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가타(나이 든 여성 수행자들의 노래 - 장로니게)

Therīgāthā

쿳다까 니까야 테리가타

쿳다까 니까야의 한 문헌으로, 장로니들이 출가 전의 삶과 상실·유혹·차별을 지나 수행과 해탈에 이른 체험을 73편의 게송으로 전한다. 마라와의 문답, 가족과의 갈등, 몸과 욕망에 대한 통찰, 삼명과 열반의 성취가 각 인물의 목소리로 드러난다.

인용된 가르침 506구절

이 경을 73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이름 없는 첫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게송 1구절

이름 없이 전해진 첫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짧은 해방 노래입니다.

그 거룩하신 분,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절합니다. 나이 든 수행자여, 편안히 잠드십시오. 천으로 손수 지은 옷을 두르고, 그대 안의 탐내는 마음이 솥에서 바싹 졸아든 나물처럼 잦아들었기 때문입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Sukhaṁ supāhi therike, Katvā coḷena pārutā; Upasanto hi te rāgo, Sukkhaḍākaṁ va kumbhiy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 이름 없는 첫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들의 노래 모음인 테리가타는 부처님께 절하는 말로 문을 엽니다. 첫 노래는 이름이 남아 있지 않은 한 나이 든 여성 수행자가 읊었다고 전해지며, “나이 든 수행자여” 하고 불러 편안히 잠들라고 말합니다. 천으로 손수 지은 옷을 두르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것은 탐내는 마음이 가라앉았기 때문입니다. 그 잦아든 마음은 솥에서 바싹 졸아든 나물에 견주어집니다. 물기가 다 날아간 나물은 더는 끓어오르지 않습니다.

묵상

“솥에서 바싹 졸아든 나물”이라는 모습은 한때 들끓던 마음이 더는 끓어오르지 않는 상태를 어떻게 보여 주나요? 오늘 내 마음에서 전보다 힘이 빠진 집착 하나가 있다면 무엇인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면 솥 안에서 졸아든 나물을 잠시 그려 보세요.

2 첫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뭇따의 게송 1구절

붙잡힘에서 풀려난 마음을 달의 해방에 빗댄 노래입니다.

뭇따여, 멍에에서 풀려나십시오. 라후에게 붙잡혔던 달이 풀려나듯이. 온전히 풀려난 마음으로 빚 없이 얻어온 음식을 드십시오.

“Mutte muccassu yogehi, cando rāhuggahā iva; Vippamuttena cittena, anaṇā bhuñja piṇḍak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2 첫째 뭇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처님은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훈련 중이던 여성 뭇따에게 이 게송으로 거듭 일러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게송은 이름 뭇따와 “풀려나다”를 겹쳐 부릅니다. 옛 인도 사람들은 라후라는 존재가 달을 붙잡아 월식이 생긴다고 여겼습니다. 게송은 멍에에서 풀려나는 모습을 라후에게 붙잡혔던 달이 풀려나는 모습에 견줍니다. 끝 구절은 온전히 풀려난 마음으로 빚 없이 얻어온 음식을 먹으라고 이릅니다.

묵상

라후에게 붙잡혔던 달이 풀려나 다시 빛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멍에에서 풀려난다는 말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마음을 옥죄던 매듭 하나가 느슨해진 경험이 있다면 그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볼까요? 그런 기억이 없다면 달빛이 돌아오는 순간만 그려 보세요.

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뿐나의 게송 1구절

보름달처럼 지혜를 가득 채워 어둠을 깨뜨리라는 노래입니다.

뿐나여, 보름날의 달처럼 좋은 성질들로 가득 차십시오. 가득 찬 지혜로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리십시오.

“Puṇṇe pūrassu dhammehi, Cando pannaraseriva; Paripuṇṇāya paññāya, Tamokhandhaṁ padālay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3 뿐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뿐나가 읊었다고 전해지는 이 짧은 노래는 “뿐나여” 하고 불러, 보름날의 달처럼 좋은 성질들로 가득 차라고 말합니다. 이어 가득 찬 지혜로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리라고 합니다. 뿐나라는 이름과 “가득 차다”라는 말이 겹쳐 있습니다. 어둠의 덩어리는 흔히 모름(아윗자), 곧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묵상

“보름날의 달처럼” 가득 차오르는 모습을 떠올리면, 지혜가 가득 찬 상태는 어떻게 그려지나요? 최근 흐릿했던 일이 조금 분명해진 순간을 하나 골라, 무엇이 어둠을 덜어 주었는지 살펴볼 수 있나요? 떠오르는 일이 없으면 지금 눈앞의 빛과 그늘을 가만히 구별해 보세요.

4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띳사의 게송 1구절

훈련을 닦아 모든 멍에에서 벗어나라고 이르는 노래입니다.

띳사여, 훈련을 닦으십시오. 멍에가 그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모든 멍에에서 풀려나 흘러드는 것 없이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Tisse sikkhassu sikkhāya, mā taṁ yogā upaccaguṁ; Sabbayogavisaṁyuttā, cara loke anāsav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4 띳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띳사의 게송은 훈련을 닦으라는 말로 시작해, 멍에가 덮치지 못하게 하라는 당부를 거쳐, 모든 멍에에서 풀려나 흘러드는 것 없이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로 끝납니다. 멍에는 소의 목에 얹어 수레에 매는 나무로, 여기서는 사람을 묶어 끌고 다니는 힘에 견주어집니다. 흘러드는 것(아사와)은 욕망이나 모름처럼 안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흐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묵상

“멍에가 그대를 덮치지 못하게 하십시오”라는 말에서 내 선택을 앗아 가는 습관 하나가 보이나요? 그 습관을 이겼는지 따지기보다, 오늘 한 번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볼까요? 지금은 어떤 멍에에도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면 이 질문은 잠시 내려놓고 쉬어 가세요.

5 또 다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띳사의 게송 1구절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일깨우는 노래입니다.

띳사여, 좋은 성질들을 닦는 데 힘쓰십시오. 이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때를 놓친 이들은 지옥에 떨어져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Tisse yuñjassu dhammehi, khaṇo taṁ mā upaccagā; Khaṇātītā hi socanti, nirayamhi samappi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5 또 다른 띳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또 다른 띳사의 게송은 “띳사여” 하고 불러, 좋은 성질들을 닦는 데 힘쓰고 이때를 놓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어 때를 놓친 이들은 지옥에 떨어져 슬퍼한다는 말로 그 까닭을 댑니다. 이때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와 때를 놓친 이들의 슬픔이 서로 맞물려, 닦을 수 있는 때가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긴박함을 전합니다.

묵상

“이때를 놓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 내게 주어진 어떤 때가 떠오르나요? 오늘 이미 곁에 있지만 당연하게 여긴 시간이나 도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오늘 그 때를 어떻게 쓰고 싶은지 떠올려 보세요.

6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디라의 게송 1구절

인식의 고요와 고요히 꺼짐이라는 가장 뛰어난 안식을 노래합니다.

디라여, 인식이 가라앉는 행복, 그 멎음에 닿으십시오. 멍에에서 벗어난 더없는 안식,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이루십시오.

“Dhīre nirodhaṁ phusehi, Saññāvūpasamaṁ sukhaṁ; Ārādhayāhi nibbānaṁ, Yogakkhemamanuttar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 디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디라의 게송은 멎음을 인식이 가라앉는 행복으로,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멍에에서 벗어난 더없는 안식으로 풀어 말합니다. 알아보고 이름 붙이는 마음의 움직임이 잦아들 때 찾아오는 행복을 수행이 향할 곳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인식이 가라앉는 행복”을 마음이 알아보고 가르는 일을 잠시 쉬는 상태로 읽으면 어떤 순간이 떠오르나요? 오늘 잠깐이라도 이름 붙이기와 비교가 멎었던 때를 되짚어 볼 수 있을까요? 그런 때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들리는 소리 하나를 판단 없이 들어 보세요.

7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위라의 게송 1구절

감각 기능을 닦아 마라의 군대를 이긴 용맹을 노래합니다.

이름 그대로 용맹한 성질들을 갖춘 위라, 감각 기능을 닦은 여성 수행자는 마라와 그 군대를 이기고 마지막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Vīrā vīrehi dhammehi, bhikkhunī bhāvitindriyā; Dhāreti antimaṁ dehaṁ, jetvā māraṁ savāhini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7 위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위라라는 이름은 “용맹한 여인”이라는 뜻이고, 게송은 그 이름에 용맹한 성질들을 겹친 뒤 감각 기능을 닦은 여성 수행자라는 말을 나란히 둡니다. 마라는 사람을 욕망과 죽음에 붙잡아 두려는 존재로 경전에 자주 나옵니다. 위라가 마라와 그 군대를 이기고 지닌 마지막 몸은 이 몸을 끝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몸입니다.

묵상

위라의 용맹함은 감각 기능을 닦은 모습과 나란히 놓여 있어요. 오늘 보고 듣는 것 가운데 마음을 세게 끌어당긴 것이 있었나요?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가만히 살펴보세요.

8 첫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밋따의 게송 1구절

좋은 벗과 유익한 성품을 기뻐하며 해방으로 가라고 이릅니다.

믿음으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으니, 밋따여, 좋은 벗에게서 기쁨을 찾는 이가 되십시오. 멍에에서 벗어난 안식에 이르도록 유익한 성질들을 닦으십시오.

“Saddhāya pabbajitvāna, mitte mittaratā bhava; Bhāvehi kusale dhamme, yogakkhemassa pattiy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8 첫째 밋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첫째 밋따의 게송은 이름 밋따와 벗을 뜻하는 말 밋따를 겹쳐 부릅니다. 믿음으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으니 좋은 벗에게서 기쁨을 찾으라고 이르고, 멍에에서 벗어난 안식에 이르도록 유익한 성질을 닦으라는 당부로 이어집니다.

묵상

“좋은 벗에게서 기쁨을 찾는 이”라는 말 곁에 놓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과 함께하며 유익한 쪽으로 한 걸음 옮겼던 장면을 떠올려 볼까요?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벗이 되어 주었던 작은 순간을 찾아보세요.

9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밧다의 게송 1구절

믿음으로 출가해 유익한 성품을 거듭 닦으라고 이릅니다.

믿음으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으니, 밧다여, 좋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이가 되십시오. 멍에에서 벗어난 더없는 안식에 이르도록 유익한 성질들을 닦으십시오.

“Saddhāya pabbajitvāna, bhadre bhadraratā bhava; Bhāvehi kusale dhamme, yogakkhemamanuttar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9 밧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의 게송은 이름 밧다와 “좋은 것”을 겹쳐 부르며, 믿음으로 집을 떠난 데서 시작해 유익한 성질을 닦는 일을 거쳐 멍에에서 벗어난 더없는 안식으로 가는 순서를 세웁니다. 멍에에서 벗어난 안식은 사람을 묶어 끄는 멍에를 모두 벗어 더는 위태롭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묵상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를 실제로 이롭게 하는 것이 어긋났던 적이 있나요? “좋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이”라는 구절에 비추어 오늘의 작은 선택 하나를 바라보면 무엇이 보이나요? 분명한 답이 없다면 두 선택이 남기는 몸의 느낌만 나란히 견주어 보세요.

10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우빠사마의 게송 1구절

죽음의 거센 흐름을 건너 마지막 몸에 이르라고 이릅니다.

우빠사마여, 건너기 몹시 어려운 죽음의 영역, 그 거센 흐름을 건너십시오. 마라와 그 군대를 이기고 마지막 몸을 지니십시오.

“Upasame tare oghaṁ, maccudheyyaṁ suduttaraṁ; Dhārehi antimaṁ dehaṁ, jetvā māraṁ savāhini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0 우빠사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우빠사마의 노래는 죽음의 영역을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에 견주고, 그 흐름을 건너 마라와 그 군대를 이긴 끝에 마지막 몸을 지니라고 권합니다. 마라는 사람을 욕망과 죽음에 붙잡아 두려는 존재로 경전에 자주 나옵니다. 마지막 몸은 이 몸을 끝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몸입니다.

묵상

“거센 흐름을 건너십시오”라는 말에서 지금 나를 저절로 끌고 가는 물살은 무엇처럼 느껴지나요? 당장 다 건너려 하기보다 발밑을 받쳐 주는 조건이나 도움 하나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물살을 떠올리는 일조차 벅차다면 안전한 강둑에 앉아 있는 모습만 그려 보세요.

11 둘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뭇따의 게송 1구절

일상의 굴레와 태어남과 죽음에서 함께 풀려난 기쁨을 노래합니다.

나는 잘 풀려났습니다, 참으로 잘 풀려났습니다. 나를 굽게 하던 세 가지에서 풀려났습니다. 절구와 절굿공이, 그리고 등 굽은 남편에게서. 나는 태어남과 죽음에서 풀려났고, 존재로 이끄는 끈은 송두리째 없어졌습니다.

“Sumuttā sādhumuttāmhi, tīhi khujjehi muttiyā; Udukkhalena musalena, patinā khujjakena ca; Muttāmhi jātimaraṇā, bhavanetti samūha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둘째 뭇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둘째 뭇따의 노래입니다. 절구, 절굿공이, 등 굽은 남편을 자신을 굽게 하던 세 가지로 꼽고, 그 셋에서 풀려났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태어남과 죽음에서도 풀려났고 존재로 이끄는 끈이 송두리째 없어졌다고 노래합니다. 곡식을 찧는 고된 일에서, 그리고 남편에게서 풀려난 이야기가 태어남과 죽음에서 풀려난 이야기로 곧장 이어집니다.

묵상

절구와 절굿공이와 남편, 세 가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세는 목소리는 어떻게 들리나요? 내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일이나 관계 때문에 마음이 굽어지던 순간이 있었나요? 말하기 어렵다면 그 무게만 잠시 느껴 보세요.

12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담마딘나(Dhammadinnā Therī)의 게송 1구절

감각적 욕망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굳센 마음을 노래합니다.

열의가 일어 굳게 결심한 이는 마음으로 두루 채워질 것입니다. 감각적 욕망에 마음이 묶이지 않은 이는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이라고 불립니다.

“Chandajātā avasāyī, Manasā ca phuṭā siyā; Kāmesu appaṭibaddhacittā, Uddhaṁsotāti vuccat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2 담마딘나 장로니

배경

담마딘나의 짧은 노래입니다. 열의가 일어 굳게 결심한 사람은 마음으로 두루 채워진다고 말합니다. 감각적 욕망에 마음이 묶이지 않은 사람은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열의는 풀려남을 향한 바람을 가리킵니다.

묵상

감각적 욕망에 마음이 묶이지 않은 사람을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최근 쉬운 쪽으로 휩쓸리다가 잠시 멈춘 일이 있었나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음 선택 앞에서 물살이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살펴보세요.

1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위사카의 게송 1구절

가르침을 당장 몸으로 실천해 뒤에 뉘우치지 말라고 이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뒤에 뉘우치지 않습니다. 어서 발을 씻고 한쪽에 자리 잡아 앉으십시오.

“Karotha buddhasāsanaṁ, yaṁ katvā nānutappati; Khippaṁ pādāni dhovitvā, ekamante nisīdath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3 위사카 장로니의 게송

배경

위사카의 노래입니다. 듣는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권하며, 그렇게 하면 뒤에 뉘우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서 발을 씻고 한쪽에 자리 잡아 앉으라고 이릅니다.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큰 권유가 발을 씻고 앉는 작은 동작으로 곧장 이어집니다.

묵상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말 바로 뒤에 발을 씻고 한쪽에 앉는 작은 동작이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고 싶지만 시작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오늘 할 수 있는 준비 동작 하나를 골라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움직일 여유가 없다면 필요한 자리가 어디인지만 떠올려 보세요.

14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수마나의 게송 1구절

조건 지어진 요소를 보고 존재를 향한 열망을 식히라고 이릅니다.

요소들을 괴로움으로 보았으니 다시는 태어나지 마십시오. 존재에 대한 열망을 빛바래게 하면 그대는 고요히 살아갈 것입니다.

“Dhātuyo dukkhato disvā, mā jātiṁ punarāgami; Bhave chandaṁ virājetvā, upasantā carissas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4 수마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마나의 게송입니다. 몸과 마음을 이루는 요소들을 괴로움으로 보았으니 다시는 태어나지 말라고 말합니다. 존재에 대한 열망을 빛바래게 하면 고요히 살아가게 된다고 이어 갑니다. 요소들을 괴로움으로 본 것이 열망을 놓는 데로 이어지고, 그 끝에 고요가 온다고 노래합니다.

묵상

게송은 존재에 대한 열망이 빛바랜 끝에 고요히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요. 꼭 이래야 한다고 움켜쥐던 바람이 짙던 색이 바래듯 옅어진 적이 있었나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붙잡는 힘이 얼마나 센지 조용히 살펴보세요.

15 첫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웃따라의 게송 1구절

몸과 말과 마음을 삼가 갈망을 뿌리째 뽑은 해방을 노래합니다.

나는 몸을 삼갔고 말과 마음도 삼갔습니다.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을 뿌리째 뽑아내어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Kāyena saṁvutā āsiṁ, vācāya uda cetasā; Samūlaṁ taṇhamabbuyha, sītibhūtāmhi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5 첫째 웃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첫째 웃따라의 게송입니다. 몸과 말과 마음을 삼갔다고 차례로 말합니다. 그리고 갈망을 뿌리째 뽑아내어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맺습니다. 갈망이 달구던 열기가 식어 더는 마음을 태우지 않는 모습을 서늘해졌다고 표현합니다.

묵상

몸과 말과 마음 가운데 오늘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느 쪽인가요? 완벽하게 삼간 순간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해를 줄이려고 한 번 멈춘 순간이 있었는지 찾아볼까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셋 가운데 지금 유난히 시끄러운 쪽이 있는지만 살펴보세요.

16 늦게 출가한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수마나의 게송 1구절

늦은 나이에도 가르침을 실천해 삶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고 이릅니다.

나이 든 이여, 편안히 주무십시오. 손수 지은 옷을 두르고서. 그대의 탐냄은 가라앉았으니, 그대는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Sukhaṁ tvaṁ vuḍḍhike sehi, katvā coḷena pārutā; Upasanto hi te rāgo, sītibhūtāsi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6 늦게 출가한 수마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늦게 집을 떠난 수마나의 게송입니다. 나이 든 이에게 손수 지은 옷을 두르고 편안히 주무시라고 말합니다. 탐냄이 가라앉았으니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일러 줍니다. 삶의 늦은 때에 집을 떠난 사람에게도 이 평안이 찾아왔음을 전하는 노래입니다.

묵상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을 접어 둔 일이 있나요? 늦은 나이에 집을 떠난 수마나를 떠올리며, 지금 가능한 한 걸음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면 그 선택도 존중하면서, 무엇이 망설여졌는지만 부드럽게 돌아보세요.

17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담마(Dhammā Therī)의 게송 1구절

넘어진 몸을 계기로 몸의 위험을 보고 마음이 풀린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약한 몸으로 지팡이에 기대어 음식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팔다리가 떨려 바로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몸의 위험을 보고서 그때 내 마음은 풀려났습니다.

“Piṇḍapātaṁ caritvāna, daṇḍamolubbha dubbalā; Vedhamānehi gattehi, tattheva nipatiṁ chamā; Disvā ādīnavaṁ kāye, atha cittaṁ vimucci me”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7 담마 장로니

배경

담마의 게송입니다. 약한 몸으로 지팡이에 기대어 음식을 얻으러 다니다가 팔다리가 떨려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쓰러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몸의 위험을 보았을 때 마음이 풀려났다고 이어 갑니다. 몸이 버티지 못하고 넘어진 그 일이 마음이 풀려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묵상

쓰러진 몸에서 ‘몸의 위험’을 보았다는 고백은 어떻게 들리나요? 최근 몸이 한계를 알려 준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 나는 내 몸을 어떻게 대했나요? 아픈 기억이 건드려진다면 오늘은 이 질문을 덮어 두세요.

18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상가의 게송 1구절

집을 떠나 외딴 곳에서 얻은 세 가지 앎과 해방을 노래합니다.

집을 버리고 수행자가 되었고, 아이와 가축과 사랑하는 것을 버렸습니다. 탐냄과 성냄을 버리고 모름을 걷어 냈습니다.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을 뿌리째 뽑아내어 나는 평온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Hitvā ghare pabbajitvā, hitvā puttaṁ pasuṁ piyaṁ; Hitvā rāgañca dosañca, avijjañca virājiya; Samūlaṁ taṇhamabbuyha, upasantāmhi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18 상가 장로니의 게송

배경

상가의 게송입니다. 집과 아이와 가축과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수행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어 탐냄과 성냄을 버리고 모름을 걷어 냈으며, 갈망을 뿌리째 뽑아내어 평온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노래합니다. 바깥의 것을 버린 일과 마음속 뿌리를 뽑은 일이 한 게송 안에 차례로 이어집니다.

묵상

집과 아이와 가축 같은 바깥의 것을 버린 일과 마음속 뿌리를 뽑은 일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것 가운데 쉽게 놓이지 않는 것이 있나요? 답을 서두르지 말고,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세요.

19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아비루빠난다의 게송 2구절

몸의 덧없고 깨끗하지 않은 성질을 보아 집착을 놓으라고 이릅니다.

난다여, 이 몸뚱이를 보십시오. 병들고 더럽고 썩어 가는 것으로. 몸의 아름답지 않은 면을 바라보며 하나로 모이고 잘 가라앉은 마음을 닦으십시오.

“Āturaṁ asuciṁ pūtiṁ, passa nande samussayaṁ; Asubhāya cittaṁ bhāvehi, ekaggaṁ susamāhi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2.1 아비루빠난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비루빠난다에게 들려준 첫 게송입니다. 난다를 불러, 몸을 병들고 더럽고 썩어 가는 것으로 보라고 권합니다. 이어 몸의 아름답지 않은 면을 바라보며 하나로 모이고 잘 가라앉은 마음을 닦으라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면만 골라 붙드는 눈길을 바로잡아 몸에 끌리는 마음을 약하게 하려는 수행입니다.

묵상

‘병들고 더럽고 썩어 가는’이라는 말을 읽을 때 불편함이 올라오나요? 이 게송이 바로잡으려는 것은 아름다운 면만 골라 보려는 눈길이에요. 그런 눈길이 내게도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몸 이야기가 힘든 날에는 대답하지 말고 쉬어 가세요.

겉모습 없음(아니밋따)을 닦고 마음 밑바닥에 깔린 자만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자만을 꿰뚫어 알아 고요히 살아갈 것입니다.

Animittañca bhāvehi, mānānusayamujjaha; Tato mānābhisamayā, upasantā carissas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2.1 아비루빠난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비루빠난다에게 들려준 둘째 게송입니다. 겉모습의 특징을 붙잡지 않는 마음, 곧 겉모습 없음을 닦고 마음 밑바닥에 깔린 자만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자만을 꿰뚫어 알면 고요히 살아가게 된다고 맺습니다. 겉모습을 자기 가치의 표지로 붙드는 습관이 잦아들면, 남과 견주어 높이고 낮추는 자만도 함께 놓을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자랑하거나 남과 견주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었나요? 그 마음 밑에 어떤 불안이나 바람이 깔려 있었는지 비난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런 순간이 없었다면 비교하지 않아 편안했던 때를 떠올려 보세요.

20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젠따의 게송 2구절

일곱 깨달음 요소를 닦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수했다고 선언합니다.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는 길인 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나는 모두 닦았습니다.

“Ye ime satta bojjhaṅgā, maggā nibbānapattiyā; Bhāvitā te mayā sabbe, yathā buddhena des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2.2 젠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젠따의 첫 게송입니다.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는 길인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모두 닦았다고 말합니다. 일곱 가지는 알아차림, 가르침을 가려 살핌, 힘씀, 기쁨, 몸과 마음의 고요, 마음이 한곳에 모임,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부처님을 뵈었고 이 몸이 마지막이라고 고백합니다.

묵상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일곱 가지를 모두 닦았다는 젠따의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먼저 올라오나요? 일곱을 다 헤아리기보다 알아차림이나 기쁨, 고요처럼 지금 내 안에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것 하나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그 막막함을 그대로 알아차려 보세요.

나는 참으로 부처님을 뵈었고 이 몸뚱이가 마지막입니다. 태어남을 거듭하던 떠돎은 다했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습니다.

Diṭṭho hi me so bhagavā, antimoyaṁ samussayo; Vikkhīṇo jātisaṁsāro, natthi dāni punabbhavo”ti.

쿳다까 니까야 Thig 2.2 젠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젠따의 마지막 게송입니다. 앞 게송에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모두 닦았다고 말한 데 이어, 부처님을 뵈었고 지금의 몸이 마지막이라고 밝힙니다. 태어남을 거듭하던 떠돎이 다했으므로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는 말로 게송을 맺습니다.

묵상

누군가를 만난 일로 삶의 방향이 바뀐 적이 있나요? 그 만남 뒤에 내 일상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떠올려 볼까요? 그런 만남이 없었다면, 내가 믿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그려 보세요.

21 수망갈라의 어머니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게송 2구절

절구와 솥에서 벗어나 나무 아래에서 누리는 해방을 노래합니다.

나는 잘 풀려났습니다, 잘 풀려났습니다. 절굿공이에서 참으로 잘 풀려났습니다! 뻔뻔한 내 남편은 버섯 같았고 내 작은 솥에서는 물뱀 냄새가 났습니다.

“Sumuttikā sumuttikā, Sādhumuttikāmhi musalassa; Ahiriko me chattakaṁ vāpi, Ukkhalikā me deḍḍubhaṁ v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2.3 수망갈라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망갈라의 어머니가 부른 첫 노래입니다. “잘 풀려났습니다”를 세 번 되풀이하며 절굿공이에서 벗어난 기쁨을 터뜨립니다. 이어서 뻔뻔한 남편은 버섯 같았고 작은 솥에서는 물뱀 냄새가 났다고 익살스럽게 말합니다. 고된 살림과 불편한 관계를 숨기지 않는 목소리로 풀려난 홀가분함을 일상의 감각으로 전합니다.

묵상

절굿공이와 솥, 버섯과 물뱀 냄새 가운데 어느 이미지가 반복되는 고된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 주나요? 매일 해야 하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가 있다면 그 무게를 스스로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나는 탐냄과 성냄을 치직치직 소리 나도록 눌러 없앱니다. 나무 아래로 가서 “아, 행복하다!” 하며 행복하게 깊은 집중(자나)에 듭니다.

Rāgañca ahaṁ dosañca, Cicciṭi cicciṭīti vihanāmi; Sā rukkhamūlamupagamma, Aho sukhanti sukhato jhāyām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2.3 수망갈라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망갈라의 어머니가 부른 둘째 게송입니다. 앞 게송에서는 절굿공이에서 잘 풀려났다고 기뻐했습니다. 이번에는 탐냄과 성냄을 “치직치직” 소리가 나도록 눌러 없앤다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나무 아래로 가서 “아, 행복하다!” 하며 행복하게 깊은 집중(자나)에 듭니다. 소박한 나무 아래가 행복을 맛보는 자리가 됩니다.

묵상

앞 게송의 절굿공이와 솥을 떠나 나무 아래에서 행복하게 깊은 집중에 드는 모습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내게도 역할과 요구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릴 수 있는 자리가 하나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실제 장소가 없다면 음악 한 곡이나 조용한 숨 몇 번으로 그런 자리를 만들어 보세요.

22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앗다까시의 게송 2구절

아름다움에 매겨졌던 값과 그 몸을 떠난 출가를 대조합니다.

내 몸값은 까시 나라 전체의 세금만큼이나 되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그만큼을 값으로 치고서 내 값을 그 절반으로 정했습니다.

“Yāva kāsijanapado, suṅko me tatthako ahu; Taṁ katvā negamo agghaṁ, aḍḍhenagghaṁ ṭhapesi 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2.4 앗다까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앗다까시의 첫 게송입니다. 자신의 몸값이 까시 나라 전체의 세금만큼 되었다고 밝힙니다. 도시 사람들은 그만큼을 값으로 치고서 자신의 값을 그 절반으로 정했다고 말합니다. 앗다까시라는 이름도 ‘까시의 절반’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사람의 몸에 값을 매기던 지난 삶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이어지는 게송에서 몸에 싫증이 나게 된 바탕을 놓습니다.

묵상

자신의 몸값이 까시 나라 전체의 세금만큼이었고 사람들이 그 절반으로 값을 정했다는 고백을 들으면 어떤 감정이 먼저 올라오나요? 외모·성과·돈으로 내 값이 매겨진다고 느꼈던 순간이나 다른 이를 그렇게 재어 본 순간을 하나 떠올릴 수 있을까요? 그런 순간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을 그대로 느껴 보세요.

그 뒤 나는 몸에 싫증이 나고 싫증이 나서 탐냄이 사라졌습니다. 다시는 태어남을 거듭하는 떠돎을 되풀이해 달려가지 않기를! 세 가지 앎을 몸소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Atha nibbindahaṁ rūpe, nibbindañca virajjahaṁ; Mā puna jātisaṁsāraṁ, sandhāveyyaṁ punappunaṁ; Tisso vijjā sacchikatā, kataṁ buddhassa sāsan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2.4 앗다까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앗다까시의 마지막 게송입니다. 앞 게송에서 자신의 몸값이 까시 나라 전체의 세금만큼 매겨졌다고 밝힌 뒤, 이번에는 자신의 몸에 싫증이 났고 그 싫증 끝에 탐냄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다시는 태어남을 거듭하는 떠돎을 되풀이해 달려가지 않기를 바라며, 세 가지 앎을 몸소 얻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맺습니다.

묵상

값이 매겨지던 몸에 싫증이 나고, 그 싫증 끝에 탐냄이 사라졌다는 고백은 어떻게 들리나요? 한때 크게 붙들던 것이 시들해지면서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 경험이 있다면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떠오르는 일이 없다면 지금 나를 설명하는 숫자 하나를 잠시 내려놓아 보세요.

2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찟따(Cittā Therī)의 게송 2구절

쇠약한 몸으로 산을 오른 뒤 바위에 기대 얻은 마음의 해방을 노래합니다.

나는 비록 여위고 병들어 몹시 약하지만, 지팡이에 기대어 걸으며 산을 올라갑니다.

“Kiñcāpi khomhi kisikā, gilānā bāḷhadubbalā; Daṇḍamolubbha gacchāmi, pabbataṁ abhirūhiya.

쿳다까 니까야 Thig 2.5 찟따 장로니

배경

찟따의 첫 게송입니다. 몸이 여위고 병들어 몹시 약하다고 먼저 밝힙니다. 그런데도 지팡이에 기대어 산을 올라갑니다. 약한 몸을 감추지 않으면서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며, 이어지는 게송에서 산에 오른 뒤의 일을 말합니다.

묵상

여위고 병든 몸으로 지팡이에 기대어 산을 오르는 찟따의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지금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해 볼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나 자세 변화가 있을까요? 통증이나 피로가 크다면 움직이는 대신 편히 쉬어 보세요.

겉옷을 내려놓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엎어 두었습니다. 바위에 내 몸을 기대고서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렸습니다.

Saṅghāṭiṁ nikkhipitvāna, pattakañca nikujjiya; Sele khambhesimattānaṁ, tamokhandhaṁ padāliy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2.5 찟따 장로니

배경

찟따의 둘째 게송입니다. 겉옷을 내려놓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엎어 둔 뒤 바위에 몸을 기댑니다. 그렇게 기댄 채로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렸다고 말합니다. 앞 게송에서 여위고 병들어 지팡이에 기대 산을 올랐던 바로 그 몸으로 이룬 일입니다. 어둠의 덩어리는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하는 모름(아윗자)을 가리키는 비유로 읽힙니다.

묵상

겉옷을 내려놓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엎어 둔 채 바위에 몸을 기대는 모습을 떠올리면 내 몸에는 어떤 느낌이 드나요? 오늘 잠시 내려놓아도 될 물건이나 역할이 하나 있는지 살펴볼까요? 내려놓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몸을 받쳐 주는 의자나 벽의 감각만 느껴 보세요.

24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멧띠까의 게송 2구절

약한 몸으로 산에 올라 갈망을 뽑고 가르침을 완수한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비록 아프고 약하며 젊음도 이미 지나갔지만, 지팡이에 기대어 걸으며 산을 올라갑니다.

“Kiñcāpi khomhi dukkhitā, dubbalā gatayobbanā; Daṇḍamolubbha gacchāmi, pabbataṁ abhirūhiya.

쿳다까 니까야 Thig 2.6 멧띠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멧띠까의 첫 게송입니다. 아프고 약하며 젊음도 지났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그런데도 지팡이에 기대어 산을 올라갑니다. 늙고 아픈 몸으로도 지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길을 계속 가는 모습입니다.

묵상

“아프고 약하며”와 “산을 올라갑니다”가 한 게송 안에 함께 있을 때 어느 쪽을 더 크게 보게 되나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필요했던 일을 해낸 경험을 떠올려, 무리함과 용기의 경계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몸을 더 몰아붙이라는 말처럼 들린다면 여기서 멈추고 쉬어 가세요.

겉옷을 내려놓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엎어 두었습니다. 바위에 앉아 있던 그때 내 마음이 풀려났습니다. 세 가지 앎에 이르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Nikkhipitvāna saṅghāṭiṁ, pattakañca nikujjiya; Nisinnā camhi selamhi, atha cittaṁ vimucci me; 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2.6 멧띠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멧띠까의 마지막 게송입니다. 겉옷을 내려놓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엎어 둔 뒤 바위에 앉습니다. 그때 마음이 풀려났고, 세 가지 앎에 이르렀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차례로 말합니다. 앞 게송에서 아프고 약한 몸으로 지팡이에 기대어 올랐던 산의 바위 위에서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묵상

겉옷을 내려놓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엎어 둔 채 바위에 앉자 마음이 풀려났다는 장면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예전보다 덜 붙들게 된 것이 내 안에 하나 있는지 조심스럽게 찾아볼 수 있을까요? 찾기 어렵다면 스스로를 채점하지 말고 바위에 앉은 장면만 떠올려 보세요.

25 둘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밋따의 게송 2구절

보름날 계율을 지킨 삶에서 세 가지 앎을 성취한 일을 노래합니다.

열나흗날과 보름날, 그리고 반달의 여드렛날, 특별한 반달 동안에도 여덟 가지를 온전히 갖추어…

“Cātuddasiṁ pañcadasiṁ, yā ca pakkhassa aṭṭhamī; Pāṭihāriyapakkhañca, aṭṭhaṅgasusamāga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2.7 둘째 밋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둘째 밋따는 지난날 정해진 날마다 여덟 가지 계를 지켰다고 말합니다. 열나흗날, 보름날, 반달의 여드렛날, 특별한 반달이 차례로 나오고, 여덟 가지를 온전히 갖추었다는 말이 그 뒤를 잇습니다. 이렇게 여덟 가지 계를 지키며 보내는 정해진 날을 우뽀사타라고 부릅니다. 문장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우뽀사타를 지냈다는 말로 끝나고, 거기서 밋따는 그때의 바람과 오늘의 삶을 나란히 놓습니다.

묵상

밋따는 열나흗날, 보름날, 반달의 여드렛날을 하나하나 꼽으며 여덟 가지를 온전히 갖추었다고 말해요. 내 일상에도 정해진 날마다 돌아와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 해 주는 습관이 있을까요?

신들의 무리에 들기를 그리며 계를 지키는 날(우뽀사타)을 지냈습니다. 그런 내가 오늘은 하루 한 끼를 먹고 머리를 깎고 겉옷을 두르고 있습니다. 마음의 불안을 없앴으니 나는 신들의 무리에 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Uposathaṁ upāgacchiṁ, devakāyābhinandinī; Sājja ekena bhattena, muṇḍā saṅghāṭipārutā; Devakāyaṁ na patthehaṁ, vineyya hadaye dar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2.7 둘째 밋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둘째 밋따는 지난날 계를 지키는 날(우뽀사타)을 지내던 때와 오늘을 견줍니다. 그때는 신들의 무리에 들기를 그리며 우뽀사타를 지냈습니다. 오늘은 하루 한 끼를 먹고, 머리를 깎고, 겉옷을 두른 수행자로 살고 있습니다. 마음의 불안을 없앤 지금은 신들의 무리에 들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원문은 여기서 밋따의 게송을 마칩니다.

묵상

밋따는 신들의 무리에 들기를 그리며 계를 지키던 때와, 그 바람을 내려놓은 오늘을 나란히 말해요. 하던 일은 이어 가면서도 그 까닭이 달라진 경험이 있나요? 지금의 동기가 아직 보상에 머물러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솔직한 이유를 그대로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26 아바야의 어머니에게 딸이 한 게송 2구절

딸이 어머니에게 몸을 바로 보고 갈망을 끊으라고 이르는 노래입니다.

어머니,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깨끗하지 않고 썩은 냄새가 나는 이 몸을 살펴보십시오.

“Uddhaṁ pādatalā amma, adho ve kesamatthakā; Paccavekkhassumaṁ kāyaṁ, asuciṁ pūtigandhik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2.8 아바야의 어머니에게 딸이 한 게송

배경

이 게송은 아바야의 어머니에게 딸이 건네는 말입니다. 딸은 어머니를 부르며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이 몸을 살펴보라고 권합니다. 두 방향을 함께 말해 몸 전체를 빠짐없이 훑게 합니다. 살필 몸은 깨끗하지 않고 썩은 냄새가 나는 몸이라고 그대로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살핀 끝에 욕정이 뿌리째 뽑혔다고 답합니다.

묵상

딸은 어머니에게 발바닥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이 몸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라고 권해요. 몸을 깨끗하고 아름답게만 여기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도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몸을 들여다보는 일이 버겁다면 손이나 발처럼 한 곳만 잠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렇게 살피며 지내니 모든 욕정이 뿌리째 뽑혔습니다. 타는 듯한 열기는 끊어졌고 나는 서늘해져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Evaṁ viharamānāya, sabbo rāgo samūhato; Pariḷāho samucchinno, sītibhūtāmhi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2.8 아바야의 어머니에게 딸이 한 게송

배경

몸을 살피라는 딸의 권유에 어머니가 답하는 게송입니다. 첫머리의 ‘이렇게’는 딸이 권한 대로 발바닥에서 위로, 머리카락 끝에서 아래로 몸을 살피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살핀 끝에 모든 욕정이 뿌리째 뽑히고, 타는 듯한 열기가 끊어지고, 서늘해져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차례로 말합니다.

묵상

딸의 권유대로 몸을 살핀 끝에 ‘나는 서늘해져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라고 답하는 어머니의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조언을 받아 실제로 해 본 뒤 내 경험으로 옳고 그름을 알게 된 일을 떠올려 볼 수 있나요? 떠오르는 일이 없다면, 들어 두기만 하고 아직 해 보지 않은 조언 가운데 가만히 살펴보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27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아바야의 게송 2구절

몸이 부서질 성질을 관찰해 갈망이 사라짐에 이른 일을 노래합니다.

아바야여, 이 몸은 부서지기 쉬운데 여느 사람들은 거기에 매달립니다. 나는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며 이 몸을 내려놓겠습니다.

“Abhaye bhiduro kāyo, yattha satā puthujjanā; Nikkhipissāmimaṁ dehaṁ, sampajānā satīmatī.

쿳다까 니까야 Thig 2.9 아바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바야의 게송은 ‘아바야여’ 하고 부르는 말로 시작합니다. 몸은 부서지기 쉬운데 여느 사람들은 거기에 매달린다고 하고, 자신은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며 이 몸을 내려놓겠다고 합니다. 몸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때가 되어 죽음을 맞는 일을 가리킵니다. 죽을 몸이라는 사실을 피하지 않고, 그때가 오면 깨어서 맞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묵상

‘이 몸은 부서지기 쉽다’는 말이 두려움으로만 들리나요, 매달리는 마음을 덜어 주는 말로도 들리나요? 죽음 이야기가 버겁다면 지금 살아 있는 감각 하나에만 주의를 돌려도 좋아요. 몸이 부서지기 쉽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오늘 더 돌보고 싶은 한 부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수많은 괴로운 일을 겪었지만 게으르지 않기를 즐겼기에 나는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다한 데 이르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Bahūhi dukkhadhammehi, appamādaratāya me; Taṇhakkhayo anuppatto, kataṁ buddhassa sāsan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2.9 아바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바야는 마지막 게송에서 자신이 지나온 길을 말합니다. 수많은 괴로운 일을 겪었지만 게으르지 않기를 즐겼고, 그래서 갈망이 다한 데 이르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괴로움을 겪었다는 말을 감추지 않은 채, 그 가운데서도 게으르지 않았던 마음을 결실의 까닭으로 듭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는 이 게송 모음의 여러 여성 수행자가 길을 다 마쳤다고 밝힐 때 되풀이하는 말입니다.

묵상

많은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게으르지 않기를 즐겼다’는 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날이라면 견뎌 낸 것 하나만 알아주어도 충분해요. 힘든 때에도 놓지 않았던 작은 주의나 돌봄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까요?

28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사마의 게송 1구절

아들을 잃은 슬픔을 넘어 방일하지 않음으로 갈망을 끝낸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네 번, 다섯 번 거처 밖으로 나섰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나에게서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뿌리째 뽑힌 지 여드레째 되는 밤입니다.

“Catukkhattuṁ pañcakkhattuṁ, vihārā upanikkhamiṁ; Aladdhā cetaso santiṁ, citte avasavattinī; Tassā me aṭṭhamī ratti, yato taṇhā samūh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2.10 사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마는 마음이 잡히지 않던 지난날을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네 번, 다섯 번 거처 밖으로 나섰고,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으며,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서 갈망이 뿌리째 뽑힌 지 여드레째 되는 밤이라고 합니다. 평화를 얻지 못하던 때와 갈망이 뽑힌 뒤의 밤이 한 게송 안에 나란히 있습니다.

묵상

네 번, 다섯 번 거처를 나섰고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던 사마의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애써도 평화가 오지 않던 때를 내가 어떻게 지나왔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떠올리기 버겁다면 지금 곁에 있는 것 하나만 살펴보세요.

29 또 다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사마의 게송 3구절

오랜 세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다 해방에 이른 과정을 노래합니다.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뒤 스물다섯 해 동안 내 마음이 단 한 번이라도 평온을 얻은 기억이 없습니다.

“Paṇṇavīsativassāni, yato pabbajitāya me; Nābhijānāmi cittassa, samaṁ laddhaṁ kudāc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3.1 또 다른 사마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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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마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뒤 스물다섯 해 동안 마음이 단 한 번이라도 평온을 얻은 기억이 없다고 말합니다. 스물다섯 해라는 긴 세월과 ‘단 한 번이라도’라는 말이 그 시간의 막막함을 그대로 전합니다. 오래 수행했다는 사실을 앞세우지 않고 어려웠던 날들을 솔직하게 밝힙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절박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묵상

스물다섯 해 동안 평온을 얻은 기억이 없다는 고백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그 일을 혼자 품고 있었다면 믿을 만한 이에게 어느 만큼 말할 수 있을지 살펴볼까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승리자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절박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Aladdhā cetaso santiṁ, citte avasavattinī; Tato saṁvegamāpādiṁ, saritvā jina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3.1 또 다른 사마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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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마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름이 같은 다른 여성 수행자 사마의 게송에도 같은 두 줄이 있습니다. 그러다 승리자,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절박한 마음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는 그 뒤 갈망이 다한 일이 나옵니다.

묵상

평화를 얻지 못한 채 오래 지나온 사마에게 가르침을 떠올린 일이 절박함으로 이어진 대목은 어떻게 읽히나요? 어떤 기억이나 말이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한 적이 있었나요? 지금 그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떠오르지 않는 그대로 두어 보세요.

수많은 괴로운 일을 겪었지만 게으르지 않기를 즐겼기에 나는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다한 데 이르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갈망이 말라 버린 뒤로 오늘이 이레째 밤입니다.

Bahūhi dukkhadhammehi, appamādaratāya me; Taṇhakkhayo anuppatto, kataṁ buddhassa sāsanaṁ; Ajja me sattamī ratti, yato taṇhā visosi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3.1 또 다른 사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또 다른 사마는 마지막 게송에서 수많은 괴로운 일을 겪었지만 게으르지 않기를 즐겼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갈망이 다한 데 이르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하고, 갈망이 말라 버린 뒤 오늘이 이레째 밤이라는 말로 끝맺습니다. 첫 게송의 스물다섯 해와 마지막 게송의 이레가 한 사람의 이야기 안에 함께 놓여 있습니다. 앞의 네 줄은 아바야의 마지막 게송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묵상

오랜 시간 평화를 얻지 못하던 사람이 ‘오늘이 이레째 밤’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떻게 읽히나요? 아직 그런 날이 오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오래 애쓰던 일에서 작은 변화가 처음 생긴 날이 있었다면 그날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30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웃따마의 게송 3구절

거듭 좌절한 뒤 가르침을 기억해 마음을 풀어 낸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네 번, 다섯 번 거처 밖으로 나섰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Catukkhattuṁ pañcakkhattuṁ, vihārā upanikkhamiṁ; Aladdhā cetaso santiṁ, citte avasavattinī.

쿳다까 니까야 Thig 3.2 웃따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따마는 첫 게송에서 거처 밖으로 네 번, 다섯 번 나섰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고백이 뒤따릅니다. 잘 되지 않던 시간을 숨기지 않고 횟수까지 세어 밝힙니다. 이렇게 되풀이된 어려움이 이어지는 게송에서 믿음이 가던 여성 수행자를 찾아가는 배경이 됩니다.

묵상

거처 밖으로 네 번, 다섯 번 나섰다는 대목에서 어떤 마음이 먼저 느껴지나요? 같은 시도를 되풀이하다 방법을 바꿔야 했던 일이 있었다면, 그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떠올려 볼까요? 더 시도할 힘이 없는 때라면, 오늘은 쉬어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보세요.

나는 믿음이 가던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내게 무더기와 감각 영역과 요소에 관한 가르침을 일러 주었습니다.

Sā bhikkhuniṁ upagacchiṁ, yā me saddhāyikā ahu; Sā me dhammamadesesi, khandhāyatanadhātuyo.

쿳다까 니까야 Thig 3.2 웃따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둘째 게송에서 웃따마는 믿음이 가던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갑니다.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하던 웃따마가 다른 이에게서 배움을 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그 여성 수행자가 일러 준 가르침은 무더기, 감각 영역, 요소라는 세 가지 목록입니다. 무더기는 몸과 마음을 이루는 다섯 갈래를, 감각 영역은 눈·귀·코·혀·몸·마음과 그 대상을 가리킵니다. 요소는 여섯 감각 기관과 그 대상에, 둘이 만나 생기는 앎을 더한 열여덟 갈래입니다. 모두 자기 경험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살피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묵상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을 “무더기와 감각 영역과 요소”로 나누어 보는 가르침은 어떤 도움이 될까요? 지금 뒤엉킨 경험이 있다면 몸의 감각, 느낀 기분, 떠오른 생각 가운데 하나만 따로 살펴볼 수 있을까요? 나누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뒤엉켜 있다는 것만 알아차려 보세요.

그 여성 수행자의 가르침을 듣고 그가 일러 준 그대로, 나는 이레 동안 가부좌를 한 번도 풀지 않고 희열과 행복에 잠겨 앉아 있었습니다. 여드레째에 다리를 뻗었습니다.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린 뒤였습니다.

Tassā dhammaṁ suṇitvāna, Yathā maṁ anusāsi sā; Sattāhaṁ ekapallaṅkena, Nisīdiṁ pītisukhasamappitā; Aṭṭhamiyā pāde pasāresiṁ, Tamokhandhaṁ padāliy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3.2 웃따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게송은 웃따마가 가르침을 들은 뒤 한 일을 순서대로 전합니다. 웃따마는 여성 수행자가 일러 준 그대로 이레 동안 가부좌를 한 번도 풀지 않고 앉아 있었고, 여드레째에 다리를 뻗었습니다. 앉아 있는 동안 희열과 행복에 잠겼다고 하며, 다리를 뻗을 때는 이미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린 뒤였다고 말합니다. 어둠의 덩어리는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하는 모름(아윗자)을 가리키는 비유로 읽힙니다.

묵상

들은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이레를 앉아 있었다는 대목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들은 말을 직접 겪어 보려고 낼 수 있는 작은 시간이 있을까요? 지금은 실천보다 회복이 먼저라면, 편히 앉을 자리 하나를 찾는 것부터 해 보세요.

31 또 다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웃따마의 게송 2구절

일곱 깨달음 요소를 닦고 밤의 세 시기에 세 가지 앎을 얻은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원할 때마다 텅 빔(수냐따)과 모습 없음의 명상에 듭니다. 나는 부처님의 친딸이며 언제나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기뻐합니다.

Suññatassānimittassa, lābhinīhaṁ yadicchakaṁ; Orasā dhītā buddhassa, nibbānābhiratā sadā.

쿳다까 니까야 Thig 3.3 또 다른 웃따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따마라는 이름의 또 다른 나이 든 여성 수행자가 부른 둘째 게송입니다. 첫 게송에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부처님이 가르치신 대로 모두 닦았다고 말한 데 이어, 원할 때마다 텅 빔과 모습 없음의 명상에 든다고 밝힙니다. 텅 빔은 어떤 것에서도 나라고 할 것, 내 것이라 할 것을 보지 않는 마음을, 모습 없음은 대상의 생김새나 특징에 마음을 두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어서 자신을 부처님의 친딸이라 부르며, 언제나 고요히 꺼짐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친딸이라는 말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새로 태어난 자식이라는 자부가 담겨 있습니다.

묵상

언제나 고요히 꺼짐을 기뻐한다는 고백에서 어떤 마음이 그려지나요? 마음이 고요해진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 몸과 호흡은 어땠는지 떠올려 볼까요? 고요함이 멀게 느껴지는 날이라면, 그런 날도 있다고 그대로 받아들여 보세요.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모든 감각적 욕망은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태어남을 거듭하던 떠돎은 다했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습니다.

Sabbe kāmā samucchinnā, ye dibbā ye ca mānusā; Vikkhīṇo jātisaṁsāro, natthi dāni punabbhavo”ti.

쿳다까 니까야 Thig 3.3 또 다른 웃따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게송에서 웃따마는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모든 감각적 욕망이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태어남을 거듭하던 떠돎이 다했고, 이제 다시 태어남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욕망을 하늘과 인간 두 갈래로 나누어 빠짐없이 짚은 뒤, 태어남이 이어지던 흐름이 끝났음을 밝히며 게송을 맺습니다.

묵상

모든 감각적 욕망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선언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먼저 드나요? 이제는 되풀이하지 않게 된 습관이 있다면, 무엇이 그 흐름을 멈추게 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아직 이어지는 습관이 보이더라도, 멈출 수 있었던 한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32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단띠까의 게송 3구절

길든 코끼리의 모습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깨달은 일을 노래합니다.

독수리봉 산에서 낮 동안의 명상을 마치고 나오다가, 강물에서 목욕하고 막 올라온 코끼리를 강둑에서 보았습니다.

“Divāvihārā nikkhamma, gijjhakūṭamhi pabbate; Nāgaṁ ogāhamuttiṇṇaṁ, nadītīramhi addas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3.4 단띠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단띠까의 첫 게송은 장면을 차례로 그립니다. 독수리봉 산에서 낮 동안의 명상을 마치고 나오던 단띠까는, 강물에서 목욕하고 막 올라온 코끼리를 강둑에서 보았습니다. 때와 장소와 본 것이 순서대로 놓여 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이 장면이 이어지는 게송에서 마음을 길들이는 일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묵상

명상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본 “막 올라온 코끼리”는 어떤 장면으로 그려지나요? 오가는 길에 눈에 들어와 오래 마음에 남은 모습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오늘 길에서 눈에 든 색이나 움직임 하나만 되짚어 보세요.

한 남자가 코끼리 갈고리를 들고 “발을 다오” 하고 청했습니다. 코끼리는 발을 내밀었고 남자는 코끼리에 올라탔습니다.

Puriso aṅkusamādāya, ‘dehi pādan’ti yācati; Nāgo pasārayī pādaṁ, puriso nāgamāruhi.

쿳다까 니까야 Thig 3.4 단띠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단띠까의 둘째 게송은 강둑에서 본 장면을 이어 갑니다. 한 남자가 코끼리 갈고리를 들고 “발을 다오” 하고 청하자, 코끼리가 발을 내밀고 남자는 코끼리에 올라탑니다. 청하는 말과 응하는 몸짓, 올라타는 일이 순서대로 놓여 있습니다. 큰 힘을 지닌 짐승이 사람의 말에 따르는 이 모습이 이어지는 게송의 바탕이 됩니다.

묵상

큰 코끼리가 “발을 다오”라는 짧은 말에 발을 내미는 모습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강한 충동 속에서도 익숙한 신호 하나에 반응해 멈추었던 경험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따르는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내가 스스로 골라 익힌 습관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길들지 않았던 짐승이 길들어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을 한곳에 모았습니다. 참으로 이 일을 위해 숲에 온 것입니다.

Disvā adantaṁ damitaṁ, manussānaṁ vasaṁ gataṁ; Tato cittaṁ samādhesiṁ, khalu tāya vanaṁ ga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3.4 단띠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게송에서 단띠까는 길들지 않았던 짐승이 길들어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보고 자기 마음을 한곳에 모았으며, 숲에 온 것이 바로 이 일을 위해서였다고 밝힙니다. 길들지 않음과 길듦이 마주 놓이고, 그 광경이 마음을 모으게 한 계기로 나옵니다.

묵상

“길들지 않았던 짐승이 길들어”라는 변화에서 무엇이 읽히나요? 예전에는 휩쓸렸지만 지금은 조금 기다릴 수 있게 된 감정이나 반응이 있는지 찾아볼까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껴지면, 알아차리는 때가 조금 빨라졌는지만 살펴보세요.

3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웁비리의 게송 3구절

딸을 잃은 슬픔의 화살이 뽑히고 세 가지 보배에 귀의한 일을 노래합니다.

“아, 내 딸 지와여” 하며 그대는 숲에서 우는구나. 웁비리여, 정신을 차려라. 이 화장터에서 불태워진 사람이 팔만 사천 명이고 모두 지와라는 같은 이름이었다. 그대는 그 가운데 누구를 슬퍼하는가?

“Amma jīvāti vanamhi kandasi, Attānaṁ adhigaccha ubbiri; Cullāsītisahassāni, Sabbā jīvasanāmikā; Etamhāḷāhane daḍḍhā, Tāsaṁ kamanusocasi”.

쿳다까 니까야 Thig 3.5 웁비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웁비리의 노래 첫 게송입니다. 딸 지와를 잃고 숲에서 그 이름을 부르며 우는 웁비리에게 부처님이 정신을 차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와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팔만 사천 명이 이 화장터에서 불태워졌다고 일러 주며, 그 가운데 누구를 슬퍼하는지 묻습니다. 웁비리는 이 물음을 듣고 다음 게송에서 가슴에 박힌 화살이 뽑혔다고 말하고, 마지막 게송에서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처로 삼습니다.

묵상

팔만 사천 명이 모두 “지와”라는 이름이었다는 말은 웁비리의 상실을 작게 만드는 말로 들리나요, 혼자가 아니라고 일러 주는 말로 들리나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억이 있다면, 이 말 앞에서 마음이 실제로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가만히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참으로 당신은 내게서 화살을 뽑아 주셨습니다. 잘 보이지 않게 가슴에 박혀 있던 그 화살을. 슬픔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서 딸을 잃은 슬픔을 몰아내 주셨습니다.

“Abbahī vata me sallaṁ, duddasaṁ hadayassitaṁ; Yaṁ me sokaparetāya, dhītusokaṁ byapānudi.

쿳다까 니까야 Thig 3.5 웁비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둘째 게송입니다. 웁비리는 잘 보이지 않게 가슴 깊이 박혀 있던 화살을 부처님이 뽑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 화살은 딸을 잃은 슬픔입니다. 슬픔에 사로잡혀 있던 웁비리가 그 슬픔에서 벗어났다고 직접 밝힙니다. 딸을 잃은 일은 그대로이고, 웁비리에게서 뽑혀 나간 것은 마음을 꿰뚫던 슬픔의 화살입니다.

묵상

“잘 보이지 않게 가슴에 박혀 있던 화살”이라는 비유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슬픔을 어떻게 보여 주나요? 내 마음을 찌르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이 있다는 것만 그대로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혼자 다루기 어렵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 보세요.

오늘 나는 화살이 뽑혀 갈망 없이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성자이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의지처로 삼습니다.

Sājja abbūḷhasallāhaṁ, Nicchātā parinibbutā; Buddhaṁ dhammañca saṅghañca, Upemi saraṇaṁ munin”ti.

쿳다까 니까야 Thig 3.5 웁비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게송입니다. 웁비리는 오늘 화살이 뽑혔다고 말하고, 갈망이 없어져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성자이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처로 삼는다고 선언하며 노래를 마칩니다. 딸의 이름을 부르며 숲에서 울던 첫 게송의 웁비리가 이 선언에 이릅니다.

묵상

웁비리는 “오늘” 화살이 뽑혔다고 말해요. 그 말에는 이전의 슬픔과 지금의 변화가 함께 들어 있어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으니, 오늘 조금 달라진 감각이나 숨 쉴 틈이 있는지 가만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34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숙까의 게송 3구절

바른 가르침을 들려주는 숙까와 그를 찬탄한 나무 신의 말을 전합니다.

이 라자가하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꿀술을 마신 듯 널브러져 있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숫까를 찾아 가까이하지 않는구나.

“Kiṁme katā rājagahe manussā, Madhuṁ pītāva acchare; Ye sukkaṁ na upāsanti, Desentiṁ buddha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3.6 숙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숫까의 노래 첫 게송입니다. 말하는 이는 라자가하 사람들이 꿀술을 마신 듯 늘어져 있다고 탄식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숫까를 왜 찾아 가까이하지 않는지 묻습니다. 이 노래는 라자가하에서 가르침을 전하던 여성 수행자 숫까의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묵상

라자가하 사람들이 가르침을 찾아 듣지 않는다는 탄식이 꾸지람처럼 들리나요, 귀한 기회를 알리는 초대처럼 들리나요? 지금 내게 도움이 될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가까이에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그러나 뿌리칠 수 없이 맛있고 힘을 주는 그 가르침을 지혜로운 이들은 마시는 듯하다. 길 가는 이들이 구름이 내린 빗물을 마시듯이.

Tañca appaṭivānīyaṁ, asecanakamojavaṁ; Pivanti maññe sappaññā, valāhakamivaddhagū.

쿳다까 니까야 Thig 3.6 숙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둘째 게송입니다. 말하는 이는 첫 게송에서 숫까를 찾지 않는 라자가하 사람들을 탄식한 데 이어, 지혜로운 이들은 숫까가 전하는 가르침을 마시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그 가르침을 뿌리칠 수 없이 맛있고 힘을 주는 것이라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먼 길을 가는 이들이 구름이 내린 빗물을 마시는 모습에 견줍니다.

묵상

먼 길을 가는 이들이 구름이 내린 빗물을 마시는 모습은 어떤 갈증을 떠올리게 하나요? 마음이 메말랐을 때 실제로 힘이 되어 준 한 문장이나 누군가의 말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아무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때라면, 물을 찾지 못한 그 갈증도 그대로 존중해 주세요.

숫까라는 이름처럼 밝은 성질을 지니고 탐냄을 떠나 마음이 한곳에 모인 그는 마라와 그 군대를 이기고 마지막 몸을 지니고 있다.

Sukkā sukkehi dhammehi, vītarāgā samāhitā; Dhāreti antimaṁ dehaṁ, jetvā māraṁ savāhinin”ti.

쿳다까 니까야 Thig 3.6 숙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게송입니다. 숫까라는 이름은 ‘밝다’는 뜻이고, 게송은 숫까가 이름 그대로 밝은 성질을 지녔으며 탐냄을 떠나 마음이 한곳에 모여 있다고 노래합니다. 숫까는 수행을 가로막는 마라와 그 군대를 이겼고,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지금의 몸이 마지막 몸입니다. 앞의 두 게송이 숫까가 전하는 가르침을 찾아 듣기를 권했다면, 여기서는 숫까가 어떤 사람인지 밝힙니다.

묵상

게송은 가르침을 전하는 숫까를 탐냄을 떠나 마음이 한곳에 모인 사람으로 그려요.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보고 있나요? 다만 말하기 전에 내 이익이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섞였는지 한 번 살펴보면 어떨까요?

35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셀라의 게송 3구절

감각적 즐거움으로 유혹하는 마라에게 괴로움과 해방의 길을 답합니다.

세상에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 홀로 떨어져 지내서 무엇 하겠는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려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Natthi nissaraṇaṁ loke, kiṁ vivekena kāhasi; Bhuñjāhi kāmaratiyo, māhu pacchānutāpinī”.

쿳다까 니까야 Thig 3.7 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셀라의 노래 첫 게송입니다. 수행을 가로막는 존재인 마라가 셀라에게, 세상에는 빠져나갈 길이 없으니 홀로 떨어져 지내 봐야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라고 부추기며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덧붙입니다. 이어지는 두 게송에서 셀라가 이 말에 답합니다.

묵상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단정 바로 뒤에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라는 부추김이 따라오는 흐름이 보이나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해로운 선택으로 이어진 적이 있다면, 생각과 선택 사이에 어떤 틈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지금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해 보세요.

감각적 욕망은 칼과 창 같고 무더기들은 그 칼과 창이 내리치는 도마와 같다. 네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라 부르는 것은 이제 내게 즐거움이 아니다.

“Sattisūlūpamā kāmā, khandhāsaṁ adhikuṭṭanā; Yaṁ tvaṁ ‘kāmaratiṁ’ brūsi, ‘aratī’ dāni sā mama.

쿳다까 니까야 Thig 3.7 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둘째 게송에서 셀라가 마라에게 답합니다. 감각적 욕망은 칼과 창 같고, 몸과 마음을 이루는 무더기들은 그 칼과 창이 내리치는 도마와 같다고 빗댑니다. 그리고 마라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라 부른 것이 이제 자신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즐겁게 보이던 것을 몸과 마음을 거듭 내리치는 칼날로 보게 되면서, 마라의 부추김은 셀라에게 힘을 잃습니다.

묵상

겉으로는 달콤했던 욕망이 “칼과 창”처럼 나를 다치게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본 일이 있나요? 아직 놓을 준비가 안 된 즐거움이라면 위험을 부풀리거나 외면하지 말고 두 면을 함께 보는 것으로 충분해요. 즐거움이라는 이름과 몸과 마음에 실제로 남은 흔적이 달랐던 경험 하나를 떠올려 견주어 볼 수 있을까요?

즐겨 붙드는 마음은 모든 면에서 꺾였고 어둠의 덩어리는 산산이 깨졌다. 악한 자여, 이렇게 알아라. 죽음을 가져오는 자여, 너는 패배했다.

Sabbattha vihatā nandī, Tamokhandho padālito; Evaṁ jānāhi pāpima, Nihato tvamasi antak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3.7 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게송입니다. 셀라는 즐겨 붙드는 마음이 모든 면에서 꺾였고, 모름이라는 어둠의 덩어리가 깨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라를 ‘악한 자’, ‘죽음을 가져오는 자’라고 두 번 불러 그가 졌다고 선언합니다. 셀라는 첫 게송의 유혹에 자신에게 이미 일어난 일을 밝혀 답합니다.

묵상

셀라는 마라에게 “너는 패배했다”고 말해요. 그 말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크게 흔들렸지만 지금은 힘을 잃은 유혹이 있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볼까요?

36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소마의 게송 2구절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혜를 낮춘 마라의 말에 통찰로 답합니다.

선견자들이 이르러야 할 그 자리는 도달하기 매우 어렵다. 두 손가락만 한 지혜를 지닌 여자는 그곳에 이를 수 없다.

“Yaṁ taṁ isīhi pattabbaṁ, ṭhānaṁ durabhisambhavaṁ; Na taṁ dvaṅgulapaññāya, sakkā pappotumitth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3.8 소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행을 가로막는 존재인 마라가 여성 수행자 소마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마라는 성자들이 이르러야 할 자리는 도달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한 뒤, 여자의 지혜는 두 손가락만 해서 그곳에 이를 수 없다고 결론짓습니다. 이 말은 그 자리가 어렵다는 데서 곧바로 여자는 이를 수 없다고 못 박아, 성별을 수행 능력의 한계로 삼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소마가 이 전제에 답합니다.

묵상

“두 손가락만 한 지혜”라는 말을 읽을 때 마음에 무엇이 일어나나요? 능력을 성별이나 몸의 특징으로 미리 제한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 판단이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가려 볼 수 있을까요? 기억이 아프다면 여기서 멈추고 잠시 쉬어 가세요.

마음이 한곳에 잘 모이고 지혜가 함께하며 진리를 바르게 꿰뚫어 볼 때, 여자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Itthibhāvo no kiṁ kayirā, cittamhi susamāhite; Ñāṇamhi vattamānamhi, sammā dhammaṁ vipassato.

쿳다까 니까야 Thig 3.8 소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소마가 마라에게 답합니다. 마음이 한곳에 잘 모이고 지혜가 함께하며 진리를 바르게 꿰뚫어 볼 때, 여자라는 사실이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습니다. 앞에서 마라는 여자의 지혜가 두 손가락만 해서 그 자리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소마는 마음과 지혜를 들어 그 말을 물리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소마는 즐겨 붙드는 마음이 모든 면에서 꺾였고 어둠의 덩어리가 깨졌다고 말하며, 마라가 졌다고 선언합니다.

묵상

소마는 마음이 모이고 지혜가 함께할 때 “여자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고 되물어요. 내 가능성을 가로막는다고 여겨 온 꼬리표가 있다면, 그 꼬리표와 실제로 닦아 온 능력을 따로 떼어 바라볼 수 있을까요? 꼬리표를 다루기 힘든 날에는 내가 이미 해낸 구체적인 일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37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밧다 까삘라니의 게송 4구절

과거의 삶을 기억하고 세 가지 앎으로 해방된 두 수행자를 함께 기립니다.

부처님의 아들이며 상속자인 깟사빠는 마음이 한곳에 잘 모여 있습니다. 그는 지난 삶을 알고 하늘 세계와 비참한 곳을 봅니다.

“Putto buddhassa dāyādo, kassapo susamāhito; Pubbenivāsaṁ yovedi, saggāpāyañca passati.

쿳다까 니까야 Thig 4.1 밧다 까삘라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 까삘라니의 노래 첫 게송입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밧다와 깟사빠는 집을 떠나기 전 부부였습니다. 밧다는 가르침을 이어받은 깟사빠를 부처님의 아들이자 상속자라고 부르고, 그의 마음이 한곳에 잘 모여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가 지난 삶을 알고 하늘 세계와 비참한 곳을 본다고 합니다. 이 둘은 세 가지 앎 가운데 첫째와 둘째인,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과 하늘의 눈입니다. 셋째 앎은 이어지는 게송에서 더해집니다.

묵상

밧다는 깟사빠를 “부처님의 아들이며 상속자”라고 부른 뒤, 한곳에 모인 그의 마음과 그가 얻은 앎을 이야기해요. 내가 누군가에게 물려받았다고 여기는 것과 직접 길러 온 것을 가볍게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판단 없이 그 차이만 마음에 남겨 두면 어떨까요?

또한 그는 태어남이 다하는 데 이르렀고 높은 앎을 완성한 성자입니다. 이 세 가지 앎으로 그는 세 가지 앎을 갖춘 브라흐마나가 됩니다.

Atho jātikkhayaṁ patto, abhiññāvosito muni; Etāhi tīhi vijjāhi, tevijjo hoti brāhmaṇo.

쿳다까 니까야 Thig 4.1 밧다 까삘라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가 깟사빠를 두고 이어 가는 말입니다. 깟사빠는 태어남이 다하는 데 이르렀고, 높은 앎을 완성한 성자라고 합니다. 앞에서 든 지난 삶을 아는 앎과 하늘 세계와 비참한 곳을 보는 앎에, 태어남이 다하는 데 이른 것이 더해져 세 가지 앎이 됩니다. ‘세 가지 앎을 갖춘 이’는 본래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이 세 가지 베다를 다 익힌 이를 부르던 이름입니다. 이 게송은 그 이름을 깟사빠가 닦아 얻은 세 가지 앎에 붙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밧다는 같은 세 가지 앎을 자신에게도 붙입니다.

묵상

브라흐마나들은 세 가지 베다를 다 익힌 이를 ‘세 가지 앎을 갖춘 이’라고 불렀어요. 이 게송은 그 이름을 지난 삶을 아는 앎, 하늘 세계와 비참한 곳을 보는 앎, 태어남이 다했음을 아는 앎에 붙여요. 많이 외워서 아는 일과 스스로 보아서 아는 일은 어떻게 달라 보이나요? 셋 가운데 마음에 닿는 하나를 골라 그 까닭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바로 그와 같이 까삘라의 딸 밧다도 세 가지 앎을 갖추어 죽음을 벗어났습니다. 마라와 그 군대를 이기고 마지막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Tatheva bhaddā kāpilānī, tevijjā maccuhāyinī; Dhāreti antimaṁ dehaṁ, jetvā māraṁ savāhin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4.1 밧다 까삘라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는 깟사빠에게 붙인 세 가지 앎을 “바로 그와 같이” 자신에게도 붙이며, 자신을 ‘까삘라의 딸 밧다’라고 부릅니다. 밧다도 세 가지 앎을 갖추어 죽음을 벗어났고, 마라와 그 군대를 이겼으며, 지금 지닌 몸이 마지막 몸이라고 합니다. 마라는 사람을 욕망과 죽음에 붙잡아 두려는 존재로 경전에 자주 나옵니다. 마지막 몸은 이 몸을 끝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몸입니다. 같은 말로 깟사빠와 밧다를 나란히 세워, 두 사람이 이룬 것에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밧다는 함께 집을 떠난 까닭과 함께 이룬 결실을 “우리”로 말합니다.

묵상

“바로 그와 같이 까삘라의 딸 밧다도”라는 구절은 두 수행자를 나란히 세워요. 누군가와 나를 우열 없이 나란히 놓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비교가 불편하다면, 나를 누구와도 견주지 않고 이 구절만 한 번 더 읽어 보세요.

세상의 위험을 보고 우리 둘은 집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흘러드는 것이 다하고 길들여졌으며,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Disvā ādīnavaṁ loke, ubho pabbajitā mayaṁ; Tyamha khīṇāsavā dantā, sītibhūtamha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4.1 밧다 까삘라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가 노래를 맺는 게송입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밧다와 깟사빠는 집을 떠나기 전 부부였습니다. 밧다는 앞에서 깟사빠와 자신이 이룬 것을 하나씩 말한 뒤, 여기서는 두 사람을 “우리”로 묶어 말합니다. 두 사람은 세상의 위험을 보고 함께 집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마음으로 흘러드는 것이 다하고 길들여졌으며,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밝힙니다. 마음을 달구던 열기가 식은 모습을 서늘해졌다고 표현합니다. 함께 길을 나선 두 사람이 같은 풀려남에 이르렀습니다.

묵상

밧다는 “우리 둘은 집을 떠났습니다”라고 한 뒤, 이제 우리는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말해요. 함께 길을 나서는 일과 저마다 마음을 길들이는 일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곁의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방향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혼자 걷는 편이 더 편안하다면 그 선택도 존중해 주세요.

38 이름 없는 둘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게송 5구절

오랜 시간 얻지 못한 평화를 몸의 참모습을 보아 성취한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뒤 스물다섯 해 동안 손가락 한 번 튕길 만큼의 짧은 순간조차 마음의 고요를 얻지 못했습니다.”

“Paṇṇavīsativassāni, yato pabbajitā ahaṁ; Nāccharāsaṅghātamattampi, cittassūpasamajjhag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 이름 없는 둘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한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노래입니다.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지 스물다섯 해가 지났지만, 손가락을 한 번 튕길 만큼 짧은 순간조차 마음의 고요를 얻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오래 수행했어도 마음이 저절로 평화로워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밝히며 노래를 엽니다. 뒤이어 이 괴로움은 울음으로 터져 나오고, 그녀는 믿고 의지하던 여성 수행자를 찾아갑니다.

묵상

스물다섯 해라는 긴 세월과 손가락 한 번 튕기는 짧은 순간을 나란히 놓고 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오래 애썼는데도 마음이 여전히 고요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면, 애쓴 시간과 고요하지 않은 마음을 함께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감각적 욕망에 흠뻑 젖은 나는, 두 팔을 치켜들고 울면서 거처로 들어갔습니다.

Aladdhā cetaso santiṁ, kāmarāgenavassutā; Bāhā paggayha kandantī, vihāraṁ pāvisiṁ a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 이름 없는 둘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채 감각적 욕망에 흠뻑 젖어 있던 수행자가 두 팔을 치켜들고 울면서 거처로 들어갑니다. 스물다섯 해 동안 고요를 얻지 못한 괴로움이 울음으로 터져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수행이 잘된 것처럼 꾸미지 않고, 견디기 어려운 마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이 수행자는 믿고 의지하던 여성 수행자를 찾아갑니다.

묵상

두 팔을 치켜들고 울면서 거처로 들어가는 모습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견디기 어려운 마음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 본 적이 있나요?

나는 믿고 의지하던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무더기와 감각 영역과 요소에 관한 가르침을 나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Sā bhikkhuniṁ upāgacchiṁ, yā me saddhāyikā ahu; Sā me dhammamadesesi, khandhāyatanadhātuyo.

쿳다까 니까야 Thig 5.1 이름 없는 둘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울며 거처에 들어온 수행자는 믿고 의지하던 여성 수행자를 찾아갑니다. 그 여성 수행자는 무더기, 감각 영역, 요소에 관한 가르침을 일러 줍니다. 무더기는 몸과 마음을 이루는 덩어리들이고, 감각 영역은 눈·귀 같은 감각과 그 대상이 만나는 자리이며, 요소는 경험을 이루는 낱낱의 성분입니다. 셋 모두 자기 경험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이 수행자는 가르침을 듣고 한쪽에 가서 앉습니다.

묵상

무더기, 감각 영역, 요소처럼 경험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본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지금 몸에서 느껴지는 것이나 들리는 소리 하나만 조용히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 여성 수행자의 가르침을 들은 뒤 나는 한쪽에 가서 앉았습니다. 나는 지난 삶을 알고 하늘의 눈이 맑아졌습니다.

Tassā dhammaṁ suṇitvāna, ekamante upāvisiṁ; Pubbenivāsaṁ jānāmi, dibbacakkhu visodhi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 이름 없는 둘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여성 수행자의 가르침을 들은 수행자는 한쪽에 가서 앉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기의 지난 삶을 알고 하늘의 눈이 맑아졌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눈은 여느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것, 곧 뭇 생명이 저마다 한 행위에 따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눈을 이릅니다. 믿고 찾아가 배운 가르침이 한쪽에 조용히 앉는 일로 이어지고, 그 끝에 깊은 앎이 열립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남의 마음을 아는 앎과 하늘의 귀 등 나머지 높은 앎이 더해집니다.

묵상

가르침을 듣고 한쪽에 가서 조용히 앉는 이 수행자처럼, 좋은 말을 들은 뒤 그것을 곱씹어 볼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있나요? 지금 잠깐 앉아 보아도 좋아요. 몸이 불편하면 서거나 누운 채로, 들은 말 하나를 천천히 떠올려 보세요.

“남의 마음을 아는 앎을 얻었고 하늘의 귀도 맑아졌습니다. 신통도 몸소 얻었고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여섯 가지 높은 앎을 몸소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Cetopariccañāṇañca, sotadhātu visodhitā; Iddhīpi me sacchikatā, patto me āsavakkhayo; Chaḷabhiññā sacchikatā, kataṁ buddhassa sāsan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5.1 이름 없는 둘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행자는 남의 마음을 아는 앎과 하늘의 귀와 신통을 얻고,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데 이르렀다고 차례로 말합니다. 흘러드는 것은 욕망처럼 마음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을 이릅니다. 앞에서 말한 지난 삶을 아는 앎과 하늘의 눈을 합쳐 여섯 가지 높은 앎을 모두 얻었다고 맺습니다. 스물다섯 해 동안 고요를 얻지 못해 울던 사람이 믿고 의지하던 여성 수행자를 찾아가 가르침을 듣고 한쪽에 앉은 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는 데까지 이릅니다.

묵상

스물다섯 해의 괴로움에서 시작해 여섯 가지 높은 앎으로 끝나는 이 노래에서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우는 장면, 믿는 이를 찾아가는 장면, 한쪽에 앉는 장면 가운데 어느 것인가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 있다면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39 전직 유녀였던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위말라의 게송 5구절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유혹하던 삶과 해방된 현재를 대조합니다.

“나는 용모와 몸매와 아름다움과 명성에 취했고, 젊음을 믿고 거만해져 다른 여자들을 업신여겼습니다.”

“Mattā vaṇṇena rūpena, sobhaggena yasena ca; Yobbanena cupatthaddhā, aññāsamatimaññi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2 전직 유녀 위말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위말라는 예전에 유곽에서 몸을 팔던 여성이었고, 지금은 나이 든 여성 수행자입니다. 노래는 지난날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용모와 몸매, 아름다움과 명성에 취해 있었고, 젊음을 믿고 거만해져 다른 여자들을 업신여겼다고 말합니다. 몸과 평판을 남보다 낫다는 근거로 삼았던 자신을 숨기지 않고 돌아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위말라는 몸을 꾸미고 유곽 문 앞에 서 있던 모습을 덫을 놓는 사냥꾼에 견줍니다.

묵상

아름다움에 취하고 젊음을 믿어 다른 여자들을 업신여겼다는 고백을 읽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칭찬받던 조건이 어느새 남과 나를 견주는 잣대가 된 적이 있다면, 자신을 탓하지 않고 그 순간을 알아차려 볼 수 있을까요?

어리석은 이들이 입에 올리던 이 몸을 곱고 화려하게 꾸민 뒤, 사냥꾼이 덫을 놓듯 나는 유곽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Vibhūsetvā imaṁ kāyaṁ, sucittaṁ bālalāpanaṁ; Aṭṭhāsiṁ vesidvāramhi, luddo pāsamivoḍḍiya.

쿳다까 니까야 Thig 5.2 전직 유녀 위말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위말라는 몸을 곱고 화려하게 꾸민 채 유곽 문 앞에 서 있던 자기 모습을, 사냥꾼이 덫을 놓는 일에 견줍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서 있었음을 스스로 밝히는 말입니다. 그 몸을 어리석은 이들이 입에 올리던 몸이라고 부르며, 지난 모습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장신구와 속임수, 비웃음으로 그 방식이 더 자세히 그려집니다.

묵상

자기를 덫을 놓은 사냥꾼에 견주는 거친 비유를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남의 눈길을 끌려는 마음과 누군가를 붙잡으려는 마음은 어디서 갈라질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장신구를 드러내고 감추어진 곳도 많이 내보이며, 많은 사람을 큰 소리로 비웃으면서 갖가지 속임수를 부렸습니다.

Piḷandhanaṁ vidaṁsentī, guyhaṁ pakāsikaṁ bahuṁ; Akāsiṁ vividhaṁ māyaṁ, ujjagghantī bahuṁ j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2 전직 유녀 위말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위말라는 자기를 덫을 놓은 사냥꾼에 견준 데 이어, 사람들을 끌던 방식을 더 자세히 말합니다. 장신구를 드러내고 감추어진 곳까지 내보였으며, 많은 사람을 큰 소리로 비웃으면서 갖가지 속임수를 부렸다고 합니다. 매력과 조롱을 함께 써서 남의 마음을 움직이던 지난날을 숨김없이 돌아보는 고백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깎은 머리에 겉옷을 두르고 나무 아래 앉은 오늘의 모습이 나와 지난날과 뚜렷이 대비됩니다.

묵상

속임수를 부리며 사람들을 큰 소리로 비웃던 모습이 한 장면에 담겨 있어요.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이 남을 작게 만드는 순간을 알아본 적이 있나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오늘 내가 한 말 한마디만 돌이켜 보세요.

그런 내가 오늘은 음식을 얻으러 다녀와 깎은 머리에 겉옷을 두른 채 나무 아래 앉아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얻었습니다.

Sājja piṇḍaṁ caritvāna, muṇḍā saṅghāṭipārutā; Nisinnā rukkhamūlamhi, avitakkassa lābhinī.

쿳다까 니까야 Thig 5.2 전직 유녀 위말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장신구로 몸을 꾸미고 유곽 문 앞에 서 있던 지난날에서, ‘그런 내가 오늘은’이라는 말과 함께 장면이 바뀝니다. 위말라는 음식을 얻으러 다녀와, 깎은 머리에 겉옷을 두른 채 나무 아래 앉아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수행자는 집집을 돌며 먹을 것을 얻어 끼니를 잇습니다. 시선을 끌려고 꾸미던 삶에서 물러나, 소박한 차림으로 마음이 고요해진 모습입니다. 이어서 이 노래는 모든 멍에가 끊어졌다는 말로 넓어집니다.

묵상

화려한 치장 대신 깎은 머리에 겉옷을 두르고 나무 아래 앉은 모습을 그려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남의 시선을 모으는 일과 생각이 잦아드는 일 가운데 요즘 내 마음이 더 자주 향하는 쪽은 어디인가요? 고르기 어렵다면 잠시 주변의 색 하나를 바라보며 숨을 골라 보세요.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모든 멍에는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흘러드는 것을 모두 없애고 나는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Sabbe yogā samucchinnā, ye dibbā ye ca mānusā; Khepetvā āsave sabbe, sītibhūtāmhi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5.2 전직 유녀 위말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무 아래에서 얻은 고요가 마지막에는 하늘의 멍에와 인간의 멍에가 모두 끊어졌다는 말로 넓어집니다. 멍에는 소를 수레에 매어 두는 나무처럼 사람을 어딘가에 묶어 두는 것을 가리킵니다. 위말라는 신들의 세계에서 누릴 즐거움에도, 사람 사이의 즐거움에도 더는 매이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흘러들어 흐리게 하던 것을 모두 없앴기에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맺습니다. 남의 시선을 붙잡으려 하던 사람의 노래가 완전한 놓임으로 닫힙니다.

묵상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모든 멍에가 끊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지금 나를 붙들고 있는 것 가운데 평범한 것 하나와 고상해 보이는 것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아직 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억지로 놓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 무게만 가만히 느껴 보세요.

40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시하의 게송 5구절

칠 년의 고투와 죽음 직전 찾아온 마음의 해방을 노래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게 마음을 기울인 탓에 감각적 욕망으로 괴로워했습니다. 예전의 나는 들떠 있었고 내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Ayoniso manasikārā, kāmarāgena aṭṭitā; Ahosiṁ uddhatā pubbe, citte avasavattinī.

쿳다까 니까야 Thig 5.3 시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하는 자신의 괴로움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부터 말합니다. 마음을 이치에 맞지 않게 기울인 탓에 감각적 욕망으로 괴로워했고, 예전에는 들뜬 채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엇에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두는지가 욕망과 들뜸을 키울 수 있음을 시하 자신의 경험으로 보여 줍니다.

묵상

“이치에 맞지 않게 마음을 기울인 탓에”라는 말을 자신을 탓하는 말로 읽지 않고, 마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살피는 말로 읽어 볼 수 있을까요? 오늘 내 눈길을 오래 붙든 것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떠올리기 부담스러우면 지금 들리는 소리나 몸에 닿는 감촉으로 주의를 옮겨 보세요.

마음을 흐리는 것들에 온통 사로잡혀 아름답다는 생각을 뒤따르던 나는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고 욕정에 찬 마음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습니다.

Pariyuṭṭhitā klesehi, subhasaññānuvattinī; Samaṁ cittassa na labhiṁ, rāgacittavasānugā.

쿳다까 니까야 Thig 5.3 시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하는 마음을 흐리는 것들에 사로잡혀 아름답다는 생각을 따라갔고,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욕정에 찬 마음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대상을 아름답다고 보는 생각을 따라가는 동안 욕정이 커지고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묵상

아름답다는 생각을 뒤따르던 시하는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했다고 말해요. 끌리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쉬지 못했던 때가 떠오르나요? 떠오른다면 그 경험을 고치려 하지 말고 몸에서 긴장된 한 곳만 느껴 보세요.

여위고 창백하고 핏기를 잃은 채 나는 일곱 해 동안 떠돌았습니다. 몹시 괴로워서 낮에도 밤에도 어떤 행복도 얻지 못했습니다.

Kisā paṇḍu vivaṇṇā ca, satta vassāni cārihaṁ; Nāhaṁ divā vā rattiṁ vā, sukhaṁ vindiṁ sudukkh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5.3 시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하는 몸이 여위고 창백해지고 핏기를 잃은 채 일곱 해를 떠돌았다고 말합니다. 낮에도 밤에도 행복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음의 괴로움이 오랜 세월 몸과 일상을 모두 짓눌렀다는 사실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전합니다.

묵상

“일곱 해 동안” 낮에도 밤에도 행복을 얻지 못했다는 말은 읽기에 무거울 수 있어요. 내가 오래 겪은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을 서둘러 교훈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요?

그 뒤 나는 밧줄을 들고 숲속 깊이 들어갔습니다. 비천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느니 차라리 여기서 목을 매는 편이 낫다고 여겼습니다.

Tato rajjuṁ gahetvāna, pāvisiṁ vanamantaraṁ; Varaṁ me idha ubbandhaṁ, yañca hīnaṁ punācare.

쿳다까 니까야 Thig 5.3 시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일곱 해의 괴로움 끝에 시하는 밧줄을 들고 숲속 깊이 들어갑니다. 비천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느니 여기서 목을 매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는 말까지 그대로 전합니다. 극심한 절망의 순간을 누그러뜨리거나 교훈으로 재단하지 않고, 마음이 풀리기 직전의 위태로운 때를 사실대로 옮깁니다.

묵상

지금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곧바로 가까운 사람이나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에 연락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읽기를 잠시 접고 숨을 돌려 보면 어떨까요?

튼튼한 올가미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묶었습니다. 그 올가미를 목에 거는 바로 그때, 내 마음은 풀려났습니다.

Daḷhapāsaṁ karitvāna, rukkhasākhāya bandhiya; Pakkhipiṁ pāsaṁ gīvāyaṁ, atha cittaṁ vimucci me”ti.

쿳다까 니까야 Thig 5.3 시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하는 올가미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묶고 목에 걸었고, 바로 그때 마음이 풀려났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권하거나 아름답게 그리는 말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벼랑 끝에서 일어난 일을 한 수행자가 직접 증언합니다.

묵상

올가미를 거는 순간의 풀려남은 따라 할 일이 아니에요. 괜찮다면 나머지 장면은 지나치고 “내 마음은 풀려났습니다”라는 마지막 말만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이 장면이 마음을 흔든다면 곧바로 글을 덮고 믿을 만한 사람이나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에 연락해 주세요.

41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순다리난다의 게송 4구절

몸의 덧없고 깨끗하지 않은 성질을 관찰해 자만을 버리라고 이릅니다.

이것이 그러하듯 저것도 그러하고, 저것이 그러하듯 이것도 그러합니다. 악취를 풍기며 썩어 가는 것을 어리석은 이들은 좋아합니다.

Yathā idaṁ tathā etaṁ, yathā etaṁ tathā idaṁ; Duggandhaṁ pūtikaṁ vāti, bālānaṁ abhinandi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4 순다리난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난다의 노래는 그녀를 “난다여” 하고 부르며 몸을 살피라고 권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대목은 그 권고의 뒷부분입니다. ‘이것’과 ‘저것’, 곧 자기 몸과 남의 몸이 서로 같다는 말을 두 방향으로 되풀이합니다. 이어 몸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 가는데 어리석은 이들은 그 몸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기 몸이든 남의 몸이든 어느 한쪽만 아름답게 여기지 않고 둘 다 같은 성질을 지닌 것으로 보게 합니다.

묵상

“이것이 그러하듯 저것도 그러하고”라는 말은 내 몸과 남의 몸 가운데 어느 한쪽만 특별하게 여기지 않게 해요. 혐오나 평가로 기울지 않고, 두 몸이 같은 성질을 지녔다는 사실만 조용히 바라볼 수 있을까요? 이 대목이 불편하면 몸을 살피는 일은 멈추고 주변의 소리로 주의를 옮겨 보세요.

이와 같이 그것을 살피며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 뒤 나는 내 지혜로 꿰뚫어 보았습니다.

Evametaṁ avekkhantī, rattindivamatanditā; Tato sakāya paññāya, abhinibbijjha dakkhis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4 순다리난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난다는 앞서 들은 권고대로, 몸을 병들고 더럽고 썩어 가는 것으로 살피는 일을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게 이어 갔다고 말합니다. 그 뒤 자신의 지혜로 꿰뚫어 보았다고 합니다. 들은 말을 꾸준히 살펴 스스로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묵상

순다리난다는 들은 권고대로 밤낮으로 몸을 살핀 끝에 “내 지혜로” 꿰뚫어 보았다고 말해요. 남에게 들은 말을 직접 겪고 살펴본 뒤에야 내 앎이 된 일이 있었나요? 떠오르지 않으면 오늘 내 몸의 감각 하나를 천천히 살펴보세요.

게으르지 않고 이치에 맞게 살펴 나가던 나는 이 몸의 안과 밖을 있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Tassā me appamattāya, vicinantiyā yoniso; Yathābhūtaṁ ayaṁ kāyo, diṭṭho santarabāhiro.

쿳다까 니까야 Thig 5.4 순다리난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난다는 게으르지 않게, 이치에 맞게 살펴 나갔고, 그 결과 이 몸의 안과 밖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고 말합니다. 몸의 겉모습과 몸속을 함께 살핀 끝에 얻은 앎입니다.

묵상

순다리난다는 “이 몸의 안과 밖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고 말해요. 겉모습과 몸 안의 감각 가운데 내가 평소 덜 살피던 쪽은 어느 쪽인가요? 편하다면 그쪽에 잠시 조용히 주의를 두어 보고, 몸에 주의를 두기 힘들면 주변의 소리로 옮겨 보세요.

그때 나는 몸에 싫증이 났고 내 안에서도 탐냄이 사라졌습니다. 게으르지 않고 매임에서 벗어난 나는 잠잠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Atha nibbindahaṁ kāye, ajjhattañca virajjahaṁ; Appamattā visaṁyuttā, upasantāmhi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5.4 순다리난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안과 밖을 있는 그대로 본 순다리난다는 몸에 싫증이 났고 자기 안에서도 탐냄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게으르지 않게 살피며 매임에서 벗어났고, 잠잠해져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는 말로 노래를 맺습니다. 몸을 있는 그대로 본 일이 싫증으로 이어지고, 싫증 끝에 탐냄이 사라져 고요에 이릅니다.

묵상

무언가를 붙들던 힘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던 순간이 있었는지만 가만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떠오르지 않으면 그대로 두고, 오늘은 몸을 편히 돌보세요.

42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난둣따라의 게송 5구절

여러 의례와 고행을 떠돌다 바른 길에서 세 가지 앎을 얻은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불과 달과 해와 여러 신에게 예배했습니다. 강의 나루터로 가서는 물속에 몸을 담갔습니다.

“Aggiṁ candañca sūriyañca, devatā ca namassihaṁ; Nadītitthāni gantvāna, udakaṁ oruhāmi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5 난둣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난둣따라는 믿음을 얻어 집을 떠나기 전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불과 달과 해, 여러 신에게 예배했고, 강의 나루터에 가서 물속에 몸을 담갔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여러 서원을 받아 지키며 머리를 반만 밀고, 맨땅에서 자고, 밤에 먹지 않던 고행이 더해집니다.

묵상

불과 달과 해에 절하고 강물에 몸을 담그던 옛 의례를 보며, 바깥의 의식이나 절차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길 바란 적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있었다면 그때 무엇을 기대했는지 가만히 살펴보거나, 떠오르는 기억이 없으면 불과 달과 해의 모습만 그려 봐도 괜찮을까요?

여러 서원을 받아 지키며 머리를 절반만 밀었습니다. 맨땅에 잠자리를 마련했고 밤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Bahūvatasamādānā, aḍḍhaṁ sīsassa olikhiṁ; Chamāya seyyaṁ kappemi, rattiṁ bhattaṁ na bhuñja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5 난둣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예배하고 물에 들어가던 일에 이어, 난둣따라는 몸을 괴롭히던 고행을 차례로 말합니다. 여러 서원을 받아 지켰고, 머리를 절반만 밀었으며, 맨땅에 잠자리를 마련했고, 밤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눈에 띄게 엄격한 규칙들이지만, 노래 끝에서 그가 찾은 평화는 이런 규칙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반대로 장신구와 치장을 즐기며 감각적 욕망에 시달렸던 일을 털어놓습니다.

묵상

여러 서원을 지키고, 머리를 절반만 밀고, 맨땅에서 자고, 밤에는 먹지 않던 고행을 보며, 눈에 보이는 엄격함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떤 관계라고 느끼나요? 스스로 정한 규칙 하나를 가만히 돌아보거나, 지금 지쳐 있다면 규칙보다 쉼과 식사를 먼저 챙겨도 괜찮을까요?

장신구와 치장을 즐겼고 목욕하고 향유를 바르며 감각적 욕망에 시달리면서 이 몸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Vibhūsāmaṇḍanaratā, nhāpanucchādanehi ca; Upakāsiṁ imaṁ kāyaṁ, kāmarāgena aṭṭ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5.5 난둣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고행을 말한 뒤, 난둣따라는 장신구와 치장을 즐겼던 일을 털어놓습니다. 목욕하고 향유를 바르며, 감각적 욕망에 시달리면서 이 몸을 정성껏 섬겼다고 합니다. 몸을 괴롭히는 일과 꾸미는 일은 겉으로 반대여도, 모두 몸에 마음을 매어 두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몸을 있는 그대로 보는 새로운 방향으로 넘어갑니다.

묵상

고행과 치장은 반대처럼 보이지만 둘 다 “이 몸”을 한가운데 두고 있어요. 몸을 몰아붙이는 쪽과 지나치게 꾸미는 쪽 사이에서, 지금 내 몸에 실제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잘 모르겠다면 물 한 잔이나 편한 자세처럼 작은 것 하나만 챙겨 봐도 될까요?

그러다 믿음을 얻은 뒤 집 없는 삶으로 나섰습니다. 몸을 있는 그대로 보니 감각적 욕망이 뿌리째 뽑혔습니다.

Tato saddhaṁ labhitvāna, pabbajiṁ anagāriyaṁ; Disvā kāyaṁ yathābhūtaṁ, kāmarāgo samūhato.

쿳다까 니까야 Thig 5.5 난둣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그 뒤 난둣따라는 믿음을 얻어 집 없는 삶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몸을 있는 그대로 보았고, 그러자 감각적 욕망이 뿌리째 뽑혔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몸을 괴롭히기도 하고 떠받들기도 했던 그가 이번에는 몸을 꾸밈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다시 태어날 모든 삶이 끊어지고, 원하는 마음도 바라는 마음도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묵상

“몸을 있는 그대로 보니” 욕망이 뿌리째 뽑혔다고 해요. 좋다 나쁘다를 덧붙이지 않고 몸을 본다는 것은 어떤 시선일까요? 거울에 비친 모습 대신 지금 느껴지는 감각 하나를 담담히 말해 볼 수 있을까요?

다시 태어날 모든 삶이 완전히 끊어졌고 원하는 마음도 바라는 마음도 끊어졌습니다. 모든 멍에에서 벗어나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Sabbe bhavā samucchinnā, icchā ca patthanāpi ca; Sabbayogavisaṁyuttā, santiṁ pāpuṇi cetaso”ti.

쿳다까 니까야 Thig 5.5 난둣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난둣따라는 노래를 맺으며, 다시 태어날 모든 삶이 완전히 끊어졌고 원하는 마음도 바라는 마음도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멍에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합니다. 불과 해에 절하던 의례도, 몸을 괴롭히던 고행도 주지 못한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몸을 있는 그대로 보고, 무언가를 계속 바라며 붙드는 마음을 놓았을 때 찾아왔습니다.

묵상

“원하는 마음도 바라는 마음도 끊어졌습니다”라는 큰 결말 앞에서, 오늘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기대 하나와 아직 품고 싶은 바람 하나를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둘 다 그대로 두어도 되고, 나누는 일이 버겁다면 마음의 평화라는 마지막 말만 쉬듯 읽어도 괜찮을까요?

4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밋따깔리의 게송 5구절

이득과 존경을 얻으려 애쓰던 삶을 돌아보고 고요한 지혜로 해방된 일을 노래합니다.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섰지만,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득과 존경을 얻는 데 골몰했습니다.

“Saddhāya pabbajitvāna, agārasmānagāriyaṁ; Vicariṁhaṁ tena tena, lābhasakkāraussukā.

쿳다까 니까야 Thig 5.6 밋따깔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밋따깔리는 믿음으로 집을 떠났지만, 실제로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득과 존경을 얻는 데 골몰했다고 고백합니다. 떠난 까닭은 믿음이었는데 마음은 남들의 인정 쪽으로 향했습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길에서도 방향을 잃을 수 있었음을 그는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는 이 일을 가장 높은 목적을 내버리고 하찮은 이익에 매달린 것이라고 부릅니다.

묵상

믿음으로 떠났는데 “이득과 존경”에 골몰했다는 어긋남을 읽으며, 좋은 뜻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나요? 스스로를 위선자라고 단정하기보다 두 마음을 나란히 적어 볼 수 있을까요?

가장 높은 목적은 내버리고 하찮은 이익에 매달렸습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들에 휘둘려 수행자 삶의 목적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Riñcitvā paramaṁ atthaṁ, hīnamatthaṁ asevihaṁ; Kilesānaṁ vasaṁ gantvā, sāmaññatthaṁ na bujjhi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6 밋따깔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밋따깔리는 가장 높은 목적을 내버리고 하찮은 이익에 매달렸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말한 이득과 존경을 좇던 삶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음을 흐리는 것들에 휘둘려 수행자로 사는 목적을 깨닫지 못했다고도 합니다. 명예와 이득이 수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풀려남이라는 목적을 가리면 낮은 선택이 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작은 거처에 앉은 그는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알아차립니다.

묵상

“가장 높은 목적”을 내버리고 “하찮은 이익”에 매달렸다는 고백을 보며, 요즘 눈앞의 보상이 더 큰 방향을 가린 순간이 떠오르나요? 떠오른다면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다음 선택 하나만 조금 바꿔 볼 수 있을까요? 큰 목적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면 모른다고 답해도 괜찮을까요?

그러던 내가 작은 거처에 앉아 있을 때 절박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에 휘둘리고 있다.’

Tassā me ahu saṁvego, nisinnāya vihārake; Ummaggapaṭipannāmhi, taṇhāya vasamāg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5.6 밋따깔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득에 매달리던 밋따깔리는 작은 거처에 앉아 있다가 절박한 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고 갈망에 휘둘리고 있다고 속으로 말합니다. 잘못을 알아본 이 절박한 마음이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계기가 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삶이 짧고 늙음과 병이 자신을 짓누른다는 생각이 뒤따릅니다.

묵상

작은 거처에서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알아차린 순간은 길을 바꿀 여지도 함께 품고 있어요. 방향을 한꺼번에 틀지 않아도, 한 걸음 고쳐 볼 곳이 보이나요? 보이지 않는다면 잠시 멈춰 서 있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부터 해도 괜찮을까요?

‘내 삶은 짧고 늙음과 병이 나를 짓누른다. 이 몸이 부서지기 전에 나에게는 게으름 피울 시간이 없다.’

Appakaṁ jīvitaṁ mayhaṁ, jarā byādhi ca maddati; Purāyaṁ bhijjati kāyo, na me kālo pamajjit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6 밋따깔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알아본 밋따깔리는 속으로 생각을 이어 갑니다. 자기 삶은 짧고 늙음과 병이 자신을 짓누르니, 이 몸이 부서지기 전에 게으름 피울 시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삶이 길지 않다는 자각은 그에게 지금 힘써 수행할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는 무더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살펴보고 마음이 풀려납니다.

묵상

‘내 삶은 짧다’는 자각은 조급함을 부르기도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 주기도 해요. 오늘 미루지 않고 해 볼 작은 일 하나를 고른다면 무엇인가요? 늙음과 병 이야기가 무겁게 느껴진다면 지금 몸을 편안하게 하는 일부터 해도 괜찮을까요?

무더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았습니다. 마음이 풀려난 채 자리에서 일어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Yathābhūtamavekkhantī, khandhānaṁ udayabbayaṁ; Vimuttacittā uṭṭhāsiṁ, kataṁ buddhassa sāsan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5.6 밋따깔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밋따깔리는 무더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았다고 말합니다. 무더기는 몸과 마음을 이루는 다섯 갈래로, 사람들이 흔히 ‘나’라고 여기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살피던 그는 마음이 풀려난 채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노래를 맺습니다. 작은 거처에 앉아 느낀 절박감이 이렇게 풀려남으로 이어졌습니다.

묵상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살펴본 끝에, 밋따깔리는 앉았던 자리에서 마음이 풀려난 채 일어나요. 지금 한 감각이 나타났다 옅어지는 짧은 변화를 지켜볼 수 있을까요?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으면 그대로 두고,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마쳐도 괜찮을까요?

44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사꿀라의 게송 5구절

재가의 삶을 떠나 가르침을 듣고 맑은 눈과 세 가지 앎을 얻은 일을 노래합니다.

“집에서 살던 나는 한 수행자에게서 가르침을 듣고, 티끌 없는 진리인 고요히 꺼짐(닙바나),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Agārasmiṁ vasantīhaṁ, dhammaṁ sutvāna bhikkhuno; Addasaṁ virajaṁ dhammaṁ, nibbānaṁ padamaccu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7 사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꿀라는 집에 머물던 때 한 수행자에게서 가르침을 듣고, 티끌 없는 진리인 고요히 꺼짐을 보았다고 노래합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고요히 꺼짐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이 꺼진 평온을 가리킵니다. 이 게송으로 사꿀라의 노래가 시작되며, 이어지는 게송에서 사꿀라는 아들과 딸, 재산과 곡식을 뒤로하고 집을 떠납니다.

묵상

사꿀라는 집에서 지내던 때 한 수행자에게 가르침을 듣고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요. 지금까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말 한마디가 있었나요? 오늘 들은 말 가운데 마음에 남은 것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나는 아들과 딸, 재산과 곡식을 뒤로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게 한 뒤 집 없는 삶으로 나섰습니다.

Sāhaṁ puttaṁ dhītarañca, dhanadhaññañca chaḍḍiya; Kese chedāpayitvāna, pabbajiṁ anagāri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7 사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꿀라는 아들과 딸, 재산과 곡식을 뒤로했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게 한 뒤 집 없는 삶, 곧 집을 떠난 수행자의 삶으로 나섰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본 일이 이 떠남으로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훈련 중이던 시절의 수행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사꿀라는 아들과 딸, 재산과 곡식을 하나하나 들며 그것들을 뒤로했다고 말해요. 지금 내가 소중히 지키는 사람과 물건은 무엇인가요? 무엇을 내려놓을지 정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 이름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훈련하면서 곧은 길을 닦았습니다. 탐냄과 성냄을 버렸고 그것들과 함께 묶인 흘러드는 것들도 버렸습니다.

Sikkhamānā ahaṁ santī, bhāventī maggamañjasaṁ; Pahāsiṁ rāgadosañca, tadekaṭṭhe ca āsave.

쿳다까 니까야 Thig 5.7 사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꿀라는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훈련하던 시절에 곧은 길을 닦았다고 말합니다. 그때 탐냄과 성냄을 버렸고, 그것들과 함께 묶여 있던 흘러드는 것들도 버렸다고 합니다. 흘러드는 것은 욕망처럼 마음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을 이릅니다. 앞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선 뒤의 일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정식 수행자가 되어 지난 삶을 기억하게 된 일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사꿀라는 탐냄과 성냄을 버렸고, 그것들과 함께 묶인 것들도 버렸다고 해요. 한 감정이 일어날 때 함께 딸려 올라오는 다른 마음이 있나요?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면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나 당김만 알아차려 보세요.

계를 받아 정식 여성 수행자가 된 뒤 지난 삶들을 기억했습니다. 하늘의 눈은 맑아져 티 없이 잘 닦였습니다.

Bhikkhunī upasampajja, pubbajātimanussariṁ; Dibbacakkhu visodhitaṁ, vimalaṁ sādhubhāvi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7 사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꿀라는 계를 받아 정식 여성 수행자가 된 뒤 지난 삶들을 기억했다고 노래합니다. 하늘의 눈도 맑아져 티가 없고 잘 닦였다고 덧붙입니다. 하늘의 눈은 존재들이 저마다 한 행위에 따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눈입니다. 앞에서 정식이 되기 전 훈련하며 흘러드는 것들을 버린 일에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게송에서는 조건 지어진 것들이 원인에서 생겨나 무너진다고 보고 모든 흘러드는 것을 버린 일로 노래가 끝납니다.

묵상

사꿀라는 하늘의 눈이 맑아져 티 없이 잘 닦였다고 말해요. 늘 보던 것 하나를 오늘 처음 보듯 다시 본다면 무엇이 달라 보일까요?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도 괜찮으니, 흐릿하면 흐릿하다는 것만 알아차려 보세요.

“조건 지어진 것들을 내가 아닌 낯선 것으로, 원인에서 생겨나 무너지는 것으로 보고 모든 흘러드는 것을 버렸습니다. 나는 서늘해졌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Saṅkhāre parato disvā, hetujāte palokite; Pahāsiṁ āsave sabbe, sītibhūtāmhi nibbu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5.7 사꿀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꿀라는 조건 지어진 것들이 원인에서 생겨나 무너지는 것이며 자기가 아닌 낯선 것이라고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고서 모든 흘러드는 것을 버렸고, 서늘해지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노래합니다. 사꿀라의 게송은 집에서 가르침을 들은 일에서 시작해 이 대목에서 끝납니다.

묵상

사꿀라는 조건 지어진 것들이 원인에서 생겨나 무너지는 것이라고 보았어요. 오늘의 기분도 여러 조건이 모여 찾아온 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기분에 영향을 준 일 하나만 짚어 보거나, 느낌이 그냥 지나가게 두어 보세요.

45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소나의 게송 5구절

열 자녀를 키운 노년의 출가와 밤새 힘쓴 끝의 해방을 노래합니다.

“이 몸으로 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뒤 쇠약하고 늙은 나는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갔습니다.”

“Dasa putte vijāyitvā, asmiṁ rūpasamussaye; Tatohaṁ dubbalā jiṇṇā, bhikkhuniṁ upasaṅkam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8 소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소나는 이 몸으로 열 아들을 낳았고, 그 뒤 쇠약하고 늙어서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갔다고 노래합니다. 열 아들을 낳던 때와 쇠약하고 늙은 때가 한 게송에 함께 놓여 있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그 수행자가 소나에게 가르침을 일러 주고, 소나는 가르침을 듣고 집을 떠납니다.

묵상

소나는 열 아들을 낳은 몸과 쇠약하고 늙은 몸을 나란히 말해요. 내 삶에 누군가를 돌보던 때와 돌봄을 받던 때가 있었다면 함께 떠올려 볼 수 있나요? 마음이 무겁다면 몸이 지금까지 애써 온 수고만 가만히 느껴 보세요.

그는 내게 무더기와 감각 영역과 요소에 관한 가르침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 가르침을 듣고 머리를 깎은 뒤 나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Sā me dhammamadesesi, khandhāyatanadhātuyo; Tassā dhammaṁ suṇitvāna, kese chetvāna pabbaj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8 소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소나가 찾아간 여성 수행자는 무더기와 감각 영역과 요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셋 모두 몸과 마음의 경험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는 가르침입니다. 소나는 그 가르침을 듣고 머리를 깎은 뒤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정식이 되기 전 훈련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소나는 무더기와 감각 영역과 요소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 머리를 깎은 뒤 집을 떠났어요. 내 고민을 한꺼번에 풀기보다 몸, 느낌, 생각으로 나누어 한 갈래씩 살펴본다면 어떨까요? 나누어 보기가 맞지 않다면 고민을 그대로 둔 채 지켜보기만 해 보세요.

내가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훈련하던 때 하늘의 눈이 맑아졌습니다. 나는 지난 삶들을, 예전에 내가 살았던 곳들을 압니다.

Tassā me sikkhamānāya, dibbacakkhu visodhitaṁ; Pubbenivāsaṁ jānāmi, yattha me vusitaṁ pure.

쿳다까 니까야 Thig 5.8 소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소나는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훈련하던 때 하늘의 눈이 맑아졌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눈은 존재들이 저마다 한 행위에 따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눈입니다. 또 지난 삶들, 곧 예전에 자기가 살았던 곳들을 안다고 합니다. 앞에서 가르침을 듣고 집을 떠난 뒤의 일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표상 없음을 닦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소나는 지난 삶들, 예전에 자기가 살았던 곳들을 안다고 말해요. 이번 삶에서 머물렀던 장소 하나를 떠올리면 지금 마음에 어떤 느낌이 남나요? 떠올리기 불편하다면 지금 발 딛고 선 자리를 느껴 보세요.

나는 모습 없음을 닦습니다. 마음은 한곳에 모여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곧바로 풀려났고, 움켜쥐지 않아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Animittañca bhāvemi, ekaggā susamāhitā; Anantarāvimokkhāsiṁ, anupādāya nibbutā.

쿳다까 니까야 Thig 5.8 소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소나는 모습 없음을 닦고 있으며, 마음이 한곳에 모여 흐트러짐이 없다고 노래합니다. 모습 없음은 대상의 겉모습이나 특징에 마음을 두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소나는 곧바로 풀려났고, 움켜쥐지 않아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정식이 되기 전 훈련하며 하늘의 눈이 맑아지고 지난 삶들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게송에서는 다섯 무더기와 늙음을 이야기하며 노래를 맺습니다.

묵상

소나는 움켜쥐지 않아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말해요. 무언가를 억지로 밀어내는 일과 손에 힘을 푸는 일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작은 물건을 쥐었다가 천천히 놓아 보거나, 두 일의 차이를 생각만 해 보세요.

“다섯 무더기를 완전히 알았습니다. 그것들은 뿌리가 잘린 채 남아 있습니다. 몹쓸 늙음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습니다.”

Pañcakkhandhā pariññātā, tiṭṭhanti chinnamūlakā; Dhi tavatthu jare jamme, natthi dāni punabbhavo”ti.

쿳다까 니까야 Thig 5.8 소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소나는 다섯 무더기를 완전히 알았고, 그것들이 뿌리가 잘린 채 남아 있다고 노래합니다. 다섯 무더기는 한 사람을 이루는 몸과 마음의 다섯 갈래입니다. 몸과 마음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남아 있지만, 다시 자라날 뿌리는 이미 잘렸습니다. 이어서 소나는 몹쓸 늙음을 꾸짖고,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고 말하며 노래를 맺습니다.

묵상

소나는 다섯 무더기가 남아 있지만 뿌리는 잘렸다고 말해요.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몸이나 습관에 남아 있는 것이 있나요? 떠오른다면 서둘러 없애려 하기보다 그저 남아 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46 나이 든 여성 수행자 곱슬머리 밧다의 게송 5구절

논쟁을 찾아 떠돌던 이가 바른 가르침을 만나 해방된 일을 노래합니다.

예전에 나는 머리카락을 뽑고 진흙을 묻힌 채 옷 한 벌만 입고 떠돌았습니다. 허물 없는 것을 허물로 여기고 허물 있는 것은 허물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Lūnakesī paṅkadharī, ekasāṭī pure cariṁ; Avajje vajjamatinī, vajje cāvajjadassinī.

쿳다까 니까야 Thig 5.9 곱슬머리 밧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가 예전 삶을 돌아봅니다. 머리카락을 뽑고 진흙을 묻힌 채 옷 한 벌만 입고 떠돌던 시절입니다. 그때 밧다는 허물 없는 것을 허물로 여기고, 허물 있는 것은 허물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겉모습의 고행과 뒤바뀐 판단을 스스로 밝히는 대목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밧다는 독수리봉 산에서 수행자 공동체(상가) 앞에 계신 부처님을 봅니다.

묵상

밧다는 예전에 허물 없는 것을 허물로 여기고, 정작 허물 있는 것은 허물이 없다고 보았다고 말해요. 요즘 내가 지나치게 탓하는 일은 없는지, 반대로 그냥 지나치는 일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아직 잘 모르겠다면 판단을 잠시 미뤄 두어도 괜찮을까요?

낮에 머물던 곳을 나와 독수리봉 산에서 수행자 공동체(상가) 앞에 계신 티끌 없는 부처님을 보았습니다.

Divāvihārā nikkhamma, gijjhakūṭamhi pabbate; Addasaṁ virajaṁ buddhaṁ, bhikkhusaṅghapurakkha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9 곱슬머리 밧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밧다는 머리카락을 뽑고 떠돌며 허물을 거꾸로 보던 지난날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제 독수리봉 산에서 낮에 머물던 곳을 나옵니다. 그때 수행자 공동체 앞에 계신 티끌 없는 부처님을 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밧다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한 뒤 두 손을 모읍니다.

묵상

밧다가 수행자 공동체 앞에 계신 부처님을 본 순간이에요. 혼자 걷는 길과 여럿이 함께 걷는 길은 내게 각각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믿고 따를 기준이 아직 없다면 거리를 두고 지켜보아도 괜찮을까요?

나는 무릎을 꿇어 절하고 부처님 앞에서 두 손을 모았습니다. “오십시오, 밧다여.” 하고 나에게 말씀하셨으니, 그것이 나를 정식 수행자로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Nihacca jāṇuṁ vanditvā, sammukhā añjaliṁ akaṁ; ‘Ehi bhadde’ti maṁ avaca, sā me āsūpasampadā.

쿳다까 니까야 Thig 5.9 곱슬머리 밧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는 독수리봉에서 무릎을 꿇어 절하고 부처님 앞에서 두 손을 모읍니다. 부처님께서 “오십시오, 밧다여.” 하고 부르십니다. 밧다는 이 한마디로 정식 수행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음 게송에서 밧다는 그 뒤 쉰 해 동안 여러 나라를 다닌 삶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긴 의식 없이 “오십시오, 밧다여.” 하는 짧은 부름이 새 삶의 문이 되었어요. 누군가의 짧은 한마디가 나를 반겨 주는 것처럼 들린 적이 있었나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오늘 나 자신에게 부담 없는 한마디를 건네 보아도 좋을까요?

“나는 앙가와 마가다, 왓지와 까시와 꼬살라를 두루 다녔습니다. 쉰 해 동안 빚 없이 여러 나라에서 얻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Ciṇṇā aṅgā ca magadhā, vajjī kāsī ca kosalā; Anaṇā paṇṇāsa vassāni, raṭṭhapiṇḍaṁ abhuñja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9 곱슬머리 밧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가 수행자가 된 뒤의 삶을 말합니다. 앙가, 마가다, 왓지, 까시, 꼬살라를 두루 다녔고, 쉰 해 동안 빚 없이 여러 나라에서 얻은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받은 음식을 빚으로 남기지 않았다는 당당한 말입니다. 다음 게송에서는 다른 이가 밧다에게 겉옷을 드린 집에 사는 신도를 칭찬합니다.

묵상

밧다는 쉰 해 동안 여러 나라에서 얻은 음식을 빚 없이 먹었다고 말해요. 나는 누군가에게 받은 것 앞에서 언제 고마움을 느끼고, 언제 빚진 마음이 드나요? 오늘 받은 것 하나에 고마워하되 갚아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아 볼 수 있을까요?

“아, 그는 참으로 많은 복을 지었습니다! 이 집에 사는 신도는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모든 매듭에서 풀려난 밧다에게 겉옷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Puññaṁ vata pasavi bahuṁ, Sappañño vatāyaṁ upāsako; Yo bhaddāya cīvaraṁ adāsi, Vippamuttāya sabbagantheh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5.9 곱슬머리 밧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밧다의 노래는 겉옷을 드린 집에 사는 신도를 칭찬하는 말로 끝납니다. 그가 참으로 많은 복을 지었고 참으로 지혜롭다고 감탄하며, 그 까닭을 모든 매듭에서 풀려난 밧다에게 겉옷을 드린 일에 둡니다. 집에 사는 신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묵상

모든 매듭에서 풀려난 밧다에게 겉옷을 드린 일이 지혜롭다고 칭찬받아요. 무엇을 주는가와 함께 누구의 어떤 길을 돕는가도 살펴볼 수 있을까요? 지금 드릴 것이 없다면 누군가의 걸음을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도 충분할까요?

47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빠따짜라의 게송 5구절

물을 붓고 등불을 끄는 관찰에서 마음의 해방에 이른 일을 노래합니다.

젊은이들은 쟁기로 밭을 갈고 땅에 씨앗을 뿌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며 재물을 얻습니다.

“Naṅgalehi kasaṁ khettaṁ, bījāni pavapaṁ chamā; Puttadārāni posentā, dhanaṁ vindanti māṇ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5.10 빠따짜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빠따짜라가 먼저 세상 사람들의 삶을 말합니다. 젊은이들은 쟁기로 밭을 갈고 땅에 씨앗을 뿌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며 재물을 얻습니다. 힘써 일하면 그만한 결과가 따르는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빠따짜라는 자신도 바른 행실(실라)을 지키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데 어째서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지 못하는지 묻습니다.

묵상

밭 갈고 씨 뿌린 뒤 재물을 얻는 순서는 분명하지만, 마음을 닦는 일은 열매가 그렇게 금방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애쓴 만큼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그 기다림을 어떻게 견디나요? 오늘은 결과를 따지지 않고 할 일 하나만 해 보아도 괜찮을까요?

나는 바른 행실(실라)을 갖추었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게으르지도 들뜨지도 않는데, 어째서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지 못합니까?

Kimahaṁ sīlasampannā, satthusāsanakārikā; Nibbānaṁ nādhigacchāmi, akusītā anuddh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5.10 빠따짜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빠따짜라는 쟁기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젊은이들이 재물을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바른 행실을 지키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며 게으르지도 들뜨지도 않는데, 어째서 고요히 꺼짐에 이르지 못하는지 묻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빠따짜라는 발을 씻은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자세히 살핍니다.

묵상

빠따짜라는 바른 행실을 지키고 게으르지도 들뜨지도 않는데 어째서 고요히 꺼짐에 이르지 못하는지 물어요. 애쓰는데도 결과가 더디게 오는 답답함을 나도 겪은 적이 있나요? 서둘러 답을 내려 하기보다 그 마음을 그대로 인정해 보면 어떨까요?

발을 씻은 뒤 나는 그 물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발 씻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Pāde pakkhālayitvāna, udakesu karomahaṁ; Pādodakañca disvāna, thalato ninnamāga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0 빠따짜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빠따짜라는 발을 씻은 뒤 그 물을 살핍니다. 발 씻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봅니다.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에 마음을 두는 대목입니다. 다음 게송에서 빠따짜라는 마음을 순종마처럼 다뤄 한곳에 모읍니다.

묵상

발 씻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모습을 빠따짜라는 가만히 지켜보았어요. 지금 내 곁에서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보이는 것이 없다면 물 한 모금이 넘어가는 움직임만 느껴 보아도 괜찮을까요?

그때 훌륭한 순종마를 다루듯 내 마음을 한곳에 모았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등불을 들고 거처로 들어갔습니다. 잠자리를 살펴본 뒤 작은 침상에 앉았습니다.

Tato cittaṁ samādhesiṁ, assaṁ bhadraṁvajāniyaṁ; Tato dīpaṁ gahetvāna, vihāraṁ pāvisiṁ ahaṁ; Seyyaṁ olokayitvāna, mañcakamhi upāvis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0 빠따짜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물의 흐름을 본 빠따짜라는 훌륭한 순종마를 다루듯 마음을 한곳에 모읍니다. 그리고 등불을 들고 거처로 들어가 잠자리를 살핀 뒤 작은 침상에 앉습니다. 마음을 모으는 일과 잠자리를 살피는 일상의 동작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다음 게송에서 빠따짜라는 바늘로 등잔 심지를 끌어내립니다.

묵상

빠따짜라는 훌륭한 순종마를 다루듯 마음을 한곳에 모았다고 말해요. 나는 마음을 몰아붙이지 않고 차분히 이끌어 본 적이 있나요? 이 비유가 와닿지 않는다면 등불을 들고 거처로 들어가는 장면에 머물러 보아도 괜찮을까요?

그 뒤 바늘을 집어 등잔의 심지를 아래로 끌어당겼습니다. 등불이 꺼지듯 내 마음은 풀려났습니다.

Tato sūciṁ gahetvāna, vaṭṭiṁ okassayāmahaṁ; Padīpasseva nibbānaṁ, vimokkho ahu cetaso”ti.

쿳다까 니까야 Thig 5.10 빠따짜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빠따짜라는 바늘을 집어 등잔의 심지를 아래로 끌어당깁니다. 등불이 꺼지듯 마음이 풀려났다고 말하며 노래를 맺습니다. 원문에서 등불이 꺼짐을 가리키는 말은 닙바나로, 앞에서 빠따짜라가 어째서 이르지 못하느냐고 물었던 고요히 꺼짐과 같은 낱말입니다. 손으로 심지를 내리는 동작과 마음이 풀려나는 일이 한 장면에 놓입니다.

묵상

빠따짜라는 바늘로 심지를 내리자 등불이 꺼지듯 마음이 풀려났다고 말해요. 지금 내 마음을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오늘은 그 마음을 잠시 바라보기만 해도 될까요?

48 서른 명의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게송 5구절

곡식을 찧는 일상의 수고와 출가 뒤 얻은 세 가지 앎을 대조합니다.

“젊은이들은 절굿공이를 들고 곡식을 찧습니다. 자식과 아내를 먹여 살리며 젊은이들은 재물을 얻습니다.”

“Musalāni gahetvāna, dhaññaṁ koṭṭenti māṇavā; Puttadārāni posentā, dhanaṁ vindanti māṇ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5.11 서른 명의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서른 명가량이 함께 깨달음에 이른 이야기의 첫 게송입니다. 빠따짜라는 젊은이들이 절굿공이로 곡식을 찧고, 자식과 아내를 먹여 살리며 재물을 얻는 모습을 먼저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수행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권하며, 그렇게 하면 뒤에 뉘우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묵상

절굿공이를 들고 곡식을 찧는 반복되는 일이 가족의 생계로 이어지는 장면이에요. 내가 날마다 되풀이하는 일은 누구를, 무엇을 먹여 살리고 있나요? 그 일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은 어디에 있는지도 한번 살펴보세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십시오. 실천하면 뒤에 뉘우치지 않습니다. 어서 발을 씻고 한쪽에 가서 앉으십시오. 마음의 고요를 닦는 데 전념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십시오.”

Karotha buddhasāsanaṁ, yaṁ katvā nānutappati; Khippaṁ pādāni dhovitvā, ekamante nisīdatha; Cetosamathamanuyuttā, karotha buddha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1 서른 명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곡식을 찧어 재물을 얻는 젊은이들을 말한 빠따짜라가 이제 수행자들에게 권하는 대목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말을 처음과 끝에 두 번 하고, 그렇게 하면 뒤에 뉘우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사이에는 어서 발을 씻고 한쪽에 가서 앉아 마음의 고요를 닦으라는 구체적인 순서를 둡니다.

묵상

발을 씻고 한쪽에 가서 앉는 작은 준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두 번의 권고 사이에 놓여 있어요. 무언가를 시작하기 어려울 때, 몸으로 먼저 할 수 있는 작은 준비는 무엇인가요?

그 여성 수행자들은 빠따짜라의 말, 그 가르침을 듣고 발을 씻은 뒤 한쪽에 가서 앉았습니다. 마음의 고요를 닦는 데 전념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했습니다.

Tassā tā vacanaṁ sutvā, paṭācārāya sāsanaṁ; Pāde pakkhālayitvāna, ekamantaṁ upāvisuṁ; Cetosamathamanuyuttā, akaṁsu buddha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1 서른 명의 장로니의 게송

배경

빠따짜라의 권고를 들은 여성 수행자들이 들은 순서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대목입니다. 발을 씻고, 한쪽에 가서 앉고, 마음의 고요를 닦는 데 전념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이들이 그렇게 보낸 밤을 세 시각으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묵상

스승이 일러 준 말을 듣고 그대로 해 본 장면이에요. 내가 들은 조언 가운데 이번 주에 작게 시험해 볼 만한 것이 있나요? 해 보다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 멈추어도 괜찮으니, 가볍게 시작해 보세요.

밤의 첫째 시각에는 지난 삶들을 기억했고, 밤의 가운데 시각에는 하늘의 눈을 맑혔으며, 밤의 마지막 시각에는 어둠의 덩어리를 산산이 깨뜨렸습니다.

Rattiyā purime yāme, pubbajātimanussaruṁ; Rattiyā majjhime yāme, dibbacakkhuṁ visodhayuṁ; Rattiyā pacchime yāme, tamokhandhaṁ padālay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1 서른 명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앉아서 마음의 고요를 닦은 여성 수행자들이 그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세 시각으로 나누어 말하는 대목입니다. 첫째 시각에는 지난 삶들을 기억하고, 가운데 시각에는 하늘의 눈을 맑히고, 마지막 시각에는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립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이들은 세 가지 앎을 갖추었다고 스승에게 알립니다.

묵상

밤의 세 시각을 지나며 앎이 하나씩 열리고, 마지막 시각에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리는 장면이에요. 하룻밤 사이에 차례로 밝아지는 이 흐름을 읽으며 어떤 마음이 드나요? 오늘 밤 잠들기 전 잠깐 조용히 앉아 보세요.

그들은 일어나 빠따짜라의 두 발에 절했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서른세 신들이 싸움에서 진 적 없는 인드라를 앞에 모시듯 우리도 스승님을 앞에 모시고 살겠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 앎을 갖추었고 흘러드는 것이 없습니다.”

Uṭṭhāya pāde vandiṁsu, “katā te anusāsanī; Indaṁva devā tidasā, saṅgāme aparājitaṁ; Purakkhatvā vihassāma, tevijjāmha anāsav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5.11 서른 명의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밤새 수행을 마친 여성 수행자들이 일어나 빠따짜라의 발에 절하는 대목입니다. 이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알리고, 서른세 신들이 싸움에서 진 적 없는 신들의 왕 인드라를 앞에 모시듯 스승을 앞에 모시고 살겠다고 말합니다. 게송 끝에는 서른 명가량의 나이 든 여성 수행자들이 이렇게 빠따짜라 앞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밝혔다고 적혀 있습니다.

묵상

신들이 인드라를 앞에 모시듯 스승을 앞에 모시고 살겠다는 다짐이에요. 이들은 스승이 일러 준 대로 스스로 해낸 뒤에 스승을 받들어요. 사람이든 책 속의 한 줄이든,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 가운데 지금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49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짠다의 게송 5구절

가난과 상실 속에서 빠따짜라를 만나 해방에 이른 일을 노래합니다.

“예전에 나는 몹시 가난했습니다. 과부였고 아이도 없었습니다. 친구도 친척도 없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Duggatāhaṁ pure āsiṁ, vidhavā ca aputtikā; Vinā mittehi ñātīhi, bhattacoḷassa nādhig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2 짠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짠다의 노래가 시작되는 대목입니다. 짠다는 예전에 몹시 가난했고, 과부였으며 아이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친구도 친척도 없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얻지 못했던 처지를 줄이거나 꾸미지 않고 그대로 밝힙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는 그릇과 지팡이를 들고 일곱 해를 떠돈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친구도 친척도 없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던 겹겹의 어려움이 그대로 적혀 있어요. 어려움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짠다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어떻게 들리나요?

그릇과 지팡이를 들고 집집마다 구걸하러 다녔습니다.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며 일곱 해 동안 떠돌았습니다.

Pattaṁ daṇḍañca gaṇhitvā, bhikkhamānā kulā kulaṁ; Sītuṇhena ca ḍayhantī, satta vassāni cāri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2 짠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짠다가 집을 떠나기 전 가난했던 삶을 이어서 말합니다. 그릇과 지팡이를 들고 집집마다 음식을 빌러 다녔고, 추위와 더위에 타는 듯 시달리며 일곱 해를 떠돌았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짠다는 음식과 마실 것을 받는 여성 수행자를 보고 다가갑니다.

묵상

짠다는 일곱 해 동안 그릇과 지팡이를 들고 추위와 더위 속을 떠돌았어요. 이 장면을 떠올리면 무엇이 가장 먼저 느껴지나요?

그러다 음식과 마실 것을 받는 한 여성 수행자(빅쿠니)를 보았습니다.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저를 집 없는 삶으로 나서게 해 주십시오.”

Bhikkhuniṁ puna disvāna, annapānassa lābhiniṁ; Upasaṅkamma avocaṁ, ‘pabbajjaṁ anagāri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5.12 짠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일곱 해를 떠돌던 짠다는 음식과 마실 것을 받는 여성 수행자를 보고 다가가 청합니다. 자신도 집을 떠나 수행자의 삶으로 나서게 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빠따짜라가 이 청을 받아들입니다.

묵상

직접 부탁하는 한마디가 오래 떠돌던 삶의 방향을 바꾸었어요. 지금 나에게 필요하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부탁이 있나요? 당장 말하기 어렵다면 먼저 종이에 적어 보세요.

그 수행자 빠따짜라는 나를 가엾이 여겨 집 없는 삶으로 나서게 해 주셨습니다. 그 뒤 나를 가르쳐 가장 높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셨습니다.

Sā ca maṁ anukampāya, pabbājesi paṭācārā; Tato maṁ ovaditvāna, paramatthe niyojayi.

쿳다까 니까야 Thig 5.12 짠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빠따짜라는 짠다를 가엾이 여겨 수행자의 삶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뒤 가르침을 주어 가장 높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끕니다. 마지막 게송에서 짠다는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결실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가엾이 여겨 받아 주는 일과 높은 목적으로 이끄는 일이 함께 놓여 있어요. 둘 다 버겁게 느껴지는 때에는 곁에 조용히 있어 주는 도움만으로도 충분해요. 지금 내게는 따뜻하게 받아 주는 손길과 나아갈 길을 일러 주는 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필요한가요?

“나는 그분의 말을 듣고 일러 주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존귀한 분의 권고는 헛되지 않았으니, 나는 세 가지 앎을 갖추었고 흘러드는 것이 없습니다.”

Tassāhaṁ vacanaṁ sutvā, akāsiṁ anusāsaniṁ; Amogho ayyāyovādo, tevijjāmhi anāsav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5.12 짠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짠다는 빠따짜라의 말을 듣고 가르침대로 실천했다고 말합니다. 그 권고는 헛되지 않았고, 짠다는 세 가지 앎을 갖추어 흘러드는 것이 없게 되었다고 노래를 맺습니다.

묵상

권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말에는 가르친 이의 도움과 따른 이의 실천이 함께 담겨 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달라진 일을 떠올릴 때,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과 내가 한 것은 각각 무엇인가요?

50 빠따짜라의 제자 오백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게송 6구절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네 가지 진리를 알고 해방에 이른 일을 노래합니다.

“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그 길을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그 존재를 두고 ‘내 아들’이라 하며 웁니다.”

“Yassa maggaṁ na jānāsi, āgatassa gatassa vā; Taṁ kuto cāgataṁ sattaṁ, ‘mama putto’ti rodasi.

쿳다까 니까야 Thig 6.1 빠따짜라의 제자 오백 장로니의 게송

배경

오백 명가량의 나이 든 여성 수행자가 남긴 여섯 게송의 첫째입니다. 처음 네 게송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건네는 말이고, 마지막 두 게송은 그 어머니의 대답입니다. 첫 게송은 어머니에게, 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그 길도 모르면서 그 존재를 ‘내 아들’이라 부르며 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오고 감을 슬픔 한가운데에 놓아 둡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그 길을 안다면 어떠할지를 말합니다.

묵상

“그 길을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라는 말은 누군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우리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켜요. 알 수 없는 것을 서둘러 설명으로 메우지 않고 그대로 두어 보면,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나요?

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그 길을 참으로 안다면 그를 두고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성질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Maggañca khossa jānāsi, āgatassa gatassa vā; Na naṁ samanusocesi, evaṁdhammā hi pāṇino.

쿳다까 니까야 Thig 6.1 빠따짜라의 제자 오백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는 오고 간 길을 모른 채 운다고 했습니다. 이 게송은 그 길을 참으로 안다면 슬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살아 있는 것들의 성질이 이와 같기 때문이라고 까닭을 밝힙니다. 죽음을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겪는 오고 감으로 보게 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왔다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떠났다고 말합니다.

묵상

“살아 있는 것들의 성질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라는 설명이 슬픔을 서둘러 거두라는 말처럼 들린다면, 그렇게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워요.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 사이의 거리를 그대로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마음이 버거울 때는 이해하려 애쓰는 일을 잠시 미루고 자신부터 돌봐 주세요.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그곳에서 왔고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여기서 떠났습니다. 어딘가에서 왔을 것이고, 며칠 머물다가 여기서도 다른 길로 떠났고 그곳에서도 또 다른 길로 갈 것입니다.

Ayācito tatāgacchi, nānuññāto ito gato; Kutoci nūna āgantvā, vasitvā katipāhakaṁ; Itopi aññena gato, tatopaññena gacchati.

쿳다까 니까야 Thig 6.1 빠따짜라의 제자 오백 장로니의 게송

배경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그곳에서 왔고,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여기서 떠났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어딘가에서 왔을 그가 며칠 머물다가 여기서도 다른 길로 떠났고, 그곳에서도 또 다른 길로 갈 것이라고 이어집니다. 함께 머문 시간이 누구의 뜻대로 시작되거나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그가 온 것처럼 갔으니 거기에 무슨 통곡할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묵상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여기서 떠났습니다”라는 말 앞에서,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의 시작과 끝을 내 뜻대로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떠올리기가 아프다면 지금 여기의 숨과 감각으로 돌아와 보세요.

“인간의 모습을 지닌 채 세상을 떠난 그는 떠돌며 계속 길을 갈 것입니다. 온 것처럼 그렇게 갔으니, 거기에 무슨 통곡할 일이 있겠습니까?”

Peto manussarūpena, saṁsaranto gamissati; Yathāgato tathā gato, kā tattha paridevanā”.

쿳다까 니까야 Thig 6.1 빠따짜라의 제자 오백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인간의 모습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그가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하며 계속 떠돌아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온 것처럼 그렇게 갔으니 거기에 무슨 통곡할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오고 감이 모든 존재에게 같다는 점을 보게 하여, 붙잡을 수 없는 흐름을 받아들일 여지를 엽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어머니는 이 말을 건넨 이가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아 주었다고 답합니다.

묵상

“온 것처럼 그렇게 갔으니”라는 말이 상실을 너무 쉽게 정리한다고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도 그대로 두어 볼 수 있을까요? 이 말이 위로로 들리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읽기가 버거우면 잠시 멈추고 쉬어 가세요.

“아, 그분이 내 가슴에 박혀 좀처럼 보이지 않던 화살을 뽑아 주셨습니다. 슬픔에 사로잡힌 내게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걷어 주셨습니다.”

“Abbahī vata me sallaṁ, duddasaṁ hadayassitaṁ; Yā me sokaparetāya, puttasokaṁ byapānudi.

쿳다까 니까야 Thig 6.1 빠따짜라의 제자 오백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의 말을 들은 어머니가 직접 답합니다. 슬픔에 사로잡혀 있던 어머니의 가슴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화살이 박혀 있었는데, 그 말을 건넨 이가 그 화살을 뽑아 주고 아들을 잃은 슬픔을 걷어 주었다고 합니다. 게송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슬픔을 가슴에 박힌 화살에 빗댑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어머니는 오늘 찾은 고요를 말하고,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할 곳으로 삼는다고 밝힙니다.

묵상

“좀처럼 보이지 않던 화살”이라는 비유를 읽으며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남도 나도 잘 알아채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 나는 화살이 뽑혀 갈망이 사라지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습니다. 성자이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의지할 곳으로 삼습니다.”

Sājja abbūḷhasallāhaṁ, Nicchātā parinibbutā; Buddhaṁ dhammañca saṅghañca, Upemi saraṇaṁ mun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1 빠따짜라의 제자 오백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머니는 오늘 화살이 뽑혔다고 하며, 갈망이 사라지고 불이 꺼지듯 고요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자이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할 곳으로 삼는다고 밝히며, 아들을 잃은 울음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맺습니다. 슬픔에서 놓여난 경험이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 길을 함께 걷는 이들을 믿고 기대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게송 끝에는 오백 명가량의 나이 든 여성 수행자가 이렇게 완전한 깨달음을 밝혔다고 적혀 있습니다.

묵상

어머니는 슬픔에서 놓여난 뒤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할 곳으로 삼았어요. 힘든 때에 혼자 견디지 않도록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말, 모임이 있나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먼저 기대 보고 싶은지 생각해 보세요.

51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와셋티의 게송 6구절

아들을 잃고 헤매던 이가 진리를 만나 슬픔을 건넌 일을 노래합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짓눌려 마음이 흐트러지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알몸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았습니다.

“Puttasokenahaṁ aṭṭā, khittacittā visaññinī; Naggā pakiṇṇakesī ca, tena tena vicāri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2 와셋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와셋티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짓눌려 마음이 흐트러지고 정신을 잃었다고 노래를 시작합니다. 이어서 알몸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이곳저곳을 떠돌았다고 말합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마음과 몸을 함께 무너뜨렸습니다. 와셋티는 그때 겪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들려줍니다.

묵상

와셋티는 “마음이 흐트러지고 정신을 잃었습니다”라고 숨기지 않고 말해요. 큰 상실 뒤에 무너진 모습을 이렇게 있는 그대로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길거리와 쓰레기 더미에서 묘지와 큰길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세 해 동안 떠돌았습니다.

Vīthi saṅkārakūṭesu, susāne rathiyāsu ca; Acariṁ tīṇi vassāni, khuppipāsāsamapp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6.2 와셋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와셋티는 자신이 헤맨 곳을 길거리, 쓰레기 더미, 묘지, 큰길로 하나씩 꼽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세 해를 떠돌았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이곳저곳을 떠돌았다고 한 말이 여기서 장소와 햇수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와셋티는 미틸라 성으로 향하는 부처님을 봅니다.

묵상

와셋티는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세 해 동안” 거리를 떠돌았어요. 이렇게 오래 헤맨 사람 곁에 있다면 무엇부터 건네고 싶을까요?

그러다 미틸라 성으로 향하시는 잘 가신 분을 보았습니다. 길들지 않은 이들을 길들이시는 어디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었습니다.

Athaddasāsiṁ sugataṁ, nagaraṁ mithilaṁ pati; Adantānaṁ dametāraṁ, sambuddhamakutobha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2 와셋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세 해를 떠돈 끝에 와셋티는 미틸라 성으로 향하는 부처님을 봅니다. 게송은 부처님을 ‘잘 가신 분’이라 부르고, 길들지 않은 이들을 길들이는 분, 어디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온전히 깨달은 분으로 그립니다. 방향을 잃고 떠돌던 사람 앞에 흔들림 없는 스승이 나타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와셋티는 제정신을 되찾아 절한 뒤 가까이 앉습니다.

묵상

세 해를 헤맨 와셋티가 마주한 이는 “길들지 않은 이들을 길들이시는” 분, 어디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분이었어요. 몹시 흔들리던 때 곁에 차분한 누군가가 있어 마음이 조금 가라앉은 적이 있나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이 어떤 모습일지 그려 보세요.

나는 제정신을 되찾아 그분께 절한 뒤 가까이 앉았습니다. 고따마께서 나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주셨습니다.

Sacittaṁ paṭiladdhāna, vanditvāna upāvisiṁ; So me dhammamadesesi, anukampāya gotamo.

쿳다까 니까야 Thig 6.2 와셋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처님을 본 와셋티는 제정신을 되찾아 그분께 절한 뒤 가까이 앉습니다. 고따마 부처님은 그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줍니다. 게송은 가르침을 편 까닭으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듭니다. 세 해 동안 정신을 잃고 떠돌던 와셋티가 이제 부처님 곁에서 가르침을 듣습니다.

묵상

와셋티는 부처님이 “나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주셨다고 말해요. 내 처지를 가엾이 여기며 건네는 말은 그렇지 않은 말과 어떻게 다르게 들릴까요? 그런 마음으로 내게 말을 건네 준 사람이 있었다면 누구였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분의 가르침을 들은 뒤 집 없는 삶으로 나섰습니다. 스승의 말씀을 힘써 실천하여 평안함을 몸소 이루었습니다.

Tassa dhammaṁ suṇitvāna, pabbajiṁ anagāriyaṁ; Yuñjantī satthuvacane, sacchākāsiṁ padaṁ siv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2 와셋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와셋티는 가르침을 들은 뒤 집 없는 삶으로 나섭니다. 스승인 부처님의 말씀을 힘써 실천하여 평안함을 몸소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들음, 집을 떠남, 실천, 평안이 한 게송 안에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부처님이 가엾이 여겨 건넨 가르침이 와셋티 자신의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게송에서 와셋티는 그 평안을 모든 슬픔이 끝났다는 말로 밝힙니다.

묵상

와셋티는 가르침을 듣고 집을 떠나 스승의 말씀을 힘써 실천한 끝에 평안에 이르렀다고 말해요. 좋은 말을 듣는 일과 그 말대로 살아 보는 일 사이에는 어떤 거리가 있을까요? 지금 내 자리에서 해 볼 수 있는 작은 한 걸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모든 슬픔은 완전히 끊어지고 버려져 여기에서 끝났습니다. 슬픔이 생겨나는 바탕을 내가 완전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Sabbe sokā samucchinnā, pahīnā etadantikā; Pariññātā hi me vatthū, yato sokāna sambhavo”ti.

쿳다까 니까야 Thig 6.2 와셋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와셋티는 모든 슬픔이 끊어지고 버려져 여기에서 끝났다고 노래를 맺습니다. 그 까닭으로 슬픔이 생겨나는 바탕을 완전히 알았다는 점을 듭니다. 노래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을 잃었던 모습에서 시작해, 모든 슬픔이 끝났다는 말에 이릅니다.

묵상

와셋티는 “슬픔이 생겨나는 바탕”을 완전히 알았기에 모든 슬픔이 끝났다고 말해요. 마음이 무거워질 때 무엇이 그 무게를 불러오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살펴보기 어렵거나 그러고 싶지 않을 때는 슬픔을 그대로 두고 쉬어 가면 어떨까요?

52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케마의 게송 5구절

아름다움의 유혹과 덧없음을 놓고 마라와 주고받은 문답입니다.

“그대는 젊고 아름다우며 나 역시 젊은 청년입니다. 케마여, 오십시오. 다섯 악기로 이루어진 음악을 들으며 우리 함께 즐깁시다.”

“Daharā tvaṁ rūpavatī, ahampi daharo yuvā; Pañcaṅgikena turiyena, ehi kheme ramāmase”.

쿳다까 니까야 Thig 6.3 케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라가 케마에게 건네는 말로 문답이 시작됩니다. 마라는 케마도 자신도 젊다는 점을 내세우고, 케마의 이름을 부르며 다섯 악기로 어우러진 음악을 함께 즐기자고 권합니다. 젊음과 아름다움과 음악을 들어 감각으로 누리는 즐거움 쪽으로 이끄는 목소리입니다. 이 권유에 케마가 어떻게 답하는지는 이어지는 게송에 나옵니다.

묵상

젊음과 “다섯 악기로 이루어진 음악”을 한데 묶은 권유처럼, 즐거운 분위기가 결정을 서두르게 한 적이 있나요? 제안을 받았을 때 대답하기 전에 잠시 몸과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썩어 가고 병들고 쉽게 부서지는 이 몸이 나는 지긋지긋하고 부끄럽습니다. 감각적 욕망을 향한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은 뿌리째 뽑혔습니다.

“Iminā pūtikāyena, āturena pabhaṅgunā; Aṭṭiyāmi harāyāmi, kāmataṇhā samūh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6.3 케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케마는 마라의 유혹에 자신의 몸을 이야기하며 답합니다. 이 몸은 썩어 가고 병들고 쉽게 부서지며, 그런 몸이 지긋지긋하고 부끄럽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을 향한 갈망은 이미 뿌리째 뽑혔다고 밝힙니다. 마라가 내세운 젊음과 아름다움은 그대로 있지 않은 몸 위에 서 있으므로, 케마에게는 끌어당기는 힘이 없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대답 뒤에 한 게송이 더 이어집니다. 감각적 욕망은 칼과 창 같고, 몸과 마음을 이루는 무더기들은 그 칼날이 내리치는 도마와 같으며, 마라가 ‘욕망의 즐거움’이라 부르는 것이 이제 자신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같은 게송이 웃빨라완나의 노래에도 나옵니다.

묵상

“썩어 가고 병들고 쉽게 부서지는” 몸을, 좋고 나쁨을 매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몸을 평가하는 생각이 커진다면 관찰을 잠시 멈추고 편안함부터 돌봐도 괜찮을까요?

즐겨 붙드는 마음은 모든 면에서 꺾였고 어둠의 덩어리는 산산이 깨졌습니다. 악한 자여, 이렇게 아십시오. 죽음을 가져오는 자여, 그대는 패배했습니다.

Sabbattha vihatā nandī, tamokhandho padālito; Evaṁ jānāhi pāpima, nihato tvamasi antaka.

쿳다까 니까야 Thig 6.3 케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케마는 즐겨 붙드는 마음이 모든 면에서 꺾이고 어둠의 덩어리가 산산이 깨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여’, ‘죽음을 가져오는 자여’ 하고 마라를 두 번 불러, 그가 패배했음을 알립니다. 욕망과 모름이 걷힌 마음에는 마라가 붙잡을 자리가 없습니다.

묵상

“죽음을 가져오는 자여, 그대는 패배했습니다.” 케마는 유혹을 자신과 떼어 놓고 이름을 불러 말해요. 내 마음을 흔드는 생각 하나를 지나가는 목소리로 불러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이름 붙이기 어렵다면 그저 거리를 두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별들에게 절하고 숲에서 제사의 불을 섬기며 사물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은 나는 그것으로 깨끗해진다고 여겼습니다.

Nakkhattāni namassantā, aggiṁ paricaraṁ vane; Yathābhuccamajānantā, bālā suddhimamaññatha.

쿳다까 니까야 Thig 6.3 케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라와의 문답을 마친 케마는 자신의 지난 일을 돌아봅니다. 별에게 절하고 숲에서 제사의 불을 섬기면서, 사물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 채 그것으로 깨끗해진다고 여겼던 자신을 어리석었다고 말합니다.

묵상

별과 숲의 불을 섬기면서 “참모습을 알지 못한” 채 깨끗해진다고 여겼다는 케마의 고백이에요. 의례를 따르는 일과 실제로 이해하는 일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익숙한 의식 하나의 뜻을 다시 물어보거나, 위안이 된다면 그대로 간직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나 이제 나는 사람 가운데 으뜸이신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절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여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났습니다.

Ahañca kho namassantī, sambuddhaṁ purisuttamaṁ; Pamuttā sabbadukkhehi, satthusāsanakārik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6.3 케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케마는 예전에 별과 불을 섬기던 것과 달리, 이제는 사람 가운데 으뜸이신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절한다고 말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여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났다는 말로 노래를 맺습니다. 깨끗해지는 길을 의례에서 찾던 케마는 가르침을 실제로 행하는 쪽으로 옮겨 왔습니다.

묵상

케마의 노래는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났습니다”로 끝나요. 그 앞에서 절하는 대상이 바뀐 일과 가르침을 실제로 행한 일에 눈을 두면 무엇이 보이나요? 내가 존중하는 것이 행동과 맞닿는 지점을 살펴보거나, 아직 방향이 없다면 서둘러 찾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5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수자따의 게송 6구절

화려한 나들이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출가와 해방에 이른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장신구로 꾸미고 좋은 옷을 입었으며 화환을 두르고 백단향을 발랐습니다. 온갖 장식으로 몸을 덮고 여종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Alaṅkatā suvasanā, mālinī candanokkhitā; Sabbābharaṇasañchannā, dāsīgaṇapurakkhatā.

쿳다까 니까야 Thig 6.4 수자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자따는 어느 날 동산으로 나서던 때의 차림을 들려주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장신구로 꾸미고 좋은 옷을 입었으며, 화환을 두르고 백단향을 발랐다고 합니다. 이어서 온갖 장식으로 몸을 덮고 여종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말합니다. 삶이 바뀌는 이야기는 이렇게 풍족하고 아름답게 꾸민 모습에서 출발합니다.

묵상

장신구와 화환과 백단향으로 꾸미고 여종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그 풍요는 수자따의 몸에 어떤 느낌을 남겼을까요? 오늘 내 몸에 걸친 것 가운데 편안한 것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세요. 꾸밈을 더하지 않는 쪽이 편하다면 그 가벼움을 느껴 보세요.

밥과 마실 것과 간식과 갖가지 음식을 넉넉히 챙겨, 집을 나선 뒤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Annaṁ pānañca ādāya, khajjaṁ bhojjaṁ anappakaṁ; Gehato nikkhamitvāna, uyyānamabhihāray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4 수자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자따는 밥과 마실 것, 간식과 갖가지 음식을 넉넉히 챙겨 집을 나서 동산으로 향합니다. 원문은 가져간 먹을거리를 종류별로 적고, 그 양이 적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넉넉히 준비해 나선 나들이 길에서 뒤이어 뜻밖의 만남이 일어납니다.

묵상

“갖가지 음식을 넉넉히” 챙겨 동산으로 가는 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나는 무엇이 있을 때 충분하다고 느끼는지 살펴보세요. 오늘 먹는 음식 한 가지의 맛을 천천히 느껴 보세요.

그곳에서 즐기고 놀다가 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행자들이 머무는 곳을 보려고 사께따의 안자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Tattha ramitvā kīḷitvā, āgacchantī sakaṁ gharaṁ; Vihāraṁ daṭṭhuṁ pāvisiṁ, sākete añjanaṁ v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4 수자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자따는 동산에서 즐기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무는 곳을 보려고 사께따의 안자나 숲으로 들어갑니다. 원문은 놀던 자리에서 집으로 가던 길이 숲 안의 머무는 곳 쪽으로 꺾이는 순서를 그대로 밝힙니다. 이렇게 들른 숲에서 수자따의 삶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묵상

수자따는 놀다 돌아오는 길에 수행처를 보려고 숲으로 들어갔어요. 나에게도 가던 길을 멈추고 들어가 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나요? 그때 들어갔는지, 그냥 지나쳤는지 떠올려 보세요.

세상의 빛이신 분을 보고 절한 뒤 가까이 앉았습니다. 눈 밝으신 그분은 나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주셨습니다.

Disvāna lokapajjotaṁ, vanditvāna upāvisiṁ; So me dhammamadesesi, anukampāya cakkhumā.

쿳다까 니까야 Thig 6.4 수자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안자나 숲에 들어간 수자따는 세상의 빛이신 부처님을 보고 절한 뒤 앉습니다. 눈 밝으신 부처님은 그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주십니다. 스스로 찾아 들어와 예를 갖춘 사람에게 스승이 연민으로 가르침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원문은 부처님을 세상의 빛과 눈 밝으신 분이라는 두 이름으로 부릅니다.

묵상

“눈 밝으신 그분”은 찾아와 앉은 수자따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주셨어요. 잘 살펴보는 일과 따뜻하게 대하는 일은 나에게 어떻게 이어지나요? 오늘 누군가의 사정을 한 번 더 헤아려 보세요.

큰 선견자의 말씀을 듣고 나는 진리를 꿰뚫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티끌 없는 가르침, 죽음 없는 곳을 직접 만났습니다.

Sutvā ca kho mahesissa, saccaṁ sampaṭivijjhahaṁ; Tattheva virajaṁ dhammaṁ, phusayiṁ amataṁ pad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4 수자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자따는 큰 선견자이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꿰뚫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티끌 없는 가르침, 곧 죽음 없는 곳을 직접 만났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라는 말은 가르침을 들은 곳을 떠나기도 전에 진리를 깨달았음을 알려 줍니다. 즐기러 동산에 나섰던 하루가 이렇게 바뀝니다.

묵상

수자따는 가르침을 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음 없는 곳을 만났어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몸이 닿아 있는 바닥이나 의자의 감촉을 느껴 보세요.

그 뒤 참된 가르침을 분명히 알고 집 없는 삶으로 나섰습니다. 세 가지 앎을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Tato viññātasaddhammā, pabbajiṁ anagāriyaṁ; Tisso vijjā anuppattā, amoghaṁ buddhasāsan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6.4 수자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자따는 참된 가르침을 분명히 안 뒤 집 없는 삶으로 나섰고, 세 가지 앎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세 가지 앎은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 뭇 생명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하늘의 눈, 흘러드는 것이 다했음을 아는 앎입니다. 동산에서 돌아오던 날 들은 가르침이 집을 떠난 수행자의 삶으로 이어져 열매를 맺었습니다. 수자따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는 말로 노래를 마칩니다.

묵상

꾸미고 동산에 놀러 간 날의 만남이 수자따를 집 없는 삶과 세 가지 앎으로 이끌었어요. 내 삶의 방향을 바꾼 만남이 있었다면 어떤 만남이었나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오늘 하루를 편한 마음으로 지내 보세요.

54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아노빠마의 게송 6구절

부와 혼인 제안을 떠나 몸의 덧없음을 보고 해방에 이른 일을 노래합니다.

나는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재산이 넉넉하고 부유한 집이었습니다. 고운 얼굴빛과 몸매를 갖춘 맛자의 친딸이었습니다.

“Ucce kule ahaṁ jātā, bahuvitte mahaddhane; Vaṇṇarūpena sampannā, dhītā majjhassa atrajā.

쿳다까 니까야 Thig 6.5 아노빠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여성 수행자 아노빠마가 부른 노래의 첫머리입니다. 아노빠마는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집안은 재산이 넉넉하고 부유했으며, 고운 얼굴빛과 몸매를 갖춘 맛자의 친딸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출신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왕자들과 부유한 상인의 아들들이 아노빠마를 원하고, 한 구혼자가 큰 재물을 내겁니다. 그 뒤 아노빠마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가 노래의 나머지를 이룹니다.

묵상

아노빠마는 집안과 재산과 외모를 먼저 말하며 자신을 소개해요. 나를 소개할 때 자주 앞세우는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중 하나를 잠시 내려놓고 나를 떠올려 보면, 어떤 느낌이 남나요?

왕자들이 나를 원했고 부유한 상인의 아들들도 탐냈습니다. 한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전령을 보내 말했습니다. “아노빠마를 제게 주십시오.”

Patthitā rājaputtehi, seṭṭhiputtehi gijjhitā; Pitu me pesayī dūtaṁ, detha mayhaṁ anopa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5 아노빠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노빠마는 왕자들이 자신을 원했고 부유한 상인의 아들들도 탐냈다고 말합니다. 그중 한 사람은 아버지에게 전령을 보내 아노빠마를 달라고 청합니다. 청혼의 말은 아노빠마 본인을 건너뛰고 아버지에게 갑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이 구혼자는 아노빠마의 몸무게를 기준으로 그 여덟 배만큼 금화와 보석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사람을 얻고자 다투는 장면이 한 대목에 담겨 있습니다.

묵상

“아노빠마를 제게 주십시오”라는 청은 아버지에게 전해졌어요. 내 일이 내 목소리 없이 오간 적이 있었나요? 지금 내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소리 내어 말하기 어렵다면 마음속으로만 떠올려 보세요.

“따님 아노빠마의 몸무게가 얼마가 되든, 그 여덟 배만큼의 금화와 보석을 드리겠습니다.”

Yattakaṁ tulitā esā, tuyhaṁ dhītā anopamā; Tato aṭṭhaguṇaṁ dassaṁ, hiraññaṁ ratanāni ca.

쿳다까 니까야 Thig 6.5 아노빠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구혼자는 아노빠마의 몸무게를 기준으로 삼아 그 여덟 배만큼의 금화와 보석을 주겠다고 전령을 통해 아버지에게 전합니다. 사람을 무게로 재고 값으로 바꾸는 제안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아노빠마는 부처님을 뵙고 그 발에 절합니다. 혼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남은 대목에 나오지 않습니다.

묵상

구혼자는 아노빠마의 몸무게를 기준으로 그 “여덟 배”만큼 금화와 보석을 주겠다고 해요. 사람을 무게와 값으로 셈하는 제안이에요. 나를 숫자로 재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기준에서 잠시 물러나 나를 바라보면 무엇이 보이는지 살펴보세요.

나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 세상의 어른이며 견줄 이 없는 분을 뵈었습니다. 그분의 두 발에 절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Sāhaṁ disvāna sambuddhaṁ, lokajeṭṭhaṁ anuttaraṁ; Tassa pādāni vanditvā, ekamantaṁ upāvis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5 아노빠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노빠마는 부처님을 뵙고 발에 절한 뒤 한쪽에 앉습니다. 부처님을 온전히 깨달으신 분, 세상의 어른이며 견줄 이 없는 분이라고 부릅니다. 한쪽에 앉는 것은 가르침을 들으려는 이가 스승 앞에서 취하는 자세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부처님이 가르침을 일러 주십니다.

묵상

금화와 보석을 내건 혼담 뒤에, 아노빠마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을 뵙고 절한 뒤 한쪽에 앉았어요. 지금 나에게 값나가 보이는 것과 깊이 믿을 수 있는 것은 각각 무엇인가요? 바로 정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둘을 나란히 적어 보세요.

고따마께서 나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주셨습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 앉은 채 세 번째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So me dhammamadesesi, anukampāya gotamo; Nisinnā āsane tasmiṁ, phusayiṁ tatiyaṁ phal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5 아노빠마 장로니의 게송

배경

고따마, 곧 부처님이 아노빠마를 가엾이 여겨 가르침을 일러 주십니다. 아노빠마는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세 번째 결실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결실은 깨달음으로 가는 네 단계에서 얻는 열매이고, 세 번째는 감각적 욕망에 끌려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계로 전해집니다. 재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변화가 가르침을 듣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대목에서 아노빠마는 머리를 깎고 집을 떠난 일을 말하고, 갈망이 말라 버린 때부터 지나온 밤을 셉니다.

묵상

아노빠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세 번째 결실을 이루었다고 말해요. 몸은 그대로인데 생각이나 마음이 달라졌던 순간이 있었나요? 떠오르는 순간이 없다면, 지금 앉아 있는 자세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각부터 살펴보세요.

그 뒤 머리카락을 자르고 집 없는 삶으로 나섰습니다.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말라 버린 때부터 오늘이 일곱째 밤입니다.

Tato kesāni chetvāna, pabbajiṁ anagāriyaṁ; Ajja me sattamī ratti, yato taṇhā visosit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6.5 아노빠마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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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결실을 이룬 뒤 아노빠마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집 없는 삶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갈망이 말라 버린 때부터 오늘이 일곱째 밤이라고 지나온 시간을 셉니다. 좋은 집안과 구혼 이야기로 시작한 노래가 이 말로 닫힙니다. 몸무게의 여덟 배라는 값이 매겨지던 아노빠마가 마지막에는 스스로 센 밤의 수로 자신의 변화를 말합니다.

묵상

아노빠마는 “오늘이 일곱째 밤”이라고 말하며, 몸무게의 여덟 배를 따지던 셈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세어요. 내가 얻은 것의 양보다, 어떤 변화가 있은 뒤로 지나온 날을 세어 본 적이 있나요? 셀 만한 일이 없다면 오늘 밤을 있는 그대로 맞아 보세요.

55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게송 6구절

부처님과 낳고 길러 준 이들을 기리며 마지막 몸의 해방을 선언합니다.

“영웅이신 부처님, 당신께 절합니다. 모든 존재 가운데 으뜸이신 분이여, 당신은 나를 괴로움에서 풀어 주셨고 다른 많은 사람도 풀어 주셨습니다.”

“Buddha vīra namo tyatthu, sabbasattānamuttama; Yo maṁ dukkhā pamocesi, aññañca bahukaṁ j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6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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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수행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부른 노래의 첫머리입니다. 고따미는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의 동생으로, 어머니를 여읜 부처님을 젖 먹여 길렀습니다. 노래는 부처님께 절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고따미는 부처님을 영웅이자 모든 존재 가운데 으뜸이신 분이라 부르고, 그분이 자신을 괴로움에서 풀어 주셨고 다른 많은 사람도 풀어 주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과 많은 사람에게 닿은 도움을 함께 기리는 감사의 인사입니다.

묵상

고따미는 자신이 풀려난 일과 많은 사람이 풀려난 일에 함께 감사해요. 나를 도와준 사람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도 힘이 되어 준 적이 있나요? 그 도움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한 줄 적어 보세요.

모든 괴로움을 완전히 알았고 그 원인인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은 말라 버렸습니다. 여덟 갈래의 길(앗탕기까 막가)을 닦았으며 괴로움의 멎음에 나는 몸소 닿았습니다.

Sabbadukkhaṁ pariññātaṁ, Hetutaṇhā visositā; Bhāvito aṭṭhaṅgiko maggo, Nirodho phusito mayā.

쿳다까 니까야 Thig 6.6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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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따미는 자신이 이룬 것을 네 가지로 말합니다. 모든 괴로움을 완전히 알았고, 그 원인인 갈망은 말라 버렸으며, 여덟 갈래의 길을 닦았고, 괴로움의 멎음에 몸소 닿았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첫 가르침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말씀하시며, 괴로움은 완전히 알아야 하고, 그 원인은 버려야 하고, 멎음은 몸소 이루어야 하고, 길은 닦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고따미는 그 네 가지 일을 모두 마쳤다고 밝힙니다.

묵상

고따미는 괴로움을 알고, 그 원인인 갈망을 말리고, 길을 닦고, 괴로움의 멎음에 닿았다고 차례로 말해요.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조용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은 그럴 힘이 없다면 이 질문은 내려놓고 쉬어 가세요.

예전에 나는 어머니였고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였고 형제였으며 할머니이기도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한 채 보람도 없이 떠돌았습니다.

Mātā putto pitā bhātā, ayyakā ca pure ahuṁ; Yathābhuccamajānantī, saṁsariṁhaṁ anibbis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6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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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따미는 지난 삶들을 돌아봅니다. 어머니, 아들, 아버지, 형제, 할머니였던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자로 산 삶도 남자로 산 삶도 있었고, 가족 안의 자리도 삶마다 달랐습니다. 그동안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해 보람도 없이 떠돌았다고 합니다.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하는 이 삶의 흐름을 떠돎(상사라)이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밝힌 앎과 달리, 모르고 지내던 때를 되돌아보는 대목입니다.

묵상

고따미는 어머니, 아들, 아버지, 형제, 할머니였던 지난 삶들을 돌아봐요. 지금 나는 어떤 자리들을 맡고 있나요? 그 가운데 오늘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자리가 있다면, 그 마음을 탓하지 말고 가만히 알아차려 보세요.

나는 참으로 부처님을 뵈었고 이 몸은 마지막 몸입니다. 태어남으로 이어지던 떠돎은 다했으니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습니다.

Diṭṭho hi me so bhagavā, antimoyaṁ samussayo; Vikkhīṇo jātisaṁsāro, natthi dāni punabbhavo.

쿳다까 니까야 Thig 6.6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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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따미는 부처님을 뵈었다고 말하며, 지금 이 몸이 마지막이라고 밝힙니다. 태어남으로 이어지던 떠돎이 다했으므로 다시 태어남은 없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떠돌던 지난 삶을 돌아본 데 이어, 그 떠돎이 끝났음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묵상

고따미는 이 몸이 마지막 몸이며 다시 태어남이 없다고 말해요. 다시 태어나 떠도는 일이 끝났다는 이 말이 지금 내게 어떻게 들리나요? 편하지 않은 말이라면 그 느낌을 그대로 두고, 오늘 나를 돌보는 일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힘을 일으키고 뜻을 굳게 세워 늘 단단히 애쓰며 화합하는 제자들을 나는 봅니다. 이것이 부처님들께 드리는 절입니다.

Āraddhavīriye pahitatte, Niccaṁ daḷhaparakkame; Samagge sāvake passe, Esā buddhāna vandanā.

쿳다까 니까야 Thig 6.6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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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따미는 힘을 일으키고 뜻이 굳으며 늘 단단히 애쓰고 서로 화합하는 제자들을 바라봅니다. 그 모습을 부처님들께 드리는 절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마지막 몸을 밝힌 데 이어, 부처님께 올리는 인사를 함께 길을 닦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찾습니다.

묵상

고따미는 화합하며 애쓰는 제자들의 모습을 부처님께 드리는 절이라고 불러요. 함께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마움이나 존경을 느낀 적이 있나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잠시 머물러 보세요.

“참으로 마야께서는 많은 이의 이익을 위해 고따마를 낳으셨습니다. 고따마는 질병과 죽음에 찔린 이들에게서 괴로움의 덩어리를 걷어 내셨습니다.”

Bahūnaṁ vata atthāya, Māyā janayi gotamaṁ; Byādhimaraṇatunnānaṁ, Dukkhakkhandhaṁ byapānud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6.6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노래를 맺는 대목입니다. 고따미는 마야가 많은 이의 이익을 위해 고따마를 낳았다고 말하고, 고따마가 병과 죽음에 찔린 이들에게서 괴로움의 덩어리를 걷어 내셨다고 기립니다. 고따마는 부처님 집안의 이름입니다. 마야는 부처님을 낳은 어머니이고, 고따미는 마야의 동생으로 어머니를 여읜 부처님을 젖 먹여 길렀습니다. 언니가 낳고 자신이 길러 낸 아이의 탄생을, 고따미는 많은 이를 위한 일로 기리며 노래를 마칩니다.

묵상

고따미는 병과 죽음에 찔린 이들의 괴로움을 걷어 내신 분을 기려요. 아픔을 겪는 사람 곁에서 내가 건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지금 아프다면 나를 돌보는 일부터 떠올려 보세요.

56 나이 든 여성 수행자 굿따의 게송 6구절

마음이 다섯 감각적 즐거움에서 벗어나도록 꾸짖고 다스리는 노래입니다.

“굿따여, 그대가 아들과 재산과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그 목적, 바로 그것을 키워 가십시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지 마십시오.”

“Gutte yadatthaṁ pabbajjā, hitvā puttaṁ vasuṁ piyaṁ; Tameva anubrūhehi, mā cittassa vasaṁ gami.

쿳다까 니까야 Thig 6.7 굿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 굿따를 부르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굿따는 아들과 재산과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대목은 그렇게 집을 떠난 바로 그 목적을 키워 가라고 권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큰 결단을 한 뒤에도 마음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세운 방향을 거듭 떠올리고 북돋우도록 이릅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마음에 속은 존재들이 수많은 생을 떠도는 모습을 그립니다.

묵상

큰 결심을 하고 시작한 일이 있다면, 그때 세운 까닭을 지금도 떠올릴 수 있나요?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 그 까닭을 한 줄로 적어 보세요. 까닭이 달라졌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함께 살펴보세요.

마음에 속은 존재들은 마라의 영역을 즐기면서 알지 못한 채 수많은 생을 떠돌며 내달립니다.

Cittena vañcitā sattā, mārassa visaye ratā; Anekajātisaṁsāraṁ, sandhāvanti aviddasū.

쿳다까 니까야 Thig 6.7 굿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음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게송입니다. 존재들은 마음에 속아 마라의 영역을 즐기면서, 알지 못한 채 수많은 생을 떠돌며 내달립니다. 마라는 사람을 욕망과 죽음에 붙잡아 두려는 존재로 경전에 자주 나옵니다. 마음에 속는다는 말은 떠오르는 욕구를 곧 자기 뜻으로 믿고 따르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마음을 이렇게 묶어 두는 다섯 가지 족쇄가 하나씩 나옵니다.

묵상

마음에 속은 존재들이 알지 못한 채 떠돈다고 해요. 나도 모르게 되풀이하는 반응이 하나 떠오르나요? 떠오른다면 자신을 탓하지 말고, 바꿀 준비가 될 때까지 그저 알아차리기만 해 보세요.

감각적 욕망과 악의,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견해, 규칙과 의례에 매달림, 그리고 다섯째인 의심입니다.

Kāmacchandañca byāpādaṁ, sakkāyadiṭṭhimeva ca; Sīlabbataparāmāsaṁ, vicikicchañca pañca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7 굿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음을 묶어 거듭 떠돌게 하는 것 다섯 가지를 차례로 듭니다. 감각적 욕망, 악의,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견해, 규칙과 의례에 매달림이 나오고, 의심이 다섯째로 꼽힙니다. 규칙과 의례에 매달린다는 말은 정해진 규칙이나 의식을 지키기만 하면 마음이 맑아진다고 믿고 붙드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어지는 대목은 이 다섯을 아래 세계로 이끄는 족쇄라고 부르고, 버린 뒤에 오는 결과를 말합니다.

묵상

다섯 가지 가운데 요즘 내 마음에서 알아보기 쉬운 것이 있나요? 읽기가 불편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떠오른 것 하나만 조용히 지켜보세요.

여성 수행자여, 아래 세계로 이끄는 이 족쇄들을 버리고 나면 그대는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Saṁyojanāni etāni, pajahitvāna bhikkhunī; Orambhāgamanīyāni, nayidaṁ punarehisi.

쿳다까 니까야 Thig 6.7 굿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든 다섯 가지, 곧 감각적 욕망·악의·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기는 견해·규칙과 의례에 매달림·의심을 아래 세계로 이끄는 족쇄라고 묶습니다. 그리고 굿따를 여성 수행자라고 부르며, 이 족쇄들을 버리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래 세계는 감각의 즐거움에 묶여 사는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 다섯 족쇄가 끊어지면 그런 세계로 거듭 되돌아오는 흐름이 멈춥니다. 이어서 더 미세한 탐냄·자만·모름·들뜸이 나옵니다.

묵상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 앞에서, 자신을 자꾸 같은 자리로 되돌려 놓는 습관이 떠오르나요? 떠오른다면 그 습관을 조금 느슨하게 할 작은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탐냄과 자만과 모름, 그리고 들뜸을 멀리하고 족쇄들을 끊어 버리면 그대는 괴로움을 끝낼 것입니다.

Rāgaṁ mānaṁ avijjañca, uddhaccañca vivajjiya; Saṁyojanāni chetvāna, dukkhassantaṁ karissasi.

쿳다까 니까야 Thig 6.7 굿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의 다섯 족쇄에 이어 탐냄·자만·모름·들뜸을 멀리하고 족쇄들을 끊으면 괴로움을 끝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탐냄은 감각의 즐거움을 넘어 더 높은 세계에 다시 태어나려는 바람을 가리킨다고 풀이됩니다. 이렇게 미세하게 남은 것들까지 놓으면 마음을 묶던 족쇄들이 끊어집니다. 마지막 대목은 바로 이 삶에서 갈망 없이 고요히 사는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탐냄·자만·모름과 나란히 들뜸이 꼽혀요. 활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음이 들떠 있던 순간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그때 몸이 얼마나 서둘렀는지 돌아보고, 지금 몸의 속도도 한번 느껴 보세요.

“태어남을 거듭하는 떠돎을 다 끝내고 다시 태어남을 완전히 알아, 바로 이 삶에서 갈망이 사라진 채 고요히 살아갈 것입니다.”

Khepetvā jātisaṁsāraṁ, pariññāya punabbhavaṁ; Diṭṭheva dhamme nicchātā, upasantā carissat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6.7 굿따 장로니의 게송

배경

족쇄를 끊어 괴로움을 끝낸다는 앞말을 이어, 태어남을 거듭하는 떠돎을 끝내고 다시 태어남을 완전히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는 바로 이 삶에서 나타납니다. 굶주리듯 붙드는 마음이 사라지고 고요히 살아가게 됩니다. 이 약속은 굿따에게 건네는 말이며, 노래는 여기서 끝납니다.

묵상

“바로 이 삶에서”라는 말은 고요를 먼 훗날의 일로 미루지 않아요. 오늘 무언가를 몹시 바라던 마음이 잠깐이라도 누그러진 순간이 있었나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대로 두고,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한번 알아차려 보세요.

57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위자야(Vijayā)의 게송 5구절

거듭 좌절하다 가르침을 따라 밤의 세 시기에 세 가지 앎을 얻습니다.

나는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가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요소와 감각 영역에 관한 가르침을 일러 주었습니다.

Bhikkhuniṁ upasaṅkamma, sakkaccaṁ paripucchahaṁ; Sā me dhammamadesesi, dhātuāyatanāni ca.

쿳다까 니까야 Thig 6.8 위자야 장로니

배경

위자야는 이 노래의 첫 대목에서 거처 밖으로 네 번, 다섯 번 나갔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고 자기 마음을 뜻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위자야는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가 정중하게 묻고, 요소와 감각 영역에 관한 가르침을 듣습니다. 감각 영역은 눈·귀·코·혀·몸·마음과 그 대상을 가리키고, 요소는 감각과 그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을 열여덟 갈래로 나눈 것입니다. 둘 다 자기 경험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살피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묵상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던 위자야는 한 여성 수행자를 찾아가 정중하게 물었어요. 지금 막혀 있는 일이 있다면, 믿을 만한 이에게 한 가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 있을까요? 물어볼 사람이 없거나 묻기 어렵다면 질문만 적어 두어도 될까요?

또 네 가지 거룩한 진리, 능력들과 힘들, 깨달음의 요소들, 그리고 가장 높은 목적에 이르게 하는 여덟 갈래의 길을 가르쳤습니다.

Cattāri ariyasaccāni, indriyāni balāni ca; Bojjhaṅgaṭṭhaṅgikaṁ maggaṁ, uttamatthassa patt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6.8 위자야 장로니

배경

위자야가 찾아간 여성 수행자는 요소와 감각 영역에 이어 여러 가르침을 일러 줍니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 능력과 힘, 깨달음의 요소, 그리고 가장 높은 목적에 이르게 하는 여덟 갈래의 길입니다. 네 가지 거룩한 진리는 괴로움, 괴로움이 일어남, 괴로움이 멎음, 멎음에 이르는 길이고, 그 길이 곧 여덟 갈래의 길입니다. 능력과 힘은 둘 다 믿음·힘씀·알아차림·마음이 한곳에 모임·지혜 다섯 가지를 가리키고, 깨달음의 요소는 알아차림에서 시작하는 일곱 가지입니다.

묵상

위자야가 배운 가르침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서 여덟 갈래의 길까지 길게 이어져요. 이 가운데 지금 내게 와닿는 말이 하나 있나요? 모두 낯설게 느껴진다면 하나만 골라 그 뜻을 천천히 찾아보아도 괜찮을까요?

나는 그 여성 수행자의 말을 듣고 일러 준 대로 따르며 밤의 첫째 시각에 지난 삶들을 기억했습니다.

Tassāhaṁ vacanaṁ sutvā, karontī anusāsaniṁ; Rattiyā purime yāme, pubbajātimanussar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8 위자야 장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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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야는 여성 수행자의 말을 듣고 일러 준 대로 따르며, 밤의 첫째 시각에 지난 삶들을 기억했다고 말합니다. 옛 인도에서는 밤을 세 시각으로 나누었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가운데 시각과 마지막 시각의 일이 차례로 나옵니다.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은 세 가지 앎 가운데 첫째입니다.

묵상

위자야는 여성 수행자의 말을 듣고 일러 준 대로 따랐어요. 누군가에게 듣고도 아직 해 보지 않은 조언이 있나요? 오늘 그 가운데 작은 것 하나를 해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지금은 적어 두기만 해도 될까요?

밤의 가운데 시각에는 하늘의 눈을 맑게 했습니다. 밤의 마지막 시각에는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렸습니다.

Rattiyā majjhime yāme, dibbacakkhuṁ visodhayiṁ; Rattiyā pacchime yāme, tamokhandhaṁ padālay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6.8 위자야 장로니

배경

밤의 첫째 시각에 지난 삶들을 기억한 데 이어, 위자야는 가운데 시각에 하늘의 눈을 맑게 했고 마지막 시각에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렸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눈은 존재들이 저마다의 행위에 따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눈입니다. 어둠의 덩어리는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하는 모름(아윗자)을 가리키는 비유로 읽힙니다. 밤의 세 시각마다 수행이 한 단계씩 나아갑니다.

묵상

위자야는 밤의 세 시각에 걸쳐 한 단계씩 나아가다가 마지막 시각에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려요. 무언가를 한 번에 알지 못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이해하게 된 적이 있나요? 선명함을 서두르지 않고 지금 보이는 만큼만 보아도 될까요?

“그때 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가득 채우며 머물렀습니다. 일곱째 날에 두 다리를 뻗었습니다.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린 뒤였습니다.”

Pītisukhena ca kāyaṁ, Pharitvā vihariṁ tadā; Sattamiyā pāde pasāresiṁ, Tamokhandhaṁ padāliy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6.8 위자야 장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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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린 위자야는 희열과 행복으로 온몸을 채우며 머물렀고, 일곱째 날에 두 다리를 뻗었다고 노래합니다. 다리를 뻗었다는 말은 오래 앉아 있던 자세를 풀었음을 나타냅니다. 좌절로 시작한 이 노래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 모습으로 끝납니다.

묵상

위자야는 희열과 행복이 온몸에 가득한 채 머물다가 일곱째 날에 두 다리를 뻗었어요. 오래 한 가지에 마음을 쏟은 뒤 몸을 풀어 본 적이 있다면, 그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지금 다리나 손을 편하게 뻗어 볼 수 있을까요? 움직이기 어렵다면 바닥이나 의자에 닿아 있는 몸의 느낌만 살펴보세요.

58 둘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웃따라의 게송 6구절

곡식을 찧던 삶과 일곱 깨달음 요소를 닦은 해방의 삶을 대조합니다.

그대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힘쓰십시오. 그렇게 하면 뒤에 뉘우치지 않습니다. 어서 두 발을 씻고 한쪽에 가서 앉으십시오.

Ghaṭetha buddhasāsane, yaṁ katvā nānutappati; Khippaṁ pādāni dhovitvā, ekamantaṁ nisīdatha.

쿳다까 니까야 Thig 7.1 둘째 웃따라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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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웃따라의 노래에서 빠따짜라가 여러 제자에게 하는 말이 이어집니다. 앞의 대목은 젊은 남자들이 절굿공이로 곡식을 찧어 가족을 먹이고 재산을 얻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여기서 빠따짜라는 그렇게 부지런히 사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힘쓰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뒤에 뉘우칠 일이 없다고 하고, 곧바로 두 발을 씻고 한쪽에 앉으라고 구체적인 행동을 알려 줍니다. 가르침에 힘쓰는 일이 몸을 씻고 자리에 앉는 데서 시작합니다.

묵상

“그대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힘쓰십시오” 바로 뒤에 두 발을 씻으라는 말이 붙어 있어요. 마음먹은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어떤 작은 준비를 하나요? 발을 씻거나 자리를 정돈하는 것처럼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기운이 없는 날이라면 잠시 쉬는 것도 준비가 될 수 있을까요?

“마음을 굳게 세워 하나로 모으고 훌륭히 안정시키십시오. 조건 지어진 것들을 나로 여기지 말고 낯선 것으로 살펴보십시오.”

Cittaṁ upaṭṭhapetvāna, ekaggaṁ susamāhitaṁ; Paccavekkhatha saṅkhāre, parato no ca attato”.

쿳다까 니까야 Thig 7.1 둘째 웃따라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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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씻고 한쪽에 앉은 뒤에 할 일을 빠따짜라가 알려 줍니다. 먼저 마음을 굳게 세워 하나로 모으고 안정시킵니다. 그런 다음 조건 지어진 것들을 나라고 붙잡지 않고 낯선 것으로 살펴봅니다. 마음이 한곳에 모여 있어야 이 살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묵상

조건 지어진 것들을 나로 여기지 않고 낯선 것으로 살펴본다는 말이 마음에 어떻게 닿나요? 지금 떠오른 생각 하나를 ‘내 것’이라 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낯선 것처럼 바라보면 어떤가요? 그렇게 보는 방식이 불편하면 편한 말로 바꿔 보셔도 괜찮을까요?

“나는 빠따짜라의 말과 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두 발을 씻은 뒤 한쪽에 가서 앉았습니다.”

“Tassāhaṁ vacanaṁ sutvā, paṭācārānusāsaniṁ; Pāde pakkhālayitvāna, ekamante upāvis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1 둘째 웃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빠따짜라의 말이 끝나고 웃따라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웃따라는 빠따짜라의 말과 가르침을 듣고 그대로 두 발을 씻은 뒤 한쪽에 가서 앉았다고 말합니다. 들은 가르침을 미루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옮긴 장면입니다. 이어서 밤의 첫째, 가운데, 마지막 시각에 일어난 일이 차례로 나옵니다.

묵상

웃따라는 빠따짜라의 말을 듣고 발을 씻고 앉는 일부터 곧바로 해 보았어요. 나도 믿을 만한 사람의 조언을 몸으로 옮겨 본 적이 있나요? 한 단계만 해 본 뒤에 계속할지 정해도 되고, 내 형편에 맞지 않으면 정중히 사양해도 괜찮을까요?

밤의 첫째 시각에는 지난 삶들을 기억했습니다. 밤의 가운데 시각에는 하늘의 눈을 맑게 했습니다.

Rattiyā purime yāme, pubbajātimanussariṁ; Rattiyā majjhime yāme, dibbacakkhuṁ visodhay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1 둘째 웃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한쪽에 앉은 웃따라의 밤이 시각별로 이어집니다. 밤의 첫째 시각에는 자신의 지난 삶들을 기억했고, 가운데 시각에는 하늘의 눈을 맑게 했다고 합니다. 하늘의 눈은 다른 존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눈입니다. 밤의 마지막 시각에 일어난 일은 다음 대목에서 이어집니다.

묵상

첫째 시각과 가운데 시각을 지나면서 앎이 하나씩 차례로 생겨났어요. 지금 하는 일이 아직 중간에 있다면, 그것을 서둘러 결과로 판단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을까요? 지치면 쉬어 가도 괜찮을까요?

밤의 마지막 시각에는 어둠의 덩어리를 산산이 깨뜨렸습니다. 세 가지 앎을 갖춘 이로 일어났으니, 스승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Rattiyā pacchime yāme, tamokhandhaṁ padālayiṁ; Tevijjā atha vuṭṭhāsiṁ, katā te anusāsanī.

쿳다까 니까야 Thig 7.1 둘째 웃따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밤의 마지막 시각에 웃따라는 어둠의 덩어리를 깨뜨렸다고 말합니다. 이 어둠은 모름을 가리킵니다. 앞의 두 시각에 얻은 앎에 이 앎이 더해져 세 가지 앎, 곧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 하늘의 눈, 흘러드는 것이 다했음을 아는 앎을 갖춥니다. 그렇게 세 가지 앎을 갖춘 이로 일어나, 빠따짜라에게 그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알립니다.

묵상

웃따라는 밤을 지새운 끝에 세 가지 앎을 갖춘 이로 일어났어요. 잠들기 전과 깨어난 뒤에 달라진 작은 이해가 나에게도 있나요? 오늘 아침의 몸 상태를 하나만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 볼 수 있을까요?

“서른셋 신들이 싸움에서 지지 않는 삭까를 앞세우듯, 나도 스승님을 앞세워 살겠습니다. 나는 세 가지 앎을 갖추었고 흘러드는 것이 없습니다.”

Sakkaṁva devā tidasā, saṅgāme aparājitaṁ; Purakkhatvā vihassāmi, tevijjāmhi anās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7.1 둘째 웃따라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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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 신들이 삭까를 앞세우듯, 웃따라도 빠따짜라를 앞세우고 살겠다고 말합니다. 삭까는 서른셋 신들의 우두머리로, 싸움에서 지지 않는 이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 가지 앎을 갖추었고 흘러드는 것이 없다고 밝히며 일곱 대목의 이야기를 맺습니다.

묵상

웃따라는 스승을 앞세우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이룬 세 가지 앎을 스스로 말했어요. 내가 받은 도움과 내가 해낸 몫을 나는 각각 어떻게 말하나요? 오늘은 도와준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보거나, 스스로 해낸 일 한 가지를 인정해 보셔도 괜찮을까요?

59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짤라의 게송 6구절

삶과 견해로 유혹하는 마라에게 네 가지 진리와 세 가지 앎으로 답합니다.

“감각 기능을 잘 닦은 여성 수행자는 알아차림을 굳게 세우고 조건 지어진 것들이 가라앉은 행복, 그 평화로운 자리를 꿰뚫었습니다.”

“Satiṁ upaṭṭhapetvāna, bhikkhunī bhāvitindriyā; Paṭivijjhi padaṁ santaṁ, saṅkhārūpasamaṁ suk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2 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짤라의 노래는 자신이 이룬 것을 먼저 밝히며 시작합니다. 짤라는 감각 기능을 잘 닦은 여성 수행자로서 알아차림을 굳게 세우고, 조건 지어진 것들이 가라앉은 행복, 곧 평화로운 자리를 꿰뚫었다고 말합니다. 감각을 잘 다스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분명히 아는 수행이 고요히 꺼짐(닙바나)의 평화로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마라가 삭발과 소속을 문제 삼아 말을 겁니다.

묵상

“조건 지어진 것들이 가라앉은 행복”은 자극을 더하는 즐거움과 다른 맛으로 그려져요. 소리가 잦아들거나 움직임이 멎는 순간을 행복으로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고요가 불편하다면 익숙한 소리를 곁에 두어도 괜찮을까요?

“누구를 따라 머리를 깎았습니까? 그대는 수행자처럼 보입니다. 어떤 교파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어리둥절한 채 떠돕니까?”

“Kaṁ nu uddissa muṇḍāsi, samaṇī viya dissasi; Na ca rocesi pāsaṇḍe, kimidaṁ carasi momuhā”.

쿳다까 니까야 Thig 7.2 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평화로운 자리를 꿰뚫은 짤라에게 마라(사람을 욕망과 죽음에 묶어 두려는 존재)가 묻습니다. 누구를 따라 머리를 깎았는지, 수행자처럼 보이는데 왜 어떤 교파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어리둥절한 채 떠도는지 연달아 추궁합니다. 마라는 겉모습과 소속을 근거로 수행의 방향을 의심하게 만들며 마음을 흔들려 합니다. 이어서 짤라는 바깥 교파들이 저마다 견해에 기대어 있다고 답합니다.

묵상

“누구를 따라 머리를 깎았습니까?”라는 물음은 선택의 까닭을 어느 스승을 따르는지에서만 찾아요. 내가 택한 길을 어느 무리에 속하는지로 증명해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소속을 대지 않고 내 이유만으로 설명해 보아도 괜찮을까요?

“이 가르침 밖의 다른 교파들은 저마다 견해에 기대어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에 밝지도 못합니다.”

“Ito bahiddhā pāsaṇḍā, diṭṭhiyo upanissitā; Na te dhammaṁ vijānanti, na te dhammassa kovidā.

쿳다까 니까야 Thig 7.2 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라가 교파 없는 삶을 어리둥절한 떠돎이라 부르자, 짤라는 바깥 교파들이 저마다 견해에 기대어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진리에 밝지도 못하다고 답합니다. 이어서 견해를 넘어서게 해 준 부처님을 말합니다. 어느 무리에 속하든 굳은 견해에 기대면, 있는 그대로를 직접 아는 일과 괴로움을 끝내는 길을 놓칠 수 있습니다.

묵상

저마다 견해에 기대어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에서, 확신이 이해를 가리던 때를 떠올릴 수 있나요? 내 주장 하나에 모르는 부분을 남겨 두거나, 논쟁을 이어 가지 않고 물러나는 선택도 괜찮을까요?

그러나 사꺄 가문에 태어난 견줄 이 없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견해를 넘어서는 가르침을 나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Atthi sakyakule jāto, buddho appaṭipuggalo; So me dhammamadesesi, diṭṭhīnaṁ samatikka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2 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견해에 기대는 바깥 교파들과 달리, 사꺄 가문에 태어난 견줄 이 없는 부처님이 견해를 넘어서는 가르침을 일러 주셨다고 짤라는 답합니다. 그 가르침은 견해를 붙들지 않고 괴로움을 직접 알아 가는 길입니다. 이어서 그 가르침의 내용이 네 가지 진리로 펼쳐집니다.

묵상

“견해를 넘어서는” 가르침이라는 말 앞에서, 옳은 의견을 하나 더 갖는 것과 의견에 매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붙들고 있는 생각 하나를 질문으로 바꿔 보거나, 중요한 견해는 그대로 지키면서 상대의 말을 잠시 들어 보아도 될까요?

괴로움과 괴로움이 생겨남, 괴로움을 넘어섬, 그리고 괴로움이 가라앉는 데 이르는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아리야 앗탕기까 막가)입니다.

Dukkhaṁ dukkhasamuppādaṁ, Dukkhassa ca atikkamaṁ; Ariyaṁ caṭṭhaṅgikaṁ maggaṁ, Dukkhūpasamagāmi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2 짤라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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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를 넘어선 가르침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괴로움, 괴로움이 생겨남, 괴로움을 넘어섬, 그리고 괴로움이 가라앉는 데 이르는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입니다. 이 넷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네 가지 거룩한 진리입니다.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이 생겨나는 까닭과 그것을 넘어서는 일, 거기에 이르는 실천을 직접 확인하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이어서 이 말을 들은 짤라가 세 가지 앎을 얻은 결실을 말합니다.

묵상

괴로움과 그 생겨남, 넘어섬 뒤에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이 놓여 문제와 길을 함께 보여 줘요. 지금의 어려움에서 원인, 끝, 방법 중 무엇을 먼저 살펴보고 싶나요? 어느 것도 살필 힘이 없다면 괴롭다는 사실만 인정해도 괜찮을까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뒤 기꺼이 그 가르침 안에서 살았습니다. 세 가지 앎을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Tassāhaṁ vacanaṁ sutvā, vihariṁ sāsane ratā; 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2 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네 가지 진리를 들은 짤라는 기꺼이 그 가르침 안에서 살았고, 세 가지 앎을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들은 가르침을 삶의 자리로 삼아 꾸준히 닦자, 앎이 풀려남의 결실로 익었습니다. 뒤이어 마라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묵상

말씀을 들은 뒤 “기꺼이 그 가르침 안에서” 살았다는 말은 가르침을 머무는 자리로 삼은 모습을 그려요. 내가 머물며 시험해 보고 싶은 원칙이 있나요? 평생을 약속하지 않고 오늘 하루만 살아 보거나, 맞지 않으면 나올 문을 남겨 두어도 될까요?

60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우빠짤라의 게송 4구절

하늘 세계를 권하는 마라에게 그 세계의 덧없음과 해방으로 답합니다.

“알아차림과 밝은 눈을 갖추고 감각 기능을 잘 닦은 여성 수행자는 못된 이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평화로운 자리를 꿰뚫었습니다.”

“Satimatī cakkhumatī, bhikkhunī bhāvitindriyā; Paṭivijjhi padaṁ santaṁ, akāpurisasevi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3 우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우빠짤라의 노래는 알아차림과 밝은 눈을 갖추고 감각 기능을 잘 닦은 여성 수행자가, 못된 이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평화로운 자리를 꿰뚫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감각을 잘 다스리고 깨어 있는 수행이, 거칠게 사는 이들은 닦지 않는 고요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마라가 태어남과 감각적 즐거움을 권합니다.

묵상

“못된 이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자리는 거칠게 사는 이들이 굳이 닦지 않는 길을 가리켜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이라서 망설였던 선택이 있나요? 오늘은 그 길을 한 걸음만 걸어 보아도 괜찮을까요?

“그대는 어찌하여 태어남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태어난 이는 감각적 욕망을 누립니다.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십시오.”

“Kiṁ nu jātiṁ na rocesi, jāto kāmāni bhuñjati; Bhuñjāhi kāmaratiyo, māhu pacchānutāpinī”.

쿳다까 니까야 Thig 7.3 우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평화로운 자리를 꿰뚫은 우빠짤라에게 마라(사람을 욕망과 죽음에 묶어 두려는 존재)는 왜 태어남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태어난 이는 감각적 욕망을 누린다며, 그 즐거움을 누리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부추깁니다. 마라는 다시 태어남에 따르는 괴로움은 감추고 당장의 즐거움만 내세워 태어남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이어서 우빠짤라는 태어난 이가 겪는 죽음과 폭력을 하나하나 듭니다.

묵상

“나중에 후회하지 마십시오”라며 지금 즐기라고 재촉하는 말은 선택할 시간을 줄이는 방식처럼 보여요. 서둘러 결정하게 하는 제안 앞에서 잠깐 멈출 수 있나요? 즐거움을 거부하지 않더라도 대답을 늦출 권리를 지켜도 될까요?

“태어난 이에게는 죽음이 닥치고 손과 발이 잘리는 일도 닥칩니다. 죽임을 당하고 묶이고 시달리는 일, 태어난 이는 이런 괴로움을 겪습니다.”

“Jātassa maraṇaṁ hoti, hatthapādāna chedanaṁ; Vadhabandhapariklesaṁ, jāto dukkhaṁ nigacchati.

쿳다까 니까야 Thig 7.3 우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라가 약속한 감각적 즐거움에 맞서, 우빠짤라는 태어난 이에게 닥치는 일을 듭니다. 죽음, 손과 발이 잘리는 일, 죽임을 당하고 묶이고 시달리는 일입니다. 마라가 “태어난 이는 감각적 욕망을 누립니다”라고 한 말을 “태어난 이는 이런 괴로움을 겪습니다”로 되받아, 즐거움만 골라 보여 주는 말 뒤에 가려진 폭력과 상실을 드러냅니다. 이어서 태어남을 넘어서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묵상

즐거움만 내세우는 제안을 들을 때, 그 뒤에 가려진 대가가 무엇인지 한 걸음 떨어져 살펴볼 수 있을까요? 마음이 불안해지면 잠시 읽기를 멈추고 지금 있는 자리가 안전한지 둘러보아도 될까요?

그러나 사꺄 가문에 태어난 패배를 모르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태어남을 넘어서는 가르침을 나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Atthi sakyakule jāto, sambuddho aparājito; So me dhammamadesesi, jātiyā samatikka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7.3 우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태어남이 데려오는 괴로움에 맞서, 우빠짤라는 사꺄 가문에 태어난, 패배를 모르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 태어남을 넘어서는 가르침을 일러 주셨다고 답합니다. 노래는 이어서 그 가르침을 네 가지 진리로 밝히고, 세 가지 앎을 얻었다는 말과 마라의 패배 선언으로 끝맺습니다. 태어난 이는 감각적 욕망을 누린다는 마라의 말과 달리, 이 가르침은 태어남의 되풀이 자체가 끝나는 쪽을 가리킵니다.

묵상

“태어남을 넘어서는” 가르침이라는 말이 삶을 등지라는 말처럼 들리나요, 되풀이되는 괴로움을 끝내는 길처럼 들리나요? 지금 끊고 싶은 되풀이 하나를 가만히 알아보거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무겁다면 이 질문을 잠시 접어 두어도 될까요?

61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시수빠짤라의 게송 6구절

여러 스승의 견해로 유혹하는 마라에게 깨달음의 길로 답합니다.

“바른 행실을 갖추고 감각을 잘 다스리는 여성 수행자는 더 보탤 것 없이 감미롭고 기운을 북돋는 고요한 자리에 이를 것입니다.”

“Bhikkhunī sīlasampannā, indriyesu susaṁvutā; Adhigacche padaṁ santaṁ, asecanakamojav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8.1 시수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수빠짤라의 노래는 바른 행실을 갖추고 감각을 잘 다스리는 여성 수행자가 고요한 자리에 이를 것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 고요를 무엇을 더 섞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감미롭고 몸에 기운을 주는 음식에 빗댑니다. 이어서 마라가 다섯 하늘의 신들을 차례로 들며 전에 살던 곳에 마음을 두라고 권하고, 시수빠짤라가 이에 답합니다.

묵상

고요를 “감미롭고 기운을 북돋는” 맛에 견준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쉬고 난 뒤 오히려 기운이 돌아온 경험이 있나요? 지금 내게 고요는 어떤 모습인가요?

“서른세 신들과 야마의 신들, 기쁨의 신들, 창조를 즐기는 신들,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이 있습니다. 그대가 전에 살던 그런 곳에 마음을 두십시오.”

“Tāvatiṁsā ca yāmā ca, tusitā cāpi devatā; Nimmānaratino devā, ye devā vasavattino; Tattha cittaṁ paṇīdhehi, yattha te vusitaṁ pure”.

쿳다까 니까야 Thig 8.1 시수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라는 시수빠짤라에게 서른세 신들부터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까지, 다섯 하늘의 신들을 차례로 들며 전에 살던 그런 곳에 마음을 두라고 권합니다. 갈수록 높은 하늘을 내세워 마음을 그쪽으로 돌리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시수빠짤라가 같은 목록을 되받아 답합니다.

묵상

점점 더 화려해지는 제안을 들으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나요? 좋았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끌림을 느낀 적이 있나요? 추억을 소중히 하면서 지금 여기에 머무는 길을 떠올려 보세요.

“서른세 신들과 야마의 신들, 기쁨의 신들, 창조를 즐기는 신들, 남이 창조한 것을 지배하는 신들은…”

“Tāvatiṁsā ca yāmā ca, tusitā cāpi devatā; Nimmānaratino devā, ye devā vasavattino.

쿳다까 니까야 Thig 8.1 시수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수빠짤라는 마라가 든 다섯 하늘의 신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되받습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 그 신들도 떠돎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삶이 아무리 매혹적으로 들려도 그것 또한 조건 속에 있는지 살피는 대목입니다.

묵상

시수빠짤라는 마라가 한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 뒤에 반박했어요. 동의하지 않는 말을 들을 때, 나는 상대의 말을 정확히 옮길 수 있을 만큼 듣고 있나요? 반박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말을 그대로 되짚어 보면 무엇이 보이나요?

그들은 거듭거듭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옮겨 가며 내가 있다는 몸·자아(삿까야)에 매여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 채 태어남과 죽음 속을 떠돕니다.

Kālaṁ kālaṁ bhavābhavaṁ, sakkāyasmiṁ purakkhatā; Avītivattā sakkāyaṁ, jātimaraṇasārino.

쿳다까 니까야 Thig 8.1 시수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다섯 하늘의 신들도 삶에서 삶으로 옮겨 가며 내가 있다는 몸·자아(삿까야)에 매여 있고, 그것을 넘지 못해 태어남과 죽음 속을 떠돈다고 시수빠짤라는 말합니다. 이어서 시야를 온 세상이 불타고 흔들리는 모습으로 넓힙니다. 아무리 즐거운 하늘이라도 자아를 붙드는 한 태어남과 죽음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묵상

높은 하늘의 존재들도 태어남과 죽음 속을 떠돈다는 말을 어떻게 들으셨나요? 더 높은 자리를 바라는 마음과 덜 흔들리는 삶을 바라는 마음 중 지금 어느 쪽이 더 가까운가요?

온 세상이 불붙었고, 온 세상이 환히 타오릅니다. 온 세상이 활활 불타며, 온 세상이 뒤흔들립니다.

Sabbo ādīpito loko, sabbo loko padīpito; Sabbo pajjalito loko, sabbo loko pakampito.

쿳다까 니까야 Thig 8.1 시수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수빠짤라는 하늘들의 불안정을 온 세상으로 넓힙니다. 앞서 마라가 든 다섯 하늘도 이 온 세상 안에 있습니다. “온 세상이”를 네 번 되풀이하며 불붙고, 밝게 타오르고, 활활 타고, 뒤흔들린다고 말합니다. 다음 노래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묵상

“온 세상이”가 네 번 되풀이되며 불타고 흔들리는 장면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좋아 보이던 것이 오래가지 않았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지 돌아보세요.

흔들리지 않고 견줄 데 없으며 여느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가르침을 부처님이 일러 주셨습니다. 바로 그 가르침에서 내 마음은 기쁨을 누립니다.

Akampiyaṁ atuliyaṁ, aputhujjanasevitaṁ; Buddho dhammamadesesi, tattha me nirato mano.

쿳다까 니까야 Thig 8.1 시수빠짤라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불타고 흔들리는 온 세상에 맞서, 시수빠짤라는 부처님이 일러 주신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 가르침은 흔들리지 않고, 견줄 데 없으며, 여느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라는 앞서 전에 살던 곳에 마음을 두라고 권했지만, 시수빠짤라의 마음은 그 가르침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 시수빠짤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지내다 세 가지 앎을 얻고 마라를 물리쳤다고 말합니다.

묵상

마라는 즐거운 하늘에 마음을 두라고 권했고, 시수빠짤라는 흔들리지 않는 가르침에서 기쁨을 누린다고 답했어요. 요즘 내 마음은 주로 어디에 가 있나요? 상황이 흔들릴 때도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이 있다면 하나 떠올려 보세요.

62 왓다의 어머니 나이 든 여성 수행자의 게송 9구절

아들에게 집착 없이 수행하라고 이르고 서로의 해방을 확인하는 문답입니다.

“왓다여, 세상에서 그대를 얽어매는 것이 언제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들아, 거듭거듭 괴로움을 나누어 받는 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Mā su te vaḍḍha lokamhi, vanatho āhu kudācanaṁ; Mā puttaka punappunaṁ, ahu dukkhassa bhāgimā.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머니가 아들 왓다에게 건네는 첫 말입니다. 어머니는 왓다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아들아”라고 부르며, 세상에 얽매이지 않기를, 괴로움을 거듭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성자들의 행복을 들려줍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을 곁에 묶어 두려 하지 않고, 다시 태어남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말로 나옵니다.

묵상

“아들아, 거듭거듭”이라는 부름에는 애정과 절박함이 함께 들려요.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말이 통제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조언 대신 바람을 말하거나, 상대가 듣지 않을 권리도 남겨 둘 수 있을까요?

왓다여, 성자들은 참으로 행복하게 삽니다. 흔들리지 않고 의심을 끊었으며, 서늘해지고 잘 길들여져 흘러드는 것 없이 머뭅니다.

Sukhañhi vaḍḍha munayo, anejā chinnasaṁsayā; Sītibhūtā damappattā, viharanti anās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머니는 성자들의 행복을 이렇게 풉니다. 흔들리지 않고, 의심을 끊었고, 서늘해졌고, 잘 길들여졌고, 마음에 흘러드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 선견자들이 걸은 길을 아들에게 권합니다. 여기서 행복은 의심이 끊기고 마음의 열기가 식어 흔들림 없이 가라앉은 데서 옵니다.

묵상

“왓다여, 성자들은 참으로 행복하게 삽니다” 뒤로 흔들리지 않음과 서늘함이 행복의 모습으로 이어져요. 내가 아는 행복은 뜨거운 쪽에 가까운가요, 서늘한 쪽에 가까운가요? 어느 쪽인지 잘 모르겠다면 그대로 두고 지켜봐도 괜찮을까요?

“왓다여, 통찰을 얻고 괴로움을 끝내기 위하여, 그 선견자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도 더욱 닦으십시오.”

Tehānuciṇṇaṁ isībhi, maggaṁ dassanapattiyā; Dukkhassantakiriyāya, tvaṁ vaḍḍha anubrūhaya”.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성자들의 모습을 들려준 어머니가, 선견자들이 이미 걸은 길을 왓다에게 더 닦으라고 권합니다. 그 길은 통찰을 얻고 괴로움을 끝내기 위한 길입니다. 먼저 걸어간 이들이 있는 길이니, 이제 아들이 스스로 그 길을 더 닦아 가기를 어머니는 바랍니다. 이어서 아들이 어머니의 말에 실린 확신을 알아봅니다.

묵상

“그 선견자들이 걸어간 길”이라는 말에는 길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와, 그래도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몫이 함께 담겨 있어요. 내 삶에서 앞선 이들을 따라가도 되는 부분과 직접 걸어 확인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직 걸음을 떼지 않았다면, 그렇게 머물러 있는 지금은 어떤가요?

“어머니, 이 일에 관해 제게 참으로 확신에 차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께는 분명 어떤 얽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Visāradāva bhaṇasi, etamatthaṁ janetti me; Maññāmi nūna māmike, vanatho te na vijjati”.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머니의 권고를 들은 왓다가, 어머니가 이 일을 자신에게 확신에 차서 말한다는 것을 알아봅니다. 그 확신을 근거로 어머니 자신에게는 얽힘이 없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이어서 어머니가 직접 답합니다.

묵상

아들은 말의 내용과 함께 “확신에 차서”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알아봤어요.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나온 삶도 함께 살펴보나요? 확신에 찬 말과 그 사람의 삶이 서로 맞는지 천천히 지켜봐도 괜찮을까요?

“왓다여, 낮거나 높거나 중간인 어떤 조건 지어진 것에도 나에게는 아주 작은 얽힘도, 티끌만 한 얽힘도 없습니다.”

“Ye keci vaḍḍha saṅkhārā, hīnā ukkaṭṭhamajjhimā; Aṇūpi aṇumattopi, vanatho me na vijjati.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들의 짐작에 어머니는 조건 지어진 것을 낮은 것, 높은 것, 중간인 것으로 모두 짚고, 그 어디에도 티끌만큼의 얽힘이 없다고 답합니다. 이어서 그 까닭을 깊은 집중(자나)과 세 가지 앎으로 밝힙니다. 낮게 여기는 것에도, 높이 떠받드는 것에도, 그 사이의 평범한 것에도 어머니의 마음은 걸려 있지 않습니다.

묵상

“낮거나 높거나 중간인” 어떤 것에도 티끌만큼도 얽히지 않았다는 말은 범위가 넓어요. 내 마음은 낮게 여긴 것, 높이 떠받드는 것, 평범한 것 가운데 어디에 더 잘 걸리나요? 고치려 애쓰지 않고 한쪽만 알아차려 보세요.

“게으르지 않고 깊은 집중에 든 내게서 흘러드는 것은 모두 다했습니다. 세 가지 앎을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Sabbe me āsavā khīṇā, appamattassa jhāyato; 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머니가 자신에게 얽힘이 없는 까닭을 밝힙니다. 게으르지 않게 깊은 집중을 닦았고, 마음에 흘러드는 것이 모두 다했으며, 세 가지 앎을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아들이 그 말을 훌륭한 몰이채에 빗대어 노래합니다. 어머니의 확신은 꾸준히 집중을 닦아 스스로 얻은 앎에 뿌리를 둡니다.

묵상

“흘러드는 것은 모두 다했습니다”라는 선언 앞에 게으르지 않음과 깊은 집중이 놓여 있어요. 결과를 앞세우기보다 꾸준한 조건이 먼저 보이나요? 오늘 집중을 돕는 조건 하나를 마련해 보거나, 결과를 바라지 않고 잠깐 머무는 것으로 충분한지 살펴보세요.

“아, 어머니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몰이채로 나를 힘껏 일깨워 주셨습니다. 나를 가엾이 여겨 더없이 높은 목적을 담은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Uḷāraṁ vata me mātā, patodaṁ samavassari; Paramatthasañhitā gāthā, yathāpi anukampikā.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머니가 얽힘이 없음을 밝히자, 왓다는 그 권고를 자신을 일깨운 훌륭한 몰이채로, 그리고 연민에서 나온 더없이 높은 목적의 말로 받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말을 듣고 절박한 마음이 일었다고 말합니다. 날카로운 권고도 상대를 몰아세우려는 마음이 없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묵상

어머니의 말이 “훌륭한 몰이채”처럼 왓다를 일깨웠어요. 따뜻하면서도 분명하게 나를 깨워 준 말이 있었나요? 지금 내게 필요한 말은 어느 만큼의 세기인지 떠올려 보세요.

어머니의 그 말씀과 당부를 들은 뒤, 멍에에서 벗어난 안식에 이르려는 가르침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내게 일어났습니다.

Tassāhaṁ vacanaṁ sutvā, anusiṭṭhiṁ janettiyā; Dhammasaṁvegamāpādiṁ, yogakkhemassa patt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몰이채 같은 어머니의 권고를 들은 왓다에게, 가르침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멍에에서 벗어난 안식에 이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어서 그 마음이 밤낮으로 힘쓰는 데로 이어져 더없이 높은 평화를 직접 만났다고 전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을 풀려남 쪽으로 재촉했고, 그 말을 들은 아들에게 실천하려는 마음이 깨어났습니다.

묵상

“멍에에서 벗어난 안식”을 향한 절박감은 불안한 재촉과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내 어깨를 누르는 멍에가 있다면 무엇인지 떠올려 보세요. 혼자 내려놓기 어렵다면 누군가에게 짐을 나눠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는 힘씀에 몸을 맡기고 뜻을 굳게 세워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격려를 받은 끝에 더없이 높은 평화를 직접 만났습니다.”

Sohaṁ padhānapahitatto, rattindivamatandito; Mātarā codito santo, aphusiṁ santimutta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9.1 왓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안식을 향한 절박한 마음은 힘씀에 몸을 맡기고 뜻을 굳게 세우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왓다는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았고, 어머니의 격려를 받은 끝에 더없이 높은 평화를 직접 만났습니다. 사랑 어린 권고를 자기 꾸준한 노력으로 받아들여 괴로움을 넘어선 평화에 이르면서, 어머니와 아들의 문답은 함께 풀려난 모습으로 끝납니다.

묵상

“어머니의 격려를 받은 끝에” 평화를 만났다는 결말에서, 혼자 한 노력과 관계에서 받은 힘이 어떻게 포개지나요? 고마운 격려 하나를 기억하거나, 가족 관계가 어렵다면 가족 밖의 지지를 떠올려도 괜찮을까요?

6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끼사고따미의 게송 11구절

상실과 고된 삶을 지나 좋은 벗과 길을 만나 해방에 이른 일을 노래합니다.

“성자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좋은 벗과 사귀는 일을 칭찬하셨습니다. 좋은 벗과 가까이 지내면 어리석은 이조차 지혜로워집니다.”

“Kalyāṇamittatā muninā, lokaṁ ādissa vaṇṇitā; Kalyāṇamitte bhajamāno, api bālo paṇḍito assa.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끼사고따미의 게송이 시작되는 대목입니다. 성자이신 부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위해 좋은 벗과 사귀는 일을 칭찬하셨다고 말하고, 그런 벗과 가까이 지내면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워진다고 합니다. 전통 주석에 따르면 끼사고따미는 어린 아들이 죽자 슬픔에 넋을 잃었다가 부처님을 만나 수행자가 되었고, 스승 덕분에 깨달음에 이르렀음을 돌아보며 좋은 벗을 기리는 이 게송을 읊었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참된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 지혜로, 나아가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남으로 이어진다고 거듭 말합니다.

묵상

“어리석은 이조차 지혜로워집니다”라는 구절은 지혜가 사귐 속에서 자란다고 말해요. 내 생각을 맑게 해 주는 사람이나 글이 있나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지금 어떤 목소리를 곁에 두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수 있을까요?

참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이들에게 지혜가 자랍니다. 참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날 수 있습니다.

Bhajitabbā sappurisā, Paññā tathā vaḍḍhati bhajantānaṁ; Bhajamāno sappurise, Sabbehipi dukkhehi pamucceyya.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성자께서 좋은 벗을 칭찬하셨다고 한 데 이어, 끼사고따미는 참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이들에게 지혜가 자라고,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전통 주석은 참된 사람으로 부처님 같은 분을 들고, 모든 괴로움을 태어남을 비롯한 온갖 괴로움으로 풉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가 나옵니다.

묵상

지혜가 자라는 것과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는 것, 두 열매 가운데 지금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어느 쪽인가요? 새 인연을 만들기 어려운 때라면, 이미 믿는 사람에게 짧게 안부를 전해 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 괴로움과 그 괴로움이 일어남과 멎음, 그리고 여덟 갈래의 길(앗탕기까 막가), 곧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모두 알게 됩니다.”

Dukkhañca vijāneyya, Dukkhassa ca samudayaṁ nirodhaṁ; Aṭṭhaṅgikañca maggaṁ, Cattāripi ariyasaccāni”.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끼사고따미는 참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이가 무엇을 알게 되는지 말합니다. 그것은 괴로움, 괴로움이 일어남, 괴로움이 멎음, 그리고 여덟 갈래의 길입니다. 이 넷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입니다. 전통 주석은 이 게송이 좋은 벗에게 기대어 괴로움에서 풀려나는 길을 보여 준다고 풉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여성으로 사는 일은 괴롭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여성의 삶과 출산에 얽힌 괴로움을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묵상

괴로움에서 시작해 괴로움이 일어남과 멎음, 여덟 갈래의 길까지 네 가지가 함께 놓여 있어요. 네 가지 가운데 오늘 살펴볼 수 있을 만한 것은 어느 쪽인가요?

“여성으로 사는 일은 괴롭다고 길들일 만한 이들을 이끄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의 다른 아내와 함께 사는 것도 괴롭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아이를 한 번 낳고 나서…”

“Dukkho itthibhāvo, Akkhāto purisadammasārathinā; Sapattikampi hi dukkhaṁ, Appekaccā sakiṁ vijātāyo.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말한 끼사고따미가 여성의 삶으로 눈을 돌립니다. 길들일 만한 이들을 이끄시는 부처님께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괴롭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하고, 남편의 다른 아내와 함께 사는 것도 괴롭다고 덧붙입니다. 전통 주석은 여성으로 사는 괴로움으로 아이를 배는 일, 평생 남에게 매여 사는 처지 같은 것을 듭니다. 끝으로 아이를 한 번 낳은 어떤 여성들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들이 겪는 일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말합니다.

묵상

“여성으로 사는 일은 괴롭다”는 말씀은 여성의 몸과 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말해요. 내 고통이든 남의 고통이든,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 준 적이 있나요?

“…스스로 목을 베기까지 하고 여리게 자란 여성들은 독을 먹습니다. 어머니를 죽이는 태아를 뱃속에 품으면 어머니와 아이 둘 다 재앙을 겪습니다.”

Galake api kantanti, Sukhumāliniyo visāni khādanti; Janamārakamajjhagatā, Ubhopi byasanāni anubho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끼사고따미는 여성으로 사는 괴로움을 이어서 말합니다. 아이를 한 번 낳은 뒤 어떤 여성들은 스스로 목을 베고, 여리게 자란 여성들은 독을 먹는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죽이는 태아를 뱃속에 품으면 어머니와 아이 둘 다 재앙을 겪는다고도 말합니다. 전통 주석은 목을 베거나 독을 먹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렇게 한다고 풀고, 원문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뱃속에서 자리를 잘못 잡아 어머니의 목숨을 위협하는 태아로 풉니다. 게송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출산의 위험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어지는 게송부터는 ‘나’의 목소리로 한 여성이 겪은 일을 말합니다.

묵상

지금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혼자 있지 않고 가까운 사람이나 자살예방상담전화 109에 바로 연락할 수 있을까요?

“출산을 앞두고 길을 가던 나는 죽은 남편을 보았습니다. 내 집에 미처 이르지 못하고 길 위에서 아이를 낳은 뒤였습니다.”

“Upavijaññā gacchantī, addasāhaṁ patiṁ mataṁ; Panthamhi vijāyitvāna, appattāva sakaṁ ghar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여성으로 사는 괴로움을 말한 끼사고따미의 게송은 여기서 ‘나’의 목소리로 바뀝니다. 출산을 앞두고 길을 가다가 자기 집에 닿기도 전에 길 위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 뒤 죽은 남편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남편의 죽음과 출산이 한꺼번에 닥친 처지를 꾸밈없이 전합니다.

묵상

길 위에서 아이를 낳고 죽은 남편까지 보아야 했다는 대목에서, 한 사람에게 여러 고통이 한꺼번에 올 수 있음이 보여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곳이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두 아들이 죽었고 가엾게도 나는 길에서 남편마저 잃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는 한 장작더미 위에서 타고 있습니다.”

Dve puttā kālakatā, Patī ca panthe mato kapaṇikāya; Mātā pitā ca bhātā, Ḍayhanti ca ekacitakā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끼사고따미의 게송에서 ‘나’로 말하는 여성은 앞에서 출산이 가까운 몸으로 길을 가다 집에 닿기도 전에 길 위에서 아이를 낳았고 죽은 남편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두 아들이 죽었고, 남편도 길에서 죽었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는 한 장작더미 위에서 타고 있다고 말합니다. 죽은 이를 한 사람씩 세어 가며, 잇달아 닥친 상실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전합니다. 이 말에 이어 다른 화자가 그녀에게 답합니다.

묵상

두 아들과 남편,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를 한꺼번에 잃었다는 말은 읽기에 무거울 수 있어요. 이 슬픔을 다른 슬픔과 견주지 않고 한 사람이 겪은 일로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가족을 모두 잃은 가엾은 이여, 그대가 겪은 괴로움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대는 수많은 생, 수천 번의 생에 걸쳐 눈물을 흘려 왔습니다.”

“Khīṇakulīne kapaṇe, Anubhūtaṁ te dukhaṁ aparimāṇaṁ; Assū ca te pavattaṁ, Bahūni ca jātisahassāni.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쏟아 낸 여성에게 다른 화자가 건네는 말입니다. 가족을 모두 잃은 그녀의 괴로움은 헤아릴 수 없고, 그녀는 수많은 생, 수천 번의 생에 걸쳐 눈물을 흘려 왔다고 합니다. 지금의 상실을 작게 보지 않으면서, 그 눈물을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해 온 긴 시간 속에 놓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묘지에서 지낸 날들과 그 끝에 이른 곳을 말합니다.

묵상

“괴로움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고통의 크기를 재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요.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이유를 묻기보다 곁에 있어 줄 수 있을까요? 내가 위로를 받는 쪽이라면, 설명을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묘지 한가운데에서 지냈고 아들의 살이 먹히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가족을 잃고 모두에게 비난받고 남편마저 죽었지만 나는 죽음 없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Vasitā susānamajjhe, Athopi khāditāni puttamaṁsāni; Hatakulikā sabbagarahitā, Matapatikā amatamadhigacch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위로하는 말에 이어, ‘나’로 말하는 여성이 자신이 겪은 일을 모아 말하는 대목입니다. 묘지 한가운데에서 지낸 일, 아들의 살이 먹힌 일, 가족을 잃은 일, 모두에게 비난받은 일, 남편이 죽은 일을 차례로 든 뒤, 죽음 없는 곳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원문은 ‘남편이 죽은(마따빠띠까)’이라는 말 바로 뒤에 ‘죽음 없는 것(아마따)’을 붙여, 죽음과 죽음 없음을 한 줄에 나란히 놓습니다.

묵상

“죽음 없는 곳”이라는 말이 겪은 일을 지우지 않으면서 다른 방향을 여는 말로 들리는지 살펴볼까요? 읽다가 힘들어지면 잠시 읽기를 멈추고 지금 있는 곳이 안전한지 확인해 보세요.

나는 죽음 없는 곳으로 이끄는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아리야 앗탕기까 막가)을 닦았습니다.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몸소 이루었고 가르침의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Bhāvito me maggo, Ariyo aṭṭhaṅgiko amatagāmī; Nibbānaṁ sacchikataṁ, Dhammādāsaṁ avekkhiṁ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죽음 없는 곳에 이르렀다는 앞의 말을 이어 구체적으로 풀어 말하는 대목입니다. 죽음 없는 곳으로 이끄는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을 닦았고, 고요히 꺼짐을 몸소 이루었으며, 가르침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고 합니다. 세 가지 모두 이미 이루어 마친 일로 말합니다.

묵상

“가르침의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라는 말은 가르침에 자신을 비추어 있는 그대로 살펴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해요. 오늘 나를 탓하지도 꾸미지도 않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을까요?

“나는 화살을 뽑았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쳤습니다.” 마음이 풀려난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끼사고따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Ahamamhi kantasallā, Ohitabhārā katañhi karaṇīyaṁ; Kisā gotamī therī, Vimuttacittā imaṁ bhaṇ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10.1 끼사고따미 장로니의 게송

배경

끼사고따미의 게송 전체를 닫는 대목입니다. 화살을 뽑았고, 짐을 내려놓았고,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세 가지 말이 이어지고, 마지막 두 행은 이 모든 말을 마음이 풀려난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끼사고따미가 했다고 밝힙니다. 가슴에 박혀 있던 화살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의 목소리로 게송이 끝납니다.

묵상

화살을 뽑고, 짐을 내려놓고,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세 장면 가운데 지금 마음에 오래 머무는 것은 무엇인가요? 맡은 일을 모두 버리지 않고 짐 하나만 잠시 내려놓아 보거나, 다 마치지 못한 채 쉬어 가는 날을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을까요?

64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웃빨라완나의 게송 11구절

아름다움과 기적을 앞세운 마라의 위협에 두려움 없는 해방으로 답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어머니와 딸이면서도 한 남편을 둔 아내들이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놀랍고 소름 끼치는 절박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Ubho mātā ca dhītā ca, mayaṁ āsuṁ sapattiyo; Tassā me ahu saṁvego, abbhuto lomahaṁsano.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빨라완나는 나이 든 여성 수행자가 된 뒤 자신의 지난 일을 노래합니다. 노래는 어머니와 딸인 두 사람이 한 남편의 아내였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녀는 그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고, 그런 자신에게 놀랍고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절박한 마음이 일었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이 일이 가시 많은 감각적 욕망 속에서 벌어졌다고 돌아봅니다.

묵상

“어머니와 딸이면서도” 한 남편의 아내였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가족 이야기가 불편하면 이 대목은 그냥 지나가도 좋아요. 읽고 난 뒤 내 안에 남는 느낌을 잠시 살펴보세요.

더럽고 악취 나며 가시가 수없이 많은 감각적 욕망은 저주스럽습니다! 그 욕망 속에서 어머니와 딸인 우리가 한 남편의 아내들이 되었습니다.

Dhiratthu kāmā asucī, duggandhā bahukaṇṭakā; Yattha mātā ca dhītā ca, sabhariyā mayaṁ ah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빨라완나는 감각적 욕망을 더럽고 악취가 나며 가시가 수없이 많은 것이라고 꾸짖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인 두 사람이 한 남편의 아내가 된 일이 바로 그 욕망 속에서 벌어졌다고 다시 말합니다.

묵상

“가시가 수없이 많은 감각적 욕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끌리면서도 아픔이 따르는 일이 있다면, 그런 자신을 탓하지 않고 나를 지킬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감각적 욕망의 위험을 보고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전한 곳으로 보았습니다. 나는 라자가하에서 집을 떠나 집 없는 삶으로 나섰습니다.

Kāmesvādīnavaṁ disvā, nekkhammaṁ daṭṭhu khemato; Sā pabbajjiṁ rājagahe, agārasmānagāri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빨라완나는 감각적 욕망에서 위험을 보았고,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전한 곳으로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보고서 라자가하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묵상

“감각적 욕망의 위험을 보고” 집을 떠났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끌리는 것에서 위험을 알아보는 일과 실제로 거리를 두는 일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혼자서 거리를 두기 어렵게 느껴진다면 도움받을 방법이 있는지도 살펴보세요.

나는 지난 삶을 알고 하늘의 눈이 맑아졌습니다. 남의 마음을 아는 앎을 얻었고 하늘의 귀도 맑아졌습니다.

Pubbenivāsaṁ jānāmi, dibbacakkhu visodhitaṁ; Cetopariccañāṇañca, sotadhātu visodh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빨라완나는 수행자가 된 뒤 얻은 앎을 차례로 말합니다. 지난 삶을 아는 앎, 하늘의 눈, 남의 마음을 아는 앎, 하늘의 귀 네 가지입니다. 뒤에서 나머지 둘이 더해져 여섯 가지 높은 앎이 됩니다.

묵상

네 가지 가운데 “남의 마음을 아는 앎”이 눈에 들어온다면, 일상에서 상대 마음을 짐작하는 일과 귀 기울여 듣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상대 마음을 안다고 여겨질 때 한번 직접 물어보거나, 묻기 어렵다면 모르는 채로 두어 보세요.

신통도 몸소 얻었고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여섯 가지 높은 앎을 몸소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Iddhīpi me sacchikatā, patto me āsavakkhayo; Chaḷabhiññā sacchika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빨라완나는 앞에서 말한 지난 삶을 아는 앎, 하늘의 눈, 남의 마음을 아는 앎, 하늘의 귀에 이어 신통도 몸소 얻었고, 마음에 흘러드는 것이 다하는 데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 높은 앎을 몸소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선언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녀는 신통으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만들어 냅니다.

묵상

“여섯 가지 높은 앎”을 몸소 얻었다는 말을 나와 견주지 않고 한 수행자의 증언으로 들으면 어떤가요? 성취 목록에서 잠시 눈을 떼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해가 무엇인지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나는 신통으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결같고 세상의 보호자이신 부처님의 두 발에 절했습니다.”

Iddhiyā abhinimmitvā, caturassaṁ rathaṁ ahaṁ; Buddhassa pāde vanditvā, lokanāthassa tādino”.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배경

웃빨라완나는 신통으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만들어 냈고, 한결같은 분이며 세상의 보호자이신 부처님의 두 발에 절했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수행을 방해하는 마라가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묵상

신통으로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만든 뒤에 웃빨라완나가 한 일은 절이었어요. 내가 해낸 일을 떠올릴 때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나 가르침이 있나요? 있다면 마음속으로라도 한번 인사를 건네 보세요.

“꽃이 활짝 핀 사라나무에 다가가 너는 나무 아래 혼자 서 있구나. 곁에는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어리석은 여자야, 불량한 자들이 두렵지 않으냐?”

“Supupphitaggaṁ upagamma pādapaṁ, Ekā tuvaṁ tiṭṭhasi sālamūle; Na cāpi te dutiyo atthi koci, Bāle na tvaṁ bhāyasi dhuttakā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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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웃빨라완나는 신통으로 수레를 만들어 부처님 발에 절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게송에서는 수행을 방해하는 마라가 그녀에게 말을 겁니다. 꽃이 활짝 핀 사라나무 밑에 혼자 서 있고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들추며, 그녀를 어리석은 여자라고 부르고 불량한 자들이 두렵지 않으냐고 묻습니다. 혼자 있는 여성의 처지를 들어 겁을 주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녀가 이 물음에 답합니다.

묵상

꽃 핀 사라나무 아래에 혼자 서 있는 모습과 “불량한 자들이 두렵지 않으냐?”라는 말이 한 장면에 겹쳐 있어요. 혼자 있을 때 두려움을 심으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실제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자리라면 나는 어디서, 누구에게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불량한 자들이 십만 명이나 떼 지어 온다 해도, 나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떨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라여, 그대 혼자서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Sataṁ sahassānipi dhuttakānaṁ, Samāgatā edisakā bhaveyyuṁ; Lomaṁ na iñje napi sampavedhe, Kiṁ me tuvaṁ māra karissaseko.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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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아무도 없는데 불량한 자들이 두렵지 않으냐는 마라의 말에 웃빨라완나가 답합니다. 이와 같은 불량한 자들이 십만 명이나 떼 지어 와도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떨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라가 그녀를 두고 ‘혼자’라고 한 말을 되돌려, 마라 혼자서 그녀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습니다. 위협하는 쪽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묵상

“십만 명”이 와도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겠다는 말에서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느껴져요. 두려움 앞에서 내 마음이 버텨 준 때가 있었다면, 그때 무엇이 나를 붙들어 주었나요?

나는 여기서 사라질 수도 있고 그대의 배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대의 두 눈썹 사이에 서 있어도 그대는 서 있는 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Esā antaradhāyāmi, kucchiṁ vā pavisāmi te; Bhamukantare tiṭṭhāmi, tiṭṭhantiṁ maṁ na dakkh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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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 명이 와도 두렵지 않다고 한 웃빨라완나가 이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라질 수도 있고, 마라의 배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며, 두 눈썹 사이에 서 있어도 마라는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힘이 어디서 왔는지는 이어지는 게송에서 밝힙니다.

묵상

“그대의 두 눈썹 사이”에 서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말은 보는 쪽의 한계를 드러내요. 눈앞에 있는데도 놓치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사실이 내게도 있나요? 한 번 더 천천히 살펴보면 무엇이 보일까요?

나는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고 신통의 바탕들을 잘 닦았습니다. 여섯 가지 높은 앎을 몸소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Cittamhi vasībhūtāhaṁ, iddhipādā subhāvitā; Chaḷabhiññā sacchika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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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앞에서 사라질 수도, 두 눈썹 사이에 설 수도 있다고 한 웃빨라완나가 그 힘의 바탕을 밝힙니다.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고, 신통의 바탕들을 잘 닦았고, 여섯 가지 높은 앎을 몸소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 여섯 가지 높은 앎은 앞에서 그녀가 꼽은 지난 삶을 아는 앎, 하늘의 눈, 남의 마음을 아는 앎, 하늘의 귀, 신통, 흘러드는 것이 다했음을 아는 앎입니다. 마라에게 말한 신통도 이렇게 잘 닦은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묵상

“마음을 뜻대로 다스리고”라는 말은 잘 닦은 끝에 이른 자리를 가리켜요. 요즘 내 마음이 어디로 자주 끌려가는지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서두르지 않고 지금 그대로의 마음을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요?

감각적 욕망은 칼이나 창과 같고 무더기들은 그 칼날이 내리치는 도마입니다. 그대가 ‘욕망의 즐거움’이라 부르는 것은 이제 나에게 즐거움이 아닙니다.

Sattisūlūpamā kāmā, khandhāsaṁ adhikuṭṭanā; Yaṁ tvaṁ ‘kāmaratiṁ’ brūsi, ‘āratī’ dāni sā mama.

쿳다까 니까야 Thig 11.1 웃빨라완나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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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빨라완나는 감각적 욕망을 칼과 창에, 몸과 마음을 이루는 무더기들을 그 칼날이 내리치는 도마에 견줍니다. 마라가 ‘욕망의 즐거움’이라 부르는 것을 이제 자신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녀는 마라가 졌다고 선언합니다. 이 게송과 이어지는 게송은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셀라와 케마의 게송에도 나옵니다.

묵상

상대가 즐거움이라 부르는 것을 “이제 나에게 즐거움이 아닙니다”라고 자기 경험으로 말하는 힘이 보여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 내게는 다르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그 말을 꺼내기 어려운 자리라면 나는 어떻게 내 선을 지킬 수 있을까요?

65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뿐니까의 게송 16구절

물로 죄를 씻는다는 브라흐마나의 믿음을 논박하고 귀의와 계율로 이끕니다.

“나는 물을 나르는 종이었습니다. 추운 날에도 늘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들의 매질이 두려웠고 꾸지람과 화풀이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Udahārī ahaṁ sīte, sadā udakamotariṁ; Ayyānaṁ daṇḍabhayabhītā, vācādosabhayaṭṭ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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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니까는 자신이 물을 나르는 종이었다고 밝힙니다. 추운 날에도 늘 물속에 들어간 까닭은 주인들의 매질이 무서웠고, 꾸지람과 화풀이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 처지를 먼저 말한 뒤, 뿐니까는 떨면서 물에 들어가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에게 무엇이 두려운지 묻습니다.

묵상

“주인들의 매질이 두려웠고” 추운 날에도 물속에 들어가야 했다는 말에는, 원하지 않는 일을 두려움 때문에 되풀이해야 했던 사정이 담겨 있어요. 나에게도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해 온 일이 있나요? 그런 일이 있다면 자세히 말하지 않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보면 어떨까요?

“브라흐마나여, 그대는 무엇이 두려워 늘 물속으로 들어갑니까? 팔다리를 벌벌 떨며 매서운 추위를 겪으면서도 말입니다.”

Kassa brāhmaṇa tvaṁ bhīto, sadā udakamotari; Vedhamānehi gattehi, sītaṁ vedayase bhus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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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에 팔다리를 떨면서도 늘 물속에 들어가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있습니다. 뿐니까는 그에게 무엇이 두려워 그렇게 하는지 묻습니다. 뿐니까 자신은 주인들의 매질과 꾸지람이 두려워 추운 날에도 찬물에 들어가야 했던 사람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브라흐마나는 유익한 행위를 하며 이미 저지른 악을 막고 있다고 답합니다.

묵상

뿐니까는 “무엇이 두려워” 늘 물속으로 들어가는지 먼저 물어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았을 때, 곧바로 판단하기보다 그 뒤에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나요? 내가 되풀이하는 일에도 그런 두려움이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면 어떨까요?

“뿐니까 아가씨, 그대는 이미 알면서도 나에게 자세히 묻습니다. 나는 유익한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미 저지른 악을 막고 있습니다.”

“Jānantī vata maṁ bhoti, puṇṇike paripucchasi; Karontaṁ kusalaṁ kammaṁ, rundhantaṁ katapāpak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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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뿐니까가 이미 알면서 묻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물에 들어가 유익한 행위를 하고 있고, 이미 저지른 악을 막는 중이라고 답합니다. 그는 찬물에 들어가는 일이 지나간 잘못의 결과를 씻어 낸다고 믿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는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악한 행위를 저질렀어도 물로 씻으면 그 행위에서 풀려난다고 말을 잇습니다.

묵상

“이미 저지른 악을 막고 있습니다”라는 말에는 지금의 목욕으로 지나간 일을 지우려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후회가 들 때 나도 빨리 씻어 낼 방법부터 찾게 되나요? 그럴 때 내가 질 수 있는 책임 한 가지를 떠올려 보거나, 아직 마주할 힘이 없으면 도움부터 구해 보세요.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악한 행위를 저질렀더라도, 물로 몸을 씻으면 그 악한 행위에서 풀려납니다.”

Yo ca vuḍḍho daharo vā, pāpakammaṁ pakubbati; Dakābhisecanā sopi, pāpakammā pamuccati”.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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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든 악한 행위를 한 뒤 물로 씻으면 그 행위에서 풀려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자신이 물에 들어가는 까닭을 밝힌 그는, 여기서 같은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넓힙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뿐니까는 그 말을 누가 해 주었는지 캐묻고, 그 말이 정말 맞는지 끝까지 따져 봅니다.

묵상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물로 씻기만 하면 악한 행위에서 풀려난다는 말은 간단해서 솔깃하게 들려요. 너무 쉬운 해결책이 정작 해야 할 일을 건너뛰게 하지는 않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그럴듯한 말을 들으면 받아들이기 전에 근거를 한 번 더 물어보면 어떨까요?

“알지 못하는 그대에게 역시 알지 못하는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까? ‘물로 몸을 씻으면 악한 행위에서 풀려난다’ 하고 말입니다.”

“Ko nu te idamakkhāsi, ajānantassa ajānako; Dakābhisecanā nāma, pāpakammā pamuccati.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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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물로 몸을 씻으면 악한 행위에서 풀려난다고 말했습니다. 뿐니까는 전해 들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해 준 사람도, 그 말을 들은 브라흐마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묻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그 말대로라면 물속에 사는 생물도 모두 하늘 세계에 가겠다고 되묻습니다.

묵상

“알지 못하는 그대에게 역시 알지 못하는 누가”라는 물음은 전해 들은 말의 출처를 따져 보게 해요. 내가 반복하는 믿음 하나가 어디서 왔는지 확인해 볼까요? 출처를 찾지 못하면 사실이라 단정하지 않고 보류해도 될까요?

그렇다면 개구리와 거북, 나가와 악어, 그 밖에 물에서 사는 모든 생물이 다 하늘 세계에 가지 않겠습니까?

Saggaṁ nūna gamissanti, sabbe maṇḍūkakacchapā; Nāgā ca susumārā ca, ye caññe udake carā.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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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니까는 물이 악을 씻는다는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봅니다. 그렇다면 개구리, 거북, 나가(물에 산다고 여긴 뱀 모양의 신령한 존재), 악어, 그 밖에 물에서 사는 모든 생물이 하늘 세계에 가야 합니다. 늘 물속에 사는 동물이 그 덕분에 하늘 세계에 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는 같은 논리를 양과 돼지를 잡는 이, 어부, 사냥꾼, 도둑, 사형 집행인에게도 적용해 봅니다.

묵상

개구리와 거북과 나가와 악어까지 “다 하늘 세계에 가지 않겠습니까?”라는 되물음은 믿음의 허점을 또렷하게 드러내요. 내가 믿는 원칙을 다른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해 본 적이 있나요? 맞지 않는 곳이 보인다면, 부끄러워하기보다 생각을 고쳐 볼 여지를 남겨 두면 어떨까요?

양을 잡는 이와 돼지를 잡는 이, 어부와 사냥꾼, 도둑과 사형 집행인, 그 밖에 악한 행위를 하는 이들도 물로 몸을 씻기만 하면 악한 행위에서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Orabbhikā sūkarikā, macchikā migabandhakā; Corā ca vajjhaghātā ca, ye caññe pāpakammino; Dakābhisecanā tepi, pāpakammā pamuccare.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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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물속 생물을 예로 든 뿐니까는 이번에는 양을 잡는 이, 돼지를 잡는 이, 어부, 사냥꾼, 도둑, 사형 집행인과 그 밖에 악한 행위를 하는 이들을 늘어놓습니다. 물로 씻기만 하면 악한 행위에서 풀려난다는 말이 맞다면,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이들도 물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 모두 풀려나야 합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 뿐니까는 강물이 악을 실어 간다면 복도 함께 실어 갈 것이라고 짚습니다.

묵상

양을 잡는 이부터 사형 집행인까지 “물로 몸을 씻기만 하면” 풀려난다면, 무슨 일을 하든 그 결과는 남지 않는 셈이에요. 잘못을 바로잡는 일 없이 사과나 다짐만으로 마음을 씻으려 한 적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만일 이 강들이 그대가 전에 저지른 악을 실어 갔다면, 그대의 복도 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그 복마저 잃게 됩니다.

Sace imā nadiyo te, pāpaṁ pubbe kataṁ vahuṁ; Puññampimā vaheyyuṁ te, tena tvaṁ paribāhiro.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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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니까는 강물이 지난날의 악을 실어 간다는 전제를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렇다면 그 강물은 복도 함께 실어 가서,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자신이 쌓은 복까지 잃게 됩니다. 물은 악만 골라 실어 가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 뿐니까는 물에 들어가는 대신, 두려워하는 바로 그 일인 악한 행위를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묵상

“그대의 복도 실어 갔을 것입니다”라는 말은 물이 나쁜 것만 골라 실어 간다는 믿음을 되짚게 해요.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원칙을 적용할 때가 있나요? 그런 때가 떠오른다면 자신을 몰아세우기보다, 그 원칙을 반대쪽에도 똑같이 대어 보면 어떨까요?

“브라흐마나여, 그대를 두렵게 하여 늘 물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그 일, 브라흐마나여, 바로 그 일을 하지 마십시오. 추위가 그대의 살갗을 해치게 하지 마십시오.”

Yassa brāhmaṇa tvaṁ bhīto, sadā udakamotari; Tameva brahme mā kāsi, mā te sītaṁ chaviṁ hane”.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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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니까는 물로 씻어서는 악한 행위에서 풀려나지 않는다고 따진 뒤,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에게 권합니다. 그를 두렵게 하여 늘 물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바로 그 일을 하지 말고, 추위에 살갗이 상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브라흐마나는 앞에서 이미 저지른 악을 막으려고 물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뿐니까는 두려움을 낳는 행위 자체를 하지 말라고 먼저 말하고, 몸을 아끼라는 당부를 덧붙입니다. 이어서 브라흐마나는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묵상

“바로 그 일을 하지 마십시오”와 “추위가 그대의 살갗을 해치게 하지 마십시오”가 한 게송에 함께 있어요. 내가 두려워서 되풀이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잘못을 돌아보면서도 나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는 길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었는데 그대가 나를 거룩한 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아가씨, 물로 씻을 때 쓰던 이 옷을 그대에게 드리겠습니다.”

“Kummaggapaṭipannaṁ maṁ, ariyamaggaṁ samānayi; Dakābhisecanā bhoti, imaṁ sāṭaṁ dadāmi te”.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었고 뿐니까가 거룩한 길로 이끌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물로 씻는 의례에 쓰던 옷을 고마운 뜻으로 내밉니다. 추운 날에도 늘 물에 들어가던 그가 바로 그 의례의 옷을 내놓는 장면입니다. 뿐니까는 이어서 그 옷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묵상

“거룩한 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라고 말한 뒤 옷을 건네는 장면이에요.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 고마울 때,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하나요? 선물이나 인사 외에 떠오르는 방법이 있나요?

“그 옷은 그대가 가지십시오. 나는 그 옷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괴로움을 두려워한다면, 괴로움이 그대에게 달갑지 않다면…”

“Tuyheva sāṭako hotu, nāhamicchāmi sāṭakaṁ; Sace bhāyasi dukkhassa, sace te dukkhamappi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뿐니까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내민 옷을 그대로 가지라고 하며, 자신은 그 옷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괴로움 이야기로 말을 돌려 조건을 붙입니다. 괴로움을 두려워한다면, 괴로움이 달갑지 않다면, 하는 말로 다음 당부를 준비합니다. 그 조건에서 무엇이 뒤따르는지는 이어지는 게송에서 나옵니다.

묵상

“나는 그 옷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뿐니까는 곧바로 상대의 괴로움으로 이야기를 돌려요. 누군가를 도울 때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나요? 고맙다는 인사나 선물보다 그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더 바랐던 때가 있었나요?

드러난 곳에서든 남모르는 곳에서든 악한 행위를 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악한 행위를 하거나 지금 하고 있다면,

Mākāsi pāpakaṁ kammaṁ, āvi vā yadi vā raho; Sace ca pāpakaṁ kammaṁ, karissasi karosi vā.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뿐니까는 괴로움이 두렵고 달갑지 않다면 악한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드러난 곳에서든 남모르는 곳에서든 마찬가지라고 하여, 남이 보든 보지 않든 같은 기준을 둡니다. 그다음 앞으로 악한 행위를 할 경우와 지금 하고 있는 경우를 함께 들어 조건을 세웁니다. 그 조건에 따르는 결과는 이어지는 노래에서 말합니다.

묵상

“드러난 곳에서든 남모르는 곳에서든”이라는 말이 남의 눈과 상관없는 기준을 떠올리게 해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지키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 하나만 고른다면 어떤 행동을 삼가고 싶나요?

날아올라 달아나더라도 그대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대가 괴로움을 두려워한다면, 괴로움이 그대에게 달갑지 않다면,

Na te dukkhā pamutyatthi, upeccāpi palāyato; Sace bhāyasi dukkhassa, sace te dukkhamappi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으로 악한 행위를 하거나 지금 하고 있다면, 날아올라 달아나더라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뿐니까는 말합니다. 그리고 ‘괴로움이 두렵고 달갑지 않다면’이라는 조건을 한 번 더 되풀이합니다. 멀리 달아난다고 행위의 결과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는 이어지는 노래에서 나옵니다.

묵상

“날아올라 달아나더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마음에 남아요. 요즘 피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가운데 안전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이 있을까요?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도움을 청해도 괜찮을까요?

“한결같은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의지처로 삼으십시오. 계(바른 행실)를 받아 지키십시오. 그것이 그대에게 이로울 것입니다.”

Upehi saraṇaṁ buddhaṁ, dhammaṁ saṅghañca tādinaṁ; Samādiyāhi sīlāni, taṁ te atthāya hehiti”.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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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니까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에게, 괴로움이 두렵고 달갑지 않다면 두 가지를 하라고 권합니다. 한결같은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처로 삼고, 바른 행실의 약속인 계를 받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맺습니다. 물로 씻는 의례 대신 의지할 곳과 지킬 행실을 권하는 말입니다. 이어서 브라흐마나가 같은 말을 자기 입으로 되풀이합니다.

묵상

의지처를 권한 뒤에 “계(바른 행실)를 받아 지키십시오”라는 말이 이어져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요즘 어떤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나요? 아직 약속하기 어렵다면, 작은 것 하나부터 해 봐도 될까요?

“한결같은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의지처로 삼겠습니다. 계(바른 행실)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이로울 것입니다.”

“Upemi saraṇaṁ buddhaṁ, dhammaṁ saṅghañca tādinaṁ; Samādiyāmi sīlāni, taṁ me atthāya hehiti.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뿐니까가 권한 말을 자기 말로 바꾸어 되풀이합니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처로 삼고 계를 받아 지키겠다고 하며, 그것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이 권한 것을 자기 결심으로 삼는 순간입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밝힙니다.

묵상

브라흐마나는 권유받은 말을 자기 말로 바꾸어 “그것이 나에게 이로울 것입니다”라고 맺어요. 좋은 조언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을 내 말로 다시 말해 보나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남겨 두어도 괜찮을까요?

“예전에 나는 혈통으로만 브라흐마나였지만 오늘 나는 참된 브라흐마나입니다. 세 가지 앎을 지니고 지혜를 갖추었으며, 배움이 깊은 이, 씻은 이입니다.”

Brahmabandhu pure āsiṁ, ajjamhi saccabrāhmaṇo; Tevijjo vedasampanno, sottiyo camhi nhātako”ti.

쿳다까 니까야 Thig 12.1 뿐니까 장로니의 게송

배경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은 예전에는 혈통으로만 브라흐마나였지만 오늘은 참된 브라흐마나라고 말합니다. 세 가지 앎(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하늘의 눈·흘러드는 것이 다했음을 아는 앎)을 지니고 지혜를 갖추었다고 하며, 자신을 배움이 깊은 이, 씻은 이라고 부릅니다. ‘씻은 이’는 브라흐마나 전통에서 배움을 마치고 의례의 목욕을 치른 사람을 부르던 호칭입니다. 늘 강물에 들어가던 그가 이 호칭들을 앎과 마음을 씻는 일에 붙여 다시 풀이하면서, 물 목욕을 둘러싼 문답이 끝납니다. 이 게송으로 뿐니까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묵상

브라흐마나는 예전의 자신을 “혈통으로만” 브라흐마나였다고 말하고, 오늘의 자신을 참된 브라흐마나라고 불러요. 태어나면서 받았거나 남이 붙여 준 이름표 가운데 다시 살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지금의 나를 부른다면 어떤 이름이 마음에 드나요?

66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암바빨리의 게송 19구절

젊음과 늙음을 몸의 각 부분마다 대조하며 진실한 말씀을 확인합니다.

내 머리카락은 벌처럼 검고 끝이 곱슬곱슬했습니다. 이제 늙어 삼 껍질처럼 되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Kāḷakā bhamaravaṇṇasādisā, Vellitaggā mama muddhajā ahuṁ; Te jarāya sāṇavākasādis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암바빨리는 머리카락부터 차례로 몸의 변화를 짚어 갑니다. 벌처럼 검고 끝이 곱슬곱슬하던 머리카락이 늙어 삼 껍질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지난날의 아름다움을 부인하지 않고, 그 아름다움도 늙음을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몸의 한 부분에서 차분히 봅니다. 마지막 줄은 진실을 말한 분, 곧 부처님의 말씀이 틀림없다는 확인이며, 이어지는 게송마다 같은 말로 되풀이됩니다.

묵상

벌처럼 검던 머리카락과 늙어 삼 껍질처럼 된 머리카락 가운데 어느 모습이 더 오래 마음에 남나요? 내 몸에서 달라진 것 하나를 떠올린다면, 그것을 살아온 시간의 흔적으로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볼까요?

꽃을 가득 꽂은 내 머리는 향 상자처럼 향기로웠습니다. 이제 늙어 개털 냄새가 나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Vāsitova surabhī karaṇḍako, Pupphapūra mama uttamaṅgajo; Taṁ jarāyatha salomagandhika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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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게송은 머리 모양에서 냄새로 눈길을 옮깁니다. 꽃을 가득 꽂아 향 상자처럼 향기롭던 머리에서 늙어 개털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향기로 꾸미던 몸도 늘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마지막 줄은 게송마다 되풀이되는 말로,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이 틀림없다고 확인합니다.

묵상

꽃을 가득 꽂은 머리의 향기와 늙어 풍기는 개털 냄새를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으로 함께 볼 수 있을까요? 냄새 이야기가 부담스러우면 꽃이 꽂힌 머리 모습만 떠올려도 좋아요. 좋은 냄새만 나다운 것으로 여기고 불편한 냄새는 밀어낸 적이 있다면, 그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볼까요?

내 머리카락은 잘 심은 숲처럼 빽빽했고 빗과 핀으로 끝을 가지런히 매만져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여기저기 성기게 되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Kānanaṁva sahitaṁ suropitaṁ, Kocchasūcivicitaggasobhitaṁ; Taṁ jarāya viralaṁ tahiṁ tahi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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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게송은 잘 심은 숲처럼 빽빽하고 빗과 핀으로 매만져 빛나던 머리카락이 늙어 여기저기 성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정성껏 가꾼 모습도 세월 따라 달라집니다. 암바빨리는 이 변화를 있는 그대로 적고, 거기서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이 틀림없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잘 심은 숲처럼 빽빽하던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성기게 되었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서운함은 그대로 두고, 달라진 나를 아끼는 마음도 함께 지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볼까요?

내 머리는 검은 머리채에 금빛 장식을 달고 곱게 땋아 꾸며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머리가 벗어졌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Kaṇhakhandhakasuvaṇṇamaṇḍitaṁ, Sobhate suveṇīhilaṅkataṁ; Taṁ jarāya khalitaṁ siraṁ kata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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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게송은 검은 머리채에 금빛 장식을 하고 곱게 땋아 꾸미던 지난날을, 늙어 머리가 벗어진 지금과 맞댑니다. 장식이 만들던 아름다움과 몸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함께 바라보며, 어느 한 모습도 변하지 않는 나로 붙들지 않습니다.

묵상

금빛 장식과 땋은 머리가 사라진 뒤에도 한 사람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꾸미는 기쁨은 그대로 두고, 꾸밀 수 없는 날의 나도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까요?

내 눈썹은 화가가 잘 그린 선처럼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주름지고 처졌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Cittakārasukatāva lekhikā, Sobhare su bhamukā pure mama; Tā jarāya valibhippalambit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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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얼굴로 내려온 다섯 번째 게송은 화가가 잘 그린 선처럼 곱던 눈썹이 늙어 주름지고 처졌다고 말합니다. 암바빨리는 얼굴의 작은 선 하나도 그대로 있지 않음을 보고, 그 변화에서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을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화가가 잘 그린 선 같던 눈썹과 주름지고 처진 눈썹을 모두 내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얼굴의 한 부분을 보고 나 전체를 평가했던 순간이 있다면, 그 판단을 조금 넓혀 볼까요?

내 눈은 보석처럼 밝고 아름다웠으며 길고 짙푸르렀습니다. 이제 늙음에 상해 더는 빛나지 않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Bhassarā surucirā yathā maṇī, Nettahesumabhinīlamāyatā; Te jarāyabhihatā na sobhare,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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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게송은 보석처럼 밝고 길며 짙푸르던 눈이 늙음에 상해 더는 빛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마주할 때 먼저 닿는 눈빛도 세월을 비켜 가지 못하고, 암바빨리는 그 변화에서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을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보석처럼 밝던 눈이 늙음에 상해 더는 빛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오늘 눈으로 만날 수 있는 색 하나나 사람의 표정 하나를 천천히 바라보면 어떨까요? 시각에 어려움이 있다면 손끝이나 소리로 만나는 것 하나를 골라 보세요.

내 코는 매끈하고 높은 봉우리 같아 한창 젊을 때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말라 쭈그러든 듯하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Saṇhatuṅgasadisī ca nāsikā, Sobhate su abhiyobbanaṁ pati; Sā jarāya upakūlitā viya,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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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게송은 한창 젊을 때 매끈하고 높은 봉우리 같던 코가 늙어 말라 쭈그러든 듯하다고 말합니다. 우뚝하던 코도 쭈그러든 코도 같은 몸이 지나온 때의 모습입니다. 암바빨리는 그 변화에서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을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높은 봉우리 같던 코와 말라 쭈그러든 코를 한 몸이 지나온 서로 다른 때로 볼 수 있을까요? 나이 든 얼굴을 두고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들은 적이 있다면, 그 말이 마음에 어떻게 남았는지 살펴볼까요? 다음에 비슷한 말이 떠오를 때는 다른 말을 골라 보세요.

내 귓불은 잘 만들어 곱게 다듬은 팔찌처럼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주름지고 처졌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Kaṅkaṇaṁva sukataṁ suniṭṭhitaṁ, Sobhare su mama kaṇṇapāḷiyo; Tā jarāya valibhippalambit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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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게송은 코에서 귓불로 옮겨 갑니다. 잘 만들어 곱게 다듬은 팔찌처럼 아름답던 귓불이 늙어 주름지고 처졌다고 말합니다. 공들여 다듬은 장신구에 견주던 몸도 세월 따라 달라지고, 암바빨리는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적습니다.

묵상

잘 다듬은 팔찌 같던 귓불이 주름지고 처졌다는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달라진 모습을 숨기느라 지친 부분이 있다면, 오늘만큼은 손보지 않고 두어도 될지 생각해 볼까요?

내 치아는 빳딸리 꽃봉오리 빛깔을 닮아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부러지고 누렇게 되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Pattalīmakulavaṇṇasādisā, Sobhare su dantā pure mama; Te jarāya khaṇḍitā cāsit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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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게송은 빳딸리 꽃봉오리 빛깔을 닮아 곱게 빛나던 치아가 늙어 부러지고 누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먹고 말하는 데 쓰는 치아도 세월을 비켜 가지 못합니다. 암바빨리는 부러진 것과 빛깔이 바랜 것을 함께 적고, 그 변화에서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을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꽃봉오리 빛깔 같던 치아가 부러지고 누렇게 변했다는 말에서 어떤 마음이 드나요? 돌봄이 필요한데 미뤄 둔 일이 있다면, 도움받을 방법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병원 이야기가 부담스러우면 오늘 편히 먹을 수 있는 음식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숲속을 돌아다니는 뻐꾸기처럼 나는 달콤한 소리로 노래했습니다. 이제 늙어 목소리가 곳곳에서 갈라지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Kānanamhi vanasaṇḍacārinī, Kokilāva madhuraṁ nikūjihaṁ; Taṁ jarāya khalitaṁ tahiṁ tahi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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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게송은 모습에서 소리로 옮겨 갑니다. 숲을 다니는 뻐꾸기처럼 달콤하던 노래가 늙어 곳곳에서 갈라진다고 말합니다. 겉모습에 이어 목소리도 세월 따라 달라지고, 암바빨리는 그 변화에서도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을 확인합니다.

묵상

뻐꾸기처럼 달콤하던 노래가 늙어 곳곳에서 갈라진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의 목소리가 떠오르나요? 말하기 어려운 날에는 침묵도 하나의 표현이에요. 내 목소리가 뜻대로 나오지 않았던 순간을 다정하게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내 목은 잘 닦은 소라처럼 매끄럽고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꺾이고 굽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Saṇhakamburiva suppamajjitā, Sobhate su gīvā pure mama; Sā jarāya bhaggā vināmit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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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게송은 목을 이야기합니다. 암바빨리는 잘 닦은 소라처럼 매끄럽던 목이 이제 늙어 꺾이고 굽었다고 말합니다. 예전의 목과 지금의 목을 나란히 놓고, 늙은 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마지막 줄은 게송마다 되풀이되는 말로, 진실을 말한 분, 곧 부처님의 말씀이 틀림없다고 확인합니다.

묵상

곧게 선 자세만 좋은 자세라고 배워 온 적이 있나요? 지금 내 목과 어깨에는 어떤 받침이 필요한지 가만히 느껴 볼 수 있을까요?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날이라면 베개나 따뜻한 수건처럼 밖에서 보탤 수 있는 편안함을 찾아보세요.

내 두 팔은 둥근 빗장처럼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빠딸리 나무처럼 주름져 처졌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Vaṭṭapalighasadisopamā ubho, Sobhare su bāhā pure mama; Tā jarāya yatha pāṭalibbalit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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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게송은 팔을 이야기합니다. 암바빨리는 둥근 빗장처럼 아름답던 두 팔이 이제 늙어 빠딸리 나무처럼 주름지고 처졌다고 말합니다. 달라진 팔을 꾸밈없이 그대로 말하고, 게송마다 되풀이되는 말로 맺습니다.

묵상

빗장처럼 둥글던 팔이 주름지고 처지는 모습 앞에서, 내가 ‘힘’을 근육으로만 생각해 왔는지 돌아볼 수 있나요? 예전처럼 들지 못해도 지금 할 수 있는 돌봄이나 표현이 하나쯤 있을까요? 아무것도 하기 힘든 날이라면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내 두 손은 고운 금반지로 장식되어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무 뿌리처럼 되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Saṇhamuddikasuvaṇṇamaṇḍitā, Sobhare su hatthā pure mama; Te jarāya yathā mūlamūlik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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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게송은 손을 이야기합니다. 암바빨리는 고운 금반지로 꾸민 두 손이 이제 늙어 무 뿌리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반지가 어울리던 젊은 손과 늙은 손을 함께 놓아, 어느 모습도 그대로 붙들어 둘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게송마다 되풀이되는 말로 맺습니다.

묵상

고운 반지보다 뿌리 같은 힘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손을 보면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나요? 내 손이 해 온 일 가운데 모양과 상관없이 고마운 일 한 가지를 천천히 기억해 볼 수 있을까요? 손을 쓰기 어렵다면 누군가의 손에서 받은 도움을 떠올려 보세요.

내 두 젖가슴은 차오르고 둥글며 서로 가까이 높이 솟아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Pīnavaṭṭasahituggatā ubho, Sobhare su thanakā pure mama; Thevikīva lambanti nodak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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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번째 게송은 가슴을 이야기합니다. 암바빨리는 차오르고 둥글며 서로 가까이 높이 솟았던 두 가슴이 이제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다고 말합니다. 젊은 날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나란히 놓고, 가슴이 달라진 것도 숨김없이 스스로 말합니다.

묵상

몸이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내가 나를 대하는 마음도 달라진 적이 있나요? 내 몸의 한 부분을 남의 눈으로만 보아 온 적이 있다면, 그 몸이 해 준 일이나 함께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내 몸은 잘 닦아 빛나는 황금 판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이제 가느다란 주름들이 온몸을 덮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Kañcanassa phalakaṁva sammaṭṭhaṁ, Sobhate su kāyo pure mama; So valīhi sukhumāhi otato,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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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게송에서는 이야기가 몸 전체로 넓어집니다. 암바빨리는 잘 닦은 황금 판처럼 아름답던 몸이 이제 가느다란 주름으로 뒤덮였다고 말합니다. 머리카락부터 한 부분씩 짚어 오던 눈길이 여기서 온몸에 닿고,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다시 넓적다리와 종아리, 발로 내려갑니다. 황금처럼 빛나던 몸도 그대로 머물지 않았음을 담담히 말하고, 게송마다 되풀이되는 말로 맺습니다.

묵상

황금빛 피부와 가느다란 주름을 모두 한 몸이 살아온 시간으로 볼 수 있을까요? 내 피부의 변화를 보고 떠오르는 판단이 있다면, 사실과 평가를 나누어 살펴볼 수 있나요? 외모를 살피는 일이 힘들다면 피부가 바람과 온도를 느끼는 감각에만 마음을 두어 보세요.

내 두 넓적다리는 코끼리 코처럼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대나무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Nāgabhogasadisopamā ubho, Sobhare su ūrū pure mama; Te jarāya yathā veḷunāḷiyo,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열여섯 번째 게송은 넓적다리를 이야기합니다. 암바빨리는 코끼리 코처럼 아름답던 두 넓적다리가 이제 늙어 대나무 줄기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둥글고 굵은 코끼리 코와 가늘고 마디진 대나무 줄기, 굵기가 전혀 다른 두 비유가 한 몸의 젊은 때와 늙은 때를 나타냅니다. 가늘어진 다리를 감추지 않고 말한 뒤, 게송마다 되풀이되는 말로 맺습니다.

묵상

코끼리 코에서 대나무 줄기까지, 한 몸에 흐른 시간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근력이나 체형이 달라진 나를 예전 모습과 겨루게 하지 않고, 지금 내 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비교하는 마음이 멈추지 않으면 몸이 오늘 해 준 동작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내 종아리는 고운 금 발찌로 장식되어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참깨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Saṇhanūpurasuvaṇṇamaṇḍitā, Sobhare su jaṅghā pure mama; Tā jarāya tiladaṇḍakāriva,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열일곱 번째 게송은 종아리를 이야기합니다. 암바빨리는 고운 금 발찌로 장식했던 종아리가 이제 늙어 참깨 줄기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발찌로 꾸민 젊은 다리와 가늘어진 늙은 다리가 나란히 놓입니다. 꾸밈이 어울리던 모습도 늙음 앞에서 그대로 남지 않습니다.

묵상

금 발찌로 꾸미던 종아리가 참깨 줄기처럼 되었다는 이 그림에서, 꾸밈과 몸을 따로 떼어 볼 수 있나요? 꾸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나를 다르게 대하던 시선을 겪은 적이 있다면, 누구의 평가를 마음에 담아 두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내 두 발은 솜을 채운 듯 도톰하고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이제 늙어 갈라지고 주름졌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Tūlapuṇṇasadisopamā ubho, Sobhare su pādā pure mama; Te jarāya phuṭitā valīmatā,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열여덟 번째 게송은 발을 이야기합니다. 암바빨리는 솜을 채운 듯 도톰하던 두 발이 이제 늙어 갈라지고 주름졌다고 말합니다. 머리카락에서 시작해 발까지 내려온 몸의 관찰이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날마다 몸을 지탱해 온 발까지 살펴, 늙음이 온몸에 고루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묵상

날마다 나를 받쳐 준 발이 갈라진 것을 오래 걸어온 흔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오늘 내 발이 걸은 거리와 버틴 무게를 떠올리면, 어떤 쉼이나 돌봄이 필요해 보이나요? 발의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으면 몸을 받쳐 주는 바닥이나 의자를 알아차려 보세요.

이 몸뚱이는 한때 그러했으나 이제는 허물어져 많은 괴로움이 깃드는 곳, 회벽이 떨어져 나간 낡은 집이 되었으니, 진실을 말한 분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Ediso ahu ayaṁ samussayo, Jajjaro bahudukkhānamālayo; Sopalepapatito jarāgharo, Saccavādivacanaṁ anaññat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1 암바빨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게송은 앞에서 살핀 열여덟 가지 변화를 모아, 몸을 회벽이 떨어져 나간 낡은 집에 견줍니다. 한때 그렇게 아름답던 이 몸이 이제 허물어져 많은 괴로움이 깃드는 곳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게송마다 되풀이한 말로, 진실을 말한 분, 곧 부처님의 말씀이 틀림없음을 자기 몸에서 확인하며 게송 전체를 맺습니다.

묵상

회벽이 떨어져 나간 낡은 집을 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보살핌과 안전이 더 필요한 곳으로도 보이나요? 늙거나 아픈 몸을 대하는 내 말이 그 몸을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몸을 집에 견주기 싫다면 오래된 건물을 대하는 내 태도부터 떠올려 보세요.

67 나이 든 여성 수행자 로히니의 게송 19구절

아버지와 딸이 수행자의 성품과 귀의의 까닭을 길게 묻고 답합니다.

“아가씨, 잠들 때도 ‘수행자들’이라 하고 깨어날 때도 ‘수행자들’이라 하는구나. 오직 수행자들만 칭찬하니 틀림없이 너도 수행자가 되겠구나.”

“‘Samaṇā’ti bhoti supi, ‘samaṇā’ti pabujjhasi; Samaṇāneva kittesi, samaṇī nūna bhaviss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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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니의 문답은 아버지가 딸에게 던지는 말로 시작됩니다. 딸은 잠들 때도 깨어날 때도 “수행자들”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그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짚습니다. 오직 수행자들만 칭찬하는 딸을 보고, 아버지는 딸도 수행자가 되리라고 짐작합니다.

묵상

잠들 때도 깨어날 때도 같은 대상을 입에 올릴 만큼 마음이 기운 적이 있나요? 그 반복이 깊은 신뢰인지, 불안한 집착인지, 혹은 아직 구별하기 어려운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생각이 너무 자주 돌아와 괴롭다면 혼자 해석하지 말고 누군가와 나누는 길도 열어 두세요.

너는 수행자들에게 음식과 마실 것을 넉넉히 내어 주는구나. 로히니야, 이제 내가 묻겠다. 너는 왜 수행자들을 좋아하니?

Vipulaṁ annañca pānañca, samaṇānaṁ paveccasi; Rohinī dāni pucchāmi, kena t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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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래에서 아버지는 로히니가 수행자들에게 음식과 마실 것을 넉넉히 내어 주는 것을 짚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왜 수행자들을 좋아하는지 묻습니다. 넉넉한 베풂 뒤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묻는 이 질문이 로히니의 긴 대답을 불러옵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음식과 마실 것을 넉넉히 내어 주고 싶어지는 마음은 그 사람의 어떤 모습에서 생길까요? 내가 기꺼이 시간이나 가진 것을 나눈 사람을 떠올려, 그렇게 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 하나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면 누군가에게 받았던 친절 한 번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며 남이 준 것으로 살아간다. 늘 무언가 얻기를 바라고 단것을 밝히는데, 너는 왜 수행자들을 좋아하니?”

Akammakāmā alasā, paradattūpajīvino; Āsaṁsukā sādukāmā, kena t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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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어서 수행자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며 남이 준 것으로 살고, 늘 얻을 것을 바라며 단것을 밝힌다고 비판합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를 늘어놓은 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합니다. 아버지의 생각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로히니는 이어지는 대답에서 일과 게으름에 대한 비판부터 맞받습니다.

묵상

일하기 싫어하고 남이 준 것으로 살아간다는 아버지의 비판은 수행자들의 어떤 모습을 보고 나온 말일까요? 내가 누군가의 일을 다 보지 못한 채 게으르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면, 그때 어떤 정보가 빠져 있었을까요?

“아버지, 수행자들에 관해 참으로 오랫동안 제게 물어 오셨습니다. 이제 그들의 지혜와 계(바른 행실), 그리고 용맹한 노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Cirassaṁ vata maṁ tāta, samaṇānaṁ paripucchasi; Tesaṁ te kittayissāmi, paññāsīlaparakkam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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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니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물어 왔음을 짚고, 수행자들의 지혜와 계(바른 행실)와 용맹한 노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말하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딸이 수행자들만 칭찬한다고 했고, 로히니는 이제 그 칭찬의 까닭을 밝히려 합니다. 이어지는 게송들이 이 약속을 펼칩니다. 로히니는 자신이 존중하는 덕목을 차례로 설명하며 문답을 이끌어 갑니다.

묵상

오래 반복된 질문에 바로 화내지 않고 지혜와 바른 행실과 노력으로 답의 틀을 세운 태도는 어떤 힘을 보여 주나요? 설명할 의무가 없는 자리라면 침묵이나 거리 두기도 가능한 답이에요. 그래도 풀고 싶은 오해가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두세 갈래로 정리할 때 무엇이 남을까요?

그들은 일하기를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으뜸가는 일을 합니다. 탐냄과 성냄을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Kammakāmā analasā, kammaseṭṭhassa kārakā; Rāgaṁ dosaṁ pajahanti,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첫째 이유에서 로히니는 아버지의 게으름 비판을 그대로 뒤집습니다. 수행자들이 일하기를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탐냄과 성냄을 버리는 으뜸가는 일을 한다고 답합니다. 일을 소득으로만 재지 않고, 마음의 해로운 뿌리를 없애는 노력도 일로 셈하는 다른 기준을 내놓습니다.

묵상

로히니처럼 탐냄과 성냄을 버리는 것을 으뜸가는 일로 본다면, 일을 재는 내 기준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오늘 한 일 가운데 마음의 해로움을 줄인 수고가 있었는지 찾아볼까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하려다 멈춘 모진 말 한마디를 오늘의 일로 셈해 보세요.

그들은 악의 세 가지 뿌리를 깨끗한 행위로 털어 냅니다. 모든 악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Tīṇi pāpassa mūlāni, dhunanti sucikārino; Sabbaṁ pāpaṁ pahīnesaṁ,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다음 이유로 로히니는 수행자들이 깨끗한 행위로 악의 세 가지 뿌리를 털어 낸다고 말합니다. 이 노래는 셋이라고만 하고 이름을 들지 않는데, 경전에서 흔히 드는 세 뿌리는 탐냄, 성냄, 어리석음입니다. 이어서 수행자들이 모든 악을 버렸다고 덧붙입니다. 앞에서 탐냄과 성냄을 버린다고 한 말이 여기서 세 뿌리로 넓어집니다.

묵상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 가운데 지금 알아보기 쉬운 뿌리는 어느 것인가요? 하나가 떠올랐다면, 그것을 나라는 사람 전체로 여기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 올라온 한 반응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이 몸으로 짓는 행위는 깨끗하고 말로 짓는 행위도 그러합니다. 마음으로 짓는 행위도 깨끗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Kāyakammaṁ suci nesaṁ, vacīkammañca tādisaṁ; Manokammaṁ suci nesaṁ,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로히니는 뿌리에서 행동으로 내려와, 수행자들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가 모두 깨끗하다고 차례로 말합니다. 행위가 나오는 세 통로를 하나씩 세고, 셋 모두에 깨끗하다는 같은 평가를 줍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말, 속에 품은 마음이 모두 깨끗한 모습을 로히니는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듭니다.

묵상

몸으로 한 일, 입으로 한 말, 마음에 품은 생각,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누어 보면 오늘의 한 장면이 어떻게 보이나요? 셋 모두 완벽했는지 따지지 말고, 그중 덜 해롭게 고른 하나를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다음에 무언가 하기 전에 세 갈래를 잠깐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소라 껍데기처럼 티 없이 맑고 안팎으로 깨끗합니다. 밝은 성질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Vimalā saṅkhamuttāva, suddhā santarabāhirā; Puṇṇā sukkāna dhammānaṁ,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여덟째 노래는 소라 껍데기의 티 없는 흰빛에 빗대어, 수행자들이 안팎으로 깨끗하고 밝은 성질로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말한 몸과 말과 마음의 깨끗함이 하나의 그림으로 모입니다. 남에게 보이는 행동과 보이지 않는 마음이 함께 깨끗한 모습을 로히니는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듭니다.

묵상

안팎으로 깨끗하다는 말을 속마음과 겉행동이 어긋나지 않는 모습으로 읽으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다만 내가 보여 준 모습과 실제 마음이 잘 맞았던 선택 하나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많이 배우고 가르침을 간직하며 고귀하고 가르침에 따라 살아갑니다. 가르침의 뜻과 글을 함께 설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Bahussutā dhammadharā, ariyā dhammajīvino; Atthaṁ dhammañca desenti,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깨끗함을 말한 뒤 로히니는 다섯째 이유를 듭니다. 수행자들은 많이 배우고 가르침을 기억해 간직하며, 고귀하고 가르침에 맞게 삽니다. 그리고 가르침의 뜻과 글을 함께 설명합니다. 배운 것을 삶으로 옮기고 다른 이도 그 뜻을 알아듣도록 풀어 주는 모습이 로히니가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묵상

문구만 외우는 것과 가르침의 뜻과 글을 함께 설명하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내가 안다고 여긴 내용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말로 풀어 보며 빈틈을 발견한 경험이 있나요? 설명할 상대가 없다면 오늘 배운 한 가지를 내 말 한 문장으로 바꾸어 보세요.

그들은 많이 배우고 가르침을 간직하며 고귀하고 가르침에 따라 살아갑니다. 마음이 한곳에 모여 있고 알아차림을 지닙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Bahussutā dhammadharā, ariyā dhammajīvino; Ekaggacittā satimanto,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 노래는 많이 배우고 가르침을 간직하며 고귀하고 가르침에 따라 산다는 앞 노래의 첫 두 줄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셋째 줄만 바뀌어, 로히니는 뜻을 설명하는 능력 대신 마음이 한곳에 모여 있고 알아차림을 지닌 모습을 이유로 듭니다. 배움과 바른 삶 위에 안에서 닦는 훈련이 더해집니다.

묵상

많이 배운 사람이 마음도 한곳에 모여 있고 알아차림도 지니고 있다면, 그 배움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최근 읽거나 들은 내용 가운데 잠시 멈춰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더 배울 여력이 없다면 이미 아는 한 문장을 조용히 되새겨 보세요.

그들은 먼 길을 다니며 알아차림을 놓지 않고 사려 깊게 말하며 들뜨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끝을 분명히 압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Dūraṅgamā satimanto, mantabhāṇī anuddhatā; Dukkhassantaṁ pajānanti,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로히니가 아버지에게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까닭을 들려주는 대목입니다. 수행자들은 먼 길을 다니면서 알아차림을 놓지 않고, 사려 깊게 말하며, 들뜨지 않습니다. 이 모든 모습이 괴로움의 끝을 안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로히니는 머무는 곳이 바뀌는 길 위에서도 마음과 말이 흐트러지지 않는 점을 그 까닭으로 듭니다.

묵상

먼 길 위에서도 “사려 깊게 말하며 들뜨지 않는” 수행자들의 모습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자리가 바뀌면 쉽게 흐트러지는 내 습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멀리 떠날 일이 없다면 하루 가운데 자리를 옮기는 짧은 순간의 마음을 지켜보세요.

그들은 어느 마을을 떠나든 무엇 하나 그리워 돌아보지 않습니다. 미련 없이 길을 갑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Yasmā gāmā pakkamanti, na vilokenti kiñcanaṁ; Anapekkhāva gacchanti,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행자들은 어느 마을을 떠나든 무엇 하나 그리워 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길을 갑니다. 로히니는 이 모습을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듭니다. 머물던 곳에 마음을 붙들어 두지 않는 태도가 떠나는 순간의 행동에 드러납니다. 아버지는 수행자들이 늘 무엇을 얻을까 바란다고 나무랐고, 로히니는 바라는 마음 없이 떠나는 모습으로 답합니다.

묵상

마을을 떠나며 “무엇 하나 그리워 돌아보지 않는” 수행자들의 모습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이미 끝난 자리에 자꾸 마음이 돌아간다면, 거기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리움이 소중하다면 굳이 놓으려 애쓰지 말고, 그리움과 붙잡음이 어떻게 다른지 천천히 헤아려 보세요.

그들은 곳간에도 항아리에도 바구니에도 물건을 쌓아 두지 않습니다. 이미 마련된 음식을 구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Na te saṁ koṭṭhe openti, na kumbhiṁ na khaḷopiyaṁ; Pariniṭṭhitamesānā,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행자들은 곳간에도, 항아리에도, 바구니에도 물건을 쌓아 두지 않고, 남이 이미 마련해 둔 음식을 구합니다. 로히니는 물건을 모아 둘 만한 곳 세 가지를 하나씩 들어 수행자들의 삶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가 남이 준 것으로 산다고 나무란 그 삶은 앞날을 위해 쌓아 두지 않는 삶이기도 합니다. 로히니는 이 점을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듭니다.

묵상

곳간에도 항아리에도 바구니에도 쌓아 두지 않는 삶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내가 필요보다 많이 쌓아 두는 물건이나 정보가 있다면, 그것이 주는 안심과 부담을 함께 살펴볼 수 있을까요? 간직할 까닭이 분명한 것이라면 그대로 두고, 그 까닭만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들은 금화도 받지 않고 금도 은도 받지 않습니다. 그날 얻은 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Na te hiraññaṁ gaṇhanti, na suvaṇṇaṁ na rūpiyaṁ; Paccuppannena yāpenti,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행자들은 금화도, 금도, 은도 받지 않고 그날 얻은 것으로 살아갑니다. 앞에서 곳간에 쌓아 두지 않는다고 한 말이 여기서는 재물을 받지 않는다는 말로 이어집니다. 로히니는 그날그날 주어진 것으로 살아가는 이 모습을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아버지에게 들려줍니다.

묵상

“그날 얻은 것으로 살아가는” 삶을 떠올리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나요? 앞날을 준비하는 일과 끝없이 안전을 쌓으려는 마음 사이의 경계를 내 형편 안에서 살펴볼 수 있을까요? 살림이 실제로 빠듯하다면 이 구절로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필요한 안전부터 챙겨 보세요.

“그들은 저마다 다른 가문과 저마다 다른 지방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는데 서로 아끼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Nānākulā pabbajitā, nānājanapadehi ca; Aññamaññaṁ piyāyanti, tena me samaṇā p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로히니가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마지막 까닭입니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가문과 지방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지만 서로 아끼고 좋아합니다. 로히니는 출신이 달라도 서로 아끼는 공동체의 모습을 들어 아버지에게 드리는 긴 답을 맺습니다. 이 노래 다음에는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어 갑니다.

묵상

저마다 다른 가문과 지방에서 왔는데도 서로 아끼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이어져 있었을까요? 나와 배경이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며 도움이 되었던 태도가 있다면 하나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그런 관계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바라는 관계의 모습을 한 가지 적어 보세요.

“사랑하는 로히니야, 네가 우리 집안에 태어난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구나. 너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믿고 그 셋을 깊이 존경하는구나.”

“Atthāya vata no bhoti, kule jātāsi rohinī; Saddhā buddhe ca dhamme ca, saṅghe ca tibbagār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긴 답을 들은 아버지가 딸에게 말합니다. 딸이 이 집안에 태어난 것이 식구들에게 참으로 이로운 일이라고 하며,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믿고 깊이 존경하는 딸의 마음을 알아줍니다. 수행자들을 나무라던 아버지의 말투가 여기서 달라집니다.

묵상

수행자들을 나무라던 아버지가 “네가 우리 집안에 태어난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말하기까지,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누군가의 설명을 끝까지 듣고 내 판단을 고친 적이 있다면, 그때 무엇이 도움이 되었나요? 아직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면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인정해 보세요.

너는 이들이 가장 뛰어난 복의 밭임을 아는구나. 이제 이 수행자들은 우리에게서도 예물을 받아 줄 것이다.

Tuvaṁ hetaṁ pajānāsi, puññakkhettaṁ anuttaraṁ; Amhampi ete samaṇā, paṭigaṇhanti dakkhiṇ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버지는 로히니가 수행자 공동체를 가장 뛰어난 복의 밭으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복의 밭은 음식을 올리면 복이 자라는 곳을 밭에 빗댄 말입니다. 아버지는 이제 이 수행자들이 자기 집에서 올리는 음식도 받아 줄 것이라고 합니다.

묵상

“복의 밭”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내가 건네는 도움은 무엇을 자라게 할까요? 돕고 싶은 사람이나 공동체가 있다면 명성보다 실제 행동과 필요를 살펴볼 수 있나요? 지금 나눌 여유가 없다면 내가 도움받았던 이들을 고맙게 떠올리는 것부터 해 보세요.

이곳에 우리 제사가 자리를 잡으니 그 결실이 풍성하겠구나.” “괴로움이 두려우시다면, 괴로움이 싫으시다면,

Patiṭṭhito hettha yañño, vipulo no bhavissati”; “Sace bhāyasi dukkhassa, sace te dukkhamappi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버지는 이곳에 자기 집안의 제사가 자리를 잡아 결실이 풍성해지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로히니가 “괴로움이 두려우시다면, 괴로움이 싫으시다면” 하고 말을 꺼냅니다. 이어서 로히니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를 의지처로 삼고 계를 지키면 아버지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권하고, 아버지는 같은 말로 그 권고를 받아들입니다. 뿐니까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과 나눈 문답에도 같은 노래가 나옵니다. 제사의 결실을 기대하는 말이 끝나는 자리에서 이야기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로 옮겨 갑니다.

묵상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는 아버지에게 로히니는 “괴로움이 싫으시다면” 하고 말을 꺼내요. 좋은 결과를 얻는 일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 가운데 지금 내 마음은 어느 쪽으로 더 기우나요? 하나를 고르기 어렵다면 두 바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 알아차려 보세요.

“예전에 나는 혈통으로만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었지만 이제 나는 참된 브라흐마나이다. 세 가지 앎을 갖추었고 배움이 깊으며 앎의 끝에 이르렀고 씻은 이다.”

Brahmabandhu pure āsiṁ, so idānimhi brāhmaṇo; Tevijjo sottiyo camhi, vedagū camhi nhātako”.

쿳다까 니까야 Thig 13.2 로히니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버지가 로히니의 권고를 받아들인 뒤 하는 말입니다. 그는 브라흐마나로 태어났습니다. 예전에는 혈통으로만 브라흐마나였으나 이제는 참된 브라흐마나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자신을 세 가지 앎을 갖춘 이, 배움이 깊은 이, 앎의 끝에 이른 이, 씻은 이라고 부릅니다. 모두 브라흐마나 전통에서 학식과 의례를 마친 사람을 높여 부르던 이름인데, 아버지는 이 이름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얻은 앎에 붙여 말합니다. 로히니의 문답이 이 선언으로 끝납니다.

묵상

“혈통으로만” 얻은 이름과 스스로 이룬 모습을 나란히 놓으면, 사람을 보는 기준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누군가의 태생이나 직함보다 그가 실제로 닦은 지혜와 행동을 보게 되었던 때가 있나요? 내 배경이 상처로 남아 있다면, 그것을 증명하거나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아 보세요.

68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짜빠의 게송 20구절

부부가 욕망과 출가, 자녀와 결별을 두고 벌이는 날카로운 문답입니다.

“예전에는 수행자의 지팡이를 들었지만 지금은 사슴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갈망 때문에 무서운 늪에서 저쪽 기슭으로 건너지 못했습니다.”

“Laṭṭhihattho pure āsi, so dāni migaluddako; Āsāya palipā ghorā, nāsakkhi pārametave.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짜빠와 남편 깔라가 주고받는 노래에서 깔라가 처음 하는 말입니다. 깔라는 예전에는 수행자의 지팡이를 들었지만 지금은 사슴 사냥꾼이 되었다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갈망 때문에 무서운 늪에서 저쪽 기슭으로 건너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집을 떠나 수행하던 삶에서 멀어진 까닭을 자기 마음속 갈망에서 찾는 고백입니다. 이어서 깔라는 다시 집을 떠나겠다고 밝힙니다.

묵상

깔라는 갈망 때문에 무서운 늪에서 저쪽 기슭으로 건너지 못했다고 고백해요. 이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내 선택을 자꾸 같은 자리로 끌고 간 갈망이 있다면, 그 늪의 가장자리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지금 빠져나오기 힘들고 위험하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혼자 건너려 하지 말고 도움을 청해 보세요.

“짜빠는 내가 자기에게 깊이 빠졌다고 여기고 우리 아들을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짜빠의 속박을 끊고 나는 다시 집을 떠나겠습니다.”

Sumattaṁ maṁ maññamānā, cāpā puttamatosayi; Cāpāya bandhanaṁ chetvā, pabbajissaṁ punopa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짜빠의 남편 깔라가 이어 가는 말입니다. 짜빠는 깔라가 자기에게 깊이 빠졌다고 여기고 아들을 기쁘게 해 주며 지냈습니다. 깔라는 그 관계를 속박이라 부르며, 그것을 끊고 다시 집을 떠나겠다고 밝힙니다. 앞에서 갈망 때문에 건너지 못했다고 고백한 깔라가 수행의 길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한 사람은 상대가 자기에게 깊이 빠졌다고 여겼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관계를 “속박”이라 불렀어요. 이 어긋남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가까운 사이에서 서로의 기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지낸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누구의 잘못인지 서둘러 정하기보다, 두 사람의 경험이 달랐다는 사실을 먼저 살펴보세요.

“위대한 영웅이여, 제게 화내지 마십시오. 위대한 성자여, 제게 화내지 마십시오. 성냄에 사로잡힌 이에게는 깨끗함이 없는데 하물며 뜨거운 수행이야 있겠습니까?”

“Mā me kujjhi mahāvīra, mā me kujjhi mahāmuni; Na hi kodhaparetassa, suddhi atthi kuto tapo”.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짜빠는 남편 깔라가 다시 집을 떠나겠다고 하자 “화내지 마십시오”라고 두 번 부탁합니다. 부르는 말도 ‘위대한 영웅’, ‘위대한 성자’로 바꿔 가며 되풀이합니다. 이어 성냄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깨끗함이 없는데 뜨거운 수행이 어찌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떠나려는 결정을 곧바로 반박하지 않고, 수행을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성냄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입니다.

묵상

“성냄에 사로잡힌 이에게는 깨끗함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화가 난 사람에게 옳은 말을 건넸다가 사이가 더 막힌 적이 있나요? 지금 누군가와 크게 다투고 있다면, 설득보다 내 안전과 거리를 먼저 살펴보세요.

“나는 날라를 떠나겠습니다. 누가 여기 날라에 머물겠습니까? 여인들은 그 모습으로 바르게 사는 수행자들을 묶습니다.”

“Pakkamissañca nāḷāto, kodha nāḷāya vacchati; Bandhantī itthirūpena, samaṇe dhammajīvino”.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깔라는 날라를 떠나겠다고 다시 말합니다. 날라는 두 사람이 지금 사는 곳입니다. 그는 여인들이 그 모습으로 바르게 사는 수행자들을 묶는다고 이유를 댑니다. 이 말은 다투는 자리에서 나온 깔라 한 사람의 견해이며, 모든 여성을 그렇게 정해 버리는 가르침으로 넓혀 읽을 수 없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대화는 깔라와 짜빠 두 사람 사이의 집착을 다룹니다.

묵상

깔라는 짜빠와 다투는 자리에서 “여인들은 그 모습으로 수행자들을 묶는다”고 말해요.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마음이 상했을 때 한 사람과의 일을 한 집단 전체의 일로 넓혀 말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말에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이 문장을 깔라 한 사람의 말로 읽어 보세요.

“깔라여, 이리 오십시오, 돌아오십시오. 예전처럼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저도, 제 친족들도 모두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Ehi kāḷa nivattassu, bhuñja kāme yathā pure; Ahañca te vasīkatā, ye ca me santi ñātak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짜빠는 떠나려는 깔라를 이름으로 부르며 돌아오라고 청합니다. 예전처럼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라 권하고, 자신과 친족 모두 깔라의 뜻에 따르겠다고 약속합니다. 관계를 붙들려고 자신의 뜻과 가족의 뜻까지 내놓는 제안입니다.

묵상

“예전처럼” 즐거움을 누리라는 짜빠의 말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요? 끝나 가는 관계를 붙들려고 내 뜻이나 주변 사람의 뜻까지 내주려 했던 적이 있다면, 그때 무엇이 두려웠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짜빠여, 그대가 내게 하는 말은 그 사분의 일만으로도 그대에게 빠진 남자에게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겠습니다.”

“Etto cāpe catubbhāgaṁ, yathā bhāsasi tvañca me; Tayi rattassa posassa, uḷāraṁ vata taṁ siy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깔라는 짜빠가 한 말을 두고, 그 사분의 일만으로도 그녀에게 빠진 남자에게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겠다고 답합니다. 짜빠가 자기와 친족 모두 깔라의 뜻에 따르겠다고 한 제안이 크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돌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대에게 빠진 남자’를 남 이야기하듯 말하며, 자신은 이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듯 거리를 둡니다.

묵상

“그대에게 빠진 남자에게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겠다”는 말은 칭찬으로 들리나요, 거리를 두는 말로 들리나요? 한때 크게 끌렸던 제안이 어느 순간 남의 일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면, 그사이 무엇이 달라졌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깔라여, 저는 산꼭대기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딱까리 같고, 활짝 핀 석류나무 같으며 섬 안의 빠딸리 나무 같습니다.”

“Kāḷaṅginiṁva takkāriṁ, pupphitaṁ girimuddhani; Phullaṁ dālimalaṭṭhiṁva, antodīpeva pāṭal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짜빠는 자신을 산꼭대기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딱까리, 활짝 핀 석류나무, 섬 안의 빠딸리 나무에 견줍니다. 세 가지 식물 비유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차례로 내보이며 깔라의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관계를 되돌리려고 외모를 근거로 삼는 장면이며, 이어지는 노래에서 장식이 더해집니다.

묵상

산꼭대기의 꽃, 석류나무, 섬의 나무 가운데 마음에 남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내 좋은 점을 말하는 일이 상대를 붙드는 수단이 된 적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기쁨은 그 자체로 잘못이 없다는 것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제 몸에는 노란 전단향을 바르고 가장 좋은 까시 천을 입었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저를 두고 누구에게 가려고 떠나십니까?”

Haricandanalittaṅgiṁ, kāsikuttamadhāriniṁ; Taṁ maṁ rūpavatiṁ santiṁ, kassa ohāya gacch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의 꽃 비유에 이어 짜빠는 노란 전단향을 바르고 아주 좋은 까시 천을 입은 자신을 내세웁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기를 두고 누구에게 가려고 떠나느냐고 직접 묻습니다. 외모와 장식으로 깔라를 붙들려는 말이며, 이어지는 깔라의 답은 그 꾸민 모습에 붙잡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묵상

향을 바르고 좋은 옷을 입은 뒤에도 “누구에게 가려고 떠나십니까?”라고 물어야 했던 짜빠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외모를 더 다듬으면 관계가 안전해질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다면, 그 믿음 때문에 나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대는 새를 붙잡으려는 새잡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꾸민 그 모습으로는 나를 붙잡지 못할 것입니다.”

“Sākuntikova sakuṇiṁ, yathā bandhitumicchati; Āharimena rūpena, na maṁ tvaṁ bādhayiss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깔라는 짜빠를 새를 붙잡으려는 새잡이에 빗대고, 꾸민 모습으로는 자신을 붙잡지 못할 것이라고 답합니다. 앞에서 짜빠가 자신을 꽃에 견주고 향과 옷으로 꾸민 몸을 내세운 데 대한 거절입니다. 깔라의 눈에 그 꾸민 아름다움은 새를 잡으려고 놓은 덫처럼 보입니다.

묵상

“꾸민 그 모습”이라는 말을 들은 짜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유혹을 거절하면서도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는 말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상대를 평가하기보다 내 경계를 짧고 분명하게 말해 보세요.

“하지만 여기 제 열매인 이 아이는 깔라여, 당신이 낳게 한 아들입니다. 이처럼 아들이 있는 저를 두고 누구에게 가려고 떠나십니까?”

“Imañca me puttaphalaṁ, kāḷa uppāditaṁ tayā; Taṁ maṁ puttavatiṁ santiṁ, kassa ohāya gacch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외모로 붙잡지 못하자 짜빠는 아들을 내세웁니다. 이 아이는 자기 열매이고 깔라가 낳게 한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들이 있는 자기를 두고 누구에게 가느냐고 묻습니다. 둘 사이의 아이와 책임을 붙들 이유로 삼는 말입니다.

묵상

“당신이 낳게 한 아들”이라는 말에서 사랑, 책임, 붙잡음 가운데 무엇이 느껴지나요? 중요한 관계를 이야기할 때 아이를 설득의 도구로 삼지 않고 아이의 필요를 따로 볼 수 있을까요? 가족 갈등이 가까이 있다면 혼자 풀려 하기보다 믿을 만한 도움을 찾아보세요.

“지혜로운 이들은 자식을 버리고 그다음 친족을, 그다음 재물을 버립니다. 위대한 영웅들은 결박을 끊은 코끼리처럼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됩니다.”

“Jahanti putte sappaññā, tato ñātī tato dhanaṁ; Pabbajanti mahāvīrā, nāgo chetvāva bandh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내 짜빠가 아들을 내세워 붙잡자 깔라가 이렇게 답합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자식을 버리고, 이어 친족과 재물을 버립니다. 위대한 영웅들은 결박을 끊은 코끼리처럼 집을 떠납니다. 자식, 친족, 재물을 차례로 드는 이 목록은 깔라가 자신의 결심을 밝히는 말입니다. 가족 사이의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는 읽는 사람이 자기 삶에서 따져 볼 일입니다.

묵상

결박을 끊은 코끼리의 비유를 가족 관계에 겹쳐 보면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내 길을 찾는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함께 살펴본 적이 있나요?

“이제 당신의 이 아들을 막대기나 칼로 치거나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겠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당신은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Idāni te imaṁ puttaṁ, Daṇḍena churikāya vā; Bhūmiyaṁ vā nisumbhissaṁ, Puttasokā na gacch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짜빠는 막대기나 칼로 아들을 치거나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겠다고 말합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깔라가 떠나지 못하리라고 계산한 위협입니다. 절박한 갈등 속에서 나온 폭력적인 말이며, 따라 할 본보기로 실린 것이 아닙니다.

묵상

아이를 해치겠다는 말이 상대를 붙드는 수단으로 나오는 이 장면에서, 누구의 처지가 먼저 마음에 걸리나요? 비슷한 위협이 지금 삶에 있다면 이 글은 잠시 내려놓고 가까운 긴급 도움이나 믿을 만한 사람에게 먼저 알려 주세요.

“그대가 우리 아들을 자칼과 개에게 먹이로 준다 해도, 비열한 이여, 아이를 이유로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Sace puttaṁ siṅgālānaṁ, kukkurānaṁ padāhisi; Na maṁ puttakatte jammi, punarāvattayiss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깔라는 짜빠가 아이를 자칼과 개에게 먹이로 준다 해도 자신은 돌아오지 않겠다고 응수합니다. 아이를 이유로 붙잡으려는 시도를 끝까지 거절하는 말이며, 짜빠를 향해 “비열한 이여”라고 거칠게 부르기까지 합니다. 차갑고 모진 이 대답을 바람직한 가족의 태도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의 갈등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묵상

“아이를 이유로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은 경계를 지키려는 말로 들리나요, 아이의 안전을 외면하는 말로 들리나요? 극단적인 갈등 속에서 누가 이기느냐보다 약한 사람을 어떻게 지킬지를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 이제 그대여, 말해 주십시오. 깔라여, 어디로 가려 합니까? 어느 마을이나 읍, 도시나 수도로 가려 합니까?”

“Handa kho dāni bhaddante, kuhiṁ kāḷa gamissasi; Katamaṁ gāmanigamaṁ, nagaraṁ rājadhāniyo”.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위협이 통하지 않자 짜빠는 말투를 바꾸어, 깔라가 갈 곳이 마을인지 읍인지 도시인지 수도인지 차례로 묻습니다. 붙잡으려던 말이 행선지를 확인하는 질문으로 바뀝니다. 이 물음에 깔라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려는지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묵상

마을과 읍과 도시와 수도를 하나씩 묻는 짜빠는 상대의 결심을 이해하려는 걸까요,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은 걸까요? 떠나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면, 그 물음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나요?

“예전에 우리는 무리를 거느렸지만 수행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수행자라 여겼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고 도시와 수도들을 돌아다녔습니다.”

“Ahumha pubbe gaṇino, Assamaṇā samaṇamānino; Gāmena gāmaṁ vicarimha, Nagare rājadhāniyo.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깔라는 예전에 자신들이 무리를 거느리고 마을과 도시와 수도를 떠돌아다녔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수행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수행자라고 여겼다는 고백입니다. 겉모습과 따르는 무리가 수행의 증거가 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이번에는 참된 스승을 찾아가겠다는 다음 말로 이어집니다.

묵상

“수행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수행자라 여겼다”는 고백은 겉모습과 실제 삶 사이의 틈을 어떻게 드러내나요? 역할의 이름은 가졌지만 그 뜻대로 살지 못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렇게 알아챈 것을 자신을 탓하는 낙인보다 방향을 고칠 실마리로 삼아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제 부처님께서 네란자라강 기슭에서 살아 있는 이들이 모든 괴로움을 버리도록 가르침을 전하고 계십니다. 나는 그분 곁으로 가겠습니다. 그분이 내 스승이 될 것입니다.”

Eso hi bhagavā buddho, nadiṁ nerañjaraṁ pati; Sabbadukkhappahānāya, dhammaṁ deseti pāṇinaṁ; Tassāhaṁ santikaṁ gacchaṁ, so me satthā bhavissati”.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디로 가느냐는 짜빠의 물음에 깔라가 답을 이어 갑니다. 부처님께서 지금 네란자라강 기슭에서 살아 있는 이들에게 모든 괴로움을 버리는 가르침을 전하고 계시니, 그분 곁으로 가서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합니다. 앞에서 자신들이 수행자가 아니면서 수행자라 여겼다고 인정한 뒤, 가야 할 곳과 배울 분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밝히는 대목입니다.

묵상

“그분이 내 스승이 될 것입니다”라는 결심은 무리를 거느리고 떠돌던 예전과 무엇이 다른가요? 누군가를 믿고 따르기로 할 때, 그 가르침이 괴로움을 실제로 덜어 주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따를 사람이 따로 없다면, 무엇을 보고 믿을지 내 기준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가장 뛰어난 세상의 보호자께 제가 절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분을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제 이름으로 예물을 올려 주십시오.”

“Vandanaṁ dāni vajjāsi, lokanāthaṁ anuttaraṁ; Padakkhiṇañca katvāna, ādiseyyāsi dakkhiṇ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깔라의 뜻을 알아들은 짜빠가 깔라에게 청합니다. 부처님께 자신이 절한다고 전해 달라고, 그분을 오른쪽으로 돈 뒤 자신의 이름으로 음식을 올려 달라고 말합니다. 붙잡던 말이 떠나는 길을 받아들이는 부탁으로 바뀝니다. 오른쪽으로 도는 것은 존경하는 분께 예를 갖추는 옛 인도의 방식입니다.

묵상

떠나는 깔라를 붙잡던 짜빠가 “제 이름으로 음식을 올려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함께 갈 수 없어도 상대의 좋은 길을 빌어 준 적이 있다면, 그때 마음에 무엇이 남았나요?

“그대가 내게 말한 대로 그 일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가장 뛰어난 세상의 보호자께 그대가 절한다고 전하겠습니다.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그대의 이름으로 예물을 올리겠습니다.”

“Etaṁ kho labbhamamhehi, yathā bhāsasi tvañca me; Vandanaṁ dāni te vajjaṁ, lokanāthaṁ anuttaraṁ; Padakkhiṇañca katvāna, ādisissāmi dakkhiṇ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깔라는 짜빠가 부탁한 세 가지, 곧 절을 전하는 일, 오른쪽으로 도는 일, 짜빠의 이름으로 음식을 올리는 일을 모두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위협이 오가던 두 사람의 대화는 이 약속으로 끝납니다. 떠나는 깔라도 짜빠의 마지막 부탁은 받아들입니다.

묵상

“그 일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라는 짧은 수락은 긴 갈등 끝에 어떻게 들리나요? 관계가 끝나도 지킬 수 있는 약속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을 나누어 본 적이 있나요? 떠오르는 일이 없다면 작은 부탁에 분명히 예나 아니오를 말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그 뒤 깔라는 떠나 네란자라강 기슭으로 갔습니다. 그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 죽음 없는 곳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Tato ca kāḷo pakkāmi, nadiṁ nerañjaraṁ pati; So addasāsi sambuddhaṁ, desentaṁ amataṁ pad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문답이 끝나고 서술이 이어집니다. 깔라는 길을 나서 네란자라강 기슭으로 가서, 부처님께서 죽음 없는 길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직접 봅니다. 가겠다던 말이 실제 걸음이 되어, 그가 찾던 스승과 가르침을 만나는 대목입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는 괴로움과 그 원인, 괴로움을 넘어서는 일, 괴로움을 가라앉히는 거룩한 여덟 갈래 길(아리야 앗탕기까 막가)을 노래합니다.

묵상

말로만 가리키던 곳이 “죽음 없는 길을 가르치시는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 깔라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찾던 길을 누군가의 실제 삶이나 행동에서 확인해 본 적이 있나요? 아직 그런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면 믿을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 보세요.

깔라는 그분의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 짜빠의 이름으로 예물을 올리고 집 없는 삶으로 나섰습니다. 세 가지 앎에 이르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Tassa pādāni vanditvā, Katvāna naṁ padakkhiṇaṁ; Cāpāya ādisitvāna, Pabbajiṁ anagāriyaṁ; 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3 짜빠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지막 노래는 깔라가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 짜빠의 이름으로 음식을 올렸다고 전합니다. 그다음 깔라는 집 없는 삶으로 나서 세 가지 앎(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 하늘의 눈, 흘러드는 것이 다했음을 아는 앎)에 이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 한 약속을 지킨 뒤 자신의 길도 끝까지 걸어, 이야기가 풀려남으로 닫힙니다.

묵상

깔라가 떠난 뒤에도 짜빠와 한 약속을 지켰다는 대목은 자기 길을 가는 선택과 관계의 책임을 어떻게 함께 보여 주나요? 내 길을 가면서도 남겨 둔 약속 하나를 돌볼 방법이 있을지 살펴볼까요?

69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순다리의 게송 25구절

아들의 죽음으로 시작한 수행이 가족의 귀의와 해방으로 이어집니다.

“귀한 여인이여, 예전에 그대는 죽은 자식들을 먹으면서 낮에도 밤에도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Petāni bhoti puttāni, khādamānā tuvaṁ pure; Tuvaṁ divā ca ratto ca, atīva paritapp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의 노래는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 한 명이 와셋티에게 건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브라흐마나는 뒤에 나오는 순다리의 아버지 수자따로, 그 자신도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시달리던 사람입니다. 그는 와셋티가 예전에 죽은 자식들을 먹으면서 낮에도 밤에도 몹시 괴로워했다고 되짚습니다. 그는 낮과 밤 내내 이어진 괴로움을 줄이지 않고 그대로 말한 뒤, 이어지는 대목에서 오늘은 왜 달라졌는지 묻습니다.

묵상

“낮에도 밤에도 몹시 괴로워했습니다”라는 말처럼 내가 견딘 슬픔을 다른 사람이 되짚어 주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누군가 내 슬픔을 정확히 알아주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나요? 그 기억을 꺼내기 어렵다면 지금은 잠시 덮어 두고 쉬어 가세요.

“그런 그대가 오늘은 백 명의 자식을 모두 먹고도, 브라흐마나 부인이여, 와셋티여, 무슨 까닭으로 심하게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Sājja sabbāni khāditvā, sataputtāni brāhmaṇī; Vāseṭṭhi kena vaṇṇena, na bāḷhaṁ paritapp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어서 브라흐마나는 오늘의 와셋티에게 묻습니다. 자식 백 명을 모두 먹은 오늘은 무슨 까닭으로 예전처럼 심하게 괴로워하지 않느냐는 물음입니다. 그는 와셋티 안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묵상

“백 명의 자식”이라는 큰 수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슬픔의 크기를 잃은 사람의 수로 잴 수 있을지, 내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숫자가 차갑게 느껴지는 날에는 누구의 슬픔도 숫자로 재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만 간직해 보세요.

“브라흐마나여, 지난 세월 동안 수백 명의 자식과 수백 무리의 친족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먹혔습니다.”

“Bahūni puttasatāni, ñātisaṅghasatāni ca; Khāditāni atītaṁse, mama tuyhañca brāhmaṇa.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와셋티가 답합니다. 지나온 긴 세월 동안 수백 명의 자식과 수백 무리의 친족이 자신에게도, 물은 브라흐마나에게도 먹혔다고 말합니다. 자식과 친족을 따로 세고, 자신과 상대를 함께 묶습니다. 오늘의 상실을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해 온 긴 떠돎(삼사라) 속에 놓고 보는 대목입니다.

묵상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같은 상실이 있었다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공통점을 만들까요? 누군가의 아픔을 내 경험으로 덮지 않으면서도 혼자가 아니라고 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지금 곁에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면, 내가 듣고 싶었던 한 문장을 골라 스스로에게 건네 보세요.

“나는 태어남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습니다.”

Sāhaṁ nissaraṇaṁ ñatvā, jātiyā maraṇassa ca; Na socāmi na rodāmi, na cāpi paritappay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많은 죽음을 말한 뒤 와셋티는 자신이 태어남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았다고 밝힙니다. 그래서 슬퍼하지도, 울지도, 괴로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브라흐마나는 무슨 까닭으로 예전처럼 괴로워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와셋티는 벗어나는 길을 안 것을 그 까닭으로 듭니다.

묵상

슬퍼하지도 울지도 괴로워하지도 않는다는 와셋티의 말은 내게 어떻게 들리나요? 내 슬픔 안에서도 잠깐 숨을 돌릴 수 있었던 틈이 있었다면, 무엇이 그 틈을 열어 주었는지 살펴볼까요?

“와셋티여, 그대가 하는 이런 말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누구의 가르침을 알았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Abbhutaṁ vata vāseṭṭhi, vācaṁ bhāsasi edisiṁ; Kassa tvaṁ dhammamaññāya, giraṁ bhāsasi edis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브라흐마나는 와셋티가 하는 말이 참으로 놀랍다고 감탄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가르침을 알았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 묻습니다. 자식을 잃고도 슬픔에 휩쓸리지 않는 까닭과 그렇게 가르친 스승을 알고 싶어 하는 물음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와셋티는 그 스승으로 부처님을 듭니다.

묵상

달라진 사람을 보고 “누구의 가르침을 알았기에” 이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 브라흐마나의 태도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달라진 사람에게 판단하기보다 먼저 그 까닭을 물어본 적이 있나요? 가까운 사람의 변화가 걱정스럽게 느껴진다면, 열린 질문과 함께 안부도 물어보세요.

“브라흐마나여, 미틸라 성에 계신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서 모든 괴로움을 버리도록 살아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Esa brāhmaṇa sambuddho, nagaraṁ mithilaṁ pati; Sabbadukkhappahānāya, dhammaṁ desesi pāṇi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와셋티는 누구의 가르침이냐는 물음에, 미틸라 성에 계신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라고 답합니다. 그분은 살아 있는 이들이 모든 괴로움을 버리도록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와셋티는 스승이 있는 곳과 그 가르침의 목적을 먼저 말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와셋티는 그 가르침을 듣고 자식을 잃은 슬픔을 몰아냈다고 말합니다.

묵상

누군가의 가르침을 따를지 정할 때, “모든 괴로움을 버리도록”처럼 그 가르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먼저 살펴본 적이 있나요? 내가 따르는 조언이 실제로 괴로움을 줄여 주는지 확인해 본 경험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믿을 만한 가르침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고 믿을지 내 기준부터 하나 적어 보세요.

“브라흐마나여, 그 완전히 깨달으신 분(아라한)께서 전하신 집착의 토대가 없는 가르침을 듣고 그곳에서 참된 가르침을 이해한 나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몰아냈습니다.”

Tassa brahme arahato, dhammaṁ sutvā nirūpadhiṁ; Tattha viññātasaddhammā, puttasokaṁ byapānud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와셋티는 자신의 답을 이어 갑니다. 완전히 깨달으신 분(아라한)께서 전하신, 집착의 토대가 없는 가르침을 듣고 그곳에서 참된 가르침을 이해했으며, 그 이해로 자식을 잃은 슬픔을 몰아냈다고 말합니다. 듣는 일에서 이해로, 이해에서 슬픔을 몰아내는 일로 이어지는 차례입니다.

묵상

“참된 가르침을 이해한” 뒤 슬픔을 몰아냈다는 와셋티의 말에서, 듣는 일과 이해하는 일 사이에는 어떤 시간이 있었을까요? 위로의 말을 들었지만 한참 뒤에야 뜻이 닿았던 경험을 돌아볼 수 있나요? 아직 어떤 말도 닿지 않는다면,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서두르지 말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세요.

“나도 미틸라 성으로 가겠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나를 모든 괴로움에서 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So ahampi gamissāmi, nagaraṁ mithilaṁ pati; Appeva maṁ so bhagavā, sabbadukkhā pamocaye”.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와셋티의 말을 들은 브라흐마나는 자신도 미틸라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자신도 모든 괴로움에서 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확신보다 바람에 기대어 길을 나서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는 부처님을 뵙습니다.

묵상

“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브라흐마나의 말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다고 느껴지나요? 완전히 믿지 못했지만 도움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적이 있나요? 희망이 잘 생기지 않는 날이라면, 먼 길을 나서기보다 필요한 도움을 조금 알아보는 것부터 해 보세요.

브라흐마나는 온전히 풀려나신 분, 집착의 토대가 없으신 부처님을 뵈었습니다. 괴로움을 건너신 성자께서 그에게 가르침을 일러 주셨습니다.

Addasa brāhmaṇo buddhaṁ, vippamuttaṁ nirūpadhiṁ; Svassa dhammamadesesi, muni dukkhassa pāragū.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브라흐마나는 부처님을 뵙습니다. 온전히 풀려나 집착의 토대가 없는 분, 괴로움을 건너신 성자께서 그에게 가르침을 일러 주십니다. 바라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미 건넌 분이 건너는 길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괴로움과 그 원인, 괴로움을 넘어서는 일, 괴로움을 가라앉히는 거룩한 여덟 갈래 길(아리야 앗탕기까 막가)을 노래합니다.

묵상

찾아간 사람이 마침내 “괴로움을 건너신 성자”를 만났을 때, 말보다 그 삶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움을 주는 이가 자기가 말하는 방향을 실제로 살아가는지 살펴본 경험이 있나요? 완벽한 사람을 찾기보다, 말과 행동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지부터 눈여겨보세요.

그곳에서 참된 가르침을 알게 된 그는 집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수자따는 사흘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습니다.

Tattha viññātasaddhammo, pabbajjaṁ samarocayi; Sujāto tīhi rattīhi, tisso vijjā aphassayi.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부처님이 수자따에게 네 가지 진리를 들려주셨습니다. 브라흐마나 수자따는 그 자리에서 참된 가르침을 알고 집을 떠나기로 했으며, 사흘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시작한 물음이 집 없는 삶과 직접 얻은 앎으로 이어진 대목입니다.

묵상

“사흘 만에”라는 말을 읽으면 내 걸음과 견주어 보고 싶어지나요?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사흘 만의 앎에 이르기까지 수자따가 무엇을 지나왔을지 생각해 볼까요?

“마부여, 가서 이 수레를 돌려주시오. 브라흐마나 부인에게 안부를 묻고 이렇게 전하시오. ‘브라흐마나는 이제 집을 떠났습니다. 수자따는 사흘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습니다.’”

“Ehi sārathi gacchāhi, rathaṁ niyyādayāhimaṁ; Ārogyaṁ brāhmaṇiṁ vajja, ‘pabbaji dāni brāhmaṇo; Sujāto tīhi rattīhi, tisso vijjā aphassayi’”.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집을 떠난 수자따는 마부에게 수레를 돌려주라고 하며, 아내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이 집을 떠났다는 소식과 사흘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무 말 없이 떠나지 않고 가족에게 자신의 선택과 얻은 것을 알립니다.

묵상

삶을 크게 바꾼 뒤 마부를 보내며 “브라흐마나 부인에게 안부를 묻고 이렇게 전하시오”라고 한 수자따의 말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내 결정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을 때, 결과와 안부를 어떻게 전해 왔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직접 연락하기가 안전하지 않은 관계라면,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하거나 거리를 두는 방법도 떠올려 보세요.

마부는 수레와 천 냥을 가지고 돌아가 브라흐마나 부인에게 안부를 묻고 말했습니다. “브라흐마나는 이제 집을 떠났습니다. 수자따는 사흘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습니다.”

Tato ca rathamādāya, sahassañcāpi sārathi; Ārogyaṁ brāhmaṇiṁvoca, “pabbaji dāni brāhmaṇo; Sujāto tīhi rattīhi, tisso vijjā aphassayi”.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부는 수레와 천 냥을 가지고 돌아가 안부를 묻고, 수자따가 집을 떠났다는 소식과 사흘 만에 얻은 세 가지 앎을 전합니다. 앞에서 맡은 전갈이 실제로 전해지는 장면입니다. 마부는 말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들은 그대로 옮깁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부인이 이 소식에 답합니다.

묵상

수레와 천 냥을 맡은 채, 들은 말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마부의 모습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중요한 소식을 옮길 때 내 짐작을 보태지 않고 들은 대로 전했던 적이 있나요? 다음에 누군가의 말을 전할 일이 생기면, 무엇을 보태고 싶어지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마부여, 브라흐마나가 세 가지 앎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이 말과 수레와 천 냥, 그리고 가득 채운 그릇을 선물로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Etañcāhaṁ assarathaṁ, sahassañcāpi sārathi; Tevijjaṁ brāhmaṇaṁ sutvā, puṇṇapattaṁ dadāmi te”.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브라흐마나 부인은 남편이 세 가지 앎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부에게 말과 수레, 천 냥, 그리고 가득 채운 그릇을 선물로 주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집을 떠나 얻은 것을 기뻐하며,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보답하려는 마음입니다.

묵상

말과 수레와 천 냥, 가득 채운 그릇까지 한꺼번에 주려는 부인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기쁜 소식을 전해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상대가 실제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나요? 크게 보답할 형편이 아니라면, 진심을 담은 감사 한마디로 무엇을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브라흐마나 부인이여, 말과 수레와 천 냥은 그대로 부인께서 가지십시오. 저도 뛰어난 지혜를 지닌 그분 곁에서 집을 떠나겠습니다.”

“Tuyheva hotvassaratho, sahassañcāpi brāhmaṇi; Ahampi pabbajissāmi, varapaññassa santike”.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마부는 부인이 주겠다던 말과 수레, 천 냥을 받지 않고 그대로 가지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뛰어난 지혜를 지닌 그분, 곧 부처님 곁에서 집을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이 눈앞의 보상을 마다하고 그 소식 속의 길을 따라가기로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다른 사람의 걸음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말과 수레와 천 냥을 받지 않고 집을 떠나기를 택한 마부에게는 어떤 까닭이 있었을까요? 다른 사람의 변화를 보고 내 삶에서 무엇이 먼저인지 다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는지 떠올려 보세요.

“코끼리와 소와 말, 보석 귀걸이와 이처럼 풍성한 집안 재산을 버리고 네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순다리야, 네가 집안의 상속자이니 이 재물을 누리렴.”

“Hatthī gavassaṁ maṇikuṇḍalañca, Phītañcimaṁ gahavibhavaṁ pahāya; Pitā pabbajito tuyhaṁ, Bhuñja bhogāni sundarī; Tuvaṁ dāyādikā kule”.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야기는 다음 세대로 넘어갑니다. 어머니가 딸 순다리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코끼리와 소와 말, 보석 귀걸이와 풍성한 집안 재산을 버리고 집을 떠났으니, 집안의 상속자인 순다리가 이 재물을 누리라는 권유입니다. 아버지가 떠나며 남긴 재산과 집안을 잇는 일이 이제 순다리에게 넘어옵니다. 순다리가 무엇을 택할지는 이어지는 대목에서 드러납니다.

묵상

코끼리와 소와 말, 보석 귀걸이를 물려받으라는 어머니의 말에서 어떤 마음이 읽히나요? 내게 주어진 재산이나 역할 가운데 고맙지만 바라지 않았던 것이 있나요? 있다면, 그것을 받지 않거나 다르게 쓰는 길도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코끼리와 소와 말, 보석 귀걸이와 마음을 끄는 이 집안 재산을 버리고 내 아버지는 아들 잃은 슬픔에 시달려 집을 떠났습니다. 나도 형제 잃은 슬픔에 시달려 집을 떠나겠습니다.”

“Hatthī gavassaṁ maṇikuṇḍalañca, Rammaṁ cimaṁ gahavibhavaṁ pahāya; Pitā pabbajito mayhaṁ, Puttasokena aṭṭito; Ahampi pabbajissāmi, Bhātusokena aṭṭ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어머니가 꼽은 재산을 순다리는 같은 말로 되받습니다. 다만 어머니가 ‘풍성한’ 재산이라 한 것을 순다리는 ‘마음을 끄는’ 재산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 재산을 버리고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시달려 집을 떠났듯, 자신도 형제를 잃은 슬픔에 시달려 집을 떠나겠다고 답합니다. 재산을 물려받는 대신 아버지와 같은 길을 택한 것입니다.

묵상

아버지는 아들을, 순다리는 형제를 잃은 슬픔으로 같은 길을 택해요. 한 사람의 슬픔과 선택이 가족 안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같은 상실을 겪어도 슬픔을 지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요. 곁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떠올려 보세요.

“순다리야, 네가 바라는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남은 음식을 얻어먹는 삶과 버려진 천으로 지은 옷, 이것만으로 견디며 지내서 다음 세상에는 흘러드는 것이 없기를 바란다.”

“So te ijjhatu saṅkappo, yaṁ tvaṁ patthesi sundarī; Uttiṭṭhapiṇḍo uñcho ca, paṁsukūlañca cīvaraṁ; Etāni abhisambhontī, paraloke anās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재산을 누리라고 권했던 어머니는 이제 순다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빌고, 남은 음식을 얻어먹는 삶과 버려진 천으로 지은 옷만으로 견디며 지내서 다음 세상에는 흘러드는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딸의 선택을 막지 않고, 풍성한 상속을 두고 떠나는 길을 응원하는 말입니다.

묵상

재산을 누리라던 어머니가 딸을 붙잡지 않고 “네가 바라는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빌어 주는 모습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사랑하는 이의 선택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평안을 빌어 준 적이 있나요? 아직 놓아주기 어렵다면,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는 말로 걱정을 솔직하게 전해 보세요.

“존귀한 분이여, 아직 배우는 수행자였던 동안 내 하늘의 눈이 맑아졌습니다. 나는 지난 삶들을, 전에 내가 살았던 곳들을 압니다.”

“Sikkhamānāya me ayye, dibbacakkhu visodhitaṁ; Pubbenivāsaṁ jānāmi, yattha me vusitaṁ pure.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는 자신을 이끈 나이 든 여성 수행자에게,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배우는 동안 하늘의 눈이 맑아졌고 지난 삶들을 안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눈과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은 세 가지 앎 가운데 둘입니다. 배움이 끝나기 전에도 수행이 앎으로 익어 가고 있었다는 보고이며, 이어지는 게송에서 세 가지 앎을 얻었다는 말이 뒤따릅니다.

묵상

“아직 배우는 수행자였던 동안”이라는 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배움을 다 마치지 않았어도 이미 자라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아직 서툴지만 예전보다 알아보게 된 것이 한 가지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까요?

“훌륭한 분이여,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빛내는 나이 든 수행자여, 당신께 의지하여 나는 세 가지 앎을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습니다.”

Tuvaṁ nissāya kalyāṇi, theri saṅghassa sobhane; Tisso vijjā anuppattā, kataṁ buddhassa sās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는 자신을 이끌어 준 나이 든 여성 수행자에게 말합니다. 훌륭한 분이자 수행자 공동체를 빛내는 그분께 의지해 세 가지 앎을 얻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루었다고 밝힙니다. 바로 앞에서 순다리는 정식 수행자가 되기 전 배우는 동안 이미 하늘의 눈이 맑아지고 지난 삶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나머지 하나인 흘러드는 것이 다했음을 아는 앎까지 얻었습니다.

묵상

“당신께 의지하여”라는 말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요? 내가 자라는 데 바탕이 되어 준 사람이나 모임이 있다면 하나 떠올려 보세요. 그 곁에서 무엇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아도 좋아요. 아직 그런 사람이나 모임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해 보세요.

“존귀한 분이여,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사왓티로 가고 싶습니다. 깨달은 이들 가운데 으뜸이신 분 앞에서 사자처럼 포효하겠습니다.”

Anujānāhi me ayye, icche sāvatthi gantave; Sīhanādaṁ nadissāmi, buddhaseṭṭhassa santike”.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는 자신을 이끌어 준 나이 든 여성 수행자에게 사왓티로 가도 좋다는 허락을 청합니다. 가서 깨달은 이들 가운데 으뜸이신 부처님 앞에서 사자처럼 포효하겠다고 합니다. 사자의 포효는 두려움 없이 자신이 이룬 것을 밝히는 당당한 선언을 가리킵니다. 옛 주석서도 이 말을 완전히 깨달았음을 밝히는 일로 풀이합니다. 앞에서 나이 든 여성 수행자에게 세 가지 앎을 얻었다고 알린 순다리가, 이제 그 성취를 부처님 앞에서 밝히려 합니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지 함께 담은 짧은 청입니다.

묵상

순다리는 “사자처럼 포효하겠습니다”라고 말해요. 내가 애써 이룬 것을 누군가 앞에서 떳떳이 밝히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 말을 언제, 누구 앞에서 하면 편안할지 살펴보아도 좋아요. 아직 밝힐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 보세요.

“순다리야, 황금빛을 띠고 금빛 살갗을 지니신 분, 길들지 않은 이들을 길들이는 분, 어디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 그 스승을 뵈어라.”

“Passa sundari satthāraṁ, hemavaṇṇaṁ harittacaṁ; Adantānaṁ dametāraṁ, sambuddhamakutobha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사왓티로 가게 해 달라고 청했던 순다리가 마침내 부처님을 마주하는 대목입니다. 이 노래에는 말하는 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옛 주석서는 순다리가 가르침을 펴는 자리에 앉으신 부처님을 보고 큰 기쁨에 차서 자기 자신을 부르며 한 말로 풀이합니다. 순다리는 스승을 황금빛을 띠고 금빛 살갗을 지니신 분, 길들지 않은 이들을 길들이는 분, 어디에서도 두려움이 없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으로 그립니다.

묵상

순다리는 마침내 스승을 뵙고 기쁨에 차 스스로를 불러요. “길들지 않은 이들을 길들이는 분”이라는 말에서 어떤 모습이 그려지나요? 거칠던 내 마음이 누군가의 곁에서 누그러졌던 때가 있다면, 그때 무엇이 나를 움직였는지 떠올려 보세요.

“다가오는 순다리를 보십시오. 온전히 풀려나 집착의 토대가 없고 탐냄을 떠나 매임에서 벗어났으며 할 일을 마치고 흘러드는 것이 없습니다.”

“Passa sundarimāyantiṁ, vippamuttaṁ nirūpadhiṁ; Vītarāgaṁ visaṁyuttaṁ, katakiccamanāsav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 노래에는 말하는 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옛 주석서는 부처님께 다가간 순다리가 자기 이름을 들어 스스로를 가리키며 한 말로 풀이합니다. 순다리는 기쁨에 차서 자신이 이룬 것을 밝힙니다. 온전히 풀려남, 집착의 토대가 없음, 탐냄을 떠남, 매임에서 벗어남, 할 일을 마침, 흘러드는 것이 없음을 차례로 말합니다. 순다리가 자신을 소개하며 드는 것은 모두 마음에서 끝낸 일들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사자처럼 포효하겠다던 말이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묵상

순다리는 부처님 앞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며, 마음에서 끝낸 일들로 스스로를 소개해요. 나를 소개할 때 주로 무엇을 먼저 말하나요? 내가 줄여 온 해로움이나 키워 온 자유로 나를 소개해 본다면 어떤 말이 나올까요? 작은 것이어도 괜찮으니 하나 적어 보세요.

“바라나시에서 길을 나서 당신 곁으로 왔습니다. 위대한 영웅이여, 당신의 제자 순다리가 당신의 발에 절합니다.”

Bārāṇasito nikkhamma, tava santikamāgatā; Sāvikā te mahāvīra, pāde vandati sundarī.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는 부처님 앞에서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밝힙니다. 바라나시를 떠나 부처님 곁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제자 순다리라 일컬어 발에 절합니다. 옛 주석서는 이 순다리가 어디서 온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답하려는 말로 풀이합니다. 바라나시에서 사왓티까지 와서 스승 앞에 선 사람이 자기가 누구의 가르침을 따랐는지 분명히 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당신의 제자 순다리”라고 자신을 밝히는 말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내가 기꺼이 누군가에게 배우는 사람이 되었던 때를 떠올려 보면, 무엇을 따르고 무엇을 스스로 살펴보았나요? 제자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배움을 주고받은 동료를 떠올려 보세요.

“당신은 부처님이시고 스승이십니다. 브라흐마나여, 나는 당신의 친딸입니다. 당신의 입에서 태어나 할 일을 마치고 흘러드는 것이 없습니다.”

Tuvaṁ buddho tuvaṁ satthā, tuyhaṁ dhītāmhi brāhmaṇa; Orasā mukhato jātā, katakiccā anās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순다리는 부처님께 “당신은 부처님이시고 스승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인 수자따의 딸로 태어난 순다리가, 이제 부처님을 ‘브라흐마나’라 높여 부르며 자신이 그분의 친딸이라고 말합니다. 입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부처님의 입에서 나온 가르침을 듣고 새로 태어났음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끝으로 순다리는 할 일을 마치고 흘러드는 것이 없다고 밝힙니다.

묵상

순다리는 스스로를 부처님의 입에서 태어난 친딸이라고 불러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새로 태어난 듯 달라졌던 때가 있었나요? 핏줄이 아니어도 나를 깊이 길러 준 가르침이나 사람이 있다면 떠올려 보세요. 가족이라는 말이 편치 않다면, 내 삶의 방향을 바꾼 문장 하나를 적어 보세요.

“훌륭한 이여, 그대를 환영한다. 그대는 결코 잘못 온 것이 아니다. 길들여진 이들은 이처럼 스승의 발에 절하러 온다. 그들은 탐냄을 떠나 매임에서 벗어났으며 할 일을 마치고 흘러드는 것이 없다.”

“Tassā te svāgataṁ bhadde, tato te adurāgataṁ; Evañhi dantā āyanti, satthu pādāni vandikā; Vītarāgā visaṁyuttā, katakiccā anās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4 순다리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처님은 순다리가 온 것을 반기며 결코 잘못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길들여진 이들은 순다리처럼 스승의 발에 절하러 온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탐냄을 떠나 매임에서 벗어났고, 할 일을 마쳐 흘러드는 것이 없는 이들입니다. 앞에서 순다리가 자신을 소개하며 쓴 말이 부처님의 답에 그대로 다시 나옵니다. 이 답으로 순다리의 방문이 받아들여집니다.

묵상

“그대는 결코 잘못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어렵게 택한 길에서 누군가 내 자리를 인정해 준 기억을 찾아보세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에게 여기 있어도 된다고 스스로 말해 보세요.

70 대장장이의 딸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수바의 게송 29구절

스승 앞에서 출가의 이유와 해방의 성취를 차례로 노래합니다.

“나는 젊고 깨끗한 옷을 입던 시절에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게으르지 않게 지낸 나는 진리를 꿰뚫었습니다.”

“Daharāhaṁ suddhavasanā, yaṁ pure dhammamassuṇiṁ; Tassā me appamattāya, saccābhisamayo ahu.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대장장이의 딸 수바는 자신의 노래를 젊은 시절의 기억으로 시작합니다. 젊고 깨끗한 옷을 입던 그때 가르침을 들었고, 그 뒤 게으르지 않게 지내는 동안 진리를 꿰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들은 가르침을 흘려보내지 않고 이어 간 일이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묵상

수바는 젊은 시절에 들은 가르침을 게으르지 않게 이어 간 끝에 진리를 꿰뚫었다고 해요. 예전에 들은 말이 시간이 지나 새롭게 다가온 적이 있나요? 지금 마음에 남아 있는 말이 있다면 하나만 골라 곁에 두어 보세요.

그 뒤 모든 감각적 욕망에 대해 깊은 싫증을 느꼈습니다. 내가 있다는 몸·자아(삿까야)에서 위험을 보고 오직 집을 떠나 욕망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습니다.

Tatohaṁ sabbakāmesu, bhusaṁ aratimajjhagaṁ; Sakkāyasmiṁ bhayaṁ disvā, nekkhammameva pīhaye.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진리를 꿰뚫은 뒤 수바는 모든 감각적 욕망에 깊은 싫증을 느꼈습니다. ‘나’라고 여기는 몸과 마음에서 위험을 보았고, 오직 집을 떠나 욕망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꿰뚫은 일이 즐거움을 대하는 마음을 바꾸었고, 몸과 마음에서 본 위험이 집을 떠나려는 바람으로 이어졌습니다.

묵상

수바는 진리를 꿰뚫은 뒤 모든 감각적 욕망에 깊은 싫증을 느꼈다고 해요. 오래 좋아하던 것이 어느 순간 전처럼 끌리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그때 내 안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떠올려 보세요.

나는 친족 무리와 종과 일꾼들,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기쁨을 주던 마을과 밭들을 버렸습니다.

Hitvānahaṁ ñātigaṇaṁ, dāsakammakarāni ca; Gāmakhettāni phītāni, ramaṇīye pamodite.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친족 무리, 종과 일꾼에 이어 풍요롭고 아름다운 마을과 밭까지 버렸다고 하나씩 꼽습니다. 집을 떠나 욕망에서 벗어나겠다는 바람이 실제 생활에서는 관계와 일손과 땅을 내려놓는 이별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버린 것들을 꼽는 이 게송은 이어지는 대목의 ‘집을 떠났습니다’까지 한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수바는 친족과 종과 일꾼, 풍요로운 마을과 밭을 뒤에 두고 떠났어요. 모든 것을 두고 떠나지 않더라도, 지금 곁에 있는 것들 가운데 꼭 필요해서 지니는 것과 익숙해서 붙들고 있는 것을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나눈 뒤 마음이 어떤지도 함께 살펴보세요.

나는 적지 않은 재산을 버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집을 나와 잘 밝혀진 참된 가르침 안에 들어왔습니다.

Pahāyahaṁ pabbajitā, sāpateyyamanappakaṁ; Evaṁ saddhāya nikkhamma, saddhamme suppavedite.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적지 않은 재산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집을 나와 잘 밝혀진 참된 가르침 안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재산이 적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면서, 버린 자리에 새 길이 놓였음을 보여 줍니다. 넉넉한 소유가 있었는데도 믿음을 따라 스스로 나선 선택입니다.

묵상

수바는 적지 않은 재산을 버리고 믿음으로 집을 나섰다고 해요. 무언가를 내려놓고 새로 시작한 적이 있다면, 그때 나를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곁에서 나를 받쳐 준 믿음이나 사람이 있었다면 하나 떠올려 보세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를 바라는 내가 이미 버린 금과 은을 다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Netaṁ assa patirūpaṁ, Ākiñcaññañhi patthaye; Yo jātarūpaṁ rajataṁ, Chaḍḍetvā punarāgame.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신이 이미 버린 금과 은을 다시 받는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으려는 바람과 이미 버렸다는 사실이 그 근거입니다. 집에서 누리던 재산으로 돌아가는 일이 집을 떠날 때 세운 방향과 맞지 않음을 스스로 확인하며, 되돌아갈 길을 닫습니다.

묵상

수바는 이미 버린 금과 은을 다시 받는 일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요. 어렵게 내려놓은 것을 편의나 주변의 권유 때문에 다시 집어 들고 싶었던 때가 있나요?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것과 흔들리게 한 것을 나란히 떠올려 보세요.

은이든 금이든 깨달음으로도 평화로도 이끌지 않습니다. 수행자에게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이들의 재산도 아닙니다.

Rajataṁ jātarūpaṁ vā, na bodhāya na santiyā; Netaṁ samaṇasāruppaṁ, na etaṁ ariyaddh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금과 은이 깨달음으로도 평화로도 이끌지 못하고,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거룩한 이들의 재산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밝힌 거절에 이유를 붙이는 대목입니다. 집을 떠난 수행자의 삶에 금과 은이 설 자리가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묵상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와 깨달음이나 평화처럼 돈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나누어 볼 수 있나요? 비용을 치르고도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필요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살펴볼까요?

그것은 욕심을 부르고 사람을 취하게 하며 어리석게 하고 때를 더욱 끼게 합니다. 걱정이 따르고 수고가 많으며 그 안에는 변함없이 머무는 것이 없습니다.

Lobhanaṁ madanañcetaṁ, mohanaṁ rajavaḍḍhanaṁ; Sāsaṅkaṁ bahuāyāsaṁ, natthi cettha dhuvaṁ ṭhiti.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금과 은이 욕심을 부르고 사람을 취하게 하며, 어리석게 만들고 때를 더 끼게 한다고 말합니다. 걱정이 따르고 수고가 많으며, 그 안에 변함없이 머무는 것은 없다고 덧붙입니다. 금과 은이 마음을 흐리고 수고를 늘리는 면을 하나하나 들어, 거기에 평화를 맡기지 않는 까닭을 밝힙니다.

묵상

수바는 금과 은에 걱정과 수고가 따르고 변함없이 머무는 것이 없다고 해요. 가진 것을 지키느라 마음이 무거워진 적이 있나요? 그것이 내게 준 것과 내게서 가져간 것을 함께 헤아려 보세요.

거기에 빠져 깨어 있지 못하고 마음이 더러워진 사람들은 서로 맞서며 온갖 다툼을 일으킵니다.

Ettha rattā pamattā ca, saṅkiliṭṭhamanā narā; Aññamaññena byāruddhā, puthu kubbanti medhag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금과 은에 빠져 깨어 있지 못하고 마음이 더러워진 사람들이 서로 맞서며 온갖 다툼을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게송의 ‘거기’는 앞에서 말한 금과 은을 가리킵니다. 재물에 빠진 마음이 사람 사이의 다툼으로 번지는 모습을 그립니다.

묵상

돈이나 재산을 둘러싼 다툼에서 먼저 무너지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내 몫을 얻는 일보다 관계를 지키는 쪽으로 풀었던 경험이 있다면 어떤 원칙이 도움이 되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죽임과 감금과 괴롭힘, 손실과 슬픔과 통곡이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에 깊이 빠진 이들에게 많은 재난이 보입니다.

Vadho bandho parikleso, jāni sokapariddavo; Kāmesu adhipannānaṁ, dissate byasanaṁ bah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죽임, 감금, 괴롭힘, 손실, 슬픔, 통곡을 하나씩 꼽은 뒤, 감각적 욕망에 깊이 빠진 이들에게 이런 재난이 많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말한 다툼에 이어, 욕망에 빠진 삶에 어떤 폭력과 상실이 따라오는지 감추지 않고 보여 줍니다.

묵상

죽임과 감금에서 슬픔과 통곡까지 이어지는 목록을 읽으면 무엇이 먼저 마음에 걸리나요? 무언가를 몹시 원하던 때, 그 바람 때문에 나나 주변 사람이 잃은 것이 있었나요? 읽다가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면 잠시 멈추고 지금 있는 곳이 안전한지 먼저 살펴보세요.

친족들이여, 어째서 원수처럼 나를 감각적 욕망에 묶으려 합니까? 내가 집을 떠났고 감각적 욕망에서 위험을 보는 줄 알지 않습니까?

Taṁ maṁ ñātī amittāva, kiṁ vo kāmesu yuñjatha; Jānātha maṁ pabbajitaṁ, kāmesu bhayadassin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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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재난을 하나씩 꼽은 수바는 친족들에게 묻습니다. 어째서 원수처럼 자신을 감각적 욕망에 묶으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집을 떠났고 감각적 욕망에서 위험을 본다는 것을 친족들도 알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가까운 친족의 권유를 원수가 하는 일에 견주며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같은 물음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묵상

가까운 사람의 권유가 원하지 않는 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나요? 반대로 내가 돕는다고 한 말이 상대가 분명히 고른 길을 가로막은 적은 없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가족의 압력 앞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선이 있다면 한 문장으로 적어 보세요.

화폐와 금으로는 흘러드는 것들이 다하지 않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원수이며 살해자이고 적대하는 세력이며 가시에 묶는 줄입니다.

Na hiraññasuvaṇṇena, parikkhīyanti āsavā; Amittā vadhakā kāmā, sapattā sallabandhan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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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친족들에게 이어서, 화폐와 금으로는 마음에 흘러드는 것이 다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을 원수, 살해자, 적대하는 세력, 가시에 묶는 줄에 견줍니다. 앞에서 수바는 이미 버린 금과 은을 다시 가지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재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마음이 풀려나는 일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친족들에게 밝히는 대목입니다.

묵상

“가시에 묶는 줄”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경험이 있나요? 도움을 받아 그 매듭을 푸는 길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친족들이여, 어째서 원수처럼 나를 감각적 욕망에 묶으려 합니까? 내가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겉옷을 두른 줄 알지 않습니까?

Taṁ maṁ ñātī amittāva, kiṁ vo kāmesu yuñjatha; Jānātha maṁ pabbajitaṁ, muṇḍaṁ saṅghāṭipāru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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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친족들에게 같은 물음을 다시 던집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겉옷을 두른 것을 친족들도 알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앞에서는 감각적 욕망에서 위험을 보는 마음을 들었고, 여기서는 깎은 머리와 겉옷이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을 듭니다. 가족이 권하는 삶과 자신이 선택한 삶 사이에 선을 긋는 대목입니다.

묵상

머리를 깎고 옷까지 바꾸었는데도 이전으로 돌아오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거꾸로, 바뀐 누군가를 내가 옛 모습으로만 대했던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얻어 모은 남은 음식과 버려진 천으로 지은 옷, 이것이 내게 어울리며 집 없는 삶을 받쳐 주는 것입니다.

Uttiṭṭhapiṇḍo uñcho ca, paṁsukūlañca cīvaraṁ; Etaṁ kho mama sāruppaṁ, anagārūpaniss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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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화폐를 물리친 뒤 수바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말합니다. 먹을 것은 여기저기서 얻어 모은 남은 음식이고, 입을 것은 버려진 천으로 지은 옷입니다. 이 둘이 자신에게 어울리며 집 없는 삶을 받쳐 준다고 합니다. 부유했던 삶에서 아주 단출한 생활로 옮겨 온 사람이 그 생활을 스스로 알맞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남은 음식과 버려진 천이 “내게 어울린다”는 말에서 부족함이 느껴지나요, 넉넉함이 느껴지나요? 내 생활을 실제로 받쳐 주는 최소한의 것은 무엇인지 적어 볼 수 있을까요?

큰 선견자들은 하늘의 것이든 인간의 것이든 감각적 욕망을 토해 냈습니다. 안전한 곳에서 풀려난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행복에 이르렀습니다.

Vantā mahesīhi kāmā, ye dibbā ye ca mānusā; Khemaṭṭhāne vimuttā te, pattā te acalaṁ sukh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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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자신의 검소한 생활에서 눈을 돌려 큰 선견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늘의 욕망이든 인간의 욕망이든 모두 토해 내고, 안전한 곳에서 풀려나 흔들리지 않는 행복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욕망을 놓은 사람들이 무엇을 얻었는지를 앞선 이들의 모습으로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묵상

하늘의 즐거움까지 “토해 냈다”는 것은 더 좋은 즐거움으로 갈아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잠깐의 기분에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에 기대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경험이 없다면 마음이 놓였던 작은 순간부터 떠올려 보세요.

나는 감각적 욕망과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는 아무 피난처도 찾을 수 없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원수이며 살해자이고 불덩이처럼 괴롭습니다.

Māhaṁ kāmehi saṅgacchiṁ, yesu tāṇaṁ na vijjati; Amittā vadhakā kāmā, aggikkhandhūpamā duk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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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과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는 아무 피난처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한 대로 욕망을 원수와 살해자라 부르고, 여기에 불덩이처럼 괴롭다는 비유를 더합니다. 피난처 없는 곳을 멀리하려는 바람과 세 가지 비유가 한 노래에 함께 놓여 있습니다.

묵상

불덩이처럼 괴롭고 피난처도 없다는 말이 어떤 경험과 닿나요? 위안을 얻으려 했지만 오히려 더 불안해진 행동이 있었다면 그것을 알아차려 볼 수 있을까요? 당장 끊기 어렵다면 불이 번지는 때와 잠시 식는 때를 구별해 보는 데서 시작해 보세요.

감각적 욕망은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두려운 것입니다. 괴로움과 가시가 가득하고 깊이 빠지는 험한 곳이며 어리석음으로 들어가는 큰 문입니다.

Paripantho esa bhayo, savighāto sakaṇṭako; Gedho suvisamo ceso, mahanto mohanāmuk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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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을 두려운 것이라 부르고,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괴로움과 가시가 가득한 곳, 깊이 빠지는 험한 곳, 어리석음으로 들어가는 큰 문에 견줍니다. 앞의 노래가 욕망의 괴로움을 말했다면 이 노래는 그 위험을 길과 땅의 모습으로 늘어놓습니다.

묵상

가시밭과 험한 곳과 큰 문 가운데, 무언가에 빠져드는 내 모습과 닮은 것이 있나요? 깊이 빠진 뒤보다 문턱에서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가 있는지 살펴볼까요? 신호를 놓친 날에도 자신을 탓하기보다 다음 문턱을 기억해 두세요.

감각적 욕망은 무시무시한 재난이며 독사의 머리와 같습니다. 어리석은 이들, 눈먼 여느 사람들이 그것을 기뻐합니다.

Upasaggo bhīmarūpo, kāmā sappasirūpamā; Ye bālā abhinandanti, andhabhūtā puthujjan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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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이 무시무시한 재난이며 독사의 머리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기뻐하는 이들은 어리석은 이들, 곧 눈먼 여느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욕망이 즐거워 보여도 독사의 머리처럼 다가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묵상

독사의 머리 같은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위험을 모르는 걸까요, 알면서도 끌리는 걸까요? 해로운 결과를 알기 전에 좋아했던 것이 있다면, 알고 난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여전히 끌린다면 알면서도 끌릴 수 있다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보세요.

세상에는 감각적 욕망의 진흙에 붙잡힌 지혜 없는 존재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은 태어남과 죽음의 끝을 알지 못합니다.

Kāmapaṅkena sattā hi, bahū loke aviddasū; Pariyantaṁ na jānanti, jātiyā maraṇassa ca.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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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의 진흙에 붙잡힌 지혜 없는 존재들이 세상에 많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태어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일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앞에서 욕망을 불덩이와 독사의 머리에 견준 데 이어, 여기서는 사람을 붙잡아 두는 진흙에 견줍니다.

묵상

진흙은 발버둥칠수록 더 붙들기도 합니다. 많은 존재가 같은 진흙에 붙잡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비슷한 어려움을 안전하게 나눌 사람이나 모임이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혼자만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만 마음에 남겨 두세요.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 때문에 나쁜 곳으로 가는 길을 택합니다. 참으로 많은 이가 자신에게 병을 가져오는 길을 걷습니다.

Duggatigamanaṁ maggaṁ, manussā kāmahetukaṁ; Bahuṁ ve paṭipajjanti, attano rogamāva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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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진흙에 붙잡힌 존재들을 말한 수바는, 사람들이 감각적 욕망 때문에 나쁜 곳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고 말합니다. 나쁜 곳은 죽은 뒤에 태어나는 괴로운 세계를 가리킵니다. 수바는 참으로 많은 이가 그 길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병을 가져온다고 덧붙입니다. 욕망 때문에 고른 길이 괴로움으로 이어지는 순서를 게송이 그대로 보여 줍니다.

묵상

“자신에게 병을 가져오는 길”을 걷는 사람을 탓하기보다, 그 사람이 왜 그 길에 끌렸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결과를 알면서도 되풀이한 선택이 있다면, 그 앞에 어떤 필요나 아픔이 있었는지 살펴보세요.

이처럼 감각적 욕망은 원수를 낳고 괴롭히며 마음을 더럽힙니다. 세상의 미끼로 존재들을 묶고 죽음에 결박합니다.

Evaṁ amittajananā, tāpanā saṅkilesikā; Lokāmisā bandhanīyā, kāmā maraṇabandhan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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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이 원수를 낳고, 괴롭히고, 마음을 더럽힌다고 앞의 말을 잇습니다. 욕망은 세상의 미끼로 존재들을 묶어 죽음의 결박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노래는 ‘이처럼’으로 시작해, 앞에서 늘어놓은 욕망의 위험을 한데 모아 말합니다.

묵상

미끼는 원하는 것을 보여 주면서 갈고리를 감춥니다.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제안 뒤에 있던 비용이나 구속을 뒤늦게 알아챈 적이 있나요? 다음 선택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보상과 뒤에 오는 조건을 함께 읽어 볼 수 있을까요?

감각적 욕망은 미치게 하고 부추기며 마음을 짓밟습니다. 존재들을 더럽히려고 마라가 재빨리 펼친 올가미입니다.

Ummādanā ullapanā, kāmā cittappamaddino; Sattānaṁ saṅkilesāya, khippaṁ mārena oḍḍi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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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이 마음을 미치게 하고 부추기며 짓밟는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 욕망이 존재들을 더럽히려고 마라(사람을 욕망과 죽음에 묶어 두려는 존재)가 재빨리 펼친 올가미라고 합니다. 충동은 내가 자유롭게 고른 것처럼 느껴져도 어느새 마음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수바는 그 모습을 올가미에 빗대어 들려줍니다.

묵상

“마음을 짓밟는다”는 말은 즐거움이 어느 순간 주도권을 가져가는 과정을 어떻게 보여 주나요? 흥분이 지나간 뒤 내 마음이 작아지거나 흐려졌던 일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때 회복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 있다면 하나만 찾아 적어 보세요.

감각적 욕망은 위험이 끝이 없고 괴로움이 많으며 지독한 독입니다. 만족은 적게 주고 다툼을 일으키며 밝고 유익한 성질들을 말려 버립니다.

Anantādīnavā kāmā, bahudukkhā mahāvisā; Appassādā raṇakarā, sukkapakkhavisosan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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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의 해로움을 여섯 가지로 말합니다. 위험이 끝이 없고, 괴로움이 많고, 지독한 독이고, 만족은 적게 주고, 다툼을 일으키고, 밝고 유익한 성질들을 말려 버린다고 합니다. 누리는 즐거움은 적은데 그 대가로 다툼이 생기고 마음의 좋은 성질이 메말라 갑니다.

묵상

“만족은 적게 주고”라는 말은 끝없는 위험이나 지독한 독이라는 말보다 일상에 더 가깝게 다가오나요? 많이 원해서 얻었는데도 만족이 짧았던 때가 있었다면, 다음 욕구가 얼마나 빨리 생겼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얻은 기쁨을 부정하지 말고, 그 기쁨이 얼마나 이어졌는지만 있는 그대로 살펴보세요.

감각적 욕망 때문에 이런 재난을 불러온 나는 늘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기뻐하며 다시는 그 욕망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Sāhaṁ etādisaṁ katvā, byasanaṁ kāmahetukaṁ; Na taṁ paccāgamissāmi, nibbānābhiratā sad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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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감각적 욕망 때문에 이런 재난을 불러왔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합니다. 그리고 늘 고요히 꺼짐을 기뻐하며 그 욕망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고요히 꺼짐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이 꺼진 평온을 가리킵니다. 직접 겪어 알게 된 위험이 앞으로 갈 길을 정해 줍니다.

묵상

“다시는 그 욕망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은 과거를 지우려는 말일까요, 배운 것을 잊지 않겠다는 말일까요? 내가 치른 대가를 기억하면서도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선을 긋는 방법이 있을까요? 되돌아간 적이 있더라도 배움이 사라지지는 않으니 다시 고를 여지를 남겨 두세요.

감각적 욕망 때문에 싸움을 치른 나는 서늘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결박이 다하도록 게으르지 않고 지내겠습니다.

Raṇaṁ karitvā kāmānaṁ, sītibhāvābhikaṅkhinī; Appamattā vihassāmi, sabbasaṁyojanakkhaye.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감각적 욕망 때문에 싸움을 치른 수바는 이제 서늘함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결박이 다하도록 게으르지 않고 지내겠다고 밝힙니다. 욕망으로 뜨거웠던 지난 싸움과 서늘함을 바라는 지금이 마주 놓입니다. 수바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 서늘함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려 합니다.

묵상

뜨거운 싸움 뒤에 “서늘해지기를” 바란다는 말은 몸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갈등을 더 세게 밀어붙이는 대신 열을 낮춰 주었던 행동이나 환경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지금 마음이 뜨겁다면 결론을 내리기 전에 물을 한 잔 마시거나 잠시 거리를 두어 보세요.

“슬픔 없고 티 없으며 안전하고 곧은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아리야 앗탕기까 막가), 큰 선견자들이 건넌 그 길을 나도 따라갑니다.”

Asokaṁ virajaṁ khemaṁ, ariyaṭṭhaṅgikaṁ ujuṁ; Taṁ maggaṁ anugacchāmi, yena tiṇṇā mahesino”.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긴 이야기를 마치며 자신이 따라가는 길을 말합니다. 그 길은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입니다. 슬픔이 없고 티가 없으며 안전하고 곧은 이 길로 큰 선견자들이 건너갔습니다. 욕망의 위험을 피하겠다는 다짐이 실제로 걸을 수 있는 길과 앞서 간 이들의 본보기로 이어집니다.

묵상

“나도 따라갑니다”라는 말은 혼자 새 길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나요? 앞서 간 이들의 길 가운데 지금 확인해 보고 싶은 한 걸음은 무엇일까요? 따를 전통이 마땅치 않다면 해로움을 줄이고 마음을 또렷하게 하는 기준을 하나만 골라 보세요.

“가르침에 굳게 선 대장장이의 딸, 이 수바를 보십시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나무 아래에서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있습니다.”

“Imaṁ passatha dhammaṭṭhaṁ, subhaṁ kammāradhītaraṁ; Anejaṁ upasampajja, rukkhamūlamhi jhāyati.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 대목에서는 다른 사람이 말합니다. 가르침에 굳게 선 대장장이의 딸 수바를 보라고 청합니다. 수바는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 나무 아래에서 깊은 집중에 들어 있습니다. 친족들에게 긴 이야기를 들려준 수바가 이제 고요한 곳에 앉아 직접 마음을 닦고 있습니다.

묵상

긴 이야기 끝에 실제로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수바의 모습은 말과 삶이 이어지는 것을 어떻게 보여 주나요? 내가 소중하다고 말한 가치가 일정이나 행동에 자리 잡은 순간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아직 자리가 없다면 그것을 위한 시간을 몇 분 마련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물어보세요.

집을 떠난 지 오늘로 여드레인 그는 믿음을 지녀 참된 가르침을 빛냅니다. 웃빨라완나의 지도를 받아 세 가지 앎을 갖추고 죽음을 이긴 이가 되었습니다.

Ajjaṭṭhamī pabbajitā, saddhā saddhammasobhanā; Vinītuppalavaṇṇāya, tevijjā maccuhāyinī.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를 보라고 청한 이는 이어서 집을 떠난 지 오늘로 여드레라는 짧은 기간과 여성 수행자 웃빨라완나의 지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수바가 세 가지 앎을 갖추고 죽음을 이긴 이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믿음을 지닌 수바가 좋은 스승을 만나 짧은 기간에 열매를 맺었습니다.

묵상

“오늘로 여드레”라는 짧은 기간이 놀랍게 느껴져도 내 속도와 견줄 이유는 없어요. 알맞은 안내와 무르익은 조건이 만나면 무엇이 가능해지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스스로 더디다고 느낀다면 스승, 시간, 안전 가운데 지금 무엇이 먼저 필요한지 살펴보세요.

“그는 종살이에서 풀리고 빚이 없으며 감각 기능을 닦은 여성 수행자(빅쿠니)입니다. 모든 멍에에서 벗어나 할 일을 마치고 흘러드는 것이 없습니다.”

Sāyaṁ bhujissā anaṇā, bhikkhunī bhāvitindriyā; Sabbayogavisaṁyuttā, katakiccā anāsavā”.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를 찬탄하는 이는 그가 종살이에서 풀리고 빚이 없으며 감각 기능을 닦았다고 말합니다. 또 모든 멍에에서 벗어나 할 일을 마쳤고, 마음으로 흘러들어 흐리게 하는 것이 더는 없다고 합니다. 앞에서 재물을 마다했던 수바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와 마음의 온전함을 얻었습니다.

묵상

“종살이에서 풀리고 빚이 없다”는 말을 읽으면 마음이 풀려난 상태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갚아야만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보이지 않는 빚이 있다면, 실제 책임과 지나친 죄책감을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현실에 갚을 빚이 있더라도 그것을 도덕적 결함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그러자 존재들의 주인인 삭까가 신들의 무리와 함께 신통력으로 다가와 대장장이의 딸 수바에게 공손히 절했습니다.

Taṁ sakko devasaṅghena, upasaṅkamma iddhiyā; Namassati bhūtapati, subhaṁ kammāradhītar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3.5 대장장이의 딸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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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존재들의 주인인 삭까가 신들의 무리와 함께 신통력으로 다가와 대장장이의 딸 수바에게 절합니다. 신들 가운데서도 높은 삭까가 대장장이 집안에서 난 여성 수행자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삭까가 높이는 것은 흘러드는 것이 다한 수바의 마음입니다.

묵상

존재들의 주인 삭까가 “대장장이의 딸”에게 절하는 장면은 존중의 기준을 어디에 두나요? 사회적 배경 때문에 낮게 평가받던 사람의 지혜나 성품을 뒤늦게 알아본 적이 있나요? 나 역시 그런 평가를 받아 왔다면, 다른 사람의 무지가 내 값어치를 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71 지와까 망고숲의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수바의 게송 34구절

한 남자의 집요한 유혹에 몸의 실상과 자유를 밝히는 긴 문답입니다.

지와까의 아름다운 망고 숲으로 여성 수행자(빅쿠니) 수바가 가고 있을 때, 한 방탕한 남자가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자 수바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Jīvakambavanaṁ rammaṁ, Gacchantiṁ bhikkhuniṁ subhaṁ; Dhuttako sannivāresi, Tamenaṁ abravī subhā.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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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지와까의 망고 숲으로 가던 여성 수행자입니다. 그 길에서 한 방탕한 남자가 앞을 막아서고, 수바가 먼저 입을 엽니다. 이어지는 문답에서 남자는 긴 말로 수바를 거듭 유혹하고, 수바는 그 말을 반박합니다.

묵상

길을 가는 중에 누군가 앞을 막아서면 몸이 먼저 굳어지기도 해요. 그런 순간에 무엇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줄 수 있을지 떠올려 볼까요? 말을 받아 주는 일보다 그 자리를 벗어나는 일이 먼저일 때도 있어요. 지금 비슷한 상황에 있다면 주변 사람과 안전한 장소를 먼저 찾아보세요.

“내가 그대에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습니까? 벗이여, 집을 떠난 여성을 남자가 만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Kiṁ te aparādhitaṁ mayā, Yaṁ maṁ ovariyāna tiṭṭhasi; Na hi pabbajitāya āvuso, Puriso samphusanāya kappati.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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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남자에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길을 막느냐고 묻습니다. 이어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여성을 남자가 만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남자를 부르는 “벗이여”라는 말을 쓰지만 거절의 뜻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수바는 이유를 따지는 물음으로 시작해,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분명히 밝힙니다.

묵상

“만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긴 이유를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한 경계일까요? 내 몸이나 곁의 공간에 대해 싫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면, 그 말이 존중받았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존중받지 못했다면 그 잘못은 내 표현에 있지 않아요. 지금 필요한 도움과 거리를 스스로 골라 보세요.

잘 가신 분이 가르치신 이 훈련은 내 스승의 가르침에서 무겁게 여기는 것입니다. 나는 깨끗하고 티가 없는데 왜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습니까?

Garuke mama satthusāsane, Yā sikkhā sugatena desitā; Parisuddhapadaṁ anaṅgaṇaṁ, Kiṁ maṁ ovariyāna tiṭṭh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두 번째로 항의합니다. 잘 가신 분, 곧 부처님이 가르치신 훈련은 스승의 가르침에서 무겁게 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자신은 깨끗하고 티가 없는데 왜 길을 막느냐고 같은 질문을 되풀이합니다. 수바는 자신이 따르는 훈련과 자신의 마음 상태를 근거로 들어 남자에게 이유를 묻습니다.

묵상

싫다는 뜻에 더해 따르는 규범까지 설명해야 했던 적이 있나요? 이유를 충분히 말했는데도 상대가 듣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떠올려 볼까요? 자리를 떠나는 일과 도움을 청하는 일도 그 답에 넣어 보세요.

“마음이 흐린 그대가 흐리지 않은 나를, 욕정의 먼지를 지닌 그대가 먼지를 떠난 티 없는 나를, 모든 면에서 마음이 풀려난 나를 왜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습니까?”

Āvilacitto anāvilaṁ, Sarajo vītarajaṁ anaṅgaṇaṁ; Sabbattha vimuttamānasaṁ, Kiṁ maṁ ovariyāna tiṭṭh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가 남자에게 이어서 하는 말입니다. 수바는 마음이 흐린 사람과 흐리지 않은 사람, 욕정의 먼지를 지닌 사람과 먼지를 떠난 사람을 나란히 놓습니다. 흐리고 먼지를 지닌 쪽은 길을 막은 남자이고, 흐리지 않고 먼지를 떠난 쪽은 수바 자신입니다. 그러고는 모든 면에서 마음이 풀려난 자신을 왜 막느냐고 묻습니다.

묵상

수바는 흐린 마음과 흐리지 않은 마음을 나란히 놓아요. 무언가를 몹시 바라는 마음에 다른 사람의 뜻을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한 적이 있었나요? 원치 않는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상대의 흐린 마음을 이해해 주거나 고쳐 줄 몫까지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그대는 젊고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운데 집을 떠난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황토색 수행자 옷을 벗어 던지고 이리 와서 꽃 핀 숲에서 함께 즐깁시다.”

“Daharā ca apāpikā casi, Kiṁ te pabbajjā karissati; Nikkhipa kāsāyacīvaraṁ, Ehi ramāma supupphite v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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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번에는 남자가 말합니다. 수바가 젊고 흠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집을 떠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며, 황토색 수행자 옷을 벗고 꽃 핀 숲에서 자신과 즐기자고 권합니다. 남자는 수바의 젊음과 모습만 보고 수행의 뜻은 살피지 않습니다.

묵상

젊고 아름다운데 집을 떠난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은 수바의 선택을 겉모습 하나로 가볍게 다뤄요. 누군가 내 나이나 모습을 이유로 진지한 결정을 하찮게 여긴 적이 있었나요?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말에 어떻게 답하고 싶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내 선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꽃가루가 피어오르는 나무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집니다. 초봄은 즐거운 계절이니 이리 와서 꽃 핀 숲에서 함께 즐깁시다.

Madhurañca pavanti sabbaso, Kusumarajena samuṭṭhitā dumā; Paṭhamavasanto sukho utu, Ehi ramāma supupphite v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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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남자의 유혹이 이어집니다. 꽃가루가 피어오르는 나무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초봄은 즐거운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앞에서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해, 이리 와서 꽃 핀 숲에서 함께 즐기자고 합니다. 남자는 아름다운 계절을 함께 즐길 이유로 내세우고, 수바가 가려는 숲을 즐기는 자리로 바꾸어 말합니다.

묵상

초봄의 향기와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누군가와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좋은 분위기 때문에 내 경계가 흐려졌던 적이 있다면, 아름다움과 동의를 따로 떼어 볼 수 있을까요?

꼭대기에 꽃이 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포효하는 듯합니다. 그대 혼자 숲 깊이 들어간다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Kusumitasikharā ca pādapā, Abhigajjantiva māluteritā; Kā tuyhaṁ rati bhavissati, Yadi ekā vanamogahiss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남자는 꼭대기에 꽃이 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포효하는 듯하다고 그립니다. 그러고는 수바가 혼자 숲 깊이 들어가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남자는 혼자 있는 것을 쓸쓸한 일로 봅니다. 수바는 뒤이은 대답에서 사람 없는 빈 곳에 가서 즐겁게 지낸다고 말합니다.

묵상

남자는 혼자 숲에 들어가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고 말해요. 혼자 있는 것과 외로운 것은 같은 일일까요? 스스로 고른 고요가 편안했던 때를 기억해 볼까요? 혼자 있기가 불안한 사람이 안전한 동행을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워요. 어느 쪽이든 내가 편안한 쪽을 골라 보세요.

그 큰 숲에는 사나운 짐승 떼가 돌아다니고 발정한 수코끼리 때문에 들뜬 암코끼리들이 휘젓고 다닙니다. 그대는 벗도 없이 홀로 사람 없고 두려운 그 숲으로 가려 합니까?

Vāḷamigasaṅghasevitaṁ, Kuñjaramattakareṇuloḷitaṁ; Asahāyikā gantumicchasi, Rahitaṁ bhiṁsanakaṁ mahāva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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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남자는 사나운 짐승 떼와 들뜬 코끼리가 있는 두려운 숲을 말하며, 벗도 없이 홀로 가려 하느냐고 묻습니다. 걱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남자는 그 뒤에 자신과 함께 가자는 뜻을 깔고 있습니다. 수바가 겁을 먹도록 위험한 숲을 그리고, 동행이 없다는 점을 짚습니다. 정작 길을 막아 수바를 위협하고 있는 사람은 남자 자신입니다.

묵상

위험을 알리는 말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원치 않는 동행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압박인지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요? 안전에 대한 걱정이 현실적이어도 누구와 갈지는 당사자가 정해요. 도움을 건네면서 거절할 자유도 함께 준 사람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대는 반짝이는 금으로 만든 인형 같고 빛깔 고운 넝쿨 동산의 선녀처럼 거닙니다. 비할 데 없는 이여, 부드럽고 고운 까시 옷을 입으면 빛날 것입니다.

Tapanīyakatāva dhītikā, Vicarasi cittalateva accharā; Kāsikasukhumehi vaggubhi, Sobhasī suvasanehi nūp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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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수바를 반짝이는 금으로 만든 인형에 견주고, 빛깔 고운 넝쿨 동산의 선녀처럼 거닌다고 말합니다. 넝쿨 동산은 신들이 사는 하늘에 있다는 동산이고, 까시는 고운 천으로 이름난 곳입니다. 남자는 수바를 비할 데 없는 이라 부르며 고운 까시 옷을 입으면 빛날 것이라고 합니다. 수바가 입은 수행자 옷을 두고, 남자는 자신이 입히고 싶은 옷을 그려 보입니다. 그의 말은 수바의 겉모습에만 머뭅니다.

묵상

“금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칭찬 속에서 수바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나요? 칭찬처럼 들렸지만 내가 아닌 모습에 맞추라는 압박이었던 말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우리가 숲속에서 함께 산다면 나는 그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낀나리처럼 그윽한 눈을 지닌 이여, 내게는 그대보다 더 사랑스러운 생명이 없습니다.

Ahaṁ tava vasānugo siyaṁ, Yadi viharemase kānanantare; Na hi matthi tayā piyattaro, Pāṇo kinnarimandalocane.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지와까의 망고 숲으로 가던 여성 수행자 수바의 길을 한 건달이 막아서고, 꽃이 핀 숲에서 함께 놀자고 조릅니다. 그는 숲에서 함께 산다면 수바의 뜻을 따르겠다고 약속하고, 낀나리(산에 산다는 반은 사람, 반은 새인 요정)처럼 그윽한 눈을 지닌 수바보다 사랑스러운 생명은 없다고 말합니다. 수바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복종과 더없는 사랑을 내세워 다가서는 말입니다. 뜻을 따르겠다는 약속 속에서도 중심에 놓인 것은 남자 자신의 욕망이며, 수바가 그 감정을 책임질 까닭은 없습니다.

묵상

“그대의 뜻을 따르겠다”는 약속은 길을 막아선 행동 옆에서 어떻게 들리나요? 약속의 내용보다 이미 보인 행동을 보고 사람을 믿을지 정했던 때가 있다면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달콤한 말과 경계를 넘는 행동이 함께 온다면, 말보다 안전한 거리를 먼저 믿어 보세요.

내 말을 받아들인다면 집으로 와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바람 들지 않는 저택에 머무는 그대를 여인들이 시중들게 하겠습니다.

Yadi me vacanaṁ karissasi, Sukhitā ehi agāramāvasa; Pāsādanivātavāsinī, Parikammaṁ te karontu nāriyo.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의 길을 막아선 남자는 자기 말을 받아들이면 집으로 와서 행복하게 살라고 합니다. 바람 들지 않는 저택에 머물게 하고 여인들이 시중들게 하겠다고도 약속합니다.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수바를 다시 집 안의 안락한 삶으로 데려가려는 제안입니다. 홀로 숲에 들면 위험하다는 말을 명분으로 삼지만, 수바를 집과 남의 시중 속에 묶어 두려는 말이며 스스로 고른, 집을 떠난 삶과 맞서는 약속입니다. 이 모든 약속은 “내 말을 받아들인다면”이라는 조건에서 출발합니다.

묵상

저택과 시중을 내건 이 제안은 누구의 바람에서 나왔나요? 편안함을 주겠다는 말 뒤에 선택권을 넘기라는 요구가 따라왔던 때가 있다면, 그때 내가 정말 원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까시에서 난 고운 옷을 입으십시오. 꽃목걸이를 걸고 화장도 하십시오. 금과 보석과 진주로 온갖 장신구를 많이 만들어 주겠습니다.

Kāsikasukhumāni dhāraya, Abhiropehi ca mālavaṇṇakaṁ; Kañcanamaṇimuttakaṁ bahuṁ, Vividhaṁ ābharaṇaṁ karomi 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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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바의 길을 막아선 남자의 약속은 까시(오늘날 바라나시 일대)에서 난 고운 옷, 꽃목걸이와 화장, 금과 보석과 진주로 만든 온갖 장신구로 이어집니다. 남자는 이런 꾸밈을 수바가 고른 수행의 삶보다 값진 것처럼 내세웁니다. 수바가 버린 소유와 꾸밈을 되돌려 주겠다는 제안입니다. 값나가는 물건으로 유혹하면서, 집착에서 벗어난 수바를 다시 꾸미고 치장할 몸으로만 봅니다.

묵상

금과 보석과 진주가 한 사람의 분명한 거절을 바꿀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는 무엇을 놓치고 있나요? 이미 받은 것이 있어도 경계를 거둘 의무는 없어요. 선물을 받고 호의나 관계로 갚아야 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선물과 동의는 다르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을까요?

깨끗이 빤 고운 덮개를 씌우고 새 털 깔개와 솜 요를 깐 값비싼 침상에 오르십시오. 백단향으로 꾸며 향기가 그윽합니다.

Sudhotarajapacchadaṁ subhaṁ, Gonakatūlikasanthataṁ navaṁ; Abhiruha sayanaṁ mahārahaṁ, Candanamaṇḍitasāragandhik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의 길을 막아선 남자의 제안은 깨끗한 덮개와 새 털 깔개, 솜 요를 깔고 백단향으로 꾸민 값비싼 침상에 이릅니다. 성적인 초대가 어디서 이루어질지 구체적으로 그려 보이는 대목입니다. 촉감과 향기로 쾌락을 약속하면서도 수바의 뜻은 끝내 묻지 않습니다. 남자가 한 번 더 말을 이은 뒤, 수바는 이 몸에서 무엇을 본질로 여기느냐고 되묻습니다.

묵상

값비싼 침상과 좋은 향기는 동의 없는 초대에서 무엇을 가리고 있나요? 지금 위험한 만남 속에 있다면 예의를 지키기보다 그 자리를 떠나는 일이 먼저예요. 환경이 고급스럽거나 상대가 친절해서 불편한 느낌을 넘겨 버렸던 적이 있다면, 그때 몸이 보낸 신호를 이제는 믿어 볼 수 있을까요?

“물에서 솟아오른 푸른 연꽃이 사람 손을 타지 않듯이, 깨끗한 수행의 삶을 사는 그대도 아무와 나누지 않은 채 몸이 늙어 갈 것입니다.”

Uppalaṁ cudakā samuggataṁ, Yathā taṁ amanussasevitaṁ; Evaṁ tvaṁ brahmacārinī, Sakesaṅgesu jaraṁ gamiss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의 길을 막아선 남자는 긴 유혹을 마무리하며, 물에서 솟아올라 사람 손을 타지 않는 푸른 연꽃에 수바를 빗댑니다. 깨끗한 수행의 삶을 사는 수바도 아무와 나누지 않은 채 몸이 늙어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누지 않고 늙는 것을 아까운 손해처럼 그려, 수바가 성적 관계를 택하도록 압박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수바는 몸이 본디 썩고 부서지는 것임을 들어 되묻습니다.

묵상

“아무와 나누지 않은 채 몸이 늙는다”는 말은 수바의 몸을 누구의 것으로 여기고 있나요? 혼자 살거나 성적 관계 없이 사는 삶을 택하는 것도 온전한 선택이에요. 나이 들기 전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 시간표가 누구의 것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이 몸은 썩은 것으로 가득하고 끝내 화장터를 채우게 될, 부서지게 되어 있는 시신입니다.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본질이라 여겨 넋을 잃고 바라봅니까?”

“Kiṁ te idha sārasammataṁ, Kuṇapapūramhi susānavaḍḍhane; Bhedanadhamme kaḷevare, Yaṁ disvā vimano udikkhasi”.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길을 막아선 남자의 긴 유혹을 들은 수바는 이 몸이 썩은 것으로 가득하고 끝내 화장터를 채우게 될, 부서지게 되어 있는 시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가 여기서 무엇을 본질이라 여겨 넋을 잃고 바라보는지 되묻습니다. 남자가 탐내던 자기 몸이 썩고 부서질 것임을 그대로 드러내어, 자신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시선을 흔듭니다.

묵상

수바가 자기 몸을 이토록 거칠게 말한 것은 누구의 어떤 시선을 향한 말인가요? 누군가를 몸의 한 가지 특징으로만 보던 시선이 내게도 있었는지 알아차려 볼 수 있을까요?

“그대의 눈은 암사슴의 눈 같고 산속 낀나리의 눈과 같습니다. 그대의 두 눈을 보고 나니 내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 더욱 커집니다.”

“Akkhīni ca tūriyāriva, Kinnariyāriva pabbatantare; Tava me nayanāni dakkhiya, Bhiyyo kāmaratī pavaḍḍh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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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 몸에서 무엇을 본질이라 여겨 넋을 잃고 바라보느냐는 수바의 물음에, 길을 막아선 남자는 수바의 눈이라고 답합니다. 그 눈을 암사슴과 산속 낀나리(산에 산다는 반은 사람, 반은 새인 요정)의 눈에 빗대고, 그것을 보고 나니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이 더 커진다고 말합니다. 수바는 썩고 부서질 몸 전체를 들어 물었지만, 남자는 눈의 아름다움에 머물러 자기 안에서 커지는 욕망만 이야기합니다.

묵상

같은 몸을 두고 수바는 썩고 부서질 것을 말하고, 남자는 눈의 아름다움만 이야기해요. 두 사람은 각각 무엇을 보고 있나요? 내 말이 자꾸 외모 이야기로 돌아왔던 때가 있다면, 그 대화를 이어 갈지 끝낼지 누가 정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황금처럼 빛나는 티 없는 얼굴에서 그대의 눈은 푸른 연꽃 봉오리 같습니다. 그대의 두 눈을 보고 나니 내 감각적 흥분이 더욱 커집니다.

Uppalasikharopamāni te, Vimale hāṭakasannibhe mukhe; Tava me nayanāni dakkhiya, Bhiyyo kāmaguṇo pavaḍḍh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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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남자는 다시 수바의 눈을 칭찬합니다. 황금처럼 빛나는 티 없는 얼굴에서 눈이 푸른 연꽃 봉오리 같다고 하고, 그 눈을 보고 나니 감각적 흥분이 더 커진다고 앞의 말을 되풀이합니다. 욕망이 커진 까닭을 수바의 눈에서 찾는 말입니다. 그러나 수바는 처음 길을 막아선 그에게, 마음이 흐린 사람이 흐리지 않은 사람을 막아선다고 말했습니다.

묵상

“그대의 눈을 보고 내 흥분이 커졌다”는 말은 감정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고 있나요? 누군가 자기 욕망이나 행동을 내 외모 탓으로 돌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짊어질 몫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을까요? 그 일로 부끄러움이 올라온다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세요.

“그대가 멀리 떠나도 나는 그대를 떠올릴 것입니다, 속눈썹 길고 눈이 맑은 이여. 낀나리처럼 그윽한 눈을 지닌 이여, 내게는 그대의 눈보다 더 사랑스러운 눈이 없습니다.”

Api dūragatā saramhase, Āyatapamhe visuddhadassane; Na hi matthi tayā piyattaro, Nayanā kinnarimandaloc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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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바의 길을 막아선 남자는 긴 속눈썹에 맑은 눈을 지닌 수바가 멀리 떠나더라도 잊지 않고 떠올리겠다고 말합니다. 낀나리(산에 산다는 반은 사람, 반은 새인 요정)처럼 그윽한 그 눈보다 사랑스러운 눈은 없다며 자신의 집착을 이어 갑니다. 거절당한 뒤에도 기억과 사랑을 내세워 계속 붙드는 말입니다. 이어서 수바는 자기 안에 욕정이 뿌리째 뽑혀 남아 있지 않다며, 그 구애가 헛된 일이라고 답합니다.

묵상

남자가 붙잡고 있는 것은 수바의 무엇인가요? 누군가의 한 가지 모습을 마음속 그림으로 붙잡느라 그 사람의 실제 뜻을 놓친 적이 있다면, 그때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떠오르는 때가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모습과 살아 있는 그 사람을 나누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대는 길 아닌 길로 가려 합니다. 달을 장난감으로 삼으려 합니다. 메루산을 뛰어넘으려 합니다. 부처님의 자녀를 뒤쫓는 그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Apathena payātumicchasi, Candaṁ kīḷanakaṁ gavesasi; Meruṁ laṅghetumicchasi, Yo tvaṁ buddhasutaṁ maggay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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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남자가 수바의 눈을 칭찬하며 매달리자 수바가 답합니다. 남자의 행동을 길 아닌 길로 가려는 일, 달을 장난감으로 삼으려는 일, 메루산을 뛰어넘으려는 일에 빗댑니다. 메루산은 옛 인도 사람들이 세상 한가운데 솟아 있다고 여긴 큰 산입니다. 셋 모두 이룰 수 없는 일이며, 부처님의 자녀인 수바를 뒤쫓는 일도 그와 같습니다.

묵상

이룰 수 없는 일을 두고 계속 밀어붙였던 때가 있었나요? 상대가 분명히 거절했는데도 멈추지 못한 기억이 있다면, 그때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었는지 살펴보세요. 거절하는 쪽이었다면, 상대를 납득시켜야 할 책임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신들이 있는 이 세상 어디에도 이제 내게 욕정이 생길 곳은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길이 그것을 뿌리째 부수었기 때문입니다.

Natthi hi loke sadevake, Rāgo yatthapi dāni me siyā; Napi naṁ jānāmi kīriso, Atha maggena hato samūla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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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바는 신들이 있는 이 세상 어디에도 이제 자신에게 욕정이 생길 곳은 없다고 말합니다. 욕정이 어떤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까닭은 수행의 길이 그것을 뿌리째 부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수바의 마음에 욕정이 일기를 바라지만, 그 욕정은 수바에게서 뿌리째 사라졌으므로 그의 구애가 붙을 자리가 없습니다.

묵상

“어떤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말은 참고 눌러 둔 마음과 어떻게 다르게 들리나요? 예전에는 크게 흔들렸는데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런 변화가 아직 없다면, 흔들리면서도 나를 지켜 낸 순간을 찾아보세요.

욕정은 숯불 구덩이에서 내던진 불씨처럼 버려졌고 독이 든 그릇처럼 여겨졌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보지 못합니다. 길이 그것을 뿌리째 부수었기 때문입니다.

Iṅgālakuyāva ujjhito, Visapattoriva aggito kato; Napi naṁ passāmi kīriso, Atha maggena hato samūlako.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욕정을 숯불 구덩이에서 내던진 불씨와 독이 든 그릇에 빗댑니다. 이제 그것이 어떤 것인지 보지도 못한다고 하며, 수행의 길이 그것을 뿌리째 부수었다는 말을 다시 합니다. 욕정은 다시 주워 쓸 수 없는 위험한 물건처럼 버려졌습니다.

묵상

끝낸 관계나 습관에 다시 손대지 않으려고 지켜 온 선이 있나요? 작은 불씨를 다시 살리지 않으려고 했던 선택이 있다면 떠올려 보세요. 아직 불씨가 남아 있다면 혼자 감당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방법도 생각해 보세요.

그런 일을 깊이 헤아려 보지 않았거나 스승을 가까이 모신 적 없는 여인, 그런 여인이라면 유혹해 보십시오. 그러나 알고 있는 나를 상대로는 그대만 곤란해질 것입니다.

Yassā siyā apaccavekkhitaṁ, Satthā vā anupāsito siyā; Tvaṁ tādisikaṁ palobhaya, Jānantiṁ so imaṁ vihaññ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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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수바는 그런 일을 깊이 헤아려 보지 않았거나 스승을 가까이 모신 적 없는 여인이라면 유혹해 보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알고 있으므로 자기를 유혹하려는 남자만 곤란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수바는 스스로 헤아려 보았고 스승을 가까이 모신 자신에게 유혹이 통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묵상

수바는 자신이 알고 있기에 유혹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내 경계를 지켜 준 앎이나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만 거절은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해요.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앎이 부족했다며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 두세요.

나는 욕을 먹거나 공경을 받거나 즐겁거나 괴로울 때에도 알아차림을 놓지 않습니다. 조건 지어진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알기에 내 마음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Mayhañhi akkuṭṭhavandite, Sukhadukkhe ca satī upaṭṭhitā; Saṅkhatamasubhanti jāniya, Sabbattheva mano na limp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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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욕을 먹을 때와 공경을 받을 때, 즐거울 때와 괴로울 때에도 알아차림을 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조건 지어진 것, 곧 여러 조건이 모여 생겨난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알기에 마음이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의 비난과 칭찬도, 즐거움과 괴로움도 수바의 마음을 끌고 가지 못합니다.

묵상

욕을 먹을 때도 공경을 받을 때도 알아차림을 놓지 않으면, 비난과 칭찬을 대하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최근 들은 평가 하나가 마음을 크게 끌고 갔다면, 그 말과 내 가치 사이에 틈을 둘 수 있을까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워요. 끌려간 것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해 보세요.

나는 잘 가신 분의 제자이며 여덟 갈래 길의 수레를 타고 갑니다. 화살을 뽑았고 흘러드는 것도 없습니다. 빈 거처에 이르러 즐겁게 지냅니다.

Sāhaṁ sugatassa sāvikā, Maggaṭṭhaṅgikayānayāyinī; Uddhaṭasallā anāsavā, Suññāgāragatā ramāma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바는 자신을 잘 가신 분, 곧 부처님의 제자라고 밝히고, 여덟 갈래로 된 길을 수레 삼아 간다고 말합니다. 박혀 있던 화살을 뽑아냈고 마음을 흐리며 흘러드는 것도 없는 수바는 빈 거처에 이르러 즐겁게 지냅니다. 남자는 홀로 숲에 들어가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수바에게는 바로 그 빈 곳이 즐거움을 누리는 자리입니다.

묵상

“여덟 갈래 길의 수레”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 내가 가는 길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눈앞의 유혹이나 위협보다 내가 가려는 방향을 기억하고 고른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방향을 잃었다고 느껴진다면 잠시 멈추어 보세요.

나는 아름답게 채색한 인형과 나무로 만든 꼭두각시를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줄과 막대기에 묶여 여러 모양으로 춤추었습니다.

Diṭṭhā hi mayā sucittitā, Sombhā dārukapillakāni vā; Tantīhi ca khīlakehi ca, Vinibaddhā vividhaṁ panaccakā.

쿳다까 니까야 Thig 14.1 지와까 망고숲의 수바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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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자신의 몸을 설명하려고 먼저 한 장면을 들려줍니다. 아름답게 칠한 인형과 나무 꼭두각시가 줄과 막대기에 묶여 여러 모양으로 춤추는 모습입니다. 인형의 춤은 줄과 막대기에 매여 생겨나고, 이어지는 대목에서 이 비유가 몸으로 옮겨 갑니다.

묵상

색칠한 꼭두각시는 스스로 춤추는 것처럼 보여도 줄과 막대기에 매여 움직여요. 이 장면은 몸을 보는 눈을 어떻게 바꾸나요? 내 몸이 움직이는 데 기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 줄과 막대기를 빼내고 풀어 헤치고 허물어 흩어 버려 조각조각 나뉘면 찾을 것이 없는데 거기서 무엇에 마음을 붙이겠습니까?

Tamhuddhaṭe tantikhīlake, Vissaṭṭhe vikale parikrite; Na vindeyya khaṇḍaso kate, Kimhi tattha manaṁ nives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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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꼭두각시의 줄과 막대기를 빼내고, 풀어 헤치고 허물어 조각조각 흩어 놓으면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거기서 무엇에 마음을 붙이겠느냐고 묻습니다. 앞에서 든 꼭두각시의 비유를 하나하나 뜯어 살피는 대목입니다. 줄과 막대기를 걷어 내면 붙들 만한 인형이 남지 않듯, 몸에서도 붙들 것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묵상

줄과 막대기를 빼고 조각조각 흩어 놓으면 “인형”은 어디에 남아 있나요? 하나로 단단하게 느껴지는 나도 몸, 감정, 기억, 관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불안하게 느껴지면 지금의 안정감을 지키는 쪽에 머물러 보세요.

내 몸도 그 꼭두각시와 같습니다. 그 요소들 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소들 없이는 움직이지 않으니 거기서 무엇에 마음을 붙이겠습니까?

Tathūpamā dehakāni maṁ, Tehi dhammehi vinā na vattanti; Dhammehi vinā na vattati, Kimhi tattha manaṁ nives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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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앞에서 든 꼭두각시를 자기 몸에 견줍니다. 몸도 그것을 이루는 요소들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두 번 말하고, 그렇다면 거기서 무엇에 마음을 붙이겠느냐고 되묻습니다. 남자가 눈을 떼지 못하는 수바의 몸도 여러 요소가 모여 움직이는 것이어서, 그 안에 따로 붙들 것이 없습니다.

묵상

“내 몸도 그 꼭두각시와 같다”는 말을 들으면 내 몸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나요? 몸이 여러 조건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돌봄의 이유로 삼아 볼 수 있을까요? 몸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면 생각을 멈추고 발바닥의 감각이나 주변 사물을 살펴보세요.

벽에 노란 안료를 발라 그린 그림을 그대가 보았을 때 그 그림에 눈이 속았던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라는 인식은 쓸모가 없습니다.

Yathā haritālena makkhitaṁ, Addasa cittikaṁ bhittiyā kataṁ; Tamhi te viparītadassanaṁ, Saññā mānusikā niratthik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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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벽에 노란 안료로 그린 그림을 보고 눈이 속는 일에 빗대어 말합니다. 벽에 바른 안료에서 사람을 보듯, 남자가 수바의 몸에서 보는 모습도 잘못 본 것입니다. 그래서 수바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쓸모없다고 말합니다.

묵상

그림을 실물로 오인하듯, 마음이 만든 인상을 실제 사람이라고 믿은 적이 있나요? 첫인상이나 사진으로 굳힌 판단을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보며 고쳐 본 적이 있나요? 잘못 보았음을 알았을 때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정확히 볼 기회로 삼아 보세요.

눈먼 이여, 그대는 눈앞에 펼쳐진 환영처럼, 꿈속의 황금 나무처럼, 사람들 사이의 채색 인형처럼 텅 빈 것을 뒤쫓고 있습니다.

Māyaṁ viya aggato kataṁ, Supinanteva suvaṇṇapādapaṁ; Upagacchasi andha rittakaṁ, Janamajjheriva rupparūpak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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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눈앞의 환영, 꿈속의 황금 나무, 사람들 사이의 채색 인형이라는 세 가지 비유를 겹쳐, 남자가 텅 빈 것을 뒤쫓고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가 좇는 몸도 환영이나 꿈속의 나무처럼 붙잡을 알맹이가 없습니다. 수바는 그를 ‘눈먼 이여’라고 부릅니다.

묵상

환영은 걷히고, 꿈속의 황금 나무는 깨어나면 붙잡을 수 없어요. 내가 좇던 모습이 실제로 원하던 관계나 평안과 달랐던 적이 있나요? 그런 꿈을 품었던 나를 탓하기보다, 지금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볼 수 있을까요?

“눈은 움푹한 자리에 놓인 둥근 공 같고 가운데에는 눈동자가 있으며 눈물이 고입니다. 그곳에서는 눈곱도 생기고 눈의 여러 부분이 한데 뭉쳐 있습니다.”

Vaṭṭaniriva koṭarohitā, Majjhe pubbuḷakā saassukā; Pīḷakoḷikā cettha jāyati, Vividhā cakkhuvidhā ca piṇḍi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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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는 남자를 매혹한 눈을 움푹한 자리에 놓인 공, 눈동자, 눈물, 눈곱으로 나누어 말합니다. 남자가 하나의 아름다운 눈으로 여긴 것은 여러 부분이 한데 뭉친 것입니다.

묵상

아름다운 눈을 눈동자·눈물·눈곱의 모임으로 보면 칭찬하던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한 가지 특징에 마음을 빼앗길 때, 그것이 여러 부분이 모인 것임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눈을 지닌 수바는 눈을 뽑고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음에 집착도 없었습니다. “자, 이 눈을 가져가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곧바로 그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Uppāṭiya cārudassanā, Na ca pajjittha asaṅgamānasā; “Handa te cakkhuṁ harassu taṁ”, Tassa narassa adāsi tāv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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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수바가 두려움도 집착도 없이 자신의 눈을 뽑아 남자에게 건넸다고 전합니다. 옛이야기가 그리는 극단적인 장면이며, 따라 하거나 자기 몸을 해치라는 지침이 아닙니다. 수바는 눈앞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렇게 보여 줍니다.

묵상

이 장면을 읽으며 두려움이나 불쾌함, 거리감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워요. 두려움도 집착도 없이 눈을 내준 수바의 마음은 무엇에 매이지 않았다고 느껴지나요?

그러자 그 남자의 욕정은 그 자리에서 곧 사라졌습니다. 그는 수바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이여,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Tassa ca viramāsi tāvade, Rāgo tattha khamāpayī ca naṁ; “Sotthi siyā brahmacārinī, Na puno edisakaṁ bhaviss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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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받은 순간 남자의 욕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집니다. 그는 수바에게 용서를 빌며 평안하기를 바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말이 진실한 사과가 되려면, 그 뒤에 어떤 행동이 따라야 할까요? 사과를 받는 쪽이 아직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마음은 어떻게 존중받을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람을 공격한 것은 타오르는 불을 껴안거나 맹독사를 붙잡은 것과 같습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Āsādiya edisaṁ janaṁ, Aggiṁ pajjalitaṁva liṅgiya; Gaṇhiya āsīvisaṁ viya, Api nu sotthi siyā khamehi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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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수바를 공격한 일을 타오르는 불을 껴안거나 맹독사를 붙잡은 일에 빗대며, 다시 평안을 빌고 용서를 청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위험했음을 이제 스스로 인정합니다.

묵상

불과 독사에 빗댄 이 말에서 남자는 무엇을 깨달았다고 보이나요? 사과할 때 상대를 두려운 존재로 그리지 않고 내가 한 일을 구체적으로 책임지는 말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남자에게서 풀려난 여성 수행자는 뛰어난 부처님 곁으로 갔습니다. 뛰어난 복의 특징을 지닌 그분을 뵙자 그 수행자의 눈은 전과 같이 되었습니다.

Muttā ca tato sā bhikkhunī, Agamī buddhavarassa santikaṁ; Passiya varapuññalakkhaṇaṁ, Cakkhu āsi yathā purāṇak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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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노래는 남자에게서 풀려난 수바가 부처님 곁으로 갔고, 부처님을 뵙자 눈이 전과 같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수바의 이야기는 이 기적 같은 결말로 끝납니다.

묵상

수바는 먼저 남자에게서 풀려났고, 그 뒤에 부처님을 뵙자 눈이 전과 같아졌어요. 상처 입은 사람이 다시 온전해지려면 안전한 거리, 믿을 만한 사람, 전문적인 돌봄 가운데 무엇이 먼저 필요할지 생각해 볼까요? 현실에서 몸을 다쳤다면 기적을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치료를 받아 보세요.

72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이시다시의 게송 48구절

혼인에서 거듭 버림받은 삶과 과거 행위의 회고, 출가 뒤 해방을 노래합니다.

꽃의 이름을 지닌 도시 빠딸리뿟따, 세상에서 으뜸가는 그곳에 사꺄 가문에 속한 훌륭한 여성 수행자 두 분이 있었습니다.

Nagaramhi kusumanāme, Pāṭaliputtamhi pathaviyā maṇḍe; Sakyakulakulīnāyo, Dve bhikkhuniyo hi guṇavatiyo.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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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시의 노래는 장소와 인물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꽃의 이름을 지닌 도시 빠딸리뿟따에 덕을 갖춘 여성 수행자 두 사람이 있었고, 둘 다 사꺄 가문에 속했다고 말합니다. 사꺄는 부처님이 태어난 가문의 이름입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이어지는 노래에서 밝힙니다. 긴 이야기는 두 사람이 한적한 곳에 앉아, 한 사람이 묻고 다른 한 사람이 자기 삶을 들려주는 자리에서 펼쳐집니다.

묵상

꽃의 이름을 지닌 도시에 여성 수행자 두 사람이 있었다는 첫 장면에서 어떤 동료의 모습이 그려지나요? 내 삶의 이야기를 안심하고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이나 장소가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그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말하기가 편할지 생각해 보세요.

한 사람은 이시다시였고 다른 한 사람은 보디였습니다. 두 사람은 바른 행실을 갖추었고 깊은 집중(자나)과 경을 외우는 일을 즐겼으며 많이 배우고 마음을 흐리는 것들을 털어 낸 이들이었습니다.

Isidāsī tattha ekā, Dutiyā bodhīti sīlasampannā ca; Jhānajjhāyanaratāyo, Bahussutāyo dhutakilesāyo.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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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노래는 두 사람의 이름이 이시다시와 보디라고 밝힙니다. 이어서 두 사람이 바른 행실을 갖추었고, 깊은 집중을 닦고 경을 외우는 일을 즐겼으며, 많이 배웠고, 마음을 흐리는 것들을 털어 낸 이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뒤에 이시다시에게 집을 떠난 까닭을 묻는 보디도 같은 길을 걷는 동료입니다. 긴 이야기는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는 두 수행자 사이의 문답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두 사람은 모두 바른 행실을 갖추고 깊은 집중과 경을 외우는 일을 즐겼어요. 나에게도 같은 관심이나 실천을 나누며 믿음이 깊어진 관계가 있나요? 그런 관계가 아직 없다면, 누군가와 함께 키워 가고 싶은 것 하나를 골라 보는 데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두 사람은 음식을 얻으러 다닌 뒤 식사를 마치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씻었습니다. 사람 없는 곳에 편안히 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Tā piṇḍāya caritvā, Bhattatthaṁ kariya dhotapattāyo; Rahitamhi sukhanisinnā, Imā girā abbhudīres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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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수행자는 음식을 얻으러 다니고, 식사를 마치고, 음식을 받는 그릇을 씻은 뒤 사람 없는 곳에 편안히 앉습니다. 그 고요한 자리에서 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몸에 필요한 일을 먼저 마치고 방해받지 않을 자리를 마련한 뒤에야 이야기를 깊이 나누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묵상

두 사람은 할 일을 마친 뒤 “사람 없는 곳에 편안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려면 나에게는 어떤 자리가 필요할까요?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 장소와 시간과 상대의 여유를 살펴본 적이 있나요? 아직 그런 자리가 없다면, 이야기를 잠시 미루어 두는 것도 나를 지키는 한 가지 방법으로 생각해 보세요.

“존귀한 이시다시여, 그대는 아름답고 젊음도 아직 시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문제를 보았기에 집을 떠나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에 나섰습니까?”

“Pāsādikāsi ayye, Isidāsi vayopi te aparihīno; Kiṁ disvāna byālikaṁ, Athāsi nekkhammamanuyut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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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는 이시다시가 아름답고 젊음도 아직 시들지 않았다고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보았기에 집을 떠나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에 나섰는지 묻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 질문에 깔려 있습니다. 보디는 그 까닭을 이시다시에게서 직접 듣고 싶어 합니다.

묵상

젊고 아름다우면 집을 떠날 까닭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 질문에 깔려 있는 것 같나요? 겉으로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내 어려움이나 결정을 의심받았던 적이 있다면, 그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내 사정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말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세요.

한적한 곳에서 이렇게 질문을 받자 가르침을 잘 설명하는 이시다시가 말했습니다. “보디여, 내가 어떻게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는지 들어 보십시오.”

Evamanuyuñjiyamānā sā, Rahite dhammadesanākusalā; Isidāsī vacanamabravi, “Suṇa bodhi yathāmhi pabbaj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보디의 물음을 받은 이시다시는 가르침을 잘 설명하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이시다시는 보디에게 자신이 어떻게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는지 들어 보라고 말합니다. 이제 노래는 이시다시가 직접 들려주는 지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이시다시는 사람 없는 자리에서, 태어난 도시와 집안에서부터 자기 삶을 차례대로 풀어 놓습니다.

묵상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청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곁에 앉고 싶나요? 누군가의 선택을 이해하려 할 때 해결책을 말하기보다 끝까지 들어 준 경험이 있나요? 내 이야기를 할 차례라면 상대가 무엇을 해 주길 바라는지 먼저 말해 보는 건 어떨까요?

훌륭한 도시 웃제니에서 내 아버지는 바른 행실을 지키는 부유한 상인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외동딸로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귀한 아이였습니다.

“Ujjeniyā puravare, Mayhaṁ pitā sīlasaṁvuto seṭṭhi; Tassamhi ekadhītā, Piyā manāpā ca dayitā ca.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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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시의 이야기는 웃제니에서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바른 행실을 지키는 부유한 상인이었고, 이시다시는 그의 외동딸로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귀한 아이였다고 말합니다. 이시다시의 고난은 사랑이나 살림이 부족한 집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이 어린 시절의 모습은 뒤에 이시다시가 남편들에게 거듭 버림받는 일과 대비됩니다. 이시다시는 시집에서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묵상

이시다시는 자신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귀한” 외동딸이었다는 기억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힘든 시간을 지날 때, 나를 아끼던 사람이나 내가 소중히 여겨졌던 순간을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오늘 나를 귀하게 대할 작은 행동 하나를 골라 보세요.

그때 사께따의 으뜸가는 가문에서 나에게 청혼하러 사람들이 왔습니다. 보물이 많은 부유한 상인이 보낸 이들이었고 아버지는 나를 그 상인의 며느리로 주었습니다.

Atha me sāketato varakā, Āgacchumuttamakulīnā; Seṭṭhī pahūtaratano, Tassa mamaṁ suṇhamadāsi tā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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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께따의 으뜸가는 가문에서 이시다시에게 청혼하러 사람들이 옵니다. 보물이 많은 부유한 상인이 보낸 이들이었고, 아버지는 이시다시를 그 상인의 며느리로 보냅니다. 높은 가문과 많은 재산을 갖춘, 겉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혼인입니다. 그 혼인이 이시다시를 지켜 주었는지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묵상

“으뜸가는 가문”과 많은 보물을 두고 사람들은 이 혼인에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바깥 조건이 좋아 보여도 당사자의 안전과 존중을 따로 살펴야 했던 경우를 떠올려 볼 수 있나요? 내 관계를 돌아보는 중이라면 체면보다 실제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기준에 넣어 보세요.

나는 아침저녁으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에게 다가가 배운 대로 머리를 숙여 두 분의 발에 절했습니다.

Sassuyā sasurassa ca, Sāyaṁ pātaṁ paṇāmamupagamma; Sirasā karomi pāde, Vandāmi yathāmhi anusiṭṭ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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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 들어간 뒤의 첫 장면입니다. 이시다시는 아침과 저녁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에게 다가가, 배운 대로 머리를 숙여 두 분의 발에 절했다고 말합니다. 새 집안의 예법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날마다 하던 구체적인 행동으로 들려줍니다. 뒤에 남편이 이시다시를 멀리하게 되는데, 그 까닭이 이시다시의 무례에 있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첫 증언이기도 합니다.

묵상

아침과 저녁 두 번씩 머리를 숙이던 생활에서 스스로 우러난 존중과 요구받은 복종의 경계는 어디쯤이었을까요? 예의를 지키느라 내 피로와 의견을 지운 경험이 있다면, 그때 고를 수 있었던 다른 표현을 상상해 볼 수 있나요? 그때의 나를 지금의 눈으로 탓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기억해 주세요.

남편의 자매들과 형제들, 하인들, 나의 하나뿐인 남편까지 볼 때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Yā mayhaṁ sāmikassa, Bhaginiyo bhātuno parijano vā; Tamekavarakampi disvā, Ubbiggā āsanaṁ dem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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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시는 남편의 자매와 형제, 하인들, 그리고 남편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리를 내주었다고 말합니다. 시부모에게 하던 공경을 집안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했습니다. 하인에게까지 긴장하며 자리를 내줄 만큼 이시다시는 그 집에서 조심스럽게 지냈습니다.

묵상

남편의 가족과 하인들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하게 자리를 내주던 이시다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남을 배려하면서도 내 자리를 잃지 않는 관계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볼까요? 지금 돌봄에 지쳐 있다면,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 달라고 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음식과 마실 것과 간식, 그곳에 마련해 둔 것은 무엇이든 대접하고 가져다 드렸으며 각 사람에게 알맞은 것을 내주었습니다.

Annena ca pānena ca, Khajjena ca yañca tattha sannihitaṁ; Chādemi upanayāmi ca, Demi ca yaṁ yassa patirūp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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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시다시는 집안에서 한 일을 구체적으로 들려줍니다. 음식과 마실 것과 간식, 그곳에 마련해 둔 것은 무엇이든 대접하고 가져다 드렸으며, 각 사람에게 알맞은 것을 내주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엇이 맞는지 살펴 챙긴 수고를 하나씩 셉니다. 섬김이 모자랐다고 의심할 여지를 이시다시는 이 대목에서도 남기지 않습니다.

묵상

각 사람에게 알맞은 것을 챙기는 수고는 왜 쉽게 눈에 띄지 않을까요? 내가 해 온 일 가운데 당연하게 여겨져 온 수고가 있다면, 하나쯤 스스로 알아봐 줄 수 있을까요? 챙길 목록에 내 필요도 하나 적어 보세요.

때맞춰 일찍 일어나 집 문간에 이르러 손과 발을 씻고 두 손을 모아 남편에게 다가갔습니다.

Kālena upaṭṭhahitvā, Gharaṁ samupagamāmi ummāre; Dhovantī hatthapāde, Pañjalikā sāmikamupem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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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집 문간에 이르러 손과 발을 씻고, 두 손을 모아 남편에게 다가갔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시부모와 남편의 식구를 대하던 모습을 들려주었고, 여기서는 남편에게 가기까지의 아침 일을 차례대로 이야기합니다. 손발을 씻고 두 손을 모으는 동작 하나하나에 남편을 정성껏 대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묵상

일어나고 씻고 두 손을 모으는 준비가 모두 한 사람을 향해 있는 아침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내 하루는 누구를 위한 일로 시작되나요? 나를 위한 짧은 순서 하나를 넣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보세요.

빗과 장식품과 눈 화장 도구와 거울을 가져와 마치 꾸밈을 맡은 시녀처럼 내 손으로 남편을 단장했습니다.

Kocchaṁ pasādaṁ añjaniñca, Ādāsakañca gaṇhitvā; Parikammakārikā viya, Sayameva patiṁ vibhūsem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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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시는 빗, 장식품, 눈 화장 도구, 거울을 가져와 꾸밈을 맡은 시녀처럼 남편을 손수 단장했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남편에게 다가가던 몸가짐을 말했고, 여기서는 남편의 몸단장까지 챙긴 일을 들려줍니다. ‘내 손으로’라는 말은 밥을 짓고 그릇을 씻는 이어지는 대목에서도 되풀이됩니다.

묵상

“시녀처럼” 남편을 꾸며 주던 일에는 애정과 자기를 내려놓는 마음이 얼마나 섞여 있었을까요? 누군가를 돕는 자리에서 나도 존중받고 있었는지 돌아본 적이 있나요? 그런 자리가 있었다면, 돌본 일을 후회하지 않으면서도 공평하지 않았던 부분은 따로 인정해 볼 수 있을까요?

내 손으로 밥을 짓고 내 손으로 그릇을 씻었습니다. 어머니가 외아들을 돌보듯 그렇게 남편을 보살폈습니다.

Sayameva odanaṁ sādhayāmi, Sayameva bhājanaṁ dhovantī; Mātāva ekaputtakaṁ, Tathā bhattāraṁ paricarām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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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시는 밥을 짓고 그릇을 씻는 일을 모두 자기 손으로 했고, 어머니가 외아들을 돌보듯 남편을 보살폈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남편을 손수 단장했다고 한 데 이어, 여기서도 ‘내 손으로’라는 말을 두 번 되풀이합니다. 외아들을 돌보는 어머니의 비유는 이시다시가 남편을 어떻게 보살폈는지 스스로 설명하는 말입니다.

묵상

배우자를 “어머니가 외아들을 돌보듯” 보살피는 모습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내 관계에서 돌봄은 서로 오가고 있나요, 한쪽으로만 흐르고 있나요? 혼자 떠맡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중 하나를 나누어 달라고 말해 보세요.

이처럼 나는 헌신하고 사랑하며 일했고 자만을 낮추고 일찍 일어나 게으르지 않았으며 바른 행실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나를 미워했습니다.

Evaṁ maṁ bhattikataṁ, Anurattaṁ kārikaṁ nihatamānaṁ; Uṭṭhāyikaṁ analasaṁ, Sīlavatiṁ dussate bhat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에서 들려준 공경과 수고를 모아, 이시다시는 자신이 헌신하고 사랑하며 일했고, 자만을 낮추고 일찍 일어나 게으르지 않았으며, 바른 행실을 갖추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신을 미워했다고 이어 갑니다. 남편이 왜 미워했는지는 이 대목에서 밝히지 않습니다.

묵상

“그런데도 남편은 나를 미워했습니다”라는 말을 읽으면, 잘하면 사랑받는다는 생각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누군가의 거절을 내 노력이 모자란 탓으로만 설명하려 한 적이 있나요? 상대의 마음까지 내가 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남편은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인사드리고 나는 떠나겠습니다. 이시다시와 한 집에서 함께 살 수 없습니다.”

So mātarañca pitarañca, Bhaṇati ‘āpucchahaṁ gamissāmi; Isidāsiyā na saha vacchaṁ, Ekāgārehaṁ saha vatth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남편은 자기 부모에게 인사드리고 떠나겠다고 하면서, 이시다시와 한 집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노래에서 남편은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시다시가 정성껏 남편을 대하던 이야기에 이어, 남편이 집을 떠나겠다고 처음 입을 여는 대목입니다.

묵상

“함께 살 수 없습니다”라는 말만 듣고 이유는 듣지 못할 때, 거절당한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관계를 끝낼 자유와 할 수 있는 만큼 설명할 책임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설명이 오히려 위험을 부르는 관계라면 안전하게 떠나는 길을 먼저 생각해 보세요.

“아들아, 그렇게 말하지 마라. 이시다시는 지혜롭고 일을 잘한다. 일찍 일어나며 게으르지 않은데 아들아, 무엇이 네 마음에 들지 않는가?”

‘Mā evaṁ putta avaca, Isidāsī paṇḍitā paribyattā; Uṭṭhāyikā analasā, Kiṁ tuyhaṁ na rocate putta’.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부모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시다시가 지혜롭고 일을 잘하며 일찍 일어나 게으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아들에게 직접 묻습니다. 시부모가 보기에도 며느리에게서는 탓할 점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묵상

부모가 이시다시의 실제 모습을 들어 아들의 마음을 되묻는 장면에서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요? 누군가가 이유 없이 밀려날 때 내가 본 사실을 말해 준 적이 있나요?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 사람을 조용히 지지할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그는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시다시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그가 그저 싫을 뿐이니, 이제 그만 인사드리고 떠나겠습니다.”

‘Na ca me hiṁsati kiñci, Na cahaṁ isidāsiyā saha vacchaṁ; Dessāva me alaṁ me, Apucchāhaṁ gamissām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부모의 물음에 남편은 이시다시가 자기를 조금도 해치지 않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그와 함께 살 수 없고, 그가 그저 싫을 뿐이니 이제 그만 떠나겠다고 답합니다. 해를 입은 일이 없다는 말과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이 한 대답 안에 나란히 놓입니다. 남편이 밝히는 이유는 싫다는 마음뿐입니다.

묵상

이시다시가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도 남편이 싫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잘못이 있는 것과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을 나누어 볼 수 있나요? 누군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로 삼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받아들이기 힘든 상실을 겪고 있다면, 곁에서 지지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말을 들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내게 물었습니다.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두려워 말고 사실 그대로 말해 보아라.”

Tassa vacanaṁ suṇitvā, Sassu sasuro ca maṁ apucchiṁsu; ‘Kissa tayā aparaddhaṁ, Bhaṇa vissaṭṭhā yathābhūt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아들의 말을 들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이시다시에게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묻고, 두려워 말고 사실 그대로 말해 보라고 합니다. 이시다시는 이 물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할 자리를 얻습니다. 앞에서 시부모는 아들에게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번에는 이시다시 쪽의 잘못을 묻습니다.

묵상

“두려워 말고 사실 그대로” 말하라는 청이 안전하게 들리려면 듣는 사람은 어떤 태도여야 할까요? 의심이나 벌을 걱정하지 않고 사실을 이야기해 본 경험이 있나요?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자리라면, 어디까지 말할지 스스로 정해 보세요.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를 해치거나 나쁜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님, 남편이 나를 몹시 싫어하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Napihaṁ aparajjhaṁ kiñci, Napi hiṁsemi na bhaṇāmi dubbacanaṁ; Kiṁ sakkā kātuyye, Yaṁ maṁ viddessate bhat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부모의 물음에 이시다시는 잘못한 일도, 해친 일도, 나쁜 말을 한 일도 없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자기를 몹시 싫어하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습니다. 남편의 마음은 이시다시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묵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물음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뒤에 나옵니다. 더 애쓰면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지쳐 버린 적이 있나요? 내가 할 수 없는 일과 지금 돌볼 수 있는 일을 한번 나누어 보세요.

그들은 마음이 무너지고 괴로움에 눌린 채 아들을 지키느라 나를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보내며 “우리는 아름답고 복된 이 여인을 잃었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Te maṁ pitugharaṁ paṭinayiṁsu, Vimanā dukhena adhibhūtā; Puttamanurakkhamānā, ‘Jitāmhase rūpiniṁ lakkh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시부모는 마음이 무너지고 괴로움에 눌린 채 이시다시를 아버지의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아들을 지키느라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아름답고 복된 이 여인을 잃었구나” 하고 말합니다. ‘복된’은 원문에서 행운(락키)을 가리키는 말로, 시부모는 이시다시를 집안의 복으로 여겼습니다. 이시다시에게 잘못이 없다는 답을 들은 뒤에 이어지는 대목으로, 시부모의 슬픔과 돌려보내는 결정이 함께 나옵니다.

묵상

이시다시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을 지키느라 그를 돌려보낸 결정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옳다고 아는 쪽보다 가까운 사람의 편을 들었던 적이 있나요? 그런 선택으로 상처를 입은 쪽이었다면, 그 상처를 따로 인정해 주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그 뒤 아버지는 나를 부유한 두 번째 집안에 주었습니다. 이번 신붓값은 처음에 나를 며느리로 들인 상인이 치른 값의 절반이었습니다.

Atha maṁ adāsi tāto, Aḍḍhassa gharamhi dutiyakulikassa; Tato upaḍḍhasuṅkena, Yena maṁ vindatha seṭṭh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친정으로 돌아온 이시다시를 아버지는 부유한 두 번째 집안에 다시 시집보냅니다. 이번에 아버지가 받은 신붓값은 첫 혼인 때 시아버지가 된 부유한 상인이 치른 값의 절반입니다. 원문은 혼인의 차례와 신붓값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적습니다. 이시다시의 뜻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그는 집안 사이에 오가는 거래의 대상으로 다시 놓입니다.

묵상

신붓값이 처음의 “절반”으로 줄었다는 대목에서 어떤 마음이 드나요? 사람의 지난 관계를 값이나 등급으로 매기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나요? 그런 평가를 받았더라도 그 숫자가 내 존엄의 크기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그 집에서도 한 달을 살았지만 그 남자 역시 나를 내쳤습니다. 나는 종처럼 그를 섬겼고 잘못한 일 하나 없이 바른 행실을 지켰는데도 그랬습니다.

Tassapi gharamhi māsaṁ, Avasiṁ atha sopi maṁ paṭiccharayi; Dāsīva upaṭṭhahantiṁ, Adūsikaṁ sīlasampan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두 번째 집에서도 한 달 만에 남편이 이시다시를 내칩니다. 이시다시는 종처럼 남편을 섬겼고, 잘못한 일 하나 없이 바른 행실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같은 거절이 되풀이되어도 그 까닭이 이시다시의 잘못에 있지 않았음을 이 대목이 전합니다.

묵상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과, 종처럼 그를 섬겼다는 말이 함께 놓일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관계를 지키려고 내 존엄을 내주었던 때가 있었나요? 그랬다면 그것을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까요?

음식을 빌며 떠돌던 사람, 남을 길들이고 자신도 길들인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내 사위가 되어 주시오. 누더기 옷과 작은 단지를 내려놓으시오.”

Bhikkhāya ca vicarantaṁ, Damakaṁ dantaṁ me pitā bhaṇati; ‘Hohisi me jāmātā, Nikkhipa poṭṭhiñca ghaṭikañca’.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번에 아버지는 음식을 빌며 떠돌던 사람에게 직접 사위가 되어 달라고 청합니다. 원문은 그를 남을 길들이고 자신도 길들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조건은 그가 지니고 다니던 누더기 옷과 작은 단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혼인을 서둘러 맺으려는 가족의 다급함이 드러나고, 이 자리에서도 이시다시의 뜻을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묵상

떠돌던 사람에게 옷과 단지를 내려놓고 사위가 되라고 한 아버지에게는 딸을 돕고 싶은 마음과 남의 삶을 바꾸려는 마음이 함께 있었을까요? 서둘러 해결하느라 당사자의 뜻을 묻지 못했던 일이 있었나요? 돕기 전에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면 어떨까요?

그도 보름을 지낸 뒤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누더기 옷과 작은 단지와 잔을 돌려주십시오. 나는 다시 음식을 빌러 다니겠습니다.”

Sopi vasitvā pakkhaṁ, Atha tātaṁ bhaṇati ‘dehi me poṭṭhiṁ; Ghaṭikañca mallakañca, Punapi bhikkhaṁ carissām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세 번째 남편은 보름을 지낸 뒤 아버지에게 누더기 옷, 작은 단지, 잔을 돌려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음식을 빌며 떠돌겠다고 말합니다. 원문은 그가 머문 기간과 돌려받으려는 물건 세 가지를 그대로 적습니다. 혼인이 또 한 번 끝나는 대목입니다.

묵상

세 번째 남편마저 보름 만에 떠나겠다고 할 때 이시다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누군가 내 곁을 떠나간 일이 있다면, 그 까닭을 어디에서 찾았나요? 떠난 사람의 사정과 내 가치를 따로 떼어 생각해 보세요.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와 우리 친족 모두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대에게 무엇을 해 주지 못했소? 어서 말하시오. 그것을 해 주겠소.”

Atha naṁ bhaṇatī tāto, Ammā sabbo ca me ñātigaṇavaggo; ‘Kiṁ te na kīrati idha, Bhaṇa khippaṁ taṁ te karihi’t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세 번째 남편이 떠나겠다고 하자 아버지와 어머니와 친족이 모두 나서서 여기서 무엇을 해 주지 못했는지 묻습니다. 어서 말하기만 하면 해 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입니다. 가족은 무언가를 더 해 주면 그를 붙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묵상

“무엇을 해 주지 못했소?”라는 물음에는 어떤 필요가 담겨 있고, 어떤 필요는 빠져 있을까요? 누군가의 불편을 풀어 주려 할 때 무엇을 더 줄지만 묻고 그만둘 것은 묻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답을 짐작하기보다 그 사람의 말을 기다려 보면 어떨까요?

그런 말을 들은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시다시와 한 집에서 함께 살 수 없습니다.”

Evaṁ bhaṇito bhaṇati, ‘Yadi me attā sakkoti alaṁ mayhaṁ; Isidāsiyā na saha vacchaṁ, Ekagharehaṁ saha vatth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세 번째 남편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첫 남편과 같은 말로, 이시다시와 한 집에서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무엇이든 해 주겠다는 가족의 말에도 그의 대답은 바뀌지 않고, 이시다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묵상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그는 무엇을 원했을까요? 까닭을 들을 수 없는 거절 앞에 선 이시다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설명 없이 밀려난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을 내 탓으로만 여기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그는 허락을 받고 떠났습니다. 나도 홀로 생각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떠나겠다. 죽든지 수행자가 되든지 하겠다.”

Vissajjito gato so, Ahampi ekākinī vicintemi; ‘Āpucchitūna gacchaṁ, Marituye vā pabbajissaṁ v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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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세 번째 남편이 떠난 뒤 홀로 남은 이시다시는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고 집을 떠나 죽든지 수행자가 되든지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거듭된 거절 끝에 이른 막다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묵상

지금 나에게도 사라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나 지역 위기 상담, 응급 도움에 바로 알릴 수 있을까요? 이 장면이 지난 이야기로만 읽힌다면 이시다시 곁에 필요했던 안전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 지나닷따 님이 음식을 얻으러 다니다가 아버지의 집에 왔습니다. 수행자의 규율을 외워 지니고 많이 배웠으며 바른 행실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Atha ayyā jinadattā, Āgacchī gocarāya caramānā; Tātakulaṁ vinayadharī, Bahussutā sīlasampann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여성 수행자 지나닷따가 음식을 얻으러 다니다가 아버지의 집에 옵니다. 지나닷따는 수행자의 규율을 외워 지니고 많이 배웠으며 바른 행실을 갖춘 사람입니다. 이시다시가 죽음과 집을 떠나는 일을 두고 홀로 생각하던 바로 그때입니다. 집을 떠나 살아가는 여성이 눈앞에 나타나면서 집을 떠나는 일이 구체적인 길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묵상

막다른 순간에 찾아온 지나닷따는 이시다시 앞에 어떤 길을 열어 주었을까요? 도움이 우연히 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도록, 지금 연락할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나 기관을 한 곳 확인해 둘 수 있을까요? 이미 곁에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름을 떠올려 보세요.

우리 집에 온 그분을 보고 나는 일어나 앉을 자리를 마련해 드렸습니다. 그분이 앉자 발에 절하고 음식을 내어 드렸습니다.

Taṁ disvāna amhākaṁ, Uṭṭhāyāsanaṁ tassā paññāpayiṁ; Nisinnāya ca pāde, Vanditvā bhojanamadās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시다시는 지나닷따를 보자 일어나 자리를 마련하고, 그분이 앉은 뒤 발에 절하며 음식을 내어 드립니다. 마음이 무너진 가운데에서도 손님을 정성껏 맞는 모습입니다.

묵상

자리를 마련하고 음식을 내는 행동이 이시다시에게 다시 삶의 흐름을 만들어 주었을까요? 마음이 무너질 때에도 할 수 있었던 아주 작은 일 하나가 다음 순간으로 이어 준 경험이 있나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때가 있다면, 살아남아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부터 스스로 인정해 보세요.

음식과 마실 것과 간식, 집에 마련된 무엇이든 드려 흡족하게 한 뒤 나는 말했습니다. “존귀한 분이여, 저는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Annena ca pānena ca, Khajjena ca yañca tattha sannihitaṁ; Santappayitvā avacaṁ, ‘Ayye icchāmi pabbajitu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시다시는 음식과 마실 것과 간식, 집에 마련된 것들로 지나닷따를 충분히 대접합니다. 그런 다음 “저는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직접 말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던 자리에서 원하는 길을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입 밖에 내는 장면입니다.

묵상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바람을 소리 내어 말하자, 앞서 떠올렸던 죽음과는 어떤 거리가 생겼을까요? 절망 속에서도 바꾸고 싶었던 조건이나 가고 싶은 방향이 내게 있다면 안전한 사람에게 말해 볼 수 있을까요? 지금 떠오르는 답이 죽음뿐이라면 혼자 있지 말고 바로 현실의 도움을 청해 보면 어때요?

그러자 아버지가 내게 말했습니다. “얘야, 바로 여기에서 가르침을 실천하렴. 음식과 마실 것으로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사마나)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들(브라흐마나)을 대접하렴.”

Atha maṁ bhaṇatī tāto, ‘Idheva puttaka carāhi tvaṁ dhammaṁ; Annena ca pānena ca, Tappaya samaṇe dvijātī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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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시다시가 수행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집에 머물며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권합니다. 음식과 마실 것으로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들과 브라흐마나들을 대접하라고 합니다. 딸을 곁에 두면서도 선한 일을 하게 하려는 대안입니다. 이시다시가 바라는 것은 집을 떠나 욕망에서 벗어나는 삶입니다.

묵상

아버지의 “바로 여기에서 가르침을 실천하렴”이라는 말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요? 누군가 내 바람 대신 비슷한 대안을 내밀었을 때, 내게 중요한 것이 그 안에 남아 있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그 대안이 내게 맞지 않을 때, 고마운 마음과 거절을 함께 전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나는 울면서 두 손을 모으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지은 악한 행위가 있으니 그 행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겠습니다.”

Athahaṁ bhaṇāmi tātaṁ, Rodantī añjaliṁ paṇāmetvā; ‘Pāpañhi mayā pakataṁ, Kammaṁ taṁ nijjaressām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집에 머물며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이시다시는 울며 두 손을 모으고 답합니다. 자신이 지은 악한 행위가 있으니 그 행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시다시가 자기 삶을 이해한 방식입니다. 거절이나 학대를 겪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과거 행위 탓으로 돌리는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묵상

“그 행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겠다”는 말에서 이시다시의 마음이 어떻게 읽히나요? 자신의 고통을 모두 과거 잘못 탓으로 돌려 더 아팠던 적이 있다면, 원인을 헤아리는 일과 지금 나를 돌보는 일을 따로 두어 볼 수 있을까요? 알 수 없는 원인은 억지로 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보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내게 말했습니다. “깨달음과 가장 높은 상태에 이르고 두 발 가진 이 가운데 으뜸인 분이 실현하신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얻기를 바란다.”

Atha maṁ bhaṇatī tāto, ‘Pāpuṇa bodhiñca aggadhammañca; Nibbānañca labhassu, Yaṁ sacchikarī dvipadaseṭṭho’.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울며 뜻을 밝히는 딸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마침내 딸이 깨달음과 가장 높은 상태에 이르고, 부처님이 실현하신 고요히 꺼짐을 얻기를 빕니다. ‘두 발 가진 이 가운데 으뜸인 분’은 부처님을 가리킵니다. 딸을 집에 남기려던 아버지가 딸이 집을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는 대목입니다.

묵상

딸을 붙잡던 아버지가 “얻기를 바란다”고 말하기까지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을까요?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잘되기를 빌어 줄 수 있을까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지금 그 사람에게 빌어 줄 수 있는 것을 하나만 떠올려 보세요.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모든 친족에게 절하고 인사했습니다.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지 이레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습니다.

Mātāpitū abhivādayitvā, Sabbañca ñātigaṇavaggaṁ; Sattāhaṁ pabbajitā, Tisso vijjā aphassay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이시다시는 부모와 친족 모두에게 절하고 집을 떠났으며, 이레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다고 전합니다. 혼인에서 거듭 거절당한 이야기 뒤에 이 빠른 성취가 나옵니다.

묵상

여러 집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이시다시가 집을 떠난 지 이레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다는 대목이 어떻게 읽히나요? 나와 맞지 않았던 자리와 나에게 맞았던 자리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나는 내 지난 일곱 생을 압니다. 이번 삶이 어떤 행위의 열매이며 결과인지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한마음으로 귀 기울여 주십시오.

Jānāmi attano satta, Jātiyo yassayaṁ phalavipāko; Taṁ tava ācikkhissaṁ, Taṁ ekamanā nisāme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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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고 집을 떠났느냐는 동료 수행자 보디의 물음에 답하던 이시다시는 자신의 지난 일곱 생을 안다고 말합니다. 이번 삶이 어떤 행위의 열매인지 들려주겠으니 한마음으로 들어 달라고 청합니다. 앞에서 자신의 악한 행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겠다고 한 말의 바탕을, 지난 삶들의 이야기로 풀어 가는 대목입니다.

묵상

이시다시는 이번 삶에서 겪은 일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자신이 아는 지난 삶들을 보디에게 들려줍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읽히나요? 내 삶에서 되풀이되는 관계의 모습을 하나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원인은 단정하지 않고, 눈에 보인 일만 적어 보세요.

에라깟차라는 도시에서 나는 많은 재산을 지닌 금세공인이었습니다. 젊음의 자만에 취해 남의 아내와 관계했습니다.

Nagaramhi erakacche, Suvaṇṇakāro ahaṁ pahūtadhano; Yobbanamadena matto, So paradāraṁ asevih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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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지난 삶에서 이시다시는 에라깟차라는 도시의 부유한 금세공인이었습니다. 젊음의 자만에 취해 남의 아내와 관계했다고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밝힙니다. 이 행위가 뒤에 이어지는 삶들의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이시다시는 지난 삶에서 젊음의 자만에 취해 남의 아내와 관계했다고 털어놓습니다. 내가 가진 젊음이나 재산, 지위 때문에 남의 경계를 쉽게 넘은 적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나 전체를 악하다고 단정하지 않고,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하나 찾아보세요.

그 삶에서 죽은 뒤 나는 오랫동안 지옥에서 불탔습니다. 불타고 난 뒤 그곳에서 벗어나 암원숭이의 태에 들었습니다.

Sohaṁ tato cavitvā, Nirayamhi apaccisaṁ ciraṁ; Pakko tato ca uṭṭhahitvā, Makkaṭiyā kucchimokkam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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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공인으로 살다 죽은 뒤 이시다시는 오랫동안 지옥에서 불탔고, 그곳에서 벗어나 암원숭이의 태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지난 행위와 이어진 결과를 돌아보는 이시다시의 이야기이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판단하는 근거로 쓸 수 없습니다.

묵상

오랫동안 지옥에서 불탔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어떤 느낌이 드나요? 잘못에 책임지는 일과 끝없이 자신을 벌주는 일을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지난 잘못이 마음에 걸린다면, 지금 바로잡을 수 있는 일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태어난 지 이레 된 나를 무리를 이끄는 큰 원숭이가 거세했습니다. 남의 아내와 관계한 그 행위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Sattāhajātakaṁ maṁ, Mahākapi yūthapo nillacchesi; Tassetaṁ kammaphalaṁ, Yathāpi gantvāna paradār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암원숭이의 태에서 태어난 지 이레 만에 무리를 이끄는 큰 원숭이에게 거세당한 일을, 이시다시는 앞서 남의 아내와 관계한 행위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이시다시가 자기 삶을 설명한 방식입니다. 폭력이나 신체 피해를 겪은 사람에게 잘못이나 과거의 죄를 돌리는 말로 쓸 수 없습니다.

묵상

태어난 지 이레 된 존재가 겪은 폭력을 과거 행위의 결과로 설명하는 말을 읽으니 어떤 마음이 드나요? 성폭력이나 신체 훼손을 당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나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그 삶을 마치고 신다와 숲에서 죽은 뒤 한쪽 눈이 멀고 다리를 저는 암염소의 태에 들었습니다.

Sohaṁ tato cavitvā, Kālaṁ karitvā sindhavāraññe; Kāṇāya ca khañjāya ca, Eḷakiyā kucchimokkam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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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로 살다 신다와 숲에서 죽은 뒤, 이시다시는 한쪽 눈이 멀고 다리를 저는 암염소의 태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눈과 다리가 불편한 것은 어미 염소입니다. 지난 행위에 이어진 태어남을 차례로 들려주는 이시다시의 이야기이며, 오늘 장애를 가진 사람의 몸을 과거 행위 탓으로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묵상

원숭이로 살다 죽은 이시다시는 이번에는 암염소의 태에 들었다고 이어 갑니다. 이렇게 거듭되는 태어남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마음이 드나요? 누군가의 몸이나 처지를 보고 그 까닭을 섣불리 짐작한 적은 없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나는 거세된 채 열두 해 동안 아이들을 등에 태워 날랐습니다. 벌레에 파먹히고 꼬리도 없이 쇠약한 몸이었습니다. 남의 아내와 관계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Dvādasa vassāni ahaṁ, Nillacchito dārake parivahitvā; Kimināvaṭṭo akallo, Yathāpi gantvāna paradār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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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염소의 태에서 난 이시다시는 열두 해 동안 거세된 채 아이들을 등에 태워 나르고, 벌레에 파먹히고 꼬리도 없이 쇠약한 몸으로 지냈다고 말합니다. 화자는 이 고통을 남의 아내와 관계한 과거 행위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이 해석은 오늘 누군가의 장애나 고통을 그 사람의 과거 잘못으로 단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묵상

열두 해 동안 거세된 채 아이들을 태워 나르며 몸이 상해 간 이야기에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누군가의 고난을 볼 때 그 원인을 따지기 전에, 지금 덜어 줄 수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볼 수 있을까요? 동물의 고통이 읽기 힘들다면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친절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 삶에서 죽은 뒤 소 장수의 암소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연지처럼 붉은 송아지였고 열두 달째에 거세되었습니다.

Sohaṁ tato cavitvā, Govāṇijakassa gāviyā jāto; Vaccho lākhātambo, Nillacchito dvādase māse.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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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시는 염소의 삶을 마치고 소 장수의 암소에게서 송아지로 태어났다고 회고합니다. 연지처럼 붉은 송아지였고, 열두 달째에 거세되었습니다. 삶마다 몸의 종류와 처지가 달라지는 회고가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노래에서 이 소는 쟁기를 끌고 수레를 짊어집니다.

묵상

연지처럼 붉은 어린 송아지와 열두 달째의 거세가 한 문장에 함께 놓여 있어요. 그 앞에서 어떤 마음이 드나요? 생명을 겉모습이나 쓸모로만 보지 않고, 아픔과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로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버거우면 동물 하나를 떠올려 해치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해 보세요.

나는 큰 쟁기를 끌고 수레를 짊어졌습니다. 눈이 멀고 꼬리도 없이 쇠약한 몸이었으니, 남의 아내와 관계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Voḍhūna naṅgalamahaṁ, Sakaṭañca dhārayāmi; Andhovaṭṭo akallo, Yathāpi gantvāna paradār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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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 살던 이시다시는 큰 쟁기를 끌고 수레를 짊어졌고, 눈이 멀고 꼬리도 없이 쇠약한 몸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화자는 이 몸을 남의 아내와 관계한 일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자기 지난 삶을 설명한 방식이며, 오늘 일하다 다치거나 아픈 사람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묵상

큰 쟁기를 끌고 수레를 짊어진 소가 눈멀고 쇠약한 몸이었다는 대목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회복할 틈 없이 짐을 맡긴 적은 없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내가 그런 짐을 오래 져 왔다면, 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말해 주세요.

그 삶에서 죽은 뒤 거리에 있는 여자 종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몸이었으니, 남의 아내와 관계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Sohaṁ tato cavitvā, Vīthiyā dāsiyā ghare jāto; Neva mahilā na puriso, Yathāpi gantvāna paradār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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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삶을 마친 이시다시는 이번에는 사람으로, 거리에 있는 여자 종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몸이 여성도 남성도 아니었다고 말하고, 그 까닭을 남의 아내와 관계한 일에서 찾습니다. 이것은 고대의 한 화자가 자기 삶을 두고 한 해석입니다. 남녀 어느 쪽으로도 나뉘지 않는 몸을 잘못이나 벌로 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묵상

“여성도 남성도 아닌 몸”을 잘못의 결과와 잇는 말은 오늘날 몸이 남녀 어느 쪽으로도 나뉘지 않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이 구절이 나를 겨누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옛 화자 한 사람의 제한된 설명으로 내려놓아도 좋아요. 몸과 정체성을 도덕의 등급 없이 존중하는 말은 어떤 것일까요?

서른 살에 죽은 뒤 나는 수레꾼 집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고 가진 것이 적은 집이었고 빚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Tiṁsativassamhi mato, Sākaṭikakulamhi dārikā jātā; Kapaṇamhi appabhoge, Dhanika purisapātabahulamh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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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삶을 서른 살에 마친 이시다시는 수레꾼 집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 집은 가난하고 가진 것이 적었으며, 빚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화자는 이 가난과 빚을 있는 그대로 적습니다. 이 사정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아이가 집에서 끌려가는 일의 배경이 됩니다.

묵상

가난과 끊이지 않는 빚 독촉이라는 조건은 한 아이의 선택을 얼마나 좁힐까요? 빚에 눌린 사람을 두고 절제가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한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이 놓인 처지도 함께 볼 수 있을까요? 지금 경제적 압박을 겪고 있다면, 나를 탓하기보다 정보와 도움을 먼저 찾아보세요.

엄청나게 불어난 큰 이자 때문에 한 대상인이 울부짖는 나를 가족의 집에서 강제로 떼어 내 끌고 갔습니다.

Taṁ maṁ tato satthavāho, Ussannāya vipulāya vaḍḍhiyā; Okaḍḍhati vilapantiṁ, Acchinditvā kulagharasm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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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불어난 이자 때문에 한 대상인이 울부짖는 아이를 가족의 집에서 강제로 떼어 끌고 갔습니다. 화자는 불어난 이자를 직접적인 까닭으로 밝히고, 끌려가며 울부짖던 자신을 그대로 적습니다. 빚이 한 사람의 자유와 가족 관계까지 빼앗아 간 장면입니다. 끌려간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거나 동의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묵상

“강제로 떼어 내”라는 말과 울부짖는 아이의 모습 앞에서 어떤 마음이 드나요? 돈을 받을 권리가 사람을 소유할 권리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오늘의 관계에도 대어 볼 수 있을까요? 강제로 헤어졌던 경험이 떠오른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안전한 사람에게 기대 보세요.

내가 열여섯 살이 되어 혼인할 나이의 소녀가 된 것을 보고 그 대상인의 아들 기리다사가 나를 자기 아내로 붙들어 두었습니다.

Atha soḷasame vasse, Disvā maṁ pattayobbanaṁ kaññaṁ; Orundhatassa putto, Giridāso nāma nāmena.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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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간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되자, 대상인의 아들 기리다사는 혼인할 나이가 되었다고 보고 그를 아내로 붙들어 두었습니다. 빚 때문에 끌려온 아이였으므로 자유로운 동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혼인은 보호나 합의가 아니었습니다.

묵상

“열여섯 살”과 “아내로 붙들어 두었다”는 말을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이나요? 살아가려면 기댈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한 동의가 자유로웠는지 살필 때, 어떤 조건을 확인해야 할까요? 어린 나이의 혼인이나 강압을 겪었다면, 그 책임을 어린 시절의 나에게 묻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세요.

그에게는 다른 아내도 있었습니다. 바른 행실과 덕을 갖추고 이름난 여인이며 남편을 사랑하는 이였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여인과 남편 사이에 미움이 생기게 했습니다.

Tassapi aññā bhariyā, Sīlavatī guṇavatī yasavatī ca; Anurattā bhattāraṁ, Tassāhaṁ viddesanamakās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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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다사에게는 이미 바른 행실과 덕을 갖추고 이름난 아내가 있었고, 그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화자는 자신이 그 여인과 남편 사이에 미움이 생기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노래에서 화자는 이번 삶에서 남편들에게 거듭 버림받은 일을 이 일과 잇습니다.

묵상

먼저 있던 아내의 좋은 점을 알면서도 그 부부 사이에 미움이 생기게 했다는 고백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만 보아 해친 적이 있다면, 변명 없이 그 피해를 인정할 수 있을까요? 책임을 지는 일과 나를 영원히 미워하는 일은 달라요. 피해를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는 행동을 하나 찾아보세요.

“내가 종처럼 섬겨도 남편들이 나를 내치고 떠난 것은 그 행위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마저 끝냈습니다.”

Tassetaṁ kammaphalaṁ, Yaṁ maṁ apakīritūna gacchanti; Dāsīva upaṭṭhahantiṁ, Tassapi anto kato mayā”ti.

쿳다까 니까야 Thig 15.1 이시다시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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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게송에서 이시다시는 이번 삶에서 종처럼 섬겼는데도 남편들이 자신을 내치고 떠난 일을, 지난 삶에서 기리다사 부부 사이에 미움이 생기게 한 일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마저 끝냈다고 말하며 긴 회고를 맺습니다. 이시다시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된 지 이레 만에 세 가지 앎을 얻었다고 앞에서 밝혔습니다. 이 결말은 같은 결과가 더는 이어지지 않는 풀려남을 말합니다.

묵상

“그것마저 끝냈습니다”라는 선언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지난 일의 원인을 확신하지 못해도, 오늘 나를 지키는 경계와 돌봄은 세울 수 있어요. 내 삶에서 끝내고 싶은 해로운 되풀이가 있다면,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지금의 선택 하나를 적어 볼 수 있을까요?

73 나이 든 여성 수행자 수메다의 게송 75구절

혼인을 거절하고 죽음과 감각적 욕망의 위험을 설해 출가를 선택합니다.

만따와띠 성에서 꼰짜 왕의 으뜸 왕비에게 딸이 있었으니, 수메다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맑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Mantāvatiyā nagare, Rañño koñcassa aggamahesiyā; Dhītā āsiṁ sumedhā, Pasāditā sāsanakareh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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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의 긴 노래는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부터 밝히며 시작합니다. 만따와띠 성, 꼰짜 왕과 그의 으뜸 왕비, 그 딸 수메다가 차례로 나옵니다. 이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수메다가 맑은 믿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왕실의 딸이라는 신분 다음에 믿음을 얻은 이야기가 놓여, 이 노래 전체가 그 만남에서 출발합니다.

묵상

수메다는 왕실의 딸로 소개되고, 곧이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맑은 믿음을 얻은 사람으로 이야기됩니다.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만남이 있었나요? 그 사람의 지위보다 어떤 모습이 마음을 열었는지 떠올려 보세요.

그는 계를 지켜 바르게 살았고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많이 배워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잘 훈련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두 분 모두 귀 기울여 주십시오…”

Sīlavatī cittakathā, Bahussutā buddhasāsane vinitā; Mātāpitaro upagamma, Bhaṇati “ubhayo nisāmeth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가 어떤 사람인지 네 가지로 소개합니다. 계(바른 행실)를 지켰고, 말솜씨가 뛰어났고, 많이 배웠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수메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다가가 두 분 모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을 꺼냅니다. 이어지는 집을 떠나겠다는 요청은 이렇게 배우고 닦아 온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묵상

“두 분 모두 귀 기울여 주십시오”라는 부탁은 많이 배우고 닦은 사람의 말로 들립니다. 중요한 결심을 가족에게 알리기 전에, 내 안에서 충분히 살펴본 적이 있나요? 듣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도 먼저 분명히 말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기뻐합니다. 어떤 존재 상태도 영원하지 않으며 신들의 삶조차 그렇습니다. 하물며 헛되고 만족은 적으며 괴로움은 많은 감각적 욕망이야 어떻겠습니까?

Nibbānābhiratāhaṁ, Asassataṁ bhavagataṁ yadipi dibbaṁ; Kimaṅgaṁ pana tucchā kāmā, Appassādā bahuvighā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부모에게 먼저 자신이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 까닭으로 어떤 존재 상태도, 신들의 삶조차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듭니다. 신들의 삶도 끝난다면, 헛되고 만족은 적고 괴로움은 많은 감각적 욕망은 말할 것도 없다고 이어 갑니다.

묵상

신들의 삶처럼 좋은 조건도 영원하지 않다는 말은 “더 좋은 조건”만 바라던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손에 넣으면 안심할 줄 알았는데 얻고 나서도 불안했던 것이 있나요? 그것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무엇을 치러야 하는지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감각적 욕망은 뱀의 독처럼 쓰라린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거기에 넋을 잃습니다.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지옥에 보내져 매를 맞으며 괴로워합니다.

Kāmā kaṭukā āsī, Visūpamā yesu mucchitā bālā; Te dīgharattaṁ niraye, Samappitā haññante dukkh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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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뱀의 독처럼 쓰라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이들이 그것에 넋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지옥에 보내져 매를 맞으며 괴로워한다고 이어 갑니다.

묵상

독처럼 쓰라린 것에 넋을 잃는 모습은, 처음의 끌림과 뒤따르는 괴로움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반복할수록 힘들어지는데도 첫 느낌 때문에 놓지 못한 습관이 있나요? 나를 탓하기보다, 그 뒤에 따라온 결과 하나를 차분히 살펴보세요.

악을 키우는 이들은 자신의 악행 때문에 낮은 세계에서 언제나 슬퍼합니다. 그 어리석은 이들은 몸과 말과 마음을 삼가지 않습니다.

Socanti pāpakammā, Vinipāte pāpavaddhino sadā; Kāyena ca vācāya ca, Manasā ca asaṁvutā bāl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앞의 지옥 이야기를 이어, 수메다는 괴로운 결과가 어디서 오는지 말합니다. 악을 키우는 이들이 자신의 악행 때문에 낮은 세계에서 언제나 슬퍼한다고 합니다. 그 어리석은 이들은 몸과 말과 마음을 삼가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몸, 말, 마음으로 지은 자기 행위에 두는 대목입니다.

묵상

몸과 말과 마음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해로운 습관을 키울 수 있어요. 오늘 하루 몸으로 한 행동과 말, 마음속에 품은 생각 가운데 삼가지 못한 것이 있었는지 하나씩 돌아볼까요? 세 곳을 한꺼번에 바꾸기 벅차면 하나만 골라 살펴보세요.

그 어리석고 지혜 없고 분별없는 이들은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가르침을 듣고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진리들을 깨닫지 못합니다.

Bālā te duppaññā, Acetanā dukkhasamudayoruddhā; Desente ajānantā, Na bujjhare ariyasaccān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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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앞에서 말한 어리석은 이들이 지혜도 분별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가로막혀 있어서, 가르침을 들어도 알지 못하고 거룩한 진리들을 깨닫지 못합니다. 가르침을 듣는 일과 그것을 삶에서 알아보는 일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묵상

말을 들었다는 것과 그 말이 내 삶에서 보인다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요. 잘 안다고 여겼는데 괴로움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놓쳐 버린 신호가 있었나요? 불편함이 처음 일어나는 몸의 감각과 마음의 말을 잠시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어머니, 훌륭한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들을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은 존재 상태를 반기고 신들 가운데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Saccāni amma buddhavaradesitāni, Te bahutarā ajānantā ye; Abhinandanti bhavagataṁ, Pihenti devesu upapatti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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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어머니를 직접 부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다고 말합니다. 그런 이들은 존재 상태를 반기고 신들 가운데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존재가 그대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지 못하면 새로운 존재를 갈망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이라고 해서 언제나 분명한 이해에서 나오지는 않아요. 주변에서 모두 성공이라고 부르지만 나에게는 같은 일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목표가 있나요? 남들이 바라는 것과 내가 실제로 홀가분하다고 느끼는 방향을 나란히 적어 보세요.

그러나 신들 가운데 태어남도 그대로 있지 않은 존재 상태여서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거듭거듭 태어나야 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Devesupi upapatti, Asassatā bhavagate aniccamhi; Na ca santasanti bālā, Punappunaṁ jāyitabbass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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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 가운데 태어나기를 바라는 이들을 두고, 수메다는 그 태어남조차 영원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대로 있지 않은 존재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거듭 태어나야 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조건도 끝난다는 것을 보아야, 더 나은 태어남만 구하는 데서 벗어나 거듭 태어남 자체가 그치기를 바라게 됩니다.

묵상

좋은 조건도 언젠가 끝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지금 나는 그 조건에 얼마나 기대고 있나요?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일과 같은 불안을 되풀이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더 나은 다음 단계를 그리고 있다면, 그 단계가 지나간 뒤에 무엇을 또 바라게 될지도 살펴보세요.

네 가지 낮은 세계와 다른 두 갈래 세계에는 어떻게든 가게 됩니다. 그러나 낮은 세계에 떨어진 이들에게는 지옥에서는 수행자가 될 길이 없습니다.

Cattāro vinipātā, Duve ca gatiyo kathañci labbhanti; Na ca vinipātagatānaṁ, Pabbajjā atthi nirayesu.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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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갈 수 있는 곳을 네 가지 낮은 세계와 다른 두 갈래로 나누어 말합니다. 이런 곳들에는 어떻게든 가게 되지만, 낮은 세계에 떨어진 이들에게는 지옥에서는 집을 떠날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대목에서 수메다는 곧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묵상

네 낮은 세계와 두 행선지를 세는 말은 지금 닦을 수 있는 조건이 언제나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미뤄 둔 일 가운데, 지금의 체력과 도움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이번 주에 쓸 작은 기회 하나를 미리 정해 볼 수 있을까요?

두 분 모두 제가 열 가지 힘을 지닌 분의 가르침 안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바쁜 일은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Anujānātha maṁ ubhayo, Pabbajituṁ dasabalassa pāvacane; Appossukkā ghaṭissaṁ, Jātimaraṇappahānāya.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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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모두에게, 자신이 열 가지 힘을 지닌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기 위해 힘쓰겠다는 뜻도 함께 밝힙니다. 수메다에게 이것은 힘을 한곳에 모아 태어남과 죽음의 문제를 풀려는 결심입니다.

묵상

수메다의 청에는 “무엇을 줄일지”와 “무엇을 힘써 할지”가 함께 들어 있어요. 새 길을 택할 때 할 일만 더하고 분주함은 그대로 둔 적이 있나요? 정말 중요한 일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줄일 일정 하나를 정해 보세요.

재앙 같고 알맹이 없는 이 몸, 이 존재 상태를 반긴들 무엇하겠습니까? 계속 존재하려는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을 멈추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Kiṁ bhavagate abhinanditena, Kāyakalinā asārena; Bhavataṇhāya nirodhā, Anujānātha pabbajissām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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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부모에게 집을 떠나기를 거듭 청합니다. 재앙 같고 알맹이 없는 이 몸, 이 존재 상태를 반긴들 무엇하겠느냐고 묻고, 계속 존재하려는 갈망을 멈추도록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다고 밝힙니다. 앞서 집을 떠나려는 뜻을 말한 데 이어, 몸에 알맹이가 없다는 데서 이유를 찾아 한 번 더 부탁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이 몸을 알맹이 없는 것으로 보고, 다시 태어나는 삶을 반길 까닭이 없다고 말해요. 몸이 달라질 때 내 가치까지 흔들린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몸을 돌보는 일과 나의 가치를 따로 두고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이 나오셨고 기회가 왔으며 때 아닌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와 깨끗한 수행을 저는 결코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Buddhānaṁ uppādo vivajjito, Akkhaṇo khaṇo laddho; Sīlāni brahmacariyaṁ, Yāvajīvaṁ na dūseyy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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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지금을 기회가 온 때로 말합니다. 수행하기 어려운 때는 지나갔다고 하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와 깨끗한 수행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부모에게 하는 첫 호소는 이 다짐으로 끝납니다. 집을 떠나겠다는 허락을 남은 생 전체를 건 약속으로 뒷받침하는 말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부처님이 나오신 지금을 기회가 온 때로 보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와 깨끗한 수행을 지키겠다고 다짐해요. 오래 기다리던 조건이 마련됐는데 미뤄 두고 있는 약속이 있나요? 평생의 다짐이 버겁다면 오늘 지킬 수 있는 약속 하나를 정해 보세요.

수메다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죽음의 손아귀에 들고 말겠습니다.”

Evaṁ bhaṇati sumedhā, Mātāpitaro “na tāva āhāraṁ; Āharissaṁ gahaṭṭhā, Maraṇavasaṁ gatāva hessā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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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겠다고 부모에게 말합니다. 이대로 죽음의 손아귀에 들고 말겠다는 극단적인 말입니다.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간청 끝에 나온 말이며, 따라 하라고 권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어서 부모의 울음과 설득이 나옵니다.

묵상

음식을 끊고 죽음까지 받아들이겠다는 말에는 막다른 곳에 선 사람의 절박함이 담겨 있어요. 비슷한 마음이 든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믿을 만한 사람이나 의료진에게 알려볼 수 있을까요? 위험이 급하다면 응급 도움을 먼저 청해 주세요.

어머니는 괴로워 울었고 아버지도 온통 슬픔에 잠겼습니다. 누각 마루에 쓰러진 딸을 두 사람은 애써 설득하려 했습니다.

Mātā dukkhitā rodati pitā ca, Assā sabbaso samabhihato; Ghaṭenti saññāpetuṁ, Pāsādatale chamāpatit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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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괴로워 울고 아버지도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두 사람은 누각 마루에 쓰러진 딸을 애써 설득하려 합니다. 부모는 딸의 결심 앞에서 함께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묵상

어머니의 울음과 아버지의 슬픔을 보면 부모를 방해하는 사람으로만 볼 수 없어요. 소중한 사람의 결정으로 내가 그리던 삶이 바뀌어 슬퍼한 적이 있나요?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과 내 상실감이 함께 있을 자리를 내 보세요.

“얘야, 일어나렴. 왜 그렇게 슬퍼하니? 너는 이미 혼인하기로 정해졌단다. 와라나와띠의 잘생긴 아니까랏따 왕, 네가 그에게 주어졌단다…”

“Uṭṭhehi puttaka kiṁ soci, Tena dinnāsi vāraṇavatimhi; Rājā anīkaratto, Abhirūpo tassa tvaṁ dinn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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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바닥에 쓰러진 딸에게 일어나라고 하며 왜 슬퍼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고는 딸이 이미 와라나와띠의 아니까랏따 왕과 혼인하기로 정해졌다고 알립니다. 수메다가 바라는 고요히 꺼짐(닙바나)의 길과 부모가 마련한 왕실 혼인이 여기서 맞섭니다.

묵상

‘이미 정해졌다’는 말을 들으면 누가 정했고 나의 동의는 어디에 있었는지 묻게 돼요. 정해진 일이라서, 상대가 훌륭해서 내 뜻과 다른 일을 받아들인 적이 있나요? 내게 묻지 않고 진행된 일이 있다면 내가 동의하는지부터 말해 보세요.

너는 아니까랏따 왕의 아내, 으뜸 왕비가 될 거란다. 계를 지키는 일도, 깨끗하게 수행하는 일도, 집을 떠나 사는 일도 어렵단다, 얘야.

Aggamahesī bhavissasi, Anikarattassa rājino bhariyā; Sīlāni brahmacariyaṁ, Pabbajjā dukkarā put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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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수메다가 아니까랏따 왕의 아내, 곧 으뜸 왕비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를 지키는 일도, 깨끗하게 수행하는 일도, 집을 떠나 사는 일도 어렵다고 덧붙입니다. 왕비가 되는 안정된 미래와 집을 떠나 사는 일의 어려움을 나란히 놓고 혼인을 택하도록 설득하는 말입니다.

묵상

으뜸 왕비라는 화려한 미래와 집을 떠나 사는 일의 어려움을 나란히 놓으면 선택이 쉬워 보여요. 그래도 쉽고 안정된 길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과 다르면 어떤 대가가 생길까요?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그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세요.

“왕권에는 명령할 힘과 재물과 권세가 있고 소유가 주는 즐거움도 있단다. 아직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렴. 얘야, 네 혼례를 치르자꾸나.”

Rajje āṇā dhanamissariyaṁ, Bhogā sukhā daharikāsi; Bhuñjāhi kāmabhoge, Vāreyyaṁ hotu te p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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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왕의 자리에 따르는 명령할 힘, 재물, 권세, 소유의 즐거움을 차례로 늘어놓습니다. 아직 젊으니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고 혼례를 치르자고 권하며 설득을 마칩니다. 세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한꺼번에 펼쳐 보인 말이며, 이어서 수메다가 대답합니다.

묵상

명령할 힘과 재물, 권세, 소유의 즐거움, 젊음이 혼례를 권하는 이유로 한꺼번에 나와요. 남들이 부러워할 조건과 내가 실제로 원하는 삶은 얼마나 겹치나요? ‘지금 아니면 못 누린다’는 조급함이 들 때 내 바람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보세요.

그러자 수메다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그 삶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거나 죽을 것이며 결코 혼인하지 않겠습니다…”

Atha ne bhaṇati sumedhā, “Mā edisikāni bhavagatamasāraṁ; Pabbajjā vā hohiti, Maraṇaṁ vā me na ceva vāreyy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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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설득이 끝나자 수메다가 다시 말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하고,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그 삶은 알맹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집을 떠나거나 죽을 것이며 혼인하지는 않겠다고 밝힙니다. 강제된 혼인과 집을 떠나려는 뜻이 부딪친 막다른 대화이며, 목숨을 버리라는 권유로 옮겨 읽을 대목이 아닙니다.

묵상

집을 떠나거나 죽겠다는 말은 원치 않는 혼인 앞에서 느낀 막다른 심정을 전해요. 내게 선택지가 둘뿐이라고 느껴진다면 서둘러 정하지 말고, 다른 길을 함께 찾아 줄 사람에게 먼저 알려볼 수 있을까요? 위험이 급하다면 응급 도움을 먼저 청해 주세요.

왜 이 썩고 더러운 몸에 달라붙겠습니까? 흐르는 액체의 냄새가 나고 무시무시하며, 늘 더러운 것이 새어 나오는 오물 가득한 가죽 부대 같은 시신에 말입니다.

Kimiva pūtikāyamasuciṁ, Savanagandhaṁ bhayānakaṁ kuṇapaṁ; Abhisaṁviseyyaṁ bhastaṁ, Asakiṁ paggharitaṁ asucipuṇṇ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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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을 거부한 수메다는 몸을 낱낱이 살펴 말하기 시작합니다. 썩어 가는 몸, 흐르는 액체의 냄새, 두려움을 주는 시신의 모습, 늘 새어 나오는 오물을 차례로 들며 자신이 왜 이런 몸에 매달리겠느냐고 묻습니다. 몸의 아름다움에만 마음을 두는 집착을 흔들려는 말이며, 몸을 미워하라고 권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묵상

‘오물 가득한 가죽 부대’라는 강한 표현은 겉모습에 대한 믿음을 흔들려는 관찰이에요. 수메다는 몸을 해치라고 말하지 않아요. 읽으며 몸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다면 이 비유에서 멈추고 지금의 몸을 돌보는 일부터 해 볼까요?

이렇게 알고 있는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시신은 혐오스럽고 살과 피가 묻었으며 벌레 떼의 보금자리요 새들의 먹이입니다. 이 몸이 무엇을 위해 주어졌겠습니까?

Kimiva tahaṁ jānantī, Vikūlakaṁ maṁsasoṇitupalittaṁ; Kimikulālayaṁ sakuṇabhattaṁ, Kaḷevaraṁ kissa diyy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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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의 말은 살과 피가 묻은 시신, 벌레 떼의 보금자리, 새들의 먹이로 이어집니다. 몸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아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겠느냐고 묻고, 이런 몸이 무엇을 위해 주어졌느냐고 되묻습니다. 왕비가 되어 누릴 삶을 권한 부모의 말에 몸의 끝을 들어 답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벌레 떼의 보금자리가 되고 새들의 먹이가 되는 몸 앞에서는 왕비라는 자리도 빛을 잃어요. 겉모습에 대한 남의 평가가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나요? 겉모습이 변해도 오늘 할 수 있는 선한 행동 하나를 찾아보세요.

머지않아 의식이 떠난 몸은 묘지로 실려 나갑니다. 친족들은 싫어하며 낡은 통나무처럼 내버립니다.

Nibbuyhati susānaṁ, Aciraṁ kāyo apetaviññāṇo; Chuddho kaḷiṅgaraṁ viya, Jigucchamānehi ñātī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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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새의 먹이가 되는 몸을 말한 뒤, 수메다는 의식이 떠난 몸이 머지않아 묘지로 실려 나가는 장면을 이어 갑니다. 친족들은 싫어하며 그 몸을 낡은 통나무처럼 내버립니다. 살아 있을 때 소중히 여기던 몸도 의식이 떠나면 가까운 사람들 손에서 그렇게 다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몸을 내 것으로 붙들고 그 몸에 희망을 거는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의식이 떠난 몸은 머지않아 묘지로 실려 나가고, 친족들은 싫어하며 그 몸을 낡은 통나무처럼 내버린다고 해요. 아끼던 사람들도 그 몸을 붙들어 두지 못해요. 나는 지금 이 몸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나요?

묘지에 버려 다른 것들의 먹이로 두고 나면 친부모조차 싫어하며 제 몸을 씻습니다. 하물며 아무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이야 어떻겠습니까?

Chuddhūna naṁ susāne, Parabhattaṁ nhāyanti jigucchantā; Niyakā mātāpitaro, Kiṁ pana sādhāraṇā jana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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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 버려진 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다른 것들의 먹이로 버려 두고 나면 친부모조차 싫어하며 제 몸을 씻는다고 합니다. 수메다는 “하물며”라는 말로, 아무 관계 없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느냐고 묻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깊어도 의식이 떠난 몸은 이렇게 꺼려지는 것이 됩니다. 이 장면은 몸이 영원히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게 합니다.

묵상

친부모조차 주검을 묘지에 버린 뒤 싫어하며 제 몸을 씻는다는 장면이에요. 가까운 사람에게도 의식이 떠난 몸은 꺼려지는 것이 돼요. 이 몸이 언제까지나 내 것으로 남으리라 여기는 마음이 내게도 있는지 천천히 살펴볼까요?

사람들은 알맹이 없는 이 몸뚱이에, 뼈와 힘줄이 모인 이 덩어리에 매달립니다. 침과 눈물과 똥과 고름으로 가득한 썩어 가는 이 몸에 매달립니다.

Ajjhositā asāre, Kaḷevare aṭṭhinhārusaṅghāte; Kheḷassuccārassava, Paripuṇṇe pūtikāyam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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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와 보통 사람을 견준 뒤, 수메다의 눈길은 몸 안으로 옮겨 갑니다. 몸은 뼈와 힘줄이 모인 덩어리이고, 침과 눈물과 똥과 고름으로 가득 차 썩어 갑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알맹이 없는 몸에 매달린다고 수메다는 말합니다. 몸을 이루는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하여, 겉모습에 매달리는 마음을 느슨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뼈와 힘줄, 침과 눈물, 똥과 고름을 하나씩 꼽으면 한 덩어리로 보이던 몸이 여러 가지로 풀려요. 내 몸을 떠올릴 때 나는 주로 무엇을 보고 있나요? 겉모습 아래에서 몸을 이루는 것들을 하나씩 짚어 보면, 몸을 대하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까요?

누군가 이 몸을 갈라 그 안을 밖으로 뒤집어 놓는다면, 냄새를 견디지 못해 친어머니조차 싫어할 것입니다.

Yo naṁ vinibbhujitvā, Abbhantaramassa bāhiraṁ kayirā; Gandhassa asahamānā, Sakāpi mātā jigucchey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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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에 든 것을 하나씩 꼽은 뒤, 수메다는 누군가 이 몸을 갈라 안을 밖으로 뒤집어 놓는 경우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냄새를 견디지 못해 친어머니조차 싫어할 것이라고 합니다. 살갗에 가려 보이지 않던 몸속을 드러내어, 겉모습에 매달리는 마음을 흔드는 대목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는 말은 아닙니다.

묵상

몸의 안을 밖으로 뒤집는 장면은 겉모습에 머물던 눈길을 몸속으로 옮겨 놓아요. 나는 겉이 늘 아름다워야 사랑받는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몸을 평가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돌보는 마음만 가져가 보면 어떨까요?

무더기와 요소와 감각 영역을 조건 지어졌고 태어남에 뿌리를 둔 괴로움이라고 이치에 맞게 거듭 살펴보는 내가 무엇 때문에 혼인을 바라겠습니까?

Khandhadhātuāyatanaṁ, Saṅkhataṁ jātimūlakaṁ dukkhaṁ; Yoniso anuvicinantī, Vāreyyaṁ kissa iccheyy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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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과 몸속을 거칠게 그려 온 뒤, 수메다는 자신을 이루는 것들을 무더기와 요소와 감각 영역으로 나누어 봅니다. 이것들은 모두 조건 지어졌고 태어남에 뿌리를 둔 괴로움이라고 이치에 맞게 거듭 살펴본 끝에, 무엇 때문에 혼인을 바라겠느냐고 되묻습니다. 혼인으로 이어질 삶을 붙들지 않겠다는 까닭을 이렇게 밝힙니다.

묵상

수메다는 무더기와 요소와 감각 영역을 조건 지어진 괴로움으로 거듭 살펴봐요. 무언가를 몹시 바랄 때 “무엇이 모여 이 바람이 생겼을까” 하고 물으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 붙들고 있는 것 하나를 골라, 어떤 것들이 모여 생겼는지 나누어 볼 수 있을까요?

날마다 새로 벼린 창 삼백 개가 이 몸 위로 떨어지고 그 죽임이 백 년 동안 이어지더라도, 그렇게 괴로움이 다한다면 그편이 낫겠습니다.

Divase divase tisatti, Satāni navanavā pateyyuṁ kāyamhi; Vassasatampi ca ghāto, Seyyo dukkhassa cevaṁ kh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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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을 바라지 않는 까닭을 말한 뒤, 수메다는 극단적인 경우를 듭니다. 날마다 창 삼백 개가 몸 위로 떨어지고 그 죽임이 백 년 계속되더라도, 그렇게 괴로움이 다한다면 그편이 낫다고 합니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드러내려고 든 과장된 비교입니다. 스스로를 해치라는 권유는 담겨 있지 않습니다.

묵상

“날마다 삼백 개의 창, 백 년”은 끝이 있는 고통과 끝없는 괴로움을 나란히 놓은 과장이에요. 몸의 고통을 택하라는 말은 담겨 있지 않아요. 되풀이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그중 안전하게 덜어 낼 수 있는 한 조각은 무엇일까요?

스승의 이 말씀을 알아들은 이는 그런 죽임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거듭거듭 죽임을 당하는 이들, 그들의 떠돎은 길다.”

Ajjhupagacche ghātaṁ, Yo viññāyevaṁ satthuno vacanaṁ; ‘Dīgho tesaṁ saṁsāro, Punappunaṁ haññamānān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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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 창과 백 년의 죽임을 말한 수메다는 스승의 말씀을 끌어옵니다. 거듭거듭 죽임을 당하는 이들에게 떠돎은 길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알아들은 이라면 그런 죽임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하며, 끝이 있는 죽임과 길게 이어지는 떠돎을 나란히 놓습니다. 태어남이 되풀이되는 한 죽음도 쌓여 간다고 보고, 이 떠돎을 끝내는 일을 무엇보다 급하게 여기는 까닭을 밝힙니다. 고통을 일부러 찾아가라는 권유는 담겨 있지 않습니다.

묵상

수메다는 스승의 말씀을 끌어와요. “거듭거듭” 죽임을 당하는 이들에게 떠돎은 길다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알아들은 이라면 그런 죽임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해요. 혼자 오래 견뎌 온 일이 있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요?

신들과 사람들 가운데서도, 짐승으로 태어나는 곳과 아수라 무리에서도, 죽은 이의 혼령(뻬따)의 세계와 지옥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죽임이 보입니다.

Devesu manussesu ca, Tiracchānayoniyā asurakāye; Petesu ca nirayesu ca, Aparimitā dissare ghā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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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거듭 죽임을 당한다고 한 수메다는 이제 신과 사람, 짐승, 아수라, 죽은 이의 혼령, 지옥까지 모든 곳을 듭니다. 이 모든 곳에서 헤아릴 수 없는 죽임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태어나는 곳마다 위험이 되풀이된다고 보고, 태어남 자체에서 벗어나려는 까닭을 밝힙니다.

묵상

신과 사람, 짐승, 아수라, 죽은 이의 혼령, 지옥을 가로지르는 “헤아릴 수 없는 죽임”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 가면 된다는 생각을 흔들어요. 나는 자리만 바꾸며 같은 위험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지 천천히 살펴볼까요?

낮은 세계에 떨어져 고통받는 이에게 지옥에는 수많은 죽임이 있습니다. 신들 가운데에서도 피난처는 없고, 고요히 꺼짐(닙바나)의 행복보다 나은 것은 없습니다.

Ghātā nirayesu bahū, Vinipātagatassa pīḷiyamānassa; Devesupi attāṇaṁ, Nibbānasukhā paraṁ natt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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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세계에 떨어져 고통받는 이에게 지옥의 죽임은 많고, 신들 가운데에서도 피난처는 없다고 수메다는 말합니다. 그리고 고요히 꺼짐의 행복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맺습니다. 좋은 곳으로 옮겨 가기만 해서는 불안이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고요히 꺼짐을 믿을 만한 쉼터로 삼습니다.

묵상

수메다는 수많은 죽임이 있는 지옥과 피난처가 없는 신들의 세계를 나란히 둔 뒤, 고요히 꺼짐의 행복을 말해요. 상황이 나아져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이 내게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까요?

열 가지 힘을 지닌 분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쏟은 이들은 고요히 꺼짐(닙바나)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려고 힘써 닦습니다.

Pattā te nibbānaṁ, Ye yuttā dasabalassa pāvacane; Appossukkā ghaṭenti, Jātimaraṇappahān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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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꺼짐의 행복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한 뒤, 수메다는 그곳에 이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열 가지 힘을 지닌 분, 곧 부처님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쏟은 이들입니다. 그들은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려고 힘써 닦습니다. 앞서 부모에게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할 때 수메다가 한 말이 거의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수메다가 바라는 집을 떠나는 삶은 이미 다른 이들이 걸어 열매를 맺은 길입니다.

묵상

“열 가지 힘을 지닌 분”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쏟은 이들은 바쁜 일을 줄이고 태어남과 죽음을 버리려고 힘써 닦아요. 바쁜 일 하나를 덜어 소중한 일에 돌릴 수 있는 십 분이 내게 있는지 살펴볼까요?

“아버지, 저는 바로 오늘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알맹이 없는 재물이 무슨 소용입니까? 저는 감각적 욕망에 싫증이 났습니다. 그 욕망은 토해 낸 것과 같고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와 같습니다.”

Ajjeva tātabhinikkha- missaṁ bhogehi kiṁ asārehi; Nibbinnā me kāmā, Vantasamā tālavatthuka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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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아버지에게 바로 오늘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재물에는 알맹이가 없고, 감각적 욕망은 토해 낸 것과 같으며 밑동만 남은 야자나무처럼 다시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혼례를 치르라는 부모의 설득에 이렇게 답을 매듭짓습니다. 수메다가 이 말을 하는 동안 정혼한 왕 아니까랏따가 다가옵니다.

묵상

수메다는 “바로 오늘”이라고 말하며 재물과 욕망을 내려놓습니다. 나에게는 더 되살리고 싶지 않은 바람과 아직 더 생각해 보고 싶은 바람이 있을까요? 한쪽씩 나누어 적어 보세요.

수메다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수메다와 혼인하기로 정해진 아니까랏따가 혼례를 올리기로 한 때에 맞추어 와라나와띠에서 다가왔습니다.

Sā cevaṁ bhaṇati pitaram- anīkaratto ca yassa sā dinnā; Upayāsi vāraṇavate, Vāreyyamupaṭṭhite kā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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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가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바로 그때, 혼인하기로 정해진 아니까랏따가 혼례 날에 맞추어 와라나와띠에서 다가옵니다. 수메다의 결심과 이미 잡혀 있던 혼례 일정이 같은 순간에 만납니다.

묵상

수메다가 결심을 말하는 바로 그때, 혼례 날에 맞추어 아니까랏따가 다가옵니다. 일정이 정해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동의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있나요?

그때 수메다는 칼로 검고 숱 많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누각의 문을 닫고 첫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들었습니다.

Atha asitanicitamuduke, Kese khaggena chindiya sumedhā; Pāsādaṁ pidahitvā, Paṭhamajjhānaṁ samāpaj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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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까랏따가 다가오는 사이, 수메다는 검고 숱 많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칼로 자르고 누각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깊은 집중(자나)에 듭니다. 머리를 자르는 행동으로 혼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고, 곧바로 마음을 모으는 수행으로 들어갑니다.

묵상

수메다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문을 닫은 뒤 마음을 모읍니다. 나에게 안전한 방식으로 경계를 표시하고 고요한 시간을 마련한다면 무엇을 택하겠어요?

수메다가 그곳에서 깊은 집중에 든 사이 아니까랏따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누각 안의 수메다는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다는 인식을 깊이 닦았습니다.

Sā ca tahiṁ samāpannā, Anīkaratto ca āgato nagaraṁ; Pāsāde ca sumedhā, Aniccasaññaṁ subhāv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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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가 누각 안에서 깊은 집중에 들어 있는 동안 아니까랏따가 도시에 도착합니다. 바깥에서는 왕이 다가오고, 안에서는 수메다가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다는 인식을 깊이 닦습니다.

묵상

왕은 도시로 들어오고 수메다는 누각에서 변화를 살핍니다. 변화를 떠올리는 일이 불안을 키운다면 멈추어도 좋아요. 부담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작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메다가 그처럼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아니까랏따는 서둘러 위로 올라왔습니다. 보석과 황금으로 몸을 꾸민 그는 두 손을 모아 수메다에게 청했습니다.

Sā ca manasi karoti, Anīkaratto ca āruhī turitaṁ; Maṇikanakabhūsitaṅgo, Katañjalī yācati sumedh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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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가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아니까랏따가 서둘러 누각으로 올라옵니다. 보석과 황금으로 몸을 꾸민 그는 두 손을 모아 수메다에게 청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 그의 말이 시작됩니다.

묵상

수메다가 마음을 기울이는 동안 화려하게 꾸민 왕이 두 손을 모아 청합니다. 누군가 간곡히 부탁해 올 때, 내 마음이 어떤지 먼저 살필 틈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왕권에는 명령할 힘과 재물과 권세가 있고 소유가 주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아직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세상에서 그런 즐거움은 얻기 어렵습니다…”

“Rajje āṇādhanamissa- riyaṁ bhogā sukhā daharikāsi; Bhuñjāhi kāmabhoge, Kāmasukhā dullabhā loke.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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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아 청한 아니까랏따가 입을 엽니다. 왕권에는 명령할 힘과 재물과 권세가 있고 소유가 주는 즐거움도 있으니, 아직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라고 권합니다. 그런 즐거움은 세상에서 얻기 어렵다고도 합니다. 앞서 수메다의 부모가 한 말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묵상

왕은 힘과 재물, 젊음과 얻기 어려움을 들어 지금 누리라고 권합니다. 얻기 어렵다는 말 때문에 원하지 않던 것을 서둘러 택한 적이 있는지 천천히 떠올려 볼까요?

“왕권을 당신에게 넘겼습니다. 재물을 누리고 베푸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부모님이 괴로워하고 계십니다.”

Nissaṭṭhaṁ te rajjaṁ, Bhoge bhuñjassu dehi dānāni; Mā dummanā ahosi, Mātāpitaro te dukkhit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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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아니까랏따는 왕권을 수메다에게 넘겼다고 말하고, 재물을 누리며 베풀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슬퍼하지 말라며 수메다의 부모가 괴로워한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즐거움에 더해 베푸는 일과 가족의 슬픔까지 들어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묵상

아니까랏따는 왕권과 재물, 베푸는 일에 부모의 괴로움까지 들어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좋은 명분이나 가족의 마음이 걸린 부탁 앞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로 살펴볼 수 있을까요?

감각적 욕망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수메다가 곧바로 답했습니다. “감각적 욕망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그 욕망의 위험을 보십시오…”

Taṁ taṁ bhaṇati sumedhā, Kāmehi anatthikā vigatamohā; “Mā kāme abhinandi, Kāmesvādīnavaṁ pas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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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권유에 수메다는 곧바로 답합니다. 감각적 욕망이 필요 없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수메다는, 욕망을 기뻐하지 말고 그 위험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만다따 왕의 사례와 여러 비유로 이 말을 풀어 갑니다.

묵상

수메다는 욕망을 기뻐하지 말라는 말에 그 위험을 보라는 말을 더합니다. 좋아 보이는 선택 하나가 있다면, 그 뒤에 따라올 수 있는 대가도 함께 살펴볼까요?

네 대륙을 다스린 왕 만다따는 감각적 즐거움을 누린 이들 가운데 으뜸이었지만 만족하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바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Cātuddīpo rājā, Mandhātā āsi kāmabhoginamaggo; Atitto kālaṅkato, Na cassa paripūritā icc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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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욕망의 위험을 보여 주는 첫 사례로 네 대륙을 다스린 만다따 왕을 듭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누린 이들 가운데 으뜸이던 왕도 만족하지 못한 채 죽었고, 그의 바람은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로 수메다는 아니까랏따의 권유에 답합니다.

묵상

네 대륙을 가진 만다따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가진 크기와 채워지는 느낌은 같지 않을 수 있어요. 많이 얻은 뒤에도 “조금만 더”가 남았던 일이 있었는지 가볍게 떠올려 볼까요?

일곱 보석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열 방향 어디에나 가득하다 해도, 감각적 욕망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 채 죽습니다.

Satta ratanāni vasseyya, Vuṭṭhimā dasadisā samantena; Na catthi titti kāmānaṁ, Atittāva maranti nar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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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따의 사례에 이어 수메다는 일곱 보석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열 방향 어디에나 가득한 경우를 가정합니다. 열 방향은 동서남북과 그 사이 네 방향에 위와 아래를 더한 온 사방입니다. 그래도 감각적 욕망에는 만족이 없고,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 채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욕망을 칼과 독사의 머리, 횃불에 견줍니다.

묵상

일곱 보석이 비처럼 내려 열 방향 어디에나 가득해도 만족이 없다고 합니다. 꼭 필요한 몫과, 채워도 다시 늘어나는 바람을 나누어 본다면 무엇이 보일까요?

감각적 욕망은 푸줏간의 칼과 도마 같습니다. 욕망은 독사의 머리 같습니다. 횃불처럼 태우고 해골을 닮았습니다.

Asisūnūpamā kāmā, kāmā sappasiropamā; Ukkopamā anudahanti, aṭṭhikaṅkala sannib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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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까랏따가 젊을 때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라고 청하자, 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네 가지에 견줍니다. 푸줏간의 칼과 도마, 독사의 머리, 사람을 태우는 횃불, 해골입니다. 바로 앞에서 일곱 보석이 열 방향에 비처럼 쏟아져도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말했고, 여기서는 욕망이 무엇과 닮았는지를 하나씩 보여 줍니다. 겉으로는 즐거워 보여도 가까이 가면 베이고 물리고 데며, 살점 없는 해골처럼 아무리 붙들어도 허기를 채워 주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대목입니다.

묵상

푸줏간의 칼과 도마, 독사의 머리, 횃불, 해골은 끌림 뒤에 있는 상처와 위험과 화상,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네 방향에서 보여 줘요. 처음에는 끌리지만 가까이 갈수록 조심하게 되는 것이 내 곁에 있나요?

감각적 욕망은 그대로 있지 않고 단단하지 않으며 괴로움이 많고 지독한 독입니다. 벌겋게 달군 쇳덩이 같고 재앙의 뿌리이며 그 열매는 괴로움입니다.

Aniccā adhuvā kāmā, bahudukkhā mahāvisā; Ayoguḷova santatto, aghamūlā dukhapphal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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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앞의 네 비유에 이어, 감각적 욕망은 그대로 있지 않고 단단하지 않으며 괴로움이 많은 지독한 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욕망을 벌겋게 달군 쇳덩이에 견주고, 재앙의 뿌리이며 그 열매는 괴로움이라고 밝힙니다. 닿는 순간의 느낌보다 그 뒤에 남는 결과를 함께 보라고 권하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나무의 열매와 고깃덩이, 꿈과 빌린 물건의 비유가 나옵니다.

묵상

벌겋게 달군 쇳덩이는 닿는 순간의 강렬함과 뒤에 남는 상처를 함께 떠올리게 해요.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첫 느낌과 시간이 지난 뒤의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이나요?

감각적 욕망은 나무의 열매 같고 고깃덩이처럼 괴로움을 줍니다. 꿈처럼 속입니다. 욕망은 빌린 물건과 같습니다.

Rukkhapphalūpamā kāmā, maṁsapesūpamā dukhā; Supinopamā vañcaniyā, kāmā yācitakūpam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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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달군 쇳덩이 비유에 이어 욕망을 나무의 열매, 고깃덩이, 꿈, 빌린 물건에 견줍니다. 다른 경전의 풀이를 따르면,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오른 사람은 누가 나무를 베면 함께 떨어지고, 고깃덩이는 서로 빼앗으려는 다툼을 부르고, 꿈은 속이고, 빌린 물건은 돌려주어야 합니다. 내 것이라 여겨도 조건이 바뀌면 잃게 되는 즐거움을 네 가지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이 뒤에는 칼과 창에서 숯 구덩이와 죽임까지 더 거친 비유가 이어집니다.

묵상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오른 사람은 누가 나무를 베면 함께 떨어지고, 고깃덩이는 다툼을 부르고, 꿈은 깨고, 빌린 물건은 돌려줘야 해요. 내 것이라 붙들고 있지만 조건이 바뀌면 놓아야 할 것이 지금 있나요?

감각적 욕망은 칼과 창 같고 질병이며 종기이고 재앙이며 고통입니다. 불붙은 숯 구덩이와 같으며 재앙의 뿌리이고 두려움이며 죽임입니다.

Sattisūlūpamā kāmā, rogo gaṇḍo aghaṁ nighaṁ; Aṅgārakāsusadisā, aghamūlaṁ bhayaṁ vad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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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칼과 창에 견주고, 질병이며 종기이고 재앙이며 고통이라고 부릅니다. 이어 불붙은 숯 구덩이와 같다고 하고, 재앙의 뿌리이자 두려움이며 죽임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거듭 보여 주어, 끌림에 좁아진 눈으로는 놓치기 쉬운 대가를 넓게 보게 합니다. 이 목록은 바로 이어지는 “이처럼”으로 거두어집니다.

묵상

칼과 창, 질병과 종기, 불붙은 숯 구덩이, 두려움과 죽임이 한꺼번에 몰려와 끌림이 가린 대가를 넓게 비춰요. 이 목록에서 내 선택의 결과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가 있다면 어느 것인가요?

이처럼 감각적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길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밝혀졌습니다. 떠나 주십시오. 나는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습니다.

Evaṁ bahudukkhā kāmā, akkhātā antarāyikā; Gacchatha na me bhavagate, vissāso atthi att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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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앞의 비유들을 “이처럼”으로 거두어, 감각적 욕망은 괴로움이 많고 길을 가로막는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아니까랏따에게 떠나 달라고 청하고,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앞서 부모에게 말했듯이, 조건에 따라 생겨난 삶은 신들의 세계에서도 영원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머리에 붙은 불과 늙음과 죽음의 추격이 나옵니다.

묵상

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을 길을 가로막는 것이라 부르고,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는다고 말해요. 믿던 조건이 흔들릴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나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기 머리에 불이 붙었는데 남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겠습니까? 늙음과 죽음이 뒤쫓아 오니 그것들을 없애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Kiṁ mama paro karissati, Attano sīsamhi ḍayhamānamhi; Anubandhe jarāmaraṇe, Tassa ghātāya ghaṭitabb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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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어느 세계에 태어나는 삶도 믿고 기대지 않는다고 한 수메다는, 자기 머리에 불이 붙었는데 남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늙음과 죽음이 뒤쫓아 오니 그것을 없애는 데 힘써야 한다는 말로 아니까랏따에게 한 답을 맺습니다. 누구도 대신 늙고 죽어 줄 수 없으므로 스스로 길을 닦아야 한다는 책임을 밝히는 대목입니다. 이 뒤에 수메다는 문을 열고 울고 있는 세 사람을 만납니다.

묵상

머리에 불이 붙고 늙음과 죽음이 뒤쫓는 장면은 누구도 나 대신 살아 줄 수 없다는 다급함을 보여 줘요. 곁의 도움과 내가 맡을 한 걸음을 함께 놓는다면 무엇일까요?

나는 문을 열고 부모님과 아니까랏따가 바닥에 앉아 우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Dvāraṁ apāpuritvānahaṁ, Mātāpitaro anīkarattañca; Disvāna chamaṁ nisinne, Rodante idamavoc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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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닫아 두었던 문을 열고, 부모님과 아니까랏따가 바닥에 앉아 우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고는 눈앞의 세 사람에게 직접 말을 시작합니다. 울고 있는 이들을 마주한 채로,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 속에서 되풀이된 더 긴 울음을 들려주려는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이 그 말입니다.

묵상

닫힌 문이 열리자 부모님과 아니까랏따가 바닥에 앉아 우는 모습이 보여요. 수메다의 결심 곁에 다른 이들의 슬픔도 함께 있어요. 누군가의 선택과 그 때문에 생긴 내 슬픔을 어느 쪽도 지우지 않고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리석은 이들의 떠돎은 깁니다. 그들은 시작을 알 수 없는 세월 동안 아버지가 죽을 때, 형제가 죽임당할 때, 자신이 죽임당할 때 거듭거듭 울어 왔습니다.”

“Dīgho bālānaṁ saṁsāro, Punappunañca rodataṁ; Anamatagge pitu maraṇe, Bhātu vadhe attano ca vad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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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부모님과 아니까랏따를 본 수메다는,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하는 떠돎이 길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형제가 죽임당하는 일, 자신이 죽임당하는 일을 차례로 들며, 시작을 알 수 없는 세월 동안 같은 울음이 거듭되어 왔다고 합니다. 지금 눈앞의 울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은 채, 이별과 죽음의 슬픔이 끝없이 되풀이되어 왔다는 더 넓은 시야를 보여 줍니다. 이어서 눈물과 젖과 피, 쌓인 뼈로 그 되풀이를 그려 보입니다.

묵상

아버지가 죽을 때, 형제와 자신이 죽임당할 때 거듭거듭 울었다는 세 장면은 지금의 슬픔을 작게 만들지 않고 반복의 길이를 보여 줘요. 오늘의 슬픔에는 판단보다 어떤 돌봄이나 함께 있어 줄 사람이 먼저 필요할까요?

눈물과 젖과 피를,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을 기억하십시오. 떠도는 존재들이 쌓아 온 뼈의 무더기도 기억하십시오.

Assu thaññaṁ rudhiraṁ, Saṁsāraṁ anamataggato saratha; Sattānaṁ saṁsarataṁ, Sarāhi aṭṭhīnañca sannicay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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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울고 있는 세 사람에게,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눈물과 젖과 피, 그리고 떠도는 존재들의 뼈 무더기로 기억하게 합니다. 셀 수 없이 되풀이된 슬픔과 양육과 죽음을 손에 잡히는 모습으로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한 생의 관계를 지우지 않고, 그 관계가 무수히 되풀이해 온 돌봄과 상실을 함께 떠올리게 하여 떠돎을 끝내려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이어서 이것들을 네 바다와 위뿔라산에 견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묵상

눈물과 젖과 피, 그리고 뼈의 무더기는 잃은 슬픔과 함께 젖을 먹여 기른 돌봄도 떠올리게 해요. 오래 이어 온 관계에서 받은 돌봄과 겪은 이별 가운데 지금 조심스럽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눈물과 젖과 피에 견준 네 바다를 기억하십시오. 헤아릴 수 없이 긴 한 시대(깝빠) 동안 쌓인 뼈가 위뿔라산과 맞먹는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Sara caturodadhī, Upanīte assuthaññarudhiramhi; Sara ekakappamaṭṭhīnaṁ, Sañcayaṁ vipulena sam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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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앞에서 말한 눈물과 젖과 피를 네 바다에 견주고, 헤아릴 수 없이 긴 한 시대 동안 쌓인 뼈를 위뿔라산에 견줍니다. 바다와 산이라는 두 큰 비유로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의 길이를 숫자 대신 크기로 느끼게 합니다. 되풀이되는 삶을 가볍게 보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뒤에는 넓은 땅 잠부디빠의 흙을 대추씨만 한 알갱이로 나누어도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다 세기에 모자란다는 비교가 이어집니다.

묵상

네 바다에 견준 눈물과 젖과 피, 긴 한 시대 동안 쌓여 위뿔라산만 해진 뼈는 셀 수 없는 시간을 물과 산의 크기로 느끼게 해요. 오래 되풀이해 온 일 가운데 이제 아주 작은 방향 전환을 허락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시작을 알 수 없이 떠도는 이의 삶에 견주어 보면, 이 넓은 땅 잠부디빠의 흙을 대추씨만 한 알갱이로 나누어도 그 알갱이들은 그가 거쳐 온 어머니의 어머니들보다 적을 것입니다.

Anamatagge saṁsarato, Mahiṁ jambudīpamupanītaṁ; Kolaṭṭhimattaguḷikā, Mātā mātusveva nappaho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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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눈물과 젖과 피의 바다, 뼈의 산을 든 데 이어, 사람이 사는 땅 잠부디빠의 흙을 모두 대추씨 크기로 나누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렇게 나눈 알갱이도 한 사람이 떠도는 동안 거쳐 온 어머니의 어머니들보다 적다고 합니다. 떠도는 삶이 헤아릴 수 없이 길다는 것을 어머니의 수로 보여 주는 대목이며, 바닥에 앉아 우는 부모와 약혼자 아니까랏따 앞에서 혼인을 거절하며 하는 말입니다.

묵상

잠부디빠의 흙을 모두 대추씨만 한 알갱이로 나눠도 어머니의 어머니들보다 적다는 말은 떠도는 삶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수로 보여 줘요. 셀 수 없이 많은 어머니를 거쳐 왔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먼저 드나요?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을 떠올려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에 견주어 보십시오. 그 모두를 네 손가락 길이로 잘라도 그 조각들은 아버지의 아버지들보다 적을 것입니다.

Tiṇakaṭṭhasākhāpalāsaṁ, Upanītaṁ anamataggato sara; Caturaṅgulikā ghaṭikā, Pitupitusveva nappaho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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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어머니의 어머니들을 잠부디빠의 흙알갱이와 견주었고, 여기서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견줍니다.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을 모두 네 손가락 길이로 잘라도 그 조각 수가 아버지의 아버지들보다 적다고 합니다. 어머니 쪽과 아버지 쪽 모두 헤아릴 수 없이 이어져 왔으니, 떠도는 삶의 시작은 찾을 수 없습니다.

묵상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을 모두 네 손가락 길이로 잘라도 아버지의 아버지들보다 적다는 비교는 앞의 어머니 쪽 비유와 짝을 이뤄요. 헤아릴 수 없이 길게 이어져 온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 이 삶은 어떻게 보이나요?

한쪽 눈먼 거북과, 동쪽 바다에서 서쪽으로 떠밀리는 구멍 하나 난 멍에를 기억하십시오. 거북이 그 구멍에 머리를 넣는 일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을 빗댄 것입니다.

Sara kāṇakacchapaṁ pubba- samudde aparato ca yugachiddaṁ; Siraṁ tassa ca paṭimukkaṁ, Manussalābhamhi opamm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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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관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은 드물다고 수메다는 말합니다. 비유는 이렇습니다. 동쪽 바다에서 서쪽으로 떠밀리는 구멍 하나 난 멍에에, 한쪽 눈먼 거북이 머리를 넣는 일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가르침을 듣고 닦을 수 있는 지금의 조건이 그만큼 드물기에, 집을 떠나는 일을 미룰 수 없다는 이유가 됩니다.

묵상

한쪽 눈먼 거북이 동서로 떠밀리는 멍에의 구멍 하나에 머리를 넣는 우연은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그려요. 지금 가진 조건 중 부담 없이 소중히 써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알맹이 없고 재앙을 부르는 이 몸, 거품 덩어리 같은 그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무더기들이 그대로 있지 않음을 보고 고통이 많은 지옥들도 기억하십시오.

Sara rūpaṁ pheṇapiṇḍopam- assa kāyakalino asārassa; Khandhe passa anicce, Sarāhi niraye bahuvighā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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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 드물다고 한 뒤, 수메다는 재앙을 부르는 이 몸이 거품 덩어리처럼 알맹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이루는 무더기들이 그대로 있지 않음을 보라고 하고, 고통이 많은 지옥도 함께 기억하라고 합니다. 몸이 흩어지기 쉽다는 것과 해로운 행위의 결과가 무겁다는 것을 같이 보게 하여, 얻은 기회를 수행에 쓰도록 권합니다.

묵상

거품 덩어리 같은 몸은 생겼다가 흩어지는 가벼움을 보여 주고, 무더기들이 그대로 있지 않다는 말은 몸과 마음이 늘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줘요. 지금 내 몸이 필요로 하는 부드러운 보살핌은 무엇일까요?

이 생 저 생에 거듭 태어나 화장터를 넓혀 가는 이들을 기억하십시오. 악어의 위험도 기억하고 네 가지 진리도 기억하십시오.

Sara kaṭasiṁ vaḍḍhente, Punappunaṁ tāsu tāsu jātīsu; Sara kumbhīlabhayāni ca, Sarāhi cattāri saccā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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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같은 몸과 지옥의 고통을 기억하라고 한 데 이어, 수메다는 거듭 태어날수록 화장터가 넓어지는 일과 악어의 위험을 말합니다. 세 번 되풀이한 “기억하십시오”는 네 가지 진리에서 끝납니다. 떠도는 삶의 위험을 떠올리게 한 뒤, 괴로움과 그 원인, 괴로움의 멎음, 멎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네 가지 진리로 빠져나갈 방향을 기억하게 합니다.

묵상

생마다 넓어지는 화장터, 악어의 위험, 네 가지 진리가 세 번의 “기억하십시오”에 차례로 놓여 위험과 길을 함께 보여 줘요. 지금 겪는 어려움에서 괴로움·원인·멎음·길 중 먼저 알아보고 싶은 것은 어느 쪽인가요?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섯 가지 쓴 독을 마시겠습니까? 욕망의 즐거움은 모두 그 다섯 쓴 독보다 훨씬 더 씁니다.

Amatamhi vijjamāne, Kiṁ tava pañcakaṭukena pītena; Sabbā hi kāmaratiyo, Kaṭukatarā pañcakaṭuk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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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진리를 기억하라고 한 뒤, 수메다는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왜 다섯 가지 쓴 독을 마시겠느냐고 묻습니다. 욕망의 즐거움은 그 독보다 더 쓰다고 합니다. 순간의 달콤함 뒤에 더 큰 괴로움이 따르는 욕망을 고를 이유가 없다는 물음이며, 이어서 욕망의 열기를 말하는 구절로 넘어갑니다.

묵상

죽음 없음과 다섯 가지 쓴 독, 그리고 그보다 더 쓰다는 욕망의 즐거움을 견주는 말은 처음의 달콤함만으로 결과를 판단하지 않게 해요. 매력과 뒤끝을 함께 보았을 때 선택을 다시 살피고 싶은 일이 있나요?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왜 감각적 욕망 때문에 타오르겠습니까? 욕망의 즐거움은 모두 타고 끓고 흔들리고 뜨겁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Amatamhi vijjamāne, Kiṁ tava kāmehi ye pariḷāhā; Sabbā hi kāmaratiyo, Jalitā kuthitā kampitā santāpi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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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욕망의 쓴맛을 말했고, 여기서는 열기를 말합니다. 죽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왜 욕망 때문에 타오르겠느냐고 수메다는 묻습니다. 욕망의 즐거움은 타고, 끓고, 흔들리고,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라고 네 낱말을 잇달아 들어 그립니다. 수메다는 열이 없는 죽음 없음을 두고 그 열기 속으로 들어갈 까닭이 없다고 봅니다.

묵상

타고, 끓고, 흔들리고, 뜨겁게 달아오른다는 네 낱말은 즐거움이 마음의 온도를 계속 올릴 수 있음을 그려요. 어떤 즐거움 뒤에는 마음이 가라앉고 어떤 즐거움 뒤에는 더 달아오르는지 구별해 볼까요?

원수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원수가 많은 감각적 욕망이 왜 필요합니까? 왕과 불과 도둑과 홍수와 사랑받지 못하는 상속자들이 재물을 나누어 가져가니 감각적 욕망에는 원수가 많습니다.

Asapattamhi samāne, Kiṁ tava kāmehi ye bahusapattā; Rājaggicoraudakappiyehi, Sādhāraṇā kāmā bahusapat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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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열기를 말한 뒤, 수메다는 기준을 바꿔 원수 없음과 원수가 많은 욕망을 견줍니다. 왕, 불, 도둑, 홍수, 사랑받지 못하는 상속자, 이 다섯이 재물을 나누어 가져가기 때문에 욕망에는 원수가 많다고 합니다. 재물로 누리는 즐거움에는 잃을 걱정과 다툼이 따라붙으니, 원수가 없는 쪽을 두고 그 즐거움을 붙잡을 까닭이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묵상

왕, 불, 도둑, 홍수, 사랑받지 못하는 상속자, 이 다섯이 재물을 나누어 가져간다는 말은 가진 것을 누리는 즐거움 곁에 그것을 지켜야 하는 불안이 있음을 보여 줘요. 내가 가진 것 가운데 쥐고 있을 때보다 나누거나 쓸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것이 있나요?

풀려남이 실제로 있는데 죽이고 묶는 감각적 욕망이 왜 필요합니까? 감각적 욕망에 빠진 이들은 원하지 않아도 죽임과 묶임의 괴로움을 겪습니다.

Mokkhamhi vijjamāne, Kiṁ tava kāmehi yesu vadhabandho; Kāmesu hi asakāmā, Vadhabandhadukhāni anubho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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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을 빼앗는 다섯 위협을 든 뒤, 수메다는 풀려남과 죽이고 묶는 욕망을 맞세웁니다. 감각적 욕망을 좇는 이들은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죽임을 당하거나 묶이는 괴로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붙잡으려 한 즐거움이 원치 않은 폭력과 구속으로 돌아온다는 경고이며, 이어서 불붙은 풀 횃불의 비유가 나옵니다.

묵상

감각적 욕망을 좇다 보면 원하지 않았던 죽임과 묶임의 괴로움까지 겪게 된다는 말은 즐거움을 좇는 일이 늘 뜻대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줘요. 무언가를 얻으려다 오히려 거기에 묶여 버린 것처럼 느낀 적이 있나요?

불붙은 풀 횃불을 쥐고 놓지 않으면 그 불이 쥔 사람을 태웁니다. 감각적 욕망도 횃불과 같아 놓지 않는 이를 태웁니다.

Ādīpitā tiṇukkā, Gaṇhantaṁ dahanti neva muñcantaṁ; Ukkopamā hi kāmā, Dahanti ye te na muñcan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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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과 묶임이라는 넓은 피해를 말한 뒤, 수메다는 불붙은 풀 횃불을 쥔 한 사람의 모습을 비유로 듭니다. 횃불을 쥐고 놓지 않으면 그 불이 쥔 사람을 태웁니다. 감각적 욕망도 횃불과 같아서 놓지 않는 이를 태운다고 합니다. 손을 펴면 불에서 벗어나듯, 욕망을 놓으면 타는 괴로움도 멎습니다.

묵상

불붙은 풀 횃불은 손에 쥔 채 놓지 않을 때 바로 그 사람을 태워요. 놓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아직 쥐고 있는 것이 있나요?

하찮은 감각적 즐거움 때문에 넓고 큰 행복을 버리지 마십시오. 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처럼 나중에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Mā appakassa hetu, Kāmasukhassa vipulaṁ jahī sukhaṁ; Mā puthulomova baḷisaṁ, Gilitvā pacchā vihaññ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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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앞에서 불붙은 풀 횃불을 쥐고 놓지 않으면 쥔 사람이 탄다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어서 아니까랏따에게, 하찮은 감각적 즐거움 때문에 넓고 큰 행복을 버리지 말라고 권합니다. 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처럼 나중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당장 눈앞의 즐거움만 보고 고르면 그 대가를 뒤늦게 치른다는 경고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하찮은 즐거움과 넓고 큰 행복을 나란히 놓고, 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에 빗대어 말해요. 미끼를 무는 건 한순간이지만 괴로움은 나중에 찾아와요. 당장의 보상과 오래 남는 편안함 가운데, 요즘 더 돌보고 싶은 쪽은 어느 쪽인가요?

감각적 욕망 앞에서 마음먹고 자신을 길들이십시오. 그대는 지금 사슬에 묶인 개와 같습니다. 굶주린 천민들이 개를 잡아먹듯 감각적 욕망이 반드시 그대를 삼킬 것입니다.

Kāmaṁ kāmesu damassu, Tāva sunakhova saṅkhalābaddho; Kāhinti khu taṁ kāmā, Chātā sunakhaṁva caṇḍāl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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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바늘을 삼킨 메기에 이어, 수메다는 사슬에 묶인 개의 비유를 듭니다. 아니까랏따에게 감각적 욕망 앞에서 스스로를 길들이라고 권하고, 그가 지금 사슬에 묶인 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굶주린 천민들이 묶인 개를 잡아먹듯 감각적 욕망이 그를 반드시 삼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어서 욕망에 매인 채로는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을 겪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사슬에 묶인 개는 달아날 수 없어요. 수메다는 아니까랏따를 그 개에 견주어요. 되풀이할수록 내 발을 묶는 것 같은 습관이 있는지 가만히 돌아볼 수 있을까요?

감각적 욕망에 매인 채로는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을 겪을 것입니다. 오래가지 않는 감각적 욕망을 온전히 놓아 버리십시오.

Aparimitañca dukkhaṁ, Bahūni ca cittadomanassāni; Anubhohisi kāmayutto, Paṭinissaja addhuve kā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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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아니까랏따를 사슬에 묶인 개에 견준 수메다는, 감각적 욕망에 매인 채로는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을 겪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래가지 않는 감각적 욕망을 온전히 놓아 버리라고 권합니다. 이어서 늙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늙음이 들어 있는 욕망이 왜 필요하냐는 물음과, 어디서든 모든 태어남이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묵상

끝없는 괴로움과 마음의 많은 근심은 욕망에 매인 채로 있을 때의 이야기예요.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것에 내 마음을 얼마나 내어 줄지, 고를 여지가 있을까요?

늙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늙음이 들어 있는 감각적 욕망이 왜 필요합니까? 어디에서든 모든 태어남은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습니다.

Ajaramhi vijjamāne, Kiṁ tava kāmehi yesu jarā; Maraṇabyādhigahitā, Sabbā sabbattha jāt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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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지 않는 욕망을 놓으라고 권한 수메다는, 늙음 없음이 실제로 있는데 늙음이 들어 있는 욕망이 왜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어디에서든 모든 태어남은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늙음도 죽음도 슬픔도 없는 곳을 직접 가리킵니다. 아직 젊으니 감각의 즐거움을 누리라던 아니까랏따에게 주는 대답입니다.

묵상

수메다는 늙음이 들어 있는 감각적 욕망과 늙음 없음을 나란히 놓고, 어디서든 태어남은 죽음과 질병에 붙잡혀 있다고 말해요.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볼까요?

이것이 늙음 없음이고, 이것이 죽음 없음입니다. 이것이 늙음도 죽음도 없는, 슬픔 없는 곳입니다. 원수가 없고 막힘이 없으며, 흠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시달림이 없습니다.

Idamajaramidamamaraṁ, Idamajarāmaraṁ padamasokaṁ; Asapattamasambādhaṁ, Akhalitamabhayaṁ nirupatāpa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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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이것”이라고 거듭 가리키며, 늙음도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는 곳을 말합니다. 이어서 원수가 없음, 막힘이 없음, 흠이 없음, 두려움이 없음, 시달림이 없음을 차례로 꼽아 그곳이 어떤 상태인지 그려 보입니다. 욕망의 위험을 말해 온 수메다가 자신이 향하는 곳, 곧 고요히 꺼짐(닙바나)을 눈앞에 내보이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이 죽음 없음을 많은 이가 이미 이루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묵상

수메다가 “이것”이라고 거듭 가리킨 곳에는 원수도, 막힘도, 흠도, 두려움도, 시달림도 없다고 해요. 오늘 잠깐이라도 덜어졌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죽음 없음은 많은 이들이 이미 이루었고 오늘날에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치에 맞게 힘쓰는 이는 얻지만, 애쓰지 않는 이는 얻을 수 없습니다.”

Adhigatamidaṁ bahūhi, Amataṁ ajjāpi ca labhanīyamidaṁ; Yo yoniso payuñjati, Na ca sakkā aghaṭamān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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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죽음 없음을 많은 이들이 이미 이루었고 오늘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치에 맞게 힘쓰는 이는 얻고, 애쓰지 않는 이는 얻을 수 없다고 조건을 붙입니다. 아득한 옛이야기로 미루지 않고 지금 닦을 수 있는 길로 보여 주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추지 않습니다. 이 말을 마친 뒤 수메다는 잘라 둔 머리카락을 땅에 던집니다.

묵상

많은 이가 이미 이루었고 오늘도 얻을 수 있다는 말에는 이치에 맞게 힘쓴다는 조건이 붙어 있어요. 지금 형편에서 무리 없이 보탤 수 있는 아주 작은 선택은 무엇일까요?

조건 지어진 것들에서 기쁨을 찾지 못한 수메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까랏따를 달래면서 자른 머리카락을 땅에 던졌습니다.

Evaṁ bhaṇati sumedhā, Saṅkhāragate ratiṁ alabhamānā; Anunentī anikarattaṁ, Kese ca chamaṁ khipi sumedh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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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수메다는 조건 지어진 것들에서 기쁨을 찾지 못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수메다는 아니까랏따를 달래면서 잘라 둔 머리카락을 땅에 던집니다. 이 행동으로 왕비의 자리와 혼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눈앞에 보입니다. 이어서 아니까랏따가 일어나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청합니다.

묵상

수메다는 아니까랏따를 달래면서 잘라 둔 머리카락을 땅에 던져요. 달래는 말과 함께,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몸짓으로 보여 준 거예요.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내 결정을 분명히 전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아니까랏따는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청했습니다. “수메다가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도록 놓아주십시오. 그는 풀려남의 진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Uṭṭhāya anikaratto, Pañjaliko yācatassā pitaraṁ so; “Vissajjetha sumedhaṁ, Pabbajituṁ vimokkhasaccadass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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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땅에 놓인 뒤 아니까랏따는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청합니다. 수메다를 놓아주어 집을 떠나게 하면 풀려남의 진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혼인을 권하던 아니까랏따가 수메다의 뜻을 받아들여 허락을 돕는 쪽으로 돌아선 장면입니다.

묵상

혼인을 권하던 아니까랏따가 이번에는 두 손을 모으고 수메다의 아버지에게 딸을 놓아 달라고 청해요. 다른 사람의 분명한 뜻을 듣고 내 생각을 바꾸어 도운 적이 있나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놓아주자 그는 슬픔과 두려움을 겁내어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아직 배우는 수행자였을 때 여섯 가지 높은 앎과 으뜸가는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Vissajjitā mātāpitūhi, pabbaji sokabhayabhītā; Cha abhiññā sacchikatā, aggaphalaṁ sikkhamānā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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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까랏따의 청을 받아 어머니와 아버지가 수메다를 놓아주자, 수메다는 슬픔과 두려움을 겁내어 집을 떠나 수행자가 됩니다. 아직 배우는 동안 여섯 가지 높은 앎을 얻고, 으뜸가는 결실인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앞에서 아니까랏따가 말한 풀려남의 진리를 실제로 본 것입니다. 수메다가 겁낸 슬픔과 두려움은 앞서 이야기한, 시작을 알 수 없는 떠돎 속에서 거듭 우는 삶과 이어집니다.

묵상

부모의 허락, 집을 떠남, 배우는 동안 이룬 여섯 가지 높은 앎과 으뜸가는 결실이 빠르게 이어져요. 내가 가려는 길에서 무언가를 이루기에 앞서 필요한 허락이나 배움, 안전한 도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왕녀가 이룬 고요히 꺼짐(닙바나)은 놀랍고도 경이로웠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그는 지난 삶들의 행적을 밝혀 말했습니다.

Acchariyamabbhutaṁ taṁ, Nibbānaṁ āsi rājakaññāya; Pubbenivāsacaritaṁ, Yathā byākari pacchime kā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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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 높은 앎과 으뜸가는 결실을 이룬 수메다를 두고, 이 노래는 왕녀가 이룬 고요히 꺼짐(닙바나)이 놀랍고 경이로웠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수메다가 생의 마지막에 밝힌 지난 삶들의 행적으로 이야기가 넘어갑니다. 지금 이룬 풀려남의 먼 뿌리를 지난 삶에서 찾는 대목입니다. 이어서 수메다는 꼬나가마나 부처님 때 세 여자 친구가 함께 수행자 공동체(상가)의 절에 새로 지은 거처를 베푼 일을 이야기합니다.

묵상

왕녀의 고요히 꺼짐을 놀랍다고 말한 뒤, 이야기는 수메다가 생의 마지막에 밝힌 지난 삶들로 넘어가요.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 가운데 고마우면서도 붙들고 싶지는 않은 장면이 있나요?

“꼬나가마나 부처님 시대에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머무는 곳에 새로 지은 거처를 우리 세 여자 친구가 함께 베풀어 드렸습니다…”

“Bhagavati koṇāgamane, Saṅghārāmamhi navanivesamhi; Sakhiyo tisso janiyo, Vihāradānaṁ adāsim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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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죽음을 앞두고 지난 삶들을 밝히며, 먼저 꼬나가마나 부처님 시대를 떠올립니다. 수행자 공동체(상가)가 머무는 곳에 새로 지은 거처를 세 여자 친구가 함께 베풀었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세 친구가 신들 가운데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 태어났다고 합니다. 수메다는 긴 회고의 시작을 친구들과 함께 수행자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한 일에서 찾습니다.

묵상

꼬나가마나 부처님 시대에 세 여자 친구가 함께 새로 지은 거처를 수행자 공동체에 드린 일을, 수메다는 먼 출발점으로 기억해요. 몇 사람과 힘을 모아 누군가 머물고 배울 자리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든다면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열 번, 백 번, 천 번, 그리고 만 번이나 신들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인간들 가운데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Dasakkhattuṁ satakkhattuṁ, Dasasatakkhattuṁ satāni ca satakkhattuṁ; Devesu uppajjimha, Ko pana vādo manuss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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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거처를 베푼 뒤 세 친구가 신들 가운데 태어난 횟수를, 수메다는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으로 늘려 가며 셉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일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덧붙입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신들 가운데 지닌 큰 힘과 왕비였던 때의 모습이 나옵니다. 한 번의 베풂이 오랜 세월 동안 좋은 열매를 맺었다고 수메다는 돌아봅니다.

묵상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으로 커지는 숫자는 한 번의 베풂이 얼마나 길게 이어졌는지를 그려요. 내가 한 작은 일이 예상보다 오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 경험이 있었나요?

우리는 신들 가운데 큰 힘을 지녔으니 인간 세상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나는 일곱 보물을 지닌 왕의 으뜸 왕비였고 여인이라는 보물이었습니다.

Devesu mahiddhikā ahumha, Mānusakamhi ko pana vādo; Sattaratanassa mahesī, Itthiratanaṁ ahaṁ āsi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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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다는 자신과 두 친구가 신들 가운데서도 큰 힘을 지녔고, 인간 세상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어 자신은 일곱 보물을 지닌 왕의 으뜸 왕비였고 여인이라는 보물이었다고 밝힙니다. 이번 생에서 물리친 왕비의 자리를 수메다는 지난 삶에서 이미 누려 보았습니다.

묵상

수메다는 일곱 보물을 지닌 왕의 으뜸 왕비, 곧 “여인이라는 보물”이었다고 말해요. 이미 충분히 겪어 보아서 더는 얻으려 애쓰지 않게 된 자리나 인정이 있나요?

그 일이 원인이었고 시작이었고 뿌리였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고, 가르침을 기뻐하는 이에게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어졌습니다.

So hetu so pabhavo, Taṁ mūlaṁ sāva sāsane khantī; Taṁ paṭhamasamodhānaṁ, Taṁ dhammaratāya nibbānaṁ.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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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 가운데 지닌 큰 힘과 왕비의 자리를 말한 뒤, 수메다는 거처를 베푼 그 일을 원인, 시작, 뿌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일, 첫 만남으로 거듭 가리킵니다. 그 일이 가르침을 기뻐하는 이에게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어졌다고 말하며 긴 회고를 맺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구절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이들도 이와 같이 실천한다고 말합니다.

묵상

수메다는 한 번 거처를 베푼 일을 원인, 시작, 뿌리, 가르침을 받아들인 일, 첫 만남으로 거듭 짚고, 그 일이 가르침을 기뻐하는 이에게 고요히 꺼짐으로 이어졌다고 말해요. 결과를 손에 쥐려 하지 않고도 이어 가고 싶은 선한 씨앗이 있나요?

“비할 데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말씀을 믿는 이들은 이와 같이 실천합니다. 그들은 어떤 존재로 사는 삶에도 싫증을 느끼고 싫증을 느낀 끝에 탐냄에서 벗어납니다.”

Evaṁ karonti ye sadda- hanti vacanaṁ anomapaññassa; Nibbindanti bhavagate, Nibbinditvā virajjantī”ti.

쿳다까 니까야 Thig 16.1 수메다 장로니의 게송

배경

수메다는 비할 데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말씀을 믿는 이들이 이와 같이 실천한다고 말하며 노래를 맺습니다. 그들은 먼저 어떤 존재로 사는 삶에도 싫증을 느끼고, 그 싫증을 거쳐 탐냄에서 벗어납니다. 나이 든 여성 수행자들의 노래 모음인 테리가타도 이 구절로 마무리됩니다.

묵상

비할 데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말씀을 믿는 이들은 어떤 존재로 사는 삶에도 싫증을 느낀 뒤 탐냄에서 벗어난다고 수메다는 말해요. 붙잡을수록 괴로운 것이 있다면, 무리하지 않고 조금 거리를 둘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