흐리고 탁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스승이시여, 까꾸다강은 멀지 않습니다. 물이 맑고 맛있고 시원하고 깨끗하며, 물가에 내려서기도 좋고 아름답습니다.”

Nisajj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iṅgha me tvaṁ, ānanda, pānīyaṁ āhara, pipāsitosmi, ānanda, pivissāmī”ti. Evaṁ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idāni,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atikkantāni, taṁ cakkacchinnaṁ udakaṁ parittaṁ luḷitaṁ āvilaṁ sandati. Ayaṁ, bhante, kakudhā nadī avidūre acchodakā sātodakā sītodakā setodakā suppatitthā ramaṇīy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자리에 앉으신 뒤 목이 마르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아난다는 근처의 물에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가 흐리고 탁해졌다고 알립니다. 이어 멀지 않은 까꾸다강의 맑고 시원한 물과 내려서기 좋은 물가를 말씀드립니다. 지금 바로 있는 물의 상태와 다른 강의 좋은 조건을 나란히 제시하는 것입니다. 스승의 목마름에 응답하면서 물을 어디에서 마시면 좋을지 대안을 말씀드리는 장면입니다. 다음 말에서는 그 강에서 물을 마시고 몸도 식힐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묵상

아난다는 요청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눈앞 물이 흐린 이유와 더 나은 곳을 함께 말했어요.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요청과 다르게 제안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떻게 말을 골랐나요?

“그곳에서 스승께서는 물도 마시고 몸도 식히실 수 있습니다.” 스승은 두 번째로도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내게 마실 물을 가져오너라. 아난다여, 나는 목이 마르니 마시겠다.” 아난다 수행자도 두 번째로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지금 막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갔습니다. 얕은 물은 바퀴에 휘저어져 흐리고 탁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Ettha bhagavā pānīyañca pivissati, gattāni ca sītī karissatī”ti. Dutiyampi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iṅgha me tvaṁ, ānanda, pānīyaṁ āhara, pipāsitosmi, ānanda, pivissāmī”ti. Dutiyamp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idāni,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atikkantāni, taṁ cakkacchinnaṁ udakaṁ parittaṁ luḷitaṁ āvilaṁ sand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까꾸다강에서 물을 마시고 몸을 식힐 수 있다고 말을 맺자 스승은 같은 청을 다시 하십니다. 목이 마르니 마실 물을 가져오라는 말씀입니다. 아난다도 두 번째로 수레가 지나간 뒤 물이 흐려졌다는 사정을 말씀드립니다. 청과 답이 되풀이되며 두 사람의 문답이 이어집니다. 이때 스승이 왜 바로 그 물을 원하시는지에 관한 설명은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뒤에서 세 번째 청과 아난다의 행동이 이어지므로, 지금은 두 번째 문답이 오가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묵상

같은 부탁과 같은 대답이 되풀이되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조금씩 달랐을 수도 있나요? 나중에 상대의 사정을 더 알고 나서 처음의 말을 다르게 이해한 경험이 있나요?

“스승이시여, 까꾸다강은 멀지 않습니다. 물이 맑고 맛있고 시원하고 깨끗하며, 물가에 내려서기도 좋고 아름답습니다. 그곳에서 스승께서는 물도 마시고 몸도 식히실 수 있습니다.” 스승은 세 번째로도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내게 마실 물을 가져오너라. 아난다여, 나는 목이 마르니 마시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대답한 뒤 밥그릇을 들고 그 작은 강으로 갔다.

Ayaṁ, bhante, kakudhā nadī avidūre acchodakā sātodakā sītodakā setodakā suppatitthā ramaṇīyā. Ettha bhagavā pānīyañca pivissati, gattāni ca sītīkarissatī”ti. Tatiyampi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iṅgha me tvaṁ, ānanda, pānīyaṁ āhara, pipāsitosmi, ānanda, piv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pattaṁ gahetvā yena sā nadikā tenupasaṅkam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길을 가던 스승은 몹시 목이 말라 아난다 수행자에게 물을 청합니다. 앞선 대목에서 아난다는 수레 오백 대가량이 건너 흐려진 작은 강물을 이유로 망설였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멀지 않은 곳에 맑고 시원한 까꾸다강이 있다고 다른 길을 권합니다. 그러나 스승은 세 번째로 같은 부탁을 되풀이하며 물을 가져오라고 분명히 말하고, 아난다는 이번에는 그대로 따릅니다. 이 평범한 부탁과 응답이 뒤에 이어지는 놀라운 일의 배경이 됩니다.

묵상

아난다는 가까이에 맑고 시원한 강이 있다고 알리고, 스승은 세 번째로 물을 가져오라고 청해요. 같은 부탁이 되풀이될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응답하게 되나요? 더 나은 방법이 보일 때 그것을 말하는 일과 부탁을 따르는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도 궁금해요.

그러자 물이 얕고 바퀴에 휘저어져 흐리고 탁하게 흐르던 그 작은 강이, 아난다 수행자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며 흐림 없이 흘렀다. 그때 아난다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놀랍구나. 아, 신기하구나. 깨달음에 이른 이가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큰 능력과 큰 위력을 지니셨다니. 물이 얕고 바퀴에 휘저어져 흐리고 탁하게 흐르던 바로 이 작은 강이, 내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며 흐림 없이 흐르는구나.’

Atha kho sā nadikā cakkacchinnā parittā luḷitā āvilā sandamānā, āyasmante ānande upasaṅkamante acchā vippasannā anāvilā sandittha.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tathāgat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Ayañhi sā nadikā cakkacchinnā parittā luḷitā āvilā sandamānā mayi upasaṅkamante acchā vippasannā anāvilā sand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다가가자 흐리고 탁하던 작은 강물이 맑아졌습니다. 이어 아난다가 속으로 한 생각이 나옵니다. 그는 이 변화에 놀라며 스승이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큰 능력과 위력을 지니셨다고 생각합니다. 물이 흐렸다가 맑아졌다는 일은 이야기와 생각 속에서 두 번 나옵니다. 스승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강물의 변화와 그것을 스승의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아난다의 생각이 나란히 놓인 장면입니다. 아난다는 이 물을 담아 스승께 돌아가게 됩니다.

묵상

흐리던 물이 맑아지는 것을 본 아난다는 그 일을 곧바로 스승의 큰 힘이라고 받아들여요. 예상 밖의 일을 만났을 때 나는 그 까닭을 어디서 찾는 편인가요? 놀라움이 먼저 오는 순간과 이유를 헤아리는 순간은 내게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밥그릇에 마실 물을 담아 스승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스승께 말했다. “놀랍습니다, 스승이시여. 신기합니다, 스승이시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큰 능력과 큰 위력을 지니셨다니. 스승이시여, 방금 물이 얕고 바퀴에 휘저어져 흐리고 탁하게 흐르던 그 작은 강이, 제가 다가가자 맑고 투명하며 흐림 없이 흘렀습니다. 스승께서는 물을 드십시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는 물을 드십시오.” 그러자 스승은 물을 드셨다.

Pattena pānīyaṁ ādāya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etadavoca: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tathāgat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Idāni sā bhante nadikā cakkacchinnā parittā luḷitā āvilā sandamānā mayi upasaṅkamante acchā vippasannā anāvilā sandittha. Pivatu bhagavā pānīyaṁ pivatu sugato pānīyan”ti. Atha kho bhagavā pānīyaṁ apāy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물을 담아 돌아온 뒤 자신이 본 일을 스승께 알립니다. 속으로 했던 감탄이 이번에는 스승에게 직접 드리는 말이 됩니다. 흐리고 탁하던 강이 다가가자 맑아졌다고 전한 뒤, 스승과 바른 길을 가신 분이라는 두 호칭으로 물을 권합니다. 스승은 그 물을 드십니다. 처음 목이 마르다며 물을 청하신 일에서 시작해 세 차례 문답과 아난다의 이동, 강물의 변화와 보고를 거쳐 물을 마시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감탄과 함께 실제로 물을 건네는 행동까지 전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아난다는 본 것을 그대로 말한 뒤 두 가지 이름으로 스승을 부르며 물을 드시라고 권해요. 놀라운 일을 보고 난 뒤에도 정작 건네야 할 것은 마실 물 한 그릇이었네요. 감동이 큰 순간에 눈앞의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무엇이 도움이 될까요?

26 뿍꾸사의 금빛 옷과 쭌다를 위한 당부 29구절

뿍꾸사는 깊이 집중하는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금빛 옷을 드립니다. 강과 망고 숲을 거친 뒤 스승은 쭌다가 후회하지 않도록 전할 말을 일러 주십니다.

그때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인 말라족 뿍꾸사가 꾸시나라에서 빠와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말라족 뿍꾸사는 어느 나무 아래 앉아 계신 스승을 보았다.

Tena kho pana samayena pukkuso mallaputto āḷārassa kālāmassa sāvako kusinārāya pāvaṁ addhānamaggappaṭipanno hoti. Addasā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ntaṁ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nisinn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물 이야기가 끝난 뒤 말라족 뿍꾸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이며 꾸시나라에서 빠와로 가고 있었습니다. 스승과 아난다는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으므로 두 길의 방향은 서로 반대입니다. 뿍꾸사는 길가의 나무 아래 앉아 계신 스승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는 아직 다가가거나 말을 건네지는 않고, 그의 소속과 이동 방향, 눈에 들어온 모습을 먼저 밝힙니다. 이 만남 뒤에 그는 자기 스승 알라라 깔라마에게 있었던 고요한 머묾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묵상

길을 가다가 뜻밖에 아는 사람이나 관심이 가는 장면을 만나 걸음을 멈춘 적이 있나요? 원래 가던 방향이나 하려던 일은 잠시 어떻게 바뀌었나요? 그때 다가가서 나눈 짧은 대화 중 지금도 기억나는 말이 있나요?

그 모습을 보고 스승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말라족 뿍꾸사는 스승께 말했다. “놀랍습니다, 스승이시여. 신기합니다, 스승이시여. 스승이시여, 집을 떠나 수행하는 이들은 참으로 고요하게 머물러 지냅니다. 스승이시여, 예전에 알라라 깔라마가 길을 가다가 길에서 벗어나, 멀지 않은 나무 아래에 낮 동안 머물려고 앉았습니다.”

Dis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santena vata, bhante, pabbajitā vihārena viharanti. Bhūtapubbaṁ, bhante, āḷāro kālāmo addhānamaggappaṭipanno maggā okkamma avidūre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divāvihāraṁ nisīd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뿍꾸사는 스승을 알아보고 다가가 절을 올린 뒤 한쪽에 앉는 예의를 갖춘 다음, 곧바로 감탄으로 말을 시작합니다. 그가 근거로 드는 것은 자기 스승이던 알라라 깔라마의 옛일입니다. 이 대목은 그 일화의 첫머리로, 길을 가던 알라라가 길에서 벗어나 나무 아래에서 낮 동안 머물렀다는 배경만 전합니다. 이 말은 뿍꾸사가 스승에게 하는 말이며, 뒤에 나오는 비교 질문의 바탕이 됩니다.

묵상

뿍꾸사는 자기 스승의 옛이야기를 꺼내며 집을 떠난 수행자들의 고요한 머묾이 놀랍다고 말해요.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을 나는 어떤 이야기로 전하나요? 남의 일화를 빌려 말하는 것과 내가 직접 겪은 일로 말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스승이시여, 그때 수레 오백 대가량이 알라라 깔라마의 바로 곁으로 잇달아 지나갔습니다. 스승이시여, 그때 수레 행렬을 뒤따라오던 어떤 사람이 알라라 깔라마에게 다가갔습니다. 다가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말했습니다. ‘수행자님,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보지 못했소.’ ‘그러면 수행자님, 소리는 들으셨습니까?’”

Atha kho,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āḷāraṁ kālāmaṁ nissāya nissāya atikkamiṁsu. Atha kho, bhante, aññataro puriso tassa sakaṭasatthassa piṭṭhito piṭṭhito āgacchanto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ḷāraṁ kālāmaṁ etadavoca: ‘api, bhante,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atikkantāni addasā’ti? ‘Na kho ahaṁ, āvuso, addasan’ti. ‘Kiṁ pana, bhante, saddaṁ assos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뿍꾸사는 알라라 깔라마 곁을 수레 오백 대가량이 지나갔던 일을 전합니다. 수레 행렬을 뒤따라오던 한 사람이 알라라에게 다가가 보았는지 묻습니다. 보지 못했다는 답을 듣자 소리는 들었는지 다시 묻습니다. 뿍꾸사는 지금 스승에게 이야기하고 있고, 이야기 속에서는 그 사람과 알라라가 문답하는 구조입니다. 지나가던 사람은 수행자님이라고 부르고 알라라는 벗이여라고 답합니다. 이 대목은 두 번째 질문에서 끝나며, 뒤에서는 잠들었는지와 의식이 있었는지까지 확인하는 문답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을 지나갔는데 알라라는 보지 못했다고 답해요. 나는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얼마나 알아채며 지내는지 생각해 보게 돼요.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 주변의 큰 일을 놓친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마음은 어땠나요?

“‘벗이여,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소.’ ‘그러면 수행자님, 주무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자지 않았소.’ ‘그러면 수행자님, 의식이 있었습니까?’ ‘그렇소, 벗이여.’ ‘그러면 수행자님,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으로 잇달아 지나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수행자님, 겹겉옷에도 먼지가 덮여 있지 않습니까?’ ‘그렇소, 벗이여.’”

‘Na kho ahaṁ, āvuso, saddaṁ assosin’ti. ‘Kiṁ pana, bhante, sutto ahosī’ti? ‘Na kho ahaṁ, āvuso, sutto ahosin’ti. ‘Kiṁ pana, bhante, saññī ahosī’ti? ‘Evamāvuso’ti. ‘So tvaṁ, bhante, saññī samāno jāgaro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nissāya nissāya atikkantāni neva addasa, na pana saddaṁ assosi; apisu te, bhante, saṅghāṭi rajena okiṇṇā’ti? ‘Evamāvus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레를 보지 못했다는 답에 이어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답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알라라가 잠들어 있었는지, 의식이 있었는지 차례로 묻습니다. 알라라는 자지 않았고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깨어 있으면서 바로 곁의 수레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고, 겉옷에 먼지가 덮였다는 사실도 짚습니다. 눈앞에 남은 흔적과 알라라의 답을 함께 놓는 것입니다. 잠들어 못 들은 경우와는 다르다는 점이 이 문답에서 차츰 분명해집니다.

묵상

잠든 것도 아니고 의식도 있었는데 듣지 못했다는 답이 이어져요. 나는 어떤 일에 깊이 집중하다가 소리나 시간을 놓친 적이 있나요? 그때 나는 깨어 있었다고 느꼈나요, 아니면 평소와 다른 상태였다고 느꼈나요?

“스승이시여, 그때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놀랍구나. 아, 신기하구나. 아, 집을 떠나 수행하는 이들은 참으로 고요하게 머물러 지내는구나.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으로 잇달아 지나가는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다니.’ 그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깊은 믿음을 밝히고 떠났습니다.”

Atha kho, bhante, tassa purisassa etadahosi: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santena vata bho pabbajitā vihārena viharanti. Yatra hi nāma saññī samāno jāgaro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nissāya nissāya atikkantāni neva dakkhati, na pana saddaṁ sossatī’ti. Āḷāre kālāme uḷāraṁ pasādaṁ pavedetvā pakkām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질문을 마친 사람은 알라라의 상태를 두고 속으로 감탄합니다. 그는 이 일을 집을 떠난 수행자들의 고요한 머묾에 대한 놀라움으로 정리하고, 알라라에게 큰 믿음을 드러낸 뒤 떠납니다. 이 대목은 뿍꾸사가 전하는 이야기의 끝입니다. 뿍꾸사는 스승 앞에서 자기 스승의 이 일화를 감탄과 함께 들려줍니다. 다음 대목에서 스승이 이 감탄에 비교 질문으로 응답합니다.

묵상

그 사람은 놀라움을 느낀 뒤 큰 믿음을 밝히고 떠나요. 나는 무언가에 크게 감탄한 뒤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나요? 믿음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순간과 조용히 남는 순간은 내게 각각 어떤 모습인가요?

“뿍꾸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 더 하기 어렵고 더 이루기 어렵겠는가?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으로 잇달아 지나가는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이겠는가? 아니면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이겠는가?”

“Taṁ kiṁ maññasi, pukkusa, katamaṁ nu kho dukkarataraṁ vā durabhisambhavataraṁ vā— yo vā saññī samāno jāgaro pañcamattāni sakaṭasatāni nissāya nissāya atikkantāni neva passeyya, na pana saddaṁ suṇeyya; yo vā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passeyya, na pana saddaṁ suṇey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뿍꾸사의 이야기를 들은 뒤 두 경우를 비교해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는 수레 오백 대가량이 바로 곁을 지날 때이고, 다른 하나는 비와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칠 때입니다.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는 조건은 두 경우에 같습니다. 스승은 어느 쪽이 더 하기 어렵고 이루기 어려운지 물으십니다. 뿍꾸사가 전한 경험의 뜻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상황을 함께 놓고 판단하도록 이끄는 질문입니다. 뿍꾸사의 답 뒤에는 스승 자신이 겪었던 일이 이어집니다.

묵상

두 상황을 비교해 보라는 질문을 받고 처음 생각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겉으로 다른 점을 보기 전에 두 상황에 공통인 조건을 찾아본다면 무엇이 새로 보일까요? 최근 그렇게 비교하면서 이해가 깊어진 일이 있나요?

“스승이시여, 수레가 오백 대든 육백 대든 칠백 대든 팔백 대든 구백 대든 천 대든 십만 대든 무슨 대수겠습니까?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일이야말로 더 하기 어렵고 더 이루기 어렵습니다.”

“Kiñhi, bhante, karissanti pañca vā sakaṭasatāni cha vā sakaṭasatāni satta vā sakaṭasatāni aṭṭha vā sakaṭasatāni nava vā sakaṭasatāni, sakaṭasahassaṁ vā sakaṭasatasahassaṁ vā. Atha kho etadeva dukkaratarañceva durabhisambhavatarañca yo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passeyya, na pana saddaṁ suṇey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뿍꾸사는 수레의 수를 오백 대에서 십만 대까지 늘려 가며 답합니다. 그만큼 많아도 비와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치는 상황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다고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의식이 있고 깨어 있다는 조건은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는 폭풍 속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쪽이 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 답으로 스승이 제시한 비교에 대한 뿍꾸사의 판단이 분명해집니다. 이어 스승은 아뚜마에서 실제로 그런 일을 겪었음을 말씀하시게 됩니다.

묵상

처음에는 양이나 크기가 중요해 보였지만 다른 조건을 살피니 판단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비교하기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때 새로 중요하게 보인 기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뿍꾸사여, 나는 한번은 아뚜마에서 곡식의 낟알을 털어 내는 헛간에 머물렀다. 그때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내리치는데, 그 헛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농부 형제 두 사람과 황소 네 마리가 죽었다. 뿍꾸사여, 그러자 아뚜마의 많은 사람이 나와 농부 형제 두 사람과 황소 네 마리가 죽은 곳으로 갔다.”

“Ekamidāhaṁ, pukkusa, samayaṁ ātumāyaṁ viharāmi bhusāgāre. Tena kho pana samayena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avidūre bhusāgārassa dve kassakā bhātaro hatā cattāro ca balibaddā. Atha kho, pukkusa, ātumāya mahājanakāyo nikkhamitvā yena te dve kassakā bhātaro hatā cattāro ca balibaddā tenupasaṅkam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뚜마의 헛간에 머물렀을 때의 일을 들려주십니다. 비와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몰아치던 중 가까운 곳에서 농부 형제 두 사람과 황소 네 마리가 죽었습니다. 아뚜마의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나옵니다. 앞에서 비유로 들었던 폭풍 이야기가 여기서는 실제로 있었던 일로 이어집니다. 죽은 사람과 소의 수는 사건을 말할 때와 사람들이 향한 곳을 설명할 때 모두 반복됩니다. 이 대목에서는 사건과 사람들의 이동을 전하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스승이 그 무리를 어떻게 만났는지 밝히십니다.

묵상

오두막 가까이에서 사람과 소가 목숨을 잃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예요. 가까운 곳의 큰 소식을 접할 때 나는 어떤 마음이 가장 먼저 올라오나요? 그곳으로 몰려가는 큰 무리의 모습을 그려 보면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요?

“뿍꾸사여, 그때 나는 헛간에서 나와 헛간 문 앞 트인 곳에서 거닐고 있었다. 뿍꾸사여, 그러자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다가와서 내게 예를 올리고 한쪽에 섰다. 뿍꾸사여, 나는 한쪽에 선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이 많은 사람은 무슨 일로 모였는가?’”

Tena kho panāhaṁ, pukkusa, samayena bhusāgārā nikkhamitvā bhusāgāradvāre abbhokāse caṅkamāmi. Atha kho, pukkusa, aññataro puriso tamhā mahājanakāyā yenāh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m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Ekamantaṁ ṭhitaṁ kho ahaṁ, pukkusa, taṁ purisaṁ etadavocaṁ: ‘kiṁ nu kho eso, āvuso, mahājanakāyo sannipati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헛간에서 나와 문 앞의 트인 곳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모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서자, 스승은 사람들이 왜 모였는지 물으십니다. 앞에서는 사건을 전하는 회상이었고 여기서는 그때 오갔던 대화가 시작됩니다. 지금 스승은 뿍꾸사에게 이 일을 들려주시며, 이야기 속에서는 다가온 사람을 벗이여라고 부르십니다. 스승이 사건을 알고 계셨는지 확인하는 문답은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그 사람이 모인 까닭을 설명합니다.

묵상

스승은 몰려든 큰 무리를 보고 그 까닭을 한 사람에게 물어요. 나는 주변이 소란할 때 이유를 먼저 묻는 편인가요, 아니면 스스로 짐작해 보는 편인가요? 묻는 순간 상대에게 건네는 말투와 태도는 어떤가요?

“‘수행자님, 방금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내리치는데 농부 형제 두 사람과 황소 네 마리가 죽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이 거기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수행자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바로 여기 있었소.’ ‘그러면 수행자님, 보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보지 못했소.’ ‘그러면 수행자님, 소리는 들으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소.’”

‘Idāni, bhante,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dve kassakā bhātaro hatā cattāro ca balibaddā. Ettheso mahājanakāyo sannipatito. Tvaṁ pana, bhante, kva ahosī’ti? ‘Idheva kho ahaṁ, āvuso, ahosin’ti. ‘Kiṁ pana, bhante, addasā’ti? ‘Na kho ahaṁ, āvuso, addasan’ti. ‘Kiṁ pana, bhante, saddaṁ assosī’ti? ‘Na kho ahaṁ, āvuso, saddaṁ assosi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뿍꾸사에게 들려주시는 회상 속에서,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람들이 모인 까닭을 설명합니다. 농부 형제 두 사람과 황소 네 마리가 죽었다고 알린 뒤, 그 사람은 스승이 어디 있었는지 묻습니다. 바로 여기 있었다는 답을 듣고는 보았는지, 소리를 들었는지 차례로 확인합니다. 스승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답하십니다. 여러 마을 사람이 동시에 묻는 장면이 아니라, 다가온 한 사람과 스승 사이의 문답입니다. 이야기 속의 사람은 스승을 수행자님이라고 부르고, 스승은 그를 벗이여라고 부르십니다.

묵상

바로 곁에서 큰 사고가 났는데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답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나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 주변 소리가 사라졌던 적이 있었나요? 그때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었는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그러면 수행자님, 잠들어 계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잠들지 않았소.’ ‘그러면 수행자님, 의식이 있었습니까?’ ‘그렇소, 벗이여.’ ‘그러면 수행자님,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벗이여.’”

‘Kiṁ pana, bhante, sutto ahosī’ti? ‘Na kho ahaṁ, āvuso, sutto ahosin’ti. ‘Kiṁ pana, bhante, saññī ahosī’ti? ‘Evamāvuso’ti. ‘So tvaṁ, bhante,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addasa, na pana saddaṁ assosī’ti? ‘Evamāvus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그 사람은 스승이 잠들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잠들지 않았다는 답 뒤에는 의식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그렇다는 답을 듣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지금까지 들은 내용을 한데 모아 다시 묻는 것입니다.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비와 천둥과 번개와 벼락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뜻인지 확인합니다. 스승은 그렇다고 답하십니다. 앞서 알라라 깔라마의 일화에서 오갔던 문답과 같은 형식이지만, 여기서는 수레 행렬 대신 거센 비와 벼락이 배경입니다.

묵상

상대의 말을 다 들은 뒤 내가 이해한 뜻을 다시 물어본 적이 있나요? 한 번 더 확인하니 처음에는 놓쳤던 조건이 드러나기도 했나요? 그때 상대에게 어떻게 말했을 때 서로의 뜻이 더 분명해졌나요?

“뿍꾸사여,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 놀랍구나. 아, 신기하구나. 아, 집을 떠나 수행하는 이들은 참으로 고요하게 머물러 지내는구나.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벼락이 내리치는데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하다니.’ 그는 내게 깊은 믿음을 밝히고, 내게 예를 올린 뒤 나를 오른쪽에 두고 돌고 떠났다.”

Atha kho, pukkusa, tassa purisassa etadahosi: ‘acchariyaṁ vata bho, abbhutaṁ vata bho, santena vata bho pabbajitā vihārena viharanti. Yatra hi nāma saññī samāno jāgaro deve vassante deve gaḷagaḷāyante vijjullatāsu niccharantīsu asaniyā phalantiyā neva dakkhati, na pana saddaṁ sossatī’ti. Mayi uḷāraṁ pasādaṁ pavedetvā m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ām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들려주시는 옛일은 그 사람이 감탄하고 깊은 믿음을 밝힌 뒤 떠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는 의식이 있고 깨어 있으면서 거센 비와 벼락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점에 놀랍니다. 집을 떠나 수행하는 이들이 고요하게 머무는 일에 대한 감탄입니다. 앞서 뿍꾸사가 들려준 알라라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감탄과 믿음으로 끝났습니다. 스승의 이야기에는 예를 올리고 오른쪽에 두고 돈 뒤 떠났다는 행동이 덧붙습니다. 이제 이 두 이야기를 들은 뿍꾸사가 자신의 반응을 밝히게 됩니다.

묵상

고요한 사람을 보고 마을 사람은 놀라움 끝에 믿음을 냈어요. 나에게는 누군가의 어떤 모습이 그런 존경을 일으켰던 적이 있나요? 그것은 말이었을까요, 태도였을까요, 아니면 조용함이었을까요?

이 말씀에 말라족 뿍꾸사는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졌던 제 믿음을 큰 바람에 날려 버리거나 물살 빠른 강에 흘려보내겠습니다. 훌륭합니다, 스승이시여. 훌륭합니다, 스승이시여.”

Evaṁ vutte, pukkuso mallaputto bhagavantaṁ etadavoca: “esāhaṁ, bhante, yo me āḷāre kālāme pasādo taṁ mahāvāte vā ophuṇāmi sīghasotāya vā nadiyā pavāhemi. Abhikkantaṁ, bhante, abhikkantaṁ, bhant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의 이야기를 들은 뿍꾸사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가졌던 믿음을 바람에 날리거나 빠른 강물에 흘려보내겠다고 말합니다. 조금 전까지 자기 스승의 고요한 머묾을 높이 평가하던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어 훌륭하다는 감탄을 두 번 되풀이합니다. 바람과 강물은 앞선 믿음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뿍꾸사는 이 반응에 이어 가르침이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여러 비유로 설명하고, 누구를 의지하겠는지도 밝히게 됩니다.

묵상

뿍꾸사는 오랫동안 지녔던 믿음을 바람에 날리고 강물에 흘려보내겠다고 했어요. 나는 오래 붙들고 있는 생각을 놓아야 할지 돌아볼 때,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놓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스승이시여, 마치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듯, 눈 있는 이들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어 주듯, 스승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하겠습니다. 스승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의지하는, 집에서 생활하며 가르침을 따르는 신자로 기억해 주십시오.”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ṁ, bhante, bhagavant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gavā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뿍꾸사는 가르침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네 가지 비유로 말합니다.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어 주는 일입니다. 등불의 비유에는 눈 있는 사람이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는 목적도 붙습니다. 이어 스승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하겠다고 밝힙니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집에서 생활하며 가르침을 따르는 신자로 기억해 달라는 청입니다. 감탄이 지속해서 따르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묵상

헷갈리던 것이 분명해졌던 배움을 떠올리면 네 비유 가운데 어느 것이 가까운가요? 가려진 것을 본 느낌이었나요, 가야 할 길을 알게 된 느낌이었나요? 그 뒤 실제로 하는 일이나 묻는 질문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러자 말라족 뿍꾸사는 어떤 사람에게 말했다. “여보게, 나를 위해 산에서 나는 금의 빛깔을 띤, 곱게 다듬어 입을 수 있는 옷 한 쌍을 가져오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리.” 하고 그 사람은 말라족 뿍꾸사에게 대답한 뒤, 그 산에서 나는 금의 빛깔을 띤, 곱게 다듬어 입을 수 있는 옷 한 쌍을 가져왔다.

Atha kho pukkuso mallaputto aññataraṁ purisaṁ āmantesi: “iṅgha me tvaṁ, bhaṇe, siṅgīvaṇṇaṁ yugamaṭṭhaṁ dhāraṇīyaṁ āharā”ti. “Evaṁ, bhante”ti kho so puriso pukkusassa mallaputtassa paṭissutvā taṁ siṅgīvaṇṇaṁ yugamaṭṭhaṁ dhāraṇīyaṁ āh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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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가르침과 공동체를 의지하겠다고 밝힌 뿍꾸사는 한 사람에게 옷 한 쌍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옷은 산에서 나는 금의 빛깔을 띠고, 곱게 다듬어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가져오라는 말과 실제 가져온 행동에서 같은 옷의 특징이 반복됩니다. 부름에 응한 사람은 뿍꾸사에게 공손하게 답하고 요청을 따릅니다. 이 옷은 이어 스승께 드려지고, 스승의 몸빛과 비교되는 물건이 됩니다. 여기서는 옷을 가져오는 일까지만 전하며,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어 드리는지는 다음 대화에서 나옵니다.

묵상

고마움이나 존경을 말로 전한 뒤 작은 선물이나 행동을 더한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을 고를지 생각하며 상대의 어떤 모습을 떠올렸나요? 선물을 준비하는 동안 말로는 다 하지 못했던 마음이 더 분명해지기도 했나요?

그러자 말라족 뿍꾸사는 그 산에서 나는 금의 빛깔을 띤, 곱게 다듬어 입을 수 있는 옷 한 쌍을 스승께 내놓았다. “스승이시여, 이 산에서 나는 금의 빛깔을 띤, 곱게 다듬어 입을 수 있는 옷 한 쌍을 저를 가엾이 여겨 받아 주십시오.” “그렇다면 뿍꾸사여, 하나는 내게 입히고 하나는 아난다에게 입혀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말라족 뿍꾸사는 스승께 대답한 뒤 하나는 스승께, 하나는 아난다 수행자에게 입혀 드렸다.

Atha kho pukkuso mallaputto taṁ siṅgīvaṇṇaṁ yugamaṭṭhaṁ dhāraṇīyaṁ bhagavato upanāmesi: “idaṁ, bhante, siṅgīvaṇṇaṁ yugamaṭṭhaṁ dhāraṇīyaṁ, taṁ me bhagavā paṭiggaṇhātu anukampaṁ upādāyā”ti. “Tena hi, pukkusa, ekena maṁ acchādehi, ekena ānandan”ti. “Evaṁ, bhante”ti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to paṭissutvā ekena bhagavantaṁ acchādeti, ekena āyasmantaṁ ānand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뿍꾸사는 옷 한 쌍을 내놓으며 자신을 가엾이 여겨 받아 달라고 청합니다. 가엾이 여기는 대상은 그 옷을 드리는 뿍꾸사입니다. 스승은 하나를 자신에게, 다른 하나를 아난다에게 입히라고 하십니다. 뿍꾸사는 말씀대로 두 사람에게 하나씩 드립니다. 앞에서는 옷을 가져오는 일이 나왔고, 여기서는 그것을 받는 방식이 문답과 행동으로 밝혀집니다. 이 뒤에 뿍꾸사는 가르침을 듣고 떠나며, 남은 아난다가 그 옷과 스승의 몸빛을 가까이에서 보게 됩니다.

묵상

받은 것을 혼자 쓰지 않고 곁의 사람과 나누도록 한 이 장면에서, 무엇이 눈에 띄나요? 나는 좋은 것을 받았을 때 누구와 나누고 싶어지나요? 받아 주는 일도 상대에게 주는 일일 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스승은 말라족 뿍꾸사에게 가르침을 설명하고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말라족 뿍꾸사는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며, 실천하도록 이끌리고 용기를 얻어 기뻐진 뒤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예를 올리고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돌고 떠났다. 말라족 뿍꾸사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아난다 수행자는 그 산에서 나는 금의 빛깔을 띤, 곱게 다듬어 입을 수 있는 옷 한 쌍을 스승의 몸 가까이에 대었다.

Atha kho bhagavā pukkusaṁ mallaputtaṁ dhammiyā kathāya sandassesi samādapesi samuttejesi sampahaṁsesi. Atha kho pukkuso mallaputto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o samādapito samuttejito sampahaṁsito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padakkhiṇaṁ katvā pakkāmi. Atha kho āyasmā ānando acirapakkante pukkuse mallaputte taṁ siṅgīvaṇṇaṁ yugamaṭṭhaṁ dhāraṇīyaṁ bhagavato kāyaṁ upanāme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옷을 드린 뿍꾸사에게 스승은 가르침을 들려주십니다. 설명하고 실천하도록 이끌며 용기를 북돋고 기쁘게 하셨다는 네 표현 뒤에, 뿍꾸사가 그 가르침을 받아들인 모습이 같은 순서로 반복됩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리고 스승을 오른쪽에 두고 돈 뒤 떠납니다. 그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아난다는 금빛 옷을 스승의 몸 가까이에 댑니다. 처음 옷을 가져오고 드리는 일을 전하던 이야기가 이제 옷의 빛깔과 스승의 몸빛을 살피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좋은 이야기를 듣고 헤어진 뒤에도 그 말이 오래 남았던 적이 있나요? 그때 들은 내용과 함께 사람의 표정이나 작별 인사도 기억나나요? 만남이 끝나고 혼자 돌아보면서 새롭게 이해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스승의 몸 가까이에 댄 그 옷은 빛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말했다. “놀랍습니다, 스승이시여. 신기합니다, 스승이시여. 스승이시여, 깨달음에 이른 이의 피부 빛깔이 참으로 맑고 환합니다. 스승이시여, 이 산에서 나는 금의 빛깔을 띤, 곱게 다듬어 입을 수 있는 옷 한 쌍을 스승의 몸 가까이에 대니 빛을 잃은 듯 보입니다.”

Taṁ bhagavato kāyaṁ upanāmitaṁ hataccikaṁ viya khāyati.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yāva parisuddho, bhante, tathāgatassa chavivaṇṇo pariyodāto. Idaṁ, bhante, siṅgīvaṇṇaṁ yugamaṭṭhaṁ dhāraṇīyaṁ bhagavato kāyaṁ upanāmitaṁ hataccikaṁ viya khāy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의 몸 가까이에 댄 금빛 옷이 빛을 잃은 듯 보이자 아난다가 감탄합니다. 스승의 맑고 환한 피부빛 곁에서 그렇게 보였다는 표현입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전하는 목소리로 전해지고, 이어 아난다가 스승께 같은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그는 네 차례 스승을 부르며 놀라움을 전합니다. 이 감탄이 스승의 설명을 이끌어 냅니다. 뒤에서는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과 피부빛이 특별히 맑아지는 두 때가 언제인지 말씀하십니다.

묵상

같은 물건이 곁에 무엇을 놓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였던 경험이 있나요? 혼자 볼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색이나 빛이 비교하면서 선명해지기도 했나요? 그때 눈으로 본 차이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했나요?

“그렇다, 아난다여. 그렇다, 아난다여. 두 때에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은 유난히 맑고 피부 빛깔은 환해진다. 어떤 두 때인가?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루는 밤과,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남지 않는, 괴로움이 꺼진 평안의 상태에서 완전히 생을 마치는 밤이다. 아난다여, 이 두 때에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은 유난히 맑고 피부 빛깔은 환해진다.”

“Evametaṁ, ānanda, evametaṁ, ānanda, dvīsu kālesu ativiya tathāgatassa kāyo parisuddho hoti chavivaṇṇo pariyodāto. Katamesu dvīsu? Yañca, ānanda, rattiṁ tathāgato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ati, yañca rattiṁ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Imesu kho, ānanda, dvīsu kālesu ativiya tathāgatassa kāyo parisuddho hoti chavivaṇṇo pariyodāt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그렇다고 두 번 답하시며 몸과 피부빛이 특별히 맑아지는 두 때를 설명하십니다. 하나는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루는 밤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으로 생을 마치는 밤입니다. 두 번째는 이미 마음의 흐림에서 벗어난 이에게서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더는 남지 않는 때를 말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아직 집착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스승은 두 때를 말씀하신 뒤 같은 설명을 반복해 맺으시고, 이어 오늘 밤의 일을 밝히십니다.

묵상

몸빛이 유난히 맑아지는 때가 깨달음의 밤과 마지막 죽음의 밤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스승이 아난다에게 두 때를 하나씩 세어 주신 방식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난다여,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꾸시나라의 우빠왓따나, 말라족의 살라 숲에 있는 두 살라나무 사이에서 깨달음에 이른 이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자, 아난다여, 까꾸다강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대답했다. 산에서 나는 금빛의 곱게 다듬은 옷 한 쌍을 뿍꾸사가 가져와 드렸다. 그 옷을 입으신 스승은 황금빛으로 빛나셨다.

Ajja kho panānanda, rattiyā pacchime yāme kusinārāyaṁ upavattane mallānaṁ sālavane antarena yamakasālānaṁ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Āyāmānanda, yena kakudhā nadī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Siṅgīvaṇṇaṁ yugamaṭṭhaṁ, pukkuso abhihārayi; Tena acchādito satthā, hemavaṇṇo asobhat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오늘 밤 마지막 무렵, 꾸시나라의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족 살라 숲에서 생을 마치실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두 살라나무 사이라는 자리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앞서 몸빛이 맑아지는 두 때를 설명하신 데 이어 지금의 때와 장소를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까꾸다강으로 가자고 하시고 아난다는 알겠다고 답합니다. 끝의 시는 뿍꾸사가 옷을 가져와 드렸고 그 옷을 입은 스승이 황금빛으로 빛났다고 전합니다. 시가 옷 이야기를 맺은 뒤 강으로 향하는 여정이 계속됩니다.

묵상

마지막 밤의 시각과 장소를 이렇게 담담하게 알려 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아난다는 ‘알겠습니다’ 하고 짧게 답했어요. 나라면 이 말을 들은 순간 무엇이 먼저 떠오를 것 같나요?

그러자 스승은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까꾸다강으로 가셨다. 도착하셔서 까꾸다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물을 마신 뒤, 강에서 나와 망고 숲으로 가셨다. 도착하신 뒤 쭌다까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쭌다까여, 나를 위해 겹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펴 주어라. 쭌다까여, 나는 지쳤으니 눕겠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kakudhā nad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kakudhaṁ nadiṁ ajjhogāhetvā nhatvā ca pivitvā ca paccuttaritvā yena ambav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cundakaṁ āmantesi: “iṅgha me tvaṁ, cundaka, catugguṇaṁ saṅghāṭiṁ paññapehi, kilantosmi, cundaka, nipajjissām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까꾸다강으로 가서 몸을 씻고 물을 마신 뒤 강에서 나와 망고 숲으로 가십니다. 물을 마시고 몸을 식힐 수 있다고 아난다가 앞서 말씀드렸던 그 강입니다. 숲에 도착하신 뒤에는 쭌다까 수행자에게 지쳤으니 눕겠다고 하시며 겹겉옷을 네 겹으로 펴 달라고 하십니다. 앞서 나무 아래에서는 앉을 자리를 청하셨고, 여기서는 누울 자리를 청하십니다. 요청을 받는 사람도 아난다에서 쭌다까로 바뀝니다. 같은 여정 안에서 쉬는 모습과 돕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묵상

스승이 ‘지쳤으니 누워야겠다’고 짧게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무엇이 마음에 남나요? 나는 몸이 지쳤을 때 그 사실을 소리 내어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편인가요? 쭌다까에게 겉옷을 접어 달라고 부탁한 장면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쭌다까 수행자는 스승께 대답한 뒤 겹겉옷을 네 겹으로 접어 폈다. 그러자 스승은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한 발 위에 다른 발을 포개어 사자처럼 누우셨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일어날 것을 마음에 두셨다. 쭌다까 수행자는 바로 그곳 스승 앞에 앉았다. 깨달은 이는 까꾸다강으로 가셨다. 물은 맑고 맛있고 투명했다. 지친 기색 없는 스승이 물에 들어가셨다. 세상에 견줄 이 없는, 깨달음에 이른 이셨다.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cundako bhagavato paṭissutvā catugguṇaṁ saṅghāṭiṁ paññapesi.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ṁ kappesi pāde pādaṁ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ṁ manasikaritvā. Āyasmā pana cundako tattheva bhagavato purato nisīdi. Gantvāna buddho nadikaṁ kakudhaṁ, Acchodakaṁ sātudakaṁ vippasannaṁ; Ogāhi satthā akilantarūpo, Tathāgato appaṭimo ca lok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쭌다까가 겹겉옷을 펴자 스승은 오른쪽으로 누워 쉬십니다.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일어날 것을 마음에 두셨다고 전합니다. 쭌다까는 곁에 앉습니다. 뒤의 시는 시간을 되돌려 조금 전 까꾸다강에 들어가셨던 일을 다시 전합니다. 누웠다가 새로 강으로 간다는 순서가 아닙니다. 시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고 나오지만, 바로 앞 산문에서는 피곤하다고 말씀하신 장면이 있어 표현이 서로 다릅니다.

묵상

몸이 지쳐 눕는 순간에도 ‘일어날 때’를 마음에 두었다는 대목이 눈에 띄어요. 나는 쉬려고 누울 때 마음이 어디에 가 있나요? 쉼과 깨어 있음이 함께 갈 수 있다면 내 하루의 어느 순간일지 떠올려 보아도 좋아요.

스승은 몸을 씻고 물을 마신 뒤 강에서 나오셨다. 수행자 무리에게 존중받으며 그 한가운데에서, 이 가르침을 말하고 널리 펼치시는 스승, 큰 지혜를 이룬 이(마헤시)는 망고 숲으로 가셨다.

Nhatvā ca pivitvā cudatāri satthā, Purakkhato bhikkhugaṇassa majjhe; Vattā pavattā bhagavā idha dhamme, Upāgami ambavanaṁ mahe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시가 강에서의 일을 이어 전합니다. 스승은 몸을 씻고 물을 마신 뒤 강에서 나오셨고, 수행자 무리 가운데에서 망고 숲으로 가셨습니다. 그분을 이 가르침을 말하고 널리 펼치는 분, 큰 지혜를 이룬 분으로 부릅니다. 스승을 높이는 여러 호칭과 함께, 강에서 숲으로 옮겨 가는 모습을 그린 시입니다. 앞 산문에서 이미 나왔던 강에서 숲으로의 이동을 운율 있는 말로 되짚으며, 다음 시에서 누울 자리를 마련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수행자 무리의 한가운데를 걷는 스승의 모습이 그려져요. 나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걸을 때 마음이 가장 놓이나요? 또 누군가를 앞세우거나 곁에서 걷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천천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스승은 쭌다까라는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겹으로 접어 내가 누울 자리를 펴 주어라.” 자신의 마음을 닦은 이에게 부탁받은 쭌다는 곧바로 네 겹으로 접어 자리를 폈다. 스승은 지친 기색 없이 누우셨고, 쭌다도 그곳 스승 앞에 앉았다.

Āmantayi cundakaṁ nāma bhikkhuṁ, Catugguṇaṁ santhara me nipajjaṁ; So codito bhāvitattena cundo, Catugguṇaṁ santhari khippameva; Nipajji satthā akilantarūpo, Cundopi tattha pamukhe nisīd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시에서는 쭌다까에게 누울 자리를 펴 달라고 한 말씀과 곧바로 그 일을 한 행동을 전합니다. 처음에는 쭌다까라고 부르고 뒤에서는 쭌다라는 짧은 이름을 씁니다. 이 대목의 쭌다는 자리를 마련하는 수행자를 가리키며, 앞서 식사를 대접한 대장장이의 아들과 구별됩니다. 스승은 자신의 마음을 닦은 이로 묘사됩니다. 지친 기색 없이 누웠다는 표현은 앞 시와 같으며, 앞 산문의 피곤하다는 말씀과 나란히 전해집니다. 끝에는 누운 스승과 앞에 앉은 수행자의 모습이 남습니다.

묵상

누군가 잠시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적이 있나요? 거창한 일은 아니어도 그 사람에게 꼭 필요했던 도움은 무엇이었나요? 일을 마친 뒤 곁에 함께 있었던 시간은 서로에게 어떻게 느껴졌나요?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누군가가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에게 후회를 일으킬 수도 있다. ‘벗 쭌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그대에게 마지막 식사를 대접받은 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것은 그대에게 손해이며 불운이다’라고 말이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siyā kho panānanda, cundassa kammāraputtassa koci vippaṭisāraṁ uppādeyya: ‘tassa te, āvuso cunda, alābhā tassa te dulladdhaṁ, yassa te tathāgato pacchimaṁ piṇḍapātaṁ paribhuñjitv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난다에게 쭌다가 남의 말을 듣고 후회하게 될 가능성을 말씀하십니다. 누군가 스승이 마지막 식사를 드신 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쭌다의 손해와 불운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쪽의 말은 누군가 할 수 있는 말로 제시됩니다. 아직 쭌다가 실제로 그런 말을 들었다거나 이미 후회하고 있다는 보고도 아닙니다. 스승은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마음의 괴로움을 미리 짚으십니다. 이어 아난다가 쭌다의 후회를 어떻게 풀어 주어야 할지 구체적인 말을 가르쳐 주십니다.

묵상

이 대목에서 스승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쭌다의 후회를 미리 내다보아요. 나는 누군가가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자책할까 걱정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떤 말이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후회는 이렇게 풀어 주어야 한다. ‘벗 쭌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가 그대에게 마지막 식사를 대접받은 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것은 그대에게 이익이며 행운이다. 벗 쭌다여, 나는 스승 앞에서 직접 이것을 들었고 스승 앞에서 직접 받아 지녔다. 결실도 결과도 똑같으며, 다른 식사들보다 결실도 이익도 훨씬 더 큰 두 끼의 식사가 있다. 어떤 두 끼인가?’”

Cundassa, ānanda, kammāraputtassa evaṁ vippaṭisāro paṭivinetabbo: ‘tassa te, āvuso cunda, lābhā tassa te suladdhaṁ, yassa te tathāgato pacchimaṁ piṇḍapātaṁ paribhuñjitvā parinibbuto. Sammukhā metaṁ, āvuso cunda, bhagavato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dveme piṇḍapātā samasamaphalā samavipākā, ativiya aññehi piṇḍapātehi mahapphalatarā ca mahānisaṁsatarā ca. Katame dv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난다가 쭌다에게 전할 위로의 말을 직접 알려 주십니다. 마지막 식사를 대접한 일이 이익이며 행운이라고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근거로 결실과 결과가 같은 두 끼의 식사가 있음을 설명하게 하십니다. 아난다는 이것을 스승 앞에서 직접 듣고 받아 지녔다고 밝혀야 합니다. 스승에게서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말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어떤 두 끼를 말하는지 이어 설명하기 위한 물음이며, 다음 대목에서 두 사건이 밝혀집니다.

묵상

위로하는 말에 ‘직접 듣고 받아들였다’는 근거가 덧붙는 점이 눈에 띄어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았을 때 이유가 함께 있었나요, 아니면 다정한 말만 있었나요? 어느 쪽이 마음에 더 오래 남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하나는 깨달음에 이른 이가 대접받아 드신 뒤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루는 식사이고, 다른 하나는 깨달음에 이른 이가 대접받아 드신 뒤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남지 않는, 괴로움이 꺼진 평안의 상태에서 완전히 생을 마치는 식사다. 이 두 끼의 식사는 결실도 결과도 똑같으며, 다른 식사들보다 결실도 이익도 훨씬 더 크다.’”

Yañca piṇḍapātaṁ paribhuñjitvā tathāgato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jjhati, yañca piṇḍapātaṁ paribhuñjitv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Ime dve piṇḍapātā samasamaphalā samavipākā, ativiya aññehi piṇḍapātehi mahapphalatarā ca mahānisaṁsatarā c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두 끼의 식사는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드신 식사와 마지막으로 생을 마치기 전에 드신 식사입니다. 스승은 두 식사의 결실과 결과가 같고 다른 식사들보다 훨씬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첫 식사는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이루는 때에 드신 음식입니다. 마지막 식사는 이미 마음의 흐림에서 벗어난 이가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남기지 않고 생을 마치는 때와 연결됩니다. 아난다는 이 설명을 전하여 쭌다가 자신이 한 대접을 후회의 이유로만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묵상

오래 기억에 남는 한 끼가 있다면 그 식사는 어떤 순간과 이어져 있나요? 새 일을 시작하기 전이었나요, 큰 일을 마친 뒤였나요? 음식의 맛과 함께 그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에게서 무엇이 기억나나요?

“‘존경하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께서는 오래 사는 삶으로 이어지는, 뜻을 품고 한 행동(깜마)을 쌓으셨다. 존경하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께서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쌓으셨다. 존경하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께서는 행복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쌓으셨다. 존경하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께서는 명성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쌓으셨다. 존경하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께서는 하늘에서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쌓으셨다. 존경하는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께서는 다스리는 힘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쌓으셨다.’”

Āyusaṁvattanikaṁ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ṁ upacitaṁ, vaṇṇasaṁvattanikaṁ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ṁ upacitaṁ, sukhasaṁvattanikaṁ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ṁ upacitaṁ, yasasaṁvattanikaṁ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ṁ upacitaṁ, saggasaṁvattanikaṁ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ṁ upacitaṁ, ādhipateyyasaṁvattanikaṁ āyasmatā cundena kammāraputtena kammaṁ upaci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쭌다에게 전할 말은 그가 한 행동이 가져올 여섯 결과를 하나씩 밝히며 이어집니다. 오래 사는 삶, 아름다운 모습, 행복, 명성, 하늘에서 태어남, 다스리는 힘입니다. 각 항목마다 쭌다를 존경하는 호칭으로 부르고 그에 이르는 행동을 쌓았다고 반복합니다. 여기의 쭌다는 음식을 대접한 대장장이의 아들입니다. 존경하는 호칭이 붙었다고 해서 앞에서 자리를 마련한 쭌다까 수행자와 같은 사람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섯 문장은 쭌다의 식사 대접을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일로 분명히 짚어 줍니다.

묵상

내가 한 작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직접 본 결과와 나중에 전해 들은 결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그 말을 듣고 내가 했던 일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나요?

“아난다여,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의 후회는 이렇게 풀어 주어야 한다.” 그러자 스승은 이 뜻을 아시고 그때 마음에서 우러난 말씀을 시로 들려주셨다. “베푸는 이에게는 좋은 일을 해서 쌓이는 복(뿐냐)이 자라고, 자신을 다스리는 이에게는 원한이 쌓이지 않는다. 좋은 일에 능숙한 이는 나쁜 것을 버리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다하여 평안해진다.”

Cundassa, ānanda, kammāraputtassa evaṁ vippaṭisāro paṭivinetabbo”ti.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ṁ viditvā tāyaṁ velāyaṁ imaṁ udānaṁ udānesi: “Dadato puññaṁ pavaḍḍhati, Saṁyamato veraṁ na cīyati; Kusalo ca jahāti pāpakaṁ, Rāgadosamohakkhayā sa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쭌다의 후회를 풀어 주라는 당부가 끝나자 스승은 그 뜻을 아시고 마음에서 우러난 시를 들려주십니다. 베풂으로 좋은 결과를 낳는 복이 자라고, 자신을 다스리면 원한이 쌓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좋은 일에 능숙한 이는 나쁜 것을 버리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다하여 평안해집니다. 쭌다의 식사 대접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 뒤에 베풂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 나쁜 것을 버리는 일이 나옵니다. 끝의 평안은 마음의 흐림이 다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누고 난 뒤 내 마음도 달라졌던 적이 있나요? 그때 기뻤던 점과 예상하지 못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베푸는 행동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함께 이어졌다고 느낀 장면이 있나요?

27 두 살라나무 사이에서 7구절

스승은 히란냐와띠강 건너 살라 숲에 누우십니다. 꽃과 음악으로 드리는 예와 함께, 가르침에 맞게 살아가는 공경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히란냐와띠강 건너편 기슭, 꾸시나라의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족의 살라 숲으로 가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가 스승께 대답했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āyāmānanda,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ṁ tīraṁ, yena kusinārā upavattanaṁ mallānaṁ sālavanaṁ tenupasaṅkamissāmā”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기서부터 새 장면이 열립니다. 쭌다가 음식을 올린 이야기를 마친 스승은 아난다를 불러 강 건너 말라족의 살라나무 숲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스승은 목적지를 강 건너편과 꾸시나라 근처라는 두 위치로 정확히 짚어 말하고, 아난다는 짧게 응답합니다. 이 말은 마지막 여정의 도착지를 알리는 것이며, 뒤에서 나오는 쌍으로 선 나무 아래 자리로 이어지는 출발점입니다. 일상적인 이동 지시이지만 이곳이 이 경의 큰 사건이 일어날 장소가 됩니다.

묵상

스승은 목적지를 강 건너편과 근처 지명으로 차분히 알려 줘요. 나는 중요한 곳으로 향할 때 그 길을 어떻게 준비하나요? 함께 가는 사람에게 알려 주는 말이 어떤 힘이 되는지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승은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히란냐와띠강 건너편 기슭, 꾸시나라의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족의 살라 숲으로 가셨다. 도착하신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자, 아난다여, 나를 위해 두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둘 침대를 마련해 주어라. 아난다여, 나는 지쳤으니 눕겠다.”

Atha kho bhagavā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yena hiraññavatiyā nadiyā pārimaṁ tīraṁ, yena kusinārā upavattanaṁ mallānaṁ sālavan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iṅgha me tvaṁ, ānanda, antarena yamakasālānaṁ uttarasīsakaṁ mañcakaṁ paññapehi, kilantosmi, ānanda, nipajjissām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과 큰 수행자 무리는 히란냐와띠강 건너편의 살라 숲에 도착합니다. 스승은 아난다에게 두 살라나무 사이에 누울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시며 머리 방향을 북쪽으로 정하십니다. 지쳤으니 눕겠다는 말씀도 직접 하십니다. 앞서 망고 숲에서는 쭌다까가 겹겉옷을 펴 드렸고, 이곳에서는 아난다가 자리를 마련합니다. 조금 전 스승이 오늘 밤 생을 마칠 곳으로 말씀하셨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자리를 준비하는 이 장면 뒤에 철 아닌 꽃과 하늘의 꽃과 소리가 등장합니다.

묵상

스승이 자신이 지쳤다고 분명히 말하고 눕겠다고 하시는 장면에서 무엇이 떠오르나요? 나는 피곤할 때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가 어땠나요? 말로 필요를 전했을 때와 혼자 쉬려 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대답한 뒤 두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둘 침대를 마련했다. 그러자 스승은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한 발 위에 다른 발을 포개어,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사자처럼 누우셨다. 그때 두 살라나무에는 제철이 아닌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 나무들은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 위로 꽃을 흩뿌리고 쏟고 가득 뿌리며,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했다.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antarena yamakasālānaṁ uttarasīsakaṁ mañcakaṁ paññapesi. Atha kho bhaga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ṁ kappesi pāde pādaṁ accādhāya sato sampajāno. Tena kho pana samayena yamakasālā sabbaphāliphullā honti akālapupphehi. Te tathāgatassa sarīraṁ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말씀대로 두 나무 사이에 북쪽을 향해 머리를 둘 자리를 마련합니다. 스승은 오른쪽으로 누워 한 발 위에 다른 발을 포개고 알아차리고 분명히 아십니다. 앞서 망고 숲에서 누우셨을 때와 비슷하지만, 이 대목에는 일어날 것을 마음에 두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때 두 살라나무에는 제철이 아닌 꽃이 가득 피어 스승의 몸 위로 흩어지고 쏟아집니다. 나무들이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하는 모습으로 전해집니다. 사람이 마련한 자리와 자연의 공경이 한 장면에 이어집니다.

묵상

철이 아닌데도 나무가 꽃을 피워 스승의 몸 위에 뿌렸다는 장면이 나와요. 나는 어떤 순간에 평소와 다른 자연의 모습에 마음이 멈춘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을 느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하늘의 만다라와 꽃도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 꽃들은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 위로 흩어지고 쏟아지고 가득 뿌려져,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했다. 하늘의 향기로운 나무(짠다나)를 빻은 가루도 허공에서 떨어졌다. 그 가루는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 위로 흩어지고 쏟아지고 가득 뿌려져,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했다. 하늘의 악기들도 허공에서 울리며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했다. 하늘의 노래들도 허공에서 이어지며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했다.

Dibbānipi mandāravapupph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ṁ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candanacuṇṇ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ṁ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tūriyāni antalikkhe vajj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saṅgītāni antalikkhe vattanti tathāgatassa pūj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살라나무의 꽃에 이어 하늘의 만다라와 꽃과 향기로운 짠다나 나무 가루가 허공에서 떨어집니다. 꽃과 가루가 스승의 몸 위로 흩어지고 쏟아지고 가득 뿌려진다는 세 표현이 각각 반복됩니다. 악기 소리와 노래도 허공에서 이어집니다. 네 경우 모두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한다는 같은 목적이 붙습니다. 눈에 보이는 꽃과 향가루, 귀에 들리는 악기와 노래가 차례로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 다양한 공경의 모습을 말씀하신 뒤, 스승은 가르침에 맞게 살아가는 공경을 설명하시게 됩니다.

묵상

꽃과 향, 악기와 노래가 모두 같은 마음으로 바쳐져요. 나는 누군가를 기릴 때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마음을 표현하나요? 말이나 행동 중 어느 쪽이 내 마음을 더 잘 담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두 살라나무에 철 아닌 꽃이 가득 피었다. 그 나무들은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 위로 꽃을 흩뿌리고 쏟고 가득 뿌리며,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한다. 하늘의 만다라와 꽃도 허공에서 떨어진다. 그 꽃들은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 위로 흩어지고 쏟아지고 가득 뿌려져,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한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sabbaphāliphullā kho, ānanda, yamakasālā akālapupphehi. Te tathāgatassa sarīraṁ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mandāravapupph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ṁ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조금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광경을 아난다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두 살라나무에 철 아닌 꽃이 가득 피었고, 하늘의 만다라와 꽃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이야기로 전한 장면이었지만 이제는 스승의 말씀 속에서 같은 모습이 다시 나옵니다. 몸 위로 흩뿌리고 쏟고 가득 뿌린다는 세 표현과 공경한다는 목적도 되풀이됩니다. 스승은 이 광경을 먼저 짚은 뒤, 이런 일만으로 더없이 높은 공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앞의 공경에서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으로 설명이 이어집니다.

묵상

철 아닌 때에 핀 꽃이 스승의 몸 위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스승은 왜 이 일을 아난다에게 직접 가리켜 보이셨을까요?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우리는 그저 감탄하는 데서 멈출 때가 많아요. 그런 광경이 다음 말씀을 듣기 위한 준비라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앞에 서 있을 수 있을까요?

“하늘의 짠다나 나무 가루도 허공에서 떨어진다. 그 가루는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 위로 흩어지고 쏟아지고 가득 뿌려져,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한다. 하늘의 악기들도 허공에서 울리며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한다. 하늘의 노래들도 허공에서 이어지며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한다. 그러나 아난다여, 이런 것만으로 깨달음에 이른 이를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고 예를 갖춰 섬기는 것은 아니다.”

Dibbānipi candanacuṇṇāni antalikkhā papatanti, tāni tathāgatassa sarīraṁ okiranti ajjhokiranti abhippakir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tūriyāni antalikkhe vajjanti tathāgatassa pūjāya. Dibbānipi saṅgītāni antalikkhe vattanti tathāgatassa pūjāya. Na kho, ānanda, ettāvatā tathāgato sakkato vā hoti garukato vā mānito vā pūjito vā apacito v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향기로운 나무 가루와 악기 소리와 노래도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공경하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그 뒤 스승은 이런 것만으로 충분히 공경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고 예를 갖춰 섬긴다는 다섯 표현을 나란히 놓으십니다. 꽃과 향과 음악도 공경의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스승은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을 더없이 높은 공경으로 제시하십니다. 지금의 광경을 출발점으로 공경의 뜻을 더 깊게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꽃과 향과 음악이 가득한데도 ‘이런 것만으로는 아니다’라는 말씀은 조금 뜻밖이에요. 화려하고 정성스러운 표현과 진짜 공경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누군가를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 말고 어디에서 확인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난다여, 남성 수행자든 여성 수행자든,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든 여성 신자든,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깨달음에 이른 이를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고 예를 갖춰 섬긴다. 더없이 높은 공경으로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우리는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겠다’고 하여라. 아난다여, 너희는 이렇게 배워야 한다.”

Yo kho, ānanda, bhikkhu vā bhikkhunī vā upāsako vā upāsikā vā dhammānudhammappaṭipanno viharati sāmīcippaṭipanno anudhammacārī, so tathāgataṁ sakkaroti garuṁ karoti māneti pūjeti apaciyati, paramāya pūjāya. Tasmātihānanda, dhammānudhammappaṭipannā viharissāma sāmīcippaṭipannā anudhammacārinoti. Evañhi vo, ānanda, sikkhitabb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남녀 수행자와 집에서 생활하는 남녀 신자를 모두 언급하십니다. 가르침에 맞게 실천하고 마땅하게 실천하며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이 더없이 높은 공경을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앞의 다섯 가지 공경 표현은 여기서 그대로 반복됩니다. 꽃과 음악에 이어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이 제시된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배우라는 당부가 붙습니다. 스승을 곁에서 모시는 사람뿐 아니라 집에서 생활하는 신자도 가르침을 따르는 삶으로 공경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합니다.

묵상

내가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평소의 행동에 드러난 적이 있나요? 그 사람 앞에서 마음을 표현할 때와 혼자 배운 대로 해 볼 때는 어떻게 달랐나요? 오늘 있었던 작은 일 가운데 그런 배움이 떠오른 장면이 있나요?

28 우빠와나에게 비켜서라고 하신 이유 7구절

스승은 부채질하던 우빠와나를 물러서게 하십니다. 아난다가 이유를 묻자 스승을 보고 싶어 하는 신들과 그들의 슬픔을 설명하십니다.

그때 우빠와나 수행자는 스승 앞에 서서 스승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스승은 우빠와나 수행자를 물러나게 하셨다. “수행자여, 비켜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 그때 아난다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우빠와나 수행자는 오랫동안 스승을 시중들며 가까이 머물고 곁에서 지낸 사람이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upavāṇo bhagavato purato ṭhito hoti bhagavantaṁ bījayamāno.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upavāṇaṁ apasāres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ayaṁ kho āyasmā upavāṇo dīgharattaṁ bhagavato upaṭṭhāko santikāvacaro samīpacārī.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 대목은 우빠와나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우빠와나는 오랫동안 스승 곁에서 시중을 들어 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지금도 스승 앞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승은 마지막 밤에 바로 그를 물러나게 하십니다. 스승의 말씀은 짧고 분명합니다. 비켜서라는 것과 앞에 서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난다는 이 일을 이상하게 여기고 생각에 잠깁니다. 이 짧은 장면은 이유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남겨져, 뒤에서 나올 답에 대한 궁금증을 만들어 냅니다.

묵상

오랫동안 곁에서 정성껏 시중을 든 사람에게 ‘비켜라’라는 말이 나오는 장면이에요. 그 말을 듣는 우빠와나와 옆에서 보는 아난다는 각각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이유를 모르는 채 지켜본다는 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경험이라면,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하곤 하나요?

‘그런데도 스승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빠와나 수행자를 물러나게 하시며 “수행자여, 비켜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하신다. 무슨 까닭과 어떤 사정이 있기에 스승께서 우빠와나 수행자를 물러나게 하시며 “수행자여, 비켜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하시는가?’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 우빠와나 수행자는 오랫동안 스승을 시중들며 가까이 머물고 곁에서 지냈습니다.”

Atha ca pana bhagavā pacchime kāle āyasmantaṁ upavāṇaṁ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Ko nu kho hetu, ko paccayo, yaṁ bhagavā āyasmantaṁ upavāṇaṁ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ayaṁ, bhante, āyasmā upavāṇo dīgharattaṁ bhagavato upaṭṭhāko santikāvacaro samīpacārī.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의 속생각이 이어지며 질문이 분명해집니다. 우빠와나는 오랫동안 곁에서 시중든 사람인데, 왜 하필 마지막 때에 물러나라고 하시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아난다는 ‘까닭’과 ‘사정’이라는 두 말로 이유를 묻고 있습니다. 그가 혼자 판단하지 않고 스승께 직접 말씀드리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궁금한 일을 마음에만 두지 않고 스승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리는 내용은 앞서 한 생각과 같은 사실을 다시 짚는 것이어서, 이 만남의 배경을 스승에게 상기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묵상

아난다는 속으로 궁금해하다가 결국 스승께 직접 여쭙기로 해요. 이해되지 않는 일을 앞에 두고, 나는 혼자 이유를 짐작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당사자에게 묻는 편인가요? 여쭙기 전에 먼저 ‘그동안 이 사람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방식은 대화에 어떤 차이를 만들까요?

“그런데도 스승께서는 마지막 때에 우빠와나 수행자를 물러나게 하시며 ‘수행자여, 비켜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스승이시여, 무슨 까닭과 어떤 사정이 있기에 스승께서 우빠와나 수행자를 물러나게 하시며 ‘수행자여, 비켜라. 내 앞에 서 있지 마라.’라고 하십니까?” “아난다여, 열 세계의 신들이 대부분 깨달음에 이른 이를 뵈려고 모여 있다.”

Atha ca pana bhagavā pacchime kāle āyasmantaṁ upavāṇaṁ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yaṁ bhagavā āyasmantaṁ upavāṇaṁ apasāreti: ‘apehi, bhikkhu, mā me purato aṭṭhāsī’”ti? “Yebhuyyena, ānanda, dasasu lokadhātūsu devatā sannipatitā tathāgataṁ dassan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우빠와나를 왜 물러나게 하셨는지 직접 여쭙습니다. 앞서 속으로 했던 생각이 스승에게 드리는 질문이 됩니다. 스승은 열 세계의 신들이 대부분 자신을 보러 모였다고 답하십니다. 스승은 눈앞의 사람들 외에도 모여 있는 신들의 상황을 설명하십니다. 여기서는 모임의 규모와 목적만 먼저 밝히십니다. 뒤에서 신들이 빈틈없이 모여 있고 우빠와나가 앞을 가리고 있어 스승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묵상

아난다가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또렷하게 던졌더니, 스승은 짧지만 분명한 답을 주셨어요. 궁금한 일을 정확한 말로 물어보면 답도 명료해질 때가 있지 않나요? 지금 마음에 걸린 일이 있다면, 그것을 어떤 문장으로 물으면 좋을지 한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꾸시나라의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족 살라 숲을 중심으로 둘레 열두 요자나 안에는, 큰 위력을 지닌 신들로 채워지지 않은 곳이 머리카락 끝으로 찌를 만큼도 없다. 아난다여, 신들이 이렇게 불평한다. ‘우리는 멀리서 깨달음에 이른 이를 뵈러 왔다.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은 이따금, 아주 드물게 세상에 나타난다.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깨달음에 이른 이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Yāvatā, ānanda, kusinārā upavattanaṁ mallānaṁ sālavanaṁ samantato dvādasa yojanāni, natthi so padeso vālaggakoṭinittudanamattopi mahesakkhāhi devatāhi apphuṭo. Devatā, ānanda, ujjhāyanti: ‘dūrā ca vatamha āgatā tathāgataṁ dassanāya.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신들이 모인 곳을 살라 숲 둘레 열두 요자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자나는 옛 인도의 거리 단위입니다. 그만큼 넓은 곳에 머리카락 끝만 한 빈틈도 없다는 말로 모임의 규모를 전합니다. 이어 신들의 말을 인용하십니다. 그들은 멀리서 왔고,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가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라고 하니, 남은 기회가 짧다는 아쉬움이 불평의 배경이 됩니다.

묵상

신들은 스승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이 아주 드물다는 점 때문에 멀리서 달려왔어요. 소중한 만남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때,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나 배움 중에 ‘드물고 지나가는 것’은 무엇일지 한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큰 위력을 지닌 수행자가 스승 앞에 서서 가리고 있으니, 우리는 마지막 때에 깨달음에 이른 이를 뵐 수가 없다.’” “스승이시여, 스승께서는 어떤 상태의 신들을 마음에 두고 말씀하십니까?”

Ayañca mahesakkho bhikkhu bhagavato purato ṭhito ovārento, na mayaṁ labhāma pacchime kāle tathāgataṁ dassanāyā’”ti. “Kathaṁbhūtā pana, bhante, bhagavā devatā manasikaro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전하시는 신들의 말이 끝납니다. 큰 위력을 지닌 우빠와나가 앞을 가리고 서 있어 마지막으로 스승을 볼 수 없다는 불평입니다. 이로써 스승이 그를 물러나게 하신 까닭이 분명해집니다. 이어 아난다는 어떤 상태의 신들을 말씀하시는지 묻습니다. 곧 나오는 답에서는 허공과 땅에 있는 신들, 욕망에서 벗어난 신들의 반응이 나뉩니다. 여기서는 아직 그 반응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데서 끝납니다. 신들이 여러 모습으로 나뉘어 있다는 설명으로 넘어가는 지점입니다.

묵상

신들이 아쉬워한 것은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누군가와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그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하게 느껴지나요? 아난다가 이어서 ‘어떤 신들이냐’고 묻는 데에서, 사람마다 슬퍼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까요?

“아난다여, 허공에 있으면서 땅의 일을 아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울고, 팔을 치켜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질 것이다.’”

“Santānanda, devatā ākāse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ṁ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dhāy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허공에 있으면서 땅의 일을 아는 신들이 어떻게 슬퍼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팔을 치켜들어 울며, 쓰러지고 이리저리 구르는 몸짓이 차례로 나옵니다. 이어 너무 빨리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합니다. 스승이 떠나고, 바른 길을 가신 분이 떠나며, 세상에서 보는 눈이 사라진다는 탄식입니다. 세상에서 보는 눈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밝혀 주는 스승을 눈에 비유한 표현입니다. 스승을 잃는 아쉬움을 몸짓과 반복되는 말로 함께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묵상

신들은 스승을 ‘세상의 눈’이라고 부르며 눈물을 쏟아요. 누군가를 ‘나에게 세상을 보게 해 주는 눈’이라고 느낀 경험이 있나요? 그런 분이 떠나실 때 사람들이 ‘너무 빨리’라고 말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아난다여, 땅에 있으면서 땅을 땅으로 인식하는 신들도 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울고, 팔을 치켜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욕망에서 벗어난 신들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딘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늘 그대로 있지 않다. 여기서 어찌 달리 바랄 수 있겠는가.’”

Santānanda, devatā pathaviyaṁ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ṁ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dhāyissatī’ti. Yā pana tā devatā vītarāgā, tā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aniccā saṅkhārā, taṁ kutettha labb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번에는 땅에 있는 신들이 앞의 신들과 같은 몸짓과 말로 슬퍼합니다. 머리를 풀고 팔을 들고 쓰러져 구르며 너무 빨리 떠나신다고 탄식하는 모습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이어 욕망에서 벗어난 신들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딘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늘 그대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이 대목은 스승의 마지막 밤에 나타난 서로 다른 반응을 나란히 전합니다. 앞서 스승께서 자리를 비우라고 하신 수행자의 뒤편에 얼마나 많은 신이 모여 있었는지 밝히는 설명 속에서, 이들의 슬픔과 견딤도 함께 드러납니다.

묵상

같은 이별을 겪어도 사람마다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이 달랐던 적이 있나요? 말이 많아지거나 조용해지는 등 서로 다른 반응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데 도움이 되었던 말이나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29 찾아가 마음을 일깨울 네 장소 5구절

스승은 태어나고 깨닫고 처음 가르치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는 네 장소를 말씀하시며, 믿음을 품고 그곳을 찾아가는 이들에 관해 설명하십니다.

“스승이시여, 예전에는 여러 지방에서 비 오는 철의 머무름을 마친 수행자들이 깨달음에 이른 이를 뵈러 왔습니다. 저희는 마음을 북돋아 주는 그 수행자들을 뵐 수 있었고 가까이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스승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마음을 북돋아 주는 수행자들을 뵐 수도, 가까이 모실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난다여,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꿀라뿟따)이 찾아보며 마음을 크게 일깨울 곳이 네 군데 있다. 어떤 네 곳인가?”

“Pubbe, bhante, disāsu vassaṁvuṭṭhā bhikkhū āgacchanti tathāgataṁ dassanāya. Te mayaṁ labhāma manobhāvanīye bhikkhū dassanāya, labhāma payirupāsanāya. Bhagavato pana mayaṁ, bhante, accayena na labhissāma manobhāvanīye bhikkhū dassanāya, na labhissāma payirupāsanāyā”ti. “Cattārimān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ṁvejanīyāni ṭhānāni. Katamāni cattār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스승이 떠나신 뒤에는 다른 수행자들과 만날 기회도 잃을까 걱정합니다. 각 지방에서 비 오는 철의 머무름을 마친 수행자들이 스승을 찾아올 때마다 그들을 뵙고 가까이 모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한곳에서 우기를 지냈다는 말은 아닙니다. 스승은 믿음 있는 사람이 찾아가 마음을 일깨울 네 곳을 말씀하십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라는 당시의 부름을 사용하시며, 이어 남녀 수행자와 남녀 신자들이 그곳을 찾을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만남에 관한 물음에서 기억할 장소에 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한 사람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다른 좋은 만남도 얻은 적이 있나요? 그런 자리가 사라질까 아쉬웠을 때 어떤 기억이 남았나요? 사람과 함께한 장소를 다시 찾으며 그때의 대화나 배움을 떠올린 경험이 있나요?

“아난다여,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태어났다’고 하는 곳은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보며 마음을 크게 일깨울 곳이다. 아난다여,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는 곳은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보며 마음을 크게 일깨울 곳이다. 아난다여,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더없이 높은 가르침의 바퀴(담마짝까)를 굴렸다’고 하는 곳은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보며 마음을 크게 일깨울 곳이다.”

‘Idha tathāgato jā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ṁ saṁvejanīyaṁ ṭhānaṁ. ‘Idha tathāgato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ṁ saṁvejanīyaṁ ṭhānaṁ. ‘Idha tathāgatena anuttaraṁ dhammacakkaṁ pavattitan’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ṁ saṁvejanīyaṁ ṭhān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네 곳 가운데 처음 세 곳을 말씀하십니다. 태어난 곳,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룬 곳, 가르침의 바퀴를 굴린 곳입니다. 가르침의 바퀴를 굴린다는 것은 깨달은 가르침을 처음 세상에 펼친 일을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각 장소에 찾아보며 마음을 크게 일깨울 곳이라는 설명이 똑같이 붙습니다. 장소 이름을 외우는 목록보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초점을 두는 방식입니다. 네 번째는 이어서 나옵니다.

묵상

스승은 태어난 곳, 깨달은 곳, 처음 가르침을 편 곳을 ‘마음을 일깨우는 장소’라고 하셨어요. 우리도 어떤 장소에 서면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경험을 하곤 하죠. 나에게 그런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어떤 일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일까요?

“아난다여,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남지 않는, 괴로움이 꺼진 평안의 상태에서 완전히 생을 마쳤다’고 하는 곳은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보며 마음을 크게 일깨울 곳이다. 아난다여, 이것이 믿음 있는 좋은 집안의 아들이 찾아보며 마음을 크게 일깨울 네 곳이다.”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ṁ saṁvejanīyaṁ ṭhānaṁ. Imāni kho, ānanda, cattāri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āni saṁvejanīyāni ṭhānān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번째 장소는 스승이 마지막으로 생을 마친 곳입니다.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남지 않는다는 표현이 붙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은 마지막 순간에야 집착을 없앴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은 이미 깨달으셨을 때 다 끝났고, 여기서는 몸과 마음의 바탕까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스승은 이 마지막 장소까지 말씀하신 뒤 찾아보며 마음을 일깨울 네 곳을 모두 밝혔다고 맺으십니다. 태어남, 깨달음, 첫 가르침, 마지막 생의 마침이 하나의 목록을 이룹니다. 스승이 떠난 뒤 만날 자리를 걱정한 아난다에게 그 삶을 기억할 장소들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묵상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장소를 다시 찾은 적이 있나요? 그곳에서는 평소와 어떤 점이 다르게 느껴졌나요?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뿐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들었던 말이나 함께한 일도 새롭게 떠오른 적이 있나요?

“아난다여, 믿음 있는 남성 수행자와 여성 수행자,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와 여성 신자가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태어났다.’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더없이 높은 깨달음을 바르게 온전히 이루었다.’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더없이 높은 가르침의 바퀴를 굴렸다.’ ‘여기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의 바탕마저 남지 않는, 괴로움이 꺼진 평안의 상태에서 완전히 생을 마쳤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Āgamissanti kho, ānanda, saddhā bhikkhū bhikkhuniyo upāsakā upāsikāyo: ‘idha tathāgato jāto’tipi, ‘idha tathāgato anuttaraṁ sammāsambodhiṁ abhisambuddho’tipi, ‘idha tathāgatena anuttaraṁ dhammacakkaṁ pavattitan’tipi,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tip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네 곳을 찾을 사람으로 남녀 수행자와 집에서 생활하는 남녀 신자를 모두 말씀하십니다. 앞서 좋은 집안의 아들이라고 부른 데 이어 실제로 찾아오는 이들을 네 무리로 넓게 밝히십니다. 그들이 떠올릴 말은 모두 여기서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스승의 삶에서 일어난 네 사건을 바로 그 자리와 연결하는 것입니다. 태어남과 깨달음과 첫 가르침, 그리고 마지막 생의 마침까지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가르침을 따르는 여러 사람이 스승이 떠난 뒤에도 기억을 나눌 장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묵상

같은 장소를 찾아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장면이 다른 경우를 본 적이 있나요? 나에게는 그곳의 어느 때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나요?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장소를 새롭게 보게 된 경험이 있나요?

“아난다여, 누구든 기리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다 마음에 맑은 믿음을 품은 채 생을 마치는 이는,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Ye hi keci, ānanda, cetiyacārikaṁ āhiṇḍantā pasannacittā kālaṁ karissanti, sabbe te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iss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네 장소에 관한 말씀은 그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과 죽은 뒤의 결과로 끝납니다. 기리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다 맑은 믿음을 품은 채 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장소를 찾는 행동과 함께 생을 마칠 때의 마음도 언급합니다. 앞에서는 네 곳이 마음을 크게 일깨울 자리라고 했고, 여기서는 그 방문과 맑은 믿음이 이어집니다. 이 말씀 뒤에 아난다는 장소 방문과는 다른 주제인 수행자의 생활과 스승의 몸을 모시는 일을 묻습니다.

묵상

기억할 만한 장소를 찾아 걸었던 때, 출발할 때와 돌아올 때 마음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무엇을 보거나 떠올리며 마음이 맑아졌나요? 그 느낌이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남았다면 어떤 순간에 다시 생각났나요?

30 여성을 대하는 일과 장례에 관한 질문 5구절

아난다는 여성과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그 몸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스승이시여, 저희는 여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보지 않는 것이다, 아난다여.” “스승이시여, 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아난다여.” “스승이시여, 말을 나누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알아차림을 세워야 한다.” “스승이시여, 저희는 깨달음에 이른 이가 세상을 떠난 뒤의 몸을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아난다여, 너희는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을 공경하여 모시는 일에 관여하지 마라.”

“Kathaṁ mayaṁ, bhante, mātugāme paṭipajjāmā”ti? “Adassanaṁ, ānandā”ti. “Dassane, bhagavā, sati kathaṁ paṭipajjitabban”ti? “Anālāpo, ānandā”ti. “Ālapantena pana, bhante, kathaṁ paṭipajjitabban”ti? “Sati, ānanda, upaṭṭhāpetabbā”ti. “Kathaṁ mayaṁ, bhante,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āmā”ti? “Abyāvaṭā tumhe, ānanda, hotha tathāgatassa sarīrapūj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수행자들이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보지 않기, 보게 되면 말하지 않기, 말을 나누게 되면 알아차림을 세우기라는 짧은 문답이 이어집니다. 아난다는 집을 떠나 수행하는 이들을 대신해 ‘저희’라고 묻습니다. 이어 주제가 바뀌어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의 몸을 어떻게 모실지 묻습니다. 스승은 너희가 그 예식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음 말씀에서는 수행자들이 힘쓸 일과 다른 사람들이 맡을 일을 나누어 설명하십니다. 한 답이 끝나면 새 상황을 물으며 이어지는 문답 형식입니다.

묵상

어떤 원칙을 듣고 실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물은 적이 있나요? 상황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말하니 답도 더 분명해졌나요? 대화 중 내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던 순간에는 무엇이 눈에 들어왔나요?

“자, 아난다여, 너희는 진정으로 중요한 목표를 위해 애쓰고 힘을 쏟아라. 그 목표를 위해 방심하지 않고 열심히, 뜻을 굳게 세워 살아라.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를 깊이 믿는 지혜로운 왕족도, 제사를 맡는 계층의 지혜로운 사람도, 집안을 꾸려 가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다. 그들이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을 공경하여 모실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이시여,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은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아난다여, 사람들이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짝까왓띠)의 몸을 모시는 것처럼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도 그렇게 모셔야 한다.”

Iṅgha tumhe, ānanda, sāratthe ghaṭatha anuyuñjatha, sāratthe appamattā ātāpino pahitattā viharatha. Santānanda, khattiyapaṇḍitāpi brāhmaṇapaṇḍitāpi gahapatipaṇḍitāpi tathāgate abhippasannā, te tathāgatassa sarīrapūjaṁ karissantī”ti. “Kathaṁ pana, bhante,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ṁ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목표를 위해 힘쓰라고 하시며, 자신의 몸을 모시는 일은 깊은 믿음을 가진 지혜로운 왕족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 집안을 꾸려 가는 사람들이 맡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난다가 다시 방법을 묻자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장례를 기준으로 드십니다. 이 왕을 가리키는 짝까왓띠는 바퀴를 굴리는 왕을 뜻합니다. 바른 이치로 널리 다스리는 이상적인 왕을 말합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그 왕의 몸을 감싸고 태운 뒤 기리는 탑을 세우는 순서를 설명하십니다.

묵상

여러 사람이 함께 큰일을 치를 때 각자 맡을 일을 어떻게 정하나요? 내가 꼭 해야 할 일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한 적이 있나요? 역할을 나누고 나서 마음을 더 쏟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렇다면 스승이시여,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은 어떻게 모십니까?” “아난다여,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새 천으로 감싼다. 새 천으로 감싼 뒤 두드려 푼 솜으로 감싸고, 두드려 푼 솜으로 감싼 뒤 다시 새 천으로 감싼다.”

“Kathaṁ pana, bhante,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ī”ti? “Rañño, ānanda, cakkavattissa sarīra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nti,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그 왕의 장례 방법을 묻자 스승은 먼저 몸을 감싸는 과정을 설명하십니다. 새 천으로 감싼 뒤 두드려 푼 솜으로 감싸고 다시 새 천으로 감쌉니다. 새 천과 솜을 번갈아 겹치는 방식입니다. 앞 행동을 끝낸 뒤 다음 행동을 한다는 순서가 각각 반복됩니다. 이 대목은 몸을 모시는 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답의 시작입니다. 아직 태우거나 탑을 세우는 절차는 나오지 않습니다. 뒤에서 이렇게 감싸는 일을 얼마나 반복하는지 밝히고, 감싼 몸을 넣는 통과 장작더미를 설명하게 됩니다.

묵상

소중한 물건이나 기억을 조심스럽게 감싸 보관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사용하는 재료나 손의 움직임에도 마음이 실렸나요? 누군가를 떠올리며 천천히 준비했던 일 가운데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나요?

“이런 방법으로 천과 솜을 한 쌍으로 하여 오백 쌍으로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감싼 뒤,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을 엎어 덮는다. 온갖 향기로운 나무로 장작더미를 쌓아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태운다. 네거리에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을 기리는 탑(투빠)을 세운다. 아난다여, 이렇게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모신다.”

Etenupāyena pañcahi yugasatehi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ṁ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ṁ citakaṁ karitv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ṁ jhāpenti. Cātumahāpathe rañño cakkavattissa thūpaṁ karonti. Eva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천과 솜을 번갈아 감싸는 일은 오백 쌍에 이릅니다. 그 뒤 몸을 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을 엎어 덮으며, 향기로운 나무로 쌓은 장작더미에서 태웁니다. 마지막에는 네거리에 그 왕을 기리는 탑을 세웁니다. 감싸기와 통에 넣기, 덮기와 태우기, 탑을 세우기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탑은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기념물입니다. 스승은 이런 순서가 왕의 몸을 모시는 방식이라고 맺으십니다. 뒤에서는 자신의 몸도 같은 방식으로 모셔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십니다.

묵상

누군가를 기리는 곳이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처음에는 지나쳤다가 나중에 멈추어 살펴본 적도 있나요? 그 자리에 무엇을 기억하는지 알게 된 뒤 길을 지날 때의 느낌이 달라졌나요?

“아난다여, 사람들이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모시는 것처럼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도 그렇게 모셔야 한다. 네거리에 깨달음에 이른 이를 기리는 탑을 세워야 한다. 그곳에 꽃다발이나 향이나 향가루를 올리거나, 예를 올리거나,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그 일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다.”

Yathā kho,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ṁ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ṁ. Cātu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 Tattha ye mālaṁ vā gandhaṁ vā cuṇṇakaṁ vā āropessanti vā abhivādessanti vā cittaṁ vā pasādessanti tesaṁ taṁ bhavissati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의 장례 절차를 설명한 뒤 스승은 자신의 몸도 같은 방식으로 모시고 네거리에 기리는 탑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곳을 찾는 이들이 할 일로 꽃다발과 향과 향가루를 올리기, 예를 올리기,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기가 나옵니다. 이 일들이 그들에게 오래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같은 예식을 지내라는 말씀에 탑을 찾는 사람들의 행위와 결실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뒤에서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네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십니다.

묵상

누군가를 기억하는 곳에서 꽃을 놓거나 잠시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있나요? 그런 작은 행동이 없을 때와 있을 때 마음은 어떻게 달랐나요? 그곳을 떠난 뒤에도 남아 있던 생각이나 느낌은 무엇이었나요?

31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 네 부류 4구절

온전히 깨달은 이, 홀로 깨달은 이, 깨달은 이의 제자,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을 기리는 탑과 그 앞에서 일어나는 맑은 믿음을 설명하십니다.

“아난다여,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 이는 넷이다. 어떤 넷인가? 깨달음에 이른 이, 곧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홀로 깨달은 이(빳쩨까삼붓다)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깨달음에 이른 이의 제자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은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아난다여, 어떤 이유로 깨달음에 이른 이, 곧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가? 아난다여, 많은 사람이 ‘이것은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인 그 스승을 기리는 탑이다’라고 하며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킨다.”

Cattārome, ānanda, thūpārahā. Katame cattāro? Tathāgato arahaṁ sammāsambuddho thūpāraho,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ti. Kiñc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tathāgato arahaṁ sammāsambuddho thūpāraho? ‘Ayaṁ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ṁ pasāde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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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 이를 네 부류로 말씀하십니다.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 홀로 깨달은 이, 깨달음에 이른 이의 제자,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입니다. 각 부류에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는 말이 따로 반복됩니다. 이어 첫 부류에 관해 그 이유를 묻고 답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을 기리는 탑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스승이 누구인지와 그 탑을 보는 사람에게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를 함께 제시하는 설명입니다.

묵상

어떤 사람을 기리는 장소에서 그 사람의 삶을 새롭게 알게 된 적이 있나요? 이름만 알 때와 이야기를 들은 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랐나요? 그 장소에서 떠올린 배움이나 행동이 이후에도 기억에 남았나요?

“그들은 그곳에서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유로 깨달음에 이른 이, 곧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아난다여, 어떤 이유로 홀로 깨달은 이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가? 아난다여, 많은 사람이 ‘이것은 홀로 깨달은 그 존경받는 분을 기리는 탑이다’라고 하며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Te tattha cittaṁ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nti. Idaṁ kho, 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tathāgato arahaṁ sammāsambuddho thūpāraho. Kiñc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Ayaṁ tassa bhagavato paccekasambuddh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ṁ pasādenti. Te tattha cittaṁ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첫 부류를 기리는 탑에서 맑은 믿음을 일으킨 이들이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이어 홀로 깨달은 이에 관해 같은 질문과 답이 나옵니다. 홀로 깨달은 이는 스스로 가르침을 발견하여 깨달았지만,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처럼 새로운 가르침의 전통과 수행 공동체를 널리 세우지는 않는 이를 가리킵니다. 그분을 기리는 탑에서도 사람들이 맑은 믿음을 일으키고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하십니다. 두 부류는 구별되지만 탑을 찾는 이들에게 생기는 마음과 결과는 같은 형식으로 설명됩니다.

묵상

같은 형식의 설명에서 대상만 바뀔 때 무엇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나요? 공통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나요, 작은 차이가 먼저 보이나요? 누군가의 삶을 다른 사람과 나란히 놓고 이해해 본 경험이 있나요?

“아난다여, 이런 이유로 홀로 깨달은 이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아난다여, 어떤 이유로 깨달음에 이른 이의 제자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가? 아난다여, 많은 사람이 ‘이것은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인 그 스승의 제자를 기리는 탑이다’라고 하며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유로 깨달음에 이른 이의 제자는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Idaṁ kho, 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paccekasambuddho thūpāraho. Kiñc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Ayaṁ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āvakassa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ṁ pasādenti. Te tattha cittaṁ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nti. Idaṁ kho, 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tathāgatassa sāvako thūpārah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홀로 깨달은 이에 대한 설명을 맺고 깨달음에 이른 이의 제자를 기리는 탑으로 넘어갑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말에는 그 제자가 누구에게 배운 사람인지가 함께 나옵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스승의 제자라는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그 탑 앞에서 맑은 믿음을 일으키고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하십니다. 앞선 두 부류와 같은 질문과 결과가 반복됩니다. 이 긴 호칭은 제자가 따르는 스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배운 사람이 다시 다른 이에게 배움을 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의 말에서 스승의 영향과 그 사람 자신의 경험은 어떻게 함께 드러났나요? 내가 받은 배움을 돌아보면 누구의 모습이 떠오르나요?

“아난다여, 어떤 이유로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은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가? 아난다여, 많은 사람이 ‘이것은 바르게 살고 바른 이치로 다스린 그 왕을 기리는 탑이다’라고 하며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킨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난다. 아난다여, 이런 이유로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은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하다. 아난다여, 이 넷이 기리는 탑을 세워 드릴 만한 이들이다.”

Kiñc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 ‘Ayaṁ tassa dhammikassa dhammarañño thūpo’ti, ānanda, bahujanā cittaṁ pasādenti. Te tattha cittaṁ pasādetv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jjanti. Idaṁ kho, ānanda, atthavasaṁ paṭicca rājā cakkavattī thūpāraho. Ime kho, ānanda, cattāro thūpāra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지막 부류는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 탑을 보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고 바른 이치로 다스린 왕을 떠올리며 맑은 믿음을 일으킨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바른 이치는 불교의 특정 가르침을 들었다는 뜻으로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왕의 올바른 삶과 다스림을 함께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탑을 찾는 이들이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결과는 앞의 세 부류와 같습니다. 마지막에는 네 부류를 모두 밝혔다고 맺으십니다. 이로써 스승의 몸을 모시는 방법에서 시작한 기리는 탑에 관한 말씀이 끝납니다.

묵상

공동체를 잘 돌본 사람을 기억할 때 어떤 일을 가장 먼저 떠올리나요? 큰 업적과 일상의 작은 판단 가운데 오래 남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누군가를 기리는 말을 들으며 나도 닮고 싶다고 느꼈던 행동이 있나요?

32 아난다의 돌봄과 네 무리가 느끼는 기쁨 13구절

스승은 슬퍼하는 아난다를 불러 오랜 돌봄을 인정하고 격려하십니다. 남녀 수행자와 남녀 신자가 아난다를 만나고 가르침을 들으며 기뻐하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설주에 기대어 울며 서 있었다. “아, 나는 아직 배우는 사람(세카)이며 해야 할 일이 남았는데, 나를 가엾이 여기시는 내 스승께서 곧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시겠구나.” 그러자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아난다는 어디 있는가?”

Atha kho āyasmā ānando vihāraṁ pavisitvā kapisīsaṁ ālambitvā rodamāno aṭṭhāsi: “ahañca vatamhi sekho sakaraṇīyo, satthu ca me parinibbānaṁ bhavissati, yo mama anukampako”ti.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kahaṁ nu kho, bhikkhave, ānand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설주에 기대어 웁니다. 자신은 아직 배우는 사람이고 해야 할 일이 남았는데, 자신을 가엾이 여기시는 스승이 곧 떠나신다는 말입니다. 스승을 잃는 아쉬움과 자신의 배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마음이 함께 나옵니다. 여기서 배우는 사람은 아직 수행을 완전히 마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어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아난다가 어디 있는지 물으십니다. 이 부름은 슬퍼하는 아난다를 다시 곁으로 오게 하여 말씀을 건네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아난다는 사람들 앞이 아니라 문설주에 기대어 혼자 울었어요. 나는 슬프거나 불안할 때 어디로 가서 어떤 모습으로 그 마음을 마주하나요? 그때 누군가 “어디 있느냐”고 찾아 준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스승이시여, 아난다 수행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설주에 기대어 울며 서 있습니다. ‘아, 나는 아직 배우는 사람이며 해야 할 일이 남았는데, 나를 가엾이 여기시는 내 스승께서 곧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시겠구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한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여, 이리 오너라. 내 말을 아난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벗 아난다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Eso, bhante, āyasmā ānando vihāraṁ pavisitvā kapisīsaṁ ālambitvā rodamāno ṭhito: ‘ahañca vatamhi sekho sakaraṇīyo, satthu ca me parinibbānaṁ bhavissati, yo mama anukampako’”ti. Atha kho bhagavā aññataraṁ bhikkhuṁ āmantesi: “ehi tvaṁ, bhikkhu, mama vacanena ānandaṁ āmantehi: ‘satthā taṁ, āvuso ānanda, āmante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그가 문설주에 기대어 울고 있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답하는 이는 아난다가 한 말도 그대로 전합니다. 스승은 한 수행자에게 아난다를 불러오라고 하시며 전할 문장까지 알려 주십니다. 벗 아난다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신다는 짧은 말입니다. 여기서 벗이라는 호칭은 함께 수행하는 이에게 건네는 부름입니다. 스승이 직접 찾아가시는 대신 다른 수행자를 통해 아난다가 올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 부름을 받은 뒤 아난다가 스승 앞에 앉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묵상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나요? 그 말을 누가 어떤 말투로 전했는지도 기억나나요? 반대로 내가 전갈을 맡았다면 상대에게 부담을 덜 주면서 뜻을 전하려고 어떤 점을 살폈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그 수행자는 스승께 대답한 뒤 아난다 수행자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서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벗 아난다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Evaṁ, bhante”ti kho so bhikkhu bhagavato paṭissutvā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satthā taṁ, āvuso ānanda, āmante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전갈을 맡은 수행자는 스승께 알겠다고 대답한 뒤 아난다에게 갑니다. 그리고 부탁받은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앞에서는 스승이 누구를 보내며 무슨 말을 전할지 말씀하셨고, 여기서는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위로나 설명을 보태기보다 스승께서 부르신다는 사실을 전하는 짧은 장면입니다. 울고 있던 아난다에게 다른 수행자가 다가와 직접 말을 건넵니다. 이 전갈이 아난다가 스승 곁으로 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며, 다음 대목에서 아난다는 알겠다고 답하고 움직입니다.

묵상

짧은 전갈 하나가 누군가의 다음 행동을 바꾸었던 장면을 본 적이 있나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뜻이 충분히 전해졌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전하는 사람이라면 원래의 말에서 꼭 지키고 싶은 부분은 무엇일까요?

“알겠습니다, 벗이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는 그 수행자에게 답한 뒤 스승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스승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마라. 아난다여, 내가 미리 말하지 않았는가?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떨어지고, 헤어지고, 달라지게 된다’고 말이다. 아난다여, 어찌 여기서 달리 바랄 수 있겠는가? 태어나고 생겨나고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져 무너지기 마련인 것, 곧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마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vamāvuso”ti kho āyasmā ānando tassa bhikkhuno paṭissutv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aṁ kho āyasmantaṁ ānandaṁ bhagavā etadavoca: “alaṁ, ānanda, mā soci mā paridevi, nanu etaṁ, ānanda, mayā paṭikacceva akkhātaṁ: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taṁ kutettha, ānanda,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vata tathāgatassāpi sarīraṁ mā palujj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전갈을 듣고 스승께 돌아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습니다. 스승은 슬퍼하고 통곡하는 것을 그치라고 하시며,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 헤어지게 된다고 이미 말씀하셨음을 상기시키십니다. 태어나고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은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설명입니다. 스승 자신의 몸도 그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아난다의 슬픔을 마주한 대화는 이별의 사실을 밝히는 데서 시작합니다. 뒤에서는 아난다가 오랫동안 해 온 돌봄과 앞으로의 수행을 따뜻하게 인정하고 격려하시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묵상

“사랑하는 모든 것과는 갈라지고 달라진다”는 말을 스승은 이미 미리 말했다고 해요.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마음이 따라오지 않았던 일이 있나요? 그런 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어떻게 달랐나요?

“아난다여, 너는 오랫동안 깨달음에 이른 이를 곁에서 돌보았다. 몸으로 사랑을 담아 이로움과 기쁨을 주며, 두 마음 없이 한없이 돌보았다. 말로 사랑을 담아 이로움과 기쁨을 주며, 두 마음 없이 한없이 돌보았다.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이로움과 기쁨을 주며, 두 마음 없이 한없이 돌보았다. 아난다여, 너는 좋은 일을 해서 복을 쌓았다. 힘써 닦는 일에 마음을 쏟아라. 곧 흘러드는 것이 없는 사람(아나사와)이 될 것이다.”

Dīgharattaṁ kho te, ānanda, tathāgato paccupaṭṭhito mettena kāya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mettena vacī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mettena manokammena hitena sukhena advayena appamāṇena. Katapuññosi tvaṁ, ānanda, padhānamanuyuñja, khippaṁ hohisi anāsav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난다가 오랫동안 자신을 돌본 일을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나누어 인정하십니다. 세 경우 모두 사랑을 담고 이로움과 기쁨을 주며 두 마음 없이 한이 없었다는 같은 표현이 붙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한꺼번에 하지 않고, 돌봄의 세 갈래를 각각 짚으십니다. 이어 아난다가 좋은 일을 해서 복을 쌓았다고 하시며 힘써 닦는 일에 마음을 쏟으라고 당부하십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이 곧 없어질 것이라는 격려도 이어집니다. 자신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울던 아난다에게 그의 앞길을 말씀해 주시는 대목입니다.

묵상

스승은 아난다의 시중을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나누어 하나씩 짚어 주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해 온 일을 세 갈래로 나누어 본다면 어느 쪽이 가장 눈에 띄나요? “힘써 닦으라”는 말은 슬픔 뒤에 어떻게 들릴까요?

그러자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과거에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이 계셨다. 그 스승들께도 내게 아난다가 있듯이 더없이 뛰어난 시중드는 이들이 있었다. 수행자들이여, 미래에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이 계실 것이다. 그 스승들께도 내게 아난다가 있듯이 더없이 뛰어난 시중드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아난다는 지혜롭다. 수행자들이여, 아난다는 슬기롭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yepi te, bhikkhave, ahesuṁ atī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ṁ etapparamāyeva upaṭṭhākā ahesuṁ, seyyathāpi mayhaṁ ānando. Yepi te, bhikkhave, bhavissanti anāgatamaddhānaṁ arahanto sammāsambuddhā, tesampi bhagavantānaṁ etapparamāyeva upaṭṭhākā bhavissanti, seyyathāpi mayhaṁ ānando. Paṇḍito, bhikkhave, ānando; medhāvī, bhikkhave, ānand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이제 모인 수행자들에게 아난다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과거와 미래에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을 모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아난다는 더없이 뛰어난 시중드는 이의 본보기로 제시됩니다. 과거에도 그러했다는 말과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말이 같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아난다가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각각 말씀하십니다. 아난다 개인에게 건넨 격려이면서, 함께 모인 사람들 앞에서 그의 역할을 인정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어서는 사람들이 스승을 찾아올 때를 아는 능력과 그를 만나는 이들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묵상

스승은 과거와 미래의 깨달은 이들에게도 아난다 같은 시중드는 이가 있다고 말해요. 내 곁에서 조용히 오래 도와준 사람이 떠오르나요? 그분의 어떤 점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해 주고 싶은가요?

“그는 안다. ‘지금은 남성 수행자들이 깨달음에 이른 이를 뵈러 다가갈 때다. 지금은 여성 수행자들이 갈 때다.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들이 갈 때다.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들이 갈 때다. 지금은 왕과 왕의 높은 신하들,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들과 그 제자들이 갈 때다’라고. 수행자들이여, 아난다에게는 놀랍고 신기한 점이 네 가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수행자들이여, 남성 수행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Jānāti ‘ayaṁ kālo tathāgat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ṁ bhikkhūnaṁ, ayaṁ kālo bhikkhunīnaṁ, ayaṁ kālo upāsakānaṁ, ayaṁ kālo upāsikānaṁ, ayaṁ kālo rañño rājamahāmattānaṁ titthiyānaṁ titthiyasāvakānan’ti. Cattārome, bhikkhav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Katame cattāro? Sace, bhikkhave, bhikkhuparisā ānanda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어떤 사람들이 언제 스승을 뵈러 가면 좋을지 압니다. 남녀 수행자와 집에서 생활하는 남녀 신자, 왕과 높은 신하들,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와 그 제자들이 모두 나옵니다. 오랫동안 곁에서 시중드는 일이 다양한 사람들의 방문을 조율하는 역할이기도 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어 스승은 아난다에게 있는 놀랍고 신기한 네 가지를 예고하십니다. 첫째로 남성 수행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오면 그를 보고 기뻐한다고 하십니다. 뒤에서는 가르침을 들을 때와 그가 말을 멈출 때의 반응도 나옵니다.

묵상

누구에게 언제 말을 건네면 좋을지 헤아려 본 적이 있나요? 상대의 일정뿐 아니라 어떤 표정이나 분위기를 살폈나요? 여러 사람의 만남을 도우면서 알맞은 때를 찾아 주었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 기억나나요?

“거기서 아난다가 가르침을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수행자들이여, 남성 수행자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아난다는 말을 멈춘다. 수행자들이여, 여성 수행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거기서 아난다가 가르침을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수행자들이여, 여성 수행자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아난다는 말을 멈춘다.”

Tatra ce ānando dhammaṁ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bhikkhu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Sace, bhikkhave, bhikkhunīparisā ānanda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ṁ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bhikkhunī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남성 수행자들은 아난다의 가르침을 듣고도 기뻐하며 그가 말을 멈출 때 아직 더 듣고 싶어 합니다. 이어 여성 수행자 무리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고 하십니다. 그를 보고 기뻐하고,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며, 말을 멈출 때 더 듣고 싶어 한다는 흐름입니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말은 충분히 듣지 못해 더 듣고 싶다는 뜻입니다. 같은 문장을 다른 무리에 적용하면서 아난다를 만나는 기쁨을 반복해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시간이 다 되어 아쉬웠던 적이 있나요? 더 듣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내용이었나요, 그 사람의 설명 방식이나 마음이었나요? 그 뒤 다시 만나 묻고 싶었던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수행자들이여,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거기서 아난다가 가르침을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수행자들이여, 남성 신자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아난다는 말을 멈춘다. 수행자들이여,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거기서 아난다가 가르침을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Sace, bhikkhave, upāsakaparisā ānanda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ṁ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upāsaka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Sace, bhikkhave, upāsikāparisā ānanda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ṁ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집에서 생활하는 남녀 신자들에게도 아난다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고 하십니다. 남성 신자들은 그를 보고 가르침을 들어 기뻐하며, 아난다가 말을 멈출 때 아직 더 듣고 싶어 합니다. 여성 신자들도 그를 보고 가르침을 들어 기뻐합니다. 집을 떠난 수행자뿐 아니라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네 무리를 하나씩 빠짐없이 짚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여성 신자들이 그가 말을 멈출 때 느끼는 아쉬움은 다음 말씀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아난다는 집을 떠난 사람에게도 집에서 지내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반가운 존재였어요. 나는 서로 처지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어울리는 편인가요? 그런 모습을 보인 사람이 있었다면 어떤 사람이었나요?

“수행자들이여, 여성 신자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아난다는 말을 멈춘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아난다에게 있는 놀랍고 신기한 네 가지다. 수행자들이여,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에게도 놀랍고 신기한 점이 네 가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수행자들이여, 왕족 무리가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을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거기서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이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Atittāva, bhikkhave, upāsikā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Ime kho, bhikkhave, cattāro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Cattārome, bhikkhav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raññe cakkavattimhi. Katame cattāro? Sace, bhikkhave, khattiyaparisā rājānaṁ cakkavatti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rājā cakkavattī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성 신자들이 아난다가 말을 멈출 때 더 듣고 싶어 한다는 말로 네 무리의 설명을 맺습니다. 이어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에게도 놀랍고 신기한 네 가지가 있다고 하십니다. 첫 무리는 왕족들입니다. 그들은 왕을 보고 기뻐하며 왕이 말하면 그 말에도 기뻐합니다. 아난다의 경우와 같은 틀로 다른 사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왕족과 수행자라는 사람들의 처지는 다르지만, 만나고 말을 듣는 데서 기쁨을 얻는다는 반응은 나란히 놓입니다. 뒤에서 왕을 찾는 다른 무리들도 이어집니다.

묵상

스승은 아난다를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에 견주어요. 힘이나 지위 없이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 주변에 그런 이가 있다면 누구이며, 어떤 말이 기억나나요?

“수행자들이여, 왕족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은 말을 멈춘다. 수행자들이여,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 무리가 … 집안을 꾸려 가는 사람들 무리가 …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 무리가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을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거기서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이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수행자들이여,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은 말을 멈춘다.”

Atittāva, bhikkhave, khattiyaparisā hoti. Atha kho rājā cakkavattī tuṇhī hoti. Sace bhikkhave, brāhmaṇaparisā …pe… gahapatiparisā …pe… samaṇaparisā rājānaṁ cakkavatti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rājā cakkavattī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samaṇaparisā hoti. Atha kho rājā cakkavattī tuṇhī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족 무리도 왕이 말을 멈출 때 아직 더 듣고 싶어 한다고 하십니다. 이어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과 집안을 꾸려 가는 사람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이 나옵니다. 가운데 두 무리의 반응은 되풀이되는 부분이라 줄이고, 마지막 무리의 반응만 자세히 전합니다. 보고 기뻐하고 말을 들어 기뻐하며 그가 멈추면 더 듣고 싶어 한다는 같은 흐름입니다. 서로 다른 생활과 지위에 있는 네 무리가 이 왕을 찾습니다. 이 비교 뒤에 스승은 다시 아난다에게로 돌아와 같은 네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묵상

왕의 이야기가 끝나도 왕족, 제사를 맡는 사람들, 가장들, 수행자들 모두 더 듣고 싶어 했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아난다에게도 놀랍고 신기한 점이 네 가지 있다. 수행자들이여, 남성 수행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거기서 아난다가 가르침을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수행자들이여, 남성 수행자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아난다는 말을 멈춘다.”

Evameva kho, bhikkhave, cattārome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 Sace, bhikkhave, bhikkhuparisā ānanda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ṁ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bhikkhu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을 찾는 네 무리의 반응을 설명한 뒤 스승은 다시 아난다를 찾는 사람들로 돌아오십니다. 이와 같이라는 말로 두 경우를 연결하십니다. 남성 수행자들은 아난다를 보고 가르침을 들어 기뻐하며, 그가 말을 멈출 때 아직 더 듣고 싶어 합니다. 앞서 했던 설명을 비교 뒤에 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왕의 경우에 가르침이라는 말을 따로 붙이지 않았던 것과 달리, 아난다가 하는 말은 가르침이라고 분명히 하십니다. 이어 다른 세 무리의 반응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나오며 비교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묵상

스승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아난다를 칭찬했어요. 반복해서 들으면 칭찬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올까요? 나는 고마움을 한 번만 말했나요, 아니면 여러 번 말해 본 적이 있나요?

“수행자들이여, 여성 수행자 무리가 … 집에서 생활하는 남성 신자 무리가 … 집에서 생활하는 여성 신자 무리가 아난다를 보러 다가오면 그들은 그를 보고 기뻐한다. 거기서 아난다가 가르침을 말하면 그들은 그 말에도 기뻐한다. 수행자들이여, 여성 신자 무리가 아직 더 듣고 싶어 할 때 아난다는 말을 멈춘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아난다에게 있는 놀랍고 신기한 네 가지다.”

Sace, bhikkhave bhikkhunīparisā …pe… upāsakaparisā …pe… upāsikāparisā ānandaṁ dassanāya upasaṅkamati, dassanena sā attamanā hoti. Tatra ce ānando dhammaṁ bhāsati, bhāsitenapi sā attamanā hoti. Atittāva, bhikkhave, upāsikāparisā hoti. Atha kho ānando tuṇhī hoti. Ime kho, bhikkhave, cattāro acchariyā abbhutā dhammā ānande”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왕을 찾는 네 무리와 비교한 뒤 아난다를 찾는 네 무리의 설명을 마칩니다. 여성 수행자와 남성 신자의 반응은 생략 표시로 줄이고 여성 신자의 반응을 온전히 전합니다. 아난다를 보고 기뻐하며 가르침을 들어 기뻐하고, 그가 말을 멈출 때는 더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아난다를 만나는 기쁨은 집을 떠난 이들과 집에서 생활하는 이들 모두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이 설명으로 스승은 아난다가 오랫동안 해 온 일을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십니다. 그 뒤 아난다는 스승이 마지막으로 머무시는 장소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묵상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더 듣고 싶었던 만남이 있나요? 어떤 말이나 분위기가 그 아쉬움을 남겼나요? 만남의 길이가 짧아도 오래 기억에 남은 사람이 있다면 그와 나눈 이야기 중 무엇을 떠올리게 되나요?

33 꾸시나라의 옛 모습 7구절

아난다가 큰 도시에서 마지막을 맞아 달라고 청하자 스승은 꾸시나라가 옛 왕의 큰 수도였다고 하십니다. 이어 말라족에게 마지막 만남을 알리게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 작고 황량하고 외진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지 마십시오. 스승이시여, 다른 큰 도시들이 있습니다. 짬빠, 라자가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바라나시입니다. 스승께서는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십시오. 그곳에는 깨달음에 이른 이를 깊이 믿는 부유한 왕족들, 부유한 제사 담당 계층의 사람들, 부유한 집안을 꾸려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Evaṁ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mā, bhante, bhagavā imasmiṁ khuddakanagarake ujjaṅgalanagarake sākhānagarake parinibbāyi. Santi, bhante, aññāni mahānagarāni, seyyathidaṁ— campā rājagahaṁ sāvatthī sāketaṁ kosambī bārāṇasī; ettha bhagavā parinibbāyatu. Ettha bahū khattiyamahāsālā, brāhmaṇamahāsālā gahapatimahāsālā tathāgate abhippasann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꾸시나라가 작고 황량하고 외진 도시라는 점을 들어 다른 곳으로 가시기를 청합니다. 그가 꼽은 여섯 큰 도시에는 스승을 깊이 믿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말은 뒤에서 그 사람들이 스승의 몸을 공경하여 모실 것이라는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죽음을 맞을 장소와 그 뒤의 일을 함께 생각하는 청입니다. 본문이 아난다의 속마음을 따로 설명하지는 않으므로 크고 유명한 곳만 좋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스승은 이 청에 답하면서 꾸시나라가 오래전에 어떤 곳이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묵상

아난다는 스승이 삶을 마칠 곳으로 크고 이름난 도시를 떠올렸어요. 나는 어떤 곳이나 자리의 가치를 크기나 유명세로 가늠한 적이 있나요? 지금 작고 외지다고 여기는 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을 공경하여 모실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마라. 아난다여, ‘작고 황량하고 외진 도시’라고 그렇게 말하지 마라. 아난다여, 옛날에 마하수닷사나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이었다. 바르게 살고 바른 이치로 다스렸으며, 사방을 다스리고 싸움에서 이겼고 나라를 굳건하게 했으며 일곱 보물을 갖추었다. 아난다여, 이 꾸시나라가 마하수닷사나 왕의 수도였으며 그 이름은 꾸사와띠였다.”

Te tathāgatassa sarīrapūjaṁ karissantī”ti “mā hevaṁ, ānanda, avaca, mā hevaṁ, ānanda, avaca: ‘khuddakanagarakaṁ ujjaṅgalanagarakaṁ sākhānagarakan’ti. Bhūtapubbaṁ, ānanda, rājā mahāsudassano nāma ahosi cakkavattī dhammiko dhammarājā cāturanto vijitāvī janapadatthāvariyappatto sattaratanasamannāgato. Rañño, ānanda, mahāsudassanassa ayaṁ kusinārā kusāvatī nāma rājadhānī aho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큰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이 스승의 몸을 공경하여 모실 것이라고 말하며 청을 마칩니다. 스승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두 번 말씀하시고 꾸시나라의 옛 모습을 들려주십니다. 이곳은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린 마하수닷사나 왕의 수도 꾸사와띠였다는 것입니다. 왕을 설명하는 말에는 바른 삶과 다스림, 사방에 미친 지배, 승리와 안정, 일곱 보물이 함께 나옵니다. 현재의 작은 모습에만 머물던 이야기에 이 장소의 긴 역사가 더해집니다.

묵상

스승은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하며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해요. 나는 어떤 장소나 사람을 작고 초라하다고 쉽게 말해 버린 적이 있나요? 그 말을 하기 전에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도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이가 열두 요자나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너비가 일곱 요자나였다. 아난다여, 수도 꾸사와띠는 번성하고 풍요로웠으며, 사람이 많고 북적였고 먹을 것이 넉넉했다.”

puratthimena ca pacchimena ca dvādasayojanāni āyāmena; uttarena ca dakkhiṇena ca sattayojanāni vitthārena. Kusāvatī, ānanda, rājadhānī iddhā ceva ahos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manussā ca subhikkhā c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꾸사와띠의 크기와 생활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십니다. 동서의 길이와 남북의 너비를 나누어 말하고, 번성과 풍요, 많은 인구와 북적이는 거리, 넉넉한 먹을거리를 차례로 꼽습니다. 요자나는 당시 거리를 재던 단위입니다. 지금 아난다가 작고 외진 도시라고 부른 곳에 이처럼 큰 수도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장소라도 어느 때의 모습을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어 스승은 신들의 수도에 견주어 이 옛 도시의 풍요를 한 번 더 설명하십니다.

묵상

지금은 작아 보이는 장소에 큰 도시의 역사가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내가 잘 안다고 여겼던 동네에서 뜻밖의 옛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그 뒤 그곳의 모습이 다르게 보인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아난다여, 신들의 수도 알라까만다가 번성하고 풍요로우며 주민이 많고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로 가득하며 먹을 것이 넉넉한 것처럼, 아난다여, 수도 꾸사와띠도 번성하고 풍요로웠으며, 사람이 많고 북적였고 먹을 것이 넉넉했다.”

Seyyathāpi, ānanda, devānaṁ āḷakamandā nāma rājadhānī iddhā ceva hot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yakkhā ca subhikkhā ca; evameva kho, ānanda, kusāvatī rājadhānī iddhā ceva ahosi phītā ca bahujanā ca ākiṇṇamanussā ca subhikkhā c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꾸사와띠의 풍요를 신들의 수도 알라까만다에 견주는 대목입니다. 두 도시를 설명하는 문장의 틀이 같고 번성함과 풍요, 많은 주민과 붐비는 모습, 넉넉한 먹을거리가 나란히 놓입니다. 신들의 도시에는 약카라고 부르는 신령들이 가득하고 꾸사와띠에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한쪽의 존재를 다른 쪽의 사람과 같은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서도 두 도시의 풍요를 비교할 수 있게 합니다. 앞에서는 거리와 크기로 보이던 옛 수도가 여기서는 듣는 이가 떠올릴 수 있는 신들의 도시를 통해 더 생생해집니다.

묵상

좋은 장소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다른 곳과 비교해 본 적이 있나요? 그 비교에서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달랐나요? 내가 그곳에서 느낀 모습을 상대가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었던 말은 어떤 것이었나요?

“아난다여, 수도 꾸사와띠에는 밤낮으로 열 가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코끼리 소리, 말 소리, 수레 소리, 북 소리, 흙으로 만든 북 소리, 줄을 튕기는 악기 소리, 노랫소리, 소라고둥 소리, 징 소리, 손에 들고 치는 종 소리, 그리고 열째로 ‘식사해라, 마셔라, 먹어라’ 하는 소리였다.”

Kusāvatī, ānanda, rājadhānī dasahi saddehi avivittā ahosi divā ceva rattiñca, seyyathidaṁ— hatthisaddena assasaddena rathasaddena bherisaddena mudiṅgasaddena vīṇāsaddena gītasaddena saṅkhasaddena sammasaddena pāṇitāḷasaddena ‘asnātha pivatha khādathā’ti dasamena sadden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에서는 도시의 크기와 풍요를 묘사했고 여기서는 밤낮으로 들리는 소리를 전합니다. 동물과 수레, 음악과 먹고 마시라는 외침이 한 도시의 생활을 그려 냅니다. 다만 전해 오는 이 원문은 열 가지라고 하면서도 소리를 하나씩 세어 보면 모두 열한 가지가 나오고, 마지막 외침을 열째라고 부릅니다. 북이나 줄을 튕기는 악기, 소라고둥처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냈습니다. 먹고 마시라는 외침이 마지막에 놓이면서 앞서 말한 넉넉한 먹을거리와도 이어집니다.

묵상

밤낮으로 끊이지 않던 열 가지 소리 중 마지막은 ‘식사하라, 마셔라, 먹어라’는 외침이에요. 내가 사는 곳에서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그 소리가 사라진다면 어떤 빈자리가 느껴질까요?

“아난다여, 가서 꾸시나라에 들어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알려라.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깨달음에 이른 이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입니다. 와셋타들이여, 어서 오십시오. 와셋타들이여, 어서 오십시오. 뒤에 우리 마을 땅에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우리는 마지막 때에 그분을 뵐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여라.”

Gaccha tvaṁ, ānanda, kusināraṁ pavisitv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ārocehi: ‘ajja kho, vāseṭṭhā, rattiyā pacchime yām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Abhikkamatha, vāseṭṭhā, abhikkamatha, vāseṭṭhā.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amhākañca no gāmakkhett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ahosi, na mayaṁ labhimhā pacchime kāle tathāgataṁ dassanā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꾸시나라의 옛 이야기를 마치고 아난다에게 말라족을 찾아가라고 하십니다. 전할 내용은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다는 소식과 서둘러 오라는 말입니다. 와셋타는 여기서 말라족 사람들을 부르는 씨족 이름입니다. 같은 부름을 세 번 쓰고 어서 오라는 말도 두 번 되풀이합니다. 자기 마을 안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마지막에 뵙지 못했다며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알려 주는 것입니다. 남은 만남을 준비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스승은 마지막 밤에도 사람들이 뒤에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알리라고 해요. 나는 소중한 사람에게 지금 꼭 전하고 싶은 소식이나 인사가 있나요? 늦기 전에 만나지 못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그때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답한 뒤 옷을 갖추어 입고 밥그릇과 겉옷을 들었다. 그리고 동료 한 명과 함께 꾸시나라로 들어갔다.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ṭissutv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attadutiyo kusināraṁ pāvi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알겠다고 답한 뒤 마을로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옷을 갖추어 입고 밥그릇과 겉옷을 챙기며 동료 한 명과 함께 갑니다. 스승이 전하라고 하신 소식이 실제 사람들에게 닿기 시작하는 전환입니다. 마지막 밤의 무거운 소식 앞에서도 먼저 해야 하는 구체적인 일이 있습니다. 이 짧은 이동 뒤에는 말라족이 모여 있는 회관이 나오고, 아난다는 그 자리에서 스승이 일러 주신 말을 전합니다.

묵상

아난다는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하고 바로 옷과 그릇을 챙겨요. 무거운 소식을 전해야 할 때 나는 어떻게 준비하는 편인가요? 말을 고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34 말라족의 마지막 인사 6구절

스승이 곧 떠나신다는 소식을 들은 말라족과 가족들이 숲으로 옵니다. 아난다는 가족마다 함께 예를 올리게 하여 밤의 첫 시간대에 인사를 마치게 합니다.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어떤 일로 회관에 모여 있었다. 아난다 수행자는 꾸시나라 말라족의 회관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알렸다. “와셋타들이여,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깨달음에 이른 이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입니다. 와셋타들이여, 어서 오십시오. 와셋타들이여, 어서 오십시오.”

Tena kho pana samayena kosinārakā mallā sandhāgāre sannipatitā honti kenacideva karaṇīyena.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sandhāgār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ārocesi: “ajja kho, vāseṭṭhā, rattiyā pacchime yām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Abhikkamatha, vāseṭṭhā, abhikkamatha, vāseṭṭh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말라족은 어떤 일로 회관에 모여 있고 아난다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무슨 일로 모였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아난다가 전하는 소식에는 오늘 밤 마지막 무렵이라는 때가 분명히 들어 있습니다. 와셋타들이여 하고 세 번 부르며 어서 오라는 말도 두 번 되풀이하여 스승이 일러 주신 대로 전합니다. 모인 이들에게 함께 알리는 장면입니다. 이어 마지막으로 뵙지 못했다며 뒤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붙습니다.

묵상

하던 일 가운데 다른 소중한 일이 생겨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한 적이 있나요? 그때 가장 먼저 알려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시간과 장소를 분명히 말해 주는 일이 상대의 움직임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뒤에 ‘우리 마을 땅에서 깨달음에 이른 이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우리는 마지막 때에 그분을 뵐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amhākañca no gāmakkhette tathāgatassa parinibbānaṁ ahosi, na mayaṁ labhimhā pacchime kāle tathāgataṁ dassanāy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서둘러 오라는 말에 이어 마지막으로 뵙지 못했다며 뒤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고 전합니다. 자기 마을 땅에서 스승이 세상을 떠나시는데도 마지막 만남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상황을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후회이며, 지금 찾아오라는 앞의 말과 이어집니다. 스승이 전하라고 하신 내용이 아난다의 말로 사람들에게 닿습니다. 뒤에서는 이 소식을 들은 말라족과 가족들이 깊이 슬퍼합니다. 소식은 죽음의 때를 알리는 동시에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모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묵상

뒤에 ‘뵙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눈에 띄어요. 내가 지금 미루고 있어서 훗날 아쉬울 수 있는 만남이 있을까요? 후회를 미리 덜어 주는 말은 어떤 방식으로 전해질 때 사람에게 힘이 될까요?

아난다 수행자의 이 말을 듣고 말라족과 그 아들들, 며느리들, 아내들은 슬퍼하고 마음이 무거워져 마음의 괴로움에 사로잡혔다. 어떤 이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고, 팔을 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져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질 것이다.”

Idamāyasmato ānandassa vacanaṁ sutvā mallā ca mallaputtā ca mallasuṇisā ca mallapajāpatiyo ca aghāvino dummanā cetodukkhasamappitā appekacce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ṁ sugato parinibbāyissati,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dhāy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의 말을 들은 말라족과 가족들의 슬픔을 전합니다.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아내들까지 따로 언급하여 소식이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슬픈 마음과 몸짓이 함께 나오지만 이런 몸짓을 보이는 이들은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반응했다고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 번 되풀이되는 너무 빨리라는 말은 스승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앞서 신들의 슬픔을 전할 때도 나온 말입니다. 이들은 이어 스승이 계신 숲으로 가서 마지막 만남을 갖게 됩니다.

묵상

어떤 이들은 머리를 풀고 팔을 들며 쓰러져 뒹굴었어요. 큰 슬픔이 왔을 때 내 몸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그 반응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면 그에게 무엇을 바랐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슬퍼하고 마음이 무거워져 마음의 괴로움에 사로잡힌 말라족과 그 아들들, 며느리들, 아내들은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족의 살라 숲으로, 아난다 수행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아난다 수행자는 생각했다. ‘내가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한 사람씩 스승께 예를 올리게 하면, 말라족이 아직 스승께 모두 예를 올리지 못했는데 밤이 밝을 것이다.’

Atha kho mallā ca mallaputtā ca mallasuṇisā ca mallapajāpatiyo ca aghāvino dummanā cetodukkhasamappitā yena upavattanaṁ mallānaṁ sālavanaṁ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ṁsu. Atha kho āyasmato ānandassa etadahosi: “sace kho ahaṁ kosinārake malle ekamekaṁ bhagavantaṁ vandāpessāmi, avandito bhagavā kosinārakehi mallehi bhavissati, athāyaṁ ratti vibhāyiss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슬퍼하는 말라족과 가족들이 스승이 계신 살라 숲으로 옵니다. 아난다는 그 많은 사람이 한 사람씩 예를 올리게 하면 다 마치기 전에 밤이 밝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만나려는 사람은 많고 남은 시간은 짧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아난다는 방문하는 사람들을 돌보던 경험을 마지막 만남에서도 이어 갑니다. 다음에는 가족별로 묶어 스승께 소개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소식을 전해 모이게 한 뒤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하는 흐름입니다.

묵상

아난다는 한 사람씩 인사하게 하면 밤이 밝을 때까지 다 마치지 못하리라고 헤아려요. 내가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챙겨야 했던 때가 있나요? 그때 방식을 바꿔 본 적이 있다면 무엇이 그렇게 하도록 이끌었을까요?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가족마다 따로 세워 스승께 예를 올리게 해야겠다. “스승이시여, 아무개 말라족 사람이 아들과 아내, 따르는 사람들과 신하들을 데리고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립니다.”라고 말씀드려야겠다.’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가족마다 따로 세워 스승께 예를 올리게 했다. “스승이시여, 아무개 말라족 사람이 아들과 아내, 따르는 사람들과 신하들을 데리고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립니다.”

Yannūnāhaṁ kosinārake malle kulaparivattaso kulaparivattaso ṭhapetvā bhagavantaṁ vandāpeyyaṁ: ‘itthannāmo, bhante, mallo saputto sabhariyo sapariso sāmacc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Atha kho āyasmā ānando kosinārake malle kulaparivattaso kulaparivattaso ṭhapetvā bhagavantaṁ vandāpesi: “itthannāmo, bhante, mallo saputto sabhariyo sapariso sāmacc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사람들이 한 명씩 예를 올리는 대신 가족마다 함께 예를 올리도록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난다가 각 가족을 대신해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아들, 아내, 따르는 사람들과 신하들까지 함께 왔다고 스승께 말씀드립니다. 본문은 이 방법을 먼저 생각으로 제시한 뒤 그대로 실행하는 모습을 다시 전합니다. 따라서 소개하는 말도 두 번 나옵니다. 마지막 밤에 모인 많은 사람이 남은 시간 안에 인사를 드릴 수 있게 하려는 생각이 실제 만남의 순서를 바꿉니다.

묵상

한 사람씩 할 일을 함께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누구를 함께 묶고 어떤 순서로 진행했나요? 시간을 줄이면서도 각 사람이 빠지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살펴야 했는지 기억나는 장면이 있나요?

이런 방법으로 아난다 수행자는 밤의 첫 시간대 안에 꾸시나라의 말라족이 스승께 예를 올리게 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etena upāyena paṭhameneva yāmena kosinārake malle bhagavantaṁ vandāpe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가족마다 함께 예를 올리게 한 방법의 결과를 전하는 짧은 문장입니다. 한 사람씩 하면 밤이 밝을 때까지 끝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일이 밤의 첫 시간대 안에 이루어집니다. 본문은 아난다가 쓴 방법과 그 결과를 직접 연결합니다. 여기서 첫 시간대는 밤을 나누어 헤아린 구간 가운데 처음을 가리킵니다. 정확한 현대 시각을 정해 말한 것은 아닙니다. 말라족의 마지막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같은 밤에 찾아온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사람은 물어보고 싶은 의문을 품고 온 수밧다입니다.

묵상

많은 사람의 인사가 첫 시간대 안에 끝났다는 짧은 기록이 눈에 들어와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마지막 인사를 위해 방법을 찾아 준 경험이 있나요? 반대로 그런 도움을 받아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35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 21구절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마지막 밤에 스승을 만나 여덟 갈래의 길에 관한 가르침을 듣습니다. 정식 수행자가 된 뒤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때 꾸시나라에는 여러 곳을 떠돌며 수행하는 이(빠립바자까) 수밧다가 살고 있었다.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이런 말을 들었다.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고따마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생각했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인 스승들과 스승의 스승들, 그 떠돌이 수행자들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깨달음에 이른 이들, 곧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은 아주 드물게 세상에 나타난다.”라고 했다.’

Tena kho pana samayena subhaddo nāma paribbājako kusinārāyaṁ paṭivasati. Assosi kho subhaddo paribbājako: “ajja kir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ī”ti. Atha kho subhaddassa paribbājakassa etadahosi: “sutaṁ kho pana metaṁ paribbājakānaṁ vuḍḍhānaṁ mahallakānaṁ ācariyapācariyānaṁ bhāsamānānaṁ: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지막 밤에 찾아오는 수밧다를 소개합니다. 그는 꾸시나라에 살던 떠돌이 수행자이며 고따마 수행자가 오늘 밤에 세상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 소식은 오래된 스승들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전히 깨달은 이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아주 드물다는 말입니다. 수밧다에게는 풀고 싶은 의문이 있고, 고따마 수행자가 그것을 풀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해 들은 가르침과 오늘의 소식이 만남을 찾아 나서는 배경이 됩니다.

묵상

오래전에 들은 말이 새로운 소식과 만나 또렷이 떠오른 적이 있나요? 누구에게서 어떤 상황에 들은 말이었나요? 그때는 지나쳤던 말이 나중에 다르게 느껴졌다면, 내 상황에서 무엇이 달라져 있었을까요?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고따마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내게 이러한 의문이 생겼다. 나는 고따마 수행자를 이렇게 믿는다. “고따마 수행자는 내가 이 의문을 풀 수 있도록 가르침을 알려 줄 수 있다.”라고.’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Atthi ca me ayaṁ kaṅkhādhammo uppanno, evaṁ pasanno ahaṁ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ṁ desetuṁ, yathāhaṁ imaṁ kaṅkhādhammaṁ pajaheyy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는 마지막 밤의 소식과 자신의 의문을 함께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물음이 있지만 고따마 수행자가 가르침으로 그것을 풀어 줄 수 있다는 믿음도 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가려는 흐름입니다. 수밧다는 뒤에 스승을 만나서 그 의문을 직접 묻게 됩니다. 생각 속에서 세운 만남의 이유를 수밧다는 곧 아난다에게도 같은 말로 설명합니다.

묵상

수밧다는 의심이 생겼고, 그것을 풀어 줄 사람이 있다고 믿었어요. 지금 내 안에 답을 듣고 싶은 의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물음을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꺼내 보고 싶은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족의 살라 숲으로, 아난다 수행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아난다여, 저는 나이가 많고 경험 많은, 스승이자 스승의 스승인 떠돌이 수행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들, 곧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은 아주 드물게 세상에 나타난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고따마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yena upavattanaṁ mallānaṁ sālavanaṁ, yenāyasmā ānand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sutaṁ metaṁ, bho ānanda, paribbājakānaṁ vuḍḍhānaṁ mahallakānaṁ ācariyapācariyānaṁ bhāsamānānaṁ: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는 스승이 계신 숲으로 가서 먼저 아난다를 만납니다. 앞서 혼자 떠올렸던 말을 이번에는 아난다에게 직접 전합니다. 나이 많은 스승들에게 들은 말과 오늘 밤에 스승이 세상을 떠난다는 소식을 나란히 설명하는 순서도 같습니다. 왜 지금 만나려 하는지를 밝힌 뒤 뒤이어 자신의 의문과 믿음을 말하게 됩니다. 숲에 도착했다고 곧바로 스승과 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문을 돕던 아난다에게 먼저 청을 꺼내는 장면이 이어지며, 이 사이에서 스승의 피로와 수밧다의 질문이 함께 고려됩니다.

묵상

수밧다는 부탁하기 전에 자신이 들은 말과 왜 지금 찾아왔는지를 먼저 전했어요. 어려운 부탁을 할 때 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 편인가요? 이유를 먼저 밝히면 상대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꼈나요?

“내게 이러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고따마 수행자를 이렇게 믿습니다. ‘고따마 수행자는 내가 이 의문을 풀 수 있도록 가르침을 알려 줄 수 있다.’ 존경하는 아난다여, 부디 고따마 수행자를 뵙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수행자는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에게 말했다. “그만하십시오, 벗 수밧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스승께서는 지치셨습니다.”

Atthi ca me ayaṁ kaṅkhādhammo uppanno— evaṁ pasanno ahaṁ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ṁ desetuṁ, yathāhaṁ imaṁ kaṅkhādhammaṁ pajaheyyan’ti. Sādhāhaṁ, bho ānanda, labheyyaṁ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ā”ti. Evaṁ vutte, āyasmā ānando subhaddaṁ paribbājakaṁ etadavoca: “alaṁ, āvuso subhadda, mā tathāgataṁ viheṭhesi, kilanto bhag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는 의문이 있고 고따마 수행자가 그것을 풀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며 뵙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아난다는 스승이 지치셨다는 이유를 들어 만류합니다. 한 사람은 질문할 기회를 구하고 다른 사람은 지친 스승을 생각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스승을 만나는 일이 가능한지를 두고 말이 오갑니다. 같은 청과 거절이 뒤에서 다시 반복되고, 마침내 스승이 직접 듣고 만남을 허락하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아난다는 스승이 지쳤다는 이유로, 수밧다는 마지막 기회라는 이유로 말했어요. 두 이유가 부딪힐 때 나라면 어떻게 살폈을 것 같나요? 누군가를 지키려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절실한 청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있나요?

두 번째로도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 세 번째로도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아난다여, 저는 나이가 많은 어른들인 스승들과 스승의 스승들, 그 떠돌이 수행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들(따타가따), 곧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이들은 아주 드물게 세상에 나타난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오늘 밤 마지막 무렵에 고따마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Dutiyampi kho subhaddo paribbājako …pe… tatiyampi kho subhaddo paribbājako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sutaṁ metaṁ, bho ānanda, paribbājakānaṁ vuḍḍhānaṁ mahallakānaṁ ācariyapācariyānaṁ bhāsamānānaṁ: ‘kadāci karahaci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ti. Ajjeva rattiyā pacchime yāme samaṇassa gotamassa parinibbānaṁ bhaviss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는 한 번 거절당한 뒤에도 다시 청합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되는 부분은 줄이고, 세 번째로 하는 말만 다시 적습니다. 앞서 들려주었던 오래된 스승들의 말과 오늘 밤의 소식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의문을 풀고 싶다는 다음 말까지 같은 청의 흐름입니다. 반복을 통해 부탁이 한 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밧다가 말을 바꾸어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장면은 아닙니다. 뒤에서도 아난다는 스승이 지치셨다는 같은 이유로 답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스승이 나서십니다.

묵상

수밧다는 거절을 두 번 받고도 같은 이유를 다시 말했어요. 나는 거절당한 부탁을 다시 꺼낼 때 말을 바꾸는 편인가요, 그대로 전하는 편인가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 일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내게 이러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고따마 수행자를 이렇게 믿습니다. ‘고따마 수행자는 내가 이 의문을 풀 수 있도록 가르침을 알려 줄 수 있다.’ 존경하는 아난다여, 부디 고따마 수행자를 뵙게 해 주십시오.” 세 번째로도 아난다 수행자는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에게 말했다. “그만하십시오, 벗 수밧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스승께서는 지치셨습니다.”

Atthi ca me ayaṁ kaṅkhādhammo uppanno— evaṁ pasanno ahaṁ samaṇe gotame, ‘pahoti me samaṇo gotamo tathā dhammaṁ desetuṁ, yathāhaṁ imaṁ kaṅkhādhammaṁ pajaheyyan’ti. Sādhāhaṁ, bho ānanda, labheyyaṁ samaṇaṁ gotamaṁ dassanāyā”ti. Tatiyampi kho āyasmā ānando subhaddaṁ paribbājakaṁ etadavoca: “alaṁ, āvuso subhadda, mā tathāgataṁ viheṭhesi, kilanto bhaga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번째 청에서도 수밧다는 자신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뵙고 싶다는 부탁을 전합니다. 아난다 역시 스승이 지치셨다는 이유를 그대로 말합니다. 각자 앞에서 했던 자신의 말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만남을 원하는 이유와 만류하는 이유가 모두 바뀌지 않습니다. 이 대목만으로 수밧다가 결국 돌아갔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스승이 이 대화를 듣고 직접 만남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묵상

누군가의 부탁을 여러 번 듣고도 같은 이유로 답한 적이 있나요? 내 이유를 지키면서 상대의 사정을 더 들을 여지는 있었나요? 그 상황에서 당사자의 뜻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었다면 무엇을 묻고 싶었을까요?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와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가 나누는 이 대화를 들으셨다.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만하여라, 아난다여. 수밧다를 막지 마라. 아난다여, 수밧다가 깨달음에 이른 이를 뵙게 하여라. 수밧다가 내게 무엇을 묻든 모두 알고자 해서 물을 것이다. 괴롭히려는 마음으로 묻지 않을 것이다.”

Assosi kho bhagavā āyasmato ānandassa subhaddena paribbājakena saddhiṁ imaṁ kathāsallāpaṁ.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alaṁ, ānanda, mā subhaddaṁ vāresi, labhataṁ, ānanda, subhaddo tathāgataṁ dassanāya. Yaṁ kiñci maṁ subhaddo pucchissati, sabbaṁ taṁ aññāpekkhova pucchissati, no vihesāpekkh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아난다에게 수밧다를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 번의 거절 뒤에 스승 자신의 뜻이 분명해지는 장면입니다. 스승은 질문의 내용이 무엇이든 수밧다가 알고자 묻는 것이며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질문이 오래 걸리는지보다 어떤 뜻으로 묻는지가 여기서 만남을 허락하는 이유로 나옵니다. 지친 상황에서도 이 질문을 받겠다는 말씀 뒤에는 수밧다가 답을 곧 이해할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묵상

스승은 수밧다의 질문이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어서 나온다고 보았어요. 누군가의 질문이 불편하게 들렸을 때 그 밑에 있는 마음을 살펴본 적이 있나요? 그렇게 보면 대답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또 내가 그의 물음에 답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가 곧 이해할 것이다.”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에게 말했다. “가십시오, 벗 수밧다여. 스승께서 그대에게 기회를 내어 주십니다.”

Yañcassāhaṁ puṭṭho byākarissāmi, taṁ khippameva ājānissatī”ti. Atha kho āyasmā ānando subhaddaṁ paribbājakaṁ etadavoca: “gacchāvuso subhadda, karoti te bhagavā okās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수밧다가 알고자 묻는다는 설명에 이어 자신의 답을 곧 이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질문하려는 뜻과 답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 함께 제시됩니다. 아난다는 그 말을 받아 수밧다에게 가라고 합니다. 앞에서는 지친 스승을 괴롭히지 말라며 막았지만 이제는 스승이 기회를 내어 주신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아난다는 스승의 뜻을 듣고 방문을 돕는 쪽으로 행동을 바꿉니다. 이 짧은 전언을 지나 수밧다는 스승 앞에서 직접 물음을 꺼내게 됩니다.

묵상

스승이 ‘곧 이해할 것이다’라고 한 말에는 묻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가 나를 곧 이해할 것이라 믿어 주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 믿음은 그다음 말을 하는 데 어떤 힘이 되었을까요?

그러자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스승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스승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정다운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스승께 말했다. “존경하는 고따마시여, 공동체와 무리를 거느리고 그 무리의 스승이며, 널리 알려져 명성이 높고, 가르침의 한 갈래를 세워 많은 사람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사마나)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입니다.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라, 빠꾸다 깟짜야나, 산짜야 벨랏타뿟따, 니간타 나따뿟따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주장대로 직접 알았습니까? 모두 알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일부는 알고 일부는 알지 못했습니까?”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tā saddhiṁ sammodi, sammodanīyaṁ kathaṁ sāraṇīyaṁ vītisāretvā ekamantaṁ nisīdi. Ekamantaṁ nisinno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ntaṁ etadavoca: “yeme, bho gotama, samaṇabrāhmaṇā saṅghino gaṇino gaṇācariyā ñātā yasassino titthakarā sādhusammatā bahujanassa, seyyathidaṁ—pūraṇo kassapo, makkhali gosālo, ajito kesakambalo, pakudho kaccāyano, sañcayo belaṭṭhaputto, nigaṇṭho nāṭaputto,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iṁsu, sabbeva na abbhaññiṁsu, udāhu ekacce abbhaññiṁsu, ekacce na abbhaññiṁs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는 인사와 정다운 말을 나눈 뒤 한쪽에 앉아 질문합니다. 그가 꼽은 여섯 사람은 무리를 거느리고 가르치는 이들이며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묻는 것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대로 직접 알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모두 알았는지, 모두 알지 못했는지, 일부만 알았는지 세 경우를 나눕니다. 누가 알았는지를 가리고 싶어 하는 질문에 대해 스승은 다음에서 그 물음을 잠시 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누구의 이름을 믿을 것인가보다 어떤 길을 닦는가에 관한 가르침으로 대화를 옮기십니다.

묵상

수밧다는 이름난 스승 여섯 명을 나열하며 누가 정말 알았는지를 물었어요.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말을 할 때 나는 누구의 말을 믿을지 어떻게 가려 왔나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은 내 판단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그만하여라, 수밧다여. ‘그들 모두가 자기 주장대로 직접 알았는가, 모두 알지 못했는가, 아니면 일부는 알고 일부는 알지 못했는가’ 하는 물음은 그대로 두어라. 수밧다여, 내가 그대에게 가르침을 알려 주겠다. 잘 듣고 마음을 기울여라. 내가 말하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스승께 답했다.

“Alaṁ, subhadda, tiṭṭhatetaṁ: ‘sabbete sakāya paṭiññāya abbhaññiṁsu, sabbeva na abbhaññiṁsu, udāhu ekacce abbhaññiṁsu, ekacce na abbhaññiṁsū’ti. Dhammaṁ te, subhadda, desessāmi; taṁ suṇāhi sādhukaṁ manasikarohi, bhāsissāmī”ti. “Evaṁ, bhante”ti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paccasso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수밧다가 말한 세 경우를 그대로 되짚으신 뒤 그 물음은 두라고 하십니다. 이어 자신이 가르침을 전하겠다며 잘 듣고 마음을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다른 여섯 사람 가운데 누가 알았는지 판단을 내리지는 않으십니다. 질문에 붙어 있던 사람들의 이름에서 실제로 알아야 할 길로 주의를 돌리는 흐름입니다. 수밧다는 알겠다고 답하며 대화를 이어 갑니다. 다음에는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이 있는 가르침과 없는 가르침을 구별하여 수행의 결실에 관해 설명하십니다.

묵상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묻다가 무엇을 실제로 살펴야 하는지로 질문이 바뀐 적이 있나요? 그때 새로 보이기 시작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내 물음에서도 사람의 이름과 함께 확인해 보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밧다여,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이 없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서는 첫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없다. 둘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없다. 셋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없다. 넷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없다.”

Bhagavā etadavoca: “Yasmiṁ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na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n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na upalabbh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가 이름난 스승들이 정말 알았는지를 묻자, 스승은 여덟 갈래의 길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답하십니다. 길이 없는 곳에서는 네 단계의 수행자를 찾을 수 없다고 하나씩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수행자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선 이, 한 번만 돌아오는 이, 돌아오지 않는 이,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라는 네 단계를 가리킵니다. 어느 이름을 내세우는가보다 실제로 어떤 길을 닦는가로 질문을 옮기는 대목입니다.

묵상

어떤 가르침이 옳은지 가릴 때 말솜씨나 이름보다 그 안의 실천을 본다는 기준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사람이나 모임을 판단할 때 나는 주로 무엇을 보게 되는지, 잠시 돌아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수밧다여,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이 있는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서는 첫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있다. 둘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있다. 셋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있다. 넷째 단계의 수행자도 찾을 수 있다.”

Yasmiñca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alabbhati, samaṇopi tattha upalabbhati, du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tatiy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catutthopi tattha samaṇo upalabbha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에서는 여덟 갈래의 길이 없을 때를 말했고 이번에는 있을 때를 말합니다. 여기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은 그 길을 닦아 이루는 결실이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스승은 이 원칙을 먼저 밝힌 뒤 자신이 가르친 길에도 적용하십니다. 그 뒤에는 실제 수행자들이 바르게 살아간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묵상

어떤 일을 배울 때 결과보다 그것에 이르는 방법을 먼저 살펴본 적이 있나요? 그 방법이 실제로 마련되어 있는지 어떻게 확인했나요? 내가 지금 배우는 일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과정은 무엇인가요?

“수밧다여, 이 가르침과 생활 규칙에는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이 있다. 수밧다여, 바로 여기에 첫째 단계의 수행자가 있고, 여기에 둘째 단계의 수행자가 있고, 여기에 셋째 단계의 수행자가 있고, 여기에 넷째 단계의 수행자가 있다. 다른 가르침에는 이런 수행자들이 없다. 수밧다여, 이 수행자들이 바르게 살아간다면 세상에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Imasmiṁ kho, subhadda, dhammavinaye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upalabbhati, idheva, subhadda, samaṇo, idha dutiyo samaṇo, idha tatiyo samaṇo, idha catuttho samaṇo,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i. 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ṁ,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앞에서 밝힌 기준을 자신의 가르침에 적용하십니다. 여덟 갈래의 길이 여기에 있으므로 네 단계의 수행자도 여기에 있다고 하십니다. 다른 가르침에는 이런 수행자가 없다고도 말씀하십니다. 뒤에서는 수행자들이 바르게 살아간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십니다. 이름이나 소속이 전해지는 것만으로 결실이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길이 전해지는 일과 사람들이 그 길을 실제로 살아가는 일이 함께 놓입니다. 그래서 앞의 선언은 뒤에 붙는 실천 조건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묵상

좋은 방법을 알고도 실제로 이어 가기 어려웠던 일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도움이 되었고 무엇이 걸림돌이었나요? 말로 전해 받은 가르침이 생활의 한 행동으로 이어졌던 작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수밧다여, 나는 스물아홉 살에 무엇이 좋은지 찾으려고 집을 떠났다. 수밧다여, 내가 집을 떠난 지 쉰 해가 넘었다. 바른 이치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가는 수행자는 이 밖에는 없다. 둘째 단계의 수행자도 없다. 셋째 단계의 수행자도 없다.”

Ekūnatiṁso vayasā subhadda, Yaṁ pabbajiṁ kiṅkusalānuesī; Vassāni paññāsa samādhikāni, Yato ahaṁ pabbajito subhadda; Ñāyassa dhammassa padesavattī, Ito bahiddhā samaṇopi natthi. Dutiyopi samaṇo natthi. Tatiyopi samaṇo natth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자신이 스물아홉 살에 무엇이 좋은지 찾으려고 집을 떠났으며 그 뒤 쉰 해가 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남들이 알았는지를 묻던 대화에 자신의 오랜 탐구가 놓입니다. 이어 바른 이치의 가르침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행자를 말하며, 이 밖에는 그런 수행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가르침 안에서 살아간다는 말은 가르침의 영역 안에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앞의 여덟 갈래 길에 관한 설명과 이어지며, 넷째 단계에 관한 말은 뒤에서 계속됩니다.

묵상

오래 한 가지를 탐구한 사람이 그 시작을 들려줄 때 무엇이 궁금해지나요? 처음 품었던 질문과 지금의 생각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듣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내게도 시간이 지나며 모양이 달라진 질문이 있나요?

“넷째 단계의 수행자도 없다. 다른 가르침에는 이런 수행자들이 없다. 수밧다여, 이 수행자들이 바르게 살아간다면 세상에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스승께 말했다. “훌륭합니다, 스승이시여. 훌륭합니다, 스승이시여.”

Catutthopi samaṇo natthi. Suññā parappavādā samaṇebhi aññehi. Ime ca, subhadda, bhikkhū sammā vihareyyuṁ, asuñño loko arahantehi assā”ti. Evaṁ vutte,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ntaṁ etadavoca: “abhikkantaṁ, bhante, abhikkantaṁ, bhante.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넷째 단계까지 언급하며 앞의 설명을 마무리합니다. 다른 가르침에는 이런 수행자가 없다는 말 뒤에 수행자들이 바르게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들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조건이 다시 나옵니다. 사람의 이름을 가리는 질문에 대해 스승이 제시한 답은 실제로 닦는 길과 그 결실이었습니다. 수밧다는 훌륭하다는 말을 두 번 하며 응답합니다. 이 짧은 감탄 뒤에는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비유가 이어집니다. 답을 들은 일이 수밧다의 다음 선택으로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묵상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생각이 또렷해졌던 적이 있나요? 그때 가장 먼저 어떤 말이 나왔나요? 설명의 어느 부분이 도움이 되었는지 상대에게 전해 본 적이 있다면, 그 대화는 어떻게 이어졌나요?

“스승이시여,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듯, ‘눈 있는 이들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며 어둠 속에 기름등불을 들듯, 스승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가르침을 밝혀 주셨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스승 곁에서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삶(빱밧자)에 들게 해 주십시오.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지는 허락(우빠삼빠다)을 얻게 해 주십시오.”

Seyyathāpi, bhante,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agavatā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ṁ, bhante, bhagavant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Labheyyāhaṁ, bhante,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labheyyaṁ upasampad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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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밧다는 스승의 설명을 듣고 네 가지 비유로 감탄을 이어 갑니다.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리고, 어둠 속에서 기름등불을 드는 모습입니다. 마지막 비유에는 눈 있는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이 붙습니다. 이어 스승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하겠다고 말하며,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삶과 정식 수행자가 되는 허락을 각각 청합니다. 설명을 들은 감탄에 이어, 이제 자신의 삶을 그 길에 두려는 청이 나옵니다.

묵상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 주는 일과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 주는 일 가운데 어떤 모습이 더 가깝게 느껴지나요? 설명을 듣고 다음 한 걸음이 보였던 적이 있나요? 그때 내게 필요했던 도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수밧다여, 전에 다른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이 이 가르침과 생활 규칙 안에서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삶을 바라고 정식 수행자가 되기를 바라면 넉 달 동안 지켜보는 기간을 지낸다. 넉 달이 지난 뒤 수행자들이 흡족해하면 그를 집을 떠난 삶에 들게 하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인다. 다만 나는 이 일에서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Yo kho, subhadda, aññatitthiyapubbo imasmiṁ dhammavinaye ākaṅkhati pabbajjaṁ, ākaṅkhati upasampadaṁ, so cattāro māse parivasati. Catunnaṁ mā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Api ca mettha puggalavemattatā vidit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가 정식 수행자가 되기를 청하자 스승은 전에 다른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이 들어오는 절차를 설명하십니다. 넉 달 동안 지켜보는 기간을 거치며 그 뒤 수행자들이 흡족해하면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받아들이는 절차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안다고 덧붙이십니다. 공통으로 적용하는 기간과 각 사람에 대한 판단이 함께 제시됩니다. 뒤에서 수밧다는 더 긴 기간도 지내겠다고 답하고 스승은 아난다에게 그를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묵상

새 모임이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 알아가는 기간을 가져 본 적이 있나요?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는 몰랐던 무엇이 보였나요? 정해진 기간과 각자의 사정을 함께 살펴야 했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이 기억나나요?

“스승이시여, 전에 다른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이 이 가르침과 생활 규칙 안에서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삶을 바라고 정식 수행자가 되기를 바라며 넉 달 동안 지켜보는 기간을 지내고, 넉 달이 지난 뒤 수행자들이 흡족해하면 그들을 집을 떠난 삶에 들게 하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인다면, 저는 네 해 동안 지켜보는 기간을 지내겠습니다. 네 해가 지난 뒤 수행자들이 흡족해하면 저를 집을 떠난 삶에 들게 하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Sace, bhante, aññatitthiyapubbā imasmiṁ dhammavinaye ākaṅkhantā pabbajjaṁ ākaṅkhantā upasampadaṁ cattāro māse parivasanti, catunnaṁ mā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i upasampādenti bhikkhubhāvāya. Ahaṁ cattāri vassāni parivasissāmi, catunnaṁ vassānaṁ accayena āraddhacittā bhikkhū pabbājentu upasampādentu bhikkhubhāvāy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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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밧다는 스승이 말한 절차를 그대로 되짚습니다. 넉 달을 지내고 수행자들이 흡족해하면 받아들인다는 조건을 말한 뒤 자신은 네 해를 지내겠다고 합니다. 기간을 더 길게 자청하면서도 수행자들이 흡족해해야 한다는 조건을 빼지는 않습니다.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간의 대비로 드러납니다. 그렇다고 더 오래 기다리는 사람이 언제나 더 낫다는 일반 규칙을 제시한 것은 아닙니다. 앞서 스승이 말씀하신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판단은 다음에 수밧다를 받아들이는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기다릴 마음을 굳혔던 적이 있나요? 그때 나에게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기간이었나요, 그 뒤에 할 일이었나요? 지금 돌아보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뜻을 전할 수 있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아난다여, 수밧다를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삶에 들게 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이시여.” 하고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답했다. 그러자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벗 아난다여, 그대들은 좋은 것을 얻었습니다. 벗 아난다여, 그대들은 참으로 좋은 것을 얻었습니다. 여기 스승 앞에서 제자로 받아들이는 의식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떠돌이 수행자 수밧다는 스승 곁에서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삶에 들었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졌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tenahānanda, subhaddaṁ pabbājehī”ti.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bhagavato paccassosi. A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a: “lābhā vo, āvuso ānanda; suladdhaṁ vo, āvuso ānanda, ye ettha satthu sammukhā antevāsikābhisekena abhisittā”ti. Alattha kho subhaddo paribbājako bhagavato santike pabbajjaṁ, alattha upasampad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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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스승은 아난다에게 수밧다를 집을 떠난 수행의 삶에 들게 하라고 하십니다. 넉 달이나 네 해를 기다렸다는 장면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 이어집니다. 수밧다는 아난다를 두 번 부르며 스승 앞에서 제자로 인정받은 이들이 좋은 것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의식으로 인정받았다는 표현은 본래 머리에 물을 붓는 의식의 말을 빌려 제자로 받아들여진 일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실제로 물을 부었다는 장면을 따로 서술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수밧다 자신도 그 삶에 들고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졌다고 전합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직접 배울 수 있었던 기회를 나중에 새롭게 돌아본 적이 있나요? 그때 배운 내용뿐 아니라 어떤 만남의 모습이 기억나나요? 새로 들어온 사람이 그 기회의 가치를 말해 주어 다시 느낀 점이 있나요?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되지 않은 수밧다 수행자는 홀로 떨어져 지내며, 방심하지 않고 힘써 애쓰고 마음을 다했다. 좋은 집안의 아들들이 바로 그것을 위해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바르게 떠나는데, 그는 오래지 않아 그 깨끗한 삶의 더없이 높은 완성을 바로 이 삶에서 스스로 직접 알고 실현하여 이루고 머물렀다.

Acirūpasampanno kho panāyasmā subhaddo eko vūpakaṭṭho appamatto ātāpī pahitatto viharanto nacirasseva—yassatthāya kulaputtā sammadev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nti—tadanuttaraṁ brahmacariyapariyosānaṁ diṭṭheva dhamme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ā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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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밧다가 정식 수행자가 된 뒤의 생활과 결실을 짧게 전합니다. 홀로 떨어져 지냄, 방심하지 않음, 힘써 애씀, 마음을 다함이 먼저 나옵니다. 이어 집을 떠나는 사람들이 목적으로 삼는 깨끗한 삶의 완성을 스스로 직접 알고 이루었다고 합니다. 남이 인정해 주는 말만으로 결실을 설명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알았다는 점을 밝힙니다. 오래지 않았다는 시간은 수밧다의 이야기이며 모든 사람의 수행 기간을 정한 말은 아닙니다. 다음에는 그가 무엇을 알았는지 네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혼자 지내며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다했던 시간이 있나요? 그 시간의 하루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다른 사람이 말해 준 것과 내가 직접 해 보아 알게 된 것 사이에 차이를 느꼈다면 어떤 점이 달랐나요?

그는 ‘태어남은 다했다. 깨끗한 삶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 더는 이러한 존재로 돌아올 일이 없다’고 직접 알았다. 수밧다 수행자는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스승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마지막 제자였다.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abbhaññāsi. Aññataro kho panāyasmā subhaddo arahataṁ ahosi. So bhagavato pacchimo sakkhisāvako ahos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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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밧다가 직접 안 내용을 태어남, 깨끗한 삶, 해야 할 일, 다시 돌아올 존재라는 네 갈래로 전합니다. 여기서 태어남이 다했다는 말은 되풀이되는 태어남이 끝났음을 가리킵니다. 이어 그가 마음을 흐리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가 되었다고 밝히고, 스승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마지막 제자였다고 덧붙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스승과 직접 만난 제자 가운데 마지막임을 가리킵니다.

묵상

이야기에서 한 사람을 마지막 제자라고 부를 때 어떤 여운이 남나요? 짧은 만남이 한 사람의 삶에서 오래 이어진 경우를 떠올릴 수 있나요? 내게도 만남의 길이보다 나눈 말이 더 또렷이 기억나는 순간이 있나요?

36 떠난 뒤의 당부와 마지막 말씀 9구절

스승은 가르침과 생활 규칙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하시고, 남은 의문을 물을 기회를 거듭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방심하지 말고 할 일을 이루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자 스승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너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 가르침의 스승은 떠나셨다. 우리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말이다. 아난다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정해 둔 가르침과 생활 규칙이 내가 세상을 떠난 뒤 너희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지금은 수행자들이 서로 ‘벗’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siyā kho panānanda, tumhākaṁ evamassa: ‘atītasatthukaṁ pāvacanaṁ, natthi no satthā’ti. Na kho panetaṁ, ānanda, evaṁ daṭṭhabbaṁ. Yo vo, ānanda, mayā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accayena satthā. Yathā kho panānanda, etarahi bhikkhū aññamaññaṁ āvusovādena samudācaranti, na kho mamaccayena evaṁ samudācar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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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밧다의 이야기가 끝난 뒤 스승은 아난다에게 남겨질 공동체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떠나면 스승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미 가르치고 정해 둔 가르침과 생활 규칙이 뒤에 스승이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새로 한 사람을 후계 스승으로 지목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어 수행자들이 서로 벗이라고 부르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래 수행한 이와 새로 들어온 수행자가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는 뒤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의지하던 사람이 곁에 없을 때 그에게 배운 말이나 방식이 길잡이가 된 적이 있나요?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이 떠올랐나요? 그대로 따르기 전에 지금의 상황에 어떻게 맞는지 살펴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난다여, 먼저 정식 수행자가 된 이는 나중에 된 이를 이름이나 집안의 이름, 또는 ‘벗’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나중에 정식 수행자가 된 이는 먼저 된 이를 ‘존경하는 수행자님(반떼)’이나 ‘존경하는 분(아야스마)’이라고 불러야 한다. 아난다여, 공동체가 원한다면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작고 사소한 배움의 규칙들을 없애도 좋다. 아난다여, 내가 세상을 떠난 뒤 찬나 수행자에게는 훈계와 가르침을 끊는 벌(브라흐마단다)을 주어야 한다.”

Theratarena, ānanda, bhikkhunā navakataro bhikkhu nāmena vā gottena vā āvusovādena vā samudācaritabbo. Navakatarena bhikkhunā therataro bhikkhu ‘bhante’ti vā ‘āyasmā’ti vā samudācaritabbo. Ākaṅkhamāno, ānanda, saṅgho mamaccayena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atu. Channassa, ānanda, bhikkhuno mamaccayena brahmadaṇḍo dātabbo”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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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앞에서 서로 벗이라고 부르는 방식을 바꾸라고 하신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정식 수행자가 된 이와 나중에 된 이가 서로를 부르는 말을 수행자가 된 차례에 따라 구별합니다. 이어 작은 규칙들은 공동체가 원한다면 없애도 좋다고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찬나에게 내릴 벌을 말씀하십니다. 그 이름은 바로 뒤에서 잘못을 바로잡거나 조언하거나 가르쳐 주는 일을 멈추는 조치로 설명됩니다.

묵상

나이나 경력이 다른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떠올려 본 적 있나요? 내가 자주 쓰는 호칭 하나를 골라 보면 어떤 거리감이나 편안함이 느껴지는지 궁금해요. 그 호칭을 바꿔 본다면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스승이시여, 그 훈계와 가르침을 끊는 벌은 어떤 것입니까?” “아난다여, 찬나 수행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두어라. 수행자들은 그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어서도, 조언해서도, 가르쳐서도 안 된다.”

“Katamo pana, bhante, brahmadaṇḍo”ti? “Channo, ānanda, bhikkhu yaṁ iccheyya, taṁ vadeyya. So bhikkhūhi neva vattabbo, na ovaditabbo, na anusāsitabb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앞서 말씀하신 벌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스승은 찬나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두되 수행자들이 그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조언하거나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세 행동을 각각 하지 말라고 나열하는 답입니다. 첫 번째 말은 잘못을 지적하여 바로잡는다는 뜻이며, 그 뒤 조언과 가르침을 하지 말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왜 이 조치가 필요했는지나 얼마 동안 해야 하는지는 이 대목이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묵상

같은 조언을 여러 번 건네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던 때가 있나요? 그때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알 수 있었나요? 조언을 계속할지 잠시 멈출지 생각할 때 어떤 점을 살펴보았는지 기억나나요?

그러자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혹시 한 수행자에게라도 깨달은 이, 가르침, 수행자 공동체, 길, 실천에 관해 의심이나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 수행자들이여, 물어라. 뒤에 ‘스승께서 우리 앞에 계셨는데도 우리는 스승을 직접 마주하고 여쭙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수행자들은 잠잠히 있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siyā kho pana, bhikkhav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pucchatha, bhikkhave,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sammukhībhūto no satthā ahosi, na mayaṁ sakkhimhā bhagavantaṁ sammukhā paṭipucchitun’”ti. Evaṁ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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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공동체에 관한 당부 뒤에 스승은 남은 의문을 물을 기회를 주십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의심이나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며 다섯 가지를 꼽습니다. 깨달은 이, 가르침, 공동체, 길, 실천입니다. 질문을 받겠다는 말에는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하려는 이유가 붙습니다. 스승을 직접 마주하고 있을 때 묻지 못했다는 후회입니다. 스승은 같은 말씀을 다시 하시고 질문을 전할 다른 방법도 열어 주십니다.

묵상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기회를 지나친 적이 있나요? 그때 망설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같은 상황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로 질문을 시작하고 싶은지, 지금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나요?

두 번째로도 스승은 … 세 번째로도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혹시 한 수행자에게라도 깨달은 이, 가르침, 수행자 공동체(상가), 길, 실천에 관해 의심이나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 수행자들이여, 물어라. 뒤에 ‘스승께서 우리 앞에 계셨는데도 우리는 스승을 직접 마주하고 여쭙지 못했다’고 후회하지 마라.” 세 번째로도 그 수행자들은 잠잠히 있었다.

Dutiyampi kho bhagavā …pe… tatiyampi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siyā kho pana, bhikkhav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pucchatha, bhikkhave, mā pacchā vippaṭisārino ahuvattha: ‘sammukhībhūto no satthā ahosi, na mayaṁ sakkhimhā bhagavantaṁ sammukhā paṭipucchitun’”ti. Tatiyampi kho te bhikkhū tuṇhī ah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한 번 말씀하고 넘어가지 않으시고 같은 질문의 기회를 세 번째까지 주십니다. 두 번째 말씀은 원문의 생략 표시로 줄어 있고 세 번째 말씀은 전체가 나옵니다. 의심이나 망설임의 다섯 대상과 뒤에 후회하지 말라는 당부가 앞과 같습니다. 수행자들이 잠잠히 있다는 결과도 되풀이됩니다. 이런 반복은 같은 문을 다시 열어 두는 방식입니다. 스승은 뒤에서 혹시 자신을 공경하느라 직접 묻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의 가능성을 말씀하십니다.

묵상

같은 질문을 다시 듣고서야 말할 준비가 된 적이 있나요? 처음과 두 번째 사이에 내 마음에서 무엇이 달라졌나요? 누군가에게 다시 물을 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기다릴 수 있는 방식은 어떤 것이었나요?

그러자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혹시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 때문에 묻지 못할 수도 있다. 수행자들이여, 그렇다면 벗에게 자기의 물음을 알려 주어도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수행자들은 잠잠히 있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siyā kho pana, bhikkhave, satthugāravenapi na puccheyyātha. Sahāyakopi, bhikkhave, sahāyakassa ārocetū”ti. Evaṁ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세 번의 권유에도 말이 없자 스승은 다른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자신을 공경하는 마음 때문에 직접 묻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벗에게 물음을 알려 주라는 말씀입니다. 의문이 없다는 것과 의문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구별하여 기회를 여십니다. 공경이 침묵의 실제 이유라고 단정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맞추어 전달 방식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은 이번에도 잠잠히 있고, 이어 아난다가 공동체를 믿는 자신의 마음을 말씀드립니다.

묵상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 질문을 꺼내기 어려웠던 적이 있나요? 편한 벗에게 먼저 말해 본다면 무엇이 달라질 것 같나요? 내 말을 대신 전해 달라고 부탁할 때 꼭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스승께 말했다. “놀랍습니다, 스승이시여. 신기합니다, 스승이시여. 스승이시여, 저는 이 수행자 공동체를 이렇게 믿습니다. ‘한 수행자에게도 깨달은 이, 가르침, 수행자 공동체, 길, 실천에 관한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다’고 말입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ṁ etadavoca: “acchariyaṁ, bhante, abbhutaṁ, bhante, evaṁ pasanno ahaṁ, bhante, imasmiṁ bhikkhusaṅghe, ‘natthi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질문을 기다리는 침묵 뒤에 아난다가 먼저 말씀드립니다. 놀랍고 신기하다고 감탄하며 이 공동체에는 한 사람도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으리라고 믿는다는 말입니다. 의문의 다섯 대상은 스승이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는 아난다가 믿음에 근거하여 말한다는 점을 살펴야 합니다. 뒤에서 스승은 자신에게는 앎이 있다고 구별하시면서 공동체에 의문이 없다는 내용 자체는 확인해 주십니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무엇에 근거해 말하는가를 구별합니다.

묵상

누군가를 믿고 한 말과 직접 확인하고 한 말을 구별해 본 적이 있나요? 두 경우 모두 확신이 있었어도 그 근거는 어떻게 달랐나요? 내 믿음을 말할 때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덧붙일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아난다여, 너는 믿음에서 그렇게 말한다. 아난다여, 깨달음에 이른 이에게는 이 일에 관한 앎이 있다. 이 수행자 공동체에는 한 수행자에게도 깨달은 이, 가르침, 수행자 공동체, 길, 실천에 관한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다. 아난다여, 이 오백 수행자 가운데 가장 뒤처진 수행자도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선 이다. 나쁜 곳에 떨어질 일이 없으며, 그 길이 확실하고 온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Pasādā kho tvaṁ, ānanda, vadesi, ñāṇameva hettha, ānanda, tathāgatassa. Natthi imasmiṁ bhikkhusaṅghe ekabhikkhussāpi kaṅkhā vā vimati vā buddhe vā dhamme vā saṅghe vā magge vā paṭipadāya vā. Imesañhi, ānanda, pañcannaṁ bhikkhusatānaṁ yo pacchimako bhikkhu, so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아난다가 믿음으로 말하는 것과 자신이 알고 말하는 것을 구별하십니다. 이어 이 공동체에는 한 사람도 다섯 대상에 관한 의심이나 망설임이 없다고 확인하십니다. 오백 명 가운데 가장 뒤처진 수행자도 깨달음으로 향하는 흐름에 들어서 있다고 하십니다. 그에게는 나쁜 곳에 떨어질 일이 없고 온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같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모인 이들에게 의문이 없는 까닭을 그들이 닦아 온 길과 연결하시는 대목입니다.

묵상

같은 모임 안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만큼 배우고 익혔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모두 같다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함께 나아가는 방향을 확인하려면 무엇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기억나는 경험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요?

그러자 스승은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 수행자들이여, 이제 너희에게 당부한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방심하지 말고 할 일을 이루어라.” 이것이 깨달음에 이른 이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Ath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 “handa dāni, bhikkhave, āmantayāmi vo,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ā”ti. Ayaṁ tathāgatassa pacchimā vāc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질문할 기회를 거듭 주신 뒤 스승은 마지막 당부를 하십니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말과 방심하지 말고 할 일을 이루라는 말이 함께 나옵니다. 사라짐의 사실을 말한 뒤 남은 수행을 어떻게 이어 갈지를 당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방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닦는 길을 놓치지 않고 살피는 일을 말합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설명입니다. 앞에서도 하셨던 같은 당부가 이번에는 마지막 말씀으로 남습니다.

묵상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 자꾸 놓치는 일이 있나요? 오늘 그 일을 떠올리게 해 줄 작은 계기는 무엇일까요? 많이 해내야 한다는 부담보다 잊지 않고 살피고 싶은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37 스승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다 16구절

스승은 고요한 집중의 여러 경지를 거친 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십니다. 신들과 수행자들이 게송을 말하고, 말라족과 가족들은 소식을 듣고 슬퍼합니다.

그러자 스승은 마음이 깊이 고요하게 모이는 첫째 단계(자나)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첫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둘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둘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셋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셋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넷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넷째 단계에서 나와 끝없는 공간의 상태에 드셨다. 끝없는 공간의 상태에서 나와 끝없는 의식의 상태에 드셨다. 끝없는 의식의 상태에서 나와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에 드셨다.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에서 나와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드셨다.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와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에 드셨다.

Atha kho bhagavā paṭhamaṁ jhānaṁ samāpajji, paṭham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ṁ jhānaṁ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ṁ jhānaṁ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ṁ jhānaṁ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ākāsānañcāyatanaṁ samāpajji,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āpajji,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iñcaññāyatanaṁ samāpajji,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āpajj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saññāvedayitanirodhaṁ samāpajj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지막 말씀 뒤에 스승은 고요한 집중의 여러 단계를 차례로 지나십니다. 첫째부터 넷째 단계까지 간 뒤 끝없는 공간, 끝없는 의식, 아무것도 없음,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음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에는 인식과 느낌이 멎는 상태에 드십니다. 본문은 앞 단계에서 나와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고 하나씩 짚어 말합니다. 이 마지막 상태와 죽음이 같은 것인지가 바로 다음 대화에서 구별됩니다. 아직 스승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글에서 한 단계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옮겨 가는 순서를 읽을 때 어디에 눈길이 머무나요? 내 일상에서도 앞의 일을 마치고 잠깐 멈추는 시간이 있나요? 그 짧은 틈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아누룻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아누룻다여, 스승께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닙니다, 벗 아난다여. 스승께서는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에 드신 것입니다.”

Atha kho āyasmā ānando āyasmantaṁ anuruddhaṁ etadavoca: “parinibbuto, bhante anuruddha, bhagavā”ti. “Nāvuso ānanda, bhagavā parinibbuto, saññāvedayitanirodhaṁ samāpann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스승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아누룻다에게 말합니다. 아누룻다는 그렇지 않으며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에 드셨다고 답합니다. 앞에서 나열한 명상의 마지막 상태와 스승의 죽음을 구별하는 대화입니다. 여기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나중에 되풀이되는 마지막 죽음을 가리킵니다. 스승이 그 상태에서 나오시는 다음 장면도 아누룻다의 답과 이어집니다. 아난다가 존경하는 아누룻다여 하고 부르고 아누룻다는 벗 아난다여라고 답하는 호칭의 차이도 앞서 스승이 정하신 부르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묵상

같은 장면을 보고도 다른 설명을 듣게 된 적이 있나요? 그 말을 들은 뒤 내가 본 것과 내가 해석한 것을 나누어 살펴볼 수 있었나요? 더 알아보기 위해 누구에게 어떤 질문을 해 보고 싶었는지 기억나나요?

그러자 스승은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에서 나와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드셨다.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와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에 드셨다.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에서 나와 끝없는 의식의 상태에 드셨다. 끝없는 의식의 상태에서 나와 끝없는 공간의 상태에 드셨다. 끝없는 공간의 상태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넷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넷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셋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셋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둘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둘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첫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첫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둘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둘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셋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셋째 단계에서 나와 고요한 집중의 넷째 단계에 드셨다. 고요한 집중의 넷째 단계에서 나오신 바로 뒤에 스승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Atha kho bhagavā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āpajj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iñcaññāyatanaṁ samāpajji, ākiñcaññ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āpajji,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ākāsānañcāyatanaṁ samāpajji,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y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ṁ jhānaṁ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ṁ jhānaṁ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ṁ jhānaṁ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paṭhamaṁ jhānaṁ samāpajji, paṭhamajjhānā vuṭṭhahitvā dutiyaṁ jhānaṁ samāpajji, du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tatiyaṁ jhānaṁ samāpajji, tatiyajjhānā vuṭṭhahitvā catutthaṁ jhānaṁ samāpajji, catutthajjhānā vuṭṭhahitvā samanantarā bhagavā parinibbāy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은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에서 나와 앞서 지나간 단계를 거꾸로 거치십니다. 고요한 집중의 첫째 단계까지 내려온 뒤 다시 둘째, 셋째, 넷째 단계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넷째 단계에서 나오신 바로 뒤에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전합니다. 각 단계에서 나옴과 다음 단계로 들어감을 나누어 적었기 때문에 죽음이 어느 순간에 놓이는지가 분명합니다. 앞에서 아누룻다가 아직 세상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고 한 말과도 구별됩니다. 이 마지막 죽음 뒤에는 땅이 흔들리고 남은 이들이 게송을 말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묵상

긴 이야기에서 마지막 순간에 이르는 순서를 천천히 읽으면 어떤 부분이 마음에 남나요? 서둘러 결론을 내릴 때와 장면을 하나씩 따라갈 때 느낌이 달라지나요? 지금은 특별한 말 없이 읽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스승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 마지막 죽음과 함께 무섭고 털이 곤두설 만한 큰 지진이 일어났다. 하늘의 북들도 터져 울렸다. 스승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 마지막 죽음과 함께 높은 하늘의 신 사함빠띠가 이 노래를 읊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 몸을 내려놓을 것이다. 세상에 견줄 이 없는 이런 스승, 힘을 갖추신 깨달음에 이른 이, 온전히 깨달은 분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mahābhūmicālo ahosi bhiṁsanako salomahaṁso. Devadundubhiyo ca phaliṁsu.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brahmāsahampati imaṁ gāthaṁ abhāsi: “Sabbeva nikkhipissanti, bhūtā loke samussayaṁ; Yattha etādiso satthā, loke appaṭipuggalo; Tathāgato balappatto, sambuddho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세상을 떠나신 때에 큰 지진과 하늘의 북소리가 함께 일어났다고 전합니다. 앞에서 큰 지진의 이유를 설명할 때 나왔던 마지막 죽음의 장면이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이어 높은 하늘의 신 사함빠띠가 노래를 읊습니다. 모든 존재가 몸을 내려놓게 된다는 말에 세상에 견줄 이 없는 스승도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잇습니다. 뛰어난 능력이 몸의 끝을 예외로 만들지 않는다는 시선입니다. 뒤에서는 다른 신과 수행자들이 각자의 노래를 읊으며 같은 죽음을 서로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입니다.

묵상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말로 그를 기억하는 자리에 있었나요? 그 가운데 어떤 말이 오래 남았나요? 같은 이별을 두고도 서로 다른 기억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무엇을 느꼈는지 떠올려 볼까요?

스승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 마지막 죽음과 함께 신들의 왕 삭까가 이 시를 읊었다. “참으로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늘 그대로 있지 않고, 생겨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지녔다. 생겨난 뒤에는 사라진다. 그것들이 가라앉아 고요해짐은 행복이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sakko devānamindo imaṁ gāthaṁ abhāsi: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ṁ vūpasamo suk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세상을 떠나신 때에 신들의 왕 삭까가 말한 시입니다. 앞서 사함빠띠는 모든 존재가 몸을 내려놓는다는 점을 말했고, 삭까는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의 생겨남과 사라짐에 주목합니다. 끝에는 그것들이 가라앉아 고요해지는 것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같은 죽음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의 시가 이어지며, 다음에는 아누룻다의 말이 나옵니다.

묵상

삭까의 시구는 생겨난 것이 사라지는 일을 ‘가라앉아 고요해짐’과 연결해요. 최근에 끝난 일이나 관계가 있다면, 그 끝이 어느 순간 조용함으로 느껴진 적이 있나요? 아직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인지 떠올려 볼까요?

스승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 마지막 죽음과 함께 아누룻다 수행자가 이 시들을 말했다. “마음이 굳게 선 한결같은 그분에게는 들숨도 날숨도 없었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āyasmā anuruddho imā gāthāyo abhāsi: “Nāhu assāsapassāso, ṭhitacittassa tādin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누룻다가 말하는 시는 들숨과 날숨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숨이 멎은 몸을 묘사하면서도 마음이 굳게 선 한결같은 분이라는 표현을 함께 놓습니다. 앞서 아누룻다는 인식과 느낌이 멎은 상태와 마지막 죽음을 구별하여 아난다에게 설명했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세상을 떠나신 뒤 그 모습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시에서는 평안과 느낌을 견디는 마음, 등불이 꺼지는 비유가 나옵니다. 이 첫 부분을 뒤의 비유와 함께 읽으면 몸의 마지막과 마음의 풀려남을 나란히 전하는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묵상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을 전하는 짧은 말을 읽을 때 어떤 표현에 눈길이 머무나요? 내가 직접 본 장면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장면은 기억에 어떻게 다르게 남나요? 지금은 말없이 읽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깊은 지혜를 이룬 이가 생을 마쳤을 때, 그는 흔들림 없이 평안을 향해 있었다. 움츠러들지 않는 마음으로 느낌을 견뎠다. 등불이 꺼지듯 그의 마음이 풀려났다.”

Anejo santimārabbha, yaṁ kālamakarī muni. Asallīnena cittena, vedanaṁ ajjhavāsayi; Pajjotasseva nibbānaṁ, vimokkho cetaso ah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에서 들숨과 날숨이 없었다고 한 아누룻다의 노래가 이어집니다. 스승은 생을 마칠 때 평안을 향해 있었으며 움츠러들지 않는 마음으로 느낌을 견뎠다고 합니다. 느낌을 전혀 겪지 않았다는 말과 견뎠다는 말은 다릅니다. 마지막에는 마음의 풀려남을 등불이 꺼지는 모습에 견줍니다. 꺼짐과 풀려남의 비유로 마음이 사라진 모습을 전합니다. 아누룻다는 스승의 몸이 멎은 사실만이 아니라 그 순간의 마음을 함께 말하며 노래를 마칩니다.

묵상

등불이 꺼지는 비유를 천천히 읽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불이 사그라지는 장면을 지켜본 기억이 있다면 그때의 빛이나 고요함은 어땠나요? 지금 이 비유는 편안하게 느껴지나요, 낯설게 느껴지나요?

스승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 마지막 죽음과 함께 아난다 수행자가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때 두려움이 일었고, 그때 털이 곤두섰다. 모든 훌륭한 자질을 갖춘 온전히 깨달은 분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였다.” 스승이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시자, 그곳에 있던 수행자들 가운데 아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떤 이들은 팔을 치켜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져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

Parinibbute bhagavati saha parinibbānā āyasmā ānando imaṁ gāthaṁ abhāsi: “Tadāsi yaṁ bhiṁsanakaṁ, tadāsi lomahaṁsanaṁ; Sabbākāravarūpete, sambuddhe parinibbute”ti. Parinibbute bhagavati ye te tattha bhikkhū avītarāgā appekacce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ṁ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hi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스승이 세상을 떠나신 때의 두려움과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노래로 들려줍니다. 이어 일부 수행자들이 몸을 움직이며 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아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라고 한정됩니다. 모든 수행자의 반응을 하나로 묶어 말하는 장면은 아닙니다. 스승이 살아 계실 때 너무 빨리 떠나실 것이라고 슬퍼하던 말이 이제 떠나셨다는 말로 바뀝니다. 앞의 고요한 노래와 이런 몸짓을 함께 전하면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이들의 여러 반응을 보여 줍니다.

묵상

아난다는 두려움과 소름이라는 몸의 반응으로 슬픔을 말하고, 어떤 수행자들은 쓰러져 구르며 울어요. 큰 상실을 겪을 때 내 몸은 어떤 식으로 반응했나요? 그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무엇이 보이는지, 잘 모르겠다면 그 모름은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 볼까요?

욕망에서 벗어난 수행자들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뎠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찌 여기서 달리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자 아누룻다 수행자는 수행자들에게 말했다. “그만하십시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마십시오. 벗들이여, 스승께서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떨어지고, 헤어지고, 달라지게 된다’고 말입니다.”

Ye pana te bhikkhū vītarāgā, te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aniccā saṅkhārā, taṁ kutettha labbhā”ti. Atha kho āyasmā anuruddho bhikkhū āmantesi: “alaṁ, āvuso, mā socittha mā paridevittha. Nanu etaṁ, āvuso, bhagavatā paṭikacceva akkhātaṁ: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일부 수행자들이 울고 구르는 모습에 이어 욕망에서 벗어난 수행자들이 어떻게 견디는지를 전합니다. 그들은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딥니다. 아누룻다는 슬퍼하고 통곡하는 벗들에게 스승이 미리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것과도 떨어지고 헤어지고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는 스승이 앞서 아난다에게 하신 설명과 이어집니다. 새 설명을 만들기보다 이미 함께 들었던 가르침으로 지금 일어난 일을 마주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묵상

아누룻다는 ‘스승께서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소?’라며 이미 들은 가르침을 떠올리게 해요. 사랑하는 것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일이 닥치기 전에 들었다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듣기 어려웠을까요?

“벗들이여, 어찌 여기서 달리 바랄 수 있겠습니까? 태어나고 생겨나고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져 무너지기 마련인 것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벗들이여, 신들이 불평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수행자님, 아누룻다 수행자께서는 어떤 신들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Taṁ kutettha, āvuso,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vata mā palujj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i. Devatā, āvuso, ujjhāyantī”ti. “Kathaṁbhūtā pana, bhante, āyasmā anuruddho devatā manasi karo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누룻다는 사랑하는 것과 헤어진다는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태어나고 생겨나며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은 무너지기 마련이므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스승의 몸도 그 범위에 있다는 앞의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뒤에서는 신들이 불평하고 있다고 말하여 시선을 사람들 너머로 옮깁니다. 어떤 신들을 말하는지 되묻는 질문 뒤에 아누룻다는 아난다를 부르며 답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여러 반응이 신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는 자리입니다.

묵상

‘부서지지 말기를’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 대목은 조용히 보여 줘요. 내가 변하지 않기를 가장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이 변했을 때 바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남아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벗 아난다여, 허공에 있으면서 땅의 일을 아는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울고, 팔을 치켜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릅니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

“Santāvuso ānanda, devatā ākāse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ṁ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hi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누룻다는 아난다에게 허공에 있으면서 땅의 일을 아는 신들부터 설명합니다. 앞서 스승이 살아 계실 때 같은 부류의 신들을 설명하신 말과 이어집니다. 허공에 있어도 땅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아는 신들입니다. 이들은 머리카락을 풀고 팔을 들며 쓰러지고 구릅니다. 스승이 너무 빨리 떠나셨다는 탄식도 사람들의 말과 같습니다. 하늘의 존재도 사람과 같은 몸짓으로 슬픔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뒤에는 땅에 있는 신들의 모습도 이어집니다.

묵상

슬픔을 드러내는 몸짓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그 모습을 보며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나요, 어떻게 곁에 있어야 할지 몰랐나요? 내게 편안했던 도움의 방식은 무엇이었나요?

“벗 아난다여, 땅에 있으면서 땅의 일을 아는 신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울고, 팔을 치켜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릅니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 그러나 욕망에서 벗어난 신들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딥니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찌 여기서 달리 바랄 수 있겠는가?’라고 말입니다.”

Santāvuso ānanda, devatā pathaviyā pathavīsaññiniyo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ṁ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hito’ti. Yā pana tā devatā vītarāgā, tā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aniccā saṅkhārā, taṁ kutettha labb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허공에 있는 신들에 이어 땅에 있는 신들의 슬픔도 같은 말과 동작으로 전합니다. 두 부류 모두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신들입니다. 마지막에는 욕망에서 벗어난 신들이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딘다고 합니다. 앞에서 수행자들의 반응이 나뉘었던 것처럼, 신들의 반응도 이렇게 나뉩니다. 어디에 있는가와 함께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가 구별됩니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 이 대화를 마무리합니다. 뒤에서는 아누룻다와 아난다가 남은 밤을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로 보냅니다.

묵상

같은 이별을 겪은 사람들의 반응이 서로 달랐던 기억이 있나요? 말이 많은 사람과 조용한 사람을 곁에서 어떻게 대했나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웠다면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나요?

그러자 아누룻다 수행자와 아난다 수행자는 남은 밤을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로 보냈다. 그러고 나서 아누룻다 수행자는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가십시오, 벗 아난다여. 꾸시나라에 들어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알리십시오. ‘와셋타들이여, 스승께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일을 하십시오.’라고 하십시오.”

Atha kho āyasmā ca anuruddho āyasmā ca ānando taṁ rattāvasesaṁ dhammiyā kathāya vītināmesuṁ. Atha kho āyasmā anuruddho āyasmantaṁ ānandaṁ āmantesi: “gacchāvuso ānanda, kusināraṁ pavisitv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ārocehi: ‘parinibbuto, vāseṭṭhā, bhagavā, yassadāni kālaṁ maññat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세상을 떠나신 뒤 두 수행자는 남은 밤을 가르침 이야기로 보냅니다. 그 뒤 아누룻다는 아난다에게 말라족을 찾아가 소식을 전하라고 합니다. 전날에는 오늘 밤에 떠나실 것이니 마지막으로 뵈러 오라고 알렸지만 이번에는 이미 떠나셨다는 소식입니다. 이어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붙습니다. 이 전언은 구체적인 장례 절차를 하나하나 적기보다, 이후의 일을 말라족이 준비할 수 있도록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는 숲에서 마을의 회관으로 옮겨 갑니다.

묵상

두 사람은 슬픔 속에서도 남은 밤을 가르침 이야기로 보냈다고 해요. 큰일을 겪은 밤에 나라면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까요? 아니면 말없이 있고 싶을까요? 이야기와 침묵이 각각 나에게 무엇을 해 줄지 생각해 볼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수행자님.” 하고 아난다 수행자는 아누룻다 수행자에게 답했다. 아침에 옷을 갖추어 입고 밥그릇과 겉옷을 들고 동료 한 명과 함께 꾸시나라로 들어갔다. 그때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바로 그 일로 회관에 모여 있었다.

“Evaṁ, bhante”ti kho āyasmā ānando āyasmato anuruddhassa paṭissutvā pubbaṇhasamayaṁ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 attadutiyo kusināraṁ pāvisi. Tena kho pana samayena kosinārakā mallā sandhāgāre sannipatitā honti teneva karaṇīyen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아누룻다에게 답한 뒤 아침에 동료 한 명과 마을로 들어갑니다. 옷을 갖추고 밥그릇과 겉옷을 챙기는 순서는 앞서 마지막 만남을 알리러 갔을 때와 같습니다. 그러나 전할 소식은 이제 스승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입니다. 말라족은 회관에 모여 있어 아난다가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일로 모였다는 말은 앞서 나온 회관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같은 장소와 비슷한 이동이 반복되는 가운데 밤이 지나고 소식의 내용이 달라졌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아난다는 무거운 소식을 안고도 옷을 두르고 밥그릇과 겉옷을 챙기는 평소의 준비부터 해요. 나는 힘든 소식을 전하러 갈 때 어떤 준비를 하나요?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일과 말을 고르는 일 가운데 무엇이 더 어려운가요?

그러자 아난다 수행자는 꾸시나라 말라족의 회관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알렸다. “와셋타들이여, 스승께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sandhāgāra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ārocesi: “parinibbuto, vāseṭṭhā, bhagavā, yassadāni kālaṁ maññat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회관에 있는 말라족에게 아누룻다가 전하라고 한 말을 알립니다. 스승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과 이제 할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부탁받은 말이 실제 사람들 앞에서 다시 나오므로 전언이 그대로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난다는 이 소식에 자신의 감상이나 장례 방식에 대한 지시를 덧붙이지 않습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다음 장면을 여는 짧은 알림입니다. 뒤에서는 먼저 슬픔의 반응이 나오고, 그다음 스승의 몸을 공경하여 모시는 준비가 시작됩니다.

묵상

아난다는 아누룻다가 일러 준 말을 그대로 전해요. 힘든 소식을 전할 때 나는 말을 꾸미지 않고 사실만 말하는 편인가요, 위로나 설명을 덧붙이는 편인가요? 듣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이 더 견딜 만할까요?

아난다 수행자의 이 말을 듣고 말라족과 그 아들들, 며느리들, 아내들은 슬퍼하고 마음이 무거워져 마음의 괴로움에 사로잡혔다. 어떤 이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울고, 팔을 치켜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

Idamāyasmato ānandassa vacanaṁ sutvā mallā ca mallaputtā ca mallasuṇisā ca mallapajāpatiyo ca aghāvino dummanā cetodukkhasamappitā appekacce kese pakiriya kandanti,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ṁ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hi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이 이미 떠나셨다는 소식에 말라족과 가족들이 슬퍼합니다. 아들과 며느리와 아내를 따로 언급하는 방식은 전날 마지막 만남을 알렸을 때와 같습니다. 어떤 이들이 보이는 몸짓과 너무 빨리라는 세 탄식도 반복됩니다. 전날에는 떠나실 것이라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떠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문장도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다만 머리를 풀어 헤치고 울부짖는 몸짓을 보인 것은 가족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었습니다. 뒤에서는 이들이 함께 장례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말라족의 남자와 아들, 며느리, 아내까지 모두 슬픔에 잠겼다고 해요. 큰 소식이 한 집안 전체에 닿을 때, 각자의 슬픔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내 곁의 사람들이 다르게 슬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어떠했나요?

38 스승의 몸을 모시고 장례를 준비하다 15구절

말라족은 여러 날 예를 올린 뒤 신들과 함께 스승의 몸을 옮깁니다. 아난다에게 들은 절차에 따라 몸을 감싸고 장작더미 위에 올립니다.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사람들에게 시켰다. “그렇다면 여보게들, 꾸시나라에 있는 향과 꽃다발과 모든 악기를 모아 오게.”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purise āṇāpesuṁ: “tena hi, bhaṇe, kusinārāyaṁ gandhamālañca sabbañca tāḷāvacaraṁ sannipātet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슬픔의 반응 뒤에 말라족은 스승의 몸을 공경하여 모실 준비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에게 모아 오라고 하는 것은 향과 꽃다발, 악기입니다. 뒤에서 이 물건들을 가지고 숲으로 가서 춤과 노래와 연주로 예를 올리게 됩니다. 죽음을 슬퍼하는 몸짓과 아름다운 것으로 기리는 일이 한 이야기 안에 함께 놓입니다. 이 짧은 명령은 개인들이 울던 장면에서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장면으로 흐름을 바꿉니다. 먼저 예를 올릴 물건을 모으는 일부터 전합니다.

묵상

말라족은 화장부터 서두르지 않고 향과 꽃과 악기부터 모으게 해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나는 무엇부터 준비하고 싶을까요? 물건일 수도, 말이나 시간일 수도 있어요. 지금 떠오르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향과 꽃다발과 모든 악기, 천을 오백 쌍 가지고 우빠왓따나에 있는 말라족의 살라 숲으로, 스승의 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춤과 노래와 연주와 꽃다발과 향으로 스승의 몸을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면서 천으로 드리우는 덮개를 만들고 둥근 정자들을 마련하며 하루를 보냈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gandhamālañca sabbañca tāḷāvacaraṁ pañca ca dussayugasatāni ādāya yena upavattanaṁ mallānaṁ sālavanaṁ, yena bhagavato sarīraṁ tenupasaṅkamiṁsu; upasaṅkamitvā bhagavato sarīraṁ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ṁ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celavitānāni karontā maṇḍalamāḷe paṭiyādentā ekadivasaṁ vītinām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말라족은 준비한 물건을 스승의 몸이 있는 숲으로 가져갑니다. 향과 꽃다발과 악기에 더해 천을 오백 쌍 가지고 옵니다. 예를 올리는 다섯 방식과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한다는 네 행동이 함께 나열됩니다. 천 덮개와 정자를 마련하는 일도 있어 잠시 들렀다 가는 장면과는 다릅니다. 하루를 이 일로 보냈다는 마지막 말이 뒤에서 여러 날 이어지는 공경의 시작이 됩니다. 앞에서는 슬픔을 몸으로 드러냈다면 여기서는 공동체가 함께 자리를 갖추어 스승을 기리는 모습을 전합니다.

묵상

말라족은 춤과 노래와 꽃과 향으로 하루를 통째로 보내요. 내가 소중한 사람을 기릴 때는 어떤 방식이 가장 자연스러울까요? 소리 내어 하는 일일 수도, 조용히 곁에 머무는 일일 수도 있어요.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생각했다. ‘오늘은 스승의 몸을 태우기에 너무 늦었다. 이제 내일 우리가 스승의 몸을 태우자.’

Atha kho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etadahosi: “ativikālo kho ajja bhagavato sarīraṁ jhāpetuṁ, sve dāni mayaṁ bhagavato sarīraṁ jhāpessām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하루 동안 예를 올린 뒤 말라족은 오늘은 몸을 태우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일 하자고 합니다. 이 말은 서로 나눈 대화로 적힌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든 생각으로 전해집니다. 여기서는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만 나옵니다. 뒤에서 공경이 여러 날 이어지지만, 이 문장만으로 그 모두를 미리 계획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과 내일을 구별한 이 생각 다음에 실제로 지나가는 날들이 하나씩 기록됩니다.

묵상

말라족은 늦었다는 이유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요. 나는 마음이 무거운 일을 앞두고 언제 멈추고, 언제 그대로 밀고 나아가나요? 미룬다고 해서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럴 때 내 안에서 무엇이 신호가 되는지 궁금해요.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춤과 노래와 연주와 꽃다발과 향으로 스승의 몸을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면서 천으로 드리우는 덮개를 만들고 둥근 정자들을 마련하며 둘째 날도 보냈다. 셋째 날도 보냈다. 넷째 날도 보냈다. 다섯째 날도 보냈다. 여섯째 날도 보냈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bhagavato sarīraṁ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ṁ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celavitānāni karontā maṇḍalamāḷe paṭiyādentā dutiyampi divasaṁ vītināmesuṁ, tatiyampi divasaṁ vītināmesuṁ, catutthampi divasaṁ vītināmesuṁ, pañcamampi divasaṁ vītināmesuṁ, chaṭṭhampi divasaṁ vītinām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내일 몸을 태우자고 생각했지만 예를 올리는 일은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계속됩니다. 앞의 다섯 방식과 네 공경의 행동, 덮개와 정자를 마련하는 일이 다시 나옵니다.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같은 공경이 날마다 되풀이됩니다. 새 사건보다 같은 일이 거듭되는 시간이 중심이 됩니다. 뒤에 일곱째 날 몸을 옮길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 나와, 이 반복이 실제 장례로 이어지기까지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묵상

소중한 이를 기리는 일을 여러 날 이어 가 본 적이 있나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날마다 다르게 느껴진 점이 있었나요? 반복이 편안하게 느껴졌던 때와 힘들게 느껴졌던 때가 있다면 무엇이 달랐나요?

그러자 일곱째 날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생각했다. ‘우리는 춤과 노래와 연주와 꽃다발과 향으로 스승의 몸을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면서 도시의 남쪽 길을 따라 남쪽으로 모셔 가, 바깥길을 따라 도시 밖 남쪽에서 스승의 몸을 태우자.’

Atha kho sattamaṁ divasa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etadahosi: “mayaṁ bhagavato sarīraṁ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ṁ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dakkhiṇena dakkhiṇaṁ nagarassa haritvā bāhirena bāhiraṁ dakkhiṇato nagarassa bhagavato sarīraṁ jhāpessām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일곱째 날 말라족은 스승의 몸을 옮길 길과 몸을 태울 장소를 생각합니다. 그들은 도시의 남쪽 길을 따라가 바깥쪽 남쪽에서 장례를 치르려 합니다. 이동하면서도 춤과 노래와 연주, 꽃다발과 향으로 공경한다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예를 올리는 일과 몸을 옮기는 일을 함께 하려는 계획입니다. 다만 여기서 정한 길이 곧 실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뒤에서 몸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아누룻다는 신들이 생각하는 길이 사람들의 길과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묵상

말라족은 이레째에 화장 장소와 길을 도시 남쪽으로 정해요. 나는 계획을 세울 때 그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얼마나 염두에 두나요?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처음 보이는 반응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그때 말라족의 우두머리 여덟 사람이 머리를 감고 아직 입지 않은 새 옷을 입었다. ‘우리가 스승의 몸을 들어 올리자’고 했지만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아누룻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아누룻다여, 이 말라족 우두머리 여덟 사람이 머리를 감고 아직 입지 않은 새 옷을 입고서 ‘우리가 스승의 몸을 들어 올리자’고 해도 들어 올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며 조건은 무엇입니까?”

Tena kho pana samayena aṭṭha mallapāmokkhā sīsaṁ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mayaṁ bhagavato sarīraṁ uccāressāmā”ti na sakkonti uccāretuṁ.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āyasmantaṁ anuruddhaṁ etadavocuṁ: “ko nu kho, bhante anuruddha, hetu ko paccayo, yenime aṭṭha mallapāmokkhā sīsaṁ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mayaṁ bhagavato sarīraṁ uccāressāmā’ti na sakkonti uccāretu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여덟 우두머리는 머리를 감고 입지 않은 새 옷을 갖추지만 스승의 몸을 들어 올리지 못합니다. 말라족은 아누룻다에게 그 이유와 조건을 묻습니다. 말라족의 물음은 앞서 있었던 준비와 시도를 거의 그대로 다시 전합니다. 겉으로 본 행동을 충분히 밝힌 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묻는 방식입니다. 본문은 이들이 힘이 약했다거나 준비가 부족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아누룻다는 사람과 신들이 정한 길이 다르다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이야기가 사람들의 계획에서 신들이 함께하는 장례로 넓어지는 계기입니다.

묵상

여덟 사람은 준비를 다 했는데도 몸을 들지 못하고 이유를 물어요. 나는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구에게, 어떤 말로 물어보나요? 혼자 끙끙대던 때와 물어본 때가 어떻게 달랐는지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의 뜻과 신들의 뜻이 서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존경하는 수행자님, 신들의 뜻은 어떻습니까?”

“Aññathā kho, vāseṭṭhā, tumhākaṁ adhippāyo, aññathā devatānaṁ adhippāyo”ti. “Kathaṁ pana, bhante, devatānaṁ adhippāy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몸을 들어 올리지 못한 이유를 묻자 아누룻다는 사람들의 뜻과 신들의 뜻이 다르다고 답합니다. 여기서 뜻은 스승의 몸을 어디로 모시고 가서 장례를 치르려 하는가라는 계획을 가리킵니다. 말라족은 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묻습니다. 아직 자세한 길은 나오지 않지만 서로 다른 계획이 있다는 점이 먼저 밝혀집니다. 다음에는 사람들의 남쪽 길과 신들의 북문과 동문을 지나는 길이 나란히 설명됩니다. 원인을 묻던 대화가 이제 서로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대화로 바뀝니다.

묵상

내 뜻과 다른 누군가의 뜻이 부딪혔을 때, 그 다름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어떤 힘이 될까요? 말라족은 바로 ‘신들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요. 나는 다른 사람의 계획을 궁금해하며 묻는 편인가요?

“와셋타들이여, 그대들의 뜻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춤과 노래와 연주와 꽃다발과 향으로 스승의 몸을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면서 도시의 남쪽 길을 따라 남쪽으로 모셔 가, 바깥길을 따라 도시 밖 남쪽에서 스승의 몸을 태우자.’ 와셋타들이여, 신들의 뜻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춤과 노래와 연주와 꽃다발과 향으로 스승의 몸을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면서 도시의 북쪽 길을 따라 북쪽으로 모셔 가,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가서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동문으로 나가자. 도시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족의 예배 장소에서 스승의 몸을 태우자.’”

“Tumhākaṁ kho, vāseṭṭhā, adhippāyo: ‘mayaṁ bhagavato sarīraṁ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ṁ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dakkhiṇena dakkhiṇaṁ nagarassa haritvā bāhirena bāhiraṁ dakkhiṇato nagarassa bhagavato sarīraṁ jhāpessāmā’ti; devatānaṁ kho, vāseṭṭhā, adhippāyo: ‘mayaṁ bhagavato sarīraṁ dibbehi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ṁ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uttarena uttaraṁ nagarassa haritvā uttarena dvārena nagaraṁ pavesetvā majjhena majjhaṁ nagarassa haritvā puratthimena dvārena nikkhamitvā puratthimato nagarassa makuṭabandhanaṁ nāma mallānaṁ cetiyaṁ ettha bhagavato sarīraṁ jhāpessām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누룻다는 두 계획을 직접 말하는 형식으로 나란히 전합니다. 말라족은 남쪽 길로 도시 밖 남쪽에 가려 했습니다. 신들은 북쪽으로 모셔 가 북문으로 들어온 뒤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동문으로 나가려 합니다. 도착할 곳은 도시 동쪽의 마꾸따반다나라는 예배 장소입니다. 이름은 왕관을 묶는다는 뜻이며, 여기서는 말라족이 예를 올리던 장소를 가리킵니다. 공경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신들의 것에는 하늘의 춤과 노래라는 표현이 붙습니다. 이 길의 차이를 설명한 뒤 말라족은 신들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묵상

같은 일을 두고 사람들과 신들이 서로 다른 길을 그리고 있어요. 나도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한 방향만 옳다고 여긴 적이 있나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의 마음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존경하는 수행자님, 신들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때 꾸시나라는 하수구와 쓰레기 더미에 이르기까지 만다라와 꽃이 무릎 깊이로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Yathā, bhante, devatānaṁ adhippāyo, tathā hotū”ti. Tena kho pana samayena kusinārā yāva sandhisamalasaṅkaṭīrā jaṇṇumattena odhinā mandāravapupphehi santhatā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신들의 계획을 들은 말라족은 그 뜻대로 하라고 답합니다. 이어 꾸시나라를 덮은 꽃의 모습을 전합니다. 꽃이 무릎 깊이로 깔렸다는 말에 더해 하수구와 쓰레기 더미까지 언급합니다. 도시 전체가 꽃으로 덮인 모습입니다. 만다라와는 앞서 하늘에서 내려온 꽃으로 등장한 이름입니다. 두 계획을 두고 나눈 대화 뒤에 이런 장면이 놓이고, 다음에는 신들과 사람들이 함께 스승의 몸을 모시고 갑니다. 말로 받아들인 계획이 실제 이동으로 이어지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묵상

말라족은 자신의 계획을 접고 ‘신들의 뜻대로 되기를’ 하고 말해요. 나는 내 뜻을 내려놓아야 할 때 어떤 말로 그 마음을 표현할까요? 내려놓기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그러자 신들과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하늘과 사람의 춤과 노래와 연주와 꽃다발과 향으로 스승의 몸을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하면서 도시의 북쪽 길을 따라 북쪽으로 모셔 갔다. 북문으로 도시에 들어가서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동문으로 나왔다. 도시 동쪽에 있는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족의 예배 장소에 스승의 몸을 내려놓았다.

Atha kho devatā ca kosinārakā ca mallā bhagavato sarīraṁ dibbehi ca mānusakehi ca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ontā garuṁ karontā mānentā pūjentā uttarena uttaraṁ nagarassa haritvā uttarena dvārena nagaraṁ pavesetvā majjhena majjhaṁ nagarassa haritvā puratthimena dvārena nikkhamitvā puratthimato nagarassa makuṭabandhanaṁ nāma mallānaṁ cetiyaṁ ettha ca bhagavato sarīraṁ nikkhip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에서 신들이 계획한 길을 이번에는 신들과 말라족이 함께 실제로 갑니다. 북쪽으로 옮겨 북문으로 들어오고 도시 가운데를 거쳐 동문으로 나가는 순서가 그대로 반복됩니다. 하늘과 사람의 춤과 노래와 연주가 함께한다는 표현은 두 무리가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도착한 곳은 도시 동쪽의 마꾸따반다나입니다. 여기서는 몸을 태웠다고 하지 않고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이동이 끝난 뒤 말라족은 아난다에게 몸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묻습니다. 장례의 구체적인 준비는 그 대화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신들과 사람이 함께 같은 길을 걷는 모습이 그려져요. 나는 나와 뜻이 다른 사람과 같은 길을 나란히 걸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서로의 방식은 어떻게 맞춰졌는지, 아니면 맞춰지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아난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아난다여, 우리는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의 몸을 어떻게 모셔야 합니까?” “와셋타들이여,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모시는 것처럼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을 모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존경하는 아난다여,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은 어떻게 모십니까?”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āyasmantaṁ ānandaṁ etadavocuṁ: “kathaṁ mayaṁ, bhante ānanda,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āmā”ti? “Yathā kho, vāseṭṭh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ṁ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n”ti. “Kathaṁ pana, bhante ānanda,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몸을 내려놓은 뒤 말라족은 아난다에게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묻습니다. 아난다는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모시는 방식에 따르라고 답합니다. 이는 앞서 스승이 아난다에게 알려 주신 내용입니다. 말라족이 그 방식을 다시 묻자 아난다는 천과 솜으로 감싸고 몸을 태우는 절차를 설명하게 됩니다. 처음의 물음에는 기준을 알려 주고 두 번째 물음에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는 순서입니다. 스승이 미리 하신 당부가 남은 이들을 통해 실제 장례를 준비하는 말로 전해집니다.

묵상

말라족은 처음 해 보는 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고, 다시 한 번 ‘그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어요. 나는 모르는 것을 두 번 세 번 물어볼 만큼 편하게 묻는 편인가요? 그렇게 물었을 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와셋타들이여,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새 천으로 감쌉니다. 새 천으로 감싼 뒤 두드려 푼 솜으로 감싸고, 두드려 푼 솜으로 감싼 뒤 다시 새 천으로 감쌉니다. 이런 방법으로 천과 솜을 한 쌍으로 하여 오백 쌍으로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감싼 뒤,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을 엎어 덮습니다. 온갖 향기로운 나무로 장작더미를 쌓아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태웁니다.”

“Rañño, vāseṭṭhā, cakkavattissa sarīra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nti,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nti. Etena upāyena pañcahi yugasatehi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ṁ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ṁ citakaṁ karitv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aṁ jhāpe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스승에게서 들었던 왕의 장례 방식을 전합니다. 새 천과 두드려 푼 솜을 번갈아 감싸고, 그 둘을 한 쌍으로 하여 오백 쌍을 만듭니다. 이어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을 엎어 덮습니다. 같은 모양의 통 하나를 뚜껑으로 삼는 모습입니다. 장작은 온갖 향기로운 나무로 마련한다고 합니다. 특정한 한 종류의 나무만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이 설명은 스승의 몸을 실제로 모시기 위한 답이며, 앞에서 준비해 온 천이 뒤의 장례 과정과 연결됩니다.

묵상

몸을 감싸는 방식이 새 천, 솜, 새 천으로 차례차례 반복돼요. 이 겹겹의 정성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표현하려 했을지 상상해 보면 어떤가요? 나는 소중한 것을 다룰 때 어떤 순서와 방식을 스스로 지켜 왔는지 궁금해요.

“네거리에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을 기리는 탑을 세웁니다. 와셋타들이여, 이렇게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모십니다. 와셋타들이여, 온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왕의 몸을 모시는 것처럼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을 모셔야 합니다. 네거리에 깨달음에 이른 이를 기리는 탑을 세워야 합니다.”

Cātumahāpathe rañño cakkavattissa thūpaṁ karonti. Evaṁ kho, vāseṭṭh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Yathā kho, vāseṭṭhā, rañño cakkavattissa sarīre paṭipajjanti, evaṁ tathāgatassa sarīre paṭipajjitabbaṁ. Cātumahāpathe tathāgatassa thūpo kātabb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왕의 장례를 설명하면서 네거리에 기리는 탑을 세운다는 말로 절차를 마칩니다. 이어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도 그와 같이 모시고 네거리에 탑을 세우라고 합니다. 왕의 경우와 스승의 경우가 같은 틀로 나란히 놓입니다. 장례 설명은 몸을 태우는 일에서 나아가 남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릴 장소까지 이어집니다. 네거리는 여러 방향에서 길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뒤에서는 그곳에 꽃이나 향을 올리고 예를 갖추며 맑은 믿음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설명합니다.

묵상

탑을 한적한 곳이 아니라 네거리에 세우라는 말이 눈에 들어와요. 오가는 사람 누구나 그 앞을 지나며 한 번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내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나 가르침이 있다면, 그 기억을 어떤 자리에 두고 싶은가요?

“그곳에 꽃다발이나 향이나 가루를 올리거나, 예를 올리거나,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오랫동안 이로움과 행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사람들에게 시켰다. “그렇다면 여보게들, 말라족이 가진 두드려 푼 솜을 모아 오게.”

Tattha ye mālaṁ vā gandhaṁ vā cuṇṇakaṁ vā āropessanti vā abhivādessanti vā cittaṁ vā pasādessanti, tesaṁ taṁ bhavissati dīgharattaṁ hitāya sukhāyā”ti.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purise āṇāpesuṁ: “tena hi, bhaṇe, mallānaṁ vihataṁ kappāsaṁ sannipāteth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아난다는 기리는 탑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는 일과 그 결실을 말하며 설명을 끝냅니다. 꽃과 향과 가루를 올리는 행동, 예를 올리는 행동,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는 일이 함께 나옵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올리는 일과 마음으로 공경하는 일이 함께 포함됩니다. 뒤이어 말라족은 실제 장례를 준비하려고 솜을 모으게 합니다. 설명 속에서 새 천과 함께 몸을 감싸는 데 쓰였던 재료입니다. 앞으로 탑을 찾을 사람들의 일에서 지금 몸을 모셔야 하는 사람들의 일로 장면이 돌아오는 전환입니다.

묵상

꽃을 올리고 절하는 것과 마음에 맑은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나란히 놓여 있어요. 몸으로 하는 행동과 마음의 상태 중, 나에게는 어느 쪽이 먼저 움직이는 편인가요? 그 둘이 함께 움직였던 순간이 있었는지도 떠올려 봐요.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스승의 몸을 새 천으로 감싼 뒤 두드려 푼 솜으로 감쌌고, 두드려 푼 솜으로 감싼 뒤 다시 새 천으로 감쌌다. 이런 방법으로 천과 솜을 한 쌍으로 하여 오백 쌍으로 스승의 몸을 감싼 뒤, 쇠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다른 쇠통을 엎어 덮었다. 온갖 향기로운 나무로 장작더미를 쌓아 스승의 몸을 그 위에 올렸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bhagavato sarīraṁ ahatena vatthena veṭhetvā vihatena kappāsena veṭhesuṁ, vihatena kappāsena veṭhetvā ahatena vatthena veṭhesuṁ. Etena upāyena pañcahi yugasatehi bhagavato sarīraṁ veṭhetvā āyasāya teladoṇiyā pakkhipitvā aññissā āyasāya doṇiyā paṭikujjitvā sabbagandhānaṁ citakaṁ karitvā bhagavato sarīraṁ citakaṁ ārop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말라족은 아난다가 설명한 방식을 실제로 따릅니다. 새 천과 두드려 푼 솜으로 번갈아 감싸는 과정이 다시 나옵니다. 천과 솜의 쌍을 오백 쌍으로 한 뒤 기름통과 덮개를 마련하고 향기로운 나무로 장작더미를 쌓습니다. 이 대목은 왕의 장례를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는 말에서 스승의 몸을 실제로 모시는 행동으로 바뀐 부분입니다. 마지막에는 몸을 장작더미 위에 올렸다고 하며 아직 불이 붙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음 장면에서는 길을 오던 마하깟사빠가 소식을 듣는 이야기가 끼어듭니다.

묵상

설명을 들은 뒤 여러 사람이 손을 보태 하나씩 준비했던 일이 있나요? 그때 순서를 지키는 일과 서로 돕는 일은 어떻게 이어졌나요? 소중한 것을 조심히 다루었던 경험이 있다면 어떤 손길이 기억나나요?

39 마하깟사빠의 마지막 인사와 장례 12구절

길에서 소식을 들은 마하깟사빠와 수행자들이 와서 예를 올리자 장작더미가 저절로 타오릅니다. 말라족은 남은 뼈를 회관에 모시고 이레 동안 기립니다.

그때 마하깟사빠 수행자는 오백 명가량 되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가는 길에 있었다. 마하깟사빠 수행자는 길에서 벗어나 어느 나무 아래에 앉았다. 그때 다른 수행 집단의 사람(아지와까) 한 명이 꾸시나라에서 만다라와 꽃을 가지고 빠와로 가는 길에 있었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mahākassapo pāvāya kusināraṁ addhānamaggappaṭipanno hot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pañcamattehi bhikkhusatehi.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maggā okkamma aññatarasmiṁ rukkhamūle nisīdi. Tena kho pana samayena aññataro ājīvako kusinārāya mandāravapupphaṁ gahetvā pāvaṁ addhānamaggappaṭipanno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장례 준비에서 빠와와 꾸시나라 사이의 길로 장면이 옮겨 갑니다. 마하깟사빠와 많은 수행자들이 꾸시나라로 가고, 반대 방향에서는 아지와까라는 다른 수행 집단의 사람이 꽃을 가지고 옵니다. 그는 고살라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름보다 그가 꾸시나라에서 오며 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뒤의 소식과 연결됩니다. 마하깟사빠는 길을 벗어나 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그 사람을 보고 말을 겁니다. 그 만남을 통해 스승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묵상

마하깟사빠가 길에서 벗어나 나무 아래에 앉은 순간, 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쉬고 있었어요. 큰 소식이 다가오기 직전의 평범한 순간이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었는지 떠올려 봐요.

마하깟사빠 수행자는 그 아지와까 수행자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 그 아지와까 수행자에게 말했다. “벗이여, 혹시 우리 스승의 소식을 아십니까?” “예, 벗이여, 압니다. 고따마 수행자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지 오늘로 이레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이 만다라와 꽃을 가져왔습니다.”

Addasā kho āyasmā mahākassapo taṁ ājīvakaṁ dūratova āgacchantaṁ, disvā taṁ ājīvakaṁ etadavoca: “apāvuso, amhākaṁ satthāraṁ jānāsī”ti? “Āmāvuso, jānāmi, ajja sattāhaparinibbuto samaṇo gotamo. Tato me idaṁ mandāravapupphaṁ gahit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하깟사빠는 멀리서 오는 수행자에게 자기 스승의 소식을 묻습니다. 상대는 고따마 수행자가 세상을 떠난 지 이레가 되었다고 답하고 그곳에서 꽃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꽃은 그가 다녀온 곳과 전하는 소식을 연결해 줍니다. 마하깟사빠가 소식을 듣기 직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장례를 준비하던 꾸시나라와 소식을 듣는 길 위의 장면이 만나는 대목입니다. 뒤에서는 함께 있던 수행자들이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옵니다.

묵상

오래 함께한 스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하필 다른 교단의 낯선 사람에게서 길 위에서 듣게 됐어요. 소식을 듣는 방식이 소식 자체를 받아들이는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나는 큰 소식을 어떤 자리에서 처음 들었는지 떠올려 봐요.

그곳에 있던 수행자들 가운데 아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떤 이들은 팔을 치켜들고 울며, 발이 잘린 듯 쓰러지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스승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바른 길을 가신 분께서 너무 빨리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세상에서 보는 눈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 욕망에서 벗어난 수행자들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뎠다.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찌 여기서 달리 바랄 수 있겠는가?’ 그때 나이 들어 집을 떠난 수밧다라는 이가 그 모임에 앉아 있었다.

Tattha ye te bhikkhū avītarāgā appekacce bāhā paggayha kandanti, chinnapātaṁ papatanti, āvaṭṭanti, vivaṭṭanti: “atikhippaṁ bhagavā parinibbuto, atikhippaṁ sugato parinibbuto, atikhippaṁ cakkhuṁ loke antarahito”ti. Ye pana te bhikkhū vītarāgā, te satā sampajānā adhivāsenti: “aniccā saṅkhārā, taṁ kutettha labbhā”ti. Tena kho pana samayena subhaddo nāma vuddhapabbajito tassaṁ parisāyaṁ nisinno h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길 위에서 소식을 들은 수행자들의 반응도 앞서 스승 곁에 있던 이들의 반응과 같은 구조로 나옵니다. 아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떤 이들은 울고 구르며, 욕망에서 벗어난 이들은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면서 견딥니다. 장소가 달라도 같은 탄식과 같은 가르침이 되풀이됩니다. 마지막에는 나이 들어 집을 떠난 수밧다를 소개합니다. 그는 마하깟사빠와 함께 오는 무리에 있는 인물로, 앞서 마지막 밤에 스승을 만나 제자가 된 수밧다와 구별됩니다. 그의 말이 뒤에서 다른 반응 하나를 더 드러냅니다.

묵상

같은 소식 앞에서 어떤 이는 쓰러지고 어떤 이는 견뎠어요. 나는 갑작스러운 상실 앞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생각이 먼저인가요? ‘달리 어찌하겠는가’라는 말을 내 경험에 대어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그러자 나이 들어 집을 떠난 수밧다는 그 수행자들에게 말했다. “그만하십시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잘 벗어났습니다. ‘이것은 너희가 해도 된다. 이것은 너희가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우리는 시달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마하깟사빠 수행자는 수행자들에게 말했다. “그만하십시오, 벗들이여.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마십시오.”

Atha kho subhaddo vuddhapabbajito te bhikkhū etadavoca: “alaṁ, āvuso, mā socittha, mā paridevittha, sumuttā mayaṁ tena mahāsamaṇena. Upaddutā ca homa: ‘idaṁ vo kappati, idaṁ vo na kappatī’ti. Idāni pana mayaṁ yaṁ icchissāma, taṁ karissāma, yaṁ na icchissāma, na taṁ karissāmā”ti.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bhikkhū āmantesi: “alaṁ, āvuso, mā socittha, mā paridevittha.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수밧다는 슬퍼하지 말라며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스승이 정한 허용과 금지를 자신들이 시달린 일로 표현합니다. 이어 마하깟사빠도 같은 부름과 같은 말로 슬픔을 그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꺼내는 이유는 다릅니다. 수밧다는 제약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를 들고, 마하깟사빠는 스승이 미리 가르친 이별의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같은 말로 시작한다고 해서 같은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스승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우는가 조용한가라는 겉모습만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묵상

같은 말을 듣고도 그 뒤에 붙은 이유 때문에 뜻이 달라졌던 적이 있나요? 규칙이 사라져 편해진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 가벼워졌나요? 한편 그 규칙이 어떤 일을 위해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 부분도 있나요?

“벗들이여, 스승께서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떨어지고, 헤어지고, 달라지게 된다’고 말입니다. 벗들이여, 어찌 여기서 달리 바랄 수 있겠습니까? 태어나고 생겨나고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져 무너지기 마련인 것, 곧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의 몸마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말라족 우두머리 네 사람이 머리를 감고 아직 입지 않은 새 옷을 입고서 ‘우리가 스승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고 했지만 불을 붙일 수 없었다.

Nanu etaṁ, āvuso, bhagavatā paṭikacceva akkhātaṁ: ‘sabbeheva piyehi manāpehi nānābhāvo vinābhāvo aññathābhāvo’. Taṁ kutettha, āvuso, labbhā. ‘Yaṁ taṁ jātaṁ bhūtaṁ saṅkhataṁ palokadhammaṁ, taṁ tathāgatassāpi sarīraṁ mā palujjī’ti, netaṁ ṭhānaṁ vijjatī”ti. Tena kho pana samayena cattāro mallapāmokkhā sīsaṁ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mayaṁ bhagavato citakaṁ āḷimpessāmā”ti na sakkonti āḷimpet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하깟사빠는 슬퍼하지 말라는 말에 이어 스승이 미리 하신 설명을 들려줍니다. 사랑하는 것과도 헤어지게 되며 여러 조건으로 이루어진 몸은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몸도 그 사실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합니다. 앞에서 아난다에게 하셨던 말씀과 같은 내용이 이제 다른 곳의 수행자들에게 전해집니다. 뒤에서는 다시 꾸시나라의 장작더미로 장면이 옮겨 갑니다. 네 우두머리가 준비를 갖추고도 불을 붙이지 못합니다. 앞서 여덟 사람이 몸을 들어 올리지 못했던 일과 비슷한 막힘이 나옵니다.

묵상

마하깟사빠는 스승의 죽음이라는 가장 큰 상실 앞에서 스승이 미리 하신 말씀을 꺼내요. 나는 힘든 일을 겪을 때 누군가에게서 미리 들은 말이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나요? 아니면 그런 말이 오히려 멀게 느껴진 적도 있었나요?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아누룻다 수행자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아누룻다여, 머리를 감고 아직 입지 않은 새 옷을 입은 이 말라족 우두머리 네 사람이 ‘우리가 스승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고 해도 불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조건은 무엇입니까?” “와셋타들이여, 신들의 뜻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존경하는 수행자님, 신들의 뜻은 어떻습니까?”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āyasmantaṁ anuruddhaṁ etadavocuṁ: “ko nu kho, bhante anuruddha, hetu ko paccayo, yenime cattāro mallapāmokkhā sīsaṁnhātā ahatāni vatthāni nivatthā: ‘mayaṁ bhagavato citakaṁ āḷimpessāmā’ti na sakkonti āḷimpetun”ti? “Aññathā kho, vāseṭṭhā, devatānaṁ adhippāyo”ti. “Kathaṁ pana, bhante, devatānaṁ adhippāy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말라족은 불을 붙이지 못한 이유와 조건을 아누룻다에게 묻습니다. 네 사람이 갖춘 준비와 하려던 일을 다시 말한 뒤 왜 되지 않는지를 묻는 방식입니다. 아누룻다는 신들의 뜻이 다르다고 짧게 답합니다. 앞에서 몸을 옮기려던 때에도 비슷한 질문과 답이 있었으므로 신들의 뜻이 여기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불이 붙을 때에 관한 신들의 뜻이 나옵니다. 말라족이 그 뜻을 되묻자 다음에는 마하깟사빠가 마지막으로 예를 올릴 때까지 기다린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묵상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이유를 알 수 없이 막히는 일이 있었나요? 말라족은 실패의 까닭을 캐묻고 나서야 답을 얻어요. 나는 막혔을 때 자책이 먼저 나오는 편인가요, 이유를 묻는 쪽이 먼저인가요?

“와셋타들이여, 신들의 뜻은 이렇습니다. ‘마하깟사빠 수행자가 오백 명가량 되는 큰 수행자 무리와 함께 빠와에서 꾸시나라로 오는 길에 있다. 마하깟사빠 수행자가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릴 때까지 스승의 장작더미는 타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수행자님, 신들의 뜻대로 하십시오.”

“Devatānaṁ kho, vāseṭṭhā, adhippāyo: ‘ayaṁ āyasmā mahākassapo pāvāya kusināraṁ addhānamaggappaṭipanno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ṁ pañcamattehi bhikkhusatehi. Na tāva bhagavato citako pajjalissati, yāvāyasmā mahākassapo bhagavato pāde sirasā na vandissatī’”ti. “Yathā, bhante, devatānaṁ adhippāyo, tathā hot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신들의 뜻은 마하깟사빠가 도착하여 예를 올릴 때까지 장작더미가 타오르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함께 오는 수행자들의 수는 오백 명가량이라고 전합니다. 앞에서는 길 위의 마하깟사빠가 소식을 듣는 장면이 나왔고, 여기서는 그의 도착이 장례의 진행과 연결됩니다. 기다려야 할 조건은 그가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리는 일입니다. 말라족은 그 뜻대로 하라고 답합니다. 이어서 그와 수행자들이 와서 예를 올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묵상

중요한 자리에 누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본 적이 있나요? 기다리는 사람들과 오는 사람의 사정은 어떻게 달랐나요? 함께할 시간을 마련하려고 일의 순서를 바꾼 경험이 있다면 어떤 점이 기억나나요?

그러자 마하깟사빠 수행자는 꾸시나라의 마꾸따반다나라는 말라족의 예배 장소로, 스승의 장작더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겉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두 손을 모아 올린 뒤, 장작더미를 오른쪽에 두고 세 번 돌고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렸다. 그 오백 수행자들도 겉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두 손을 모아 올린 뒤, 장작더미를 오른쪽에 두고 세 번 돌고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렸다.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yena kusinārā makuṭabandhanaṁ nāma mallānaṁ cetiyaṁ, yena bhagavato citak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kaṁsaṁ cīvaraṁ katvā añjaliṁ paṇāmetvā tikkhattuṁ citakaṁ padakkhiṇaṁ katvā bhagavato pāde sirasā vandi. Tānipi kho pañcabhikkhusatāni ekaṁsaṁ cīvaraṁ katvā añjaliṁ paṇāmetvā tikkhattuṁ citakaṁ padakkhiṇaṁ katvā bhagavato pāde sirasā vand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하깟사빠는 도착하여 겉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두 손을 모아 올립니다. 장작더미를 오른쪽에 두고 세 번 돈 뒤 스승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립니다. 장작더미를 오른쪽에 두고 도는 것은 예를 올리는 격식입니다. 함께 온 오백 수행자도 같은 행동을 하며 본문은 그 순서를 다시 모두 적습니다. 앞서 불이 타오르기 위한 조건으로 말한 마지막 인사가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옷과 천을 어떻게 열었는지 같은 세부 장면은 서술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이들이 예를 올린 뒤 불이 저절로 붙었다고 합니다.

묵상

마하깟사빠는 도착하자마자 말을 하지 않고 한쪽 어깨를 드러내 합장한 채 세 바퀴를 돌아요. 말 없이 몸으로 인사하는 방식에는 어떤 마음이 담길까요?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말과 몸짓 중 무엇에 더 기대는 편인가요?

마하깟사빠 수행자와 그 오백 수행자가 예를 올리자 스승의 장작더미는 저절로 타올랐다. 스승의 몸이 탈 때 겉피부, 속피부, 살, 힘줄,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는 액에서는 재도 그을음도 나타나지 않았다. 뼈(사리라)만 남았다.

Vandite ca panāyasmatā mahākassapena tehi ca pañcahi bhikkhusatehi sayameva bhagavato citako pajjali. Jhāyamānassa kho pana bhagavato sarīrassa yaṁ ahosi chavīti vā cammanti vā maṁsanti vā nhārūti vā lasikāti vā, tassa neva chārikā paññāyittha, na masi; sarīrāneva avasiss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하깟사빠와 수행자들이 예를 올린 뒤 장작더미가 저절로 타오릅니다. 앞서 사람이 불을 붙이지 못하던 일과 신들이 설명한 기다림의 조건이 여기서 이어집니다. 몸이 탈 때 다섯 부분에서는 재도 그을음도 나타나지 않고 뼈만 남았다고 전합니다. 이는 이 경이 전하는 특별한 장례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남았다고 하는 말은 앞의 몸 전체와 구별되는 뼈들을 가리킵니다. 뒤에서는 타고 남는 것이 없다는 비유와 불이 꺼지는 일을 설명한 뒤, 남은 뼈를 여러 곳에서 나누어 모시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묵상

불이 저절로 붙은 시점이 마하깟사빠와 수행자들이 절을 마친 바로 뒤라는 점이 눈에 띄어요. 어떤 일이 진행되려면 꼭 필요한 마무리가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나에게는 그런 순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올려 봐요.

버터를 녹여 찌꺼기를 거른 기름이나 다른 기름이 탈 때 재도 그을음도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스승의 몸이 탈 때에도 겉피부, 속피부, 살, 힘줄,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는 액에서는 재도 그을음도 나타나지 않았다. 뼈만 남았다. 그 오백 쌍의 천 가운데 가장 안쪽과 가장 바깥쪽, 두 장만 타지 않았다.

Seyyathāpi nāma sappissa vā telassa vā jhāyamānassa neva chārikā paññāyati, na masi; evameva bhagavato sarīrassa jhāyamānassa yaṁ ahosi chavīti vā cammanti vā maṁsanti vā nhārūti vā lasikāti vā, tassa neva chārikā paññāyittha, na masi; sarīrāneva avasissiṁsu. Tesañca pañcannaṁ dussayugasatānaṁ dveva dussāni na ḍayhiṁsu yañca sabbaabbhantarimaṁ yañca bāhira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앞에서 몸이 타고 뼈만 남았다는 설명에 기름이 타는 비유를 덧붙입니다. 버터를 녹여 거른 기름과 다른 기름이 재나 그을음을 남기지 않고 타는 모습에 견줍니다. 이는 경전이 드는 비유입니다. 몸의 다섯 부분과 두 가지 타고 남는 흔적을 다시 꼽은 뒤 뼈만 남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몸을 감싼 천 가운데 가장 안쪽과 가장 바깥쪽 두 장은 타지 않았다고 덧붙입니다. 이 결과를 전한 뒤 남은 불을 끄는 일이 이어집니다.

묵상

이야기에서 가장 안쪽과 가장 바깥쪽 천 두 장만 남았다는 세부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큰 사건을 들을 때 전체 줄거리보다 작은 물건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은 적이 있나요? 그 물건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승의 몸이 다 타자 허공에서 물줄기가 나타나 스승의 장작더미 불을 껐다. 살라나무에서도 물이 솟아올라 스승의 장작더미 불을 껐다. 꾸시나라의 말라족도 온갖 향을 탄 물로 스승의 장작더미 불을 껐다.

Daḍḍhe ca kho pana bhagavato sarīre antalikkhā udakadhārā pātubhavitvā bhagavato citakaṁ nibbāpesi. Udakasālatopi abbhunnamitvā bhagavato citakaṁ nibbāpesi. Kosinārakāpi mallā sabbagandhodakena bhagavato citakaṁ nibbāp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스승의 몸이 다 탄 뒤 세 갈래의 물이 불을 끕니다. 허공에서 나타난 물줄기, 살라나무에서 솟은 물, 말라족이 쓰는 향을 탄 물입니다. 불을 껐다는 말을 세 번 되풀이하며 자연의 특별한 모습과 사람들의 행동을 나란히 놓습니다. 스승을 모신 장례가 불을 붙이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끄는 일까지 이어집니다. 그 뒤에는 남은 뼈를 회관에 모시고 다시 이레 동안 기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묵상

불을 끄는 물이 허공에서도, 나무에서도, 사람의 손에서도 왔다고 하네요. 세 가지 물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나요? 마무리를 사람이 직접 하는 장면은 어떻게 읽히나요? 정해진 답은 없어요.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스승의 뼈를 회관에 모시고 창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활로 둘레에 담을 두르게 했다. 이레 동안 춤과 노래와 연주와 꽃다발과 향으로 존중하고 받들고 귀히 여기고 공경했다.

Atha kho kosinārakā mallā bhagavato sarīrāni sattāhaṁ sandhāgāre sattipañjaraṁ karitvā dhanupākāraṁ parikkhipāpetvā naccehi gītehi vāditehi mālehi gandhehi sakkariṁsu garuṁ kariṁsu mānesuṁ pūjesuṁ.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불이 꺼진 뒤 말라족은 남은 뼈를 회관에서 기립니다. 창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활로 둘레에 담을 두르는 모습은 뼈를 지키는 준비로 읽힙니다. 그 안에서는 앞서 몸을 모셨을 때와 같은 다섯 방식으로 예를 올립니다. 몸을 태우기 전 여러 날의 공경과는 별개로, 이번에는 남은 뼈를 이레 동안 기린다고 합니다. 뒤에서 여러 곳의 사람들이 그 뼈를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이 대목은 뼈가 어디에 모셔져 있으며 누가 맡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 주어 그 뒤의 대화를 준비합니다.

묵상

창과 활로 사리를 둘러싸고, 그 안에서는 춤과 노래로 이레를 보냈다고 해요. 지키는 마음과 기리는 마음이 한 장소에 함께 있는 모습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이레라는 시간은 어떤 길이로 다가오나요?

40 남은 뼈를 여덟 몫으로 나누다 11구절

여러 지역에서 스승의 뼈를 청하자 꾸시나라 말라족은 거절합니다. 도나가 싸우지 말고 여덟 몫으로 나누자고 권하며, 항아리와 숯의 행방도 정해집니다.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은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러자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도 왕족이고 나도 왕족이다. 나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나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웨살리의 릿차위들도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Assosi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i: “bhagavāpi khattiyo ahampi khattiyo, ahampi arahāmi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ah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ī”ti. Assosuṁ kho vesālikā licchavī: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 경의 처음에 왓지족을 공격하려던 아자따삿뚜 왕이 마지막에는 스승의 뼈를 청하는 인물로 다시 나옵니다. 이번에 내세우는 근거는 스승과 자신이 모두 왕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뼈 한 몫을 받아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고 전합니다. 소식을 듣는 장면과 사람을 보내는 행동이 이어져 죽음의 소식이 여러 지역에 닿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끝에서는 웨살리의 릿차위들도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한 사람의 청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무리의 요청으로 이어지는 시작입니다.

묵상

여러 사람이 같은 이를 기리고 싶어 할 때 저마다 어떤 이유를 말하나요? 가까웠던 관계나 함께한 장소가 먼저 떠오르나요? 내가 그런 요청을 전한다면, 받고 싶은 것과 함께 하려는 일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나요?

그러자 웨살리의 릿차위들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도 왕족이고 우리도 왕족이다. 우리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끼야족도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Atha kho vesālikā licchavī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uṁ: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Assosuṁ kho kapilavatthuvāsī sakyā: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웨살리의 릿차위들은 앞서 소식을 듣고 이제 꾸시나라에 사람을 보냅니다. 아자따삿뚜와 같이 스승과 자신들이 모두 왕족이라는 점을 말하고 뼈 한 몫을 청합니다. 앞서 왕 한 사람이 ‘나도’라고 말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릿차위 무리가 ‘우리도’라고 말합니다.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는 뜻은 같습니다. 이렇게 같은 요청을 하는 무리가 점점 늘어납니다. 끝에서는 스승과 같은 집안의 까삘라왓투 사끼야족이 소식을 듣습니다. 사끼야족은 왕족이라는 점과는 다른 연고를 근거로 말합니다.

묵상

혼자 청할 때와 여러 사람을 대표해 청할 때 내 말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함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이야기해 본 적이 있나요? 같은 말을 하더라도 각자의 이유가 달랐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 기억나나요?

그러자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끼야족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은 우리 친족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이다. 우리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알라깝빠의 불리족도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Atha kho kapilavatthuvāsī saky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uṁ: “bhagavā amhākaṁ ñātiseṭṭho,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Assosuṁ kho allakappakā bulayo: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사끼야족은 스승이 자신들의 친족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이라는 점을 내세웁니다. 앞의 왕과 릿차위들이 왕족이라는 같은 신분을 말한 것과는 다른 근거입니다. 다만 청하는 내용은 뼈 한 몫과 그 뼈를 모실 탑, 기리는 행사로 같습니다. 같은 결실을 원하면서도 각 무리가 자신과 스승의 관계를 다르게 설명합니다. 이런 차이를 통해 스승의 죽음이 여러 지역과 집단의 일이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뒤에서는 알라깝빠의 불리족이 소식을 듣고 다시 같은 방식의 요청을 보내게 됩니다.

묵상

가족이나 친족으로서 기억하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달랐던 적이 있나요? 기리는 자리에서 그 여러 기억을 어떻게 함께 들을 수 있을까요?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서 나온 기억인가요?

그러자 알라깝빠의 불리족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도 왕족이고 우리도 왕족이다. 우리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라마가마의 꼴리야족도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Atha kho allakappakā bulayo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uṁ: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Assosuṁ kho rāmagāmakā koḷiyā: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알라깝빠의 불리족도 왕족이라는 점을 말하며 뼈 한 몫을 청합니다. 앞의 릿차위와 같은 말이지만 이번에는 다른 지역의 무리가 주체입니다. 같은 요청이 여러 지역에서 되풀이해 들어옵니다. 기리는 탑과 행사를 약속하는 내용도 빠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라마가마의 꼴리야족이 소식을 듣습니다. 여러 요청이 다 나온 뒤에야 뼈를 맡고 있는 꾸시나라 말라족의 답이 나옵니다.

묵상

같은 부탁을 여러 사람에게서 잇따라 들어 본 적이 있나요? 말은 비슷해도 사람마다 다른 사정이 보였나요? 누구의 말을 먼저 들을지 고민했던 때가 있다면 공평하게 듣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나요?

그러자 라마가마의 꼴리야족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도 왕족이고 우리도 왕족이다. 우리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웻타디빠에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도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Atha kho rāmagāmakā koḷiy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uṁ: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Assosi kho veṭṭhadīpako brāhmaṇo: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라마가마의 꼴리야족도 뼈 한 몫을 청하며 왕족이라는 점을 듭니다. 기리는 탑과 행사를 마련하겠다는 말까지 앞의 요청과 같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소식을 듣는 이는 웻타디빠에서 제사를 맡는 계층의 한 사람입니다. 여러 무리의 반복 속에서 다른 신분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가 어떤 근거로 청할지는 다음 대목에서 이어집니다. 각 요청의 결과를 곧바로 말하지 않고 소식과 청을 차례로 이어 붙여, 뼈를 나누는 문제가 여러 관계를 함께 헤아려야 하는 일로 커지는 모습을 전합니다.

묵상

서로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이 말한 뒤 다른 배경의 한 사람이 나설 때 분위기가 달라진 적이 있나요? 나는 그 사람의 이유를 얼마나 들으려 했나요? 익숙한 기준 밖에서 새로 알게 된 사정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그러자 웻타디빠에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은 왕족이고 나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이다. 나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나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빠와의 말라족도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Atha kho veṭṭhadīpako brāhmaṇo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i: “bhagavāpi khattiyo ahampismi brāhmaṇo, ahampi arahāmi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ah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ī”ti. Assosuṁ kho pāveyyakā mallā: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웻타디빠의 사람은 스승과 자신이 같은 신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스승은 왕족이고 자신은 제사를 맡는 계층이라고 각각 밝힙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뼈 한 몫을 받을 만한 자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뒤의 탑과 행사에 관한 말은 앞의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 대목은 다른 신분에서도 기리는 일에 참여하려는 요청이 나왔음을 보여 줍니다. 이 경은 그 신분이 옳은 근거인지 따로 밝히지 않습니다. 끝에서는 빠와의 말라족이 소식을 듣고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청하게 됩니다.

묵상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이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할 때 어떤 이유에 귀 기울이게 되나요? 나도 익숙하지 않은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때 나를 소개하며 가장 먼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빠와의 말라족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도 왕족이고 우리도 왕족이다. 우리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이렇게 말하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그 공동체들과 무리들에게 말했다. “스승은 우리 마을 땅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는 스승의 뼈 한 몫을 내주지 않겠다.”

Atha kho pāveyyakā mall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uṁ: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Evaṁ vutte, kosinārakā mallā te saṅghe gaṇe etadavocuṁ: “bhagavā amhākaṁ gāmakkhette parinibbuto, na mayaṁ dassāma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n”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빠와의 말라족까지 청한 뒤에야 꾸시나라 말라족의 답이 나옵니다. 같은 말라족이라도 사는 곳이 달라 요청하는 쪽과 뼈를 맡은 쪽이 구별됩니다. 꾸시나라 사람들은 스승이 자기 마을에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근거로 나누어 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앞의 요청자들이 신분이나 친족 관계를 말한 것과 달리 장소가 근거로 나옵니다.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부딪히는 대목입니다. 뒤에서 도나는 스승이 가르친 참음과 견딤을 말하며, 이 뼈를 두고 싸우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권합니다.

묵상

같은 일을 두고 서로 다른 이유가 맞설 때 나는 어느 이유에 먼저 마음이 기우나요? 내가 맡아 온 것을 나누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나요? 내 입장을 말하면서 상대의 이유도 들을 수 있었던 방식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말하자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 도나는 그 공동체들과 무리들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분들이여, 제 한마디 말을 들어 주십시오. 우리의 깨달은 이는 참고 견딤을 가르치셨습니다. 가장 뛰어난 분의 뼈 한 몫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Evaṁ vutte, doṇo brāhmaṇo te saṅghe gaṇe etadavoca: “Suṇantu bhonto mama ekavācaṁ, Amhāka buddho ahu khantivādo; Na hi sādhu yaṁ uttamapuggalassa, Sarīrabhāge siyā sampahāro.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꾸시나라 말라족의 거절 뒤에 도나가 여러 무리에게 말합니다. 그는 누구에게 더 권리가 있는지부터 따지지 않고, 스승이 참고 견딤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먼저 꺼냅니다. 그분의 뼈를 두고 싸우는 것은 그 가르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내 한마디를 들어 달라는 청으로 시작한 말은 뒤에서 여덟 몫으로 나누자는 제안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신분과 관계만 앞세우던 대화에, 도나는 모두가 기리는 이의 가르침을 새 기준으로 더합니다. 말로 갈등을 풀 방법을 제시하는 전환점입니다.

묵상

도나는 스승이 참고 견디는 길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앞세워요. 다투고 싶은 마음이 커질 때, 내가 기대는 가르침이나 말이 있나요? 한마디를 들어 달라는 부탁이 이 자리에서 어떻게 들렸을까요?

“존경하는 분들이여,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서로 기뻐하며 여덟 몫으로 나눕시다. 기리는 탑들이 여러 방향에 널리 서게 합시다. 많은 사람이 눈 밝은 분께 맑은 믿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사를 맡는 계층의 분이여, 그대가 직접 스승의 뼈를 여덟 몫으로 똑같이 잘 나누어 주십시오.”

Sabbeva bhonto sahitā samaggā, Sammodamānā karomaṭṭhabhāge; Vitthārikā hontu disāsu thūpā, Bahū janā cakkhumato pasannā”ti. “Tena hi, brāhmaṇa, tvaññeva bhagavato sarīrāni aṭṭhadhā samaṁ savibhattaṁ vibhajāhī”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도나는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뻐하며 여덟 몫으로 나누자고 제안합니다. 이어 여러 방향에 탑이 서게 하자고 하고, 많은 사람이 눈 밝은 분께 맑은 믿음을 품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말은 이미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놓는 표현입니다. 여러 무리는 도나에게 직접 똑같이 나누어 달라고 맡깁니다. 나눔의 제안과 나누는 일을 맡기는 답이 한 대목에 놓여, 거절로 막혀 있던 일이 합의로 바뀌는 순간을 보여 줍니다.

묵상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누군가에게 나누는 일을 맡겨 본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이 공평하게 해 주리라고 믿은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결과만큼이나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이여.” 하고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 도나는 그 공동체들과 무리들에게 답했다. 스승의 뼈를 여덟 몫으로 똑같이 잘 나눈 뒤 그 공동체들과 무리들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분들이여, 이 항아리를 제게 주십시오. 저도 이 항아리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습니다.” 그들은 브라흐마나 도나에게 항아리를 주었다. 삡팔리와나의 모리야족은 이런 소식을 들었다. “스승께서 꾸시나라에서 완전히 꺼지셨다고 한다.”

“Evaṁ, bho”ti kho doṇo brāhmaṇo tesaṁ saṅghānaṁ gaṇānaṁ paṭissutvā bhagavato sarīrāni aṭṭhadhā samaṁ suvibhattaṁ vibhajitvā te saṅghe gaṇe etadavoca: “imaṁ me bhonto tumbaṁ dadantu ahampi tumbassa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ī”ti. Adaṁsu kho te doṇassa brāhmaṇassa tumbaṁ. Assosuṁ kho pippalivaniyā moriyā: “bhagavā kira kusinārāyaṁ parinibbuto”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도나는 부탁을 받아들여 뼈를 여덟 몫으로 똑같이 나눕니다. 그 일을 마친 뒤 자신에게는 항아리를 달라고 청하고, 그것을 모신 탑과 기리는 행사를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여러 무리는 그 청도 받아들입니다. 뼈를 나누는 문제를 풀어 준 도나에게는 뼈와 함께 쓰였던 그릇이 남습니다. 여기서 항아리를 청한 속마음을 따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이어 삡팔리와나의 모리야족이 소식을 듣습니다. 나눔이 끝난 뒤에도 또 다른 요청이 도착하여, 이미 나누어진 것과 남은 것을 어떻게 할지의 문제가 이어집니다.

묵상

여러 사람의 일을 조정한 뒤 나도 원하는 것을 말해야 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을 언제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정했나요? 다른 이들의 몫을 살피는 일과 내 뜻을 전하는 일이 함께 가능했던 순간이 기억나나요?

그러자 삡팔리와나의 모리야족은 꾸시나라의 말라족에게 사람을 보내 전했다. “스승도 왕족이고 우리도 왕족이다. 우리도 스승의 뼈 한 몫을 받을 만하다. 우리도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 “스승의 뼈는 남은 몫이 없습니다. 스승의 뼈는 이미 나누어졌습니다. 여기서 숯을 가져가십시오.” 그들은 그곳에서 숯을 가져갔다.

Atha kho pippalivaniyā moriyā kosinārakānaṁ mallānaṁ dūtaṁ pāhesuṁ: “bhagavāpi khattiyo mayampi khattiyā, mayampi arahāma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aṁ, mayampi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karissāmā”ti. “Natthi bhagavato sarīrānaṁ bhāgo, vibhattāni bhagavato sarīrāni. Ito aṅgāraṁ harathā”ti. Te tato aṅgāraṁ hari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모리야족은 다른 왕족 무리들과 같은 근거와 같은 약속으로 뼈를 청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미 나누어졌다는 답을 듣습니다. 앞서 꾸시나라 말라족이 나누어 주지 않겠다고 한 거절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지금은 남은 몫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대신 장작이 타고 남은 숯을 가져가라고 하며 모리야족은 그것을 가져갑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따로 말하지 않습니다. 뒤의 목록에서는 그 숯을 모신 탑도 기리는 장소로 세었다고 하여, 남은 것마다 각각의 행방을 전합니다.

묵상

원하던 것이 이미 다른 곳에 나누어진 뒤 도착한 적이 있나요? 그때 남아 있는 다른 선택을 어떻게 살펴보았나요? 처음 생각한 것과 달라도 내게 뜻이 있었던 것을 골랐다면 무엇이 그 선택을 도왔나요?

41 여러 곳에 세운 기리는 탑 5구절

뼈를 모신 탑 여덟 곳과 항아리의 탑, 숯의 탑을 전합니다. 마지막 게송은 남은 뼈와 치아 등이 여러 곳에서 공경받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그러자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은 라자가하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웨살리의 릿차위들도 웨살리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끼야족도 까삘라왓투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알라깝빠의 불리족도 알라깝빠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Atha kho rājā māgadho ajātasattu vedehiputto rājagahe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āsi. Vesālikāpi licchavī vesāliyaṁ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aṁsu. Kapilavatthuvāsīpi sakyā kapilavatthusmiṁ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aṁsu. Allakappakāpi bulayo allakappe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aṁsu.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나누는 일이 끝난 뒤 각 지역에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전합니다. 아자따삿뚜 왕은 라자가하에서, 세 무리는 각각 웨살리와 까삘라왓투와 알라깝빠에서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엽니다. 앞에서 몫을 청하며 하겠다고 한 일이 이제 실제로 했다는 이야기로 바뀝니다. 같은 문장을 지역마다 반복하여 각자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는 네 곳이 나오고 다음에 나머지 곳들이 이어집니다. 뼈가 한곳에서 나뉜 뒤 여러 지역의 기리는 장소로 이어지는 결과를 차례로 기록하는 부분입니다.

묵상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같은 이를 저마다의 자리에서 기린 경험이 있나요? 서로 만나지 않아도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나요? 각자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정했다면 어떤 방식이었나요?

라마가마의 꼴리야족도 라마가마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웻타디빠에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도 웻타디빠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빠와의 말라족도 빠와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꾸시나라의 말라족도 꾸시나라에서 스승의 뼈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브라흐마나 도나도 항아리를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Rāmagāmakāpi koḷiyā rāmagāme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aṁsu. Veṭṭhadīpakopi brāhmaṇo veṭṭhadīpe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āsi. Pāveyyakāpi mallā pāvāyaṁ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aṁsu. Kosinārakāpi mallā kusinārāyaṁ bhagavato sarī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aṁsu. Doṇopi brāhmaṇo tumbassa thūpañca mahañca akās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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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모신 탑의 나머지 네 곳과 항아리를 모신 도나의 탑을 전합니다. 요청했던 여러 무리뿐 아니라 처음에 뼈를 맡아 지키던 꾸시나라 말라족도 같은 형식으로 나옵니다. 모두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는 결과입니다. 마지막 도나의 경우에는 뼈 대신 항아리가 들어갑니다. 같아 보이는 반복 속에서도 무엇을 모셨는지가 달라지는 지점입니다. 뒤에서 숯을 모신 탑까지 더하면 전체 수가 정리됩니다. 탑마다 뼈, 항아리, 숯 가운데 무엇을 모셨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묵상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해 주는 물건이 사람마다 달랐던 적이 있나요? 다른 이에게는 평범한 물건이 내게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물건 자체보다 함께 떠오르는 일이나 말이 있다면 어떤 기억인가요?

삡팔리와나의 모리야족도 삡팔리와나에서 숯을 모신 탑을 세우고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이렇게 뼈를 모신 탑이 여덟, 아홉째는 항아리의 탑, 열째는 숯의 탑이었다. 옛날에 이렇게 있었다. 눈 밝은 분의 뼈는 여덟 그릇 분량이었다. 일곱 그릇 분량은 잠부나무의 땅(잠부디빠)에서 공경받고,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의 한 그릇 분량은 라마가마에서 뱀 모습의 신령들을 다스리는 왕(나가라자)이 공경한다.

Pippalivaniyāpi moriyā pippalivane aṅgārānaṁ thūpañca mahañca akaṁsu. Iti aṭṭha sarīrathūpā navamo tumbathūpo dasamo aṅgārathūpo. Evametaṁ bhūtapubbanti. Aṭṭhadoṇaṁ cakkhumato sarīraṁ, Sattadoṇaṁ jambudīpe mahenti; Ekañca doṇaṁ purisavaruttamassa, Rāmagāme nāgarājā mahe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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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을 모신 탑까지 기록한 뒤 뼈의 탑 여덟, 항아리의 탑 하나, 숯의 탑 하나로 열 곳을 정리합니다. 이어지는 노래는 뼈의 분량과 공경받는 곳을 다시 전합니다. 그릇 분량으로 풀어 쓴 도나는 옛 부피 단위이며, 실제 항아리 수를 새로 세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잠부디빠는 인도 땅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인간 세상 전체와 같지는 않습니다. 노래는 그곳의 일곱 분량과 라마가마의 신령 왕이 기리는 한 분량을 나눕니다. 앞의 산문과 마지막 노래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뼈의 행방을 전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같은 일을 장소별로 이야기할 때와 수량으로 정리할 때 무엇이 다르게 남나요? 내가 들은 긴 이야기를 다시 전하려고 몇 가지로 묶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빠뜨리지 않고 남기고 싶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치아 하나는 서른셋 신들의 하늘에 사는 신들이 공경하고, 하나는 간다라의 도시에서 공경받는다. 또 하나는 깔링가 왕의 땅에 있고, 또 하나는 뱀 모습의 신령들의 왕이 공경한다. 그 뼈의 힘으로 이 풍요로운 땅은 공경하여 바치는 가장 훌륭한 물건들로 꾸며졌다. 이처럼 눈 밝은 분의 뼈는 존경할 이를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깊이 공경받는다.

Ekāhi dāṭhā tidivehi pūjitā, Ekā pana gandhārapure mahīyati; Kāliṅgarañño vijite punekaṁ, Ekaṁ pana nāgarājā maheti. Tasseva tejena ayaṁ vasundharā, Āyāgaseṭṭhehi mahī alaṅkatā; Evaṁ imaṁ cakkhumato sarīraṁ, Susakkataṁ sakkatasakkateh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이 노래는 치아 네 개가 공경받는 곳을 하나씩 전합니다. 서른셋 신들의 하늘, 간다라의 도시, 깔링가 왕의 땅, 뱀 모습 신령들의 왕이 나옵니다. 그 뒤에는 뼈의 힘으로 땅이 바치는 물건들로 꾸며졌다고 노래합니다. 앞에서 각 지역이 세운 탑을 기록하던 문장과 달리, 여기서는 하늘과 땅에 퍼진 공경을 노래로 전합니다. 마지막에는 존경할 이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스승의 뼈를 깊이 공경한다고 말합니다. 이 넓어진 공경의 장면이 마지막 노래의 권유로 넘어갑니다.

묵상

소중한 물건이나 기억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한곳에 모여 있을 때와 다른 점이 있나요? 멀리 있는 사람과 같은 기억을 나누게 된 적이 있다면 무엇이 이어 주었나요?

신들의 왕과 뱀 모습 신령들의 왕과 사람들의 왕들이 공경하고, 사람들의 가장 뛰어난 왕들도 마찬가지로 공경한다. 기회를 얻거든 두 손을 모아 그것에 예를 올려라. 깨달은 이는 세상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긴 기간(깝빠)이 백 번 지나도록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르게 난 치아 마흔 개와 머리카락과 몸의 털 모두를 신들이 하나씩 가져가 여러 세계에 두었다.

Devindanāgindanarindapūjito, Manussindaseṭṭhehi tatheva pūjito; Taṁ vandatha pañjalikā labhitvā, Buddho have kappasatehi dullabhoti. Cattālīsa samā dantā, kesā lomā ca sabbaso; Devā hariṁsu ekekaṁ, cakkavāḷaparamparāti.

디가 니까야 DN 16 마하빠리닙바나 숫따 (완전히 꺼짐에 관한 큰 이야기 - 대반열반경)

배경

마지막 노래는 기회를 얻으면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리라고 권합니다. 깨달은 이를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가 붙습니다. 여기의 깝빠는 앞에서 한 사람의 수명을 말할 때와 달리, 세상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긴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어 고르게 난 치아 마흔 개와 머리카락과 몸의 털이 여러 세계로 옮겨졌다고 전합니다. 신들의 왕과 신령들의 왕, 사람들의 왕이 함께 기린다는 노래로 마지막 여정의 이야기를 맺습니다. 이는 그 뒤의 장례와 기림을 전하는 맺음 노래입니다.

묵상

긴 이야기를 다 읽은 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만남이나 말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 곁에서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나요? 특별한 형식이 없어도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어떤 작은 말이나 행동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