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까빤하 숫따(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Sakkapañhasutta

디가 니까야 DN 21

제석이 신들과 함께 인드라살라 동굴의 부처님을 찾아가 다툼을 낳는 질투·인색에서 좋아함·싫어함, 욕구, 생각과 지각으로 이어지는 조건을 묻는다. 부처님은 말·행동·추구와 감각기관을 결과에 따라 분별하고 서로 다른 기쁨을 가려 닦는 길을 밝히며, 문답 끝에 제석은 의심을 끊고 예류의 결실을 얻는다.

인용된 가르침 138구절

이 경을 138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인드라살라 동굴에서 시작된 이야기 1구절

전승의 첫 문장과 함께 부처님께서 머무신 마가다의 인드라살라 동굴 위치를 밝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에 머무셨다. 라자가하 동쪽에는 암바산다라는 제사를 맡는 계층(브라흐마나)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고, 그 북쪽 웨디야까 산의 인드라살라 동굴에 계셨다.”

Evaṁ me sutaṁ— ekaṁ samayaṁ bhagavā magadhesu viharati, pācīnato rājagahassa ambasaṇḍā nāma brāhmaṇagāmo, tassuttarato vediyake pabbate indasālaguhāy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경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전승의 문장 뒤에 부처님께서 머무신 곳을 단계적으로 좁혀 갑니다. 넓게는 마가다이며, 라자가하 동쪽의 암바산다 브라흐마나 마을과 그 북쪽 웨디야까 산을 거쳐 인드라살라 동굴에 이릅니다. 장소가 동쪽과 북쪽 방향을 따라 차례로 좁혀지며 만남의 자리가 분명해집니다. 이 외딴 동굴은 뒤에서 깊은 집중(자나)에 머무는 부처님께 삭까와 신들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이유를 이해하게 하는 장면의 바탕입니다.

묵상

중요한 만남을 떠올릴 때 사람뿐 아니라 그때의 장소와 방향도 함께 기억나나요? 지금 머무는 곳의 넓은 지역과 가까운 지점을 차례로 알아차리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그 위치가 얼마나 또렷한가요?

2 삭까에게 부처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다 1구절

신들의 왕 삭까가 부처님을 뵙고 싶어 하며 완전한 자격을 갖춘 부처님의 거처를 자문함

그때 신들의 왕 삭까에게 부처님을 뵙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어났다. 신들의 왕 삭까는 생각했다.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온전히 깨달은 분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실까?”

Tena kho pana samayena sakkassa devānamindassa ussukkaṁ udapādi bhagavantaṁ dassanāya. Atha kho sakkassa devānamindassa etadahosi: “kahaṁ nu kho bhagavā etarahi viharati arahaṁ sammāsambuddh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장소가 제시된 뒤 시선은 신들의 왕 삭까에게 옮겨갑니다. 먼저 부처님을 뵙고 싶은 간절함이 일어나고, 이어 그가 부처님께서 지금 어디에 머무시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질문에는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온전히 깨달은 분”이라는 세 자격이 모두 붙어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상대의 현재 거처를 확인하는 순서는, 뒤의 동행 제안과 정중한 접근을 준비합니다.

묵상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곧바로 다가가기보다 그 사람의 상황을 먼저 궁금해한 적이 있나요? 지금 떠오르는 한 만남에서 바람과 배려가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그 배려는 어떤 모습인가요?

3 삭까가 부처님의 거처를 신들에게 알리다 1구절

삭까가 부처님의 위치를 알아본 뒤 삼십삼천 신들에게 같은 장소를 자세히 알려 줌

신들의 왕 삭까는 부처님께서 마가다의 인드라살라 동굴에 머무시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삼십삼천 신들에게 말했다. “벗들이여, 부처님께서는 마가다에 머무신다. 라자가하 동쪽 암바산다 브라흐마나 마을의 북쪽, 웨디야까 산에 있는 인드라살라 동굴에 계신다.”

Addasā kho sakko devānamindo bhagavantaṁ magadhesu viharantaṁ pācīnato rājagahassa ambasaṇḍā nāma brāhmaṇagāmo, tassuttarato vediyake pabbate indasālaguhāyaṁ. Disvāna deve tāvatiṁse āmantesi: “ayaṁ, mārisā, bhagavā magadhesu viharati, pācīnato rājagahassa ambasaṇḍā nāma brāhmaṇagāmo, tassuttarato vediyake pabbate indasālaguhāy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의 질문에는 곧바로 확인이 따릅니다. 그는 부처님의 거처를 알아본 뒤 삼십삼천 신들을 “벗들이여”라고 부르고, 자신이 확인한 장소를 같은 순서로 다시 전합니다. 마가다, 라자가하 동쪽의 암바산다 마을, 그 북쪽 웨디야까 산, 인드라살라 동굴이라는 지리 정보가 두 번 온전히 나옵니다. 첫 진술은 삭까가 알아본 사실이고 둘째는 동행할 신들에게 알리는 말이므로, 앎이 공동의 행동을 위한 정확한 공유로 바뀌는 대목입니다.

묵상

확인한 사실을 다른 이와 나눌 때 눈에 띄는 결론만 말하나요, 함께 움직이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도 전하나요? 최근의 한 약속에서 서로 다시 확인하면 좋을 지점이 있나요? 무엇부터 분명히 말할 수 있나요?

4 함께 부처님을 뵈러 가자고 제안하다 1구절

삭까가 신들에게 부처님을 함께 찾아뵙자고 묻고 삼십삼천 신들이 존칭으로 수락함

“벗들이여, 우리가 그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온전히 깨달은 분을 뵈러 가면 어떻겠느냐?” 삼십삼천 신들은 신들의 왕 삭까에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삭까 님”이라고 응답했다.

Yadi pana, mārisā, mayaṁ taṁ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eyyāma arahantaṁ sammāsambuddhan”ti? “Evaṁ, bhaddantavā”ti kho devā tāvatiṁsā sakkassa devānamindassa paccassosu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거처를 알린 삭까는 명령하지 않고 “우리가 뵈러 가면 어떻겠느냐”고 동행의 뜻을 묻습니다. 그는 신들을 다시 “벗들이여”라고 부르며, 찾아뵐 대상을 부처님·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온전히 깨달은 분이라는 세 자격으로 밝힙니다. 삼십삼천 신들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삭까 님”이라고 삭까에게 응답합니다. 제안과 수락, 두 호칭이 서로 마주하는 짧은 문답은 많은 신이 함께 움직이더라도 만남이 강요가 아니라 합의에서 시작됨을 보여 줍니다.

묵상

여럿이 함께할 일을 정할 때 내 생각을 명령처럼 말하나요, 함께할 뜻을 묻는 질문으로 건네나요? 지금 제안하고 싶은 한 가지를 상대가 편히 답할 수 있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요? 어떤 어조가 자연스러운가요?

5 빤짜시카에게도 친견을 제안하다 1구절

삭까가 간답바 신 빤짜시카에게 부처님의 정확한 거처를 알리고 함께 뵙자고 두 번 다정히 부름

그때 신들의 왕 삭까는 간답바 신 빤짜시카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빤짜시카야, 부처님께서는 마가다에 머무신다. 라자가하 동쪽 암바산다 브라흐마나 마을의 북쪽, 웨디야까 산의 인드라살라 동굴에 계신다. 사랑하는 빤짜시카야, 우리가 그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온전히 깨달은 분을 뵈러 가면 어떻겠느냐?”

Atha kho sakko devānamindo pañcasikhaṁ gandhabbadevaputtaṁ āmantesi: “ayaṁ, tāta pañcasikha, bhagavā magadhesu viharati pācīnato rājagahassa ambasaṇḍā nāma brāhmaṇagāmo, tassuttarato vediyake pabbate indasālaguhāyaṁ. Yadi pana, tāta pañcasikha, mayaṁ taṁ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eyyāma arahantaṁ sammāsambuddhan”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삼십삼천 신들의 수락 뒤 삭까(신들의 왕)는 간답바 신 빤짜시카에게 따로 말을 건넵니다. 앞의 제안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거처를 네 단계로 밝히고, 세 자격을 모두 붙여 함께 뵈러 갈 뜻을 묻습니다. 여기서는 ‘사랑하는 빤짜시카야’라는 다정한 부르는 말이 장소를 알릴 때와 제안할 때 각각 한 번, 모두 두 번 나옵니다. 삭까가 빤짜시카를 별도로 부르는 까닭은 곧 그에게 음악으로 먼저 부처님께 다가가 달라고 부탁할 장면을 준비하며, 동행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이 생김을 보여 줍니다.

묵상

같은 제안을 하더라도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말의 온기나 설명의 정도가 달라지나요? 지금 도움을 청하고 싶은 사람에게 존중과 친근함을 함께 전할 수 있는 표현이 무엇일까요? 그 말은 어떻게 들릴까요?

6 빤짜시카가 비파를 들고 수행원이 되다 1구절

빤짜시카가 삭까의 제안을 수락하고 연노란 빌와 나무 비파를 들어 그의 수행원으로 나섬

간답바 신 빤짜시카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삭까 님”이라고 응답했다. 그는 연노란 빌와 나무로 만든 굽은 비파를 들고 신들의 왕 삭까의 수행원으로 따라나섰다.

“Evaṁ, bhaddantavā”ti kho pañcasikho gandhabbadevaputto sakkassa devānamindassa paṭissutvā beluvapaṇḍuvīṇaṁ ādāya sakkassa devānamindassa anucariyaṁ upāgam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빤짜시카는 삭까의 제안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삭까 님”이라고 답합니다. 수락 뒤에는 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연노란 빌와 나무로 만든 굽은 비파를 들고 삭까의 수행원으로 나섭니다. 비파는 뒤에서 깊은 집중(자나)에 머무는 부처님께 먼저 다가가 음악과 노래를 들려드리는 데 쓰입니다. 응답·도구를 듦·수행원으로 따라감이라는 세 행동이 한 문장에 이어지며, 앞에서 예고된 빤짜시카의 특별한 역할이 구체적인 준비로 바뀝니다.

묵상

부탁을 받아들인 뒤 그 일에 필요한 것을 실제로 챙겨 나선 경험이 있나요? 지금 수락한 한 가지가 있다면 말과 행동 사이를 이어 줄 작은 준비는 무엇일까요?

7 신들의 무리가 웨디야까 산에 나타나다 1구절

삼십삼천 신들에게 둘러싸이고 빤짜시카를 앞세운 삭까가 순식간에 웨디야까 산에 나타남

신들의 왕 삭까는 삼십삼천 신들에게 둘러싸이고 간답바 신 빤짜시카를 앞세웠다. 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거나 편 팔을 굽히듯, 그들은 삼십삼천 신들의 세계에서 사라져 마가다의 암바산다 브라흐마나 마을 북쪽 웨디야까 산에 나타났다.

Atha kho sakko devānamindo devehi tāvatiṁsehi parivuto pañcasikhena gandhabbadevaputtena purakkhato—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ṁ vā bāhaṁ pasāreyya pasāritaṁ vā bāhaṁ samiñjeyya; evameva—devesu tāvatiṁsesu antarahito magadhesu pācīnato rājagahassa ambasaṇḍā nāma brāhmaṇagāmo, tassuttarato vediyake pabbate paccuṭṭhās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준비를 마친 일행은 삭까를 중심으로 이동합니다. 삼십삼천 신들이 그를 둘러싸고 빤짜시카가 앞장선 배열을 먼저 밝힌 뒤, 이동의 빠르기를 힘센 사람이 팔을 펴고 굽히는 두 동작에 비유합니다. 출발지는 삼십삼천 신들의 세계이고 도착지는 암바산다 마을 북쪽의 웨디야까 산입니다. 사라짐과 나타남이 한 쌍을 이루는 이 장면은 멀리 있던 방문자들이 부처님의 동굴 가까이 실제로 도착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한 무리가 움직일 때 앞장서는 사람과 둘러서 함께 가는 이들의 역할이 다르게 보이나요? 내가 최근 함께한 이동이나 일에서 어느 자리가 편했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자리는 어떻게 느껴졌나요?

8 신들의 위력으로 산과 마을이 빛나다 1구절

신들의 도착으로 웨디야까 산과 암바산다 마을에 찬란한 빛이 나타나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함

그때 신들의 위력으로 웨디야까 산과 암바산다 브라흐마나 마을에 매우 찬란한 빛이 나타났다. 주변 마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Tena kho pana samayena vediyako pabbato atiriva obhāsajāto hoti ambasaṇḍā ca brāhmaṇagāmo yathā taṁ devānaṁ devānubhāvena. Apissudaṁ parito gāmesu manussā evamāhaṁsu: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신들이 웨디야까 산에 나타나자 그 도착은 주변 풍경의 변화로 드러납니다. 산만이 아니라 암바산다 브라흐마나 마을에도 매우 찬란한 빛이 생기며, 그 원인은 신들의 위력이라고 분명히 밝혀집니다. 이어 주변 여러 마을의 사람들이 이 현상을 보고 말을 시작합니다. 빛의 범위가 산과 마을 두 곳이고, 이를 목격한 이들은 동행한 신들이 아니라 주변의 인간들입니다. 다음의 오해와 질문은 평소와 다른 현상을 원인을 모른 채 마주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펼쳐집니다.

묵상

예상하지 못한 밝음이나 큰 변화를 보았을 때 곧바로 원인을 단정하나요, 먼저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나요? 최근 놀랐던 한 장면에서 처음 떠오른 설명은 무엇이었을까요? 빛의 느낌은 어땠나요?

9 사람들이 산의 찬란한 빛에 놀라다 1구절

주변 사람들이 산에 불이 붙고 타오른다고 세 번 추측한 뒤 빛의 까닭을 묻고 전율함

“오늘 웨디야까 산에 불이 붙었나 보다! 오늘 웨디야까 산이 타고 있나 보다! 오늘 웨디야까 산이 불타오르나 보다! 어째서 오늘 웨디야까 산과 암바산다 브라흐마나 마을에 이토록 찬란한 빛이 나타났을까?”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털이 곤두섰다.

“ādittassu nāmajja vediyako pabbato jhāyatisu nāmajja vediyako pabbato jalatisu. Nāmajja vediyako pabbato. Kiṁsu nāmajja vediyako pabbato atiriva obhāsajāto ambasaṇḍā ca brāhmaṇagāmo”ti; saṁviggā lomahaṭṭhajātā ahesu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주변 사람들은 낯선 빛을 보고 웨디야까 산에 불이 붙고, 타고, 불타오른다는 세 표현을 잇달아 말합니다. 그러나 곧 산과 암바산다 마을이 왜 그렇게 밝아졌는지 질문하므로 첫 추측을 확정된 사실로 끝내지는 않습니다. 이 광경에 두려움이 일고 털이 곤두섰다는 신체 반응도 덧붙습니다. 실제 원인은 신들의 위력이지만, 인간들이 아는 범위에서는 불이라는 해석과 까닭을 묻는 물음만 가능하며, 두 관점의 차이가 이 일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몸이 먼저 놀라고 나서 마음이 이유를 찾았던 경험이 있나요? 지금은 그 반응을 옳고 그름으로 재지 않고, 처음 든 추측과 뒤이어 생긴 질문을 서로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몸에는 무엇이 남아 있나요?

10 빤짜시카에게 먼저 부처님을 기쁘게 해 달라 하다 1구절

깊은 집중을 즐기며 홀로 머무는 깨달음에 이른 이께 다가가기 어렵다는 삭까가 빤짜시카에게 먼저 마음을 기쁘게 해 달라고 청함

그때 신들의 왕 삭까는 간답바 신 빤짜시카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빤짜시카야, 나 같은 이가 깨달음에 이른 이들(따타가따)께 다가가기는 어렵다. 그분들은 깊은 집중(자나)에 들고 깊은 집중을 즐기며 지금 홀로 물러나 계신다. 사랑하는 빤짜시카야, 네가 먼저 부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린다면, 사랑하는 이여, 네가 먼저 기쁘게 해 드린 뒤에 우리가 그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온전히 깨달은 분을 뵈러 가겠다.”

Atha kho sakko devānamindo pañcasikhaṁ gandhabbadevaputtaṁ āmantesi: “durupasaṅkamā kho, tāta pañcasikha, tathāgatā mādisena, jhāyī jhānaratā, tadantaraṁ paṭisallīnā. Yadi pana tvaṁ, tāta pañcasikha, bhagavantaṁ paṭhamaṁ pasādeyyāsi, tayā, tāta, paṭhamaṁ pasāditaṁ pacchā mayaṁ taṁ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eyyāma arahantaṁ sammāsambuddhan”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산에 도착한 뒤 삭까는 부처님께 곧장 들어가지 않고 빤짜시카에게 먼저 다가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들(따타가따)은 깊은 집중(자나)에 들고 깊은 집중을 즐기며 홀로 물러나 있으므로 자신 같은 이가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먼저 듭니다. 이어 빤짜시카가 부처님의 마음을 먼저 기쁘게 하고, 그 뒤에 삭까 일행이 뵙는다는 순서를 두 번의 “먼저”와 한 번의 “뒤에”로 분명히 합니다. 다정한 부름말도 모두 세 번이며, 이 장면은 상대의 고요한 머묾을 존중하는 접근 방식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 고요히 집중하고 있을 때 내 용건보다 그 사람의 상태를 먼저 헤아린 적이 있나요? 지금 다가가야 할 한 상황에서 때와 순서를 살피는 배려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 순서가 편안하게 느껴지나요?

11 소리가 닿을 알맞은 거리에 서다 1구절

빤짜시카가 비파를 들고 동굴에 다가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소리가 들릴 자리를 골라 섬

간답바 신 빤짜시카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삭까 님”이라고 응답하고, 연노란 빌와 나무로 만든 굽은 비파를 들어 인드라살라 동굴로 다가갔다. 그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부처님께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고, 내 소리도 들으실 것이다.” 그러고는 한쪽에 섰다.

“Evaṁ, bhaddantavā”ti kho pañcasikho gandhabbadevaputto sakkassa devānamindassa paṭissutvā beluvapaṇḍuvīṇaṁ ādāya yena indasālaguh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ettāvatā me bhagavā neva atidūre bhavissati nāccāsanne, saddañca me sossatī”ti— ekamantaṁ aṭṭhās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의 부탁을 받은 빤짜시카는 다시 존칭으로 수락하고 비파를 들어 동굴로 갑니다. 도착한 뒤에는 연주부터 하지 않고 부처님과의 거리를 가늠합니다. 기준은 너무 멀지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소리는 들리는 자리입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으면서 소리는 들리는 자리를 고른 선택입니다. 그렇게 판단한 뒤 한쪽에 서는 순서는 깊은 집중(자나) 중인 부처님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중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배려를 드러냅니다.

묵상

말이나 소리를 건넬 때 너무 멀거나 가깝지 않은 거리를 몸으로 가늠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한 관계에서 내 뜻이 닿으면서도 상대의 공간을 지킬 수 있는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요?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12 다섯 주제를 엮은 사랑 노래를 시작하다 1구절

빤짜시카가 비파를 연주하며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완전히 깨달은 이·감각적 사랑을 엮은 노래의 첫 연을 부름

한쪽에 선 간답바 신 빤짜시카는 연노란 빌와 나무로 만든 굽은 비파를 울리며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감각적 사랑에 관한 노래를 불렀다. “밧다 수리야왓짜사여, 그대의 아버지 띰바루께 예경하오. 그분에게서 아름다운 그대가 태어나 내게 기쁨을 낳아 주었소.”

Ekamantaṁ ṭhito kho pañcasikho gandhabbadevaputto beluvapaṇḍuvīṇaṁ assāvesi, imā ca gāthā abhāsi buddhūpasañhitā dhammūpasañhitā saṅghūpasañhitā arahantūpasañhitā kāmūpasañhitā: “Vande te pitaraṁ bhadde, timbaruṁ sūriyavacchase; Yena jātāsi kalyāṇī, ānandajananī mama.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알맞은 자리에 선 빤짜시카는 비파와 목소리를 함께 울립니다. 노래의 주제는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감각적 사랑의 다섯 가지라고 먼저 밝혀집니다. 첫 연에서는 밧다와 수리야왓짜사라는 이름으로 같은 여인을 부르고, 그의 아버지 띰바루에게 예경한 뒤 딸이 자신에게 기쁨을 준다고 노래합니다. 숭고한 대상과 구애의 감정이 한 노래 안에 놓이지만, 화자는 부처님이 아니라 간답바 음악가입니다. 이 구별이 이어지는 사랑 비유들을 수행의 가르침으로 오해하지 않게 합니다.

묵상

서로 성격이 다른 다섯 주제가 한 노래에 함께 놓일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노래하는 이의 목소리와 경이 전하는 가르침을 구별하며 읽으면 가장 먼저 남는 한 표현은 무엇인가요? 왜 그 말이 남았을까요?

13 바람과 물과 약과 음식에 사랑을 견주다 1구절

빤짜시카가 사랑하는 이를 네 가지 절실한 도움과 완전히 깨달은 이에게 소중한 가르침에 견주어 노래함

“땀 흘리는 이에게 바람이, 목마른 이에게 마실 물이 사랑스럽듯, 앙기라시여, 그대는 내게 사랑스럽소. 가르침이 완전히 깨달은 이들(아라한)에게 소중한 것과 같소. 병든 이에게 약이, 굶주린 이에게 음식이 절실하듯, 밧다여, 물로 타는 불을 끄듯 나를 식혀 주오.”

Vātova sedataṁ kanto, pānīyaṁva pipāsato; Aṅgīrasi piyāmesi, dhammo arahatāmiva. Āturasseva bhesajjaṁ, bhojanaṁva jighacchato; Parinibbāpaya maṁ bhadde, jalantamiva vārin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노래의 다음 두 연은 사랑의 절실함을 다섯 관계로 비유합니다. 땀과 바람, 목마름과 물,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와 가르침, 병과 약, 배고픔과 음식이 차례로 짝을 이룹니다. 마지막에는 물이 타는 불을 끄듯 자신을 식혀 달라고 밧다에게 직접 청합니다. 앙기라시와 밧다는 같은 상대를 부르는 두 호칭이며, 비유와 실제 구애의 요청이 함께 쓰입니다. 감각적 열망을 가르침과 나란히 둔 것은 빤짜시카의 노래 방식입니다.

묵상

바람·물·약·음식 가운데 지금 가장 생생하게 느껴지는 비유가 있나요? 강한 구애의 표현이 편안하거나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그 반응을 판단하지 않고 어느 말에서 시작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14 더위에 지친 코끼리처럼 욕망에 사로잡히다 1구절

빤짜시카가 연못에 뛰어드는 코끼리와 몰이를 벗어난 코끼리의 두 비유로 강한 욕망을 노래함

“더위에 지친 코끼리가 꽃술과 꽃가루 가득한 시원한 연못에 뛰어들듯, 나는 그대의 가슴과 배에 뛰어들고 싶소. 갈고리를 벗어나 창과 쇠꼬챙이를 이겨 낸 코끼리처럼, 나는 그대의 아름다운 넓적다리에 미쳐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오.”

Sītodakaṁ pokkharaṇiṁ, yuttaṁ kiñjakkhareṇunā; Nāgo ghammābhitattova, ogāhe te thanūdaraṁ. Accaṅkusova nāgova, jitaṁ me tuttatomaraṁ; Kāraṇaṁ nappajānāmi, sammatto lakkhaṇūruy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이 두 연에는 코끼리 비유가 두 번 이어집니다. 첫 코끼리는 더위에 지쳐 꽃술과 꽃가루가 가득한 시원한 연못에 뛰어들며, 빤짜시카는 이를 상대의 가슴과 배를 향한 욕망에 겹칩니다. 둘째 코끼리는 갈고리와 창과 쇠꼬챙이의 통제를 벗어난 모습이고, 화자는 아름다운 넓적다리에 미쳐 까닭을 알지 못한다고 부정합니다. 시원함을 찾는 갈망과 통제를 잃은 상태가 차례로 강해집니다. 몸을 대상화하는 이 말에는 구애 노래 속 화자의 욕망이 드러나 있습니다.

묵상

욕망을 더위와 통제를 벗어난 코끼리에 견준 표현이 어떻게 들리나요? 지금 알아차릴 수 있는 몸의 반응이 있나요? 어느 비유가 더 강하게 남나요?

15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돌아가지 못하다 1구절

빤짜시카가 변해 버린 마음과 되돌아갈 수 없음을 말하고 상대를 세 번 안아 달라고 청함

“내 마음은 그대에게 집착하여 완전히 달라졌소. 낚싯바늘을 삼킨 물고기처럼 나는 되돌아갈 수 없소. 아름다운 넓적다리의 밧다여, 나를 안아 주오. 둥근 눈의 이여, 나를 안아 주오. 아름다운 이여, 나를 감싸 안아 주오. 이것이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오.”

Tayi gedhitacittosmi, cittaṁ vipariṇāmitaṁ; Paṭigantuṁ na sakkomi, vaṅkaghastova ambujo. Vāmūru saja maṁ bhadde, saja maṁ mandalocane; Palissaja maṁ kalyāṇi, etaṁ me abhipatthi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빤짜시카는 마음이 상대에게 집착해 달라졌다고 말한 뒤, 낚싯바늘을 삼킨 물고기처럼 되돌아갈 수 없다고 부정합니다. 다음 연에서는 아름다운 넓적다리의 밧다, 둥근 눈의 이, 아름다운 이라는 호칭을 잇달아 쓰며 안아 달라는 요청을 세 번 되풀이합니다. 마지막에는 바로 이것이 자신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닫습니다. 마음의 변화·불가능의 비유·반복 요청이 점점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만, 상대의 응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므로, 화자의 욕구와 상호 동의는 다른 것입니다.

묵상

되돌아갈 수 없다는 강한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사실처럼 느껴지나요, 한때의 감정 표현처럼 들리나요? 반복된 요청과 상대의 아직 나오지 않은 답을 구별하면 무엇이 달라 보이나요? 그 차이가 보이나요?

16 작았던 욕망이 여러 배로 커지다 1구절

빤짜시카가 곱슬머리 여인을 향한 작은 욕망이 완전히 깨달은 이께 드린 베풂처럼 크게 늘었다고 노래함

“곱슬머리의 그대를 향한 내 욕망은 참으로 작았으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께 드린 베풂처럼 이제 여러 배로 커졌소.”

Appako vata me santo, kāmo vellitakesiyā; Anekabhāvo samuppādi, arahanteva dakkhiṇ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되돌아갈 수 없다는 고백과 세 번의 포옹 요청 뒤, 빤짜시카는 욕망의 크기가 변한 과정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곱슬머리 여인을 향한 욕망이 작았지만 이제 여러 배로 생겨났다고 대조합니다. 그 증가를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께 드린 베풂에 견주는데, 이는 간답바 음악가가 자신의 감정을 과장해 노래하는 비유입니다. 작음과 여러 배라는 수량의 대비는 다음 두 연에서 자신이 지은 공덕까지 사랑의 결실과 연결하려는 흐름을 엽니다.

묵상

작은 관심이 되풀이되는 생각 속에서 크게 자란 경험이 있나요? 그 변화가 좋거나 나쁘다고 곧바로 정하기보다, 언제부터 크기가 달라졌다고 느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때 몸에서는 어떤 느낌이 있었나요?

17 두 공덕이 함께함으로 익기를 바라다 1구절

빤짜시카가 완전히 깨달은 이들께 지은 공덕과 이 땅에서 지은 공덕이 모두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익기를 두 번 바람

“내가 그런 완전히 깨달은 이들(아라한)께 지은 공덕이 있다면, 온몸이 아름다운 이여, 그 모든 것이 그대와 함께 익기를 바라오. 내가 이 땅에서 지은 공덕이 있다면, 온몸이 아름다운 이여, 그 모든 것이 그대와 함께 익기를 바라오.”

Yaṁ me atthi kataṁ puññaṁ, arahantesu tādisu; Taṁ me sabbaṅgakalyāṇi, tayā saddhiṁ vipaccataṁ. Yaṁ me atthi kataṁ puññaṁ, asmiṁ pathavimaṇḍale; Taṁ me sabbaṅgakalyāṇi, tayā saddhiṁ vipacca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빤짜시카는 같은 네 줄 구조를 두 번 노래합니다. 첫째 공덕의 범위는 그런 완전히 깨달은 이들(아라한)에게 지은 것이고, 둘째는 이 땅에서 지은 모든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온몸이 아름다운 이여”라고 부른 뒤 그 공덕이 상대와 함께 익기를 바랍니다. 공덕을 비는 말과 부름, 함께 익기를 바라는 구절이 두 번 그대로 되풀이되고, 달라지는 것은 공덕을 지은 대상과 범위뿐입니다. 화자는 삶에서 쌓은 선한 결실까지 사랑의 성취와 함께 묶고 싶어 합니다.

묵상

내가 한 좋은 일의 결실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그 바람 속에 상대의 행복을 비는 마음과 내 소망을 이루려는 마음이 어떻게 함께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어떤 마음이 더 가까운가요?

18 죽음 없음을 찾는 성자에 사랑을 견주다 1구절

빤짜시카가 집중하여 죽음 없음을 찾고 깨달음에 기뻐하는 성자의 모습을 사랑의 추구와 결합에 견줌

“사꺄의 아들이 깊은 집중(자나)에 들어 한마음이고 슬기로우며 마음챙기면서, 죽음 없음을 얻으려는 성자이듯, 수리야왓짜사여, 나도 그대를 얻으려 하오. 성자가 위없는 깨달음에 이르러 기뻐하듯, 아름다운 이여, 나도 그대와 하나가 된다면 기뻐하겠소.”

Sakyaputtova jhānena, ekodi nipako sato; Amataṁ muni jigīsāno, tamahaṁ sūriyavacchase. Yathāpi muni nandeyya, patvā sambodhimuttamaṁ; Evaṁ nandeyyaṁ kalyāṇi, missībhāvaṁ gato tay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노래의 앞부분에 이어, 수행과 깨달음에 빗댄 두 비유가 나옵니다. 첫 연은 깊은 집중(자나)에 든 사꺄의 아들이 한마음·슬기로움·마음챙김을 갖추어 죽음 없음을 찾는 모습을, 빤짜시카가 수리야왓짜사를 구하는 일에 견줍니다. 둘째는 성자가 위없는 깨달음에 이르러 기뻐하는 모습을 상대와 하나가 될 때의 기쁨에 견줍니다. 거룩한 말로 자신의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묵상

숭고한 목표의 언어를 개인적인 바람에 빌려 쓰는 노래가 어떻게 들리나요? 비유가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불편할 수도 있는데, 지금 가장 먼저 생기는 반응은 무엇인가요? 그 반응은 어디에서 느껴지나요?

19 한 가지 소원으로 사랑하는 이를 택하다 1구절

빤짜시카가 삭까에게 한 소원을 받는다면 밧다를 택하겠다고 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아버지께 예경함

“삼십삼천의 주인 삭까가 내게 한 가지 소원을 준다면, 밧다여, 나는 그대를 택하겠소. 내 욕망은 이처럼 굳세오. 갓 핀 살라나무 같은, 지혜로운 그대의 아버지께 절하며 예경하오. 이토록 훌륭한 딸을 두신 분께 예경하오.”

Sakko ce me varaṁ dajjā, tāvatiṁsānamissaro; Tāhaṁ bhadde vareyyāhe, evaṁ kāmo daḷho mama. Sālaṁva na ciraṁ phullaṁ, pitaraṁ te sumedhase; Vandamāno namassāmi, yassāsetādisī paj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노래의 마지막 두 연에서 빤짜시카는 선택을 하나로 좁힙니다. 삼십삼천의 주인 삭까(신들의 왕)가 한 가지 소원을 준다는 조건에서도 자신은 밧다만을 택하겠다고 하며 욕망의 굳셈을 밝힙니다. 마지막에는 첫 연처럼 상대의 아버지에게 돌아가, 갓 핀 살라나무의 비유와 지혜롭다는 말을 붙이고 절하며 예경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예경이 노래의 시작과 끝을 감싸고, 가운데의 여러 욕망 비유는 한 소원과 한 선택이라는 결론으로 모입니다. 이어 부처님께서 노래의 음률과 지은 때를 물으십니다.

묵상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만 택하겠다는 강한 표현을 들으면 확신과 집착 중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지금 내 선택 하나를 보며 그 안에 바람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함께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20 부처님께서 노래가 지어진 때를 물으시다 1구절

부처님께서 비파 줄과 노랫소리가 서로 어울리고 압도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다섯 주제의 게송을 지은 때를 물으심

이렇게 노래하자 부처님께서는 간답바 신 빤짜시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빤짜시카여, 그대의 비파 줄 소리는 노랫소리와 어울리고 노랫소리도 줄 소리와 어울린다. 빤짜시카여, 줄 소리가 노랫소리를 압도하지 않고 노랫소리도 줄 소리를 압도하지 않는다. 빤짜시카여,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감각적 사랑에 관한 이 게송들은 언제 지었는가?”

Evaṁ vutte, bhagavā pañcasikhaṁ gandhabbadevaputtaṁ etadavoca: “saṁsandati kho te, pañcasikha, tantissaro gītassarena, gītassaro ca tantissarena; na ca pana te, pañcasikha, tantissaro gītassaraṁ ativattati, gītassaro ca tantissaraṁ. Kadā saṁyūḷhā pana te, pañcasikha, imā gāthā buddhūpasañhitā dhammūpasañhitā saṅghūpasañhitā arahantūpasañhitā kāmūpasañhit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긴 노래가 끝나자 부처님께서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먼저 평가하지 않고 소리의 관계를 두 방식으로 짚습니다. 줄 소리와 노랫소리가 서로 어울린다는 문장이 두 방향으로 나오고,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압도하지 않는다는 부정도 두 방향으로 반복됩니다. “빤짜시카여”라는 부름말도 세 번 나옵니다. 그런 뒤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감각적 사랑이라는 다섯 주제를 모두 되풀이하며 이 게송들을 언제 지었는지 묻습니다. 음악에 대한 관찰이 곧 노래의 배경을 밝히는 문답으로 넘어갑니다.

묵상

두 소리가 어울리면서도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덮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관계를 떠올리게 하나요? 지금 듣는 두 소리나 두 의견이 함께 있으면서 각각 또렷한 순간이 있나요? 어느 소리가 더 잘 들리나요?

21 빤짜시카가 노래를 지은 배경을 밝히다 1구절

부처님께서 갓 깨달으셨을 무렵 빤짜시카가 밧다를 사랑했으나 그녀는 마딸리의 아들 시칸디를 바랐음을 밝힘

“부처님, 한때 부처님께서 갓 완전히 깨달으셨을 무렵 우루웰라의 네란자라강 기슭, 염소치기의 니그로다나무 아래에 머무셨습니다. 부처님, 그때 저는 간답바 왕 띰바루의 딸인 밧다 수리야왓짜사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부처님, 그러나 그 자매는 다른 이를 바랐습니다. 마딸리 마부의 아들 시칸디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를 바랐습니다.”

“Ekamidaṁ, bhante, samayaṁ bhagavā uruvelāyaṁ viharati najjā nerañjarāya tīre ajapālanigrodhe paṭhamābhisambuddho. Tena kho panāhaṁ, bhante, samayena bhaddā nāma sūriyavacchasā timbaruno gandhabbarañño dhītā, tamabhikaṅkhāmi. Sā kho pana, bhante, bhaginī parakāminī hoti; sikhaṇḍī nāma mātalissa saṅgāhakassa putto, tamabhikaṅkha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의 질문에 빤짜시카는 노래를 지은 때와 자신의 사정을 함께 답합니다. 때는 부처님께서 갓 완전히 깨달으신 뒤 우루웰라에 머무실 무렵이고, 장소는 네란자라강 기슭과 염소치기의 니그로다나무 아래입니다. “부처님”이라는 말은 세 번 나옵니다. 빤짜시카는 밧다 수리야왓짜사를 바랐지만, 그녀는 마딸리 마부의 아들 시칸디를 바랐습니다. “바랐다”는 말이 두 번 나오지만 서로 다른 사람과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의 사랑이 처음부터 서로 합의된 관계가 아니었음이 분명해집니다.

묵상

내가 바라는 마음과 상대가 바라는 마음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나요? 어느 쪽을 탓하지 않고 두 바람이 서로 다르다는 점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그 차이가 선명한가요?

22 밧다의 집에서 노래를 다시 부르다 1구절

밧다를 얻지 못한 빤짜시카가 아버지 띰바루의 집으로 가 비파를 연주하며 사랑 노래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을 부름

“부처님, 저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 자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연노란 빌와나무의 굽은 비파를 들고 간답바 왕 띰바루의 집으로 가서 비파를 울리며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감각적 사랑에 관한 게송을 노래했습니다. ‘밧다 수리야왓짜사여, 그대의 아버지 띰바루께 예경하오. 그분에게서 아름다운 그대가 태어나 내게 기쁨을 낳아 주었소. 갓 핀 살라나무 같은 지혜로운 그대의 아버지께 절하며 예경하오. 이토록 훌륭한 딸을 두신 분께 예경하오.’”

Yato kho ahaṁ, bhante, taṁ bhaginiṁ nālatthaṁ kenaci pariyāyena. Athāhaṁ beluvapaṇḍuvīṇaṁ ādāya yena timbaruno gandhabbarañño nivesanaṁ tenupasaṅkamiṁ; upasaṅkamitvā beluvapaṇḍuvīṇaṁ assāvesiṁ, imā ca gāthā abhāsiṁ buddhūpasañhitā dhammūpasañhitā saṅghūpasañhitā arahantūpasañhitā kāmūpasañhitā— Vande te pitaraṁ bhadde, timbaruṁ sūriyavacchase; Yena jātāsi kalyāṇī, ānandajananī mama. Sālaṁva na ciraṁ phullaṁ, pitaraṁ te sumedhase; Vandamāno namassāmi, yassāsetādisī paj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밧다의 마음이 다른 이에게 향해 있었고 어떤 방법으로도 그녀를 얻지 못하자, 빤짜시카는 띰바루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는 비파를 연주하며 앞서 부처님께 들려드린 것과 같은 다섯 주제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에는 앞서 나온 첫 연과 마지막 연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두 연 모두 밧다의 아버지 띰바루에게 예경하는 내용이어서, 노래의 처음과 끝이 같은 인사로 맞물립니다. 그녀를 얻지 못한 뒤에 음악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행동이 따르지만, 이것만으로 상대의 동의를 미리 전제하지는 않습니다.

묵상

말로 전하기 어려운 마음을 음악이나 글로 표현해 본 적이 있나요? 표현하는 사람의 진심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선택이 모두 존중되려면 어떤 여지가 필요하다고 느끼나요? 그 여지는 충분한가요?

23 밧다가 부처님을 칭송한 노래에 응답하다 1구절

밧다가 부처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수담마 회당에서 들었다며 그 칭송을 계기로 만남을 받아들임

“부처님, 이렇게 노래하자 밧다 수리야왓짜사는 제게 말했습니다. ‘벗이여, 나는 그 부처님을 직접 뵌 적이 없습니다. 다만 삼십삼천 신들의 수담마 회당에서 춤추러 갔을 때 그 부처님에 관해 들었습니다. 벗이여, 그대가 그 부처님을 칭송하니 오늘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져도 좋습니다.’ 부처님, 바로 그때 그 자매와 만났고,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Evaṁ vutte, bhante, bhaddā sūriyavacchasā maṁ etadavoca: ‘na kho me, mārisa, so bhagavā sammukhā diṭṭho, api ca sutoyeva me so bhagavā devānaṁ tāvatiṁsānaṁ sudhammāyaṁ sabhāyaṁ upanaccantiyā. Yato kho tvaṁ, mārisa, taṁ bhagavantaṁ kittesi, hotu no ajja samāgamo’ti. Soyeva no, bhante, tassā bhaginiyā saddhiṁ samāgamo ahosi. Na ca dāni tato pacch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노래가 끝난 뒤 비로소 밧다의 직접 응답이 나옵니다. 그는 빤짜시카를 “벗이여”라고 두 번 부르고, 부처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수담마 회당에서 춤출 때 들었다고 구별합니다. 이어 부처님을 칭송했기 때문에 오늘 만나도 좋다고 말합니다. 빤짜시카는 부처님께 이 일을 보고하며 “부처님”을 두 번 쓰고, 만남은 바로 그때 한 번뿐이며 이후에는 없었다고 부정합니다. 구애가 바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남이 그때 한 번뿐이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결론입니다.

묵상

상대의 응답이 내 기대와 일부만 맞을 때 그 범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가요? 한 번의 만남과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인 데서 어떤 정직함이 느껴지나요? 그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24 삭까가 자신의 예경을 전해 달라 하다 1구절

삭까가 부처님과 빤짜시카의 상호 대화를 알아차리고 신하와 수행원과 함께 드리는 예경문을 전해 달라고 부탁함

신들의 왕 삭까는 생각했습니다. “간답바 신 빤짜시카가 부처님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부처님께서도 빤짜시카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시는구나.” 그러고 신들의 왕 삭까는 빤짜시카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빤짜시카야, 나를 대신해 부처님께 예경하여라. ‘부처님, 신들의 왕 삭까는 신하들과 수행원들과 함께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라고 아뢰어라.”

Atha kho sakkassa devānamindassa etadahosi: “paṭisammodati pañcasikho gandhabbadevaputto bhagavatā, bhagavā ca pañcasikhenā”ti. Atha kho sakko devānamindo pañcasikhaṁ gandhabbadevaputtaṁ āmantesi: “abhivādehi me tvaṁ, tāta pañcasikha, bhagavantaṁ: ‘sakko, bhante, devānamindo sāmacco saparijan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빤짜시카의 설명이 끝나자 삭까(신들의 왕)는 대화가 양쪽에서 이루어졌음을 알아차립니다. 빤짜시카가 부처님과 반갑게 이야기하고 부처님도 그와 반갑게 이야기한다는 두 방향을 모두 말합니다. 이어 빤짜시카를 다정히 부르며 자신을 대신해 예경해 달라고 합니다. 전할 문장에는 삭까뿐 아니라 신하들과 수행원들이 함께하며,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한다는 몸의 자세까지 들어 있습니다. 상대와 대화가 열린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자신의 말을 맡기는 순서가 중개자의 관계와 때를 존중합니다.

묵상

두 사람이 서로 반갑게 대화하는 것을 확인한 뒤 말을 부탁하는 순서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누군가에게 전해 달라고 맡길 말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한 표현은 무엇인가요? 그 말은 얼마나 또렷한가요?

25 빤짜시카가 예경문을 그대로 아뢰다 1구절

빤짜시카가 삭까의 부탁을 수락하고 부처님께 예경한 뒤 삭까가 맡긴 문장을 모든 요소와 함께 직접 되풀이함

간답바 신 빤짜시카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삭까 님”이라고 응답하고 부처님께 예경하여 아뢰었다. “부처님, 신들의 왕 삭까는 신하들과 수행원들과 함께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Evaṁ, bhaddantavā”ti kho pañcasikho gandhabbadevaputto sakkassa devānamindassa paṭissutvā bhagavantaṁ abhivādeti: “sakko, bhante, devānamindo sāmacco saparijan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신들의 왕)의 부탁 뒤 빤짜시카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삭까 님”이라고 먼저 수락합니다. 그런 다음 부처님께 예경하고 맡은 말을 직접 아룁니다. 전달된 문장에는 “부처님”이라는 말, 신들의 왕 삭까, 신하들과 수행원들, 부처님의 두 발, 머리 숙여 절한다는 동작이 앞의 부탁과 똑같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말을 전했다”고 짧게 쓰지 않고 같은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은, 빤짜시카가 삭까의 존경과 동행 범위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했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다른 이의 말을 대신 전할 때 내 해석을 더하지 않고 핵심과 어조를 함께 지키기 어려운가요? 최근 전한 한 문장에서 원래 말과 내가 덧붙인 부분을 구별할 수 있나요? 어떤 차이가 보이나요?

26 모든 존재가 행복을 바란다고 답하시다 1구절

부처님께서 삭까와 일행의 행복을 빌고 신·인간·아수라·용·간답바 등 모두가 행복을 바란다고 말씀하심

“빤짜시카여, 신들의 왕 삭까가 신하들과 수행원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바란다. 신들과 인간들, 아수라들, 용들, 간답바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무리에 속한 존재들은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들은 이처럼 큰 권세를 지닌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들에게 이렇게 인사하십니다.

“Evaṁ sukhī hotu, pañcasikha, sakko devānamindo sāmacco saparijano; sukhakāmā hi devā manussā asurā nāgā gandhabbā ye caññe santi puthukāyā”ti. Evañca pana tathāgatā evarūpe mahesakkhe yakkhe abhivadan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빤짜시카가 예경문을 전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직접 부르고 삭까(신들의 왕)와 신하·수행원 모두의 행복을 빕니다. 그 이유로 신과 인간과 아수라와 용과 간답바,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무리까지 모두 행복을 바란다고 말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존재를 빠짐없이 담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들이 큰 권세를 지닌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들에게 이렇게 인사한다고 전합니다. 모든 존재의 공통된 행복 바람을 근거로 응답하는 방식입니다.

묵상

서로 매우 다른 존재들도 행복을 바란다는 말이 지금 떠오르는 관계를 다르게 보게 하나요? 공통된 바람이 있다는 점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27 세 무리가 동굴에 들어가 예경하다 1구절

부처님의 인사를 받은 삭까와 삼십삼천 신들과 빤짜시카가 차례로 동굴에 들어가 예경하고 한쪽에 섬

부처님의 인사를 받은 신들의 왕 삭까는 인드라살라 동굴에 들어가 부처님께 예경하고 한쪽에 섰습니다. 삼십삼천 신들도 인드라살라 동굴에 들어가 부처님께 예경하고 한쪽에 섰습니다. 간답바 신 빤짜시카도 인드라살라 동굴에 들어가 부처님께 예경하고 한쪽에 섰습니다.

Abhivadito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indasālaguhaṁ pavis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Devāpi tāvatiṁsā indasālaguhaṁ pavis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aṁsu. Pañcasikhopi gandhabbadevaputto indasālaguhaṁ pavisitvā bhagavantaṁ abhivādetvā ekamantaṁ aṭṭhās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의 행복 인사를 받은 뒤 방문자들이 마침내 동굴 안으로 들어옵니다. 삭까(신들의 왕), 삼십삼천 신들, 빤짜시카의 순서이며, 각 주체마다 동굴에 들어감·부처님께 예경함·한쪽에 섬이라는 세 행동이 모두 되풀이됩니다. 삭까에게만 앞서 부처님의 인사를 받았다는 설명이 붙지만, 나머지 행동은 세 무리가 같습니다. 많은 신이 도착했어도 아무렇게나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모두 예경한 뒤 한쪽에 서는 모습은 부처님을 뵈러 온 자리를 존중하는 공통된 태도를 보여 줍니다.

묵상

여럿이 한자리에 들어갈 때 먼저 인사하고 한쪽에 자리를 잡는 작은 행동이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나요? 최근 함께한 모임에서 편안함을 만든 한 동작이 기억나나요? 그 행동은 어떻게 전해졌나요?

28 동굴의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나타나다 1구절

신들의 위력으로 동굴의 울퉁불퉁함과 비좁음이 사라지고 빛이 나타난 뒤 부처님께서 삭까에게 말씀하심

그때 신들의 위력으로 인드라살라 동굴의 울퉁불퉁한 곳은 고르게 되고, 비좁은 곳은 넓어지고,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신들의 왕 삭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indasālaguhā visamā santī samā samapādi, sambādhā santī urundā samapādi, andhakāro guhāyaṁ antaradhāyi, āloko udapādi yathā taṁ devānaṁ devānubhāvena. Atha kho bhagavā sakkaṁ devānamindaṁ etadavoca: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세 무리가 자리를 잡자 동굴은 네 가지 변화를 겪습니다. 울퉁불퉁한 곳이 고르게 되고 비좁은 곳이 넓어지는 두 공간 변화,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나타나는 두 밝기 변화입니다. 원인은 신들의 위력입니다. 서로 반대되는 상태가 두 쌍으로 바뀐 뒤 부처님께서 삭까(신들의 왕)에게 먼저 말씀을 건네십니다. 공간이 넓어지고 밝아지는 이 장면은, 음악을 통한 중개에서 부처님과 삭까의 직접 문답으로 넘어가는 자리가 됩니다.

묵상

울퉁불퉁함이 고르게 되고 비좁음이 넓어지며 어둠이 밝아지는 순서를 읽을 때 어떤 변화가 가장 먼저 다가오나요? 지금 머무는 공간에서 비슷한 대비가 있나요? 어느 변화가 가장 선명한가요?

29 많은 일을 제치고 찾아온 까닭 1구절

부처님께서 일이 많은 꼬시야의 방문을 놀랍고 경이롭다 하시자 삭까가 오래 친견하려 했으나 직무에 매였다고 답함

“꼬시야 님이 그토록 많은 일과 많은 할 일이 있으면서도 이곳에 온 것은 놀랍습니다. 꼬시야 님이 온 것은 경이롭습니다.” “빤짜시카 님, 저는 오래전부터 부처님을 뵈러 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삼십삼천 신들의 여러 일과 할 일에 매여 부처님을 뵈러 올 수 없었습니다. 빤짜시카 님,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왓티의 살랄라나무 오두막에 머무셨습니다.”

“acchariyamidaṁ āyasmato kosiyassa, abbhutamidaṁ āyasmato kosiyassa tāva bahukiccassa bahukaraṇīyassa yadidaṁ idhāgamanan”ti. “Cirapaṭikāhaṁ, bhante,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kāmo; api ca devānaṁ tāvatiṁsānaṁ kehici kehici kiccakaraṇīyehi byāvaṭo; evāhaṁ nāsakkhiṁ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ituṁ. Ekamidaṁ, bhante, samayaṁ bhagavā sāvatthiyaṁ viharati salaḷāgārake.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께서는 삭까(신들의 왕)를 그의 씨족명인 “꼬시야 님”으로 두 번 부르며 방문을 놀랍고 경이롭다고 하십니다. 많은 일과 많은 할 일이 있다는 두 표현이 그 놀라움의 배경입니다. 삭까는 “부처님”을 두 번 쓰며 오래전부터 뵙고 싶었지만 삼십삼천 신들의 여러 직무에 매여 올 수 없었다고 답합니다. 바람과 불가능의 대조 뒤 그는 사왓티의 살랄라나무 오두막에서 있었던 일을 꺼냅니다. 현재 방문이 오래 미뤄진 만남이 이제야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며 과거의 한 시도로 이야기를 돌립니다.

묵상

오랫동안 하고 싶었지만 여러 책임 때문에 미룬 만남이나 일이 있나요?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그 바람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그 바람은 아직 남아 있나요?

30 부자띠에게 대신 예경해 달라 부탁하다 1구절

사왓티에서 깊은 집중 중인 부처님과 합장한 부자띠를 본 삭까가 자신의 예경문을 전해 달라고 부탁함

부처님, 그때 저는 부처님을 뵈러 사왓티로 갔습니다. 부처님, 당시 부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에 잠겨 앉아 계셨고, 웻사와나 대왕의 시녀인 부자띠가 합장한 채 서서 부처님께 예경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저는 부자띠에게 말했습니다. ‘자매여, 나를 대신해 부처님께 예경하여라. “부처님, 신들의 왕 삭까는 신하들과 수행원들과 함께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라고 아뢰어라.’

Atha khvāhaṁ, bhante, sāvatthiṁ agamāsiṁ bhagavantaṁ dassanāya. Tena kho pana, bhante, samayena bhagavā aññatarena samādhinā nisinno hoti, bhūjati ca nāma vessavaṇassa mahārājassa paricārikā bhagavantaṁ paccupaṭṭhitā hoti, pañjalikā namassamānā tiṭṭhati. Atha khvāhaṁ, bhante, bhūjatiṁ etadavocaṁ: ‘abhivādehi me tvaṁ, bhagini, bhagavantaṁ: “sakko, bhante, devānamindo sāmacco saparijan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신들의 왕)의 과거 방문은 사왓티에 도착한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에 잠겨 앉아 계시고, 웻사와나 대왕의 시녀 부자띠가 합장해 예경하며 서 있습니다. 삭까는 부처님께 “부처님”이라고 세 번 되풀이한 뒤 부자띠를 “자매여”라고 부르고, 자신과 신하·수행원들이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한다는 말을 대신 전해 달라고 합니다. 현재 빤짜시카에게 부탁한 예경문과 같은 내용이 과거에도 나타나며, 삭까가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인 부처님께 직접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중개자를 찾았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 깊이 집중하고 있을 때 직접 부르기보다 적절한 때에 말을 전해 줄 사람을 찾은 적이 있나요? 그 선택에서 조급함과 배려 가운데 어느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나요? 그 배려는 충분했나요?

31 깊은 집중에서 나오신 뒤 예경을 전해 달라 하다 1구절

부자띠가 지금은 부처님께서 홀로 머무는 때라 하자 삭까가 깊은 집중에서 나오신 뒤 같은 예경문을 전해 달라고 다시 부탁함

부처님, 제가 이렇게 말하자 부자띠는 제게 말했습니다. ‘벗이여, 지금은 부처님을 뵐 때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홀로 물러나 계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매여, 부처님께서 그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에서 나오셨을 때 내 말로 부처님께 예경하여라. “부처님, 신들의 왕 삭까는 신하들과 수행원들과 함께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라고 아뢰어라.’

Evaṁ vutte, bhante, sā bhūjati maṁ etadavoca: ‘akālo kho, mārisa, bhagavantaṁ dassanāya; paṭisallīno bhagavā’ti. ‘Tena hi, bhagini, yadā bhagavā tamhā samādhimhā vuṭṭhito hoti, atha mama vacanena bhagavantaṁ abhivādehi: “sakko, bhante, devānamindo sāmacco saparijano bhagavato pāde sirasā vanda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자띠는 삭까(신들의 왕)를 “벗이여”라고 부르며 지금은 뵐 때가 아니고 부처님께서 홀로 물러나 계신다고 두 문장으로 답합니다. 삭까는 이를 거스르지 않고 “그렇다면”이라고 받아, 부자띠를 “자매여”라고 부른 뒤 부처님께서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에서 나오셨을 때 전해 달라고 조건을 바꿉니다. 예경문에는 삭까·신하·수행원·두 발·머리가 다시 모두 나옵니다. 현재의 불가능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알맞은 때에 전할 방식을 마련하는 문답으로,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의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가 구체화됩니다.

묵상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 거절로만 느끼나요, 더 알맞은 때를 찾는 안내로도 들리나요? 최근 미뤄진 한 일에서 조건을 바꾸어 다시 시도할 여지가 있나요? 그 여지는 어떻게 보이나요?

32 부자띠가 예경을 전했는지 두 가지를 묻다 1구절

삭과가 부자띠가 자신을 대신해 예경했는지와 부처님께서 그 말을 기억하시는지 연이어 물음

“부처님, 그 자매가 저를 대신하여 부처님께 예경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자매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Kacci me sā, bhante, bhaginī bhagavantaṁ abhivādesi? Sarati bhagavā tassā bhaginiyā vacanan”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과거의 부탁을 모두 설명한 삭까(신들의 왕)는 현재의 부처님께 두 가지를 확인합니다. 첫째는 부자띠가 실제로 자신을 대신해 예경했는지이고, 둘째는 부처님께서 그 자매의 말을 기억하시는지입니다. 첫 질문에는 “부처님”이라는 직접 부름말이 있고, 두 질문 모두 부자띠를 “그 자매”라고 가리킵니다. 부탁을 했다는 사실과 부탁이 실행되어 상대에게 기억되었다는 사실은 다르므로 둘을 따로 묻습니다. 이어지는 답은 전달 여부뿐 아니라 부처님께서 깊은 집중(자나)에서 나오게 된 소리까지 밝혀 줍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전달을 부탁한 뒤 실제로 전해졌는지와 상대가 기억하는지를 따로 확인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확실히 아는 것과 아직 물어야 할 것은 각각 무엇인가요? 어느 질문이 더 선명한가요?

33 예경과 말을 기억한다고 답하시다 1구절

부처님께서 부자띠가 예경했고 그 말을 기억하며 삭까의 전차 바퀴 소리에 깊은 집중에서 나왔다고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그 자매는 내게 예경했고 나는 그 자매의 말을 기억한다. 또한 나는 삭까 님의 전차 바퀴 소리 때문에 그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에서 나왔다.”

“Abhivādesi maṁ sā, devānaminda, bhaginī, sarāmahaṁ tassā bhaginiyā vacanaṁ. Api cāhaṁ āyasmato nemisaddena tamhā samādhimhā vuṭṭhit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께서는 삭까(신들의 왕)의 두 질문에 모두 긍정으로 답합니다. 부자띠가 실제로 예경했고, 자신은 그 자매의 말을 기억한다고 각각 확인하십니다. “신들의 왕이여”라는 부름말은 첫 답 안에 한 번 나옵니다. 이어서 질문에는 없던 사실 하나를 더 밝히는데, 삭까의 전차 바퀴 소리가 들려 그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삭까는 앞서 마음이 한곳에 모인 상태(사마디) 중인 부처님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동의 소리는 이미 닿았습니다. 의도와 실제 영향이 다를 수 있음을 숨기지 않고 문답 속에서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묵상

배려하려 했지만 내 행동의 소리가 상대에게 이미 닿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의도를 변명하지 않으면서 실제 영향을 들을 수 있는 여지는 있나요? 그 영향은 어떻게 들리나요?

34 신들의 무리는 불어나고 아수라 무리는 줄다 1구절

삭까가 먼저 태어난 신들에게서 들은 말을 전하고 깨달음에 이른 이의 출현 뒤 두 무리의 증감을 직접 보았다고 밝힘

“부처님, 저보다 먼저 삼십삼천 무리에 태어난 신들에게서 저는 직접 다음 말을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들,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들, 온전히 깨달은 분들이 세상에 나타날 때 신들의 무리는 불어나고 아수라들의 무리는 줄어든다.’ 부처님, 이제 저는 이를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 완전히 깨달은 이, 온전히 깨달은 분이 세상에 나타난 뒤 신들의 무리는 불어나고 아수라들의 무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Ye te, bhante, devā amhehi paṭhamataraṁ tāvatiṁsakāyaṁ upapannā, tesaṁ me sammukhā sutaṁ sammukhā paṭiggahitaṁ: ‘yadā tathāgatā loke uppajjanti arahanto sammāsambuddhā, dibbā kāyā paripūrenti, hāyanti asurakāyā’ti. Taṁ me idaṁ, bhante, sakkhidiṭṭhaṁ yato tathāgato loke uppanno arahaṁ sammāsambuddho, dibbā kāyā paripūrenti, hāyanti asurakāy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전차 소리에 관한 답을 들은 삭까(신들의 왕)는 먼저 태어난 삼십삼천 신들에게서 직접 듣고 직접 받아들인 말을 제시합니다.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들·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들·온전히 깨달은 분들이 출현하면 신들의 무리는 불어나고 아수라 무리는 줄어든다는 두 방향의 변화입니다. 이어 “부처님”을 다시 쓰고, 이제 한 깨달음에 이른 이가 출현한 뒤 같은 증감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모든 자격과 결과를 반복합니다. 전해 들은 앎과 자신이 목격한 앎이 같은 내용에서 만나며, 다음의 고삐까 이야기가 그 구체적인 사례가 됩니다.

묵상

다른 이에게서 들은 말이 나중에 직접 본 경험과 이어진 적이 있나요? 두 앎이 같아 보여도 전해 들었을 때와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느낌은 어떻게 달랐나요? 어느 쪽이 더 또렷한가요?

35 세 곳에 믿음을 둔 고삐까 1구절

까삘라왓투의 사꺄 여성 고삐까가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를 각각 믿고 계행을 온전히 실천했음을 밝힘

“부처님, 바로 이 까삘라왓투에 고삐까라는 사꺄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부처를 믿고, 가르침을 믿고,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믿었으며, 계행을 온전히 실천했습니다.”

Idheva, bhante, kapilavatthusmiṁ gopikā nāma sakyadhītā ahosi buddhe pasannā dhamme pasannā saṅghe pasannā sīlesu paripūrakārinī.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신들의 무리가 불어나는 구체적인 사례로 삭까(신들의 왕)는 까삘라왓투의 고삐까를 소개합니다. 그는 사꺄 여성이었고, 믿음의 대상은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의 세 곳입니다. 부처와 가르침과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각각 믿는다는 말이 세 번 되풀이될 만큼 그 믿음이 깊었습니다. 여기에 계행을 온전히 실천했다는 행동이 더해집니다. 믿음이 막연한 호감에 머물지 않고 삶의 규범을 채우는 실천과 결합되어 있으며, 다음에는 이 삶이 끝난 뒤 어디에 태어났는지가 이어져 삭까의 목격을 뒷받침합니다.

묵상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그 믿음에 맞추어 한 행동을 이어 가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지금 신뢰하는 대상 하나와 그 신뢰가 드러나는 작은 선택 하나가 떠오르나요? 그 선택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36 고삐까가 고빠까 신으로 태어나다 1구절

고삐까가 여성성의 애착을 여의고 남성성을 닦아 하늘 세계에서 삭까의 아들 고빠까로 태어남

“그녀는 여성성에 대한 애착을 여의고 남성성을 닦았습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삼십삼천 신들과 함께하며 우리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그를 이렇게 알았습니다. ‘고빠까 신, 고빠까 신.’”

Sā itthittaṁ virājetvā purisattaṁ bhāvetv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 Devānaṁ tāvatiṁsānaṁ sahabyataṁ amhākaṁ puttattaṁ ajjhupagatā. Tatrapi naṁ evaṁ jānanti: ‘gopako devaputto, gopako devaputt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삐까의 믿음과 계행 뒤에는 생의 변화가 이어집니다. 그는 여성성에 대한 애착을 여의고 남성성을 닦았으며,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납니다. 삼십삼천 신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삭까(신들의 왕)가 “우리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지위를 얻고, 그곳에서는 “고빠까 신”이라는 이름을 두 번 되풀이해 압니다. 이 이야기는 고빠까가 다시 태어난 과정을 전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믿음과 계행이 새로운 공동체와 이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삶의 큰 변화 뒤에 예전과 다른 이름이나 역할로 불린 경험이 있나요? 이전의 모습을 낮추지 않고도 지금 달라진 점과 계속 이어지는 점을 함께 말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그대로 이어졌나요?

37 간답바 무리에 태어난 세 수행자를 고빠까가 꾸짖다 1구절

세 수행자가 거룩한 삶을 살고도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나 삭까를 섬기자 고빠까가 가르침을 어떻게 들었는지 물음

“부처님, 또한 세 수행자는 부처님 곁에서 거룩한 삶을 살고도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모두 갖추어 즐기면서 우리를 모시러, 우리에게 봉사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를 모시고 봉사하러 오자 고빠까 신은 꾸짖었습니다. ‘벗들이여,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때 그대들은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Aññepi, bhante, tayo bhikkhū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tvā hīnaṁ gandhabbakāyaṁ upapannā. Te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ā samaṅgībhūtā paricārayamānā amhākaṁ upaṭṭhānaṁ āgacchanti amhākaṁ pāricariyaṁ. Te amhākaṁ upaṭṭhānaṁ āgate amhākaṁ pāricariyaṁ gopako devaputto paṭicodesi: ‘kutomukhā nāma tumhe, mārisā, tassa bhagavato dhammaṁ assuttha—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의 태어남과 대조되는 세 수행자의 사례가 이어집니다. 그들은 부처님 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지만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나 다섯 감각적 쾌락을 즐기며 삭까(신들의 왕) 일행을 모시고 봉사합니다. 고빠까는 그들을 “벗들이여”라고 부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때 어디를 향하고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신분보다 가르침을 실제로 받아들인 방향을 문제 삼는 꾸짖음은 자신의 삶을 제시하는 말로 이어집니다.

묵상

겉으로 맡았던 역할과 실제로 마음에 남은 배움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적이 있나요? 자신을 꾸짖기보다, 지금 기억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한 가르침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무엇이 가장 또렷한가요?

38 고빠까가 자신의 믿음과 태어남을 내세우다 1구절

고빠까가 여성이었을 때의 세 믿음과 온전한 계행, 성별의 변화와 하늘 태어남 및 삭까의 아들이 된 일을 직접 말함

“나는 여성이었을 때 부처를 믿고, 가르침을 믿고,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믿었으며, 계행을 온전히 실천했다. 여성성에 대한 애착을 여의고 남성성을 닦은 뒤, 몸이 무너져 죽어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났다. 삼십삼천 신들과 함께하며 신들의 왕 삭까의 아들이 되었다.

ahañhi nāma itthikā samānā buddhe pasannā dhamme pasannā saṅghe pasannā sīlesu paripūrakārinī itthittaṁ virājetvā purisattaṁ bhāvetvā kāyassa bhedā paraṁ maraṇā sugatiṁ saggaṁ lokaṁ upapannā, devānaṁ tāvatiṁsānaṁ sahabyataṁ sakkassa devānamindassa puttattaṁ ajjhupagat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는 세 수행자를 꾸짖은 근거로 자신의 전생과 현재를 한 문장에 압축해 제시합니다. 여성이었을 때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상가)를 각각 믿고 계행을 온전히 실천한 일이 먼저입니다. 이어 여성성에 대한 애착을 여의고 남성성을 닦음, 몸이 무너져 죽음, 좋은 곳인 하늘 세계에 태어남, 삼십삼천 신들과 함께하며 삭까(신들의 왕)의 아들이 됨이 차례로 나옵니다. 앞서 삭까가 설명한 내용을 고빠까가 자신의 말로 다시 들려주면서, 집을 떠난 세 수행자와 집에서 살았던 자신의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 줍니다.

묵상

자신의 선택을 설명할 때 이름이나 지위보다 실제로 믿고 지킨 행동을 먼저 말할 수 있나요? 과거의 나를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한 태도를 떠올리면 무엇인가요? 그 태도는 지금도 남아 있나요?

39 고빠까 신이라는 이름을 두 번 밝히다 1구절

고빠까가 삼십삼천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고빠까 신이라고 두 번 되풀이해 안다고 말함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안다. ‘고빠까 신, 고빠까 신.’”

Idhāpi maṁ evaṁ jānanti: “gopako devaputto gopako devaputt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의 긴 자기소개는 현재 이름으로 닫힙니다. “이곳에서도”는 고빠까가 삼십삼천에서 알려진 모습을 가리킵니다. 앞서 삭까(신들의 왕)가 그의 태어남을 설명할 때 쓴 이름을, 이제 고빠까 자신이 다시 확인합니다. 이 이름은 집에 사는 여성 신도 고삐까였던 과거와 삭까의 아들인 현재를 연결하며, 곧 이어질 꾸짖음에서 자신과 함께 수행했던 이들의 서로 다른 태어남을 더 자세히 대조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다른 이들이 반복해 부르는 이름이나 역할이 나 자신을 얼마나 설명한다고 느끼나요? 그 이름과 별개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한 태도나 행동은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그 말은 어떻게 들리나요?

40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난 수행자들 1구절

고빠까가 부처님 곁에서 거룩한 삶을 살고도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난 옛 수행자들을 꾸짖음

“그러나 벗들이여, 그대들은 부처님 곁에서 거룩한 삶을 살고도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났구나. 벗들이여, 함께 수행한 이들이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난 모습을 우리가 보다니, 참으로 보기 딱하구나.”

Tumhe pana, mārisā, bhagavati brahmacariyaṁ caritvā hīnaṁ gandhabbakāyaṁ upapannā. Duddiṭṭharūpaṁ vata bho addasāma, ye mayaṁ addasāma sahadhammike hīnaṁ gandhabbakāyaṁ upapanne’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는 전생에 집에 사는 여성 신도 고삐까였지만 삼십삼천에 삭까(신들의 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처님 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던 세 수행자가 자신보다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나 시중드는 모습을 보고 직접 꾸짖습니다. 집을 떠난 신분보다 들은 가르침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긴 노래의 출발점입니다.

묵상

과거의 역할이나 이름만 믿고 지금의 선택을 살피지 않은 적이 있나요? 자신이나 남을 낮추어 판단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오늘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가르침 하나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41 둘은 기억을 되찾고 하나는 욕망에 머물다 1구절

고빠까의 꾸짖음을 들은 세 신 가운데 둘과 하나가 서로 다른 길을 택한 결과

부처님, 고빠까 신에게 꾸지람을 들은 그들 가운데 두 신은 바로 그 자리에서 기억을 되찾아 브라흐마의 보좌신 무리에 들었지만, 한 신은 감각적 욕망에 머물렀습니다.

Tesaṁ, bhante, gopakena devaputtena paṭicoditānaṁ dve devā diṭṭheva dhamme satiṁ paṭilabhiṁsu kāyaṁ brahmapurohitaṁ, eko pana devo kāme ajjhāvas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신들의 왕)가 부처님께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고빠까의 꾸짖음 뒤에 곧바로 결과가 갈립니다. 세 신 가운데 둘은 그 자리에서 기억을 되찾아 더 높은 브라흐마의 보좌신 무리에 들고, 하나는 계속 감각적 욕망 속에 머뭅니다. “둘”과 “하나”의 대조는 같은 말을 듣더라도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음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기억’은 잊었던 부처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리는 힘이며, 뒤의 노래는 두 신이 어떻게 욕망의 결박을 끊었는지 자세히 노래합니다.

묵상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때에는 기억이 깨어나고 어떤 때에는 익숙한 즐거움에 머물게 되나요? 어느 쪽이든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지금 선택 앞에서 떠오르는 중요한 기억 하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42 여성 재가 신자 고삐까의 믿음 1구절

고빠까가 전생에 고삐까라는 이름의 여성 재가 신자로서 부처·가르침·수행자 공동체를 섬긴 일을 노래함

“나는 눈 밝은 이를 따르며 집에서 사는 여성 신도였고, 내 이름은 ‘고삐까’였다. 부처와 가르침에 깊은 믿음을 두었고, 믿음 깊은 마음으로 수행자 공동체(상가)를 섬겼다.

‘Upāsikā cakkhumato ahosiṁ, Nāmampi mayhaṁ ahu “gopikā”ti; Buddhe ca dhamme ca abhippasannā, Saṅghañcupaṭṭhāsiṁ pasannacitt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산문으로 전해진 고빠까의 이야기가 이제 노래로 다시 펼쳐집니다. 그는 먼저 전생의 신분과 이름, 믿음과 행동을 네 줄로 밝힙니다. 눈 밝은 이의 집에 사는 여성 신도였고 이름은 고삐까였으며, 믿음의 대상은 부처와 가르침이고 실제로 섬긴 공동체는 수행자 공동체(상가)였습니다. 믿음을 마음속 태도에만 두지 않고 수행자 공동체를 돌보는 행동과 나란히 놓습니다. 이 자기소개는 다음에 현재의 이름과 태어난 곳을 밝히는 네 줄과 짝을 이루어 전생과 현재를 연결합니다.

묵상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과 실제로 시간과 힘을 내어 돌보는 대상은 얼마나 이어져 있나요? 오늘 믿음이나 신뢰를 작은 행동 하나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43 고삐까에서 고빠까로 1구절

고빠까가 부처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삭까의 빛나는 아들로 삼십삼천에 태어났다고 밝힘

바로 그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나는 큰 힘을 지닌 삭까의 아들이 되었고, 큰 빛을 내며 삼십삼천에 태어났다. 이곳에서는 나를 ‘고빠까’라고 안다.

Tasseva buddhassa sudhammatāya, Sakkassa puttomhi mahānubhāvo; Mahājutīko tidivūpapanno, Jānanti maṁ idhāpi “gopak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전생에 고삐까였다는 네 줄 뒤에는 현재의 태어남과 이름을 밝히는 네 줄이 이어집니다. 그는 그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큰 힘과 큰 빛을 지닌 삭까(신들의 왕)의 아들이 되어 삼십삼천에 태어났고, 이제 고빠까로 알려졌다고 말합니다. 여성 이름 고삐까와 남성 이름 고빠까가 서로 맞물리며 삶의 변화가 드러납니다. 이 대조는 성별 변화 자체를 우열로 삼기보다, 집에서 살던 사람으로서 품은 믿음과 섬김이 현재의 결실로 이어졌다는 고빠까 자신의 증언입니다.

묵상

예전의 나를 부르던 이름과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이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과거를 낮추거나 현재를 과장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진 소중한 태도 하나를 조용히 알아볼 수 있을까요?

44 예전에 음식을 드리던 수행자들을 간답바 무리에서 만나다 1구절

고빠까가 인간이었을 때 음식과 음료로 섬기고 예를 올렸던 고따마의 제자들을 다시 알아봄

그때 나는 전에 보았던 수행자들이 간답바 무리에 태어나 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예전에 인간이었을 때, 이들은 고따마의 제자들이었다. 나는 내 집에서 음식과 음료로 그들을 섬기고 그들의 발을 잡아 예를 올렸다.

Athaddasaṁ bhikkhavo diṭṭhapubbe, Gandhabbakāyūpagate vasīne; Imehi te gotamasāvakāse, Ye ca mayaṁ pubbe manussabhūtā. Annena pānena upaṭṭhahimhā, Pādūpasaṅgayha sake nivesane;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는 자신의 전생과 현재를 밝힌 뒤 간답바 무리에서 낯익은 수행자들을 발견한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고빠까가 인간이었을 때 보았던 고따마의 제자들이며, 고삐까는 자기 집에서 음식과 음료를 내고 그들의 발을 잡아 예를 올렸습니다. 과거에는 존경하며 섬기던, 집을 떠나 수행하던 이들이 이제 하늘 세계에서 자신을 시중드는 위치에 있다는 역전이 꾸짖음의 배경입니다. 그 기억은 그들이 들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묻는 다음 두 줄로 이어집니다.

묵상

예전에 존중하던 사람을 뜻밖의 자리에서 다시 보며 마음이 복잡해진 적이 있나요? 상대의 현재를 단정하기보다, 그 관계를 통해 내가 배웠고 아직 기억하는 한 가지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45 가르침은 저마다 스스로 알아야 한다 1구절

고빠까가 수행자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태도를 묻고 자신은 그들을 따르며 훌륭한 말씀을 들었다고 밝힘

여러분은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었던가? 눈 밝은 이가 깨달아 잘 가르친 이치는 저마다 스스로 알아야 하는데. 나는 바로 여러분을 가까이 따르며 거룩한 이들의 훌륭한 말씀을 들었다.

Kutomukhā nāma ime bhavanto, Buddhassa dhammāni paṭiggahesuṁ. Paccattaṁ veditabbo hi dhammo, Sudesito cakkhumatānubuddho; Ahañhi tumheva upāsamāno, Sutvāna ariyāna subhāsitān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과거에 섬겼던 수행자들을 알아본 고빠까는 그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받을 때 어디를 향하고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이는 들은 바를 놓친 태도를 꾸짖는 질문입니다. 이어 잘 가르쳐진 이치는 저마다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밝히고, 자신은 오히려 그 수행자들을 가까이 따르며 거룩한 이들의 훌륭한 말씀을 들었다고 대조합니다. 누군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보다 들은 가르침을 자기 앎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묵상

좋은 말을 오래 듣고도 내 경험에서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지나친 적이 있나요?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늘 들은 말 가운데 스스로 조용히 살펴볼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46 높은 수행과 알맞지 않은 태어남의 대조 1구절

고빠까가 자신의 삼십삼천 태어남과 으뜸가는 이를 따른 수행자들의 낮은 태어남을 맞세움

나는 큰 힘을 지닌 삭까의 아들이 되었고, 큰 빛을 내며 삼십삼천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대들은 으뜸가는 이를 가까이 따르고 위없는 거룩한 삶을 살고도, 그대들은 낮은 무리에 태어났으니 그 태어남은 알맞지 않다.

Sakkassa puttomhi mahānubhāvo, Mahājutīko tidivūpapanno; Tumhe pana seṭṭhamupāsamānā, Anuttaraṁ brahmacariyaṁ caritvā. Hīnaṁ kāyaṁ upapannā bhavanto, Anānulomā bhavatūpapat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는 앞서 밝힌 자신의 현재를 같은 말로 다시 노래합니다. 큰 힘을 지닌 삭까(신들의 왕)의 아들이고 큰 빛을 내며 삼십삼천에 태어났다는 두 특성을 온전히 되풀이한 뒤, 수행자들의 결과와 맞섭니다. 그들은 으뜸가는 이를 가까이 따르고 위없는 거룩한 삶을 살았지만 낮은 무리에 태어났고, 고빠까는 그 태어남이 수행에 걸맞지 않다고 꾸짖습니다. 그는 높은 조건과 낮은 결과 사이의 간극을 거듭 직접 지적합니다.

묵상

좋은 환경과 훌륭한 스승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배움이 저절로 내 것이 된다고 여긴 적이 있나요? 지금 받은 좋은 조건 가운데 실제 행동으로 이어 갈 수 있는 한 가지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47 시중드는 출가자와 뛰어난 결실을 얻은 재가자 1구절

간답바 무리에서 신들을 시중드는 옛 수행자들과 집에서 살며 다른 결실을 얻은 고빠까의 대비

함께 수행한 이들이 낮은 무리에 태어난 모습을 우리가 보다니, 참으로 보기 딱하구나. 그대들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나 신들을 시중들러 다니는구나. 나는 집에서 살았는데도, 내가 얻은 이 뛰어난 결실을 보아라.

Duddiṭṭharūpaṁ vata addasāma, Sahadhammike hīnakāyūpapanne. Gandhabbakāyūpagatā bhavanto, Devānamāgacchatha pāricariyaṁ; Agāre vasato mayhaṁ, Imaṁ passa visesa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알맞지 않은 태어남이라는 판단 뒤, 고빠까는 자신이 본 장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함께 수행한 이들이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났고, 지금은 신들을 시중들러 다닙니다. 반면 자신은 집에서 살던 사람이었지만 더 뛰어난 결실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집에서 사는 삶과 집을 떠난 삶이라는 구분보다, 앞서 강조한 스스로 앎과 실천이 삶의 형식보다 중요하다는 꾸짖음이 강해집니다. 이 날카로운 대조가 세 신에게 변화의 계기를 줍니다.

묵상

겉으로 보이는 역할만으로 누가 더 깊이 배우고 있는지 미리 정한 적이 있나요? 자신이나 타인을 비교해 깎아내리기보다, 지금의 역할 안에서 실제로 익히고 있는 태도 하나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48 고빠까의 마지막 대조와 세 신의 절박함 1구절

고빠까가 전생과 현재를 대조해 말하자 세 신이 그를 알아보고 꾸지람에서 절박함을 느낌

“여성이었던 나는 오늘 남성 신이 되어 하늘 세계의 감각적 즐거움을 누린다.” 그들은 고따마의 제자인 고빠까를 알아보고, 그에게 꾸지람을 듣자 절박함이 일어났다.

Itthī hutvā svajja pumomhi devo, Dibbehi kāmehi samaṅgibhūto’; Te coditā gotamasāvakena, Saṁvegamāpādu samecca gopak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의 직접 꾸짖음은 전생에 여성이었던 자신이 이제 남성 신이 되어 하늘 세계의 감각적 즐거움을 누린다는 두 줄로 끝납니다. 곧 화자가 바뀌어, 세 신이 고따마의 제자인 고빠까를 알아보고 그의 꾸지람으로 절박함을 느꼈다고 전합니다. 성별과 하늘 세계의 즐거움은 이 노래에서 고빠까가 자신의 변화와 현재를 설명하는 요소이며, 이어지는 대목은 세 신이 그 말을 알아듣고 태도를 바꾸려 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절박함은 다음의 공동 결심과 둘의 힘씀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에서 모욕감만이 아니라 지금 바꾸어야 할 점을 알아본 적이 있나요? 꾸지람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안전한 거리에서 그 말에 살펴볼 가치가 있는 부분이 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49 두 신이 고따마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힘써 나아가다 1구절

세 신이 더는 남을 섬기지 말자고 함께 다짐하고 그 가운데 둘이 기억을 되살려 힘을 씀

“자, 힘쓰자. 힘껏 노력하자. 우리가 더는 남의 종이 되지 말자.” 그들 가운데 둘은 고따마의 여러 가르침을 기억하며 힘씀을 일으켰다.

‘Handa viyāyāma byāyāma, Mā no mayaṁ parapessā ahumhā’; Tesaṁ duve vīriyamārabhiṁsu, Anussaraṁ gotamasāsanān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절박함을 느낀 세 신은 먼저 함께 말합니다. 힘쓰자와 힘껏 노력하자라는 두 권유를 잇고, 더는 남의 종이 되지 말자는 부정의 결심을 세웁니다. 그러나 실제로 힘씀을 일으킨 수는 셋 모두가 아니라 둘입니다. 두 신은 고따마에게서 들었던 여러 가르침을 기억해 냅니다. 앞 산문에서 “둘은 기억을 되찾고 하나는 감각적 욕망에 머물렀다”라고 요약한 갈림이 여기서 펼쳐집니다.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힘을 일으키는 직접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묵상

함께 결심했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때와 그렇지 못한 때가 있었나요? 지금 기억나는 중요한 말 하나가 아주 작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50 욕망의 결박을 끊고 삼십삼천을 넘다 1구절

힘쓴 두 신이 감각적 욕망의 위험을 보고 악마의 멍에를 끊어 삼십삼천의 신들을 넘어섬

그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마음의 탐냄을 빛바래게 하고, 감각적 욕망의 위험을 보았다. 감각적 욕망의 족쇄와 결박, 벗어나기 어려운 악마의 멍에를 코끼리가 몸을 묶은 밧줄들을 끊듯 끊고, 삼십삼천의 신들을 뛰어넘었다.

Idheva cittāni virājayitvā, Kāmesu ādīnavamaddasaṁsu; Te kāmasaṁyojanabandhanāni, Pāpimayogāni duraccayāni. Nāgova sannāni guṇāni chetvā, Deve tāvatiṁse atikkamiṁsu;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따마의 여러 가르침을 기억해 힘쓴 두 신에게 변화가 바로 일어납니다. 먼저 마음의 탐냄을 빛바래게 하고 감각적 욕망의 위험을 봅니다. 이어 감각적 욕망을 족쇄와 결박, 악마의 벗어나기 어려운 멍에라는 세 겹의 속박으로 부릅니다. 그것을 코끼리가 몸을 묶은 밧줄들을 끊는 모습에 비유하고, 두 신이 삼십삼천의 신들보다 더 높이 나아갔다고 맺습니다. 위험을 분명히 보는 앎이 결박을 끊는 힘과 곧바로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묵상

즐거워 보이지만 뒤에 속박이나 부담을 남기는 경험이 있나요? 그것을 당장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는 질문은 아니에요. 지금 안전하게 살필 수 있다면, 즐거움과 함께 따라오는 작은 위험 하나도 보이나요?

51 바른 이치의 회당을 지나 더 높이 나아가다 1구절

바른 이치의 회당에 모여 앉은 인드라와 빠자빠띠를 비롯한 신들보다 두 영웅이 더 높이 나아감

인드라와 빠자빠띠를 비롯한 신들은 모두 바른 이치의 회당에 모여 앉아 있었다. 탐냄을 여읜 영웅들은 티끌 없음을 닦으며, 앉아 있는 그들을 지나 더 높이 나아갔다.

Saindā devā sapajāpatikā, Sabbe sudhammāya sabhāyupaviṭṭhā. Tesaṁ nisinnānaṁ abhikkamiṁsu, Vīrā virāgā virajaṁ karont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삼십삼천의 신들을 넘어섰다는 말 뒤에 그 장면이 구체화됩니다. 인드라와 빠자빠띠를 비롯한 신들은 모두 바른 이치의 회당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욕심을 여읜 두 신은 영웅이라 불리고, 티끌 없음을 닦으며 그들보다 더 높이 나아갑니다. 감각적 욕망의 결박을 끊은 마음은 하늘 세계의 지위나 모임에도, 신들의 영광에도 머물지 않으며, 이 뜻밖의 광경이 와사와 삭까에게도 절박함을 일으킵니다.

묵상

많은 사람이 높이 여기는 자리나 인정이 내게도 마지막 목표처럼 느껴지나요? 그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의 방향이 있는지 조용히 물어볼 수 있을까요?

52 와사와가 두 신의 뛰어넘음에 놀라다 1구절

신들을 다스리는 와사와가 낮은 무리에 태어났던 두 신이 삼십삼천을 넘는 모습을 보고 말함

그들을 본 와사와에게 절박함이 일어났고, 신들을 다스리는 그는 신들의 무리 한가운데서 말했다. “이들은 낮은 무리에 태어났던 자들인데, 이제 삼십삼천의 신들인 우리를 뛰어넘는구나.” 그렇게 절박해진 이의 말을 듣고, 고빠까가 와사와에게 대답했다.

Te disvā saṁvegamakāsi vāsavo, Devābhibhū devagaṇassa majjhe. ‘Imehi te hīnakāyūpapannā, Deve tāvatiṁse abhikkamanti’; Saṁvegajātassa vaco nisamma, So gopako vāsavamajjhabhās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수담마 회당에서 두 신이 더 높이 나아가는 모습을 본 와사와에게도 절박함이 일어납니다. 와사와는 삭까를 가리키는 이름이며, 신들을 다스리는 이라는 자격도 함께 붙습니다. 그는 신들의 무리 한가운데서 두 사람이 본래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났는데 이제 삼십삼천의 신들인 자신들을 뛰어넘는다고 말합니다. 고빠까는 그 말을 듣고 두 신의 변화가 인간 세상의 부처와 잊었던 가르침을 되찾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대답하기 시작합니다.

묵상

내가 낮게 보았던 사람이 뜻밖에 앞서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나요? 비교나 수치심으로 몰아가지 말고, 그 장면이 내게 새로 보여 주는 가능성 한 가지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53 기억을 되찾게 한 인간 세상의 부처 1구절

고빠까가 인간 세상의 석가 성자와 기억을 잃었다가 꾸지람으로 되찾은 그분의 아들들을 설명함

“인간 세상에는 사람들의 왕인 부처가 계시며, 감각적 욕망을 이긴 ‘석가의 성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아들들이 기억을 잃었지만, 내가 그들을 꾸짖자 그들이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Buddho janindatthi manussaloke, Kāmābhibhū sakyamunīti ñāyati; Tasseva te puttā satiyā vihīnā, Coditā mayā te satimajjhalatthu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와사와의 물음에 고빠까는 먼저 두 신의 스승을 밝힙니다. 인간 세상에 사람들의 왕인 부처가 계시며, 감각적 욕망을 이긴 석가의 성자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두 신을 그분의 “아들들”이라 부르는 것은 가르침을 이은 제자라는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한때 기억을 잃어 낮은 무리에 머물렀지만, 고빠까가 꾸짖자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앞에서 힘씀의 출발점으로 나온 기억이 누구의 무엇을 기억하는 일인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묵상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누군가의 말로 다시 떠오른 가르침이나 약속이 있나요? 지금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짧고 분명한 문장 하나가 있을까요?

54 셋 가운데 하나는 머물고 둘은 깨달음의 길을 따르다 1구절

세 신 중 한 명은 간답바 무리에 남고 두 명은 깨달음의 길을 따라 신들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김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이곳 간답바 무리에 태어나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명은 완전한 깨달음의 길을 따르며, 마음이 고요히 모였기에 신들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Tiṇṇaṁ tesaṁ āvasinettha eko, Gandhabbakāyūpagato vasīno; Dve ca sambodhipathānusārino, Devepi hīḷenti samāhitatt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는 기억을 되찾은 결과를 세 명의 수로 다시 나눕니다. 한 명은 여전히 이곳 간답바 무리에 살지만, 두 명은 완전한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을 따릅니다. 그 두 명은 마음이 고요히 모였기 때문에 신들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하늘 세계의 지위와 즐거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앞 산문과 노래에서 여러 번 제시된 “둘과 하나”의 갈림을 같은 수량으로 닫는 대목입니다. 이어 두 신이 이해한 가르침과 도달한 브라흐마의 보좌신 무리가 노래의 결론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같은 출발점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다른 사람의 속도나 선택을 판단하지 말고, 지금 내 마음이 고요히 모일 때 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유혹 하나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55 의심을 끊고 흐름을 건넌 부처께 예배하다 1구절

밝혀진 가르침을 어떤 제자도 의심하지 않으며 승리자이자 사람들의 왕인 부처께 예배함

이곳에서 가르침은 이렇게 밝혀졌으니, 그 점을 의심하는 제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거센 흐름을 건너고 의심을 끊은 승리자, 사람들의 왕인 부처께 우리는 예배합니다.

Etādisī dhammappakāsanettha, Na tattha kiṅkaṅkhati koci sāvako; Nitiṇṇaoghaṁ vicikicchachinnaṁ, Buddhaṁ namassāma jinaṁ janind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의 설명은 두 신의 변화가 부처의 가르침을 다시 기억한 결과임을 밝힌 뒤 예배의 노래로 높아집니다. 먼저 이처럼 가르침이 밝혀진 점을 의심하는 제자는 아무도 없다고 전면 부정합니다. 이어 부처를 거센 흐름을 건넌 이, 의심을 끊은 이, 승리자, 사람들의 왕이라는 네 면으로 그립니다. 두 신이 의심과 욕망의 결박을 넘어선 근거를 그들의 스승이 먼저 흐름을 건너고 의심을 끊었다는 사실에 연결하며, 다음 네 줄에서 두 신이 실제로 얻은 뛰어난 결과를 밝힙니다.

묵상

혼란스러운 때에 이미 의심을 건너 본 사람의 말이 길잡이가 된 적이 있나요? 지금 신뢰할 만하다고 느끼는 한 문장과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56 둘이 브라흐마의 보좌신 무리에 이르다 1구절

가르침을 이해해 뛰어난 경지를 얻은 세 신 가운데 둘이 브라흐마의 보좌신 무리에 이름

그들은 이곳에서 이 가르침을 이해하여 뛰어난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둘은 브라흐마의 보좌신 무리라는 뛰어난 곳에 이르렀습니다.”

Yaṁ te dhammaṁ idhaññāya, visesaṁ ajjhagaṁsu te; Kāyaṁ brahmapurohitaṁ, duve tesaṁ visesagū.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긴 노래는 두 신이 도달한 곳을 밝히며 끝납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르침을 이해한 만큼 뛰어난 결과를 얻었고, 셋 가운데 둘이 브라흐마의 보좌신 무리에 이르렀습니다. ‘뛰어나다’는 말이 결과와 그 결과를 이룬 이를 함께 나타내며, 이해와 결실을 직접 연결합니다. “둘”이라는 수는 앞에서 기억을 되찾고 힘쓴 두 신과 정확히 같습니다. 한 신은 감각적 욕망에 남았다는 산문의 대조까지 되받아, 같은 출발 뒤 갈라진 세 신의 이야기를 수량의 변화 없이 마칩니다.

묵상

배운 내용을 조금이라도 직접 이해했을 때 행동이나 방향이 달라진 경험이 있나요? 이해가 실제 선택으로 이어진 작은 순간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57 그 가르침에 이르기 위해 질문을 청하다 1구절

삭까 일행이 같은 가르침에 이르려고 왔다고 밝히며 부처님께 질문할 기회를 두 번의 호격으로 청함

“부처님, 우리는 바로 그 가르침에 이르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부처님, 기회를 주신다면 질문을 여쭙고 싶습니다.”

Tassa dhammassa pattiyā, āgatamhāsi mārisa; Katāvakāsā bhagavatā, pañhaṁ pucchemu māris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고빠까와 두 신의 이야기를 마친 삭까(신들의 왕)는 그 이야기가 자신의 방문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밝힙니다. 자신과 일행도 바로 그 가르침에 이르기 위해 왔으며, 부처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질문을 여쭙고 싶다고 청합니다. 삭까가 부처님을 부르는 말이 두 번 나오므로 “부처님”도 두 번 되풀이됩니다. 질문은 두 신이 이해하여 더 높이 나아간 가르침을 자신들도 실현하려는 목적을 지닙니다. 이제 긴 방문 이야기는 부처님과 삭까의 직접 문답으로 전환됩니다.

묵상

누군가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분명히 해 본 적이 있나요? 정답을 빨리 얻기보다, 지금 삶에서 실제로 이해하고 싶은 질문 하나를 짧게 적어 볼 수 있을까요?

58 부처님께서 삭까의 질문과 이해를 헤아리다 1구절

부처님께서 삭까가 이익에 맞는 질문만 하고 답을 빠르게 이해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아심

그때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셨다. “이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는 오랫동안 맑게 살아왔다. 그가 내게 어떤 질문을 묻든 모두 이익에 맞는 것을 물을 것이며, 이익에 맞지 않는 것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의 질문에 답하면 그는 그 답을 아주 빨리 이해할 것이다.”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dīgharattaṁ visuddho kho ayaṁ yakkho, yaṁ kiñci maṁ pañhaṁ pucchissati, sabbaṁ taṁ atthasañhitaṁyeva pucchissati, no anatthasañhitaṁ. Yañcassāhaṁ puṭṭho byākarissāmi, taṁ khippameva ājānissa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신들의 왕)의 청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말로 답하기 전에 그의 상태를 마음속으로 헤아리십니다. 삭까를 “이 약카(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정령)”라고 가리키며 오랫동안 맑게 살아왔다고 보고, 그가 묻는 모든 질문은 이익에 맞고 이익에 맞지 않는 것은 묻지 않으리라고 긍정과 부정을 짝지어 판단합니다. 또 자신이 답하면 삭까가 아주 빨리 이해할 것이라고 아십니다. 질문자의 준비와 질문의 유익함, 답을 이해할 능력이 차례로 확인된 뒤에야 부처님께서 질문을 허락하는 노래를 말씀하십니다.

묵상

질문하기 전에 그 물음이 나와 상대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지금 떠오른 물음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핵심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59 와사와에게 모든 질문을 허락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신들의 왕 삭까를 와사와라 부르며 마음에 바라는 질문 하나하나를 풀어 주겠다고 하심

그때 부처님께서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노래로 말씀하셨다. “와사와여, 마음으로 바라는 어떤 질문이든 내게 물어라. 그 질문 하나하나를 내가 그대를 위해 끝까지 풀어 주겠다.”

Atha kho bhagavā sakkaṁ devānamindaṁ gāthāya ajjhabhāsi: “Puccha vāsava maṁ pañhaṁ, yaṁ kiñci manasicchasi; Tassa tasseva pañhassa, ahaṁ antaṁ karomi te”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의 내적 판단 뒤에는 삭까를 향한 공개적인 허락이 이어집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를 신들의 왕 삭까라 부르고, 부처님께서는 노래에서 같은 이를 와사와라는 이름으로 직접 부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삭까가 마음으로 바라는 어떤 질문이든 물으라고 하며, 그 질문 하나하나를 끝까지 풀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부처님은 질문을 특정한 주제로 제한하지 않고 무엇이든 묻게 하셨지만, 앞서 그 질문들이 유익할 것임을 이미 헤아리셨습니다. 다음 장에서 삭까는 곧 첫 질문을 시작합니다.

묵상

마음속 질문을 숨기지 않고 물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꺼내 보고 싶은 질문 하나가 있나요?

60 평화를 바라면서도 원한 속에 사는 까닭 1구절

삭까가 여러 존재가 원한 없는 삶을 바라면서도 원한과 폭력 속에 사는 족쇄가 무엇인지 첫 질문을 올림

그때 부처님께 기회를 받은 신들의 왕 삭까가 부처님께 첫 질문을 여쭈었다. “부처님, 신과 인간과 아수라와 용과 간답바와 그 밖의 여러 무리는 어떤 족쇄에 묶여 있기에, ‘원한 없이, 폭력 없이, 적의 없이, 미움 없이, 원한을 여의고 살자’고 바라면서도 도리어 원한을 품고, 폭력을 쓰고, 적의를 품고, 미움을 품은 채 원한 속에 삽니까?”

Katāvakāso sakko devānamindo bhagavatā imaṁ bhagavantaṁ paṭhamaṁ pañhaṁ apucchi: “Kiṁsaṁyojanā nu kho, mārisa, devā manussā asurā nāgā gandhabbā ye caññe santi puthukāyā, te: ‘averā adaṇḍā asapattā abyāpajjā viharemu averino’ti iti ca nesaṁ hoti, atha ca pana saverā sadaṇḍā sasapattā sabyāpajjā viharanti saverin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질문을 허락받은 삭까는 신과 인간은 물론 아수라와 용과 간답바, 그 밖의 여러 무리까지 포함해 첫 질문을 합니다. 모든 존재가 원한·폭력·적의·미움 없이 원한을 여의고 살기를 바라는데도, 실제로는 그 네 상태의 반대 속에 사는 까닭을 묻습니다. 삭까는 겉으로 드러난 다툼보다 그들을 그렇게 묶는 “족쇄”가 무엇인지 물어, 부처님께서 질투와 인색이라는 내적 조건을 밝히실 길을 엽니다.

묵상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는 바람과 실제 반응이 어긋난 순간이 있나요? 그 사이에서 나를 묶는 마음 하나가 무엇인지 안전한 만큼만 알아볼 수 있을까요?

61 질투와 인색이라는 족쇄 1구절

부처님께서 여러 존재가 평화를 바라면서도 원한 속에 사는 까닭을 질투와 인색의 족쇄로 답하심

이와 같이 신들의 왕 삭까가 부처님께 질문했다. 질문받은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답하셨다. “신들의 왕이여, 질투와 인색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기에 신과 인간과 아수라와 용과 간답바와 그 밖의 여러 무리는 ‘원한 없이, 폭력 없이, 적의 없이, 미움 없이, 원한을 여의고 살자’고 바라면서도 도리어 원한을 품고, 폭력을 쓰고, 적의를 품고, 미움을 품은 채 원한 속에 산다.”

Itthaṁ sakko devānamindo bhagavantaṁ pañhaṁ apucchi. Tassa bhagavā pañhaṁ puṭṭho byākāsi: “Issāmacchariyasaṁyojanā kho, devānaminda, devā manussā asurā nāgā gandhabbā ye caññe santi puthukāyā, te: ‘averā adaṇḍā asapattā abyāpajjā viharemu averino’ti iti ca nesaṁ hoti, atha ca pana saverā sadaṇḍā sasapattā sabyāpajjā viharanti saverin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이 글은 삭까가 질문했다는 것과 부처님께서 그 질문을 받아 답하셨다는 것을 각각 밝힌 뒤 답을 전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질문의 존재 목록과 바람·현실의 열 자리를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맨 앞에 원인을 더하십니다. 그 원인은 남의 좋은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질투와 자기 것을 나누기 어려워하는 인색이라는 두 족쇄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는 생각만으로 갈등이 끝나지 않는 까닭을, 여러 존재를 묶어 실제 행동을 반대로 이끄는 두 마음에서 찾습니다.

묵상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이나 나눔의 순간에 마음이 좁아지는 것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지금 몸과 마음에서 먼저 보이는 작은 신호가 있나요?

62 삭까가 첫 답에서 의심을 건너다 1구절

삭까가 부처님의 첫 답을 듣고 기뻐하며 두 호격으로 옳음을 확인하고 의심과 망설임이 사라졌다고 말함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신들의 왕 삭까의 질문을 받으시고 답하셨다. 기뻐한 신들의 왕 삭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칭찬하고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그렇습니다, 잘 가신 분이시여! 부처님께서 질문에 답하신 것을 듣고, 저는 여기서 의심을 건넜고 망설임이 사라졌습니다.”

Itthaṁ bhagavā sakkassa devānamindassa pañhaṁ puṭṭho byākāsi. Attamano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 anumodi: “evametaṁ, bhagavā, evametaṁ, sugata. 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ṅkathā bhagavato pañhaveyyākaraṇaṁ sutv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첫 답이 끝나자 이 글은 부처님께서 삭까의 질문을 받아 답하셨다고 밝히며 문답을 마무리합니다. 삭까의 반응에는 기뻐함, 말씀을 칭찬함, 동의함이라는 세 단계가 차례로 나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를 두 번 되풀이하며 부처님과 잘 가신 분이라는 두 이름을 각각 부릅니다. 이어 답을 들은 결과를 의심을 건넜음과 망설임이 사라졌음이라는 두 표현으로 밝힙니다. 답이 자신의 불확실성을 실제로 풀었다고 확인한 뒤 다음 원인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묵상

설명을 듣고 막연한 의심과 이리저리 흔들리는 망설임이 함께 가벼워진 적이 있나요? 지금 들은 답에서 분명해진 점과 아직 남은 물음을 하나씩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63 질투와 인색의 네 기원과 두 조건을 묻다 1구절

삭까가 질투와 인색의 원인·생겨남·태어남·비롯됨과 존재·부재 조건을 부처님께 다시 질문함

이렇게 신들의 왕 삭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칭찬하고 동의한 뒤 부처님께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부처님, 질투와 인색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생겨나며, 무엇에서 태어나고, 무엇에서 비롯됩니까? 무엇이 있을 때 질투와 인색이 있으며, 무엇이 없을 때 질투와 인색이 없습니까?”

Itiha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bhagavantaṁ uttari pañhaṁ apucchi: “Issāmacchariyaṁ pana, mārisa, kiṁnidānaṁ kiṁsamudayaṁ kiṁjātikaṁ kiṁpabhavaṁ; kismiṁ sati issāmacchariyaṁ hoti; kismiṁ asati issāmacchariyaṁ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첫 답을 칭찬하고 동의한 삭까는 질투와 인색을 마지막 원인으로 멈추지 않고 더 거슬러 묻습니다. 질문의 첫 문장은 원인·생겨남·태어남·비롯됨이라는 네 방향에서 같은 기원을 찾습니다. 이어 무엇이 있을 때 둘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둘이 없는지를 물어, 있음과 없음이라는 조건을 짝지어 확인합니다. 원인을 네 표현과 두 조건으로 빈틈없이 되묻는 이 형식은 이후 좋아함과 싫어함, 욕구, 생각으로 계속 이어지는 연쇄의 틀이 됩니다.

묵상

불편한 마음의 원인을 한 가지 설명으로 너무 빨리 끝낸 적이 있나요? 자신을 심문하듯 몰아붙이지 말고, 그 마음이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없을 때 약해지는지 두 방향으로 살펴볼 수 있을까요?

64 좋아함과 싫어함에서 질투와 인색이 생기다 1구절

부처님께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질투와 인색의 네 기원과 존재·부재 조건으로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질투와 인색의 원인이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서 질투와 인색이 생겨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서 질투와 인색이 태어나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서 질투와 인색이 비롯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을 때 질투와 인색이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없을 때 질투와 인색이 없다.”

“Issāmacchariyaṁ kho, devānaminda, piyāppiyanidānaṁ piyāppiyasamudayaṁ piyāppiyajātikaṁ piyāppiyapabhavaṁ; piyāppiye sati issāmacchariyaṁ hoti, piyāppiye asati issāmacchariyaṁ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께서는 삭까가 세운 여섯 자리의 질문을 같은 순서로 채우십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질투와 인색의 원인이고, 거기서 생겨나고 태어나며 비롯된다는 네 관계를 각각 온전히 밝힙니다. 이어 그것이 있을 때 질투와 인색이 있고, 없을 때 질투와 인색이 없다는 두 조건을 답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한 쌍으로 묶여 다닙니다. 질투와 인색이 대상 자체보다 대상을 좋아함과 싫어함으로 가르는 관계에 기대어 일어난다는 첫 번째 조건 고리입니다.

묵상

질투나 움켜쥐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그 앞에 “좋다”와 “싫다”라는 구분이 있었는지 보이나요? 그 구분을 당장 없애려 하지 말고, 지금 한 대상에 붙은 호오의 느낌만 가볍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65 좋아함과 싫어함의 기원을 묻다 1구절

삭까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네 기원과 있음·없음의 두 조건을 부처님께 질문함

“그러면 부처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생겨나며, 무엇에서 태어나고, 무엇에서 비롯됩니까? 무엇이 있을 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으며, 무엇이 없을 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없습니까?”

“Piyāppiyaṁ pana, mārisa, kiṁnidānaṁ kiṁsamudayaṁ kiṁjātikaṁ kiṁpabhavaṁ; kismiṁ sati piyāppiyaṁ hoti; kismiṁ asati piyāppiyaṁ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질투와 인색의 조건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라는 답을 들은 삭까는 곧 그 한 쌍의 조건을 다시 묻습니다. 앞 질문과 똑같이 원인·생겨남·태어남·비롯됨이라는 네 기원, 있음·없음이라는 두 조건을 모두 확인합니다. 좋아하는 대상과 싫어하는 대상은 마음이 경험을 두 편으로 가르면서 생기는 한 쌍입니다. 질투와 인색의 표면에서 좋음과 싫음의 구분으로 한 걸음 거슬렀고, 이제 그 구분을 낳는 욕구가 다음 답으로 제시됩니다.

묵상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반응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지금 한 반응 앞에 있었던 작은 욕구가 보이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66 욕구에서 좋아함과 싫어함이 생기다 1구절

부처님께서 욕구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네 기원과 존재·부재 조건으로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욕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원인이며, 욕구에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생겨나고, 욕구에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태어나며, 욕구에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비롯된다. 욕구가 있을 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고, 욕구가 없을 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없다.”

“Piyāppiyaṁ kho, devānaminda, chandanidānaṁ chandasamudayaṁ chandajātikaṁ chandapabhavaṁ; chande sati piyāppiyaṁ hoti; chande asati piyāppiyaṁ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께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여섯 자리를 모두 욕구로 채우십니다. 욕구가 그 한 쌍의 원인이고, 욕구에서 생겨나고 태어나며 비롯된다는 네 관계가 먼저 나옵니다. 이어 욕구가 있을 때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고 욕구가 없을 때 좋아함과 싫어함이 없다는 두 조건이 뒤따릅니다. 욕구는 무엇인가를 향하거나 이루려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좋아함과 싫어함이 대상에 본래 붙어 있는 성질이라기보다 그 대상을 향한 욕구가 있을 때 함께 구성된다는 두 번째 조건 고리입니다.

묵상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 뒤에서 “이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나요? 그 욕구를 나쁘다고 정하거나 없애려 하지 말고,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만 잠시 알아볼 수 있을까요?

67 욕구의 기원을 묻다 1구절

삭까가 욕구의 원인·생겨남·태어남·비롯됨과 욕구가 있는 조건과 없는 조건을 질문함

“그러면 부처님, 욕구는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생겨나며, 무엇에서 태어나고, 무엇에서 비롯됩니까? 무엇이 있을 때 욕구가 있으며, 무엇이 없을 때 욕구가 없습니까?”

“Chando pana, mārisa, kiṁnidāno kiṁsamudayo kiṁjātiko kiṁpabhavo; kismiṁ sati chando hoti; kismiṁ asati chando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좋아함과 싫어함이 욕구에 달렸다는 답을 들은 삭까는 욕구를 설명되지 않은 출발점으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네 기원과 두 조건의 틀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욕구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어디서 생겨나고 태어나며 비롯되는지, 무엇이 있을 때 있고 무엇이 없을 때 없는지 묻습니다. 질문 형식이 되풀이되므로 조건의 사슬에서 달라지는 것은 탐구 대상 하나뿐입니다. 부처님의 답은 욕구에 앞서 대상을 향해 움직이는 생각이 있다고 밝힙니다.

묵상

무언가를 원한다는 마음 바로 앞에 어떤 생각이 지나갔는지 기억나나요? 다음에 작은 욕구가 일어날 때, 그 직전에 마음이 붙잡은 한 문장이나 장면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68 생각에서 욕구가 생기다 1구절

부처님께서 생각을 욕구의 네 기원과 생각의 존재·부재에 따른 욕구의 조건으로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생각이 욕구의 원인이며, 생각에서 욕구가 생겨나고, 생각에서 욕구가 태어나며, 생각에서 욕구가 비롯된다. 생각이 있을 때 욕구가 있고, 생각이 없을 때 욕구가 없다.”

“Chando kho, devānaminda, vitakkanidāno vitakkasamudayo vitakkajātiko vitakkapabhavo; vitakke sati chando hoti; vitakke asati chando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의 답은 욕구보다 앞선 조건을 생각으로 밝힙니다. 생각이 욕구의 원인이고, 생각에서 욕구가 생겨나고 태어나며 비롯된다는 네 관계를 차례로 제시합니다. 이어 생각이 있을 때 욕구가 있고 생각이 없을 때 욕구가 없다는 두 조건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생각은 마음이 어떤 대상을 붙잡아 향하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호오에서 욕구로, 욕구에서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갈등의 더 미세한 조건을 찾습니다.

묵상

어떤 생각을 되풀이할수록 특정한 욕구가 강해지는 경험이 있나요? 지금 한 생각이 마음을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지만 알아볼 수 있을까요?

69 생각의 기원을 묻다 1구절

삭까가 생각의 네 기원과 생각이 있을 조건 및 없을 조건을 같은 질문 형식으로 끝까지 확인함

“그러면 님, 생각은 무엇을 원인으로 하고, 무엇에서 생겨나며, 무엇에서 태어나고, 무엇에서 비롯됩니까? 무엇이 있을 때 생각이 있으며, 무엇이 없을 때 생각이 없습니까?”

“Vitakko pana, mārisa, kiṁnidāno kiṁsamudayo kiṁjātiko kiṁpabhavo; kismiṁ sati vitakko hoti; kismiṁ asati vitakko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욕구가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답 뒤, 삭까는 생각 자체의 조건을 묻습니다. 원인·생겨남·태어남·비롯됨의 네 기원과 있음·없음의 두 조건이 이번에도 빠짐없이 반복됩니다. 질투와 인색에서 출발한 탐구가 좋아함과 싫어함, 욕구를 거쳐 생각까지 거슬러 온 셈입니다. 다음 답에서 부처님께서는 생각의 조건을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라고 밝힙니다. 삭까의 원인과 결과를 묻는 질문은 그 확산이 사라지는 수행을 묻는 실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부르며 점점 커지는 순간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그 흐름을 당장 끊어야 한다고 몰아붙이지 말고, 처음 방향이 바뀐 작은 지점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70 확산된 인식과 관념에서 생각이 생기다 1구절

부처님께서 확산된 인식과 관념을 생각의 네 기원과 생각의 존재·부재 조건으로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생각의 원인이며, 확산된 인식과 관념에서 생각이 생겨나고, 확산된 인식과 관념에서 생각이 태어나며, 확산된 인식과 관념에서 생각이 비롯된다.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있을 때 생각이 있고,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없을 때 생각이 없다.”

“Vitakko kho, devānaminda, papañcasaññāsaṅkhānidāno papañcasaññāsaṅkhāsamudayo papañcasaññāsaṅkhājātiko papañcasaññāsaṅkhāpabhavo; papañcasaññāsaṅkhāya sati vitakko hoti; papañcasaññāsaṅkhāya asati vitakko na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께서는 생각의 여섯 자리를 모두 “확산된 인식과 관념”으로 채웁니다. 그것이 생각의 원인이고, 거기서 생각이 생겨나고 태어나며 비롯된다는 네 관계가 먼저 나옵니다. 이어 그것이 있을 때 생각이 있고 없을 때 생각이 없다는 두 조건을 밝힙니다. 이 말은 인식이 대상을 알아보면서 이름과 판단을 거듭 늘려 가는 흐름을 가리킵니다. 질투와 인색에서 시작한 조건 탐구는 이 확산에 닿고, 다음에는 그것이 사라지는 데 맞는 수행을 직접 묻게 됩니다.

묵상

한 인상에 이름과 판단이 잇달아 붙으면서 생각이 커지는 순간을 알아차린 적이 있나요? 처음 붙은 이름 하나만 가볍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71 확산된 인식과 관념의 소멸로 이끄는 길 1구절

삭까가 수행자가 어떻게 실천해야 확산된 인식과 관념의 소멸에 알맞은 수행 길을 따르는지 질문함

“그러면 부처님, 수행자는 어떻게 실천할 때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사라지는 데 알맞게 이끄는 길을 실천하는 이가 됩니까?”

“Kathaṁ paṭipanno pana, mārisa, bhikkhu papañcasaññāsaṅkhānirodhasāruppagāminiṁ paṭipadaṁ paṭipanno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생각의 마지막 조건을 안 뒤 더 앞선 원인을 묻는 대신 수행의 방향을 묻습니다. 질문은 수행자가 어떻게 실천할 때 사라짐으로 이끄는 길을 실천하는 이가 되는지를 거듭 확인합니다. 목표는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사라지는 데 알맞게 이끄는 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기법 하나를 제시하지 않고 기쁨·슬픔·평정 각각을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구별하는 판단 기준을 답하십니다.

묵상

생각이 확산될 때 “무조건 멈추기” 말고 도움이 되는 방향과 그렇지 않은 방향을 구별해 본 적이 있나요? 지금 한 반응이 무엇을 늘리고 무엇을 줄이는지만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72 기쁨과 슬픔은 각각 두 종류다 1구절

부처님께서 기쁨과 슬픔을 각각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기쁨을 두 종류로 말한다.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들의 왕이여, 나는 슬픔도 두 종류로 말한다.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Somanass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Domanass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확산이 사라지는 데 맞는 길을 묻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먼저 마음 상태를 구별하는 큰 틀을 세우십니다. 기쁨과 슬픔을 각각 두 종류로 나누어,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신들의 왕이여”라는 부름말과 “두 종류”라는 수량이 기쁨과 슬픔 앞에 각각 한 번씩 되풀이됩니다. 느낌의 이름만 보고 기쁨은 늘 좋고 슬픔은 늘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것을 기를 때 선한 것과 불선한 것이 어느 방향으로 변하는지를 뒤에서 기준으로 삼습니다.

묵상

기쁨은 언제나 좋고 슬픔은 언제나 나쁘다고 미리 정해 둔 적이 있나요? 지금 느끼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길러야 한다고 결론 내리지 말고, 그 감정 뒤에 어떤 행동이 따라오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73 평정에도 두 종류가 있다 1구절

부처님께서 평정 역시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평정도 두 종류로 말한다.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Upekkh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기쁨과 슬픔에 이어 부처님께서는 평정에도 같은 구분을 적용합니다. 평정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니며, 길러야 할 평정과 기르지 말아야 할 평정이라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로써 기쁨·슬픔·평정 세 마음 상태가 모두 같은 분별의 틀에 들어옵니다. 뒤의 설명은 각 상태를 기를 때 불선한 것이 늘고 선한 것이 줄어드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하나씩 대조하여 실제 선택 기준을 제시합니다.

묵상

겉으로 차분해 보여도 무관심이나 회피에 가까운 때와 맑게 바라보는 때가 다르게 느껴지나요? 지금의 평정을 좋고 나쁘다고 서둘러 정하지 말고, 그 뒤에 무엇이 자라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74 불선한 것을 늘리는 기쁨은 기르지 않는다 1구절

부처님께서 기쁨을 기를 때 불선한 것이 늘고 선한 것이 줄어들면 그 기쁨을 기르지 말라고 하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기쁨을 두 종류, 곧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했는데,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가? 여기서 어떤 기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기쁨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 그런 기쁨은 기르지 말아야 한다.

Somanass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Tattha yaṁ jaññā somanassaṁ ‘imaṁ kho me somanass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ī’ti, evarūpaṁ somanassaṁ na sevitabb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께서는 세 마음 가운데 기쁨을 먼저 자세히 풉니다. 왜 두 종류라고 했는지 스스로 물은 뒤, 어떤 기쁨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드는 경우를 제시합니다. 두 변화는 한쪽의 증가와 다른 쪽의 감소로 함께 일어나며, 그런 기쁨은 기르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짓습니다. 판단의 기준은 그것을 반복해서 가까이할 때 마음과 행동에 어떤 성질이 자라고 쇠하는지입니다. 다음에는 정확히 반대 결과를 낳는 기쁨을 밝힙니다.

묵상

즐거운 경험을 되풀이한 뒤 마음이 더 거칠어지거나 좋은 습관이 약해진 적이 있나요? 그 기쁨을 당장 금지하라는 질문은 아니에요. 뒤에 남는 작은 변화를 정직하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75 선한 것을 늘리는 기쁨은 길러야 한다 1구절

부처님께서 기쁨을 기를 때 불선한 것이 줄고 선한 것이 늘어나면 그 기쁨을 길러야 한다고 하심

여기서 어떤 기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기쁨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 그런 기쁨은 길러야 한다.

Tattha yaṁ jaññā somanassaṁ ‘imaṁ kho me somanass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ī’ti, evarūpaṁ somanassaṁ sevitabb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기르지 말아야 할 기쁨에 이어 정확히 반대되는 경우가 제시됩니다. 어떤 기쁨을 반복해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면, 그런 기쁨은 길러야 합니다. 앞에서는 불선의 증가와 선의 감소였고 여기서는 불선의 감소와 선의 증가이므로, 두 결과의 대상과 방향이 모두 뒤집힙니다. 부처님께서는 기쁨이라는 느낌 자체를 한쪽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것이 뒤에 남기는 변화를 기준으로 선택하게 하십니다. 이 두 경우 뒤에는 기쁨 안에서도 더 뛰어난 종류가 무엇인지 밝힙니다.

묵상

어떤 기쁨을 누린 뒤 해로운 반응은 줄고 좋은 태도는 자라난 경험이 있나요? 큰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늘 마음을 조금 더 맑게 남긴 작은 기쁨 하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76 생각의 두 작용이 없는 기쁨이 더 뛰어나다 1구절

부처님께서 기쁨 가운데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없는 것이 더 뛰어나다고 분별하심

그 가운데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있는 것도 있고,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도 있다.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들이 더 뛰어나다. 신들의 왕이여, 내가 기쁨을 두 종류, 곧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Tattha yañce savitakkaṁ savicāraṁ, yañce avitakkaṁ avicāraṁ, ye avitakke avicāre, te paṇītatare. Somanass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선한 것과 불선한 것의 증감을 기준으로 기쁨을 나눈 뒤, 부처님께서는 더 미세한 차이를 덧붙입니다. 생각을 일으키는 작용과 그 생각을 이어 가는 작용이 있는 기쁨도 있고, 그 두 작용이 없는 기쁨도 있습니다. 둘 가운데 두 작용이 없는 것들이 더 뛰어나다고 합니다. 이 비교까지 포함해 기쁨을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두 종류로 말한 까닭을 닫습니다. 유익한 결과의 증감에 이어, 마음이 얼마나 고요한지도 기쁨을 분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묵상

기쁜 순간에도 마음속 설명과 되풀이가 계속되는 때와 말없이 고요한 때가 다르게 느껴지나요? 어느 상태를 억지로 만들지 말고, 지금의 기쁨에 생각의 두 작용이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77 불선한 것을 늘리는 슬픔은 기르지 않는다 1구절

부처님께서 슬픔을 기를 때 불선한 것이 늘고 선한 것이 줄어들면 그 슬픔을 기르지 말라고 하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슬픔을 두 종류, 곧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했는데,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가? 여기서 어떤 슬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슬픔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 그런 슬픔은 기르지 말아야 한다.

Domanass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Tattha yaṁ jaññā domanassaṁ ‘imaṁ kho me domanass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ī’ti, evarūpaṁ domanassaṁ na sevitabb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기쁨의 설명을 마친 부처님께서는 같은 판단 틀을 슬픔에 적용합니다. 슬픔을 두 종류라고 한 까닭을 되묻고, 어떤 슬픔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늘며 선한 것들이 줄어드는 경우를 먼저 듭니다. 그런 슬픔은 기르지 말아야 합니다. 슬픔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두 피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반복해서 가까이했을 때 나타나는 두 방향의 결과를 살핍니다. 따라서 괴로운 느낌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그 느낌을 붙들어 불선한 반응을 키우는 일을 구별하며, 다음에는 반대 결과를 낳는 슬픔을 제시합니다.

묵상

슬픈 마음을 오래 되풀이할수록 거친 반응이 커지고 좋은 힘이 줄어드는 때가 있나요? 지금 필요한 돌봄과 반복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78 선한 것을 늘리는 슬픔은 길러야 한다 1구절

부처님께서 슬픔을 기를 때 불선한 것이 줄고 선한 것이 늘어나면 그 슬픔을 길러야 한다고 하심

여기서 어떤 슬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슬픔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 그런 슬픔은 길러야 한다.

Tattha yaṁ jaññā domanassaṁ ‘imaṁ kho me domanass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ī’ti, evarūpaṁ domanassaṁ sevitabb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기르지 말아야 할 슬픔과 반대로, 불선한 것들을 줄이고 선한 것들을 늘리는 슬픔은 길러야 한다고 하십니다. 슬픔이 언제나 수행의 방해라는 단순한 판단을 피하고, 어떤 슬픔은 더 나은 상태를 키우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밝힙니다. 다만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고, 오직 두 결과의 방향만 기준으로 삼습니다. 앞뒤의 두 슬픔은 느낌의 이름이 같아도 결과가 정반대입니다. 감정의 이름보다 그 감정이 실제로 무엇을 줄이고 키우는지가 중요합니다.

묵상

마음 아픔이 누군가를 돕거나 잘못을 바로잡는 선한 행동으로 이어진 적이 있나요? 이미 있는 슬픔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지 부드럽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79 생각의 두 작용이 없는 슬픔이 더 뛰어나다 1구절

부처님께서 슬픔 가운데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없는 것이 더 뛰어나다고 분별하심

그 가운데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있는 것도 있고,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도 있다.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들이 더 뛰어나다. 신들의 왕이여, 내가 슬픔을 두 종류, 곧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Tattha yañce savitakkaṁ savicāraṁ, yañce avitakkaṁ avicāraṁ, ye avitakke avicāre, te paṇītatare. Domanass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슬픔도 기쁨과 같은 두 번째 기준으로 나뉩니다.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있는 슬픔과 그 두 작용이 없는 슬픔을 나란히 두고, 두 작용이 없는 쪽이 더 뛰어나다고 합니다. 이 비교를 근거로 슬픔을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설명을 마칩니다. 같은 문장이 되풀이되지만 대상만 기쁨에서 슬픔으로 바뀌므로, 느낌의 즐거움과 괴로움 어느 쪽에도 선악을 자동으로 붙이지 않고 결과와 마음의 고요를 함께 분별한다는 원칙이 선명해집니다.

묵상

슬픔 속에서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되풀이하는 때와 말없이 아픔을 느끼는 때가 다르게 다가오나요? 어느 쪽이어야 한다고 정하지 말고, 지금 생각의 두 작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80 불선한 것을 늘리는 평정은 기르지 않는다 1구절

부처님께서 평정을 기를 때 불선한 것이 늘고 선한 것이 줄어들면 그 평정을 기르지 말라고 하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평정을 두 종류, 곧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했는데,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가? 여기서 어떤 평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평정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 그런 평정은 기르지 말아야 한다.

Upekkh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Tattha yaṁ jaññā upekkhaṁ ‘imaṁ kho me upekkh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ī’ti, evarūpā upekkhā na sevitabb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기쁨과 슬픔을 마친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평정을 같은 기준에서 풉니다. 평정을 두 종류라고 한 까닭을 되묻고, 어떤 평정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늘며 선한 것들이 줄어드는 경우를 먼저 제시합니다. 그런 평정은 기르지 말아야 합니다. 평정이라는 이름이나 흔들리지 않는 겉모습만으로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는 분별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덧붙이지 않고 불선의 증가와 선의 감소라는 두 결과만 판단 기준으로 삼으며, 곧 그 반대의 평정과 짝을 이룹니다.

묵상

차분함이라고 여겼지만 돌아보니 무관심이나 외면을 키운 때가 있었나요? 지금의 평정 뒤에서 줄어드는 좋은 태도가 있는지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81 선한 것을 늘리는 평정은 길러야 한다 1구절

부처님께서 평정을 기를 때 불선한 것이 줄고 선한 것이 늘어나면 그 평정을 길러야 한다고 하심

여기서 어떤 평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평정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 그런 평정은 길러야 한다.

Tattha yaṁ jaññā upekkhaṁ ‘imaṁ kho me upekkh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ī’ti, evarūpā upekkhā sevitabb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기르지 말아야 할 평정에 이어 반대 결과를 낳는 평정이 나옵니다. 그것을 기를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면 그런 평정은 길러야 합니다. 앞의 평정과 느낌의 이름은 같지만 두 결과의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평정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상태라는 겉모습으로 평가되지 않고, 반복할수록 마음과 행동에 어떤 성질이 쇠하고 자라는지로 구별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의 유무까지 비교한 뒤 전체 수행 답을 마칩니다.

묵상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관심과 배려가 더 자라나는 평정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그런 상태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애쓰지 말고, 지금 차분함이 좋은 행동을 돕는지 조용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82 세 마음을 분별하는 수행이 확산의 소멸로 이끌다 1구절

생각의 두 작용이 없는 평정을 더 뛰어나다고 한 뒤 부처님께서 이 수행이 확산의 소멸에 맞는 길이라고 답을 맺으심

그 가운데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이 있는 것도 있고,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도 있다. 그 두 작용이 없는 것들이 더 뛰어나다. 신들의 왕이여, 내가 평정을 두 종류, 곧 길러야 할 것과 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신들의 왕이여, 수행자가 이렇게 실천하면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사라지는 데 알맞게 이끄는 길을 실천하는 이가 된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신들의 왕 삭까의 질문을 받으시고 답하셨다.

Tattha yañce savitakkaṁ savicāraṁ, yañce avitakkaṁ avicāraṁ, ye avitakke avicāre, te paṇītatare. Upekkh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Evaṁ paṭipanno kho, devānaminda, bhikkhu papañcasaññāsaṅkhānirodhasāruppagāminiṁ paṭipadaṁ paṭipanno hotī”ti. Itthaṁ bhagavā sakkassa devānamindassa pañhaṁ puṭṭho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평정도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두 작용의 있음과 없음으로 나뉘며, 두 작용이 없는 쪽이 더 뛰어납니다. 이 비교로 평정의 두 종류를 설명한 뒤 부처님께서는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수행자가 기쁨·슬픔·평정을 선과 불선의 증감 및 생각의 두 작용으로 분별해 기르면, 확산된 인식과 관념이 사라지는 데 알맞게 이끄는 길을 실천하는 이가 됩니다. 이렇게 삭까의 긴 수행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이 마무리됩니다.

묵상

기쁨·슬픔·평정을 느낌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을 키우고 줄이는지로 살펴보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지금 가장 분명한 하나만 골라 결과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83 삭까가 두 번째 답에서도 의심을 건너다 1구절

삭까가 수행에 관한 답을 듣고 다시 기뻐하며 두 호격으로 옳음을 확인하고 의심과 망설임이 사라졌다고 말함

기뻐한 신들의 왕 삭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고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그렇습니다, 잘 가신 분이시여! 부처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저는 여기서 의심을 건넜고 망설임이 사라졌습니다.”

Attamano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 anumodi: “evametaṁ, bhagavā, evametaṁ, sugata. 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ṅkathā bhagavato pañhaveyyākaraṇaṁ sutv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확산이 사라지도록 이끄는 수행에 대한 답이 끝나자 삭까(신들의 왕)는 첫 답 뒤와 같은 문장으로 반응합니다. 기뻐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고, 동의한다는 세 반응을 모두 되풀이합니다. “그렇습니다”도 부처님과 잘 가신 분이라는 두 부름말과 함께 두 번 말하고, 의심을 건넜음과 망설임이 사라졌음이라는 두 결과도 다시 온전히 밝힙니다. 이렇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이번 답 역시 삭까의 물음을 실제로 해소했음을 보여 주며, 곧 계목에 따른 단속을 묻는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같은 확인의 말을 다시 해야 할 만큼 새롭게 분명해진 경험이 있나요? 반복을 형식적이라고 넘기지 말고, 앞의 이해와 이번 이해에서 실제로 달라진 한 점을 천천히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84 빠띠목카 계목에 따른 단속을 묻다 1구절

삭까가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고 동의한 뒤 수행자의 빠띠목카 계목에 따른 단속 수행을 다시 질문함

이렇게 신들의 왕 삭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고 동의한 뒤 부처님께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님, 수행자는 어떻게 실천할 때 계목(빠띠목카)에 따른 단속을 실천하는 이가 됩니까?”

Itiha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bhagavantaṁ uttari pañhaṁ apucchi: “Kathaṁ paṭipanno pana, mārisa, bhikkhu pātimokkhasaṁvarāya paṭipanno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수행에 관한 답을 찬탄하고 동의한 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수행자가 어떻게 실천할 때 빠띠목카 계목에 따른 단속을 실천하는 이가 되는지를 묻습니다. 빠띠목카는 수행자 공동체가 지키는 행위 조목이며, 단속은 그 조목을 따라 몸과 말을 다잡는 일입니다. 질문에는 “실천”에 해당하는 말이 두 번 나와 방식과 성취 상태를 함께 묻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의 행위·말의 행위·추구를 각각 두 종류로 나누어 결과에 따라 선택하는 답을 시작합니다.

묵상

규칙을 지킨다는 말을 단순한 금지보다 몸과 말을 살피는 경계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느껴지나요? 지금 행동하기 전 잠깐 멈추게 해 주는 기준 하나가 있나요?

85 몸의 행위는 두 종류다 1구절

부처님께서 몸의 행위를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몸의 행위를 두 종류로 말한다.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Kāyasamācār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계목(빠띠목카)에 따른 단속을 묻는 삭까에게 부처님께서는 먼저 몸의 행위를 두 종류로 나누십니다. 하나는 실천해야 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계목의 조항을 하나하나 들지 않고, 어떤 행위를 따를지 판단하는 기본 기준부터 세웁니다. 앞의 기쁨·슬픔·평정과 마찬가지로 몸의 행위도 이름이나 겉모습만으로 결정하지 않고, 그것을 반복할 때 불선한 것과 선한 것이 어느 방향으로 변하는지를 뒤에서 살핍니다. 같은 두 종류의 틀은 말의 행위와 추구에도 이어집니다.

묵상

몸으로 하는 행동을 단순히 허용과 금지로만 나누기보다 그 뒤에 무엇이 자라는지 살펴본 적이 있나요? 오늘 한 행동이 해로운 힘과 좋은 힘에 어떤 변화를 남기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86 말의 행위는 두 종류다 1구절

부처님께서 말의 행위를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말의 행위도 두 종류로 말한다.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Vacīsamācār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몸의 행위에 이어 말의 행위도 같은 두 종류로 나뉩니다. 실천해야 할 말의 행위와 실천하지 말아야 할 말의 행위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신들의 왕이여”라는 부름말과 두 종류라는 수량이 새 갈래 앞에서 다시 온전히 제시됩니다. 단속은 몸의 행동과 말이 다른 존재와 자신의 마음에 남기는 결과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말의 목록이나 판단 기준을 아직 펼치지 않으며, 먼저 세 갈래 전체를 세운 뒤 몸의 행위부터 자세히 설명하는 순서를 따릅니다.

묵상

같은 내용도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뒤에 남는 결과가 달라진 적이 있나요? 오늘 한 문장이 무엇을 키웠는지 차분히 돌아볼 수 있을까요?

87 추구는 두 종류다 1구절

부처님께서 추구 역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추구도 두 종류로 말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Pariyesanaṁ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몸과 말의 행위에 이어 무엇을 찾아 나서는 추구도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해야 할 추구와 하지 말아야 할 추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위의 단속은 드러난 몸짓과 말뿐 아니라, 시간과 힘을 어디에 쓰며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까지 넓어집니다. 몸과 말과 추구, 이 세 가지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다뤄지며 어느 하나도 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셋을 세운 뒤 처음 갈래인 몸의 행위를 무엇으로 나누는지 자세히 풉니다.

묵상

요즘 시간과 힘을 들여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추구를 옳고 그르다고 바로 판단하지 말고, 계속할수록 해로운 힘과 좋은 힘이 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천천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88 불선한 것을 늘리는 몸의 행위는 실천하지 않는다 1구절

부처님께서 몸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이 늘고 선한 것이 줄면 그 행위를 실천하지 말라고 하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몸의 행위를 두 종류, 곧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했는데,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가? 여기서 어떤 몸의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몸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 그런 몸의 행위는 실천하지 말아야 한다.

Kāyasamācār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 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Tattha yaṁ jaññā kāyasamācāraṁ ‘imaṁ kho me kāyasamācār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ī’ti, evarūpo kāyasamācāro na sevitabbo.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세 갈래를 세운 뒤 부처님께서는 몸의 행위를 먼저 자세히 풉니다. 두 종류라고 한 까닭을 되묻고, 어떤 몸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며 선한 것들이 줄어드는 경우를 제시합니다. 그런 행위는 실천하지 말아야 합니다. 판단은 행위의 외형이나 관습적 이름보다 그것을 반복할 때 나타나는 두 결과에 달려 있습니다. 불선의 증가와 선의 감소를 함께 확인함으로써 한쪽 결과만 보고 성급히 결론 내리지 않게 하며, 다음에는 불선이 줄고 선이 늘어나는 정반대의 몸의 행위를 제시합니다.

묵상

어떤 행동을 되풀이한 뒤 거친 반응은 커지고 좋은 습관은 약해진 적이 있나요? 다음 작은 선택 전에 그 두 변화를 하나씩 천천히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89 선한 것을 늘리는 몸의 행위는 실천한다 1구절

부처님께서 몸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이 줄고 선한 것이 늘어나면 그 행위를 실천해야 한다고 하심

여기서 어떤 몸의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안다고 하자. “내가 이런 몸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 그런 몸의 행위는 실천해야 한다.

Tattha yaṁ jaññā kāyasamācāraṁ ‘imaṁ kho me kāyasamācār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ī’ti, evarūpo kāyasamācāro sevitabbo.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실천하지 말아야 할 몸의 행위와 반대로, 불선한 것들을 줄이고 선한 것들을 늘리는 몸의 행위는 실천해야 합니다. 앞의 두 결과가 모두 방향을 바꾸어 불선은 감소하고 선은 증가합니다. 몸의 단속은 어떤 행동을 반복할 때 유익한 성질이 자라는지를 분별해 실제로 행하는 데 있습니다. 이 두 경우로 몸의 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이 완성되며, 부처님께서는 곧 두 종류라고 말한 까닭을 정리한 뒤 말의 행위에 같은 질문을 적용합니다.

묵상

작은 행동 하나가 해로운 반응을 줄이고 좋은 힘을 키운 경험이 있나요? 오늘 다시 실천해 볼 수 있는 부담 적은 행동 하나를 골라 볼 수 있을까요?

90 몸의 행위를 두 종류로 말한 까닭 1구절

부처님께서 두 결과의 대비가 몸의 행위를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눈 근거라고 정리하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몸의 행위를 두 종류, 곧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Kāyasamācār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불선한 것을 늘리는 몸의 행위와 선한 것을 늘리는 몸의 행위를 차례로 설명한 뒤, 부처님께서는 처음의 분류로 돌아갑니다. 몸의 행위를 두 종류, 곧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바로 앞의 두 결과를 두고 한 말이라고 정리합니다. 반복되는 결론은 질문과 해로운 경우·유익한 경우를 설명한 부분을 마무리합니다. 몸의 행위에 대한 설명이 완결되었으므로, 이제 같은 틀을 말의 행위에 적용하는 질문이 곧바로 이어집니다.

묵상

행동을 선택한 뒤 그 근거를 다시 분명히 말해 본 적이 있나요? 단지 “좋다”거나 “나쁘다”는 이름 대신,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키우는 행동인지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91 말의 행위를 두 종류로 말한 까닭을 묻다 1구절

몸의 행위 설명을 마친 부처님께서 말의 행위를 실천 여부에 따라 두 종류로 나눈 근거를 질문하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말의 행위를 두 종류, 곧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했는데,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가?”

Vacīsamācār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몸의 행위에 대한 결론 직후, 부처님께서는 둘째 갈래인 말의 행위로 넘어갑니다. 앞서 말의 행위에도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했는지 스스로 질문하십니다. 몸의 행위에서 사용한 설명 형식이 그대로 다시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물음을 던지신 뒤, 말의 행위가 불선한 것과 선한 것을 어느 방향으로 바꾸는지 두 경우로 답하십니다.

묵상

말하기 전에 이 말이 해로운 힘과 좋은 힘 가운데 무엇을 키울지 물어본다면 선택이 달라질까요? 답이 분명하지 않다면 잠시 말하지 않거나 더 알아보는 선택도 가능한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92 해로운 힘을 키우는 말 1구절

말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이 늘고 선한 것이 줄어든다면 그 말의 행위를 실천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심

여기서 어떤 말의 행위에 관해 “이 말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라고 안다면, 그런 말의 행위는 실천하지 말아야 한다.

Tattha yaṁ jaññā vacīsamācāraṁ ‘imaṁ kho me vacīsamācār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ī’ti, evarūpo vacīsamācāro na sevitabbo.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말의 행위를 두 종류로 나눈 까닭을 묻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먼저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경우를 설명하십니다. 판단의 근거는 그 말을 되풀이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드는가 하는 두 결과입니다. 두 결과는 각각 증가와 감소라는 반대 방향으로 정확히 짝을 이루며, 그 조건에 해당하는 말은 실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기준은 말이 마음과 행동의 성향을 어느 쪽으로 기르는지 알아차리고 해로운 쪽을 따르지 않게 합니다.

묵상

최근에 한 말 가운데 되풀이할수록 불선한 힘을 키우고 선한 힘을 줄일 듯한 말이 있었나요? 당장 자신을 탓하기보다, 그 말이 다음 반응에 어떤 방향을 더했는지 조용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93 선한 힘을 키우는 말 1구절

말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이 줄고 선한 것이 늘어난다면 그 말의 행위를 실천해야 한다고 밝히심

여기서 어떤 말의 행위에 관해 “이 말의 행위를 실천할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라고 안다면, 그런 말의 행위는 실천해야 한다.

Tattha yaṁ jaññā vacīsamācāraṁ ‘imaṁ kho me vacīsamācār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ī’ti, evarūpo vacīsamācāro sevitabbo.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실천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른 뒤, 부처님께서는 결과가 반대인 경우를 이어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는 그 말을 실천할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나는지가 기준입니다. 앞의 경우와 비교하면 두 결과의 방향과 마지막 판단이 함께 뒤집힙니다. 그래서 이런 말은 실천해야 할 것으로 제시됩니다. 말의 수행은 해로운 말을 피하는 소극적인 절제와 유익한 말을 길러 가는 적극적인 실천을 함께 갖추며, 실제로 무엇이 줄고 무엇이 자라는지를 살피는 앎에 기대어 선택됩니다.

묵상

최근의 대화에서 불선한 힘을 누그러뜨리고 선한 힘을 키운 말 하나를 떠올릴 수 있나요? 그 말이 관계와 마음에 남긴 작은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94 말의 행위를 둘로 나눈 근거 1구절

말이 불선과 선을 늘리거나 줄이는 두 결과가 실천할 말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나눈 근거라고 결론지으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말의 행위를 두 종류, 곧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Vacīsamācār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해로운 결과를 낳는 말과 유익한 결과를 낳는 말을 차례로 설명한 뒤, 부처님께서는 처음의 두 갈래 선언으로 돌아갑니다. “신들의 왕이여”라는 부름말로 청자를 다시 부르고, 말의 행위에는 실천해야 할 것과 실천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정리합니다. 앞서 살핀 불선과 선의 늘고 줄어듦이 바로 그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이로써 말의 행위에 관한 질문과 두 경우와 결론이 닫히고, 같은 판단 틀은 다음의 추구로 이어집니다.

묵상

말을 한 뒤 그 말이 실천할 만한 것이었는지 판단할 때 어떤 결과를 기준으로 삼나요? 지금 떠오르는 말 하나를 두고, 불선과 선 가운데 무엇을 줄이고 키웠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95 추구를 둘로 나눈 까닭과 해로운 경우 1구절

추구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눈 근거를 묻고 불선한 것을 늘리는 추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내가 추구를 두 종류, 곧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했는데, 무엇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가? 여기서 어떤 추구에 관해 ‘이런 추구를 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라고 안다면, 그런 추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

Pariyesanaṁ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kho panetaṁ vuttaṁ, kiñcetaṁ paṭicca vuttaṁ? Tattha yaṁ jaññā pariyesanaṁ ‘imaṁ kho me pariyesan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ī’ti, evarūpā pariyesanā na sevitabb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말의 행위에 관한 설명을 마친 뒤, 부처님께서는 셋째 갈래인 추구로 넘어갑니다. 먼저 추구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종류로 말한 근거를 묻고, 해로운 경우부터 답합니다. 어떤 것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고 안다면, 그 추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질문과 첫 답을 함께 놓음으로써 분류의 이름과 실제 판단 기준이 연결됩니다. 수행에서는 찾는 행위가 마음의 성향을 어느 방향으로 바꾸는지도 분별해야 합니다.

묵상

지금 시간과 마음을 들여 찾고 있는 것 가운데, 계속 추구할수록 불선한 힘이 늘고 선한 힘이 줄어드는 것은 없나요? 확실하지 않다면 그 추구 뒤에 남는 변화를 한 번 관찰해 볼 수 있을까요?

96 유익한 추구와 두 갈래의 결론 1구절

불선한 것을 줄이고 선한 것을 늘리는 추구는 해야 하며 그 두 결과가 추구를 두 종류로 나눈 근거라고 결론지으심

“여기서 어떤 추구에 관해 ‘이런 추구를 할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라고 안다면, 그런 추구는 해야 한다. 신들의 왕이여, 내가 추구를 두 종류, 곧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Tattha yaṁ jaññā pariyesanaṁ ‘imaṁ kho me pariyesan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ī’ti, evarūpā pariyesanā sevitabbā. Pariyesanaṁ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iti yaṁ taṁ vuttaṁ, idametaṁ paṭicca vut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하지 말아야 할 추구와 대조하여, 부처님께서는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나는 추구는 해야 한다고 밝히십니다. 이어 “신들의 왕이여”라고 한 번 부르고, 추구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종류로 말한 까닭이 바로 이 두 결과에 있다고 결론짓습니다. 말의 행위에서 본 것과 같은 기준이 추구에도 적용되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무엇을 얻고자 찾아 나서는 방향 자체가 수행의 대상이 됩니다. 해로운 추구를 멈추는 것과 유익한 추구를 이어 가는 것이 한 쌍을 이루며 계목(빠띠목카) 단속에 관한 설명을 완성해 갑니다.

묵상

계속할수록 불선한 힘은 줄고 선한 힘은 자라는 추구가 지금 있나요? 그 추구를 거창하게 만들지 않고 오늘 한 걸음 이어 간다면,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선택은 무엇일까요?

97 빠띠목카 단속의 답을 마치다 1구절

부처님께서 빠띠목카 단속의 실천을 결론짓자 삭까가 답을 기뻐하며 의심과 망설임이 사라졌다고 말씀드림

“신들의 왕이여, 이와 같이 실천하는 수행자는 계목(빠띠목카)에 따른 단속을 위해 실천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신들의 왕 삭까가 물은 질문에 이와 같이 답하셨다. 신들의 왕 삭까는 기뻐하며 부처님의 말씀에 찬동하였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그렇습니다, 잘 가신 분이시여. 부처님의 답을 듣고 제 의심을 건넜으며 망설임이 사라졌습니다.”

Evaṁ paṭipanno kho, devānaminda, bhikkhu pātimokkhasaṁvarāya paṭipanno hotī”ti. Itthaṁ bhagavā sakkassa devānamindassa pañhaṁ puṭṭho byākāsi. Attamano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 anumodi: “evametaṁ, bhagavā, evametaṁ, sugata. 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ṅkathā bhagavato pañhaveyyākaraṇaṁ sutv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몸의 행위·말의 행위·추구를 각각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가른 설명이 계목(빠띠목카) 단속의 실천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부처님께서 답을 마치자 삭까가 기뻐하며 화답합니다. 삭까는 “부처님”과 “잘 가신 분이시여”라는 두 부름말로 동의를 거듭하고, 답을 들은 결과를 의심을 건넘과 망설임의 사라짐이라는 두 표현으로 밝힙니다. 이 반응은 앞의 질문이 실제로 해소되었음을 확인합니다. 계율의 단속은 불선과 선의 증감에 따라 몸·말·추구를 분별하는 실천으로 정리됩니다.

묵상

행동과 말과 추구를 같은 기준으로 살폈을 때 전보다 분명해지는 선택이 있나요? 모든 의심이 사라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말고, 지금 조금 덜 망설이게 된 한 가지가 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98 감각 기능의 단속을 묻다 1구절

부처님의 답에 찬동한 삭까가 수행자가 어떻게 실천해야 감각 기능의 단속을 위해 실천하는 것인지 다시 여쭘

신들의 왕 삭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찬동한 뒤 부처님께 다시 물었다. “부처님, 수행자는 어떻게 실천해야 감각 기능의 단속을 위해 실천하는 것입니까?”

Itiha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bhagavantaṁ uttari pañhaṁ apucchi: “Kathaṁ paṭipanno pana, mārisa, bhikkhu indriyasaṁvarāya paṭipanno ho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계목(빠띠목카) 단속에 관한 답을 듣고 의심이 풀렸다고 밝힌 삭까(신들의 왕)는 거기서 문답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찬동한 뒤 다시 질문하며, 이번에는 수행자가 감각 기능의 단속을 위해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묻습니다. “부처님”이라는 부름말은 질문 안에 한 번 나오며, 물음은 방법을 요구하는 완결된 형태입니다. 앞의 설명이 몸·말·추구의 선택을 다루었다면, 이제는 눈·귀·코·혀·몸·마음으로 대상을 만나는 단계가 차례로 검토됩니다. 이제 단속은 몸과 말과 추구를 넘어 감각 경험으로 넓어집니다.

묵상

감각 기능의 단속이라는 말을 들을 때 무조건 보거나 듣지 않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나요? 오늘 한 감각 경험을 골라, 대상을 만난 뒤 무엇을 가까이하는지 살피는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 있을까요?

99 형상과 소리를 두 종류로 나누다 1구절

부처님께서 눈으로 아는 형상과 귀로 아는 소리를 각각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눈으로 아는 형상을 두 종류, 곧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다. 신들의 왕이여, 나는 귀로 아는 소리도 두 종류, 곧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다.

“Cakkhuviññeyyaṁ rūp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Sotaviññeyyaṁ sadd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감각 기능의 단속 방법을 묻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먼저 눈과 귀의 대상을 차례로 듭니다. 눈으로 아는 형상과 귀로 아는 소리는 각각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종류로 나뉩니다. “신들의 왕이여”라는 부름말도 형상과 소리 앞에 한 번씩, 모두 두 번 되풀이됩니다. 여기서 단속은 형상이나 소리 전체를 거부하는 일이 아닙니다. 같은 감각 갈래 안에서도 가까이할 대상과 거리를 둘 대상을 가려야 하며, 그 기준은 뒤에서 불선한 것과 선한 것이 늘고 줄어드는지로 설명됩니다.

묵상

오늘 눈에 들어온 형상이나 귀에 들린 소리 가운데, 계속 가까이하고 싶은 것과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 있었나요? 즉시 옳고 그름을 단정하지 않고 그 뒤 마음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0 냄새와 맛을 두 종류로 나누다 1구절

부처님께서 코로 아는 냄새와 혀로 아는 맛을 각각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코로 아는 냄새를 두 종류, 곧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다. 신들의 왕이여, 나는 혀로 아는 맛도 두 종류, 곧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다.

Ghānaviññeyyaṁ gandh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Jivhāviññeyyaṁ ras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형상과 소리에 이어 이번에는 코와 혀의 대상이 같은 방식으로 나뉩니다. 부처님께서는 코로 아는 냄새와 혀로 아는 맛을 각각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눕니다. 각 대상 앞의 “신들의 왕이여”도 생략되지 않고 모두 두 번 나타납니다. 무엇을 가까이할지 분별하는 수행의 틀을 두 감각 갈래에 빠짐없이 적용하는 설명입니다. 맛도 냄새와 똑같이 가까이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 두 가지로 나뉩니다.

묵상

냄새나 맛을 만났을 때 더 가까이하려는 반응이 빠르게 일어나나요? 오늘 한 경험에서 대상 자체와 그것을 계속 얻으려는 선택을 나누어 보고, 뒤따른 마음의 방향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1 감촉과 현상을 두 종류로 나누다 1구절

부처님께서 몸으로 아는 감촉과 마음으로 아는 현상을 각각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종류로 나누심

“신들의 왕이여, 나는 몸으로 아는 감촉을 두 종류, 곧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다. 신들의 왕이여, 나는 마음으로 아는 현상도 두 종류, 곧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한다.”

Kāyaviññeyyaṁ phoṭṭhabb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i. Manoviññeyyaṁ dhammampāhaṁ, devānaminda, duvidhena vadāmi—sevitabbampi, asevitabbamp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여섯 감각 갈래 가운데 마지막 두 가지인 몸과 마음이 제시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으로 아는 감촉과 마음으로 아는 현상을 각각 가까이해야 할 것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의 두 종류로 나눕니다. “신들의 왕이여”라는 부름말은 두 대상 앞에 한 번씩 나오며, 여기서 마음이 아는 대상은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로써 눈의 형상부터 마음의 현상까지 여섯 대상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같은 분별 아래 놓입니다. 감각 기능의 단속은 마음에 나타나는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까지 포함합니다.

묵상

몸에 닿는 감촉이나 마음에 나타난 현상을 곧바로 따라가고 싶어진 순간이 있었나요? 그 대상을 없애려 하기보다, 가까이할지 거리를 둘지 선택할 작은 틈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2 삭까가 간략한 뜻을 풀어 말하다 1구절

삭까가 부처님의 간략한 말씀을 상세히 이해한다며 불선한 것을 늘리는 형상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풀이함

이렇게 말씀하시자 신들의 왕 삭까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뜻을 이렇게 상세히 이해합니다. 부처님, 눈으로 아는 어떤 형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면, 그런 형상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Evaṁ vutte, sakko devānamindo bhagavantaṁ etadavoca: “Imassa kho ahaṁ, bhante, bhagavatā saṅkhittena bhāsitassa evaṁ vitthārena atthaṁ ājānāmi. Yathārūpaṁ, bhante, cakkhuviññeyyaṁ rūp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i, evarūpaṁ cakkhuviññeyyaṁ rūpaṁ na sevitabb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께서 여섯 감각 대상을 두 종류로 나눈 뒤, 화자는 신들의 왕 삭까로 바뀝니다. 삭까는 자신이 간략한 말씀의 뜻을 상세히 이해한다고 밝히고, 먼저 눈으로 아는 형상의 해로운 경우를 풉니다. “부처님”이라는 부름말은 이해를 선언할 때와 첫 사례를 말할 때 모두 두 번 나옵니다. 형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면 그 형상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삭까는 부처님께서 앞서 몸·말·추구에 적용하신 두 결과의 기준을 감각 대상에 옮겨 이해하며, 단속이 대상과 결과를 분별하는 일임을 확인합니다.

묵상

눈에 들어오는 형상 가운데 계속 가까이할수록 불선한 힘이 자라고 선한 힘이 줄어드는 듯한 것이 있나요? 그것을 곧바로 없애려 하기보다, 한 번 덜 가까이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3 선한 힘을 키우는 형상 1구절

삭까가 눈으로 아는 형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한 것이 줄고 선한 것이 늘어난다면 그 형상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풀이함

“또 부처님, 눈으로 아는 어떤 형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면, 그런 형상은 가까이해야 합니다.

Yathārūpañca kho, bhante, cakkhuviññeyyaṁ rūp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evarūpaṁ cakkhuviññeyyaṁ rūpaṁ sevitabb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눈으로 아는 형상 가운데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경우를 설명한 삭까는 곧바로 반대 결과를 제시합니다. “부처님”이라는 부름말을 한 번 쓰고, 어떤 형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면 그 형상은 가까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불선의 증가와 선의 감소에 가까이하지 말라는 판단이 붙었고, 여기서는 불선의 감소와 선의 증가에 가까이하라는 판단이 붙습니다. 두 방향을 함께 보아야 형상 전체를 피하라는 뜻으로 오해하지 않습니다. 감각 단속의 기준은 보았다는 사실보다, 무엇을 가까이하며 어떤 성향을 길러 가는가에 놓입니다.

묵상

눈으로 보는 것 가운데 가까이할수록 불선한 힘이 줄고 선한 힘이 자라는 듯한 대상이 있나요? 그것을 보았을 때 실제로 마음과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잠시 머물러 차분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4 소리부터 감촉까지 같은 기준을 잇다 1구절

삭까가 귀의 소리와 코의 냄새와 혀의 맛과 몸의 감촉에도 형상에서 설명한 같은 판정 구조를 이어 적용함

“또 부처님, 귀로 아는 어떤 소리를 가까이할 때 … 코로 아는 냄새를 가까이할 때 … 혀로 아는 맛을 가까이할 때 … 몸으로 아는 감촉을 가까이할 때 …

Yathārūpañca kho, bhante, sotaviññeyyaṁ saddaṁ sevato …pe… ghānaviññeyyaṁ gandhaṁ sevato … jivhāviññeyyaṁ rasaṁ sevato … kāyaviññeyyaṁ phoṭṭhabbaṁ sevato …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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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에 관해 해로운 경우와 유익한 경우를 온전히 밝힌 뒤, 삭까는 같은 판단의 틀을 소리·냄새·맛·감촉에 차례로 잇습니다. 소리·냄새·맛·감촉 네 가지에도 형상과 같은 두 가지 판단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네 대상의 순서는 귀·코·혀·몸이고, 각 대상에는 가까이할 때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되풀이가 줄어 있어도 앞에서 제시된 불선과 선의 증감에 따른 두 판단이 이 네 감각 갈래에도 이어짐을 보여 줍니다. 다음에는 마음으로 아는 현상이 온전한 문장으로 다시 제시됩니다.

묵상

소리·냄새·맛·감촉 가운데 오늘 가장 강하게 가까이하고 싶었던 대상은 무엇이었나요? 같은 기준을 한꺼번에 모두 적용하려 하기보다, 한 감각만 골라 뒤따른 변화를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5 마음으로 아는 현상의 두 결과 1구절

삭까가 마음으로 아는 현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과 선이 변하는 두 방향에 따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과 가까이해야 할 것을 가름

“마음으로 아는 어떤 현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어든다면, 그런 현상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부처님, 마음으로 아는 어떤 현상을 가까이할 때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어난다면, 그런 현상은 가까이해야 합니다.

manoviññeyyaṁ dhammaṁ sevato 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kusalā dhammā parihāyanti, evarūpo manoviññeyyo dhammo na sevitabbo. Yathārūpañca kho, bhante, manoviññeyyaṁ dhammaṁ sevato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 evarūpo manoviññeyyo dhammo sevitabbo.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소리부터 감촉까지 이어진 생략 뒤, 마음으로 아는 현상은 두 결과가 다시 온전히 드러납니다. 첫 경우에는 불선한 것들이 늘고 선한 것들이 줄기 때문에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정이 붙습니다. 둘째 경우에는 “부처님”이라는 부름말이 한 번 나오고, 불선한 것들이 줄고 선한 것들이 늘기 때문에 가까이해야 한다는 긍정이 붙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아는 대상은 현상을 뜻합니다. 두 경우를 나란히 보면 마음에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것과 그것을 거듭 가까이하는 선택을 구별하게 되며, 여섯째 감각의 단속도 같은 결과 기준으로 완결됩니다.

묵상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나 이미지 가운데 거듭 가까이할수록 불선한 힘이 커지는 것과 선한 힘이 커지는 것을 구별할 수 있나요? 지금은 판단하기 어렵다는 답도 허용하며 관찰해 볼 수 있을까요?

106 감각 단속의 뜻을 이해하고 다시 묻다 1구절

삭까가 간략한 말씀을 상세히 이해하여 의심과 망설임이 사라졌다고 밝힌 뒤 부처님의 말씀에 찬동하고 다시 질문함

“부처님, 부처님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뜻을 제가 이렇게 상세히 이해하고 부처님의 답을 들으니, 제 의심을 건넜으며 망설임이 사라졌습니다.” 신들의 왕 삭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찬동한 뒤 부처님께 다시 질문하였다.

Imassa kho me, bhante, bhagavatā saṅkhittena bhāsitassa evaṁ vitthārena atthaṁ ājānato 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ṅkathā bhagavato pañhaveyyākaraṇaṁ sutvā”ti. Itiha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bhagavantaṁ uttari pañhaṁ apucch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여섯 감각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상세한 이해를 마치며 그 결과를 밝힙니다. “부처님”이라는 부름말은 한 번이며, 부처님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뜻을 자세히 이해하고 답을 들은 뒤 의심을 건넜고 망설임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삭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찬동한 뒤 다시 질문합니다. 이는 감각 기능의 단속에 관한 문답이 해소되었음을 닫는 동시에,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의 주장과 성취가 같은지를 묻는 다음 문답을 엽니다. 이해와 확인과 새 질문이 차례로 이어지는 전환입니다.

묵상

설명을 스스로 풀어 본 뒤 의심이 조금 줄어든 경험이 있나요? 완전한 확신을 요구하지 않고, 지금 이해된 한 가지와 아직 남아 있는 한 가지 질문을 차분히 나란히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7 모든 수행자의 주장과 계행이 같은지 묻다 1구절

삭까가 모든 수행자와 브라흐마나의 주장·계행·욕구·집착이 한결같은지 묻고 부처님의 부정 답변 뒤 그 까닭을 다시 여쭘

“부처님,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한결같은 주장과 한결같은 계행과 한결같은 욕구와 한결같은 집착을 지닙니까?” “신들의 왕이여, 모든 수행자와 브라흐마나가 한결같은 주장과 한결같은 계행과 한결같은 욕구와 한결같은 집착을 지닌 것은 아니다.” “부처님, 왜 모든 수행자와 브라흐마나가 한결같은 주장과 한결같은 계행과 한결같은 욕구와 한결같은 집착을 지닌 것이 아닙니까?”

“Sabbeva nu kho, mārisa, samaṇabrāhmaṇā ekantavādā ekantasīlā ekantachandā ekantaajjhosānā”ti? “Na kho, devānaminda, sabbe samaṇabrāhmaṇā ekantavādā ekantasīlā ekantachandā ekantaajjhosānā”ti. “Kasmā pana, mārisa, na sabbe samaṇabrāhmaṇā ekantavādā ekantasīlā ekantachandā ekantaajjhosān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의 새 질문은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네 측면에서 한결같은지를 묻습니다. 삭까는 주장·계행·욕구·집착, 이 네 가지가 모두 한결같은지 묻습니다. 삭까가 “부처님”이라고 묻자 부처님은 “신들의 왕이여”라고 부르며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부정합니다. 삭까는 같은 네 가지를 다시 들어 왜 그렇지 않은지 묻습니다. 질문·부정·이유 질문의 세 단계에서 목록이 줄지 않는 점이 중요합니다. 수행자의 이름이 같다고 해서 견해와 삶의 방식과 바람과 붙듦까지 같다고 전제할 수 없으며, 다음 답은 그 차이를 세계의 다양한 요소에서 설명합니다.

묵상

같은 이름이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주장과 삶의 방식과 욕구와 집착도 같을 것이라고 여긴 적이 있나요? 지금 떠오르는 판단에서 서로 다른 네 측면을 하나씩 따로 살펴볼 여지가 있을까요?

108 다양한 요소를 붙들어 진리라 말하다 1구절

부처님께서 요소가 많고 다양한 세계에서 중생들이 고집한 요소를 완고하게 붙들고 그것만 진리라 말하므로 모두가 한결같지 않다고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세계는 요소가 많고 다양하다. 요소가 많고 다양한 이 세계에서 뭇 생명은 어떤 요소를 고집하든 바로 그것을 완고하게 붙들고 집착하여 말한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 그러므로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한결같은 주장과 한결같은 계행과 한결같은 욕구와 한결같은 집착을 지닌 것은 아니다.”

“Anekadhātu nānādhātu kho, devānaminda, loko. Tasmiṁ anekadhātunānādhātusmiṁ loke yaṁ yadeva sattā dhātuṁ abhinivisanti, taṁ tadeva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nti: ‘idameva saccaṁ moghamaññan’ti. Tasmā na sabbe samaṇabrāhmaṇā ekantavādā ekantasīlā ekantachandā ekantaajjhosān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왜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한결같지 않은지 묻자 부처님께서는 세계의 요소가 많고 다양하다는 사실에서 답을 시작합니다. 뭇 생명은 자신이 고집한 요소를 완고하게 붙들고 집착한 채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되다”라고 말합니다. “이것만”과 “다른 것”의 대조는 다양성 자체보다 하나를 붙들어 나머지를 헛되다고 단정하는 태도가 갈림을 낳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주장·계행·욕구·집착, 이 네 가지 모두 한결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견해의 차이를 보되 자신이 붙든 한 요소를 전부로 만드는 고집을 함께 살피게 합니다.

묵상

내가 붙든 한 관점을 “이것만이 진리”라고 여기며 다른 가능성을 곧바로 헛되다고 밀어낸 순간이 있나요? 그 관점은 유지하더라도 미처 보지 못한 다른 요소가 있는지 잠시 살펴볼 수 있을까요?

109 모든 수행자가 궁극에 이르렀는지 묻다 1구절

삭까가 모든 수행자와 브라흐마나가 네 가지 궁극에 이르렀는지 묻고 부처님의 부정 답변 뒤 그 까닭을 다시 여쭘

“부처님,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완전한 끝과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평안과 완전한 거룩한 삶과 완전한 마침에 이르렀습니까?” “신들의 왕이여, 모든 수행자와 브라흐마나가 완전한 끝과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평안과 완전한 거룩한 삶과 완전한 마침에 이른 것은 아니다.” “부처님, 왜 모든 수행자와 브라흐마나가 완전한 끝과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평안과 완전한 거룩한 삶과 완전한 마침에 이른 것이 아닙니까?”

“Sabbeva nu kho, mārisa, samaṇabrāhmaṇā accantaniṭṭhā accantayogakkhemī accantabrahmacārī accantapariyosānā”ti? “Na kho, devānaminda, sabbe samaṇabrāhmaṇā accantaniṭṭhā accantayogakkhemī accantabrahmacārī accantapariyosānā”ti. “Kasmā pana, mārisa, na sabbe samaṇabrāhmaṇā accantaniṭṭhā accantayogakkhemī accantabrahmacārī accantapariyosān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주장·계행·욕구·집착이 한결같지 않은 까닭을 들은 삭까(신들의 왕)는 이제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의 완전한 성취가 같은지를 묻습니다. 네 가지는 완전한 끝,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평안, 완전한 거룩한 삶, 완전한 마침입니다. 삭까가 묻고 부처님이 모두 이른 것은 아니라고 답하자, 삭까는 같은 네 가지를 다시 들어 이유를 묻습니다. 이번에는 누가 끝까지 이르는지를 가려 묻습니다.

묵상

수행자라는 이름만 보고 그 사람이 이미 가장 높은 성취에 이르렀다고 기대하거나 단정한 적이 있나요? 이름과 실제 도달을 나누어 보며, 지금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열린 채 둘 수 있을까요?

110 갈망이 끝나 풀려난 수행자들이 이룬 마지막 자리 1구절

부처님께서 갈망의 소멸로 풀려난 수행자들이 네 가지 궁극에 이르렀기에 모든 수행자와 브라흐마나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답하심

“신들의 왕이여,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사라져 풀려난 수행자들은 완전한 끝과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평안과 완전한 거룩한 삶과 완전한 마침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완전한 끝과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평안과 완전한 거룩한 삶과 완전한 마침에 이른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신들의 왕 삭까가 물은 질문에 이와 같이 답하셨다.

“Ye kho, devānaminda, bhikkhū taṇhāsaṅkhayavimuttā te accantaniṭṭhā accantayogakkhemī accantabrahmacārī accantapariyosānā. Tasmā na sabbe samaṇabrāhmaṇā accantaniṭṭhā accantayogakkhemī accantabrahmacārī accantapariyosānā”ti. Itthaṁ bhagavā sakkassa devānamindassa pañhaṁ puṭṭho byākās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모든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와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이 네 가지 완전함에 이른 것은 아닌 까닭을 묻자, 부처님께서는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이 사라져 풀려난 수행자들만이 완전한 끝·속박 없는 안온·거룩한 삶·완결에 이르렀다고 답하십니다. 조건은 갈망이 사라져 풀려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이름이나 소속보다 갈망이 사라지는 조건이 강조되는 대목에서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요? 자신의 성취를 판단하려 하지 말고, 지금 붙들고 있는 한 반응을 알아차리는 데 머물러 볼 수 있을까요?

111 존재를 오르내리게 하는 동요 1구절

삭까가 동요를 병과 종기와 화살에 견주고 사람을 여러 존재의 높고 낮은 상태로 끌어간다고 밝힘

부처님의 말씀을 찬탄하고 동의한 신들의 왕 삭까는 다시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동요는 병이고, 동요는 종기이며, 동요는 화살입니다. 동요는 이 사람을 이 존재 저 존재로 거듭 생겨나도록 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높고 낮은 상태에 이릅니다.”

Itiha sakko devānamindo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itvā anumoditvā bhagavantaṁ etadavoca: “Ejā, bhante, rogo, ejā gaṇḍo, ejā sallaṁ, ejā imaṁ purisaṁ parikaḍḍhati tassa tasseva bhavassa abhinibbattiyā. Tasmā ayaṁ puriso uccāvacamāpajja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부처님의 설명을 받아들인 뒤 자신이 얻은 통찰을 이어 말합니다. 동요를 병·종기·화살에 차례로 견주고, 다시 그 동요가 사람을 여러 존재로 끌어간다고 말합니다. 동요라는 말이 네 차례 놓이면서 불편한 증상, 안에서 곪는 상처, 밖에서 박힌 무기, 그리고 되풀이되는 삶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역할이 선명해집니다. 그 결과는 높고 낮은 상태를 오가는 불안정입니다.

묵상

마음이 들뜰 때 그 움직임을 곧바로 따라가는 일과, 병이나 가시처럼 알아차리는 일 사이에는 어떤 틈이 생길까요? 요즘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욕구 하나를 떠올리고, 그것이 선택의 높낮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112 오랜 의심의 화살을 뽑아 주다 1구절

다른 수행자들에게 질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삭까가 부처님의 답으로 오래 잠복한 의심의 화살이 뽑혔다고 말함

“부처님,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에게서는 이 질문들을 꺼낼 기회조차 얻지 못했지만, 부처님께서는 제게 답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제 안에 잠복해 있던 의심과 망설임의 화살도 부처님께서 뽑아 주셨습니다.”

Yesāhaṁ, bhante, pañhānaṁ ito bahiddhā aññesu samaṇabrāhmaṇesu okāsakammampi nālatthaṁ, te me bhagavatā byākatā. Dīgharattānusayitañca pana me vicikicchākathaṅkathāsallaṁ, tañca bhagavatā abbuḷhan”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앞에서 동요를 화살에 비유한 데 이어, 자신의 오래된 의심과 망설임도 화살이었다고 되돌아봅니다.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에게서는 질문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나 부처님은 그 물음들에 답했고, 그 답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잠복한 화살을 뽑는 일이 되었습니다. 묻고 답하는 관계가 오래된 내적 고통을 끝냈다는 감사입니다.

묵상

질문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때의 답답함과, 진지하게 들은 답으로 오래된 의심이 풀릴 때의 안도는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빠른 결론인지, 아니면 물음을 끝까지 받아 줄 사람과의 대화인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113 다른 수행자들에게 물었던 일을 확인하다 1구절

부처님이 삭까에게 같은 질문들을 다른 수행자와 브라흐마나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는지 묻고 삭까가 확인함

“신들의 왕이여, 그대는 이 질문들을 다른 수행자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에게 물었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렇습니다, 부처님. 저는 이 질문들을 다른 수행자들과 브라흐마나들에게 물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Abhijānāsi no tvaṁ, devānaminda, ime pañhe aññe samaṇabrāhmaṇe pucchitā”ti? “Abhijānāmahaṁ, bhante, ime pañhe aññe samaṇabrāhmaṇe pucchit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가 다른 이들에게서는 질문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말하자, 부처님은 그 경험을 구체적으로 되짚습니다. 이 질문들을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에게 실제로 물었던 일을 기억하는지 묻고, 삭까는 같은 대상을 그대로 들어 그렇다고 답합니다. 짧은 확인이지만 뒤이어 나올 비교의 근거를 세웁니다. 삭까가 직접 찾아가 묻고 겪은 일을 바탕으로 대화가 이어집니다.

묵상

누군가의 가르침을 평가할 때 직접 묻고 들은 경험과 전해 들은 인상은 얼마나 다를까요? 내가 확신하는 판단 하나가 실제 기억에 기대고 있는지, 아니면 익숙한 평판이나 추측에 기대고 있는지 차분히 구별해 볼 수 있을까요?

114 부담이 없다면 그 답을 말해 보라 1구절

부처님이 다른 이들의 답을 묻고 삭까가 부처님 앞에서는 말하기가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자 다시 말하도록 권함

“신들의 왕이여, 그들은 그대에게 어떻게 답했는가? 괴롭지 않다면 말해 보아라.” “부처님께서나 부처님과 같은 분께서 여기 앉아 계신 자리라면, 부처님, 제게 괴롭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들의 왕이여, 말해 보아라.”

“Yathā kathaṁ pana te, devānaminda, byākaṁsu? Sace te agaru bhāsassū”ti. “Na kho me, bhante, garu yatthassa bhagavā nisinno bhagavantarūpo vā”ti. “Tena hi, devānaminda, bhāsass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기억을 확인한 부처님은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이 어떻게 답했는지 묻되, 삭까에게 부담이 없다면 말하라고 여지를 둡니다. 삭까는 부처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분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자신에게 부담이 없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시 신들의 왕이라는 호칭으로 그에게 말하도록 권합니다. 질문하는 이의 배려, 답하는 이의 신뢰, 다시 건네는 허락이 세 차례의 대화 안에서 맞물립니다.

묵상

말하기 어려운 경험도 듣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부담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누군가의 답을 구할 때 먼저 선택권을 열어 주고, 안전하다는 반응을 들은 뒤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초대한다면 대화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115 답하지 못한 이들이 이름을 묻다 1구절

삭까가 외딴 거처의 수행자들에게 질문했으나 그들이 답하지 못하고 이름을 되묻자 자신의 신분을 밝힘

“부처님, 저는 광야에서 살고 외딴 거처에 머문다고 여긴 수행자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을 찾아가 이 질문들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제게 물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물음에 제가 답했습니다. ‘벗들이여, 나는 신들의 왕 삭까입니다.’”

“Yesvāhaṁ, bhante, maññāmi samaṇabrāhmaṇā āraññikā pantasenāsanāti, tyāhaṁ upasaṅkamitvā ime pañhe pucchāmi, te mayā puṭṭhā na sampāyanti, asampāyantā mamaṁyeva paṭipucchanti: ‘ko nāmo āyasmā’ti? Tesāhaṁ puṭṭho byākaromi: ‘ahaṁ kho, mārisa, sakko devānamind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부처님의 권유를 받고 다른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을 찾아갔던 일을 들려줍니다. 광야에서 살고 외딴 거처에 머문다는 모습 때문에 그들이 답을 알 것이라 여겼지만, 정작 질문을 받자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질문자의 이름부터 물었고, 삭까는 자신이 신들의 왕이라고 밝혔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생활 방식과 물음에 응답할 수 있는 통찰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경험담입니다.

묵상

검소한 생활이나 특별한 환경만 보고 그 사람의 지혜까지 미리 판단한 적이 있나요? 반대로 상대의 지위나 이름을 알기 전에 그가 던진 물음 자체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지, 내 대화의 순서를 돌아볼 수 있을까요?

116 그 지위에 이른 행위를 되묻다 1구절

수행자들이 삭까에게 어떤 행위로 신들의 왕이 되었는지 묻자 삭까가 듣고 익힌 가르침을 설함

“그들은 다시 제게 물었습니다. ‘신들의 왕이신 님께서는 어떤 행위를 하여 이 지위에 이르셨습니까?’ 그래서 저는 듣고 익힌 그대로 그들에게 가르침을 폈습니다.”

Te mamaṁyeva uttari paṭipucchanti: ‘kiṁ panāyasmā, devānaminda, kammaṁ katvā imaṁ ṭhānaṁ patto’ti? Tesāhaṁ yathāsutaṁ yathāpariyattaṁ dhammaṁ desem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의 이름과 지위를 알게 된 이들은 대화의 방향을 바꾸어, 어떤 행위를 하여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 묻습니다. 삭까는 그 물음에 자신이 들은 그대로, 또 배워 익힌 그대로 가르침을 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권위로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배운 내용을 전합니다. 신들의 왕이라는 높은 지위보다 무엇을 듣고 익혀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는지가 이 만남의 실제 내용이 됩니다.

묵상

누군가 내 성취의 비결을 물을 때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와 배움의 출처를 정직하게 밝히는 답 가운데 어디로 기울기 쉬운가요? 내가 전하는 지식이 어디에서 왔고 얼마나 익힌 것인지 함께 말할 수 있을까요?

117 삭까를 보고 답을 들어 기뻐하다 1구절

수행자들이 삭까를 직접 보고 자신들이 물은 것에 답을 들었다는 두 가지 이유만으로 기뻐함

“그들은 그 정도만으로도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들의 왕 삭까를 뵈었고, 그에게 물은 것에 대한 답도 들었다.’”

Te tāvatakeneva attamanā honti: ‘sakko ca no devānamindo diṭṭho, yañca no apucchimhā, tañca no byākās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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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까가 자신이 듣고 익힌 가르침을 들려주자, 집을 떠나 길을 닦는 이(사마나)들과 제사를 맡는 계층의 사람(브라흐마나)들은 그 정도만으로도 기뻐합니다. 그들이 밝힌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들의 왕 삭까를 직접 보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물은 것에 그가 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존재를 만났고 응답을 얻었다는 사실에 만족한 모습입니다. 이 기쁨은 곧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뒤집히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묵상

유명하거나 높은 지위의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한 말의 타당성까지 쉽게 받아들인 적은 없나요? 만남의 특별함과 답의 실제 가치를 나누어 보고, 내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거나 설득되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118 삭까의 스승과 제자를 분명히 하다 1구절

다른 수행자들은 삭까의 제자가 되지만 삭까 자신은 부처님의 제자이며 흐름에 들어 깨달음으로 향한다고 밝힘

“그들은 결국 제 제자가 되고, 저는 그들의 제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저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흐름에 든 이이고, 파멸처에 떨어지지 않으며, 길이 확정되어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Te aññadatthu mamaṁyeva sāvakā sampajjanti, na cāhaṁ tesaṁ. Ahaṁ kho pana, bhante, bhagavato sāvako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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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까는 다른 수행자들과의 만남이 결국 어떤 관계가 되었는지 밝힙니다. 그들이 삭까의 제자가 되었지 삭까가 그들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삭까도 독립된 스승을 자처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처님의 제자이고 흐름에 든 이라고 선언하며, 파멸처에 떨어지지 않고 길이 확정되어 바른 깨달음으로 향한다고 말합니다. 남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위치와 자신이 누구에게 배우는가를 분명히 구별합니다.

묵상

다른 이가 내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도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가 왜 어려울까요? 누군가에게 전하는 지식과 내가 의지하는 배움의 근원을 함께 밝힌다면 관계의 겸손과 책임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119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전에 얻었는가 1구절

부처님이 삭까에게 지금과 같은 환희와 기쁨을 전에 얻었던 기억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 경위를 물음

“신들의 왕이여, 그대는 전에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얻었던 일을 기억하는가?” “그렇습니다, 부처님. 저는 전에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얻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신들의 왕이여, 그대는 전에 어떻게 그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얻었다고 기억하는가?”

“Abhijānāsi no tvaṁ, devānaminda, ito pubbe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n”ti? “Abhijānāmahaṁ, bhante, ito pubbe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n”ti. “Yathā kathaṁ pana tvaṁ, devānaminda, abhijānāsi ito pubbe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n”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가 부처님의 제자로서 얻은 확신을 밝히자, 부처님은 그가 느끼는 환희와 기쁨을 과거의 경험과 비교하도록 이끕니다. 먼저 이전에도 같은 느낌을 얻은 적이 있는지 묻고, 삭까가 그렇다고 답하자 어떻게 얻었는지 다시 질문합니다. 환희와 기쁨이라는 두 감정이 세 차례 똑같이 언급되어, 겉으로 비슷한 만족이라도 그 원인과 귀결은 다를 수 있다는 비교의 틀이 세워집니다.

묵상

지금의 기쁨과 과거의 기쁨이 비슷하게 느껴져도 그것을 낳은 원인과 뒤따르는 결과는 다를 수 있나요? 오래 남는 만족과 곧 사라지는 흥분을 하나씩 떠올리고, 두 경험을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지 살펴볼까요?

120 전쟁의 승리에서 얻었던 기쁨 1구절

삭까가 신들과 아수라들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양쪽의 감로를 모두 누리리라 생각하며 얻은 과거의 기쁨을 회상함

“부처님, 옛날 신들과 아수라들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 전투에서 신들은 이기고 아수라들은 패했습니다. 제가 그 전투에서 승리하여 승자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신들은 신들의 감로와 아수라들의 감로를 둘 다 누릴 것이다.’”

“Bhūtapubbaṁ, bhante, devāsurasaṅgāmo samupabyūḷho ahosi. Tasmiṁ kho pana, bhante, saṅgāme devā jiniṁsu, asurā parājayiṁsu. Tassa mayhaṁ, bhante, taṁ saṅgāmaṁ abhivijinitvā vijitasaṅgāmassa etadahosi: ‘yā ceva dāni dibbā ojā yā ca asurā ojā, ubhayametaṁ devā paribhuñjissan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부처님이 과거의 환희와 기쁨이 어떻게 생겼는지 묻자, 삭까는 신들과 아수라들이 맞붙었던 전투를 떠올립니다. 신들은 이기고 아수라들은 패했으며, 승자가 된 삭까는 이제 신들이 양쪽의 감로를 모두 누리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승리, 상대의 패배, 두 몫을 함께 차지한다는 기대가 그때의 기쁨을 이루었습니다. 이 회상은 곧 폭력에 기대는 기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 생긴 기쁨을 대조하는 바탕이 됩니다.

묵상

내 기쁨이 누군가의 패배나 몫을 차지한 결과였던 적은 없나요? 성취 자체만 볼 때와 그 성취가 누구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했는지 함께 볼 때, 같은 만족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121 몽둥이와 칼의 영역에 속한 기쁨 1구절

삭까가 전쟁의 승리에서 얻은 환희와 기쁨은 폭력의 영역에 속하여 풀려남의 일곱 귀결로 이끌지 않는다고 밝힘

“그러나 부처님, 그때 제가 얻은 환희와 기쁨은 몽둥이와 칼의 영역에 속하며, 싫어하여 떠남으로도, 탐냄에서 벗어남으로도, 사라짐으로도, 고요로도, 직접 앎으로도, 완전한 깨달음으로도,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도 이끌지 않습니다.”

So kho pana me, bhante, vedapaṭilābho somanassapaṭilābho sadaṇḍāvacaro sasatthāvacaro na nibbidāya na virāgāya na nirodhāya na upasamāya na abhiññāya na sambodhāya na nibbānāya saṁvatta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과거의 기쁨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판별합니다. 전쟁의 승리에서 얻은 환희와 기쁨은 몽둥이와 칼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것은 싫어하여 떠남, 탐냄에서 벗어남, 사라짐, 고요, 직접 앎, 완전한 깨달음, 고요히 꺼짐(닙바나)이라는 일곱 귀결 가운데 어느 것으로도 이끌지 않습니다. 강렬한 만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기쁨이 풀려남에 유익한지는 결정되지 않으며, 원인과 방향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묵상

기쁨의 크기보다 그 기쁨이 어디에서 생겨 무엇으로 이끄는지를 살펴본 적이 있나요? 경쟁에서 이긴 만족 하나를 떠올리고, 그것이 집착을 누그러뜨렸는지 키웠는지, 관계를 고요하게 했는지 거칠게 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122 몽둥이와 칼을 벗어난 기쁨 1구절

삭까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얻은 환희와 기쁨은 폭력을 벗어나 풀려남의 일곱 귀결로 이끈다고 밝힘

“그러나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제가 얻은 이 환희와 기쁨은 몽둥이와 칼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속하며, 오로지 싫어하여 떠남과 탐냄에서 벗어남과 사라짐과 고요와 직접 앎과 완전한 깨달음과 고요히 꺼짐(닙바나)으로 이끕니다.”

Yo kho pana me ayaṁ, bhante, bhagavato dhammaṁ sutvā vedapaṭilābho somanassapaṭilābho, so adaṇḍāvacaro asatthāvacaro ekanta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ī”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과거의 전쟁에서 얻은 만족과 달리, 지금의 환희와 기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데서 생겼습니다. 삭까는 이것이 몽둥이와 칼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이어 싫어하여 떠남, 탐냄에서 벗어남, 사라짐, 고요, 직접 앎, 완전한 깨달음, 고요히 꺼짐(닙바나)이라는 같은 일곱 귀결을 같은 순서로 들며, 이번에는 오로지 그 모두로 이끈다고 긍정합니다. 기쁨의 느낌보다 그 기쁨이 향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묵상

평온한 이해에서 생긴 기쁨과 누군가를 이겨서 생긴 기쁨은 몸과 마음에 어떻게 다르게 남나요? 요즘 즐거움을 주는 일 하나가 욕망을 부추기는지 누그러뜨리는지, 더 깊은 앎과 고요로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123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여섯 가지 이유 1구절

부처님이 삭까에게 환희와 기쁨을 밝힌 이유를 묻자 삭까가 여섯 가지 이유를 보고 말한다고 답함

“신들의 왕이여, 그대는 어떤 이유를 보기에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얻었다고 말하는가?” “부처님, 저는 여섯 가지 이유를 보기에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Kiṁ pana tvaṁ, devānaminda, atthavasaṁ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sī”ti? “Cha kho ahaṁ, bhante, atthavase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두 종류의 기쁨이 향하는 방향을 대조한 뒤, 부처님은 삭까가 지금의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묻습니다. 삭까는 그 이유가 여섯 가지라고 수를 분명히 밝힙니다. 이어지는 설명은 현재의 신적 삶에서부터 앞으로의 태어남과 수행의 결실까지 차례로 짚는 근거 제시입니다. 물음과 답이 여섯 갈래 설명의 문을 엽니다.

묵상

큰 기쁨이나 확신이 생겼을 때 그 까닭을 한 가지 감정으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소중하게 여기는 선택 하나를 떠올리고,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방향을 포함해 서로 다른 이유를 몇 가지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지 살펴볼까요?

124 신의 존재로 머물며 다시 얻은 수명 1구절

삭까가 바로 그곳에서 신의 존재로 남아 수명을 다시 얻은 일을 환희와 기쁨의 첫 번째 이유로 밝힘

“바로 이곳에 머물면서 신의 존재로 남아 있는 제게 다시 수명이 주어졌습니다. 벗이여, 이와 같이 알아 주십시오. 부처님, 이것이 제가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Idheva tiṭṭhamānassa, devabhūtassa me sato; Punarāyu ca me laddho, evaṁ jānāhi mārisa. Imaṁ kho ahaṁ, bhante, paṭhamaṁ atthavasaṁ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여섯 가지 이유 가운데 첫째로 삭까는 현재의 변화부터 말합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 머물고 신의 존재로 남아 있으면서 수명을 다시 얻었다고 노래하고, 벗이라는 호칭으로 이를 알아 달라고 청합니다. 이어 부처님께 이것이 첫 번째 이유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가르침을 들은 결실이 지금 이어지는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서 환희가 생깁니다.

묵상

삶의 방향을 바꾸는 통찰이 먼 미래의 약속만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시간을 새롭게 느끼게 한 적이 있나요? 같은 하루를 다시 받은 시간처럼 바라본다면 오늘의 말과 행동에서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될지 생각해 볼까요?

125 미혹 없이 마음이 기뻐하는 태에 들다 1구절

삭까가 신들의 무리와 인간 아닌 수명을 떠난 뒤 미혹 없이 마음이 기뻐하는 태에 드는 일을 두 번째 이유로 밝힘

“내가 신들의 무리에서 죽어 인간 아닌 수명을 뒤로하면, 미혹되지 않은 채 내 마음이 기뻐하는 곳의 태에 들겠습니다. 부처님, 이것이 제가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Cutāhaṁ diviyā kāyā, āyuṁ hitvā amānusaṁ; Amūḷho gabbhamessāmi, yattha me ramatī mano. Imaṁ kho ahaṁ, bhante, dutiyaṁ atthavasaṁ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첫 번째 이유가 현재 신의 존재로서 다시 얻은 수명이었다면, 두 번째 이유는 그 수명이 끝난 뒤의 전망입니다. 삭까는 신들의 무리에서 죽고 인간 아닌 수명을 뒤로한 다음, 미혹되지 않은 채 자신의 마음이 기뻐하는 곳의 태에 들겠다고 말합니다.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경계에서도 혼란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두 번째 이유로 분명히 선언합니다. 환희는 다음 삶으로 향하는 마음의 맑음과 연결됩니다.

묵상

앞으로 삶의 조건이 크게 바뀔 때 무엇이 나를 혼란에 빠뜨리고 무엇이 방향을 지켜 줄까요? 익숙한 지위와 환경을 내려놓더라도 마음이 기뻐할 만한 곳을 알아보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126 가르침 안에서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다 1구절

삭까가 미혹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가르침을 기뻐하며 바른 길에 따라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는 삶을 세 번째 이유로 밝힘

“그렇게 저는 미혹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가르침 안에서 기뻐하며 머물고, 바른 길에 따라 살아가며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겠습니다. 부처님, 이것이 제가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Svāhaṁ amūḷhapaññassa, viharaṁ sāsane rato; Ñāyena viharissāmi, sampajāno paṭissato. Imaṁ kho ahaṁ, bhante, tatiyaṁ atthavasaṁ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두 번째 이유에서 다음 태어남에 미혹 없이 들어갈 것을 말한 삭까는, 세 번째로 그 삶을 어떻게 보낼지 밝힙니다. 미혹 없는 지혜를 지닌 분의 가르침 안에서 기뻐하며 머물고, 바른 길에 따라 살아가며,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겠다고 다짐합니다. 태어날 곳에 대한 전망에 이어, 그곳에서 이어 갈 실천의 태도도 제시합니다. 기쁨은 의지할 가르침과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있다는 데서 생깁니다.

묵상

좋은 환경에 놓이는 것과 그 안에서 바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내가 기뻐하는 배움의 자리에서 분명히 알고 알아차리는 태도를 이어 가려면, 일상의 어떤 순간을 먼저 돌보아야 할지 살펴볼까요?

127 수행 중 깨달음이 생긴다면 1구절

삭까가 바른 방식으로 실천하는 동안 완전한 깨달음이 생기면 아는 이로 살다가 바로 거기에서 끝을 맞으리라 노래함

“제가 바른 방식으로 실천해 가는 동안 완전한 깨달음이 생긴다면, 깨달아 아는 이로 살아가고 바로 거기에서 저의 끝이 올 것입니다.”

Ñāyena me carato ca, sambodhi ce bhavissati; Aññātā viharissāmi, sveva anto bhavissa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세 번째 이유에서 가르침 안에 머물며 바른 길을 따르겠다고 한 삭까는, 이제 그 실천 중에 완전한 깨달음이 생기는 경우를 내다봅니다. 깨달음이 생긴다면 깨달아 아는 이로 살아가고, 바로 거기에서 자신의 끝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이 생길지 아직 단정하지 않지만, 수행이 온전히 결실을 맺을 가능성과 그 삶의 마지막을 함께 바라봅니다. 이 전망이 네 번째 이유의 내용이 됩니다.

묵상

결과를 확정하지 않으면서도 바른 과정에 온전히 힘을 기울이는 태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원하는 깨달음이나 성취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오늘의 실천 자체를 흔들림 없이 이어 가게 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128 네 번째 이유를 닫고 인간의 수명을 떠나다 1구절

삭까가 깨달음과 끝의 전망을 네 번째 이유로 확정하고 인간의 몸에서 죽어 인간의 수명을 뒤로할 일을 말함

“부처님, 이것이 제가 이와 같은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네 번째 이유입니다. 나는 인간의 몸에서 죽을 것이며, 인간의 수명을 뒤로할 것입니다.”

Imaṁ kho ahaṁ, bhante, catutthaṁ atthavasaṁ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Cutāhaṁ mānusā kāyā, āyuṁ hitvāna mānus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는 수행 중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깨달아 아는 이로 살다가 생을 마치리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시선을 다시 태어남의 흐름으로 옮겨, 인간의 몸에서 죽고 인간의 수명을 뒤로할 때를 말합니다. 앞에서는 신의 생명이 끝난 뒤 미혹 없이 태에 드는 일을 둘째 이유로 삼았고, 여기서는 인간 생명의 끝을 새로운 전망의 출발로 놓습니다. 삶의 형태가 바뀌어도 수행의 방향이 어떻게 이어질지가 그의 관심입니다.

묵상

죽음과 같은 큰 전환을 생각할 때 무엇을 잃는가에만 머무르나요, 아니면 지금까지 익힌 방향이 어떻게 이어질지도 함께 보나요? 인간의 몸과 수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이 오늘의 배움과 선택을 어떻게 더 또렷하게 할 수 있을까요?

129 다시 신이 되고 마지막에는 아까닛타에 머물다 1구절

삭까가 다시 뛰어난 신이 되는 다섯째 이유와 마지막 생을 아까닛타에서 보내는 여섯째 이유를 노래합니다.

나는 다시 신이 되어 신의 세계에서 으뜸이 되리라. 부처님, 이것이 제가 이 같은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다섯째 이유입니다. 더욱 숭고하고 명예로운 아까닛타의 신들, 마지막 생이 이어지는 동안 그곳이 나의 거처가 되리라. 부처님, 이것이 여섯째 이유입니다.

Puna devo bhavissāmi, devalokamhi uttamo. Imaṁ kho ahaṁ, bhante, pañcamaṁ atthavasaṁ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Te paṇītatarā devā, akaniṭṭhā yasassino; Antime vattamānamhi, so nivāso bhavissati. Imaṁ kho ahaṁ, bhante, chaṭṭhaṁ atthavasaṁ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가 환희와 기쁨을 말하는 여섯 이유 가운데 마지막 둘입니다. 다섯째는 인간의 몸에서 죽은 뒤 다시 신이 되어 신의 세계에서 으뜸이 된다는 전망입니다. 여섯째는 수행이 그 생에서 완결되지 않을 때 더 숭고한 하늘 세계인 아까닛타에 태어나 마지막 생을 보낸다는 전망입니다. 두 노래 뒤에는 각각 몇째 이유인지 밝히는 산문이 붙습니다. 현재의 기쁨은 앞으로의 태어남과 수행의 종착점에 대한 확신에서 나옵니다.

묵상

삭까는 기쁨의 이유를 지금 얻은 것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 닦을 길과 마지막 거처까지 넓혀 말합니다. 지금의 기쁨이 다음의 선한 선택을 돕는 경험이 있었는지 천천히 떠올려 볼까요?

130 여섯 이유를 맺고 깨달음에 이른 이를 찾아 헤맨 때를 돌아보다 1구절

삭까가 여섯 기쁨의 이유를 맺은 뒤 의심 속에서 깨달음에 이른 이를 오래 찾아다닌 지난 시간을 노래합니다.

부처님, 이 여섯 이유를 보기에 저는 이 같은 환희와 기쁨을 말합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의심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를 찾아 참으로 오랜 세월을 돌아다녔습니다.

Ime kho ahaṁ, bhante, cha atthavase sampassamāno evarūpaṁ vedapaṭilābhaṁ somanassapaṭilābhaṁ pavedemi. Apariyositasaṅkappo, vicikiccho kathaṅkathī; Vicariṁ dīghamaddhānaṁ, anvesanto tathāgat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앞에서 하나씩 제시한 여섯 이유를 한 문장으로 결산한 뒤 삭까의 회고 노래가 시작됩니다. 환희에 찬 현재와 달리 과거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의심하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를 찾으려 오랜 세월 돌아다녔다고 말합니다. 기쁨의 이유를 설명한 뒤 곧바로 자신이 오래 헤매며 찾아다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은, 오늘의 확신이 오랜 의문과 찾음 끝에 생겼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묵상

지금 분명해 보이는 방향도 오래전에는 의심과 망설임 속에 있었던 적이 있나요? 방황한 시간을 실패로만 정리하지 않고, 무엇을 진지하게 찾고 있었는지 한 가지 질문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을까요?

131 고요히 사는 수행자들에게 길을 물었으나 답을 얻지 못하다 1구절

삭까가 외딴곳에 사는 수행자들을 깨달은 이로 여기고 찾아가 성공과 실패, 길과 실천을 물었던 일을 회고합니다.

외딴곳에 사는 수행자들을 보고 깨달은 이들이라 여겨 그들 곁으로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어떻게 하면 실패합니까?” 이렇게 길과 실천을 물었으나 그들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Yassu maññāmi samaṇe, pavivittavihārino; Sambuddhā iti maññāno, gacchāmi te upāsituṁ. ‘Kathaṁ ārādhanā hoti, kathaṁ hoti virādhanā’; Iti puṭṭhā na sampāyanti, magge paṭipadāsu ca.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깨달음에 이른 이(따타가따)를 찾던 삭까는 외딴곳에 머무는 수행자들을 보고 그 생활 모습만으로 깨달은 이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그들 곁에 가서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 길과 실천은 어떠한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상대들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노래는 고요한 거처라는 외적 표지와 길을 실제로 아는 일을 구분합니다. 삭까가 묻는 것은 수행이 맞게 이루어지는 조건과 어긋나는 조건을 가려 줄 수 있는가입니다.

묵상

고요해 보이는 모습이나 특별한 생활 방식만으로 그 사람이 길을 안다고 여긴 적이 있나요? 겉모습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어떤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을까요?

132 수행자들이 도리어 삭까에게 신의 지위를 물어보다 1구절

상대들이 신들의 왕 삭까임을 알고 그 지위를 얻은 행위를 묻자, 삭까가 인간 세상에서 들은 가르침을 전합니다.

그들은 내가 신들의 세계에서 온 삭까임을 알게 되자, 도리어 내게 “무엇을 하여 이 지위에 이르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인간들 사이에서 들은 대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우리가 와사와를 뵈었다!”라고 했습니다.

Tyassu yadā maṁ jānanti, sakko devānamāgato; Tyassu mameva pucchanti, ‘kiṁ katvā pāpuṇī idaṁ’. Tesaṁ yathāsutaṁ dhammaṁ, desayāmi jane sutaṁ; Tena attamanā honti, ‘diṭṭho no vāsavoti ca’.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길과 실천에 답하지 못했던 수행자들은 방문자가 신들의 왕 삭까임을 알자 문답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제 그들이 삭까에게 어떤 행위를 하여 현재 지위에 이르렀는지 묻습니다. 삭까는 인간들 사이에서 들은 가르침을 자신이 들은 그대로 전하고, 그들은 신들의 왕을 직접 보았다며 기뻐합니다. 이 장면에는 지위가 높은 이에게 질문이 몰리는 역전이 있지만, 삭까 자신도 아직 의심을 넘어선 스승을 찾는 중입니다. 높은 지위와 풀려남의 길을 아는 지혜는 같은 것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묵상

명성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그 범위를 넘어선 답까지 기대한 적이 있나요? 누군가의 실제 경험에서 배울 것과 그 사람도 아직 찾고 있는 것을 구별하면 대화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 차이를 살펴볼까요?

133 의심을 건너게 한 깨달은 이께 두려움 없이 예경하다 1구절

삭까가 부처님을 뵙고 의심과 두려움을 벗어나 갈망의 화살을 없애는 견줄 이 없는 분께 예경합니다.

이제 의심을 건너게 하시는 부처님을 뵙고, 깨달은 이를 가까이 모시니 오늘 저는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의 화살을 없애는 견줄 이 없는 부처님, 태양의 친족인 위대한 영웅께 저는 예경합니다.

Yadā ca buddhamaddakkhiṁ, vicikicchāvitāraṇaṁ; Somhi vītabhayo ajja, sambuddhaṁ payirupāsiya. Taṇhāsallassa hantāraṁ, buddhaṁ appaṭipuggalaṁ; Ahaṁ vande mahāvīraṁ, buddhamādiccabandhun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오랫동안 여러 수행자를 찾아다녔던 회고가 부처님을 직접 만난 현재로 돌아옵니다. 삭까는 부처님을 의심을 건너게 하는 분으로 부르고, 가까이 모신 결과 오늘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이어 부처님을 목마름 같은 갈망(딴하)의 화살을 없애는 이, 견줄 사람이 없는 이, 태양의 친족, 위대한 영웅이라 차례로 부르며 예경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앞선 문답에서 다툼과 욕망의 조건을 분명히 알고 길에 확신을 얻은 변화와 연결됩니다.

묵상

의심이 모두 사라져야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여기서처럼 의심을 건너게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인지, 질문에 분명히 답해 주는 이해인지, 두 요소를 나누어 살펴볼까요?

134 신들이 숭배하는 이처럼 부처님을 스승으로 높이다 1구절

삭까가 신들과 함께 직접 예경하겠다고 밝히며 부처님만이 깨달은 위없는 스승이고 견줄 이 없다고 찬탄합니다.

부처님이여, 우리 신들이 브라흐마에게 하듯 오늘은 당신께 하겠습니다. 자, 우리가 직접 예경합시다. 당신만이 깨달은 이이며, 당신은 위없는 스승입니다. 신들을 포함한 세상에서 당신께 견줄 이는 없습니다.

Yaṁ karomasi brahmuno, samaṁ devehi mārisa; Tadajja tuyhaṁ kassāma, handa sāmaṁ karoma te. Tvameva asi sambuddho, tuvaṁ satthā anuttaro; Sadevakasmiṁ lokasmiṁ, natthi te paṭipuggalo”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삭까의 회고와 예경 게송은 신들의 존경 방식을 부처님께 돌리는 절정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신들이 브라흐마에게 하듯 오늘 부처님께 하겠다고 말하고,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예경하자고 청합니다. 이어 부처님만이 깨달은 이이고 위없는 스승이며, 신들을 포함한 세상에 견줄 이가 없다고 찬탄합니다. 이는 삭까가 자신도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스승의 자리를 분명히 하는 장면입니다.

묵상

높은 지위에 있는 이가 자신보다 배울 만한 이를 인정하는 모습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존경이 자기 판단을 버리는 일이 되지 않으면서도, 진심으로 배울 자리를 내어 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35 삭까가 빤짜시카의 도움에 왕위와 혼인을 약속하다 1구절

삭까가 부처님과의 만남을 먼저 마련한 빤짜시카에게 간답바 왕의 자리와 수리야왓짜사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신들의 왕 삭까가 간답바의 아들 빤짜시카에게 말했다. “벗 빤짜시카여, 그대가 먼저 부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어 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뒤에야 우리가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이며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을 뵈러 다가갈 수 있었다. 그대를 아버지의 자리에 앉혀 간답바의 왕이 되게 하고, 그대가 바라던 밧다 수리야왓짜사를 주겠다.”

Atha kho sakko devānamindo pañcasikhaṁ gandhabbaputtaṁ āmantesi: “bahūpakāro kho mesi tvaṁ, tāta pañcasikha, yaṁ tvaṁ bhagavantaṁ paṭhamaṁ pasādesi. Tayā, tāta, paṭhamaṁ pasāditaṁ pacchā mayaṁ taṁ bhagavantaṁ dassanāya upasaṅkamimhā arahantaṁ sammāsambuddhaṁ. Pettike vā ṭhāne ṭhapayissāmi, gandhabbarājā bhavissasi, bhaddañca te sūriyavacchasaṁ dammi, sā hi te abhipatthit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찬탄 게송을 마친 삭까는 만남의 길을 열어 준 빤짜시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빤짜시카가 먼저 음악과 노래로 부처님의 마음을 기쁘게 했기에 삭까와 신들이 뒤이어 다가갈 수 있었다는 순서를 분명히 합니다. 보답은 두 가지입니다. 빤짜시카를 아버지의 지위에 앉혀 간답바의 왕으로 삼고, 그가 바라던 밧다 수리야왓짜사와 혼인하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영적 문답의 결실 뒤에 이 세속적 보상이 기록되면서, 만남을 가능하게 한 중개자의 역할도 잊히지 않습니다.

묵상

중요한 만남이나 배움이 가능하도록 먼저 길을 열어 준 사람이 있나요? 결과만 기억하지 않고 그 중간의 도움을 알아보는 일은 지금 어떤 감사나 보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작은 표현부터 시작해도 좋아요.

136 땅을 짚고 세 번 부처님께 예경하다 1구절

삭까가 손으로 땅을 짚고 부처님·완전히 깨달은 이·온전히 깨달은 분께 드리는 예경을 정확히 세 번 외칩니다.

그러자 신들의 왕 삭까는 손으로 땅을 짚고 감동의 말을 세 번 외쳤다. “그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온전히 깨달은 분께 예경합니다. 그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 온전히 깨달은 분께 예경합니다. 그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 온전히 깨달은 분께 예경합니다.”

Atha kho sakko devānamindo pāṇinā pathaviṁ parāmasitvā tikkhattuṁ udānaṁ udānesi: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ā”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빤짜시카에게 보답을 약속한 뒤 삭까는 손으로 땅을 짚고 같은 예경문을 세 번 외칩니다. 예경의 대상에는 부처님, 완전히 깨달은 이(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이라는 세 칭호가 차례로 놓이고, 문장 전체도 생략 없이 세 번 반복됩니다. 앞에서는 신들과 함께 직접 예경하자고 노래했다면 여기서는 몸의 동작과 실제 발화로 그 뜻을 실행합니다. 같은 말을 세 번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은, 삭까의 감동이 구체적 행위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묵상

같은 예경을 세 번 되풀이하는 장면이 형식적으로 느껴지나요, 아니면 감정의 깊이를 보여 주나요? 나에게 의미 있는 말을 천천히 되풀이할 때 첫 번째와 마지막의 느낌이 달라지는지 살펴볼까요?

137 삭까와 팔만 신에게 티끌 없는 진리의 눈이 생기다 1구절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삭까와 다른 팔만 신이 생기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는 통찰을 얻습니다.

이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신들의 왕 삭까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겼다. “무엇이든 생기는 성질이 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성질이 있다.” 다른 팔만 신에게도 그러했다.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ṁ bhaññamāne sakkassa devānamindassa virajaṁ vītamalaṁ dhammacakkhuṁ udapādi: “yaṁ kiñci samudayadhammaṁ sabbaṁ taṁ nirodhadhamman”ti. Aññesañca asītiyā devatāsahassānaṁ;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세 번의 예경 뒤 문답의 내적 결실이 밝혀집니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삭까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진리의 눈이 생겼고, 그 내용은 생기는 성질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사라지는 성질이 있다는 통찰입니다. 같은 변화가 삭까 한 사람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팔만 신에게도 일어났다고 덧붙입니다. 앞서 삭까가 말한 환희의 여섯 이유와 두려움이 사라진 일은 이 장면에서 생겨남과 사라짐을 직접 보는 성취로 확인됩니다.

묵상

생기는 것은 사라진다는 말을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변화 앞에서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오늘 생겼다가 사라진 작은 감각이나 감정 하나를 있는 그대로 떠올려 볼까요?

138 삭까가 청한 물음에 답하여 삭까문이라는 이름을 얻다 1구절

부처님이 삭까가 청해 물은 질문들에 답했으며, 그 때문에 이 설명이 삭까문이라 불린다고 맺습니다.

이처럼 신들의 왕 삭까가 청해 물은 질문들에 부처님께서 답하셨다. 그러므로 이 설명을 바로 “삭까의 질문”, 곧 삭까문이라 부른다.

iti ye sakkena devānamindena ajjhiṭṭhapañhā puṭṭhā, te bhagavatā byākatā. Tasmā imassa veyyākaraṇassa sakkapañhātveva adhivacananti.

디가 니까야 DN 21 삭까빤하 숫따 (삭까의 질문 - 제석문경)

배경

경의 마지막 본문은 대화 전체의 성격과 이름을 함께 정리합니다. 질문들은 삭까가 청하여 묻도록 허락받은 것이며, 그 각각에 부처님께서 답했다고 결산합니다. 이어 이 설명이 삭까의 질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까닭도 바로 그 문답에 있다고 밝힙니다. 제목은 누가 물었고 누가 답했는지를 가리킵니다. 질투와 인색에서 시작해 욕망·생각·인식과 수행의 길을 거쳐 통찰에 이른 긴 문답이 이 두 문장으로 닫힙니다.

묵상

긴 대화를 “누가 진리를 가졌는가”보다 “누가 묻고 누가 답했는가”로 기억하는 제목은 어떻게 들리나요? 나의 중요한 배움 가운데 좋은 질문 하나가 길을 연 경험이 있었는지 돌아볼까요?