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을 거절하고 죽음과 감각적 욕망의 위험을 설해 출가를 선택합니다.
만따와띠 성에서 꼰짜 왕의
으뜸 왕비에게 딸이 있었으니, 수메다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맑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Mantāvatiyā nagare, Rañño koñcassa aggamahesiyā; Dhītā āsiṁ sumedhā, Pasāditā sāsanakareh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의 긴 노래는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부터 밝히며 시작합니다. 만따와띠 성, 꼰짜 왕과 그의 으뜸 왕비, 그 딸 수메다가 차례로 나옵니다. 이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수메다가 맑은 믿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왕실의 딸이라는 신분 다음에 믿음을 얻은 이야기가 놓여, 이 노래 전체가 그 만남에서 출발합니다.
묵상
수메다는 왕실의 딸로 소개되고, 곧이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맑은 믿음을 얻은 사람으로 이야기됩니다.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만남이 있었나요? 그 사람의 지위보다 어떤 모습이 마음을 열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는 계를 지켜 바르게 살았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많이 배워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잘 훈련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두 분 모두 귀 기울여 주십시오…”
Sīlavatī cittakathā, Bahussutā buddhasāsane vinitā; Mātāpitaro upagamma, Bhaṇati “ubhayo nisāme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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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메다가 어떤 사람인지 네 가지로 소개합니다. 계(바른 행실)를 지켰고, 말솜씨가 뛰어났고, 많이 배웠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수메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다가가 두 분 모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을 꺼냅니다. 이어지는 집을 떠나겠다는 요청은 이렇게 배우고 닦아 온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묵상
“두 분 모두 귀 기울여 주십시오”라는 부탁은 많이 배우고 닦은 사람의 말로 들립니다. 중요한 결심을 가족에게 알리기 전에, 내 안에서 충분히 살펴본 적이 있나요? 듣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도 먼저 분명히 말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기뻐합니다.
어떤 존재 상태도 영원하지 않으며
신들의 삶조차 그렇습니다.
하물며 헛되고 만족은 적으며
괴로움은 많은 감각적 욕망이야 어떻겠습니까?
Nibbānābhiratāhaṁ, Asassataṁ bhavagataṁ yadipi dibbaṁ; Kimaṅgaṁ pana tucchā kāmā, Appassādā bahuvighā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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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부모에게 먼저 자신이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 까닭으로 어떤 존재 상태도, 신들의 삶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듭니다. 신들의 삶도 끝난다면, 헛되고 만족은 적고 괴로움은 많은 감각적 욕망은 말할 것도 없다고 이어 갑니다.
묵상
신들의 삶처럼 좋은 조건도 영원하지 않다는 말은 “더 좋은 조건”만 바라던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손에 넣으면 안심할 줄 알았는데 얻고 나서도 불안했던 것이 있나요? 그것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무엇을 치러야 하는지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감각적 욕망은 뱀의 독처럼 쓰라린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거기에 넋을 잃습니다.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지옥에 보내져
매를 맞으며 괴로워합니다.
Kāmā kaṭukā āsī, Visūpamā yesu mucchitā bālā; Te dīgharattaṁ niraye, Samappitā haññante dukkhi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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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뱀의 독처럼 쓰라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이들이 그것에 넋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지옥에 보내져 매를 맞으며 괴로워한다고 이어 갑니다.
묵상
독처럼 쓰라린 것에 넋을 잃는 모습은, 처음의 끌림과 뒤따르는 괴로움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반복할수록 힘들어지는데도 첫 느낌 때문에 놓지 못한 습관이 있나요? 나를 탓하기보다, 그 뒤에 따라온 결과 하나를 차분히 살펴보세요.
악을 키우는 이들은 자신의 악행 때문에
낮은 세계에서 언제나 슬퍼합니다.
그 어리석은 이들은 몸과 말과
마음을 삼가지 않습니다.
Socanti pāpakammā, Vinipāte pāpavaddhino sadā; Kāyena ca vācāya ca, Manasā ca asaṁvutā bāl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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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지옥 이야기를 이어, 수메다는 괴로운 결과가 어디서 오는지 말합니다. 악을 키우는 이들이 자신의 악행 때문에 낮은 세계에서 언제나 슬퍼한다고 합니다. 그 어리석은 이들은 몸과 말과 마음을 삼가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몸, 말, 마음으로 지은 자기 행위에 두는 대목입니다.
묵상
몸과 말과 마음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해로운 습관을 키울 수 있어요. 오늘 하루 몸으로 한 행동과 말, 마음속에 품은 생각 가운데 삼가지 못한 것이 있었는지 하나씩 돌아볼까요? 세 곳을 한꺼번에 바꾸기 벅차면 하나만 골라 살펴보세요.
그 어리석고 지혜 없고 분별없는 이들은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가르침을 듣고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진리들을 깨닫지 못합니다.
Bālā te duppaññā, Acetanā dukkhasamudayoruddhā; Desente ajānantā, Na bujjhare ariyasaccā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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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앞에서 말한 어리석은 이들이 지혜도 분별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가로막혀 있어서, 가르침을 들어도 알지 못하고 거룩한 진리들을 깨닫지 못합니다. 가르침을 듣는 일과 그것을 삶에서 알아보는 일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묵상
말을 들었다는 것과 그 말이 내 삶에서 보인다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요. 잘 안다고 여겼는데 괴로움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놓쳐 버린 신호가 있었나요? 불편함이 처음 일어나는 몸의 감각과 마음의 말을 잠시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어머니, 훌륭한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들을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은 존재 상태를 반기고
신들 가운데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Saccāni amma buddhavaradesitāni, Te bahutarā ajānantā ye; Abhinandanti bhavagataṁ, Pihenti devesu upapatt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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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어머니를 직접 부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다고 말합니다. 그런 이들은 존재 상태를 반기고 신들 가운데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존재가 그대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지 못하면 새로운 존재를 갈망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이라고 해서 언제나 분명한 이해에서 나오지는 않아요. 주변에서 모두 성공이라고 부르지만 나에게는 같은 일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목표가 있나요? 남들이 바라는 것과 내가 실제로 홀가분하다고 느끼는 방향을 나란히 적어 보세요.
그러나 신들 가운데 태어남도
그대로 있지 않은 존재 상태여서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거듭거듭
태어나야 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Devesupi upapatti, Asassatā bhavagate aniccamhi; Na ca santasanti bālā, Punappunaṁ jāyitabbas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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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 가운데 태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을 두고, 수메다는 그 태어남조차 영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대로 있지 않은 존재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거듭 태어나야 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조건도 끝난다는 것을 보아야, 더 나은 태어남만 구하는 데서 벗어나 거듭 태어남 자체가 그치기를 바라게 됩니다.
묵상
좋은 조건도 언젠가 끝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지금 나는 그 조건에 얼마나 기대고 있나요?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일과 같은 불안을 되풀이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더 나은 다음 단계를 그리고 있다면, 그 단계가 지나간 뒤에 무엇을 또 바라게 될지도 살펴보세요.
네 가지 낮은 세계와
다른 두 갈래 세계에는 어떻게든 가게 됩니다.
그러나 낮은 세계에 떨어진 이들에게는
지옥에서는 수행자가 될 길이 없습니다.
Cattāro vinipātā, Duve ca gatiyo kathañci labbhanti; Na ca vinipātagatānaṁ, Pabbajjā atthi niray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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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갈 수 있는 곳을 네 가지 낮은 세계와 다른 두 갈래로 나누어 말합니다. 이런 곳들에는 어떻게든 가게 되지만, 낮은 세계에 떨어진 이들에게는 지옥에서는 집을 떠날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대목에서 수메다는 곧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묵상
네 낮은 세계와 두 행선지를 세는 말은 지금 닦을 수 있는 조건이 언제나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미뤄 둔 일 가운데, 지금의 체력과 도움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이번 주에 쓸 작은 기회 하나를 미리 정해 볼 수 있을까요?
두 분 모두 제가 열 가지 힘을 지닌 분의
가르침 안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바쁜 일은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Anujānātha maṁ ubhayo, Pabbajituṁ dasabalassa pāvacane; Appossukkā ghaṭissaṁ, Jātimaraṇappahān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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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모두에게, 자신이 열 가지 힘을 지닌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기 위해 힘쓰겠다는 뜻도 함께 밝힙니다. 수메다에게 이것은 힘을 한곳에 모아 태어남과 죽음의 문제를 풀려는 결심입니다.
묵상
수메다의 청에는 “무엇을 줄일지”와 “무엇을 힘써 할지”가 함께 들어 있어요. 새 길을 택할 때 할 일만 더하고 분주함은 그대로 둔 적이 있나요? 정말 중요한 일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줄일 일정 하나를 정해 보세요.
재앙 같고 알맹이 없는 이 몸,
이 존재 상태를 반긴들 무엇하겠습니까?
계속 존재하려는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을 멈추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Kiṁ bhavagate abhinanditena, Kāyakalinā asārena; Bhavataṇhāya nirodhā, Anujānātha pabbajissā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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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부모에게 집을 떠나기를 거듭 청합니다. 재앙 같고 알맹이 없는 이 몸, 이 존재 상태를 반긴들 무엇하겠느냐고 묻고, 계속 존재하려는 갈망을 멈추도록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다고 밝힙니다. 앞서 집을 떠나려는 뜻을 말한 데 이어, 몸에 알맹이가 없다는 데서 이유를 찾아 한 번 더 부탁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이 몸을 알맹이 없는 것으로 보고, 다시 태어나는 삶을 반길 까닭이 없다고 말해요. 몸이 달라질 때 내 가치까지 흔들린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몸을 돌보는 일과 나의 가치를 따로 두고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이 나오셨고
기회가 왔으며 때 아닌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와 깨끗한 수행을
저는 결코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Buddhānaṁ uppādo vivajjito, Akkhaṇo khaṇo laddho; Sīlāni brahmacariyaṁ, Yāvajīvaṁ na dūsey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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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지금을 기회가 온 때로 말합니다. 수행하기 어려운 때는 지나갔다고 하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와 깨끗한 수행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부모에게 하는 첫 호소는 이 다짐으로 끝납니다. 집을 떠나겠다는 허락을 남은 생 전체를 건 약속으로 뒷받침하는 말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부처님이 나오신 지금을 기회가 온 때로 보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와 깨끗한 수행을 지키겠다고 다짐해요. 오래 기다리던 조건이 마련됐는데 미뤄 두고 있는 약속이 있나요? 평생의 다짐이 버겁다면 오늘 지킬 수 있는 약속 하나를 정해 보세요.
수메다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죽음의 손아귀에 들고 말겠습니다.”
Evaṁ bhaṇati sumedhā, Mātāpitaro “na tāva āhāraṁ; Āharissaṁ gahaṭṭhā, Maraṇavasaṁ gatāva hessām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겠다고 부모에게 말합니다. 이대로 죽음의 손아귀에 들고 말겠다는 극단적인 말입니다.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간청 끝에 나온 말이며, 따라 하라고 권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어서 부모의 울음과 설득이 나옵니다.
묵상
음식을 끊고 죽음까지 받아들이겠다는 말에는 막다른 곳에 선 사람의 절박함이 담겨 있어요. 비슷한 마음이 든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믿을 만한 사람이나 의료진에게 알려볼 수 있을까요? 위험이 급하다면 응급 도움을 먼저 청해 주세요.
어머니는 괴로워 울었고
아버지도 온통 슬픔에 잠겼습니다.
누각 마루에 쓰러진 딸을
두 사람은 애써 설득하려 했습니다.
Mātā dukkhitā rodati pitā ca, Assā sabbaso samabhihato; Ghaṭenti saññāpetuṁ, Pāsādatale chamāpatit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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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괴로워 울고 아버지도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두 사람은 누각 마루에 쓰러진 딸을 애써 설득하려 합니다. 부모는 딸의 결심 앞에서 함께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묵상
어머니의 울음과 아버지의 슬픔을 보면 부모를 방해하는 사람으로만 볼 수 없어요. 소중한 사람의 결정으로 내가 그리던 삶이 바뀌어 슬퍼한 적이 있나요?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과 내 상실감이 함께 있을 자리를 내 보세요.
“얘야, 일어나렴. 왜 그렇게 슬퍼하니?
너는 이미 혼인하기로 정해졌단다.
와라나와띠의 잘생긴 아니까랏따 왕,
네가 그에게 주어졌단다…”
“Uṭṭhehi puttaka kiṁ soci, Tena dinnāsi vāraṇavatimhi; Rājā anīkaratto, Abhirūpo tassa tvaṁ dinn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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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바닥에 쓰러진 딸에게 일어나라고 하며 왜 슬퍼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고는 딸이 이미 와라나와띠의 아니까랏따 왕과 혼인하기로 정해졌다고 알립니다. 수메다가 바라는 고요히 꺼짐(닙바나)의 길과 부모가 마련한 왕실 혼인이 여기서 맞섭니다.
묵상
‘이미 정해졌다’는 말을 들으면 누가 정했고 나의 동의는 어디에 있었는지 묻게 돼요. 정해진 일이라서, 상대가 훌륭해서 내 뜻과 다른 일을 받아들인 적이 있나요? 내게 묻지 않고 진행된 일이 있다면 내가 동의하는지부터 말해 보세요.
너는 아니까랏따 왕의 아내,
으뜸 왕비가 될 거란다.
계를 지키는 일도, 깨끗하게 수행하는 일도,
집을 떠나 사는 일도 어렵단다, 얘야.
Aggamahesī bhavissasi, Anikarattassa rājino bhariyā; Sīlāni brahmacariyaṁ, Pabbajjā dukkarā puttak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모는 수메다가 아니까랏따 왕의 아내, 곧 으뜸 왕비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를 지키는 일도, 깨끗하게 수행하는 일도, 집을 떠나 사는 일도 어렵다고 덧붙입니다. 왕비가 되는 안정된 미래와 집을 떠나 사는 일의 어려움을 나란히 놓고 혼인을 택하도록 설득하는 말입니다.
묵상
으뜸 왕비라는 화려한 미래와 집을 떠나 사는 일의 어려움을 나란히 놓으면 선택이 쉬워 보여요. 그래도 쉽고 안정된 길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과 다르면 어떤 대가가 생길까요?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그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세요.
“왕권에는 명령할 힘과 재물과 권세가 있고
소유가 주는 즐거움도 있단다.
아직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렴.
얘야, 네 혼례를 치르자꾸나.”
Rajje āṇā dhanamissariyaṁ, Bhogā sukhā daharikāsi; Bhuñjāhi kāmabhoge, Vāreyyaṁ hotu te putt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모는 왕의 자리에 따르는 명령할 힘, 재물, 권세, 소유의 즐거움을 차례로 늘어놓습니다. 아직 젊으니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고 혼례를 치르자고 권하며 설득을 마칩니다. 세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한꺼번에 펼쳐 보인 말이며, 이어서 수메다가 대답합니다.
묵상
명령할 힘과 재물, 권세, 소유의 즐거움, 젊음이 혼례를 권하는 이유로 한꺼번에 나와요. 남들이 부러워할 조건과 내가 실제로 원하는 삶은 얼마나 겹치나요? ‘지금 아니면 못 누린다’는 조급함이 들 때 내 바람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보세요.
그러자 수메다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그 삶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거나 죽을 것이며
결코 혼인하지 않겠습니다…”
Atha ne bhaṇati sumedhā, “Mā edisikāni bhavagatamasāraṁ; Pabbajjā vā hohiti, Maraṇaṁ vā me na ceva vārey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모의 설득이 끝나자 수메다가 다시 말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하고,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그 삶은 알맹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집을 떠나거나 죽을 것이며 혼인하지는 않겠다고 밝힙니다. 강제된 혼인과 집을 떠나려는 뜻이 부딪친 막다른 대화이며, 목숨을 버리라는 권유로 옮겨 읽을 대목이 아닙니다.
묵상
집을 떠나거나 죽겠다는 말은 원치 않는 혼인 앞에서 느낀 막다른 심정을 전해요. 내게 선택지가 둘뿐이라고 느껴진다면 서둘러 정하지 말고, 다른 길을 함께 찾아 줄 사람에게 먼저 알려볼 수 있을까요? 위험이 급하다면 응급 도움을 먼저 청해 주세요.
왜 이 썩고 더러운 몸에 달라붙겠습니까?
흐르는 액체의 냄새가 나고 무시무시하며,
늘 더러운 것이 새어 나오는
오물 가득한 가죽 부대 같은 시신에 말입니다.
Kimiva pūtikāyamasuciṁ, Savanagandhaṁ bhayānakaṁ kuṇapaṁ; Abhisaṁviseyyaṁ bhastaṁ, Asakiṁ paggharitaṁ asucipuṇṇ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혼인을 거부한 수메다는 몸을 낱낱이 살펴 말하기 시작합니다. 썩어 가는 몸, 흐르는 액체의 냄새, 두려움을 주는 시신의 모습, 늘 새어 나오는 오물을 차례로 들며 자신이 왜 이런 몸에 매달리겠느냐고 묻습니다. 몸의 아름다움에만 마음을 두는 집착을 흔들려는 말이며, 몸을 미워하라고 권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묵상
‘오물 가득한 가죽 부대’라는 강한 표현은 겉모습에 대한 믿음을 흔들려는 관찰이에요. 수메다는 몸을 해치라고 말하지 않아요. 읽으며 몸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다면 이 비유에서 멈추고 지금의 몸을 돌보는 일부터 해 볼까요?
이렇게 알고 있는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시신은 혐오스럽고 살과 피가 묻었으며
벌레 떼의 보금자리요 새들의 먹이입니다.
이 몸이 무엇을 위해 주어졌겠습니까?
Kimiva tahaṁ jānantī, Vikūlakaṁ maṁsasoṇitupalittaṁ; Kimikulālayaṁ sakuṇabhattaṁ, Kaḷevaraṁ kissa diyya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의 말은 살과 피가 묻은 시신, 벌레 떼의 보금자리, 새들의 먹이로 이어집니다. 몸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아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겠느냐고 묻고, 이런 몸이 무엇을 위해 주어졌느냐고 되묻습니다. 왕비가 되어 누릴 삶을 권한 부모의 말에 몸의 끝을 들어 답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벌레 떼의 보금자리가 되고 새들의 먹이가 되는 몸 앞에서는 왕비라는 자리도 빛을 잃어요. 겉모습에 대한 남의 평가가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나요? 겉모습이 변해도 오늘 할 수 있는 선한 행동 하나를 찾아보세요.
머지않아 의식이 떠난 몸은
묘지로 실려 나갑니다.
친족들은 싫어하며
낡은 통나무처럼 내버립니다.
Nibbuyhati susānaṁ, Aciraṁ kāyo apetaviññāṇo; Chuddho kaḷiṅgaraṁ viya, Jigucchamānehi ñātīh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벌레와 새의 먹이가 되는 몸을 말한 뒤, 수메다는 의식이 떠난 몸이 머지않아 묘지로 실려 나가는 장면을 이어 갑니다. 친족들은 싫어하며 그 몸을 낡은 통나무처럼 내버립니다. 살아 있을 때 소중히 여기던 몸도 의식이 떠나면 가까운 사람들 손에서 그렇게 다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몸을 내 것으로 붙들고 그 몸에 희망을 거는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의식이 떠난 몸은 머지않아 묘지로 실려 나가고, 친족들은 싫어하며 그 몸을 낡은 통나무처럼 내버린다고 해요. 아끼던 사람들도 그 몸을 붙들어 두지 못해요. 나는 지금 이 몸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나요?
묘지에 버려 다른 것들의 먹이로 두고 나면
친부모조차 싫어하며 제 몸을 씻습니다.
하물며 아무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이야 어떻겠습니까?
Chuddhūna naṁ susāne, Parabhattaṁ nhāyanti jigucchantā; Niyakā mātāpitaro, Kiṁ pana sādhāraṇā jan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묘지에 버려진 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다른 것들의 먹이로 버려 두고 나면 친부모조차 싫어하며 제 몸을 씻는다고 합니다. 수메다는 “하물며”라는 말로, 아무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느냐고 묻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깊어도 의식이 떠난 몸은 이렇게 꺼려지는 것이 됩니다. 이 장면은 몸이 영원히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게 합니다.
묵상
친부모조차 주검을 묘지에 버린 뒤 싫어하며 제 몸을 씻는다는 장면이에요. 가까운 사람에게도 의식이 떠난 몸은 꺼려지는 것이 돼요. 이 몸이 언제까지나 내 것으로 남으리라 여기는 마음이 내게도 있는지 천천히 살펴볼까요?
사람들은 알맹이 없는 이 몸뚱이에,
뼈와 힘줄이 모인 이 덩어리에 매달립니다.
침과 눈물과 똥과 고름으로 가득한
썩어 가는 이 몸에 매달립니다.
Ajjhositā asāre, Kaḷevare aṭṭhinhārusaṅghāte; Kheḷassuccārassava, Paripuṇṇe pūtikāyamh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친부모와 보통 사람을 견준 뒤, 수메다의 눈길은 몸 안으로 옮겨 갑니다. 몸은 뼈와 힘줄이 모인 덩어리이고, 침과 눈물과 똥과 고름으로 가득 차 썩어 갑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알맹이 없는 몸에 매달린다고 수메다는 말합니다. 몸을 이루는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하여, 겉모습에 매달리는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뼈와 힘줄, 침과 눈물, 똥과 고름을 하나씩 꼽으면 한 덩어리로 보이던 몸이 여러 가지로 풀려요. 내 몸을 떠올릴 때 나는 주로 무엇을 보고 있나요? 겉모습 아래에서 몸을 이루는 것들을 하나씩 짚어 보면, 몸을 대하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까요?
누군가 이 몸을 갈라
그 안을 밖으로 뒤집어 놓는다면,
냄새를 견디지 못해
친어머니조차 싫어할 것입니다.
Yo naṁ vinibbhujitvā, Abbhantaramassa bāhiraṁ kayirā; Gandhassa asahamānā, Sakāpi mātā jiguccheyy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몸속에 든 것을 하나씩 꼽은 뒤, 수메다는 누군가 이 몸을 갈라 안을 밖으로 뒤집어 놓는 경우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냄새를 견디지 못해 친어머니조차 싫어할 것이라고 합니다. 살갗에 가려 보이지 않던 몸속을 드러내어, 겉모습에 매달리는 마음을 흔드는 대목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몸의 안을 밖으로 뒤집는 장면은 겉모습에 머물던 눈길을 몸속으로 옮겨 놓아요. 나는 겉이 늘 아름다워야 사랑받는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몸을 평가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돌보는 마음만 가져가 보면 어떨까요?
무더기와 요소와 감각 영역을
조건 지어졌고 태어남에 뿌리를 둔 괴로움이라고
이치에 맞게 거듭 살펴보는 내가
무엇 때문에 혼인을 바라겠습니까?
Khandhadhātuāyatanaṁ, Saṅkhataṁ jātimūlakaṁ dukkhaṁ; Yoniso anuvicinantī, Vāreyyaṁ kissa icchey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주검과 몸속을 거칠게 그려 온 뒤, 수메다는 자신을 이루는 것들을 무더기와 요소와 감각 영역으로 나누어 봅니다. 이것들은 모두 조건 지어졌고 태어남에 뿌리를 둔 괴로움이라고 이치에 맞게 거듭 살펴본 끝에, 무엇 때문에 혼인을 바라겠느냐고 되묻습니다. 혼인으로 이어질 삶을 붙들지 않겠다는 까닭을 이렇게 밝힙니다.
묵상
수메다는 무더기와 요소와 감각 영역을 조건 지어진 괴로움으로 거듭 살펴봐요. 무언가를 몹시 바랄 때 “무엇이 모여 이 바람이 생겼을까” 하고 물으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 붙들고 있는 것 하나를 골라, 어떤 것들이 모여 생겼는지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날마다 새로 벼린 창 삼백 개가
이 몸 위로 떨어지고
그 죽임이 백 년 동안 이어지더라도,
그렇게 괴로움이 다한다면 그편이 낫겠습니다.
Divase divase tisatti, Satāni navanavā pateyyuṁ kāyamhi; Vassasatampi ca ghāto, Seyyo dukkhassa cevaṁ khayo.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혼인을 바라지 않는 까닭을 말한 뒤, 수메다는 극단적인 경우를 듭니다. 날마다 창 삼백 개가 몸 위로 떨어지고 그 죽임이 백 년 계속되더라도, 그렇게 괴로움이 다한다면 그편이 낫다고 합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드러내려고 든 과장된 비교입니다. 스스로를 해치라는 권유는 담겨 있지 않습니다.
묵상
“날마다 삼백 개의 창, 백 년”은 끝이 있는 고통과 끝없는 괴로움을 나란히 놓은 과장이에요. 몸의 고통을 택하라는 말은 담겨 있지 않아요. 되풀이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그중 안전하게 덜어 낼 수 있는 한 조각은 무엇일까요?
스승의 이 말씀을 알아들은 이는
그런 죽임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거듭거듭 죽임을 당하는 이들,
그들의 떠돎은 길다.”
Ajjhupagacche ghātaṁ, Yo viññāyevaṁ satthuno vacanaṁ; ‘Dīgho tesaṁ saṁsāro, Punappunaṁ haññamānā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삼백 창과 백 년의 죽임을 말한 수메다는 스승의 말씀을 끌어옵니다. 거듭거듭 죽임을 당하는 이들에게 떠돎은 길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알아들은 이라면 그런 죽임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하며, 끝이 있는 죽임과 길게 이어지는 떠돎을 나란히 놓습니다. 태어남이 되풀이되는 한 죽음도 쌓여 간다고 보고, 이 떠돎을 끝내는 일을 무엇보다 급하게 여기는 까닭을 밝힙니다. 고통을 일부러 찾아가라는 권유는 담겨 있지 않습니다.
묵상
수메다는 스승의 말씀을 끌어와요. “거듭거듭” 죽임을 당하는 이들에게 떠돎은 길다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알아들은 이라면 그런 죽임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해요. 혼자 오래 견뎌 온 일이 있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요?
신들과 사람들 가운데서도,
짐승으로 태어나는 곳과 아수라 무리에서도,
죽은 이의 혼령(뻬따)의 세계와 지옥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죽임이 보입니다.
Devesu manussesu ca, Tiracchānayoniyā asurakāye; Petesu ca nirayesu ca, Aparimitā dissare ghā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서 거듭 죽임을 당한다고 한 수메다는 이제 신과 사람, 짐승, 아수라, 죽은 이의 혼령, 지옥까지 모든 곳을 듭니다. 이 모든 곳에서 헤아릴 수 없는 죽임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태어나는 곳마다 위험이 되풀이된다고 보고, 태어남 자체에서 벗어나려는 까닭을 밝힙니다.
묵상
신과 사람, 짐승, 아수라, 죽은 이의 혼령, 지옥을 가로지르는 “헤아릴 수 없는 죽임”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 가면 된다는 생각을 흔들어요. 나는 자리만 바꾸며 같은 위험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지 천천히 살펴볼까요?
낮은 세계에 떨어져 고통받는 이에게
지옥에는 수많은 죽임이 있습니다.
신들 가운데에서도 피난처는 없고,
고요히 꺼짐(닙바나)의 행복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Ghātā nirayesu bahū, Vinipātagatassa pīḷiyamānassa; Devesupi attāṇaṁ, Nibbānasukhā paraṁ natth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낮은 세계에 떨어져 고통받는 이에게 지옥의 죽임은 많고, 신들 가운데에서도 피난처는 없다고 수메다는 말합니다. 그리고 고요히 꺼짐의 행복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맺습니다. 좋은 곳으로 옮겨 가기만 해서는 불안이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히 꺼짐을 믿을 만한 쉼터로 삼습니다.
묵상
수메다는 수많은 죽임이 있는 지옥과 피난처가 없는 신들의 세계를 나란히 둔 뒤, 고요히 꺼짐의 행복을 말해요. 상황이 나아져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이 내게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까요?
열 가지 힘을 지닌 분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쏟은 이들은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려고 힘써 닦습니다.
Pattā te nibbānaṁ, Ye yuttā dasabalassa pāvacane; Appossukkā ghaṭenti, Jātimaraṇappahānāy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고요히 꺼짐의 행복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한 뒤, 수메다는 그곳에 이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열 가지 힘을 지닌 분, 곧 부처님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쏟은 이들입니다. 그들은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려고 힘써 닦습니다. 앞서 부모에게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할 때 수메다가 한 말이 거의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수메다가 바라는 집을 떠나는 삶은 이미 다른 이들이 걸어 열매를 맺은 길입니다.
묵상
“열 가지 힘을 지닌 분”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쏟은 이들은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려고 힘써 닦아요. 바쁜 일 하나를 덜어 소중한 일에 돌릴 수 있는 십 분이 내게 있는지 살펴볼까요?
“아버지, 저는 바로 오늘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알맹이 없는 재물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는 감각적 욕망에 싫증이 났습니다.
그 욕망은 토해 낸 것과 같고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와 같습니다.”
Ajjeva tātabhinikkha- missaṁ bhogehi kiṁ asārehi; Nibbinnā me kāmā, Vantasamā tālavatthuk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아버지에게 바로 오늘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재물에는 알맹이가 없고, 감각적 욕망은 토해 낸 것과 같으며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다시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혼례를 치르라는 부모의 설득에 이렇게 답을 매듭짓습니다. 수메다가 이 말을 하는 동안 정혼한 왕 아니까랏따가 다가옵니다.
묵상
수메다는 “바로 오늘”이라고 말하며 재물과 욕망을 내려놓습니다. 나에게는 더 되살리고 싶지 않은 바람과 아직 더 생각해 보고 싶은 바람이 있을까요? 한쪽씩 나누어 적어 보세요.
수메다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수메다와 혼인하기로 정해진 아니까랏따가
혼례를 올리기로 한 때에 맞추어
와라나와띠에서 다가왔습니다.
Sā cevaṁ bhaṇati pitaram- anīkaratto ca yassa sā dinnā; Upayāsi vāraṇavate, Vāreyyamupaṭṭhite kāle.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가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바로 그때, 혼인하기로 정해진 아니까랏따가 혼례 날에 맞추어 와라나와띠에서 다가옵니다. 수메다의 결심과 이미 잡혀 있던 혼례 일정이 같은 순간에 만납니다.
묵상
수메다가 결심을 말하는 바로 그때, 혼례 날에 맞추어 아니까랏따가 다가옵니다. 일정이 정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동의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있나요?
그때 수메다는 칼로
검고 숱 많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누각의 문을 닫고
첫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었습니다.
Atha asitanicitamuduke, Kese khaggena chindiya sumedhā; Pāsādaṁ pidahitvā, Paṭhamajjhānaṁ samāpajj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니까랏따가 다가오는 사이, 수메다는 검고 숱 많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칼로 자르고 누각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듭니다. 머리를 자르는 행동으로 혼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고, 곧바로 마음을 모으는 수행으로 들어갑니다.
묵상
수메다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문을 닫은 뒤 마음을 모읍니다. 나에게 안전한 방식으로 경계를 표시하고 고요한 시간을 마련한다면 무엇을 택하겠어요?
수메다가 그곳에서 깊은 집중에 든 사이
아니까랏따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누각 안의 수메다는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다는 인식을 깊이 닦았습니다.
Sā ca tahiṁ samāpannā, Anīkaratto ca āgato nagaraṁ; Pāsāde ca sumedhā, Aniccasaññaṁ subhāve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가 누각 안에서 깊은 집중에 들어 있는 동안 아니까랏따가 도시에 도착합니다. 바깥에서는 왕이 다가오고, 안에서는 수메다가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다는 인식을 깊이 닦습니다.
묵상
왕은 도시로 들어오고 수메다는 누각에서 변화를 살핍니다. 변화를 떠올리는 일이 불안을 키운다면 멈추어도 좋아요. 부담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작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메다가 그처럼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아니까랏따는 서둘러 위로 올라왔습니다.
보석과 황금으로 몸을 꾸민 그는
두 손을 모아 수메다에게 청했습니다.
Sā ca manasi karoti, Anīkaratto ca āruhī turitaṁ; Maṇikanakabhūsitaṅgo, Katañjalī yācati sumed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가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아니까랏따가 서둘러 누각으로 올라옵니다. 보석과 황금으로 몸을 꾸민 그는 두 손을 모아 수메다에게 청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의 말이 시작됩니다.
묵상
수메다가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화려하게 꾸민 왕이 두 손을 모아 청합니다. 누군가 간곡히 부탁해 올 때, 내 마음이 어떤지 먼저 살필 틈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왕권에는 명령할 힘과 재물과 권세가 있고
소유가 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아직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세상에서 그런 즐거움은 얻기 어렵습니다…”
“Rajje āṇādhanamissa- riyaṁ bhogā sukhā daharikāsi; Bhuñjāhi kāmabhoge, Kāmasukhā dullabhā loke.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두 손을 모아 청한 아니까랏따가 입을 엽니다. 왕권에는 명령할 힘과 재물과 권세가 있고 소유가 주는 즐거움도 있으니, 아직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라고 권합니다. 그런 즐거움은 세상에서 얻기 어렵다고도 합니다. 앞서 수메다의 부모가 한 말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묵상
왕은 힘과 재물, 젊음과 얻기 어려움을 들어 지금 누리라고 권합니다. 얻기 어렵다는 말 때문에 원하지 않던 것을 서둘러 택한 적이 있는지 천천히 떠올려 볼까요?
“왕권을 당신에게 넘겼습니다.
재물을 누리고 베푸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부모님이 괴로워하고 계십니다.”
Nissaṭṭhaṁ te rajjaṁ, Bhoge bhuñjassu dehi dānāni; Mā dummanā ahosi, Mātāpitaro te dukkh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어서 아니까랏따는 왕권을 수메다에게 넘겼다고 말하고, 재물을 누리며 베풀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슬퍼하지 말라며 수메다의 부모가 괴로워한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즐거움에 더해 베푸는 일과 가족의 슬픔까지 들어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묵상
아니까랏따는 왕권과 재물, 베푸는 일에 부모의 괴로움까지 들어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좋은 명분이나 가족의 마음이 걸린 부탁 앞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로 살펴볼 수 있을까요?
감각적 욕망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수메다가 곧바로 답했습니다.
“감각적 욕망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그 욕망의 위험을 보십시오…”
Taṁ taṁ bhaṇati sumedhā, Kāmehi anatthikā vigatamohā; “Mā kāme abhinandi, Kāmesvādīnavaṁ pass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왕의 권유에 수메다는 곧바로 답합니다. 감각적 욕망이 필요 없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수메다는, 욕망을 기뻐하지 말고 그 위험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만다따 왕의 사례와 여러 비유로 이 말을 풀어 갑니다.
묵상
수메다는 욕망을 기뻐하지 말라는 말에 그 위험을 보라는 말을 더합니다. 좋아 보이는 선택 하나가 있다면, 그 뒤에 따라올 수 있는 대가도 함께 살펴볼까요?
네 대륙을 다스린 왕 만다따는
감각적 즐거움을 누린 이들 가운데 으뜸이었지만
만족하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바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Cātuddīpo rājā, Mandhātā āsi kāmabhoginamaggo; Atitto kālaṅkato, Na cassa paripūritā icc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욕망의 위험을 보여 주는 첫 사례로 네 대륙을 다스린 만다따 왕을 듭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누린 이들 가운데 으뜸이던 왕도 만족하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바람은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로 수메다는 아니까랏따의 권유에 답합니다.
묵상
네 대륙을 가진 만다따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가진 크기와 채워지는 느낌은 같지 않을 수 있어요. 많이 얻은 뒤에도 “조금만 더”가 남았던 일이 있었는지 가볍게 떠올려 볼까요?
일곱 보석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열 방향 어디에나 가득하다 해도,
감각적 욕망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 채 죽습니다.
Satta ratanāni vasseyya, Vuṭṭhimā dasadisā samantena; Na catthi titti kāmānaṁ, Atittāva maranti nar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만다따의 사례에 이어 수메다는 일곱 보석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열 방향 어디에나 가득한 경우를 가정합니다. 열 방향은 동서남북과 그 사이 네 방향에 위와 아래를 더한 온 사방입니다. 그래도 감각적 욕망에는 만족이 없고,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 채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욕망을 칼과 독사의 머리, 횃불에 견줍니다.
묵상
일곱 보석이 비처럼 내려 열 방향 어디에나 가득해도 만족이 없다고 합니다. 꼭 필요한 몫과, 채워도 다시 늘어나는 바람을 나누어 본다면 무엇이 보일까요?
감각적 욕망은 푸줏간의 칼과 도마 같습니다.
욕망은 독사의 머리 같습니다.
횃불처럼 태우고
해골을 닮았습니다.
Asisūnūpamā kāmā, kāmā sappasiropamā; Ukkopamā anudahanti, aṭṭhikaṅkala sannib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니까랏따가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라고 청하자, 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네 가지에 견줍니다. 푸줏간의 칼과 도마, 독사의 머리, 사람을 태우는 횃불, 해골입니다. 바로 앞에서 일곱 보석이 열 방향에 비처럼 쏟아져도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말했고, 여기서는 욕망이 무엇과 닮았는지를 하나씩 보여 줍니다. 겉으로는 즐거워 보여도 가까이 가면 베이고 물리고 데며, 살점 없는 해골처럼 아무리 붙들어도 허기를 채워 주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대목입니다.
묵상
푸줏간의 칼과 도마, 독사의 머리, 횃불, 해골은 끌림 뒤에 있는 상처와 위험과 화상,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네 방향에서 보여 줘요. 처음에는 끌리지만 가까이 갈수록 조심하게 되는 것이 내 곁에 있나요?
감각적 욕망은 그대로 있지 않고 단단하지 않으며
괴로움이 많고 지독한 독입니다.
벌겋게 달군 쇳덩이 같고
재앙의 뿌리이며 그 열매는 괴로움입니다.
Aniccā adhuvā kāmā, bahudukkhā mahāvisā; Ayoguḷova santatto, aghamūlā dukhapphal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앞의 네 비유에 이어, 감각적 욕망은 그대로 있지 않고 단단하지 않으며 괴로움이 많은 지독한 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욕망을 벌겋게 달군 쇳덩이에 견주고, 재앙의 뿌리이며 그 열매는 괴로움이라고 밝힙니다. 닿는 순간의 느낌보다 그 뒤에 남는 결과를 함께 보라고 권하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나무의 열매와 고깃덩이, 꿈과 빌린 물건의 비유가 나옵니다.
묵상
벌겋게 달군 쇳덩이는 닿는 순간의 강렬함과 뒤에 남는 상처를 함께 떠올리게 해요.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첫 느낌과 시간이 지난 뒤의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이나요?
감각적 욕망은 나무의 열매 같고
고깃덩이처럼 괴로움을 줍니다.
꿈처럼 속입니다.
욕망은 빌린 물건과 같습니다.
Rukkhapphalūpamā kāmā, maṁsapesūpamā dukhā; Supinopamā vañcaniyā, kāmā yācitakūpam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달군 쇳덩이 비유에 이어 욕망을 나무의 열매, 고깃덩이, 꿈, 빌린 물건에 견줍니다. 다른 경전의 풀이를 따르면,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오른 사람은 누가 나무를 베면 함께 떨어지고, 고깃덩이는 서로 빼앗으려는 다툼을 부르고, 꿈은 속이고, 빌린 물건은 돌려주어야 합니다. 내 것이라 여겨도 조건이 바뀌면 잃게 되는 즐거움을 네 가지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이 뒤에는 칼과 창에서 숯 구덩이와 죽임까지 더 거친 비유가 이어집니다.
묵상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오른 사람은 누가 나무를 베면 함께 떨어지고, 고깃덩이는 다툼을 부르고, 꿈은 깨고, 빌린 물건은 돌려줘야 해요. 내 것이라 붙들고 있지만 조건이 바뀌면 놓아야 할 것이 지금 있나요?
감각적 욕망은 칼과 창 같고
질병이며 종기이고 재앙이며 고통입니다.
불붙은 숯 구덩이와 같으며
재앙의 뿌리이고 두려움이며 죽임입니다.
Sattisūlūpamā kāmā, rogo gaṇḍo aghaṁ nighaṁ; Aṅgārakāsusadisā, aghamūlaṁ bhayaṁ vadho.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칼과 창에 견주고, 질병이며 종기이고 재앙이며 고통이라고 부릅니다. 이어 불붙은 숯 구덩이와 같다고 하고, 재앙의 뿌리이자 두려움이며 죽임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거듭 보여 주어, 끌림에 좁아진 눈으로는 놓치기 쉬운 대가를 넓게 보게 합니다. 이 목록은 바로 이어지는 “이처럼”으로 거두어집니다.
묵상
칼과 창, 질병과 종기, 불붙은 숯 구덩이, 두려움과 죽임이 한꺼번에 몰려와 끌림이 가린 대가를 넓게 비춰요. 이 목록에서 내 선택의 결과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가 있다면 어느 것인가요?
이처럼 감각적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길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밝혀졌습니다.
떠나 주십시오. 나는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습니다.
Evaṁ bahudukkhā kāmā, akkhātā antarāyikā; Gacchatha na me bhavagate, vissāso atthi attano.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앞의 비유들을 “이처럼”으로 거두어, 감각적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길을 가로막는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아니까랏따에게 떠나 달라고 청하고,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앞서 부모에게 말했듯이, 조건에 따라 생겨난 삶은 신들의 세계에서도 영원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머리에 붙은 불과 늙음과 죽음의 추격이 나옵니다.
묵상
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길을 가로막는 것이라 부르고,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는다고 말해요. 믿던 조건이 흔들릴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기 머리에 불이 붙었는데
남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늙음과 죽음이 뒤쫓아 오니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Kiṁ mama paro karissati, Attano sīsamhi ḍayhamānamhi; Anubandhe jarāmaraṇe, Tassa ghātāya ghaṭitabb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는다고 한 수메다는, 자기 머리에 불이 붙었는데 남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늙음과 죽음이 뒤쫓아 오니 그것을 없애는 데 힘써야 한다는 말로 아니까랏따에게 한 답을 맺습니다. 누구도 대신 늙고 죽어 줄 수 없으므로 스스로 길을 닦아야 한다는 책임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이 뒤에 수메다는 문을 열고 울고 있는 세 사람을 만납니다.
묵상
머리에 불이 붙고 늙음과 죽음이 뒤쫓는 장면은 누구도 나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다급함을 보여 줘요. 곁의 도움과 내가 맡을 한 걸음을 함께 놓는다면 무엇일까요?
나는 문을 열고
부모님과 아니까랏따가
바닥에 앉아 우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Dvāraṁ apāpuritvānahaṁ, Mātāpitaro anīkarattañca; Disvāna chamaṁ nisinne, Rodante idamavoc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닫아 두었던 문을 열고, 부모님과 아니까랏따가 바닥에 앉아 우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고는 눈앞의 세 사람에게 직접 말을 시작합니다. 울고 있는 이들을 마주한 채로,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 속에서 되풀이된 더 긴 울음을 들려주려는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이 그 말입니다.
묵상
닫힌 문이 열리자 부모님과 아니까랏따가 바닥에 앉아 우는 모습이 보여요. 수메다의 결심 곁에 다른 이들의 슬픔도 함께 있어요. 누군가의 선택과 그 때문에 생긴 내 슬픔을 어느 쪽도 지우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리석은 이들의 떠돎은 깁니다.
그들은 시작을 알 수 없는 세월 동안
아버지가 죽을 때, 형제가 죽임당할 때, 자신이 죽임당할 때
거듭거듭 울어 왔습니다.”
“Dīgho bālānaṁ saṁsāro, Punappunañca rodataṁ; Anamatagge pitu maraṇe, Bhātu vadhe attano ca vadhe.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우는 부모님과 아니까랏따를 본 수메다는,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하는 떠돎이 길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형제가 죽임당하는 일, 자신이 죽임당하는 일을 차례로 들며, 시작을 알 수 없는 세월 동안 같은 울음이 거듭되어 왔다고 합니다. 지금 눈앞의 울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은 채, 이별과 죽음의 슬픔이 끝없이 되풀이되어 왔다는 더 넓은 시야를 보여 줍니다. 이어서 눈물과 젖과 피, 쌓인 뼈로 그 되풀이를 그려 보입니다.
묵상
아버지가 죽을 때, 형제와 자신이 죽임당할 때 거듭거듭 울었다는 세 장면은 지금의 슬픔을 작게 만들지 않고 반복의 길이를 보여 줘요. 오늘의 슬픔에는 판단보다 어떤 돌봄이나 함께 있어 줄 사람이 먼저 필요할까요?
눈물과 젖과 피를,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을 기억하십시오.
떠도는 존재들이 쌓아 온
뼈의 무더기도 기억하십시오.
Assu thaññaṁ rudhiraṁ, Saṁsāraṁ anamataggato saratha; Sattānaṁ saṁsarataṁ, Sarāhi aṭṭhīnañca sannica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울고 있는 세 사람에게,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눈물과 젖과 피, 그리고 떠도는 존재들의 뼈 무더기로 기억하게 합니다. 셀 수 없이 되풀이된 슬픔과 양육과 죽음을 손에 잡히는 모습으로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한 생의 관계를 지우지 않고, 그 관계가 무수히 되풀이해 온 돌봄과 상실을 함께 떠올리게 하여 떠돎을 끝내려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이어서 이것들을 네 바다와 위뿔라산에 견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묵상
눈물과 젖과 피, 그리고 뼈의 무더기는 잃은 슬픔과 함께 젖을 먹여 기른 돌봄도 떠올리게 해요. 오래 이어 온 관계에서 받은 돌봄과 겪은 이별 가운데 지금 조심스럽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눈물과 젖과 피에 견준
네 바다를 기억하십시오.
헤아릴 수 없이 긴 한 시대(깝빠) 동안 쌓인 뼈가
위뿔라산과 맞먹는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Sara caturodadhī, Upanīte assuthaññarudhiramhi; Sara ekakappamaṭṭhīnaṁ, Sañcayaṁ vipulena sa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앞에서 말한 눈물과 젖과 피를 네 바다에 견주고, 헤아릴 수 없이 긴 한 시대 동안 쌓인 뼈를 위뿔라산에 견줍니다. 바다와 산이라는 두 큰 비유로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의 길이를 숫자 대신 크기로 느끼게 합니다. 되풀이되는 삶을 가볍게 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뒤에는 넓은 땅 잠부디빠의 흙을 대추씨만 한 알갱이로 나누어도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다 세기에 모자란다는 비교가 이어집니다.
묵상
네 바다에 견준 눈물과 젖과 피, 긴 한 시대 동안 쌓여 위뿔라산만 해진 뼈는 셀 수 없는 시간을 물과 산의 크기로 느끼게 해요. 오래 되풀이해 온 일 가운데 이제 아주 작은 방향 전환을 허락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시작을 알 수 없이 떠도는 이의 삶에 견주어 보면,
이 넓은 땅 잠부디빠의 흙을 대추씨만 한 알갱이로 나누어도
그 알갱이들은 그가 거쳐 온
어머니의 어머니들보다 적을 것입니다.
Anamatagge saṁsarato, Mahiṁ jambudīpamupanītaṁ; Kolaṭṭhimattaguḷikā, Mātā mātusveva nappaho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눈물과 젖과 피의 바다, 뼈의 산을 든 데 이어, 사람이 사는 땅 잠부디빠의 흙을 모두 대추씨 크기로 나누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렇게 나눈 알갱이도 한 사람이 떠도는 동안 거쳐 온 어머니의 어머니들보다 적다고 합니다. 떠도는 삶이 헤아릴 수 없이 길다는 것을 어머니의 수로 보여 주는 대목이며, 바닥에 앉아 우는 부모와 약혼자 아니까랏따 앞에서 혼인을 거절하며 하는 말입니다.
묵상
잠부디빠의 흙을 모두 대추씨만 한 알갱이로 나눠도 어머니의 어머니들보다 적다는 말은 떠도는 삶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수로 보여 줘요. 셀 수 없이 많은 어머니를 거쳐 왔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먼저 드나요?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을 떠올려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에 견주어 보십시오.
그 모두를 네 손가락 길이로 잘라도
그 조각들은 아버지의 아버지들보다 적을 것입니다.
Tiṇakaṭṭhasākhāpalāsaṁ, Upanītaṁ anamataggato sara; Caturaṅgulikā ghaṭikā, Pitupitusveva nappaho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는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잠부디빠의 흙알갱이와 견주었고, 여기서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견줍니다.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을 모두 네 손가락 길이로 잘라도 그 조각 수가 아버지의 아버지들보다 적다고 합니다. 어머니 쪽과 아버지 쪽 모두 헤아릴 수 없이 이어져 왔으니, 떠도는 삶의 시작은 찾을 수 없습니다.
묵상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을 모두 네 손가락 길이로 잘라도 아버지의 아버지들보다 적다는 비교는 앞의 어머니 쪽 비유와 짝을 이뤄요. 헤아릴 수 없이 길게 이어져 온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 이 삶은 어떻게 보이나요?
한쪽 눈먼 거북과, 동쪽 바다에서 서쪽으로 떠밀리는
구멍 하나 난 멍에를 기억하십시오.
거북이 그 구멍에 머리를 넣는 일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을 빗댄 것입니다.
Sara kāṇakacchapaṁ pubba- samudde aparato ca yugachiddaṁ; Siraṁ tassa ca paṭimukkaṁ, Manussalābhamhi opam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모 관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은 드물다고 수메다는 말합니다. 비유는 이렇습니다. 동쪽 바다에서 서쪽으로 떠밀리는 구멍 하나 난 멍에에, 한쪽 눈먼 거북이 머리를 넣는 일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가르침을 듣고 닦을 수 있는 지금의 조건이 그만큼 드물기에, 집을 떠나는 일을 미룰 수 없다는 이유가 됩니다.
묵상
한쪽 눈먼 거북이 동서로 떠밀리는 멍에의 구멍 하나에 머리를 넣는 우연은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그려요. 지금 가진 조건 중 부담 없이 소중히 써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알맹이 없고 재앙을 부르는 이 몸,
거품 덩어리 같은 그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무더기들이 그대로 있지 않음을 보고
고통이 많은 지옥들도 기억하십시오.
Sara rūpaṁ pheṇapiṇḍopam- assa kāyakalino asārassa; Khandhe passa anicce, Sarāhi niraye bahuvighāte.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 드물다고 한 뒤, 수메다는 재앙을 부르는 이 몸이 거품 덩어리처럼 알맹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이루는 무더기들이 그대로 있지 않음을 보라고 하고, 고통이 많은 지옥도 함께 기억하라고 합니다. 몸이 흩어지기 쉽다는 것과 해로운 행위의 결과가 무겁다는 것을 같이 보게 하여, 얻은 기회를 수행에 쓰도록 권합니다.
묵상
거품 덩어리 같은 몸은 생겼다가 흩어지는 가벼움을 보여 주고, 무더기들이 그대로 있지 않다는 말은 몸과 마음이 늘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줘요. 지금 내 몸이 필요로 하는 부드러운 보살핌은 무엇일까요?
이 생 저 생에 거듭 태어나
화장터를 넓혀 가는 이들을 기억하십시오.
악어의 위험도 기억하고
네 가지 진리도 기억하십시오.
Sara kaṭasiṁ vaḍḍhente, Punappunaṁ tāsu tāsu jātīsu; Sara kumbhīlabhayāni ca, Sarāhi cattāri saccān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거품 같은 몸과 지옥의 고통을 기억하라고 한 데 이어, 수메다는 거듭 태어날수록 화장터가 넓어지는 일과 악어의 위험을 말합니다. 세 번 되풀이한 “기억하십시오”는 네 가지 진리에서 끝납니다. 떠도는 삶의 위험을 떠올리게 한 뒤, 괴로움과 그 원인, 괴로움의 멎음, 멎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네 가지 진리로 빠져나갈 방향을 기억하게 합니다.
묵상
생마다 넓어지는 화장터, 악어의 위험, 네 가지 진리가 세 번의 “기억하십시오”에 차례로 놓여 위험과 길을 함께 보여 줘요. 지금 겪는 어려움에서 괴로움·원인·멎음·길 중 먼저 알아보고 싶은 것은 어느 쪽인가요?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섯 가지 쓴 독을 마시겠습니까?
욕망의 즐거움은 모두
그 다섯 쓴 독보다 훨씬 더 씁니다.
Amatamhi vijjamāne, Kiṁ tava pañcakaṭukena pītena; Sabbā hi kāmaratiyo, Kaṭukatarā pañcakaṭuken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네 가지 진리를 기억하라고 한 뒤, 수메다는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왜 다섯 가지 쓴 독을 마시겠느냐고 묻습니다. 욕망의 즐거움은 그 독보다 더 쓰다고 합니다. 순간의 달콤함 뒤에 더 큰 괴로움이 따르는 욕망을 고를 이유가 없다는 물음이며, 이어서 욕망의 열기를 말하는 구절로 넘어갑니다.
묵상
죽음 없음과 다섯 가지 쓴 독, 그리고 그보다 더 쓰다는 욕망의 즐거움을 견주는 말은 처음의 달콤함만으로 결과를 판단하지 않게 해요. 매력과 뒤끝을 함께 보았을 때 선택을 다시 살피고 싶은 일이 있나요?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왜 감각적 욕망 때문에 타오르겠습니까?
욕망의 즐거움은 모두
타고 끓고 흔들리고 뜨겁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Amatamhi vijjamāne, Kiṁ tava kāmehi ye pariḷāhā; Sabbā hi kāmaratiyo, Jalitā kuthitā kampitā santāp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는 욕망의 쓴맛을 말했고, 여기서는 열기를 말합니다.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왜 욕망 때문에 타오르겠느냐고 수메다는 묻습니다. 욕망의 즐거움은 타고, 끓고, 흔들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라고 네 낱말을 잇달아 들어 그립니다. 수메다는 열이 없는 죽음 없음을 두고 그 열기 속으로 들어갈 까닭이 없다고 봅니다.
묵상
타고, 끓고, 흔들리고, 뜨겁게 달아오른다는 네 낱말은 즐거움이 마음의 온도를 계속 올릴 수 있음을 그려요. 어떤 즐거움 뒤에는 마음이 가라앉고 어떤 즐거움 뒤에는 더 달아오르는지 구별해 볼까요?
원수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원수가 많은 감각적 욕망이 왜 필요합니까?
왕과 불과 도둑과 홍수와 사랑받지 못하는 상속자들이
재물을 나누어 가져가니 감각적 욕망에는 원수가 많습니다.
Asapattamhi samāne, Kiṁ tava kāmehi ye bahusapattā; Rājaggicoraudakappiyehi, Sādhāraṇā kāmā bahusapat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욕망의 열기를 말한 뒤, 수메다는 기준을 바꿔 원수 없음과 원수가 많은 욕망을 견줍니다. 왕, 불, 도둑, 홍수, 사랑받지 못하는 상속자, 이 다섯이 재물을 나누어 가져가기 때문에 욕망에는 원수가 많다고 합니다. 재물로 누리는 즐거움에는 잃을 걱정과 다툼이 따라붙으니, 원수가 없는 쪽을 두고 그 즐거움을 붙잡을 까닭이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묵상
왕, 불, 도둑, 홍수, 사랑받지 못하는 상속자, 이 다섯이 재물을 나누어 가져간다는 말은 가진 것을 누리는 즐거움 곁에 그것을 지켜야 하는 불안이 있음을 보여 줘요. 내가 가진 것 가운데 쥐고 있을 때보다 나누거나 쓸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것이 있나요?
풀려남이 실제로 있는데
죽이고 묶는 감각적 욕망이 왜 필요합니까?
감각적 욕망에 빠진 이들은 원하지 않아도
죽임과 묶임의 괴로움을 겪습니다.
Mokkhamhi vijjamāne, Kiṁ tava kāmehi yesu vadhabandho; Kāmesu hi asakāmā, Vadhabandhadukhāni anubho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재물을 빼앗는 다섯 위협을 든 뒤, 수메다는 풀려남과 죽이고 묶는 욕망을 맞세웁니다. 감각적 욕망을 좇는 이들은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죽임을 당하거나 묶이는 괴로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붙잡으려 한 즐거움이 원치 않은 폭력과 구속으로 돌아온다는 경고이며, 이어서 불붙은 풀 횃불의 비유가 나옵니다.
묵상
감각적 욕망을 좇다 보면 원하지 않았던 죽임과 묶임의 괴로움까지 겪게 된다는 말은 즐거움을 좇는 일이 늘 뜻대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줘요. 무언가를 얻으려다 오히려 거기에 묶여 버린 것처럼 느낀 적이 있나요?
불붙은 풀 횃불을 쥐고 놓지 않으면
그 불이 쥔 사람을 태웁니다.
감각적 욕망도 횃불과 같아
놓지 않는 이를 태웁니다.
Ādīpitā tiṇukkā, Gaṇhantaṁ dahanti neva muñcantaṁ; Ukkopamā hi kāmā, Dahanti ye te na muñc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죽임과 묶임이라는 넓은 피해를 말한 뒤, 수메다는 불붙은 풀 횃불을 쥔 한 사람의 모습을 비유로 듭니다. 횃불을 쥐고 놓지 않으면 그 불이 쥔 사람을 태웁니다. 감각적 욕망도 횃불과 같아서 놓지 않는 이를 태운다고 합니다. 손을 펴면 불에서 벗어나듯, 욕망을 놓으면 타는 괴로움도 멎습니다.
묵상
불붙은 풀 횃불은 손에 쥔 채 놓지 않을 때 바로 그 사람을 태워요. 놓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아직 쥐고 있는 것이 있나요?
하찮은 감각적 즐거움 때문에
넓고 큰 행복을 버리지 마십시오.
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처럼
나중에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Mā appakassa hetu, Kāmasukhassa vipulaṁ jahī sukhaṁ; Mā puthulomova baḷisaṁ, Gilitvā pacchā vihaññ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앞에서 불붙은 풀 횃불을 쥐고 놓지 않으면 쥔 사람이 탄다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어서 아니까랏따에게, 하찮은 감각적 즐거움 때문에 넓고 큰 행복을 버리지 말라고 권합니다. 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처럼 나중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당장 눈앞의 즐거움만 보고 고르면 그 대가를 뒤늦게 치른다는 경고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하찮은 즐거움과 넓고 큰 행복을 나란히 놓고, 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에 빗대어 말해요. 미끼를 무는 건 한순간이지만 괴로움은 나중에 찾아와요. 당장의 보상과 오래 남는 편안함 가운데, 요즘 더 돌보고 싶은 쪽은 어느 쪽인가요?
감각적 욕망 앞에서
마음먹고 자신을 길들이십시오.
그대는 지금 사슬에 묶인 개와 같습니다.
굶주린 천민들이 개를 잡아먹듯
감각적 욕망이 반드시 그대를 삼킬 것입니다.
Kāmaṁ kāmesu damassu, Tāva sunakhova saṅkhalābaddho; Kāhinti khu taṁ kāmā, Chātā sunakhaṁva caṇḍāl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에 이어, 수메다는 사슬에 묶인 개의 비유를 듭니다. 아니까랏따에게 감각적 욕망 앞에서 스스로를 길들이라고 권하고, 그가 지금 사슬에 묶인 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굶주린 천민들이 묶인 개를 잡아먹듯 감각적 욕망이 그를 반드시 삼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어서 욕망에 매인 채로는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을 겪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사슬에 묶인 개는 달아날 수 없어요. 수메다는 아니까랏따를 그 개에 견주어요. 되풀이할수록 내 발을 묶는 것 같은 습관이 있는지 가만히 돌아볼 수 있을까요?
감각적 욕망에 매인 채로는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을 겪을 것입니다.
오래가지 않는 감각적 욕망을
온전히 놓아 버리십시오.
Aparimitañca dukkhaṁ, Bahūni ca cittadomanassāni; Anubhohisi kāmayutto, Paṭinissaja addhuve kāme.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아니까랏따를 사슬에 묶인 개에 견준 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에 매인 채로는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을 겪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는 감각적 욕망을 온전히 놓아 버리라고 권합니다. 이어서 늙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늙음이 들어 있는 욕망이 왜 필요하냐는 물음과, 어디서든 모든 태어남이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묵상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은 욕망에 매인 채로 있을 때의 이야기예요.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것에 내 마음을 얼마나 내어 줄지, 고를 여지가 있을까요?
늙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늙음이 들어 있는 감각적 욕망이 왜 필요합니까?
어디에서든 모든 태어남은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습니다.
Ajaramhi vijjamāne, Kiṁ tava kāmehi yesu jarā; Maraṇabyādhigahitā, Sabbā sabbattha jātiyo.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오래가지 않는 욕망을 놓으라고 권한 수메다는, 늙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늙음이 들어 있는 욕망이 왜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어디에서든 모든 태어남은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늙음도 죽음도 슬픔도 없는 곳을 직접 가리킵니다. 아직 젊으니 감각의 즐거움을 누리라던 아니까랏따에게 주는 대답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늙음이 들어 있는 감각적 욕망과 늙음 없음을 나란히 놓고, 어디서든 태어남은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다고 말해요.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볼까요?
이것이 늙음 없음이고, 이것이 죽음 없음입니다.
이것이 늙음도 죽음도 없는, 슬픔 없는 곳입니다.
원수가 없고 막힘이 없으며, 흠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시달림이 없습니다.
Idamajaramidamamaraṁ, Idamajarāmaraṁ padamasokaṁ; Asapattamasambādhaṁ, Akhalitamabhayaṁ nirupatāp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이것”이라고 거듭 가리키며, 늙음도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는 곳을 말합니다. 이어서 원수가 없음, 막힘이 없음, 흠이 없음, 두려움이 없음, 시달림이 없음을 차례로 꼽아 그곳이 어떤 상태인지 그려 보입니다. 욕망의 위험을 말해 온 수메다가 자신이 향하는 곳, 곧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눈앞에 내보이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이 죽음 없음을 많은 이가 이미 이루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묵상
수메다가 “이것”이라고 거듭 가리킨 곳에는 원수도, 막힘도, 흠도, 두려움도, 시달림도 없다고 해요. 오늘 잠깐이라도 덜어졌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죽음 없음은 많은 이들이 이미 이루었고
오늘날에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치에 맞게 힘쓰는 이는 얻지만,
애쓰지 않는 이는 얻을 수 없습니다.”
Adhigatamidaṁ bahūhi, Amataṁ ajjāpi ca labhanīyamidaṁ; Yo yoniso payuñjati, Na ca sakkā aghaṭamānen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죽음 없음을 많은 이들이 이미 이루었고 오늘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치에 맞게 힘쓰는 이는 얻고, 애쓰지 않는 이는 얻을 수 없다고 조건을 붙입니다. 아득한 옛이야기로 미루지 않고 지금 닦을 수 있는 길로 보여 주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추지 않습니다. 이 말을 마친 뒤 수메다는 잘라 둔 머리카락을 땅에 던집니다.
묵상
많은 이가 이미 이루었고 오늘도 얻을 수 있다는 말에는 이치에 맞게 힘쓴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요. 지금 형편에서 무리 없이 보탤 수 있는 아주 작은 선택은 무엇일까요?
조건 지어진 것들에서 기쁨을 찾지 못한
수메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까랏따를 달래면서
자른 머리카락을 땅에 던졌습니다.
Evaṁ bhaṇati sumedhā, Saṅkhāragate ratiṁ alabhamānā; Anunentī anikarattaṁ, Kese ca chamaṁ khipi sumed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말을 마친 수메다는 조건 지어진 것들에서 기쁨을 찾지 못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수메다는 아니까랏따를 달래면서 잘라 둔 머리카락을 땅에 던집니다. 이 행동으로 왕비의 자리와 혼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눈앞에 보입니다. 이어서 아니까랏따가 일어나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청합니다.
묵상
수메다는 아니까랏따를 달래면서 잘라 둔 머리카락을 땅에 던져요. 달래는 말과 함께,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몸짓으로 보여 준 거예요.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 결정을 분명히 전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아니까랏따는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청했습니다.
“수메다가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도록 놓아주십시오.
그는 풀려남의 진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Uṭṭhāya anikaratto, Pañjaliko yācatassā pitaraṁ so; “Vissajjetha sumedhaṁ, Pabbajituṁ vimokkhasaccadass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머리카락이 땅에 놓인 뒤 아니까랏따는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청합니다. 수메다를 놓아주어 집을 떠나게 하면 풀려남의 진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혼인을 권하던 아니까랏따가 수메다의 뜻을 받아들여 허락을 돕는 쪽으로 돌아선 장면입니다.
묵상
혼인을 권하던 아니까랏따가 이번에는 두 손을 모으고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딸을 놓아 달라고 청해요. 다른 사람의 분명한 뜻을 듣고 내 생각을 바꾸어 도운 적이 있나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놓아주자
그는 슬픔과 두려움을 겁내어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아직 배우는 수행자였을 때
여섯 가지 높은 앎과 으뜸가는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Vissajjitā mātāpitūhi, pabbaji sokabhayabhītā; Cha abhiññā sacchikatā, aggaphalaṁ sikkhamānāy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니까랏따의 청을 받아 어머니와 아버지가 수메다를 놓아주자, 수메다는 슬픔과 두려움을 겁내어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됩니다. 아직 배우는 동안 여섯 가지 높은 앎을 얻고, 으뜸가는 결실인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앞에서 아니까랏따가 말한 풀려남의 진리를 실제로 본 것입니다. 수메다가 겁낸 슬픔과 두려움은 앞서 이야기한,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 속에서 거듭 우는 삶과 이어집니다.
묵상
부모의 허락, 집을 떠남, 배우는 동안 이룬 여섯 가지 높은 앎과 으뜸가는 결실이 빠르게 이어져요. 내가 가려는 길에서 무언가를 이루기에 앞서 필요한 허락이나 배움, 안전한 도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왕녀가 이룬 고요히 꺼짐(닙바나)은
놀랍고도 경이로웠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그는
지난 삶들의 행적을 밝혀 말했습니다.
Acchariyamabbhutaṁ taṁ, Nibbānaṁ āsi rājakaññāya; Pubbenivāsacaritaṁ, Yathā byākari pacchime kāle.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여섯 가지 높은 앎과 으뜸가는 결실을 이룬 수메다를 두고, 이 노래는 왕녀가 이룬 고요히 꺼짐(닙바나)이 놀랍고 경이로웠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수메다가 생의 마지막에 밝힌 지난 삶들의 행적으로 이야기가 넘어갑니다. 지금 이룬 풀려남의 먼 뿌리를 지난 삶에서 찾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수메다는 꼬나가마나 부처님 때 세 여자 친구가 함께 수행자 공동체(상가)의 절에 새로 지은 거처를 베푼 일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왕녀의 고요히 꺼짐을 놀랍다고 말한 뒤, 이야기는 수메다가 생의 마지막에 밝힌 지난 삶들로 넘어가요.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 가운데 고마우면서도 붙들고 싶지는 않은 장면이 있나요?
“꼬나가마나 부처님 시대에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머무는 곳에 새로 지은 거처를
우리 세 여자 친구가 함께
베풀어 드렸습니다…”
“Bhagavati koṇāgamane, Saṅghārāmamhi navanivesamhi; Sakhiyo tisso janiyo, Vihāradānaṁ adāsimh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죽음을 앞두고 지난 삶들을 밝히며, 먼저 꼬나가마나 부처님 시대를 떠올립니다.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머무는 곳에 새로 지은 거처를 세 여자 친구가 함께 베풀었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세 친구가 신들 가운데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 태어났다고 합니다. 수메다는 긴 회고의 시작을 친구들과 함께 수행자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한 일에서 찾습니다.
묵상
꼬나가마나 부처님 시대에 세 여자 친구가 함께 새로 지은 거처를 수행자 공동체에 드린 일을, 수메다는 먼 출발점으로 기억해요. 몇 사람과 힘을 모아 누군가 머물고 배울 자리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든다면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열 번, 백 번, 천 번,
그리고 만 번이나
신들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인간들 가운데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Dasakkhattuṁ satakkhattuṁ, Dasasatakkhattuṁ satāni ca satakkhattuṁ; Devesu uppajjimha, Ko pana vādo manussesu.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거처를 베푼 뒤 세 친구가 신들 가운데 태어난 횟수를, 수메다는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으로 늘려 가며 셉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일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덧붙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신들 가운데 지닌 큰 힘과 왕비였던 때의 모습이 나옵니다. 한 번의 베풂이 오랜 세월 동안 좋은 열매를 맺었다고 수메다는 돌아봅니다.
묵상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으로 커지는 숫자는 한 번의 베풂이 얼마나 길게 이어졌는지를 그려요. 내가 한 작은 일이 예상보다 오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 경험이 있었나요?
우리는 신들 가운데 큰 힘을 지녔으니
인간 세상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나는 일곱 보물을 지닌 왕의 으뜸 왕비였고
여인이라는 보물이었습니다.
Devesu mahiddhikā ahumha, Mānusakamhi ko pana vādo; Sattaratanassa mahesī, Itthiratanaṁ ahaṁ ās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자신과 두 친구가 신들 가운데서도 큰 힘을 지녔고, 인간 세상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어 자신은 일곱 보물을 지닌 왕의 으뜸 왕비였고 여인이라는 보물이었다고 밝힙니다. 이번 생에서 물리친 왕비의 자리를 수메다는 지난 삶에서 이미 누려 보았습니다.
묵상
수메다는 일곱 보물을 지닌 왕의 으뜸 왕비, 곧 “여인이라는 보물”이었다고 말해요. 이미 충분히 겪어 보아서 더는 얻으려 애쓰지 않게 된 자리나 인정이 있나요?
그 일이 원인이었고 시작이었고 뿌리였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고, 가르침을 기뻐하는 이에게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어졌습니다.
So hetu so pabhavo, Taṁ mūlaṁ sāva sāsane khantī; Taṁ paṭhamasamodhānaṁ, Taṁ dhammaratāya nibbā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신들 가운데 지닌 큰 힘과 왕비의 자리를 말한 뒤, 수메다는 거처를 베푼 그 일을 원인, 시작, 뿌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일, 첫 만남으로 거듭 가리킵니다. 그 일이 가르침을 기뻐하는 이에게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어졌다고 말하며 긴 회고를 맺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구절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이들도 이와 같이 실천한다고 말합니다.
묵상
수메다는 한 번 거처를 베푼 일을 원인, 시작, 뿌리, 가르침을 받아들인 일, 첫 만남으로 거듭 짚고, 그 일이 가르침을 기뻐하는 이에게 고요히 꺼짐으로 이어졌다고 말해요. 결과를 손에 쥐려 하지 않고도 이어 가고 싶은 선한 씨앗이 있나요?
“비할 데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말씀을
믿는 이들은 이와 같이 실천합니다.
그들은 어떤 존재로 사는 삶에도 싫증을 느끼고
싫증을 느낀 끝에 탐냄에서 벗어납니다.”
Evaṁ karonti ye sadda- hanti vacanaṁ anomapaññassa; Nibbindanti bhavagate, Nibbinditvā virajjant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비할 데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말씀을 믿는 이들이 이와 같이 실천한다고 말하며 노래를 맺습니다. 그들은 먼저 어떤 존재로 사는 삶에도 싫증을 느끼고, 그 싫증을 거쳐 탐냄에서 벗어납니다. 나이 든 여성 수행자들의 노래 모음인 테리가타도 이 구절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비할 데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말씀을 믿는 이들은 어떤 존재로 사는 삶에도 싫증을 느낀 뒤 탐냄에서 벗어난다고 수메다는 말해요. 붙잡을수록 괴로운 것이 있다면, 무리하지 않고 조금 거리를 둘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